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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35)

카지모도 2023. 9. 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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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진의 병세 장한 품이 마산리에 있는 도적이 수백 명이라도 하나 놓치지 않고

이잡듯 잡을 것 같았다. 동쪽으로 들어오는 진의 선봉장 연천령이 마산리 동네에

들어서며 곧 군사를 시켜 동네 백성 하나를 잡아내다 놓고 대장쟁이 이춘동이란

놈의 집이 어디냐, 이가놈의 집에 아직 도둑놈들이 모여 있느냐 말을 물어본 즉

그 동네 백성이 서쪽에 있는 산을 가리키며 “대장쟁이 집은 저 산 밑에 있는

외딴 집이옵구 도둑놈들은 모두 산꼭대기로 올라갔소이다.” 하고 말하다가 손가락질

하던 손을 얼른 움츠러들이며 “산꼭대기에 일곱 놈이 섰는 게 보입니다.” 하고 말하

는데 그 손가락 끝이 가던 곳에 예닐곱 놈이 한데 뭉치고 섰는 것이 보이었다. “도둑놈

수효가 모두 몇이냐?” “일곱 놈이올시다.” “단 일곱 놈뿐이냐?” “녜, 일곱 놈뿐이

올시다. 그런데 소인이 이렇게 말씀 여쭙는 걸 도둑놈들이 볼 테니 뒤가 걱정이

올시다.” “그건 무슨 소리냐?” “도둑놈들이 산으로 올라갈 때 이 동네 백성

들더러 말씀 한마디라두 관군에 일러바치면 나중에 와서 동네를 도륙낸다구 했

소이다.” 연천령이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도둑놈 예닐곱에게 쥐어 지낸

동네 백성도 가련한 인생들이지만, 도둑놈 예닐곱을 잡으러 두 골 군사 오백여

명이 쏟아져 온 것도 일 같지 않았다. 대군이 오기 전에 도둑놈들을 다 잡아치

우려고 마음을 먹고 “저 산을 어디루 올라가느냐?” 하고 길을 물었다. “동네

뒤루두 올라가옵구 동네를 지나가서두 올라가는 길이 있소이다.” 연천령이 군

사들을 보고 “도둑놈들이 도망하기 전에 얼른 쫓아올라가서 잡아가지구 내려오

자.” 하고 소리치고 말을 채쳐 군사들의 앞을 서서 동네 뒤로 들어왔다. 눈 위

에 사람들 오르내린 발자국이 있어서 그 발자국을 따라 올라오는데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도둑놈들 있는 산꼭대기려니 생각이 들 때, 홀저에 위에서 아우성

이 나며 돌덩이와 나무 토막이 아래로 굴러내려왔다. 연천령이 큰 칼을 휘두르

며 “자, 올려밀어라!” 하고 소리치나 군사들은 돌덩이 나무토막을 피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뒤를 잘 따르지 못하였다. 연천령이 말을 잠깐 세우고 군사들을

돌아보며 빨리빨리 올라오라고 호령할 때, 말이 별안간 껑청 뛰어서 말에서 떨

어졌다. 군사 두엇이 부장을 붙들어 주려고 쫓아오다가 그중의 군사 하나가 어

디를 얻어맞았는지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구렁진 데로 떨어졌다. 연천령이 일어

