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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3권)

카지모도 2024. 4. 1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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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

 

 

1암운

 

십일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며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언마나(얼마나) 하였던고

몇 섬은 환자하고 몇 섬은 왕세하고

언마는 제반미요 언마는 씨앗이며

도조도 되어 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시계 돈 장리 벼를 낱낱이 수쇄하니

엄부렁하던 것이 남저지 바이 없다

그러한들 어찌할꼬 놀양이나 여투리라

콩기름 우거지로 조반석죽 다행하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와 줄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공채 사채 요당하니 관리 면임 아니온다

시비를 닫았으니 초옥이 한가하다

단구에 조석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긴 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 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지껄이니 실가의 재미로다

늙은이 일 없으니 기직이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 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깃 주어 받은 거름 자로 쳐야 모이나니

 

태평한 시절의 이야기다. 하기는 그런 시절도 있기는 했었다. 그 무렵에는 한

해의 저물녘에 곡식을 모두 거두어들이고는, 그 중에 몇 섬은 팔아서 돈으로 바

꾼다. 그리고 제사 때 메를 지어 올릴 깨끗한 쌀을 따로 항아리에 담아 집안의

가장 정한 곳에 모셔 둔 다음, 도지에서는 도조를 덜어 낸다. 곡식의 쓸모란 많

기도 하다. 거기서 시장의 곗돈도 장만하고 무엇보다도 원수스러운 장리 쌀도

되어 내야한다. 이 장리 벼만 생각하면 한 해 농사 헛지은 것 같아 애가 터진다.

장리

보통은 봄에 씨 뿌릴 때 빌려 주고 가을에 나락 거둘 때 받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이것은, 빌린 돈이나 곡식의 십분지 오의 변리를 덧붙여 갚아야 한다.

빌린 것의 반몫이나 더 붙는 이 엄청난 이자에 대하여 더 말하면 무엇하리.

철에는 한 종지도 못되게 빌린 것 같은데 가을이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집채처럼

무거운 것이 바로 이 장리이다. 모자라는 곡식 때문에 농사꾼은 누구라도 장리

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이것만은 눈알이 쓰리나 아

리나 갚아야만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원뜸의 종가에서 장리를 빌어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지 않아도 옹골차지 못한 농사 때문에 늘 허기진 농사꾼들은 장리

, 공출에, 지은 것들을 다 바치고는 아무 나머지도 남기지 못한 채, 다음 농사

까지의 양식으로 한 됫박의 좁쌀을 애지중지 아껴서 봉다리에 담아 묶어, 천장에

매달아 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기껏 호강하여 먹는 음식이란 것이 겨우 콩나물 우거지죽이었다. 멀겋

게 풀어진 미음 같은 죽물에 몇 오라기 떠 있는 콩나물 건데기가 그래도 주린

창자를 진기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메주를 안 쓸 수 없고 동지에 팥죽을 걸러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메주는 띄워서 장을 담고, 장을 걸러 낸 된장이야말로 농가의 한 해

살림에 더할 나위 없는 반찬 아닌가. 또한 동지 팥죽은 상서로운 음식이니 흉내

라도 내야 한다.

하늘에 걸린 해는 순간이 다르게 짧아져, 떴는가 하면 지고 만다. 그러자니 저

절로 밤은 길어 새끼 꼬고 길쌈하는 일만이 소일이 될 수밖에. 거기다 길쌈은

손끝이 곧 돈이었다. 부지런히 북을 놀리고 밤새워 허리가 휘도록 짜 내면, 그저

종지쌀이나마 덜 축나는 것이다.

그리고 외양간 마구간 닭둥우리에 깔아 준 짚북더미나 마른 풀을 틈나는 대로

걷어 내어 마당 귀퉁이에 쌓아 놓는 일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소중한 거름이 되는 때문이었다.

허나 이런 궁색하고도 번거로운 일조차도 지금보다는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고 만것이다.

그때는 쪼들리고 시달리면서도 변함 없는 세월이 찾아와 주는 것을 믿었고,

세월 또한 어김없이 되돌아와 주었다.

농사꾼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늘을 믿었고 땅을 믿었다. 하늘은 절기가 되면

비를 내려 주고 뙤약볕에 곡식을 여물게 해 주었으며, 때가 차면 익어 넘치도록

지열을 다스리고 거기다가 거두어들이기 알맞게 날씨마저 부조해 주었다.

그뿐이랴. 땅은 하늘의 음덕을 거스리지 않았다. 한번 떨어진 싹은 두말없이

품고 있다가, 욕심없이 지표로 토해 냈고, 묵묵히 자신의 젖을 먹여 살지게 길러

주었다. 거둔 뒤에 누구의 것으로 몫 지어지든지 아무 상관 없이 탐스럽게 알곡

을 채워 주는 땅은, 곡식과 식물과 산과 강의 어미였다.

땅에 떨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썩는다.

땅이 무엇을 거부하는 것은 본 일이 없다. 사람이나 짐승이 내버린 똥.오줌도

땅에 스며들면 거름이 되고, 독이 올라 욕을 하며 내뱉은 침도 땅에 떨어지면

삭아서 물이 된다.

땅은 천한 것일수록 귀하게 받아들여 새롭게 만들어 준다. 땅에서는 무엇이든

지 썩어야한다. 썩은 것은 거름이 되어 곡식도 기름지게 하고 풀도 무성하게 하

고 나무도 단단하게 키운다.

