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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36)

카지모도 2023. 9. 7.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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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전으루 말하면 어명을 받잡구 온 사람이니까 일에 혹 실수가 있더라두

용서할밖에.” 하고 장효범이 자기옆에 말을 세우고 있는 금교찰방 강려를

돌아보았다. “우리 중의 누가 실수가 있다손 치더라두 도적을 잡구 나서

이야기하는 게 옳지요. 빨리 군사를 돌려가지구 지금 지나온 동네앞에까지

도루 가서 거기서 산으루 올라가든지 길목을 지키든지 작정합시다.”

“강찰방 말이 옳소.” 하고 장효범이 곧 가까이 섰는 군관을 불러

서 지금 지나 내려온 동네까지 도로 가도록 군사를 돌리라고 영을 내렸다. 연천

령은 나가서 말을 타고 다시 돌아와서 강려 옆에 말을 세웠다. “여기서 바루

산으루 올라가두룩 해보시지요?” “여기는 산이 험준해서 올라갈 수가 없소.

여기서 죽 내려가며 어디 올라갈 만한 데가 있나 보시구려.” 강려가 산을 가리

키는데 연천령이 좌우 산천을 다시 한번 살펴보니, 길 서쪽 산기슭은 그다지 험

하지 아니하나 길 동쪽 산세는 과연 험하여 쭉쭉 미끄러지는 빙설이 아니라도

올라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산골을 다 지나오니 조그만 동네요, 개울 건너를 바라보니 편편한 들판이었다.

장효범이 동네 앞에 와서 진을 머무른 뒤 강려를 보고 “지키자면 어디를 지키

는 게 좋겠소?” 하고 의논하여 “저 들판을 건너가면 산새에 남쪽으루 뚫린 길

이 있다니까 그 길을 지키는 게 좋겠지요.” 하고 강려가 대답하는 것을 연천령

이 가까이 있다가 듣고 승창에 앉은 장효범 앞에 나와 서서 “산으루 올라가서

쫓아나가지 않구 길을 지키실랍니까?” 하고 들이대듯이 물었다. “산에 올라가

서 공연히 눈 속에 싸지르느니 길목을 단단히 지키구 있는 게 좋지 않소?” “

그럼 나는 다시 마산리루 갈랍니다.” “마산리는 이부장이 갔는데 연부장마저

갈 게 무어요?” “서울서 여기까지 와서 남들이 도적 잡는 것 구경하구 있게

요?” “갈라거든 가우. 그러나 데리구 온 군사는 여기서 쓸테니까 다시 못 주

겠소.” “녜, 나 혼자 달려가는 게 빨라서 되려 좋습니다.” 연천령이 분연히

돌쳐서서 말 타러 나올 때 강려가 뒤에서 “연부장 잠깐만 거기 서 기시우.”

하고 만류한 뒤 장효범을 돌아보고 “나를 군사 백 명만 나눠 주시면 나는 연부

장하구 같이 산으루 쫓아나가구 영감은 그 나머지 군사를 데리구 길을 지키시는

게 더 단단할 것 같은데 영감 생각엔 어떠시우?” 하고 말하니 장효범이 강려

의 말은 잘 듣는 듯 “아무리나 좋두룩 합시다.” 하고 대답하였다.

얼음 위로 개울을 건너고 눈 속으로 들판을 지나고 산 사이에 뚫린 통로에 와

서 장효범은 군사 일백사십여 명을 데리고 길을 지키고 강려와 연천령은 군사

백 명을 거느리고 산으로 올라왔다. 백 명 중에 이 근처 길을 잘 아는 군사가

한둘이 아니어서 그 군사들 말이 산속에도 마산리 동네 뒤로 나가는 훌륭한 초

로가 있다고 하여 그 군사들을 앞세우고 쫓아나오는데, 연천령은 도둑놈이 어디

쫓겨나오나 하고 연해 좌우를 돌아보았다.

꺽정이패는 돌 몇 덩이, 나무 몇 도막으로 관군 한떼를 물리치고 재미들이 나

서 동구 밖에 결진한 수백 명 관군을 안하에 내려 보고들 있는 중에 관군이 동

서로 올라오려고 준비 차리는 것을 보고 이봉학이가 꺽정이더러 “관군이 일시

에 양쪽으루 올려밀면 우리가 손이 모자라서 아까같이 막아내긴 틀렸으니 고만

어디루 갑시다.” 하고 말하는데 길막봉이가 중간에 불쑥 나서서 “일껀 품 들

여 져올려다 놓은 걸 아깝게 내버리구 간단 말이오? 절구통이구 잿독이구 장항

아리구 하나두 남기지 말구 다 쓰구 갑시다.” 하고 말하여 이봉학이가 눈살을

잠깐 찌푸리고 “아깝긴 무에 아깝단 말인가. 주착없는 소리 하지 말게.” 하고

나무랐다. 그러나 꺽정이 역시 길막봉이의 의사와 대동소이하게 “아까 같은 재

미 한번만 더 보구 가세.” 하고 말하므로 이봉학이는 다시 더 말 않고 고만두

었다. 이춘동이가 이봉학이의 대를 받아서 “관군이 오륙백 명이라더니 여기 온

것은 이삼백 명밖에 더 안될 것 같소. 그러면 절반 가량은 다른 데루 간 모양

아니오? 북쪽에서 이 산을 에워싸구 서쪽에서 큰 산으루 건너갈 길을 막으면 우

리는 천라지망에 빠져서 빠져나갈 틈이 없소. 한 시각이라두 바삐 도망합시다.”