나서 떨어진 칼을 집고 그 동안 아래로 뛰어간 말을 다시 잡아타려고 쫓아내려

가는 것을 군사들은 부장이 도망하는 줄로 알고 와 하고 내려 몰리는데 올라올

때와 딴판으로 앞을 다투어 뛰었다. 연천령이 이것을 보고 화가 충천하게 나서 군

사들을 쫓아오며 “이놈들, 왜 도망하느냐!”“게들 섰거라. 군령이다.” “군령

에 사정 없다. 모가지들이 떨어지구 싶거든 어서 내빼라!” 하고 소리소리 질러

서 겨우 군사들을 더 내려가지 못하게 제지하였으나, 벌써 먼저 올라갔던 데서

활 한 바탕 거리나 좋이 내려 왔었다. 연천령이 창피 본 분풀이로 군사들을 죽

일 놈 살릴 놈하고 한바탕 야단친 뒤 어느 틈에 옆에 와 섰는 말을 앞으로 끌어

내세우고 살펴본즉 앞굽 하나를 돌덩이에 짓찧인 모양인데, 그래도 굽통이라 단

단한 덕으로 아주 으스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구렁에 떨어진 군사를 데

려오라고 군사 두엇을 보냈더니 걷지 못하여 업고 왔는데 한편 다리의 정강이뼈

가 부러졌었다. 도둑놈들이 돌덩이 나무토막을 던지는데 말탄 사람을 목표삼고

많이 던져서 타고 앉은 말이 상하고, 붙들어 주러 오던 군사가 상한 듯하여 연

천령이 말을 타지 않을 작정으로 군사 두 명더러 하나는 상한 군사를 업고 하나

는 말을 끌고 동네로 내려가라고 한 뒤 다시 군사들을 몰고 산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그 동안 동구 밖에 와서 결진한 본진에서 퇴군하여 내려오라는 전령이 왔

었다. 연천령이 본진에 와서 승창들을 깔고 나란히 앉았는 이흠례와 정수익을

보고 “퇴군령을 어째 놓으셨나요?” 하고 물으니 “도둑놈들을 잡으러 올라가

기 전에 먼저 준비할 일이 있소.” 하고 이흠례가 대답하였다. “준비할 일이 무

엇입니까?” “지금 이 동네 것들의 말을 들은즉 산 위에 올라가 있는 도둑놈이

일곱 놈이라는데 일곱 놈을 모짝 다 잡지 못하구 한 놈이라두 놓치면 대군을 거

느리구 온 우리가 창피한 중에 더 창피할 테니 한 놈두 놓치지 않두룩 준비를

차리잔 말이오.” “녜, 그럼 일시에 동서 양쪽으로 쫓아올라가잔 말씀입니까?”

“쫓아올라가는 데두 양쪽으루 쫓아올라가려니와 그보다두 이 산을 타구 북쪽으

루 들어가면 큰길루 나갈 수가 있다니 북쪽에서 내쫓구 여기서 들이쫓구 해야

놓칠 염려가 없겠소. 그러니 연부장은 지금 빨리 물여울서 오는 길루 가서 본쉬

보구 길루 오지 말구 산을 타구 오거나 산이 험해서 탈 수가 없거든 이 산 뒤의

큰 길루 나가는 목을 지키라구 말씀하시우.” “군관을 하나 보내셔두 좋을 텐

데 왜 나더러 가라십니까?” “본쉬가 주장 노릇을 톡톡히 하려구 하는 모양인

데 군관이가서 말하면 딴소리 할는지 모르니 연부장이 가시우." "도둑놈들이 그

동안에 안 할까요?” “미련한 놈들이 관군을 항거할 생각으루 돌멩이 나무토막

깨진 그릇 등속을 수십 짐 산위에 갖다 쌓았다니까 우리가 올려치면 저이 힘껏

막다가 막지 못하게 돼야 도망할 것이오.” “그놈들이 항거 못할 줄 깨닫구 미

리 도망할는지 누가 압니까?”

정수익이 연천령더러 “그놈들이 도망할라면 벌써 도망했지 이때까지 있겠나.

그러구 우리 둘이 여기서 봐가며 대책을 세울 테니까 그런 염려는 고만두구 어

서 가게.” 하고 말하여 연천령이 녜 하고 대답하면서도 먼저 쫓겨내려온 설치

로 댓바람 쫓아올라가서 도둑놈들을 한칼에 무짜르고 싶은 마음이 속에 가득한

것을 억지로 참았다.