썩혀서 비로소 다른 생명으로 물오르게 한다.

그래서 죽어 땅에 묻히는 것을 사람들은 돌아간다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

른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순하고 두발 없는 땅에다 한세상을 의탁하고 사는 농사꾼의 성정은 그

대로 땅을 닮게 마련이었다.

(이제는 끝났다.)

는 생각은 해 본 일이 없는 것이다. 막바지의 비탈이나 낭떠러지에 강파르게 서

서 결판을 낼 일이란 애초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도 안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오

늘도 보고 내일도 보고, 죽어서도 자식들은 남아서 그놈들끼리 또 마주보며 살

아야 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이미 샅샅이 뒤져가 버린 공출의 뒤에다가 콩나물을

기를 콩마저도 남아 있지 않아. 요기가 될 만한 나무 뿌리를 삶은 물로 끼니를

때우는 거멍굴 사람들은 가까스로 가을을 넘기고 겨울에 들면서 까닭없이 뒤숭

숭했다.

까닭없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자기네와 직접 피붙이가 아닌 남의 일인 데

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다. 남의 일인데도 단순히 남의 일만이 아니라 곧

자기들의 운명에도 무슨 바람이 끼칠 것만 같은 불길한 사건인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대갓집 서까래가 씨러지먼, 거그 귀영탱이다 집 짓고 살든 쥐새끼들도 따라

서 쏟아져 부리제잉. 넘으 집 씨러지는디 내 둥지도 씨러지능거이 또 우리 같은

사람들 팔짜 아닝갑서?”

평순네가 근심 어린 눈으로 원뜸 쪽을 항하여 말했을 때, 턱을 쳐들고 있던

옹구네는 댓바람에 맞받아서

아앗따아, 무신 씨러질 집칸이랑 물어나 논 곡식이랑 갓득갓득 쟁에 놨능게

비이?”

하고 쏘아 뱉었다.

이노무 호랭이 물어갈 예펜네야. 꼭 머엇을 그렇게 쟁에 놔서 그런다냐?

흘 굶은 집구석에도 도적놈 가지갈 것은 있드라고, 이런 사람사는 꼬라지 머 사

람이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지마는, 그래도 다 이만치라도 목심 달고 사능 거이

청암마님 덕분이고, 그 댁으 기운이 여그 끄장 덮어 중게 우리가 안 죽고 사능

거잉게 하는 말이제. 사램이, 앞으로 오는 공은 몰라도 지내간 공은 잊어 부리지

말어야제잉.”

아이고 그리여. 충신 났고 열녀 났다. 깃대가 없어서 어쩌끄나. 북치고 장구

치고 동네방네 돌아댕김서, 내가 이런 사램이요오, 외었으면 꼭 쓰겄는디.”

그 말에 평순네는 길게 눈을 플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

자 옹구네는 그 등판에 대고 한 마디를 덧붙여 쏘았던 것이다.

아 어디 가먼 상전 없으께미 걱젱이냐 걱젱이? 천지에 쌔고 쌨는 거이 상전

이다. 하이고매, 말도 마라 몸썰난다. 자고 새먼 손발톱이 모지라지게 해다 바쳐

도 누가 눈 한 번이나 깜짝 허등게비. 매 발톱 같은 눈으로 이리 뒤집어 보고,

저리 헤집어 보고, 실밥 한 오래기만 빠져 나와도 패대기 치고, 나도 인자 이런

시상 신물나서 못 살겄다. 그렇게 떵떵 울리고 살든 대갓집도 망헐 운수 당허먼

벨 수 없이 망해야지 어쩌겄나고요.”

아까 참에 평순네에게 해붙였던 말끝의 기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옹구

네는 볼따구니가 빨개져서 춘복이 쪽으로 돌아눕는다.

얼기설기 얽은 농막이라 시린 외풍이 선뜩했다. 춘복이는 팔베개를 한 채로

멀거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밤이 기울어 그 모습이 보일 리 없지만,

이렇게 옆엣사람 생각도 안하고 한동안 말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그러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아이 그렁게 원뜸에 새서방은 사랑으다 가돠 놔도 소용없고 인자는 전주로

아조 도망을 가 부렀다 그거이제?”

아까도 한 말인데 다시 되짚는다. 춘복이는 대꾸가 없다. 무슨 생각을 해도 골

똘히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먼 그 기생 첩실은 어쩠스꼬? 데꼬 살으까?”

머 도망끄장 감서, 지집 내부리로 갔을라고요?”

아이고매 정나미야. 갔을라고요는 무신 쎄빠질 노무 갔을라고요오? 참 내.”

옹구네는 샐쭉하여 핀잔을 준다.

그네로서는 이렇게 말을 올려붙이는 순간이 무단히 섭섭한 탓이었다. 춘복이

가 투박한 대로 말을 놓을 때는 마치 자기와 한살인 듯 여겨지다가도, 이렇게

평상대로 말하면 별안간에 허망해지며 내쫓긴 듯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그만 집으로 가 보라는 무언중의 신호이기도 한 셈이어서 더욱 그렇게 느

껴졌다. 몸도 마음도 식었으니 이제 한 잠 잘 일만 남았다는 시늉 같기도 하여,

문득 가슴이 선뜩해지기까지 하는 말투였다. 어쩌면 그네는

옹구네, 우리 기양 살어 부리제.”

