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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권 (28)

카지모도 2023. 11. 28.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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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퍼? 아아직 멀었네."

이번에는 좀더 세게 내려친다.

"으아."

장난으로 그러는 것이련만 발바닥이 얼얼하며 복숭아뼈까지 저린다.

"허허어. 이러언 엄살 좀 보라지. 이래 가지고 어찌 무슨 용기로 남의 규방에

는 침범을 했던고오?"

다시 홍두깨가 발바닥을 친다.

철썩

따악.

내려치는 홍두깨와 강모의 비명, 사람들의 농담과 터지는 웃음 소리들은 박자

라도 맞추듯이 함께 어우러지며 촛불에 일룽거린다.

"자네 감히 허씨 문중을 넘보았겄다? 우리가 그렇게 울도 담도 없이 허술한

줄 알았던고?"

"거기다가 자네 어쩌자고 인제서야 얼굴을 내미는가? 일각이 여삼추라고, 날만

새면 동구밖에 무슨 기척이라도 있는가, 있는 목, 없는 목 다 뽑아 올리고 내다

보며 학수고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자네 그간 어디 가서 무엇 허다 인제

왔는가?"

"못쓰네, 못써어,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닐세."

"다시는 그리 말게, 이제 아주 아무 데로도 못 가게 더 쳐라. 더 쳐."

"발병이 나면 제가 어디로 갈 것인가. 십 리는커녕 방문 바깥도 못 나자지, 아

암."

에에이잇.

아무래도 단순히 농담만 같지는 않은 말 끝에 홍두깨가 발바닥에 쏟아진다.

사람이 바뀌어 가면서 내려치는 것이다. 갈수록 매가 맵다.

"아구구우."

"어림없네. 어림없어. 아주 오늘 밤 결판을 내자고."

강모는 아픔을 참지 못하여 울상이 되어 버리는데 콧 등에 땀이 돋아난다. 어

쩌든지 발목을 빼 보려고 버둥거렸지만, 비끄러맨 광목 띠는 그럴수록 더욱더

발목을 죈다. 그때 방안으로 걸게 차린 술상이 벌어지게 들어왔다. 이에 잠깐 사

람들은 술렁하였으나,

"이까짓 것으로는 안된다고 여쭈어라. 손바닥만한 술상 하나로 어찌 이렇게 큰

죄인을 풀어 주랴?"

인욱이 안채를 향하여 소리를 친다.

"가서 신부 오라고 해라."

"신부가 와서 빌어라."

"신부 어디 있어? 신부."

술상을 받은 방안은 그로 인하여 흥이 막바지에 오른 듯 떠들썩하다.

"신부 추우울."

누군가 초례청의 흉내를 낸다.

"신부 잡아 와."

그러나 신부는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안되겠다. 신랑을 더 쳐라."

"허씨 문중을 초개같이 내버리고 도적을 따라 평생을 살겠다니, 이런 고연 심

보가 또 있는가? 신부 죄도 절대로 용서 못헌다아."

"쳐라."

"두 몫을 한꺼번에 매우 쳐라."

"아직도 신부가 안 오는가? 저어기 오고 있는가?"

"안되겠구나. 다리가 부러지게 혼 좀 나야겄다아."

한 사람이 일부러 목청을 돋운다. 옆에서 홍두깨를 번쩍 쳐든다. 후려칠 기세

다. 강모의 잔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촛불이 펄럭 나부끼며 춤을 춘다. 강모는

온몸이 얼얼하여, 어서 빨리 이 곤경을 벗어나고 싶기만 하다. 사람들의 흥겨움

과는 전혀 무관하다. 발목에서는 이미 쥐가 나고 있었다.

에에에잇.

휙, 소리가 나며 매찬 홍두깨가 발바닥으로 사정없이 떨어지려는 찰나, 방문간

에 신부가 나타났다.

"아아, 신부 왔구나아."

"열녀로다, 열녀야."

"자네 잘 왔네, 아니, 그런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겁없이 왔는가? 이게 바로

자네 물어 갈 호랭이 굴일세."

"호랭이야 따로 있지. 아, 신부 잡아 먹을 호랭이는 홍두깨 든 자네가 아니라,

이 꽃각시 같은 새신랑이네. 이 사람."

"아하하아, 그런가아? 그렇다면 이 몽둥이는 이제 쓸모가 없지 않은가? 무겁기

만 하고. 옛다, 아나, 너 가져라."

드디어 흥겨움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효원의 얼굴은 불빛에 그늘이 져서

그렇게 보이는가. 그러지 않아도 각이 선 얼굴이 그 음영 때문에 좀더 단단해

보인다. 불빛이 비치는 쪽의 얼굴은 가면처럼 보이고 그림자 진 쪽은 차가워 보

인다. 효원은 드디어 강모 옆으로 다가섰다. 강모는 두 젊은이의 어깨에 발이 매

달린 채 방바닥에 고개를 대고 거꾸로 신부 효원을 올려다보았다. 신부의 얼굴

이 푸른 빛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굳어 있다고도 느껴졌다. 거꾸로 올려다보는

신부의 몸집은 그 큰 키와 더불어 태산처럼 거대하다. 신부는 우뚝 서서 강모를

내려다본다. 강모의 얼굴은 팥죽 빛깔이었다.

"풀어라, 신랑을 풀어 주어. 신부가 풀어."

떠들썩한 홍소가 터진다. 그네는 침착하게 강모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자 잡힌

쪽의 발목이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퉁, 내려뜨려진다. 띠를 어깨에 매고

있던 사람이 그 끝을 놓아 준 것이다.