하고 걱정스럽게 말하니 꺽정이는 한번 껄껄 웃고 “에워싸든지 막든지 저이 할

수 있는 대루 다 하라게. 그래두 우리는 빠져나갈 테니 염려 말게.” 하고 이춘

동이의 어깨를 뚜덕뚜덕하였다.

동쪽, 서쪽의 관군은 모두 아무 동정이 없고 산 위 눈 위의 바람은 혹독히 차

서 꺽정이, 질막봉이 두 사람 외의 다른 사람들은 혹 몸을 옹송그리기도 하고

혹 발을 동동거리기도 하였다. 그 중의 김산이 같은 사람은 보기가 딱하도록 덜

덜 떨었다. 황천왕동이가 김산이를 와서 붙들고 “자네 몹시 치운 모양이니 화

톳불을 좀 놓을라나?” 하고 말을 걸었다. “여기서 무얼루 화톳불을 놓아?”

“여기선 왜 못 놓겠나. 놓을라면 놓을 수 있지. 우리 가진 부싯깃을 모아서 한

데 뭉쳐서 절구통 우에 놓구 저기 광술 박힌 나무토막이 수두룩하게 많으니 광

술을 얇게 삣기두 하구 잘게 쪼개기두 해서 부싯깃 위에 엉성하게 덮어 놓구 부

싯깃에 불을 붙여서 그불이 광술에 옮아 달리면 나중에는 통나무 토막이 활활

타두룩 화톳불을 놓을 수 있지 않겠나.”

김산이가 화톳불 놓을 공론만 들어도 추위가 잊어지는 듯 떨리는 것이 적이

진정되었다. 배돌석이는 불 붙은 나무토막으로 관군들을 덴둥이 만들어도 좋겠

다고 말하고 길막봉이는 화톳불에 떡이나 구워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여 여러

사람이 같이 웃을때, 홀저에 북소리가 서쪽에서 나고 또 동쪽에서 났다. 양쪽 관

군이 일시에 올라오는데 계책을 서로 위논하여 정한 듯 양쪽에서 다같이 산꼭대

기를 활 한 바탕 못 남겨놓고는 산꼭대기가 바라보이는 산모퉁이에 활잡이들을

남겨서 먼장질을 시키고 창잡이, 칼잡이들은 위로 쫓아올라왔다.

꺽정이는 배돌석이, 황천왕동이를 데리고 동쪽 관군을 막고 이봉학이는 길막

봉이, 김산이, 이춘동이를 데리고 서쪽 관군을 막기로 작정한 뒤 각각 관군이 턱

밑에 오기를 기다리는데,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려고 나무들을 의지하고 서 있었

다. 이봉학이가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중에 별안간 귓가에서 딱 소리가 나며 화

살 하나가 옆에 나무 밑동에 와서 박혔다. 이봉학이가 괘씸스러운 생각이 나서

한 옆에 놓아 두었던 활을 가서 집어들고 전통에서 살을 꺼내려다가 말고 나무

에 박힌 살을 와서 흔들어 보았다. 궁력이 약한 사람의 살이든지 깊이 박히지

아니하여 몇 번 이리저리 흔들어서 뽑아 가지고 촉을 조져서 시위에 먹여 들었

다. 관군의 활잡이 선 곳을 바라보니 활잡이들 뒤에 말탄 사람 하나가 우뚝하여

겨냥대기 좋았다.

이봉학이가 활을 쏘았다. 그러나 깍지손을 떼며 곧 아차 소리가 입에서 나왔

다. 겨냥댄 말탄 사람의 몸이 깍지손 떼는 순간에 움직이었던 것이다. 봉산군수

이흠례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줄도 모르고 군사들더러 나무 앞에 나서는 놈을

쏘라고 말을 이르려고 몸을 앞으로 굽히자마자, 상투 밑이 뜨끔하여 손이 절로

올라가서 만져 보니 화살이 와서 꽂히었었다. 등겁하여 말께서 뛰어내려서 군사

뒤에 숨었다. 벙거지의 모자 앞을 뚫고 상투 밑을 꿰고 모자뒤까지 나간 살이

천하 명궁이 미간을 겨냥댄 살인 줄 알았더면, 두고 두고 등골에 찬땀을 흘렸을

것이다. 이봉학이 손에 화살이 한 대만 더 있었더라도 이흠례는 마산리 귀신이

되고 말았을 것인데, 첫 대는 공교하고 빗맞고 둘째 대는 손에 가지지 않아서

이흠례가 비명의 죽음을 면하였다. 이것은 천명이랄밖에 없다.

