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먹어 두게. 이따가 폐백 드릴라면 힘들고 기운 빠지네. 한 술 들어, 안 먹
히더라도."
한 부인이 친절하게 숟가락을 쥐어 주었으나, 그네는 힘없이 상 위에 놓고 말
았다.
"옷을 갈아입어야지."
아무래도 신부가 음식을 먹지 못하리라고 짐작한 부인은 상을 물리게 하고,
효원에게 폐백차림을 지시한다. 폐백을 드릴 시간이 된 것이다. 대실에서부터 따
라온 수모와 하님이 벗기고 입히고 꾸미는 대로 내맡기고 있던 효원은 대청마루
의 폐백상 앞에서 다시 한 번 크게 가슴을 내려앉았다. 흥겹고 다홍 비단이 덮
인 폐백상 위에 대추와 편포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 시부모가 나란히 앉아 있었
다. 이기채는 대실 초례청에서 얼핏이나마 보았으나 율촌댁은 초면이다. 율촌댁
이 효원을 놀라게 한 것이다. 남색 치마에 연두색 저고리를 입은 율촌댁은 저고
리에 물린 자주색 회장으로 인하여 그 단아하고 고운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주
고 있었다. 평소에 치장을 하지 않아 누구의 눈에 휘황하게 띄지 않는 편이었으
나, 그네가 용색이 단려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이렇게
물색 고운 옷을 격식대로 갖추어 입고 나서니, 그 얼굴빛은 분홍이 물들어 비치
고, 이제 막 무르익은 삼십대 여인의 요염함까지도 숨길 수 없이 번져나서, 한집
의 사람도 다시 돌아보게 하였다. 강모의 모색이 율촌댁을 많이 닮은 것을 효원
은 알아보았다. 그네의 눈에도 율촌댁은 젊고 아름다웠다. 그런 시어머니 앞에
서 있으려니, 원삼에 족두리를 쓴 자신의 덩어리가 더욱더 크게 느껴진다.
"시어머니가 외나 새각시맹이네잉."
"하이고오. 율촌마님 시집오실 적으는 어뜨케나 고우시던지 온 동네에 꽃피었
었구만, 그래도 인자는 많이 변허곗지머어."
"아 그때 벨멩이 꽃각시 아니였간디? 지금도 그 모색이 그대로여."
후두둑.
신부의 치마폭에 대추가 쏟아진다. 사배반의 절이 끝나자, 이기채가 집어 던져
준 대추이다.
"손이 귓한 집이니라. 아들을 그만큼 많이 낳도록 해라."
수모가 얼른 조심스럽게 치마폭에 쏟아진 대추를 신부의 원삼 소매안에 넣었
다가, 그릇에 담아 내보낸다. 시어머니는 난도질하여 얄팍하고도 둥글넙적하게
지어 말린 쇠고기 편포 위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어루만진다. 신부의 모든 흉
과 허물을 덮어 달하는 뜻이다. 편포를 쓰다듬는 흰 손가락에 푸른 옥가락지가
차게 보였다. 좀체로 몸에 지니지 않는 것인데 그날은 새며느리를 맞는 날이라
특별한 장식으로 꾸민 것이다. 청암부인은 이기채와 율촌댁이 폐백을 받은 다음,
손부 앞에 앉았다. 순서로 보면 할머니 청암부인이 먼저이나, 직접 낳아 기른 부
모가 우선한다, 하여 부모 뒤에 따로 폐백상을 받는다. 청암부인은 만면에 웃음
을 띄우고 효원을 바라보았다. 부인의 눈에 효원은 우선 아녀자다운 어여쁨과
오밀조밀함보다는 기상과 도량이 있어 보였다.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음성을
내렸다.
"너는 귀한 사람이니라. 온 집안이 경사스럽게 너를 반겨 맞으니, 부디 마음으
로부터 이곳을 네 집이라 여기어라. 이제부터는 여기가 네 집이다. 그러고, 반다
시 아들을 낳도록 해라."
