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10권 (19)

카지모도 2023. 10. 5. 06:02
728x90

 

 

황해도 순경사는 그 동안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있었던가. 황해도 순경사가 서울

서 떠나던 날 파주 숙소하고 다음날 개성 숙소하고, 개성서 숙소하던 이튿날은

유수와 이야기하다가 점심대접까지 받고 다 저녁때 떠나서 벽란도 나와 숙소하

고 다음날 숙소참은 연안이 알맞았으나 부사의 등대 범절이 태만하여 괘씸할뿐

더러 이튿날 해주를 대기가 어려워서 홰를 잡히고 삽다리 와서 숙소하고 그 다

음날 해질 무렵에 해주를 들어왔었다. 감사가 노문을 보고 순경사의 사처와 군

사들의 숙소를 미리 정하여 놓고 중군을 5리 밖에서까지 마중을 내보내고 사처

에 와서 든 뒤 예방비장을 내보내서 엄동설한에 원로행역이 얼마나 수고되시느

냐고 위로 전갈을 하였다. 예방비장은 감사 김덕룡의 서족인데 이사중이 등과하

기 전에 같은 한량으로 한사정에 다니던 사람이라 오래간만에 서로 만나서 반기

었다. 예방비장이 전갈 나왔다가 눌러앉아서 얼마 동안 서회하고 들어갈 때 순

경사는 감사에게 석후에 들어가서 보입는다고 답전갈하였다.

선화당에 등촉이 휘황하고 배반이 벌어졌다. 감사가 성서한 주안으로 순경사

를 대접하는 중이었다. 선화당 수청외의 기생 사오 명이 좌우에 앉아서 청아한

노래와 번화한 웃음들로 주흥을 돋우었다. 사오 명이 다 해주의 일등 기생이

라 얼굴이 어여쁘거나 태도가 아리땁거나 그렇지 않으면 노래가 명창으로 다 각

각 취할 모가 있었다. 여러 기생이 순경사 눈에 들려고 혹태도 짓고 혹 아양도

부리고 또 혹 추파로 정도 흘리는데 그 중의 한 기생만은 눈을 아래로 깔고 단

정히 앉아서 순경사의 얼굴도 별로 보지 아니하였다. 마치 순경사 인물을 맘에

차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저 얌전빼구 앉았는 년 술 한잔 부어라.” 분결

같은 두 손이 술잔을 들고 받기를 기다리었다. “한마디 있어야지.” 흰 이가 보

일 듯 말 듯한 붉은 입술 사이로 나오는 나지막한 권주가 소리가 주안상 위에

떠돌았다. 순경사가 술을 받아 마시고나서 “너는 이름이 무엇이랬지?” 하고

물었다. “초운이라고 부릅니다.” “좋다, 초운이, 무산신녀가 네로구나. 그러나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네가 아침의 구름만 되지 저녁의 비는 지을 줄 모르느

냐.” “남이 지어준 이름 뜻을 지가 어찌 아오리까.” 감사가 순경사를 보고 웃

으며 “영감이 양대운우에 뜻이 있으면 내가 영감을 위하여 일잔 바람을 도우리

다.” 하고 상없지 않게 농을 한 뒤 초운이더러 “너 오늘 밤에 순경사 사또 사

처에 가서 수청을 들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다른 기생들의 눈치는 초운이를

시새워하고 부러워하는 모양인데 초운이는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순경

사가 초운이의 기색을 보고 “내게 수청들기가 싫으냐? 싫거든 고마둬라.” 하

고 말은 웃으며 하는 눈치는 좋지 아니하였다. “하방 천기로 사또 같으신 귀인

을 뫼시는 것이 몸에 넘치는 영광이온데 싫다 할 리 있사오리까.” “그러면 순

상 사또 분부를 듣구 실심하는게 웬일이냐?” “사또께 실심한 것같이 뵈온 것

은 천성이 옹졸한 탓이외다.” “그건 둔사다. 그러나 네 둔사는 추가하지 않구

덮어두구 술이나 먹겠다. 자 또 부어라.” 맛있는 술과 재미있는 웃음에 밤이 가

는 줄 모르게 가서 어느덧 이슥하였다. 순경사가 감영에 들어올 때는 말을 타고

군사들을 앞뒤에 늘어 세웠었지만 사처로 나올 때는 통인을 초롱 들려 앞세우고

초운이를 뒤에 딸리고 걸어나왔다. 순경사가 사처에 나와 앉아서 대령 군사들을

물리고 초운이를 촛불 아래 앉히고 다시 보니 술자리에서 볼 때보다도 더욱 어

여쁘나 웃음에는 강작이 많고 미간에는 주름이 절로 잡히는 것이 속에 무슨 수

심이 있는 계집 같았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10권 (21)  (0) 2023.10.07
임꺽정 10권 (20)  (0) 2023.10.06
임꺽정 10권 (18)  (0) 2023.10.04
임꺽정 10권 (17)  (0) 2023.10.03
임꺽정 10권 (16)  (0) 202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