이 동안에 선두에 선 관군들이 벌써 턱밑에를 다 와서 길막봉이가 큼직한 돌

덩이를 내던지기 시작하여 이봉학이는 얼른 활을 전동 위에 갖다놀고 김산이,

이춘동이와 같이 돌도 굴리고 나무도 집어던졌다. 활잡이들의 먼장질은 뜸하여

졌다. 뜸하지 않더라도 겁 날건 없는 것이 바람을 거슬려서 치쏘는 화살이 거지

반 작이 모자라서 산밑에 올라오는 관군들이 되려 상하기가 쉬웠다. 올라오는

관군들은 돌, 나무, 깨진 그릇을 피하느라고 빨리 올라오진 못하나 그대로 일보

일보 자꾸 올라와서 네 사람이 비록 삼두육비를 가졌더라도 도저히 막아낼 가망

이 없었다. 더구나 동쪽에는 말탄 사람이 둘인데, 하나는 활잡이들과 같이 중간

에 처지고 하나는 창잡이, 칼잡이들을 몰고 오는 까닭에 올라오는 것도 서쪽보

다 훨씬 빨랐다. 서쪽의 이봉학이가 활을 쏠 때 동쪽의 세 사람은 벌써 돌과 나

무를 던지느라고 분주하였다. 관군이 자빠지고 엎드러지는 동무들을 돌보지 않

고 올려밀어서 산꼭대기에서 과즉 예닐곱 간밖에 안 될 데까지 올라왔다. 황천

왕동이가 깨진 그릇으로 잿독의 매운 재를 퍼다가 그릇째 내던졌다. 황천완동이

하는 것을 보고 배돌석이도 재로 대들어서 둘이 뻔질 퍼날랐다. 바람이 마침 높

새라 재를 아래로 날리는데 서쪽만 못하나 그래도 위에서 던지는 바람에 앞장

선 관군들은 눈을 뜨지 못하도록 재가 날았다. 그 관군들이 뒤로 물러내려가자,

말탄 사람이 쫓아올라오며 내려오지 못한다고 호령호령하였다. “저놈을 내려가

서 요정내구 올까 부다.” 꺽정이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 “가만히 기시우. 내

가 내려가리다.” 배돌석이가 왼팔에 돌주머니를 걸고 바른손에 팔맷돌을 꺼내

들며 아래로 쫓아내려갔다.

말탄 사람이 배돌석이의 쫓아오는 것을 수상히 여기는 듯 뻔히 바라보고 있더

니 배돌석이 손이 번뜩한 뒤 몸을 한번 기우뚱하였다. 면상에 들어가 맞을 팔맷

돌이 귀 뒤로 지나갔다. 배돌석이가 이것을 보고 적지 아니 놀라서 자기의 특별

한 재주인 연주팔매를 치려고 돌주머니의 돌을 왼손에 한줌, 바른손에 한 개 꺼

내 쥐는 동안에 그 사람은 얼굴이 말갈기에 닿도록 납작 엎드리고 말을 놓아 앞

으로 쫓아왔다. 배돌석이가 사람을 놓아두고 말을 쳤다. 말이 한짝 눈에 돌을 맞

고 대가리를 번쩍 치켜들며 앞을 솟치는데 그 사람이 말에 익어서 낙마는 아니

하였으나, 말을 제지할 때 부지중 고개를 좀 쳐들었다가 앞이마에 돌을 맞았다.

이마를 깨고 비로소 영문을 알았던지 별안간 말머리를 돌이켜서 아래로 달려 내

려갔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무예 출중한 부장 이의식이니, 눈이 밝고

손이 재서 눈앞에 들어오는 화살을 손으로 예사 잡는다던 사람이다. 배돌석이의

첫번 팔매를 피한 것만 보아도 그 재간을 알 수 있었다. 배돌석이가 말탄 사람

의 뒤를 쫓아 아래로 더 내려가며 돌 한 개에 군사 하나씩 넘어뜨렸다. 군사가

대여섯 넘어지자, 여러 군사들은 와 하고 도망하였다.

이때 서쪽에서는 길막봉이가 절구통을 내던지는 바람에 관군의 올라오는 기세

가 좀 꺽이어서 잠시 숨들을 돌리던 차에, 황천왕동이가 잿독을 끌고 와서 길막

봉이더러 관군 가까이 들고 내려가서 잿독에 남은 매운 재를 쏟으라고 가르쳤

다. 재를 쏟아서 바람 아래 관군들이 눈을 잘 뜨지 못할 때, 길막봉이가 목청 가

지껏 호통을 지르며 잿독을 내려치고 또 황천왕동이와 이춘동이가 맞들고 내려

온 장항아리가 깨지며 관군에게 장물 벼락을 들씌웠다. 관군이 도망질을 치기

시작하였다. 관군의 쏟아져 내려가는 형세가 물꼬에 마치 물을 터놓은 것 같아

서 우두머리 군관들도 제지할 힘이 없었다.

이봉학이가 꺽정이게 와서 “형님, 인제 고만 갑시다.” 하고 말한 뒤 배돌석

이가 배를 잔뜩 내밀고 찬찬히 올라오는 것을 내려다보고 빨리 올라오라고 소리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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