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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0권 (20)

카지모도 2023. 10. 6.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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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경사가 점잖게 묻자면 “네가 무슨 근심이 있느냐?” 하고 물을 것을 실없

는 말로 “네 애부가 오늘 밤에 기다린다구 했느냐?” 하고 물으니 초운이는 대

답이 없었다. “어째 대답이 없느냐?” “어떻게 대답하올지 대답할 말씀을 생

각하는 중이올시다.” “지가 애부가 있다고 하오면 사또를 기망하는 것이옵고

없다고 하오면 사또께서 곧이 안 들으실 테니까 그래서 대답을 아뢰기가 어렵소

이다.” “그래 네가 애부가 없다는 걸 내가 잘못 넘겨짚었단 말이냐?” “바른

대로 아뢰자면 없다고 아뢸밖에 없소이다.” “전에는 있었구 지금은 없단 말이

냐?” “지금도 없고 전에도 없었소이다.” “그럼 아까 너의 감사가 수청 분부

할 때 실심한 건 무슨 까닭이며 지금 예 와서두 눈살을 펴지 못하구 앉았는 건

무슨 까닭이냐?” “지가 남과 같이 가식하는 재주가 없어서 속에 있는 근심 걱

정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엄적 못하는 까닭이외다.” “네 속에 무슨 근심

걱정이 있느냐?” “사또 앞에 구구한 사정을 아뢰긴 황송하오나 물으시니 대강

아뢰겠소이다. 지가 늙은 어미가 있사온데 어미는 재령 사는 오라비에게 가서

있솝구 저는 여기 사는 고모에게 얹혀 있소이다. 어미가 본래 다병한 사람이라

무슨 급한 병으로 방금 죽게 되었는데 죽기 전에 저를 한번 보아지라고 한다고

어제 전인이 와서 즉시 말미를 얻으랴고 청했솝더니 행수가 저하고 무슨 혐의가

있는지 중간에서 훼방을 놀아서 못 얻었소이다. 남의 자식 되어서 죽는 부모 가

슴에 못을 박아주면 살아서 무어 하오리까. 저는 지금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아무

다른 생각이 없소이다.” “친환에 말미를 안 주다니 그런 일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내일 김사과에게 말해 주마.” “김사과라니요?” “예방비장 말이다.” “

예방 나리 말씀 한마디면 며칠 말미는 고사하고 몇 달 말미라도 당장 허락이 날

것이외다.” “내일 어미를 보러 가두룩 해줄 테니 염려 마라.” 초운이 얼굴에

안심하는 빛이 나타나며 턱을 괴고 있던 손이 무릎 아래로 내려왔다. 이튿날 식

전에 감영 통인이 감사 전갈을 나왔을 때 순경사가 그 통인더러 “예방 나리께

바쁘신 일이 없거든 좀 나오시라구 말씀해라.” 하고 말을 일렀더니 통인이 들

어간 뒤 얼마 아니 있다가 예방비장이 나왔다. 밤 잔 인사 수작이 끝난 뒤 “내

가 자네게 청할 일이 하나 있네.” 하고 순경사가 말하니 “무슨 청입니까?”

하고 예방비장이 물었다. “저 초운이가 어머 병이 있어서 말미를 얻으려다가

못 얻었다네. 자네가 말해서 말미를 얻두룩 해주게.” “하룻밤을 자두 만리성을

쌓는단 말이 헛말이 아니올시다그려. 영감께서 특별 청하시는 일을 아니 들을

길이 있습니까. 영감 말씀대루 하겠습니다.” “내가 순상하구 공무를 좀 의논해

야겠는데 어느때쯤 좋겠나?” “어느때든지 좋을 줄 압니다. 그런데 영감께서

내일 떠나신다니 수일 동안 해주 구경이나 하시구 떠나시지요.” “공무가 바쁜

데 한만히 구경하자구 묵을 수야 있나.” “여기서 어디루 가실랍니까?” “재

령을 거쳐서 봉산으루 가겠네.” 예방비장이 초운이를 돌아보고 “네 어미가 봉

산 어디 있다지?” 하고 물어서 “아니올시다. 재령읍에 있습니다.” 하는 대답

을 들은 뒤 “그럼 좋은 수가 있구나. 오늘 밤까지 순경사 사또를 모시구 내일

행차 뒤에 따라가거라. 말미는 내가 오늘 얻어놓으마.” 하고 말하는데 순경사는

손을 홰홰 내저었다. “왜 그러십니까? 초운이 같은 이쁜 계집을 하루라두 더

보시는 게 좋지 않습니까?” "초운이는 이쁘기는 곧 궤어차구라두 가겠지만 순

경사가 도둑놈 안 잡구 기생 싣구 다녔다면 말썽스러운 양사에서 옳다꾸나하구

들구 나서라구.” “대론이 무서우면 내가 방지해 드립지요.” 예방비장의 실없

은 말을 “나는 자네가 그런 힘이 있는 줄은 몰랐네.” 순경사도 실없는 말로

대답하고 실없는 말끝을 그대로 계속하여 “초운이를 오늘 제 어미게루 보

내주는 게 대론 방지하는 데 우물고누 첫술세.” 하고 말하니 “영감께서 정히

먼저 보내라시면 오늘 보내두룩 하겠습니다.” 하고 예방비장이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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