하는 말을 은연중 애가 잦게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춘복이는,

언제나 새로 만난 남정네처럼 어설프고 약간은 심란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그 심정을 말투로 드러내고 마는 것이었다.

헐 일도 잔상도 없능갑소. 무신 애들맹이로 그께잇 거를 갖꼬 다 트집이다

?”

흥 허기사 머 나 같은 년은 마느래도 아니고 첩실도 아닝게 암칙게나 대거

리헌들 따질거이 머 있당가?”

왜 또 그러시요?”

내가 머 무신 거마린 중 아능게빈디, 뒤집어 보먼 자개도 손해난 거없지 멀

그리여? 떠꺼머리가 맘만 먹으먼 엎어질 예펜네 공으로 챙게두고, 솔레솔레 꽂감

꼭지 빼먹는 것도 복이라먼 복인디, 맨날 그렇게 내 사정 봐 주는 사램맹이로

그리여?”

맨날 들어도 그 소리. 인자 알었응게 그만허시오. 아닝게 아니라 나도 품삯

안 주고 연장 갈응게 좋소, 좋아.”

옹구네가 그 말에 발딱 일어나 앉는다. 짚수세미같이 엉클어진 머리채 뒤꼭지

가 어둠 속에서도 우우 소리를 지르며 일어설 듯한 기세다.

그러나 그네는 아직도 아까 그 자세대로 누워 있는 춘복이를 눈이 돌아가게

흘기기만 할 쭌, 얼른 무어라고 입을 떼지 못한다. 아마 분이 치받치는데다가 야

속한 생각에 몸이 떨리는 모양이었다.

머머? 상놈 자식 안 날라고 펭상에 장개를 안 들겄다고? 핑계가 좋아서 떡

을 사 먹겠네. 매급시 그러지 말드라고. 내가 홀메미라고 깜보능게빈디이. 이리

뜯어먹고, 저리 발러먹고, 공것잉게 맘대로 맛보시겨. 그러다 개빽다구맹이로

고샅으다 동댕이쳐도 됭게에. 누가 머래야? 내가 들러붙어서 찐드기맹이로 떨

어지도 안허고 살자고 그러께미 장개 안 간다고 으름장 놓능거 내 다 안다고오.

그런디, 이건 알어 두어. 상놈은 상놈 낳고, 상년은 상년 낳능 게에. 그런디,

아무리 잘 났어도 상놈은 상년 만나 사능 거이여. 무신 천지개빅을 허겄다고 꿍

꿍이여, 꿍꿍이가.”

춘복이는 아예 귀를 봉창한 듯 꿈쩍도 하지 않고, 옹구네는 더욱더 약이 올라

말끝이 착착 감기게 찰져진다.

그네는 화가 난다고 말소리가 높아지거나 빨라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조근조근 누비듯이 말하는 것이다.

흐응, 내가 그 속 모르는 중 아능갑서. 어디 귀 빠진 눈먼 년, 중인 집구석

으서라도 데릴사우로 데레가기 바래는 거이제? 앉은뱅이 꼽사라도 좋응게. 그리

장개가서 벵신 뒷바래지험서 저도 벵신 노릇 따라 허고라도, 상놈 소리 안 듣고

싶은 거이제?”

핫따, 거 시끄럽소.”

드디어 더 참지 못하고 홱 돌아누워 버리는 춘복이 서슬에 흠칫 밀려나며 그

네는 모질게 해붙인다.

그러먼? 그러머언. 원뜸에 강실이가 자개 차지 될 중 알었당가? 거그는 대

체나 더 좋겄네? 양반 중에 양반잉게. 맵씨 좋고 태깔 좋아 향내가 난당가 냄새

가 난당가, 남원골에 쩌르릉 허는 양반의 따님인디, 거그다가 몸뗑이도 헌 것 되

야 부렀겄다. 온전헌 시집 못 갈 것은 불속을 디리다보디끼 훤허고. 나이는 먹

, 오란 디는 없고, 잘 되았네. 업어오지 그리여? 오매불망 정든 님은 기생첩을

옆에 찌고 전주로 도망가 부렀담서, 더 잘 되았네 그리여.“

순간 춘복이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쩍 빛났다. 마치 부싯돌을 맞부딪친 것 같

은 시퍼런 빛이었다. 그 느낌이 옹구네에게까지 전해져 오는 섬뜩하고도 예리한

안광에, 오히려 말을 내쏘던 그네가 멈칫하고 몸을 움츠린다.

왜 그런당가?”

벌떡 일어나 앉는 춘복이의 기세에 옹구네가 뒤로 밀리는 소리로 묻는다.

대 후려치는가 싶었던 것이다.

아니라요.”

내가 머 못헐 말 했당가?”

아무래도 쭈빗거리는 투로 춘복이의 기세를 살피던 그네는 주섬주섬 두루치를

챙긴다. 이럴 때는 길게 말하는 것보다 얼른 일어나 집으로 가는 편이 더 낫다

고 생각한 것이다.

어둠 속이지만 치마 솔기가 뒤집힌 채 입고 나갈 수 없는 노릇이라 더듬거리

면 옷을 간추린 그네는

나 갈라네, 그런디 한 마디는 허고 가야겄어. 여자가 마음에 한을 품으면 오

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안허등게비? 내가 암만 막 사는 년이라고는 허드라

, 쓸개끄정 썩은 년은 아닝게, 내 오장육부에다 바늘 꽂든 말드라고. 무신 일

을 헐 때 허드라도, 나를 살살 달개감서 히여. 나 설웁게 말고오.” 하며 못을

박는다.

