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리청은 어쩝디여?"
점봉이네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마당으로 가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그
래서 시룻번을 한 입 급하게 베어 물고는 부엌 바라지 바깥으로 고개를 쑤욱 내
민다. 마당의 넓은 차일 아래에는 십장생이 그려진 열 폭 병풍이 붉은 해, 푸른
산, 흐르는 물과 상서롭게 웅크린 바위, 그리고 그 바위가 승천하여 떠 있는 구
름이며 바람 소리 성성한 솔과 소나무 아래 숨은 듯 고개내민 불로초, 불로초를
에워싸고 노니는 거북이, 학, 사슴 들이 온갖 자태와 빛깔로 호화롭게 펼쳐져 있
다. 그러나 아직도 구름은 아까만한 빛으로 해를 품은 채, 좀체로 해의 얼굴을
말갛게 씻어 주려 하지 않는다. 추수가 끝나고, 자잘한 가을 일들이 몇 가지 들
판에 남아 있기는 하나, 그런대로 큰손 갈 것은 대충 마무리지은 음력 시월 초
순, 바람에 벌써 스산함이 끼어 있다. 허나, 오늘 같은 날, 누가 그런 것에 마음
에 두겠는가. 그럴 겨를이 없었다.
"부서언재애배애."
혼례 의식의 순서를 적은 홀기를 두 손으로 받들어 정중하게 펼쳐 들고 예를
진행하는 허근의 목소리는 막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허근은 신부의 증조부이다.
신부가 먼저 두 번 절 하라는 말이 꼬리를 끌며 마당에 울리자, 신부의 양쪽에
서 있던 수모가 신부를 부축한다. 신부는 팔을 높이 올려 한삼으로 얼굴을 가리
운다. 다홍 비단 바탕에 굽이치는 물결이 노닐고, 바위가 우뚝하며, 그 바위 틈
에서 갸웃 고개를 내민 불로초, 그리고 그 위를 어미 봉과 새끼 봉들이 어우러
져 나는데, 연꽃, 모란꽃이 혹은 수줍게 혹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는 신부의
활옷은, 그 소맷부리가 청, 홍, 황으로 끝동이 달려 있어서 보는 이를 휘황하게
하였다.
"하이고오, 시상에 워쩌면 저렇코롬... ."
초례청을 에워싼 사람들의 뒤쪽에서 누군가 참지 못하고 탄성을 질렀다. 거
의 안타까운 목소리이다. 신부는 다홍치마를 동산처럼 부풀리며 재배를 하고 일
어선다. 한삼에 가려워졌던 얼굴이 드러나자, 흰 이마의 한가운데 곤지의 선명한
붉은 빛이, 매화잠의 푸른 청옥 잠두와 그 빛깔이 부딪치면서 그네의 얼굴을 차
갑고 단단하게 비쳐 주었다. 거기다 고개를 약간 숙인 듯하였으나 사실은 아래
턱만을 목 안쪽으로 단긴 채, 지그시 눈을 내리감은 그네의 모습에서는, 열여덟
살 새 신부의 수줍음과 다감한 풋내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위엄이 번져나고 있었
다. 그것은 그네의 골격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버지 허담의 큰 키와도 거의 엇비
슷할 만큼 솟은 키에 허리를 곧추 세우고, 어깨를 높이 펴고 있는 자세는, 오색
찬란한 활옷과 화관으로 하여 더욱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네의
그런 모습과는 달리, 화관에 장식된 청강석 나비가 하르르 하르르 떨고 있는 것
은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신부의 속눈썹도 나비를 따라 떨린다.
"아직 학상이당가아?"
어느 틈에 서저울네가 점봉이네 곁에 바싹 다가서서 숨소리 섞인 귓속말로 소
근거린다.
"아직이 머시여? 인자사 열다섯 살이랑만, 앞으로도 창창허지머?"
워메에... 신랑 이쁜 거어...
뒤에서 탄식처럼 낮은 소리가 터진다. 목소리를 눌렀기 때문에 그 심정이 더
욱 간절하게 들린다.
"하이고오, 신랑 좀 보소, 똑 꽃잎맹이네."
