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잔을 들어 신랑이 위로, 신부가 아래로 가게 바꾸시오. 허근의 소리가 다
시 울린다. 이 순서야말로 조심스러운 것이고, 이제까지의 복잡하고 기나 긴 예
식의 마지막 절차이다. 또한 가장 예언적인 성격을 띠는 일이기도 하였다. 사람
들도 이때만은 숨을 죽인다. 하님과 대반은 술상 위에 놓여 있는 표주박 잔을
챙긴다. 세 번째 술잔은 표주박인 것이다. 원래 한 통이었던 것을 둘로 나눈, 작
고 앙징스러운 표주박의 손잡이에는 명주실 타래가 묶여 길게 드리워져 있다.
신랑 쪽에는 푸른 실, 신부 쪽에는 붉은 실이다. 그것은 가다가, 서로 그 끝을
정교하게 풀로 이어 붙여서 마치 한 타래 같았다. 이제 이렇게 각기 다른 꼬타
리의 실끝이 서로 만나 이어져 하나로 되었듯이, 두 사람도 한 몸을 이루었으니,
부디부디 한평생 변치 말고 살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어려운 것은, 그 표주박에
가득 술을 부어 술잔을 서로 바꾸어 마셔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술잔을 바꾸
면서 술을 한 방울이라도 흘려서는 안된다. 또 실이 얽히거나 꼬여서는 더욱 안
된다. 술방울을 흘리면 흘린 쪽의 마음이 새어 버리고, 실이 얽히면 앞날이 맺힌
일이 많아, 그만큼 고초가 심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님과 대반은,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온몸을 조심하며 술잔을 서로 바꾸는 것이다. 양쪽 상 위에 서리를
틀고 있는 청실 홍실은 구름 끼인 볕뉘 아래 요요히 빛나고 있다. 하님과 대반
은 각기 신랑과 신부에게 표주박을 쥐어 준다.
"시이자아가악치임주우."
허근의 목소리는 고비에 이르렀다. 드디어 하님과 대반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
나 긴장을 하고 조심하면, 일은 더욱 더디어지고 걸리기 마련인가, 아니면, 워낙
명주실이라는 것이 부드럽고 가늘어, 이리저리 옮기지 않아도 제 타래에서 제
실낱끼리라도 얽히는 것일까. 그만 실이 꼬이더니 얽히고 만 것이다.
츳!
허담이 혀를 찼다.
하이고오, 어쩌고오...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소요가 일었다. 그 수런거림은 불기한 음향을 남겼다. 물
론 그것은 작은 매듭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마음을 철렁하게 하였
다. 그러나, 여기서 더 어쩔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가느다란 실탈을 헤쳐가며
풀 수도 없으려니와, 그러다가는 표주박의 술마저 엎지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
다. 기왕에 얽혀 버린 실을 풀어 내다가는 다음 일조차도 그르치게 된다. 허근의
얼굴이 어둡게 찌푸려진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그냥 두라고 했다. 그래서 아까
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어깨를 움츠리며 잔을 나르는 대반의 코에 땀이 솟아난
다.
아하아아.
하객 중의 한 사람이 탄성을 발했다. 술방울을 흘리지 않고 무사히 잔이 건네
어진 모양이었다. 사람들도 저마다 비로소 숨을 튼다. 그리고 이제 점점 끝나가
는 예식을 아쉬워하며, 신랑과 신부가 표주박의 술을 남기지 않고 한 번에 마시
는지 어쩌는지, 마지막 흥겨움과 긴장을 모으며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했다. 신
랑이 잔을 비운다. 대반은 신랑의 손에서 표주박을 받아 상 위에 놓는다. 신부의
차례에 이르자, 사람들은 저절로 흥이 나서 고개를 빼밀고 꼰지발을 딛는다.
"어디, 어디, 나 좀 보드라고오."
누군가 사람들의 틈으로 고개를 비집어 넣으며 말한다.
"밀지 말어. 자빠지겄네잉."
"시잇, 참말로 시끄러 죽겄네에, 쥐딩이 조께 오무리고 있드라고."
신부는 눈을 내리감은 채 수모가 기울여 주는 표주박의 술을 한 방울씩 마신
다. 그러나 그것은 시늉만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말로 신부가 한 방울씩 술
을 마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흥겹다 이윽고 수모는 잔을 떼어낸다.
왁자지껄
사람들은 한꺼번에 참았던 소리를 터뜨렸다. 한숨을 쉬기도 하였다. 그때 누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와그르르, 웃는 소리가 뒤쪽에서 일었다. 웃음 소리가 대례
상 위로 쏟아진다.
"예피일철사앙."
예를 마쳤으니 상을 거두시오.
허근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린다. 그 소리에 신부의 어머니 정씨부인은 가슴
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이상한 일이다. 한 시름이 놓이고 마음이 가벼워져야
할 터인데, 웬일로 그렇게 힘이 빠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실이... 그렇게... 어찌할꼬... 이 노릇을...
그네는 스스로 머리를 저었다.
(사위스럽다.)
그러나 그네는, 아까 분명히, 실이 얽히는 것을 보았다.
(허나 그런 일은 흔히 다른 초례청에서도 있는 일이 아닌가. 또한 그런 절차
는, 모두, 정성을 다하려는 마음가짐을 이르는 것일 뿐, 그까짓 실타래가 무엇을
알랴.)
정씨부인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고인다.
"각조웅기소오."
허근은 예의 마지막 분부를 한다. 이제 모두 제 처소를 따라 자리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례상 위에 놓여 있는 밤과 대추를 신랑 주머니에 넣어 준다.
저녁에 신방에서 먹으라고 했다.
"혼자 다 먹지 말고."
그 말에 마당에서는 다시 한 번 웃음이 일고, 어린 신랑은 귓부리가 붉어진다.
신랑과 신부가 각기 대반과 하님의 부축을 받으며 초례청을 떠나자 마당은 바야
흐로 이제부터 흐드러진 잔치에 들어갈 모양이었다. 상객 이기채의 일행과 허담
의 대소가는 사랑에 들었다. 그리고 부인들은 안채로 모였다. 그러는 중에도 손
님들이 끊임없이 중문을 자나 안으로 들어오고, 집안 사람들은 다리 사이에서
바람 소리를 내며 종종걸음을 친다. 하객들은 마당의 차일 아래 넘쳐났다.
"하이고오. 누구는 좋겄다아."
점봉이네는 신방 쪽을 향하여 탄식처럼 말을 뱉어낸다
"그런디마시 초리청으서 그렇코롬 청실 홍실이 엉케 부러서 갠찮으까 몰라?
머 벨 일이사 있겄능가잉? 무단헌 생각이제."
콩심이네가 말을 맞받는다. 이제 해는 하늘의 중허리를 지나 서쪽으로 비스듬
히 발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 순간에 기우뚱 해가 기울어 날이 저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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