조심해서 가기요.”

다른 때 같으면 그 말 정도는 꼭 하는데 오늘 밤은 그조차 없다. 여전히 춘복

이는 눈에 불을 켠 채로 무엇엔가 넋을 흘린 듯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 모양을

힐끗 바라보고는

나는 갈랑게.”

하더니 옹구네는 덧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쌔앵 몰아친다.

아이고매 호랭이 물어가겠네. 오살 노무 바램이 기양 살을 비어 갈라고 그

러네에.”

거기다가 또 무어라고 구시렁거리며 짚신짝을 꿰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농막 안은 괴괴해진다. 이따금 회초리로 후려치는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다.

(...강실이...?)

아까 옹구네가 내쏘던 말이 그대로 춘복이 가슴 복판을 쒜뚫고 있는 것이다.

뚫린 복판에 꽂힌 이름은 곧 화살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소스라치게 놀

라운 발견에 그는 아직도 흥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화살 맞은 자리에서 선혈이 쏟아지는 것 같은 뒤설렘을 가누지 못하는 춘

복이는 벌떡 일어나 덧문을 열어젖히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동짓달의 매운 바람

이 오히려 그의 더운 몸을 식혀 주기에는 알맞은 것이었다. 막힌 피가 터지면서

철철 흘러 넘치는 흥건함에 자신의 몸을 내 맡긴 채 숨도 쉬지 않고, 매안 마을

의 종가 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검푸른 밤하늘의 별들이 소름 끼치게 영롱한 빛으로 반짝였다.

그 별들을 쓸며 바람이 허공을 날카롭게 가를 때마다, 별빛은 더욱 차갑게 깜

박인다.

매안 문중의 마을은 여기 거멍굴에서는 아득할 만큼 멀어 보인다. 아니, 멀다

기보다는 보이지 않는다는 편이 옳았다. 불이 밝혀진 방문이 하나도 없어 그렇

게 짐작되기도 하겠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닌, 물을 건너고 굽이를 돌아 엄중한

막을 치고 저만큼 있는곳.

문중.

그 코앞에 바싹 엎드려 있을 때도, 대문간 앞을 지날 때도, 그곳은 아득하기만

했었다.

어쩌다 무슨 심부름 때문에 그들의 앞에 마주 대하고 있을 때도, 그들은 들판

너머쯤에나 있는 사람들처럼 아득했다.

그러나 지금 춘복이는, 두 팔을 뻗어 움키면 그 문중의 지붕들이 거머쥐어질

것만 같았다.

그의 우왁스러운 이 짚신발로 걷어차면, 삭은 수숫대 올바자처럼 넘어갈 것만

같은 오류골댁 사립문 쪽을 그는 매섭게 쏘아본디.

(내가 왜 그 생각을 진작에 못했이까. 내가 왜 그것을 몰랐이까.)

춘복이는 주먹을 부르쥔다. 그는 지금 늑대처럼 포효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다. 그가 고함을 지르면 산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거그가 그 사램이 있는 것을 내가 이때끄장은 넘으 일이라고 생각했는디,

거이 아니여, 그리여. 그렇제, 그거이 아니여.)

그의 눈앞에 강실이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항상 먼 발치에서 무슨 죄 짓

는 사람처럼 힐끗 훔쳐 보았을 뿐인 그네였지마, 그리고 그나마도 좀처럼 바깥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라서 정말이지 어쩌다 한두 번 밖에 본 일 없는 사람이었지

, 지금은 달랐다.

상상 꼭대기 구름 속에서만 노닐다가 꿈결인 양 언뜻 모습을 비치던, 어쩌면

이야기 속의 선녀 한가지로 있는 듯 없는 듯하던 그네. 공배아재나 아짐이 그

이름만 입에 올려도 송구스러운 듯 얼굴에 화기를 띠며 말하던 사람. 우러러 섬

기며 빈말이라도 한 마디 비난도 하지 않던 평순네. 심지어 옹구네조차도 그 태

깔만은 인정하고 시샘을 참지 못하던 사람이 바로 강실이 아닌가. 거멍굴을 잡

아먹을 듯이 으르렁 거리고 있는 대갓집의 골기와 지붕 아래 오붓하게 감추어진

, 언감생심 이쪽에서 감히 건너다보지도 못하게 감싸여져 있던 사람.

(그것도 인자 예날 이얘기다. 청암마님 돌아가세 바라. 아직끄장은 그래도 그

훈짐이 끊어지들 안했응게 버티고 있었지마는 오늘 니얄 숨 떨어지먼 그 집도

헛간 된다. 누가 지킬 거이냐? 배깥이서 드는 도적은 지켜도 안에서 

 도적은  막는다고 안 그러등가? 내가 다 안다. 내가 다 알어. 율천샌님

병약허고 새서방은 전주로 달어나 부리고. 거그다가 강실이는 인자 이 마당에

어디로 시집을 갈 꺼이냐. 소문이랑 거이 얼매나 무선 거인디. 허깨비맹이로 뵈

이도 안헝 거이 생사람 목심도 잡는 거인디 말이여. 거그다가 그거이 보통 일도

아니고 들통나면 즈그 집안 낯바닥에 똥칠허는 거인디.벙어리 냉가슴이나 앓겄

. 쥑이도 살리도 못헐 사램잉게. 강실이는 오도가도 못허고 앉은 자리서 말러

죽게 생겠을 거 아닝가?)