노인이라서 그러한가. 효원은 고개를 숙인 채 청암부인의 말씀만을 듣고 있는
데도, 알지 못할 위안과 다사로움을 느꼈다.
그 다음부터는 누구에게 몇 배를 하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수모
가 부축하여 주고, 하님이 큰머리를 잡아 주는 대로 일어서고 앉고 절을 하고
하였다. 백숙부모 내외에게 하는 절만 하여도 사배씩 팔배를 하였으니, 아무리
곁에서 부축하고 잡아 주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며 어지러웠다. 거기다 빈
속이어서 더한 것이다. 상호례가 끝나고 율촌댁은 대청에 효원과 마주앉아 관례
를 시켜 주었다. 연두 곁마기, 다홍 겹치마, 열두 폭 대무지기, 여덟 폭 곁풍무지
기, 여섯 폭 연봉무지기, 모시 분홍 속적삼, 노랑 속저고리, 저고리 삼작과 당의
원삼을 신부에게 내주면서 입히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신부 효원의 머리채를 빗
치개로 드르르 갈라 놓는다. 수모는 갈라진 머리를 두줄로 땋아서 쪽을 짓는다.
그 머리채에는 이성지합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른들께는 원
삼 차림으로 동항에게는 당의 차림으로 평절을 한다. 참으로 길고 긴 절차였다.
엷은 옥색 달련 도포와도 같은 제사옷 천담복으로 갈아입은 뒤, 사당에 올리는
폐백까지 끝내고 나니, 이제 혼인에 따른 순서는 다 끝난 것 같았다.
"비로소 너는 이 집안의 증손부가 되었다."
청암부인은 다정히 효원의 손을 잡고 치하하여 위로하였다. 효원은 그대로 무
너져내릴 뻔하였다. 차마 그러지 못하고 대신 얼굴빛이 창백하게 질리자 부인이
놀라서
"고단했구나."
하더니, 몸소 일어나 효원을 건넌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손부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간곡하게 당부하였다.
"오늘은 아주 좋은 날이다.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그냥 잠들지 말아라. 심신의
정성을 다하여 아들 낳을 꿈을 꾸도록 해라. 알겠느냐."
효원은 대답 대신 오른손을 방바닥에 짚어 알았다는 표시를 한다.
"부디 명심하거라."
청암부인이 한 번 더 다짐을 한 뒤 큰방으로 건너가자. 효원은 어깨의 마디마
디부터 허리, 다리, 발가락까지 노그라져 내리며 온몸의 천근이나 된 것처럼 가
누기가 힘들었다. 허리를 뒤로 젖혀 버티어 보다가 앞으로 구부려 보다가 무릎
을 세워보다가 하고 싶었지만, 낯설고 어려운 마음에,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움
쩍도 하지 않았다.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기도 하였다. 사방에 둘러보아도 모두
어른들뿐이며, 아랫사람이라고 누구 아는 얼굴도 없었다. 심지어는 마당을 오가
는 발자국 소리마저도 모두 다 처음 듣는 귀설은 것들뿐이다. 그러다가 한밤이
깊어서야 마지못한 듯 건넌방으로 들어온 강모가 한 말은
"나는 아무래도 동경으로 가야겠소."
였다. 그때 효원은, 검은 눈을 부릅뜨고 효원을 바라보는 것 같았던, 용마루가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올랐다. 효원의 눈빛과 용마루의 눈빛이 마주치던 그 아찔
함도 그대로 되살아났다. 사위스러운 생각이 펀뜻 들었다. 이것이 대체 무슨 재
앙인가. 막연하던 연기가 그만 캄캄하게 절벽처럼 눈앞을 가로막더니, 가슴마저
막히게 하였다. 이 사람이 오늘 밤에도 이 방에 올 뜻이 전혀 없었던 게 아닐
까? 효원은 장 속에 접혀진 채 그대로 있는 하얀 삼팔주 수건에 생각이 미친다.
