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망혼제
무릇 인간이란. 저 광대 무변한 우주 공간과 영원 무궁한 시간 속에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삼라만상 가운데, 가장 미묘 신비한 존재이니. 날 때부터 벌
써 사람마다, 천귀, 천액, 천권, 천파, 천간, 천문, 천복, 천역, 천고, 천인, 천예,
천수를 관장하며 하늘을 운행하는 열두 별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다. 사람이 세
상에 출생할 적에 만약 좋은 별을 만나면 일생 부귀공명하고, 불행히 나쁜 별을
만나면 곤고빈천하게 되는데. 이 운명의 길흉을 누구라서 미리 알 수 있으랴. 다
만 그 사람이 난 생,년,월,일시를 기점으로 해서 간지를 짚어 보며, 천리묘법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육갑은, 위로 하늘로 벋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묘사한 천
간, 즉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십간과, 아래로 땅속의 뿌리를 상징하는 지
지, 즉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십이지가 서로 결합하여, 갑자.을축.병
인.정묘... 계해까지 육십 개 간지를 이룬 것인데. 이 육십갑자, 육갑으로는 천지
자연의 이치와 도리를 헤아려 만물에 통하는 음양과 오행, 그리고 수와 방각이
며 색 등을 산출할 수 있다. 이것들은 상호 이끌리어 친하게 합하며 상생하기도
하지만, 어울리지 않아서 배척하는 충과 극도 있어서. 서로 합이 들면 복록이 물
론 넘칠 것이나 상충, 상극이 들면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며 파가하여 고향을 떠
나든지 소송.구설에 휘말리어 흉한 일이 그치지 않는다. 이는 간지오행에도 적용
된다. 우주 만물을 형성하며 만상을 변화시키는 다섯 가지 원소인 쇠와 나무와
물과 불 그리고 흙, 곧 금.목.수.화.토를 오행이라 하는데, 육갑의 간지마다 이 가
운데 한 성질을 띠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생년 간지가 갑자.을축인 사람은
금에 해당하며, 병인.정묘인 사람은 화요, 무진.기사인 사람은 목(나무)... 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금이라 해도 납음에 따라 속궁이 다르다. 납음이란,
간지마다 오행을 밝히면서, 좀더 구체적이고도 상징적인 글귀로 그 성질을 압축
풀이해 놓은 말이니. 곧 갑자.을축은 해중금이라 바닷속에 잠긴 쇠요, 갑오.을미
는 사중금이어서 모래 속에 묻힌 쇠다. 그리고 무진.기사는 대림목으로 우거진
수풀에 선 나무인가 하면, 무술.기해는 평지목이매 평평한 땅에 난 나무다. 이
간지오행끼리도 상생과 상극이 있어, 서로 도와 번성하게도 하고 극하여 해치기
도 한다. 아아, 풀잎 끝에 이슬 같은 초로인생, 바람처럼 건듯 한 번 왔다 가는
길, 사람으로 난 바에야 귀인으로 권세 높아 복록을 누리고 싶지. 그 누구가 제
운명에 흉액을 바라오며 상충이나 상극을 꿈꿀 것인가. 그러나 인생은 고르지
못하여, 칼을 맞고 살을 맞아 꺾이고 부서진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사람 수 헤
아릴 수 없으며. 일이 뜻 같지 아니하여 평생에 숨은 근심을 곁의 사람조차도
아지 못하는 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인생이 운명과 부딪쳐 박살
이 나거나, 운명이 인생을 극하여 절명에 이르기도 하나니. 비명에 안 가도 죽음
은 설운 것인데, 하물며 제명에 못 죽은 원혼들의 원통함이야 달리 일러 무엇
하리. 육십갑자 간지마다 원혼들의 곡성이 낭자하여, 목 놓아 우는 소리 이승을
적시고 구천에 울린다. 어와아, 세상 천지 사람들아. 이 내 원한 맺힌 마음 세세
히도 풀어내어, 만리장성 펼친 듯이 구구절절 읊어 주소. 가련하고 불쌍하다. 이
세상이 원수로다.