춘복이의 주먹이 안으로 오그라진다. 그는 마치 병아리를 채려는 솔개처럼 오

류골댁 마당 나직이 떠서 빙글빙글 도는 자신을 본다. 발톱을 모은 그의 눈빛이

번뜩인다. 더욱이 그 병아리는 지금 맥없이 한쪽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기회

를 훔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춘복이는 자기도 모르게 보르르 몸을 떤다.

무엇인가 사무치며 치밀어 올라 목이 뜨겁다. 그것은 희열이었다.

(내가 이날을 이때끄장 지달렀능게비다. 그럴라고 이 거멍굴에 엎어 져서 살었

능게비다. 부모가 있이까. 성지간이 있이까. 아무껏도 없는 바닥을 못 떠나고,

허벌판 추운 시상을 모진 맘 먹고 친덕꾸레기로 살었다마는, 나라고 언지끄정

상놈으로만 살겄냐. 나는 죽어도 상놈 자식은 낳기 싫었능게 이 육시랄 노무 상

놈 꺼죽 훨훨 벗어 내부리고, 사램이 사는 것맹이로 살고 자펐다. 무지헌 곰도

하눌님 아들을 만나서 인연을 지으먼 곰껍닥을 벗고 사램이 되는디, 나도 언지

든지이 껍닥을 벳게 내고 사램이 되게 해 줄 여자를 만날라고, 그럴라고 지금끄

장 살어왔다...)

춘복이는 어금니를 지그시 물며 다시 한번 오류골댁 쪽을 노려본다.

(작은아씨. 내 자식 하나 낳아 주시오. 나는 작은아씨한테 양반 자식 하나 얻

, 작은아씨는 나한테 상놈 자식 하나 얻으시요.)

칼로 새기듯 또박또박 한 마디씩, 끓어 오르는 심정을 오류골댁 쪽의 하늘에

새기는 춘복이는 다시 한번 부를 떤다.

(인자는 시상도 많이 변해 부렀응게요. 언지끄장 같은 시상이 아니여요. 천 년

묵은 낭구도, 죽고 나먼 그 썩은 자리가 개미굴이 되고 마는 거잉게. 사램이 살

자면 팔짜가 뒤재비 칠 때도 있겄지라우. 사램이 비얌도 낳고, 곰이 사람으로 환

생도 하고, 애초에 인연이랑 거이 맹랑헌 거 아닝교? 산골짝으서 나무 패든 나

무꾼도 선녀랑 맺어지면 두룸박을 타고 하눌로 간다는디. 작은아씨는 비얌 한

마리를 낳고, 나는 곰껍닥을 찢어 내고 사람 한마리 낳고, 그렇게 피를 섞어야

나도 두룸박을 타고 승천을 헐랑갑소.)

새파란 불꽃이 일어나는 가슴팍으로 기와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 그때 춘복이

의 귀에 찰진 옹구네 목소리가 엉긴다. 마침 사람들이 아무도 없고 평순네와 옹

구네 둘이서 정짓간에 허드렛일을 하던 날이었다.

춘복이가 막 장작을 한 짐 부려 놓을 때 한 말이다.

참말로 마님도 젊었을 적으는 넘 못헐 일 많이 허겠다등만.”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

누가 그랬다등만 그리여. 숭년으, 이 집 대문 앞에서 누구라등만, 나는 듣고

도 넘 일이라, 하이튼지간에 숭년으 장리 쌀 이자를 못 갚어 갖꼬 논밭을 기양

눈 버언히 뜨고 이자로 뺏김서, 이 집 앞으 와서 죽었다등가아, 거랭이가 되서야

타관으로 떠났다등가, 그럼서 저주를 했드리야. 오냐 인제 두고 바라. 느그집 곡

간에 곡식이 썩어 나도 먹을 사램이 없어서 못 먹는 날이 올 거이다. 내 생전에

그 꼴을 못 보먼 죽어서 혼백이라도 남어 갖꼬, 느그집 씨구녁을 막어 부릴 거

이다.”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옹구네는 평순네가 휭하니 뒤꼍으로 나가 버리자 그만

제풀에 머쓱해졌다.

아이고매, 호랭이. 벨라도 얌전을 떨고 자빠졌네. 안 듣는 디서는 나랏님 숭

도 본다는디 지께잇 거이 무신 충신 났다고... 허이고 차암, 즈그 씨어씨등갑다.

내가 머 그른 말 했간디? 밥 한 숟구락이라도 얻어먹을랑게,속도 없는 것맹이로

주뎅이 다물고 살제마는 그런다고 내가 머 없는 소리 지어 낸 것은 아닝게.

러고 이날끄장 차알찰 시퍼렇게 물이 넘치든 청호 저수지가 멋 헐라고 작년 올

에사 말고 그렇게 거북이 등짝맹이로 짝짝 갈러졌겄어? 이거이 다 징조여 징조.

