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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권 (5)

카지모도 2023. 10. 30.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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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자집안이종'의 명을 따라 안부가 신랑에게 기러기를 건네주자 신랑은 기러

기 머리가 안쪽으로 가게 들었다.

"전아안."

기러기를 상 위에 얹어 놓으시오. 신랑은 기러기를 두 손으로 받들어 장인 허

담에게 준다. 허담은 청홍의 물감을 입은 나무 기러기를 받아 탁자에 놓는다.

"북햐앙궤에."

북쪽, 정청 쪽을 향하여 신랑은 꿇어 앉는다. 기러기는 이 세상의 온갖 깃털

가진 새인 우와, 터럭 가진 짐승인 모와, 비늘 가진 물고기 린 중에서 유신을 천

성으로 지키는 새라 하던가. 그들은 겨울철에는 남쪽으로, 여름철에는 북쪽으로

철을 따라 다니는 수양조이다. 태양을 따르는 새인 것이다. 또한 한 번 맺어진

한 쌍은 서로 헤어지지 않고 똑같이 살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다른 새와

다시 만나지 않는다.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정절이 아닌가. 그리고 저 말 없

는 천상을 운행하는 북두구진 중에서 자미성군이야말로 이 인간 세계의 수복을

주관하는 천관일진대, 생민지혼 만복지원이니, 혼인이란 바로 이 자미성군이 마

련해 준 커다란 은덕이 아닌가. 북쪽 하늘 아늑히 뜬 북두칠성 옆자리, 작은곰을

에워싼 백칠십여 개 은빛 별들이 자미원, 곧 자미궁을 이루고 있는데, 그 주성은

자미성으로, 영원히 변함없는 북극성을 말한다. 이 정절 높은 기러기를 천제이신

자미성군에게 바치며 한평생의 해로를 맹세하고, 수복과 자손 만대의 번영을 빌

면서 나이 어린 신랑은 꿇어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뜻을 새기고 받

들기에는 너무나도 앳된 신랑의 조그만 어깨 위로

"면복흐응."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다가 일어서시오 소리가 떨어진다. 허근의 희끗희끗한

백발이 잔바람에 빛난다. 신랑이 기러기 올려 놓은 전안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

며 공손히 엎드린 다음, 두어 숨 쉬고는 일어선다. 다리가 저렸던지 약간 휘청한

다.

"소퇴재애배."

신랑은 서 자리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큰절을 두 번 하였다. 드디어 전안례가

끝난다. 강모의 머리 속에는 아까의 전안례상 위에 놓여 있던 기러기 코에 늘이

워진 청실 홍실이 꽃수술처럼 떠오른다. 그것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꽃수술은 어

쩌면 굵은 동아줄처럼도 느껴진다. 나부끼던 실낱들이 공중에서 어수선하게 뒤

얽힌다. 청실... 홍실... 청시... ㄹ... 호오... 옹

강모는 자기도 모르게 설풋 잠에 빠져들어간다. 이불 위로 내놓은 손이 한쪽

으로 툭 미끄러진다. 신부 효원은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다.

마치 만들어 깎아 놓은 사람 같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허리를 곧추세운

채, 버스럭 소리도 내지 않고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안이 아주 어

두운 것은 아니어서, 신방 앞마당 귀퉁이에 밝혀둔 장명등의 불빛이 희미하게

창호를 비추며 방안으로 스며들어 그네의 모습을 어렴풋이 드러내 주고 있었다.

그네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들이마신 숨을 다시

내쉰다. 어금니가 맞물리면서 가슴이 막힌다. 그러면서 한삼 속의 주먹이 후두루

루 떨리고 가슴 밑바닥에서 한기가 솟는다. 한기가 솟아오른다기보다는 몸 속의

기운이 차게 식으며 빠져 나간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주먹을

힘주어 쥐어 보아도 자기 몸의 힘이 모여지지 않고 안개나 연기처럼 사그라지는

것만 같았다. 두겹이나 버선을 신은 발이 시리다. 발가락을 안쪽으로 오그려 본

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효원은 다시 깊은 숨을 들이쉰다.

