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부끄러워... 억장이 무너... 지고 ... 뵐 낯이 없어서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청암부인이 두 손으로 동녘골댁의 손을 잡아 쥐자 그네는 울음에 체하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부인은 아무 말 없이 그네의 등을 어루만지며 쓸어 주었다.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말 안해도 내 알겠네. 허나 사람이 한평생을 살자면 좋
은 일 궂은 일이 어찌 뜻대로만 된다든가. 십 리 길만 가자해도, 황소도 만나고,
지렁이도 밟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기도 하네. 인생은 그보다 더 멀고 긴 것이
니 잊어 버리게나."
"어쩌다가 그놈이, 어쩌다가 ... 남 않는 일을 제가 왜 ... 남 다르게, 유별나게 ...
어허그흐으."
"강수 탓만도 아니야. 이 좁은 노적봉 아래 손바닥만한 터에서, 삼백 년 사백 년
씩 타성 들이지 않고 한 집안끼리 자작일촌으로 살아왔으니, 서로 마음에, 한아
버지 자손이라 다정하여 경계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그뿐이리, 같은 나이에 태어나지 않아도, 삼백 년 전에 울던 뻐꾹새 소리 삼백
년 뒤에 그 후손이 또 듣는 것을. 하물며 앞서거나 뒤서거니 난 것들은 같은 새
소리에 잠을 깨고, 같은 꽃을 보고 뛰놀며, 같은 바람 소리에 잠이 드네. 문중의
오라비 따라 언덕에서 쑥도 캐고, 그러다 넘어지면 일으켜도 주고,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나누어 먹다 보면, 어찌 정인들 들지 않겠는가. 거기다가 바깥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일도 없고,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일도 없이, 우
물속같이 고여 사는 젊은 것들이 제 속에서 넘치는 심정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
칡뿌리든지 소나무 뿌리든지 하찮은 풀뿌리든지 간에 한 그릇 속, 한 자리에 붙
박혀 있으면, 제 뿌리까지 엉키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네. 그것을 미리 알고 선
인들이, 재앙을 막자고 그렇게도 가혹하게 징벌하고 경계해 온 것이 아니겠나.
다 그만한 까닭이 있어서 말일세.)
천상부정 지하부정 원가부정 근가부정 대문부정 중문부정 개견부정 우마부정 금
석부정 수화부정 토목부정 오방부정 사해부정 점개부정 칙거부정 조정부정 방청
부정 연월일시 사부저엉 천상지하 부정소멸 원근가내 대중소문 부정소멸 개견우
마 금석수화 토목인물 부정소멸 오방사해 점개칙거 조정방청 내외부정소멸 연월
일시 사부정소멸 정칠월 인신이 팔월 황천 삼구월 천라 사시월지망 오지월 수중
육납월 십왕부정 개실소명 동서남북 상해팔방 이십사방 부정개실소멸 태세새살
세파방 부정개실소멸 산수 생살부정 개실소멸 종종부정 속거 타방만리지외에 오
옴 급급여율려엉사바하아 괭괭괭괭 굉 괴괭괭괴앵
부정경을 외는 당골내의 낭랑한 목소리가 여름밤의 메마른한 고비를 휘어감고
있을 때, 오류골댁은 토방에 내려서며 신발을 챙겨 신는다. 좀 늦기는 했지만 이
제라도 동녘골댁으로 가려는 참이다. 오류골양반 기응은 아까 해거름 판에 기표
와 더불어 임실로 나갔는데, 거기서 오늘 밤을 유하고 내일 새벽 임실 일을 본
다고 했다. 그리고는 저녁 무렵에나 올 것이라고. (집이 비어서 어쩔꼬. 이 양반
이 계신다면야 단손에 혼자 애쓰는 동녘골댁 일인데 어련히 알아서 초저녁부터
가 볼까... 그렇지만 강실이 혼자 뎅그러니 빈 집에 앉혀 놓고, 내가 없으면, 밤
새도록 마음이 안 놓이고.) 아까부터 망설이던 오류골댁은 마등에 서서 동녘골댁
쪽을 한번 보고, 안방 쪽을 한번 복, 저물어가는 하늘을 한번 보고, 하면서 쉽게
마음을 결정짓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강실이가 마음에 걸리는 탓이었다. (애꿎은
청춘에 죽어간 강수가 오늘 밤에는 그 혼신이나마 혼인식을 올리는 날이니, 잔
치라면 이것도 잔칫날이라 안 가 보는 것도 도리가 아니고, 그렇다고 시집도 안
간 저것을 어디 굿허는 데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누구 마참허게 집에 와서 좀
같이 있으라고 했으면 좋겠그마는, 웬만치 가차운 사람들은 모두 동녘골댁에 갔
을 것이고...) 그러는 사이에 하늘은 검푸른 빛을 머금더니 이내 검은 빛이 짙어
지면서 별이 돋아났다.