이 대갓집도 인자 운수가 다 된 거이제 머. 운수 소관이야 일월성신이나 아시제

누가 알거잉가. 가만히 앉어서도 산데미 같은 노적가리가 지 발로 걸어오는 운

수도 있능 거이고, 쇠시랑 갈고리로 찍어 붙들어도 임자가 따로 있는 운수가 있

능게...두고 봐라. 이집 운수는 바닥이 날텡게. 지금이라도 청호 저수지으 가 보

라제. 집채 같은 조개바우가 헐떡헐떡 그 넓은 저수지 물을 다 둘러 생키고 말

었는디? 조개가 머어이간디, 조개가! 그 주뎅이에서 물을 펑펑 쏟아 내도 시언치

않은디, 이것은 됩대 물 밑바닥끄장 죄다 핥어먹고 패싹 말려 놨이니, 재산이고

자식이고 불어 가기는 애저녁에 그란 거이제. 청암마님 돌아가심서 집안 안팎

운수도 다 한끕에 말어갈 거여. 허기사 머 청춘에 독수공방도 피멍이 맺히게 독

이오를 일인디 자개 속으로 난 자식도 하나 없는 이놈의 시상에다가 누구 존 일

을 시키자고 복을 냉게 놓고 가겄냐. 나 같어도 기양은 안 갈 거이다. 좋은 드끼

넘 보는 디는 기세 좋게 살었어도 그 한 펭상이 어뜬 세월이었겄어? 그 양반이

인자 그 한풀이를 꼭 헐 거이다. 두고바아. 인자 두고 보라고. 내 말 헐 거잉만.”

엉구네는 솔가지를 툭툭 분질러 아궁이에 쑤셔 넣는다. 아궁이의 불길은 옹구

네 낯바닥을 빨갛게 비추며 탄다. 그러다가 후욱 불길이 밀려 나오기도 한다.

려 나온 불길이 솟구치며 춘복이의 가슴에 붙는다. 새빨간 불혓바닥이 그를 둘

러 삼킨다.

그렇게도 옹골지게. 저주에 가까울 정도의 모진 예언을 옹구네는 퍼부어댔었

. 그러나, 그 예언을 증명해 주는 어이없는 일은 며칠 뒤에 정말로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놈아아, 너도 위로넌 부모를 뫼시고, 아래로넌 자석 손자를 키우는 놈이라

먼 이렇게 헐 수가 있단 말이냐아. 내가 오널은 사생결딴을 낼라고 쫓아왔다.

가 아무리 가문 좋고 재산이 많다고는 허지마는, 사람의 탈을 쓰고 이렇게는 못

헐 거이다. 있는 사람의 문서에는 논 서마지기가 애기 콧구녁에 코딱지 같은 거

일랑가 모리겄다. 그런디이, 우리 없는 사람은 그거이 아니여어, 그거이 아니라

고오. 너느은 있는 재산에다가 귀 맞출라고 우리 논을 샀겄지마안, 우리는 목심

을 팔어 넹긴 거이다아.아이고오. 아이고오, 이런 천하에 날도적놈아아. 칼만 안

들었제에, 이거이 강도나 한가지제 어디 사람의 지서리란 말이냐. 어서 내 논 문

서 내놔라. 논문서 내놔아. 왜애, 아까워서 그리는 못허겄냐? 그러면 돈을 내놔

얄 거 아니여, 돈으을. 눈도 하나 깜짝 안허고. 넘으 목심을 그렇게 둘러 생킬

수가 있을지 알었냐아? 니가아, 가문 있고 재산 있다고 하늘 무서운지를 모르능

갑지마는, 내가 눈 뜨고는 안 당헌다. 그거이 어뜬 논이라고, 나락 모가지 시퍼

렇게 섰을 때 산 것을, 이때까지도 돈을 안 준단 말이냐? 천지에 백설이 날리

, 냉돌방에서 자식 새끼가 얼어 죽었는디도, 이 에미가 눈 버언히 뜨고 그것을

쥑였다. 내 눈앞으서 그 에린 거이 배고프고 추워서 죽었다고오. 네 이놈, 너는

니 자식을 잘 멕일라고, 넘으 자식은 얼어 죽고 굶어 죽어도 좋단 말이냐. 이 천

하에 날도적놈아. 그것도 우리 집 논 문서 말어갈 적으는, 금방 돈을 준다고 큰

소리 땅땅 치고 가지가드니, 니 눈꾸녁으는 그거이 종우 쪼각으로 뵈이느냐?

거이 종우 쪼각으로 뵈이여어? 공으로 뺏어가다시피 해 놓고는, 그나마도 철을

넹기고 자식을 얼려 쥐이드락 돈을 안 주먼 어쩔 거이냐, 어쩔 거이여?”

쇠스랑을 거꾸로 치켜 든 쇠여울네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머리를 산발하고

저고리 앞자락은 풀어 헤쳐졌는데, 속에는 맨살이다. 쇠여울네 눈은 시뻘겋게 충

혈이 되어 금방이라도 핏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낯바닥이 누렇게 뜬데다가 검

은 기미가 버섯처럼 피어 있어 차마 볼 수가 없는데 입술에는 허연 거품이 물려

있다.

안서방네와 안서방은 그네의 양쪽 팔목을 붙들어 잡고, 쇠여울네가 몸부림치

는 대로 씨름하는 사람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이토록 독이 올라 거품을 뿜으며 날뛰니, 두사람의 힘

으로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말로 허시오, 말로. 우리도 다 귀 있응게에, 말로 하라고요.”

안서방이 쇠스랑을 뺏으려 한다. 쇠여울네는 그런 안서방의 손을 홱 뿌리쳐

버린다. 그 서슬에 안서방은 맥없이 밀린다.