"모도오부우추우울."

수모는 신부를 인도해 나오시오. 종조부 허근의 목소리가 귀에 역력히 들리며,

그 소리에 깜짝 놀라운 어머니 정씨가 창황히 방문을 열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그때, 열린 그네의 방문 앞에는 하얀 백포가 깔려 있었다. 안방에서 초례청까지

펼쳐진 그 광목필은 누가 밟고 지난 흔적 없는 것으로 햇빛을 되쏘는 것도 아닌

데 눈이 부시었다. 효원은 길처럼 열려 있던 광목필을 새삼스럽게 몇 번이고 떠

올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지. 마당에 가득 차 넘치는 사람들이며 초례청에

둘러선 하객들도, 심지어는 사모관대하고 있는 신랑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

었다. 오로지 하얗고 막막한 광목필을 밟으며, 방문에서 마당까지가 이렇게 먼

길인가 하였을 뿐이었다. 그 막막함이 마음을 짓누른다. 짓눌리는 것은 마음만이

아니었다. 몇몇 겹으로 싸고 감으며 갑옷처럼 입고 입은 옷의 압박과 무게로, 숨

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것이다. 그네는 다리속곳, 속속곳, 단속

곳, 고쟁이를 입고, 그 위에 또 너른바지를 입었는데, 너른바지 위에 대슘치마를

입었다. 대슘치마는 모시 속치마였다. 모시 열두 폭에 주름을 잡아 만든 이 속치

마의 단에는 창호지 받친 흰 비단이 손바닥만한 넓이만큼 대어져 있어, 그러지

않아도 풀을 먹여 날이 선 모시 바탕에 힘을 받쳐 주는 것이었다. 수모인 당숙

모는 효원의 가슴을 동여매듯이 치마 말기를 힘 주어 묶었다. 무명 말기가 나무

판자처럼 가슴을 압박했다. 그 대슘치마 위에, 드디어, 속옷으로는 마지막 무지

기를 입었다. 무지기는 빳빳하게 풀을 먹인 모시 열두 폭을 층층히 폭을 넓혀가

며 한 허리에 달아 붙인 것이라. 예닐곱 가지나 포개 입은 속옷 위에 더욱더 부

하게 부풀어 보였다. 길이가 짧아서 발등까지 내려오지 않는 까닭에 '발 없는 치

마', 무족치마라고도 하는 이 무지기는 치마허리에서 무릎까지 닿는 것이 보통이

다. 그것은 삼층짜리도 있고 오층짜리도 있는데 신부옷이라 효원은 호사스럽게

일곱층짜리를 입는다. '무족'이 치마라서 무지기인가. 무지개같이 물들어서 무지

기인가. 층층마다 엷은 일곱 색의 물감을 들여 은은한 그 빛깔은 이름 그대로

마치 무지개처럼 고와서 보는 사람을 취하게 하였다.

"효원이는 좋겄다. 인제 시집가거든 시부모님 사랑 마않이 받고, 신랑한테 귀

염 받고, 좋은 자식 낳고, 부디 잘 살그라."

무지기 위에 다홍치마를 입히며, 수모인 당숙모는 발원 축수하는 사람처럼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며 말했다. 대소가에서 가장 복 많은 부인이라고, 궂은일