"동서, 아직 안 갔는가?"
사립문을 비그시 열며 수천댁이 묻는다. 오류골댁은 얼른 문간으로와 안쪽에서
문짝을 잡아당겨 열어 준다. 그저 비워 두기 허전해서 대문자리 시늉만 한, 소박
한 사립문이다.
"지금 가시는가요?"
"응. 자네 안 갔으면 같이 갈라고."
"저도 가야지요. 그런데 저것이 혼자 집 지키게 생겨서 어쩔까아 이러고 있네
요."
"강실이?"
"예. 다 큰 것을 두고 집을 비울라니 걸려서요."
"뭐 별 일이야 있을라고? 다 한집안인데."
"그래도 그 집에 가면, 암만해도 밤을 새워야 굿이 끝날 텐데요?"
"그렇기는 허겄네. 그럼 어쩌는 것이 좋겄는가?"
오류골댁은 물어 보는 수천댁에게 오히려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낯빛으로 눈썹
을 모은다. 수천댁도 턱을 목 안으로 끌어당기며 잠시 생각을 한다.
"하필 오늘사말고 서방님도 안 계시고잉..."
"글쎄 말씀이요."
수천댁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안에서 등잔불빛이 막 밝혀지는 안방문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큰집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지 뭐."
"그래도 되까요?"
오류골댁이 근심스럽게 물었다.
"큰집인데 무어 허물이 있어?"
"아니, 허물이라서가 아니라, 큰어머님 실섭해 계신데 오고 가고 공연히 번거로
울까 싶어서요."
"강실이가 어디 걸어가는 소리라도 나는 사람인가? 옆에 있어도 안 돌아보면 있
는가 없는가 알지도 못허게 조용한 아이가, 무얼 번거롭게 허겄어? 동녘골댁 일
되어가는 거 봐서 좀 일찍 일어나게 생겼으면 먼저 오든지. 다 끝나도록 있지
말고. 올 때 큰집에 들러서 자네가 데리고 오면 안되겄는가? 별 어려운 일도 아
니구만 그래."
수천댁은 머뭇거리고 있는 오류골댁에게 손짓을 하며, 어서 그렇게 하고 가자고
했다.
"그럼 먼저 올라거서요. 내, 강실이한테 말 좀 이르고 같이 나서지요. 데려다 주
고 가게."
"그리여. 서둘러서 금방 와."
오류골댁은 어둠 속으로 멀어지는 수천댁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사립문을
지그려 닫고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호지에 번지는 불빛이 그새 좀더 붉어진
것이 시간이 기운 모양이었다. 방안은 더운 열이 후끈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한
여름이라 해도 과년한 처자가 있는 방의 덧문은 밤에 활짝 열어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모기떼의 극성 때문에 그렇기도 했지만, 울도 담도 없는 집의 방
문을 함부로 단속하는 것은 길거리에 나앉아 있음이나 같은 때문이었다. 강실이
는, 등불 아래 앉아 오류골댁과 기응의 삼베 잠방이, 적삼, 치마 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수그린 그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등잔불빛에 빛났다. 그것
들은 작은 이슬처럼 맺히다가 물방울만큼 커지면서 도르르 굴러내리는 것이 얼
른 보면 우는가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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