선홍의 혈흔으로 꽃무늬 놓여 어느덧 해가 바뀐 지금도 막막하게 흰 빛을 소복
같이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그냥 잠
들지 말라고 당부하던 청암부인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린다. 삼팔주 수건과 청
암부인의 목소리가 서로 얽혀들면서 칭칭 감긴다.
"그만 잡시다."
강모는 강모대로 고단했던지 이불 위에 쓰러지듯 몸에 던져 눕는다. 그는 지
금 막 큰방의 할머니에게 불리어 갔다가, 한 말씀 듣고는 마지못해 이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강모가 작은사랑에서 건너오지 않는 기미를 알
고 청암부인은 강모를 불렀다.
"이제 그만 건너가서 자거라."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짤막하게 한 마디 했을 뿐이지만 강모는 거역하지 못하
고, 그 앞에서 건넌방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그러나 강모의 심정은 착잡하였다.
동경으로 음악 공부를 하러 떠나겠다고 더듬거리며 말을 떼고 나니, 더욱 막막
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도무지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여인이 나의 무엇인가 싶
어지는 것이다. 불이 꺼지고 나면 어른들이야 무엇을 짐작할 수 있으리. 그리고
나는 날이 밝으면, 어디로든 떠나 버리리라. 어디로든. 강모는 불을 불어 끄고는
잠시 후에 깊이 잠든 시늉을 하였다. 그때 강모가 잠들지 않은 것을 효원은 알
고 있었다. 옛말에 공방살이라는 말이 있다더니, 이것이 바로 그런 것인가. 효원
은 가슴속이 써늘하게 식어 내리는 것을 느꼈다. 어둠은 쇠붙이처럼 날카롭고도,
섬뜩하고 차갑게 살에 닿았다. 이제 동짓달, 지월이니 문풍지를 울리는 외풍도
차겠지만, 꼭 그러해서만은 아닌데 온몸이 시렸다. 효원은 그렇게 뜬 눈으로 밤
을 새우고 나서, 다음날 밤부터는 쉽게 불을 끄지 못하고 한밤의 허리가 겨워지
도록 홀로 그렇게 앉아 있게 되었다. 벌써 오늘이 몇 날째인가. 머리 속이 아득
하다. 그네의 눈에는 불빛이 푸르게 보인다. 젊은 밤에 홀로 앉아 바라보는 등불이
라서 그러한가. 불빛마저도 차갑게 느껴진다. 지나가는 바람에 더르르 풍지가
운다. 효원이 그렇게 건넌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강모는 소피를 하러 가는 척
하고 슬그머니 사랑채의 작은사랑에서 빠져 나온다. 어둠 속에서 보아 그런지,
그의 몸집은 헐렁하게 느껴진다. 토방으로 내려서는 걸음도 힘이 없다. 마치 오
래 않고 난 사람이 서투르게 내딛는 것처럼 아차스럽기도 하다. 집안은 이제 괴
괴하기까지 하다. 섬돌 밑에서 울어대던 귀뚜라미와 풀벌레들의 낭랑한 울음소
리조차도 흔적없이 스러져 버리고, 그 대신 마른 잎사귀 구르는 소리만이 스산
하게 발 끝에 채인다. 그것은 오류골 작은집의 검은 살구나무 둥치에서 떨어져
날리는 낙엽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강모의 허옇게 마른 입술에서
일고 있는 까스라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일는지도 모른다. 물을 못 먹은 가슴
의 한쪽 귀퉁이가 부스러지며 그렇게 마른 나뭇잎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닐까. 강
모는 깔깔한 혀끝으로 입술을 축여 본다. 혀끝과 입술이 까칠하게 말라 붙는다.
강실아... .
그는 자신의 심정을 억누르기라도 하려는 듯 숨을 죽이며,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무거운 어둠에 가슴이 잦아드는 것도 같고, 그대로 터져 나가 버
릴 것도 같다. 그러나 너를 어이할 수 있으리야. 강모가 토해 내지 못한 채 참고
있는 한숨은, 연기처럼 매웁고 자욱하게 살 속으로 저미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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