안 보고 살아온데다가 첫아들을 낳고, 오복 두루 갖춘 사람이 신부 시중을 들어

야 한다 하여 당숙모가 수모 노릇을 한 것이다. 같은 속치마지만 대슘치마로는

덧단까지 댄 하단을 벙벙히 퍼지게 하여 커다란 둥그러미를 만들고, 무지기로는

허리를 층층이 살려서 빳빳하게 힘을 준 다음, 드디어 다홍치마를 겹쳐 입으니,

그야말로 덩실한 그 차림 하나만으로도 온 방안이 풍성하게 차 오르면서, 정말

옛말대로 서로 앉은 것 같고 앉아서도 선 것같이 보였다. 아래 옷을 치장하는

것에 비하여 윗도리는 오히려 허술했다. 살빛 같은 연분홍으로 물들인 명주 속

저고리 하나를 입고는 그 위에 바로 초록 삼회장 저고리를 입었다. 나비처럼 가

벼운 저고리였다. 그리고는 끝으로 도포보다 커다랗고 호화로운 다홍의 활옷을

입고, 붉은 공단에 심을 넣어 홍황 무늬를 금박으로 찍은 대대를 띠어 단단히

묶었다. 효원은 수모가 시키는 대로 팔을 날개처럼 커다랗게 벌리고 서서 숨을

들이쉬기도 하고 어깨를 들어올려 펴기도 했다. 도대체 가슴을 묶어내는 말기와

띠는 몇겹이나 된단 말인가. 금방 질식이라도 할 것 같았다.

"인제 조금만 참아라. 신랑이 시원하게 풀어 줄 게다. 그 손이 약손이지. 넘의

손은 다아 소용없는 것이다."

재종조모가 농담을 던지자 방안의 부인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은근한 비밀이 번져났다. 그러나 지금 그네는 혼자 앉아 있는 힘을 다

하여 허리를 버티면서 무너질 것만 같은 몸을 견디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았다. 한쪽이 저르르 저리기 시작하더니 그만 감각이 없어지는

데, 주먹을 쥔 손이 힘없이 풀려 버린다. 손가락 끄트머리가 차게 식으며 저희끼

리 선뜻하게 부딪친다. 효원은 그럴수록 숨을 가슴 위쪽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목에 힘을 모르고 턱을 안쪽으로 당겨 붙였다. 온몸의 감각은 이미 제 것이 아

니었다. 금방이라도 몸의 마디마디를 죄고 있는 띠들이 터져 나갈 것만 같다. 그

렇지만 효원은 꼼짝도 하지 않고 기어이 견디어 내고 있다. 그대로 앉아서 죽어

버리기라도 할 태세다. 그네는 파랗게 질린 채 떨고 있었다. 그만큼 분한 심정에

사무쳤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내 이 자리에서 칵 고꾸라

져 죽으리라. 네가 나를 어찌 보고... . 이미 새벽을 맞이하는 대숲의 바람 소리

가 술렁이며 어둠을 털어내고 있는데도 효원은 그러고 앉아 있었다. 그네는 어

금니를 지그시 맞물면서 눈을 감는다. 입술이 활처럼 휘인다. 대숲에서 일고 있

는 새파란 바람 소리가 가슴에 성성하다. 대나무 잎사귀들이 칼날같이 일어선다.

벌써 장지문의 창호지에는 희부연 새벽 빛이 밀려오는 있었다.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효원은 무엇을 결심한 듯이 허리를 젖힌다. 그리고 한삼을 걷

어 올린 손을 뒤로 돌려 활옷의 대대를 풀었다. 툭, 소리가 나며 대대가 스스로

미끄러진다. 차근차근 겉옷부터 벗는 그네의 손은 침착하다. 벗은 옷은 한 가지

씩 가지런히 개켜서 웃목의 병풍 앞에 포개 놓은 뒤 버선을 벗는다. 그것은 쉽

게 벗겨지지 않는다. 겉버선이나 속버선이나, 기름종이를 발뒤꿈치에 대고 수모

가 있는 힘을 다하여 신겨 놓은 것이라. 처음 신었을 때는 일어설 수조차도 없

었다. 칼날을 밟은 것 같은 아픔 때문이었다. 방의 네 귀퉁이를 엉금엉금 걸어

보며 뒤뚱할 때,

"첫날밤에 신부 버선 벳기다가 뒤로 나가떨어져서, 병풍을 풍 뚫고 그대로 나

가떨어져 머리방아 찧은 신랑 이 얘기 생각나우?"

하고 당숙모가 웃음을 깨물며 말하자 한 부인이 손을 저으며 막는다.

"그게 얼마나 귀한 병풍인데 그만 구멍이 나서."

손을 젓는 부인이 얼굴을 붉히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양이, 본인의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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