갑자 을축 해중금은 금생 남녀 원혼이라 송죽 같은 곧은 절개 해로 백년 하자
고 맹세를 했건마는 이 세상에 태어나아 남 산 세상을 못 사시고오 타고난
복을 못다 쓰고오 남 산 부부를 못 사시고 황천객이 되었으니이 근들 아니
원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병인 정묘 노중화, 화생 남녀 원혼이라아 북망산천
달 밝은데 무인상중 홀로 누웠으니 독수공방 기나긴 밤을 어이 홀로 지새리요오
노상천백 타는 불에 무주고혼 분별할까 거리중천 떠다니며 야월공산 두견같이
주야장천 슬피 운다 구곡간장 썩어드니 근들 아니 원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무
진 기사 대림목은 목생 남녀 원혼이라아 동원도리 젓는 수풀 곳곳마다 푸른빛이
라 울울창송 입하초에 추월상강 처량하다 설중매화 독대춘은 홀로 봄빛을 사양
하네 눈을 들어 돌아보니 나오는 것은 한숨이요 흐르는 것은 눈물이라 근들 아
니 원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경오 신미 노방토는 토생 남녀 원혼이라아 살은 썩
어 물이 되고 뼈는 썩어 흙이 되니 대로변에 묻힌 무덤 어느 누가 분별할까 한
심허고 가련허다 근들 아니 원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임신 계유 검봉금은 금생
남녀원혼이라아 일락서산 저문 날에 해도 졌다 다시 돋고 월출동명 저 동산에
달도 졌다 다시 돋건마는 저기 않은 저 혼령은 아차 한번 가고 보면 다시 올 길
적막하니 만리천성 죽은 몸이 충효보행 어이하리 억만장졸 창검하에 객사고혼
가련하다 근들 아니 원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갑술 을해 산두화는 화생 남녀 원
혼이라아 잎은 피어 청산이요 꽃은 피어 화산인데 불쌍허고 가련허신 좌우 앉은
조상들은 실신장군 사자되야 봉화불을 어이할꼬 꺼져가는 연기라도 부칠 길이
바이 없네 근들 아니 원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병자 정축 간하수는 수생 남녀
원혼이라아 초패왕의 고집으로 구령 말을 아니 듣고 만경창파 푸른 물에 수중고
혼 가련하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짝을 잃은 외기러기 높이 떠서 빈 하늘에 나와
같이 슬피운다 근들 아니 원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무인 기묘 성두토는 토생 남
녀 원혼이라아 일락서산 저문 날에 일월공성 처량하다 무주공산 적막하게 토생
남녀 봉분하니 청송녹죽 울을 삼고 홀로 누운 고혼이야 근들 아니 원혼인가 나
무아미타아불 경진 신사 백랍금은 금생 남녀 원혼이라아 백약에도 효험 없고 병
환 나서 죽단 말가 만리타향 명부에서 금의환향 돌아온들 어느 처자 반겨할까
고독으로 우는 몸이 가련하기 측량 없다 근들 아니 원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임
오 계미 양류목은 목생 남녀 원혼이라아 추풍세월 눈물 바다 방울방울 맺혀 있
네 녹음방초 성화시에 시내 강변 푸르도다 늘어지고 처진 버들 죽은 고혼 돌아
볼까 오고 가는 인간 일월 적막하기 그지없어 한심허고 가련하다 근들 아니 원
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여보, 여러 시주님네, 염불 말씀 다시 듣고 부디 부디 전심하소오. 처자권속 어
진 마음 황천 길을 열어 주어 극락으로 나가려니, 홀홀이 모은 배는 풀어져서어
못 가겄고, 돌로써 모은 배는 가라앉어 못 가아 겄고오, 갈잎으로 모은 배는 풍
파 쳐서 못 가리요오. 서가여래 귀헌 말씀 반야용선 제일이라아. 어서 가소, 권
하시니이 선심으로 극락 가소. 어찌 아니 가련헌가. 인도 환생 하옵소서."
원한이야아, 원한이로도다아.
"일엽편주 돛을 달아 만경창파 짚은 물에 사해팔방 다니다가, 영결종천 돌아가면
소식조차 돈절하네에. 허망하기 그지없다아. 구곡 간장 썩은 눈물 두 눈에서 솟
아나니 눈물에 배 띄워라. 옥황전에 등장 가자아."
원한이야아. 원하안이로오다아.
잠든 피를 불러 일깨우는 것도 같고 멍들어 울부짖는 피를 달래 재우는 것도 같
은 징소리에, 당골네 백단이의 독경 소리가 굽이굽이 실리면서 밤은 점점 깊어
진다.
"원이 지면 원을 풀고 한이 지면 한을 풀소오."
갑진 을사 복등화는 화생 남녀 원혼이라아 추월춘풍 두견새는 공산야월 달 밝은
데 홀로 앉아 슬피운다 어찌 아니 처량하리 무정이야 이팔청춘 어여쁜 그 모습
은 간 곳이 바이 없고 등잔 불에 저 혼백은 잠들 길이 전혀 없네 근들 아니 원
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병오 정미 천하수는 수생 남녀 원혼이라아 칠월칠일 칠
석날에 천리 은하 오작교에 일년일도 건너가서 견우직녀 상봉하야 만단설화 못
다 하고 무심하게 이별하네 귀명황천 돌아가며 걸음걸음 슬피 운다 근들아니 원
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무신 기유 대역토는 토생 남녀 원혼이라아 태산이 평지
되고 평지가 태산이 되도록 원혼 맺혀 한이로다 천년 만년 한이 되야 풀어낼 길
망연하다 가련허고 가련허다 이 내 몸이 북망산천 돌아가네 홍도백도 붉은 꽃은
낙화점점 눈물이라 가련허고 불쌍하다 이 세상이 원수로다 근들 아니 원혼인가“
나무아미타아불
당골네는 제 설움에 겨운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흐느끼는 목소리로 육갑해원
경의 고비고비를 왼다. 무너져 주저앉은 초가지붕 귀퉁이에, 종이 등불이 흰 술
을 달고 흔들리는 이 집은 문중에서도 기세가 없는 동녘골댁이다. 어쩌다가 성
씨 하나만 반듯하게 타고났을 뿐, 이렇다 할 아무런 것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
는 집으로, 동녘골양반은 타성들한테조차도 그다지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
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동녘골댁은 종가의 허드렛일을 도와가며 근근이 살아가
는 궁색스러움을 면하기 못하였다. 그네는 용색조차도 상민들과 별반 차이가 나
지 않았다. 처음 시집을 왔을 때만 해도 얼른 두드러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나이
덕으로 부옇기는 하던 얼굴이, 이제는 오랜 세월의 근심과 고생에 찌들어 거멓
게 죽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 무슨 눈물 무슨 눈물 해싸도, 자식 앞세워 죽이는 설움을 당헐 것이 없
지. 그것만은 못헐 짓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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