이흠례와 정수익이 군사를 두 대에 나누어서 동쪽 산잔등과 서쪽 산날가지를

각각 지키기로 의논한 뒤, 이흠례가 일대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나오는데 연천령

도 이흠례를 따라와서 선봉대로 데리고 왔던 평산 군사를 이흠례 진에 머물러

두려고 한즉 군사들이 타군 군사 틈에 겄여 있기가 싫든지 모두 따라가기를 원

하여 수솔군으로 데리고 나갔다. 산골에서는 큰 들이라고 할 만한 개야된 곳까

지 나와서 물여울서 오는 북쪽 산골길로 꺽이어 얼마 들어오다가 이의식의 몰고

오는 선봉대를 만났다. 이의식이 말을 놓아 앞으로 쫓아나오며 “자네 어디루

가나? 마산리에 도둑놈이 없든가?” 하고 물어서 연천령이 평산부사에게 약속하

러 가는 사연을 말한뒤 “막이 도둑놈 여닐굽 놈 잡는데 이게 무슨 야단인가.

사람이 창피해 죽겠네.” 하고 한숨까지 쉬었다. “그나마 잡지 못하구 놓치느

니.” “도둑놈을 잡지 못하구 놓치는 날이면 나는 서울 안 가겠네.” “서울 안

가구 어디루 도망할라나?” “나 혼자서라두 적굴을 찾아갈라네.” “도둑놈들

손에 죽구 싶어서?” “죽어두 좋지. 설마 고깃값이야 못하겠나.” “그러면 일

이 더 커졌는걸.” “일이 더 커지다니?” “도둑놈 잡을 일에 친구 살릴 일이

엄쳐서 더 커졌단 말이야.” “실없은 말은 고만두구 자네가 마산리 당도하거든

곧 산으루 쫓아올라가두룩 하게. 그 동안 나는 평산부사에게 가서 말하구 같이

뒤에서 쫓아나갈테니.” “앞에서 둘이 쫓거든 뒤에서 놓치게나 말게.” “내가

뒤에 가 있으면 뒤에선 놓칠 리 만무하지.” ““내가 앞으로 가니 앞두 염려 말게.”

“자, 어서 가게. 이따 만나세.” “도둑놈을 앞에서 다 잡아놓거든 와서 구경하게.”

“잡지는 못하더라두 튀기기나 잘하라게.”

연천령이 이의식과 마상에서 이런 수작을 하고 남북으로 서로 갈리었다.

연천령이 이의식을 만난 데서 한 이 마장쯤 더 와서 평산부사 장효범이 행군

하여 오는 것을 만났는데, 산골길이 좁아서 당당하게 작대는 할 수 없겠지만 뒤

죽박죽 몰려오는 꼴이 마치 패진하고 쫓겨오는 군사들과 흡사하였다. 그러나 나

팔수의 나발 부는 소리와 고수의 북치는 소리는 기세가 좋아서 양쪽 산이 찌렁

찌렁 울리었다. 연천령이 말에서 내려와 장효범 말머리에 와서 군례로 국궁하고

도둑놈을 앞뒤로 쫓을 계책을 말하니 장효범이 시뜻하며 “내가 여러분의 강권

으루 주장노릇을 하기루 했으니 주장명색의 말이나 들어보구 계책을 정해야 하

지 않소. 각자이위대장이오. 그럼 나는 내맘대루 할 수 밖에 없소.” 하고 꿰어

진 소리를 하였다. 연천령이 비위가 상하는 품으로는 곧 “모르겠소. 맘대루 하

시구려.” 하고 내받고 싶으나, 그러면 이흠례가 군관을 안 보내고 자기를 보낸

보람도 없거니와 그보다도 도적을 잡는데 낭패가 날는지 몰라서 비위를 참고 “

일이 급해서 오시기를 기다리지 못하구 작정했다구 정선전이 증언부언 말씀합디

다.” 하고 왕명 받고 온 사람의 무게로 장부사의 여기를 누르려고 정선전을 내

세웠다. “그 계책을 낸 사람이 이봉산이 아니구 정선전이오?” “작정하기 전

의논은 이봉산과 둘이 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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