와아아.

방안에서 환성이 일고, 마당에서는 웃음 소리가 출렁거린다. 효원은 다른 쪽

발목도 그렇게 했다.

"풀어, 고리를 풀어라."

"신랑 발목이 그렇게 꽁꽁 묶여 있어서야 어디 신부를 데리고 가겠는가?"

"풀어라, 풀어."

"여보게, 이실, 그 홀맺힌 게 다아 인생의 업고라네. 마디마디, 한평생 가는 길

에는 마음 고생, 고달픈 몸, 맺히고 맺힌 것도 많을 것이네. 자네, 속 시원히 풀

고 가게."

효원은 번 듯이 드러누워 버린 신랑 강모의 발치에 앉는다. 그리고는 두 손으

로 홀맺은 매듭을 풀어 보려 한다. 그러나 장정들이 있는 힘껏 기운대로 묶어

놓은 것이라 풀릴 기척도 보이지 않는데, 손톱만 아프고 아리다. 그것도 한 번만

그렇게 묶은 것이 아니라 고리고리 야무지게도 예닐곱 마디씩이나 묶여 있으니,

강모의 양쪽 발목에는 고가 사슬처럼 얽혀 있다. 효원은 순간 망연하였다. 강모

는 이미 아랫도리 감각이 없어진 것 같았는데, 그만 맥이 풀려버려 아예 눈을

감고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몸이 두웅 떠오르는 것도 같았다가, 다시 그대로 수

욱 가라앉는 것도 같아진다. 즐겁고 흥에 겨운 마음으로 휩쓸려 매를 맞았다면

이다지도 힘이 들지는 않았으리라. 효원은 효원대로 맺힌 심정이 있어, 차라리

죽을 만큼 실컷 두들겨 맞게 두어 버릴까, 싶은 억하심정까지도 치밀었다. 그러

나 효원은 이윽고 강모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더니, 자기 입을 발목에 가

져다 댄다.

와아아.

다시 함성이 일어나 뒷등에 쏟아진다. 강모에게는 그 소리가 아득하여 무슨

꿈결처럼 들린다. 효원은 이빨로 단단히 매듭을 문다. 나무토막 같다. 돌덩어리

를 문 것 같기도 하다. 이빨이 들어갈까 싶지가 않았다.

"풀지 마소, 풀지 말어. 그렇게 발목 묶여 갖꼬 각시 앞에 잡혀 있을 때가 좋

을 것이네. 여보게, 이실."

효원은 풀릴 것 같지 않은 매듭을 위아랫니로 마주 물고, 왼손으로는 발목을

부여잡고, 오른손으로는 매듭의 고를 잡아당긴다. 거의 필사적인 기분이 들었다.

움쩍도 하지 않는 고를 기어이 풀어 내려는 효원의 구부린 뒷등에는 무서운 오

기가 서린다.

"이실, 인제 한평생 살어 봐. 신랑 발목 비끄러매서 묶어 두지 못한 것이 참말

로 한될 날이 있을 것이네."

"지금이 좋지. 지금이 좋오아."

효원은 드디어 한 마디를 풀었다. 고개 하나를 넘어선 것 같았다. 네가 나를

이 앞으로 대관절 몇몇 고비에서 이렇게도 애를 먹일 것이냐, 내가 네 발치에

어푸러져 무슨 속을 한평생 상헐라고 지금부터 이러느냐, 네가 누구이냐. 네가

과연 누구이길래 이 첩첩한 고갯길에 이렇게 나를 어푸러지게 하느냐. 효원은

이를 앙 다물었다. 혼인한 뒤에 신부를 남겨 놓고 본가로 가 있던 신랑이, 날을

잡아 처음으로 처가에 재행 오는 날, 이날이야말로 혼인날보다 더 흥겹고 재미

가 있어, 정작 신랑과 더불어 한판 놀아 보려는 신부 문중의 대소가 일가 친척

들이 다 모여 장난 삼아 신랑을 다루는 것이고, 누구라도 장가들 적에는 홍두깨

로 매를 맞는 것이니 함께 따라 웃으면서 치를 수도 있는 일이었으련만, 효원의

가슴에는 광목띠보다 더 단단하고 질긴 매듭이 서리를 트는 것이었다. 강모가

갑자기 발목으로 피가 몰리는 아찔하고 후끈한 느낌에 눈을 떴을 때, 효원은 흐

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마지막 하

나를 금방 풀어낸 것이다. 안팎의 사람들은 덩실 춤이라도 추는 시늉을 하여 불

빛 아래 술상을 내고, 받고, 따르고 하였으나 강모와 효원은 각각 혼란하여 차

라리 멍하고 무감하였다. 효원은 그날 그때의 생각을 하며 소리 없이 한숨을 쉬

었다. 갓 신행 온 신부의 방에서 깊은 밤중에 한숨 소리가 새어 나가서는 안되

기 때문에 소리를 억눌러 죽인다. 이제는 사랑채의 작은사랑 등불도 꺼지고 말

았으니,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사람은 온 집안에 효원뿐이었다. 불빛이 푸르게

느껴진다. 젊은 밤에 푸른 등불이 웬말인가. 다사로운 온기가 없는 불빛이다.

... 신랑 발목 비끄러매서 묶어 두지 못한 것이 참으로 한될 날 있을 것이네.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였던가. 개 짖는 소리도 잠잠하여지고, 바람결에 들려오던

다듬이 소리마저 밤이 이슥하니 아득하게 멀어지는데, 문득 강모의 발목과 광목

띠, 그리고 마디마디 맺히고 묶여 있던 고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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