말로? 말로해서 될 사람한테 말로 허능 거이제, 이런 짐승만도 못헌 놈한테

무신 말로 혀어, 말로 허기는.”

새끼머슴 붙들이와 바우네, 상머슴, 호제, 종들, 할 것 없이 뒤어나와 안팎으로

모두 겹겹이 둘러서서 창황 중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효원은 대청마루에 서 있고, 율촌댁은 댓돌에까지 내려왔다. 이기채는, 얼굴이

샛노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무어라고 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쇠여울네가 번쩍 치켜 세운 쇠스랑 끝에 차가운 겨울 햇빛이 섬짓하게 찍힌

.

그는 이기채를 찍어 내리려고 그러는 것이다.

몇 번이나 허공 중에 헛손질을 하는 그네의 갈라진 손등에는 시퍼런 힘줄이

돋아나 있었다.

네 이년, 네가 어디서 지금 이런 짓을 허는 게냐?”

이기채가 질려 있던 입술이 겨우 풀리면서 노기를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하이고오, 똥뀐 놈이 썽낸다드니, 날도적놈이 됩대 꼬깔을 씌우능구만 그리

. 내가니 앞에서 무신 못헐 짓을 했단 말이냐. 내가 무신 못헐 지서리를 했느

냐고오. 오냐, 나는 너한테, 굶어 죽게 생게서 논 팔은 죄배끼는 없다. 그러고 그

돈 못 받은 죄배끼는 없다아. 니가 나를 혼자 사는 예펜네라고 우습게 봤능갑다

, 나도오...나도오...”

쇠여울네는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어 통곡을 한다.

그께잇 노무 논밭 뙈기, 느그집 행랑살이만도 못헌 거이다마는, 그것을...

치께 일군 거이라고...황소 공출해 가고는, 내가...내 모가지에다가..., 내 모가지

에다가 쟁기 걸고...가래질했던 논이 다아...그 논바닥에 내 눈물로 거름을 줌서

이날끄정 목심같이 여겨왔든 논이라고오...시상에도 웬수에녀르 가뭄 땀새,

자석 하나있능 거 보리쌀에 팔어먹게 생겠길래, 딸년을 팔어 먹느니 논을 팔자,

허고, 내가, 자식을 파는 심정으로 팔었든 논이다, 그 논이...”

쇠여울네는 발을 버르적이면 이기채를 향하여 쇠스랑을 여지없이 내리찍는다.

차가운 햇빛이 파랗게 잘린다.

이기채는 무망간에 옆으로 피한다.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허허어. 이런 고약한 년을 보았나. 내가 언제 네 논 판 돈을 떼어 먹었단 말

이냐.너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로, 누구 앞에서 이러는 것이냐. 네 이녀언.”

오냐, 나는 배운 거이 없어서 이 모양이다마는, 잘 배운 너는 무신 그렇게

잘날 일이 있냐. 너나 나나, 창씨개밍을 허고 일본놈 성씨 따고 이름 따고 일본

놈맹이로 살고 있는디, 머어이 달르냐. 니가 가문이 좋아도 그건 다 옛날 고리쩍

이얘기다. 이께잇노무 집구석, 조상 팔고 이름 갈기는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어이 그렇게 잘났냐. 머어이 그렇게 잘났어어. 자식 쥑인 년이 겁날 거 하나 없

. 내가 이놈 니 자식놈도 내 자식 쥑이디끼 쥑일란다아.”

쇠여울네는 홱 몸을 돌이키더니, 맨발로 내리달아 안채의 대청마루까지 단숨

에 뛰어올라간다. 창졸간에 온 집안에 공포가 뒤덮인다. 효원은 건넌방 문고리를

몸으로 틀어 막으며 두 팔을 벌린다. 댓돌 위에 서있던 율촌댁이 뒤따라 치솟으

며 쇠여울네의 뒤에서 팔을 틀어쥔다. 뒤쫓아 올라온 안서방과 머슴, 호제, 종들

이 한꺼번에 쇠여울네를 싸잡는다. 그러나 순식간에 놓치고 만다.

그네는 쇠스랑으로 대청마루를 찍는다.

쿠웅.

.

쇠여울네는 흡사 미친 여자 같았다.

대청마루의 바닥에는 여기저기 쇠스랑 자국이 나서 패어 나간다. 그네는 마루

기둥을 찍는다. 눈에서 푸른 불꽃이 번쩍 번쩍 한다. 그 눈빛과 쇠스랑에서 튀는

살기에 질린 사람들이, 장정인데도 차마 덤벼들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만 있

.

이기채는 온몸이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한다.

네 이녀언.”

하더니,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그의 얼굴이 샛노랗다. 집안의 수라장

에 놀랐는지 철재가 건넌방 안에서 자지러지게 울어짖힌다. 이 뜻밖의 난리에 놀

란 문중 사람들이 창황하게 모여들고, 집안으로 문중의 머슴과 노복, 장정들이

몰려왔다.

거멍굴의 춘복이도, 옹구네와 평순네도 혼비백산 달려왔다.

그 중 한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쇠여울네의 뒷머리를 후려쳤다. 춘복이였

. 그 바람에 그네는 쇠스랑을 놓치고 앞으로 거꾸러졌다.