사모를 쓰고, 자색 단령을 입은 신랑은 소년이었다. 몸가짐은 의젓하였지만 자
그마한 체구였고, 얼굴빛은 발그레 분홍물이 돌아, 귀밑에서 볼을 타고 턱을 돌
아 목으로 흘러내리는 여린 선에 보송보송 복숭아털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시키는 대로 나붓이 꿇어 앉으며 신부에게 일배를 한다. 마당을 가득 채운 웃음
소리와 덕담, 귓속말들, 옷자락에 흥건히 배어들 만큼 질탕한 갖가지의 음식 냄
새와 청, 홍, 오색의 휘황함에 짓눌리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것이 아직
은 어색한 탓일까, 나이 어린 신랑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것은 아까, 대문, 중
문을 넘어올 때만 하여도 표가 나지 않았었는데, 신부가 수모들의 부축을 받으
며 대례상 저쪽에 마주섰을 때 확연하게 달라진 표정이었다. 긴장을 한 탓이라
고나 해야 할는지, 앳된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에는 아
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마주보고,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흥겹게 들떠 있었
다.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고조되면서 물결처럼 출렁거리고, 그 출렁거
림은 이제 막바지에 달하여, 반상과 주객을 가리지 않고 한 덩어리로 둥실 떠오
르게 하는 것이었다.
"우우재애배애."
신부가 다시 두 번 절을 하자 신랑은 답으로 일배를 한다. 돗자리 위에 놓은
신랑의 두 손이 하얗고 나뭇잎처럼 조그맣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허근의 영
을 따라 그 자리에 각각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았다.
"신랑은 애들맹이고, 신부는 큰마님 같으네에... ."
"... 금메 말이시."
꼰지발을 딛고 넘겨다보던 두 아낙이 소근거린다.
"시이자아가악치임주우."
허근의 말이 길게 꼬리를 끌며 떨어지자, 대령하고 있던 하님과 대반은 술상
앞에 가서 앉는다. 신랑 상에는 밤이 괴어져 있고, 신부 상에는 대추가 소복하
다.
"주욱 마시야제잉."
"워메, 초리청으서 취해 번지면 워쩔라고."
"허어, 장깍쟁이 같은 저것 조께 마셌다고 취헌당가?"
신부측에서 흰 사기잔에 술을 부어 신랑편으로 보내면, 신랑은 그를 받들어
땅에 조금 지운 다음 한 모금 마시고 신부측으로 보낸다. 신부는 신랑이 보내온
이 술을 다 마셔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신랑측이 신부한테 술잔을 보내
고, 신부는 아까 신랑이 하던 순서대로 행하는 의례이다. 그러나 신랑과 신부는
모두 술잔을 입에 대는 시늉만 할 뿐, 마시지는 않았다. 가운데 놓인 대례상의
양쪽에서는 불꽃을 너울거리며 한 쌍의 촛불이 타오르고, 그 옆에, 솔가지와 대
나무 가지들은 목에 청실 홍실을 감은 백자 화병에 꽂혀 서서 바람 소리라도 일
으킬 것처럼 서슬이 푸르고 싱싱하다. 그리고 모처럼 호강을 하느라고 붉은 보
에 싸인 채 고개만을 내민 암탉과 푸른 보에 싸인 수탉은, 답답하여 날개를 퍼
득거리며 두 눈을 떼룩떼룩 굴린다. 장닭의 늘어진 벼슬이 흔들린다. 이제 초례
청의 흥겨움은 막바지에 이른 것 같았다. 하객들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연신
화사한 농담을 던지며, 혹은 귀엣말을 소근거리기도 하면서, 감개어린 표정을 짓
기도 했다. 비복들은 교자상을 서로 맞잡기도 하고, 혼자서 등에 메기도 하여 마
당에 내다 놓고, 허리를 펼 사이도 없이 다시 뒤안이며 모퉁이, 행랑쪽으로 줄달
음을 친다. 머슴들은 힐끗 곁눈질을 하고 지나치지만, 계집종과 아낙들은 그러는
중에도 잠깐 일손을 놓고, 사람들 어깨 너머로 힐끗 초례청을 넘겨다보며 한 마
디씩 참견한다. 신랑의 상객으로 온 부친 이기채는 시종 가는 입술을 힘주어 다
물어 아들의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체수가 작은데다가 깡마른 편이어서,
야무지고 단단한 대추씨같은 인상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다문 입술과 더불
어 날카롭게 빛나는 작은 눈에 예광이 형형하여 보는 이를 위압하는 것이었다.
그의 전신에는 담력이 서려 있었다. 얼핏, 놋재떨이 소리 같은 금속성이 느껴지
는 사람이었다.
"거배애상호서상부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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