아랫것들은 한꺼번에 그네를 덮어 누르고 몰매를 때렸다. 춘복이도 장작을 내

리쳤다. 피가 튀었다. 쇠여울네는 온몸에 몰매를 맞으며 방성대곡을 하였다.

자가 찢기우는 것 같은 처절한 울음 소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구름같이 둘러서서, 이 영문 모를 참담한 일에 입을 다물지 못

하였다.

수천샌님을 불러라.”

이기채는 목안에 잠긴 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낯빛이 백지장같이 질려 있었다. 입술은 안으로 말려 들어가 가느다란 검은 줄

만 보일 정도였다.

붙들이가 달음박질로 중문을 나선다.

왜 이런당가?”

평순네가 구경하는 사람들 틈으로 얼굴을 비집어 넣으며, 팔짱을 끼고 서 있

는 옹구네에게 묻는다.

머엇을 왜 이런당가여? 이런 꼴 진작 안 낭거이 됩대 요상시럽제.”

무신 소리여?”

내가 이럴 지 알었다고오.”

무신 소리냥게?”

샐인 안 낭 것만도 천신이 보살핑 거이여.”

하이고오.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에. 오늘따라 웬 주뎅이가 그렇게 무겁

당가? 싸게 말히여 봐아. 뜸딜이지 말고.”

인자 이 집안도 다 망허능갑다. 예날 같어 봐라. 죽으라먼 죽어야제 어디다

가 짹, 소리라도 헐 수 있었간디? 시상 참 많이 변해 부렀다. 그렁게, 사램이 오

래 살어야 이 꼴 저 꼴을 보능 거이여.”

쇠여울네는 물 건넛마을 쇠여울에 살고 있는 타성 사람이었다. 마흔을 막 넘

긴 억척스러운 여자로 몇 년 전에 남편을 잃고는 혼잣손으로 서너 마지기의 농

사를 지어 왔었다. 그네는 본디 여섯 남매를 낳았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가운

데로 넷은 차례로 숨이 지고,맨 위로 딸 하나와 맨 끝으로 아들 하나만 남게 되

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아까 낮에 숨을 거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슬아슬 실낱처럼 크던 어린 것은, 이제 일곱 살인데도 머리

만 수박통처럼 크고 맹꽁이배를 불룩 내밀고 다녀서, 그저 기껏 보아야 다섯 살

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거기다가 팔다리는 비비 꼬여 살거죽이 밀리며 히줄거

리는 모양이, 차마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등 거이 죽어 분 거이라.”

왜 매급시 잘 놀든 애기가 죽어?”

잘 놀기는 무신 지랄났다고 잘 놀아? 안 죽고 살어서 눈 껌벅거링게 목심

붙었능갑다했제잉. 그거이 막 나서도 비일 빌 했거등, 왜 그런디, 요번 여름에

가뭄이 엥간히 극성시럽등가? 봄부터 부황난 놈을 멕일 거이 없어서 그 가뭄에

패싹 말려 놨으니. 에미 맴이얼매나 씨러겄능가잉. 그래서, 독헌 맘 먹고 입도선

매를 했등갑서.”

나락 모가지 시퍼렇게 선 놈을, 기양 팔어 넹겠구만이?”

하아. 그런디, 그것도 돈을 바로 줬으면 누가 머이래야?”

? 돈을 안 주었당가?”

율촌샌님이야 주셌겄지맹.”

그러먼?”

머어이 그러먼 이여, 그러먼이?”

무신 소리여?”

율촌샌님 살림살이, 수천샌님한티로 아매 반절은 새 들으가 부렀을 거이네.”

아이고매.”

아 그렁게, 입도선매 해 부린 쇠여울네는 환장 복통헐 노릇 아닝갑서? 상하

가 있잉게로 차마 재촉도 못허고 눈치만 봄서, 똥마런 강아지 새깽이같이 끙끙

거릿겄제. 그리도 어디 수천샌님이 돈을 주간디?”

왜 수천샌님이 쇠여울네한테 그 논값을 줘어?”

아이고오. 이 웬수에녀르 귓구녁은 무신 귀뚝 속이당가? 율촌샌님 넨 논

사고 밭 사능거, 죄다 누가 허간디? 그거 다 수천샌님이 헌다고오. , 시방끄장

그것도 몰르고 살었간디?”

그러먼 수천샌님네 가서 난리를 치제 왜 윤철샌님한티 그릿스까이? 율촌샌

님은 아무죄도 없구마는.”

, 그렁게, 수천샌님은 율촌샌님한티로 자꼬 미룬 거이제잉.”

그리여잉...”

그러다가, 혼자 사는 타성바지, 지께잇 거이 감히 율촌샌님한티로 대질허로

갈 거이냐, 핑계 대고 미뤄 두먼 제풀에 지치든지, 지친 끝에 타관으로 동낭치를

가든지 헐 거이다 싶었겄지맹.”

어찌야 옳이여?”

그런디, 덜컥 새끼가 죽어 놨이니 쇠여울네가 게거품 물고 쇠시랑 치키 들

고 안 가겄어? 참마로 샐인 안 난 것만도 천행만행이제. 아 개새끼도 지 새끼

넘보면 저 밥 주든 쥔이든 나발이고 다 물어 쥑이다잔이여. 눈에다 불을 씨고

미치는 거이제. 뵈능 거이 있겄능가?”

그런디, 수천샌님은 어디 가셌능가? 왜 안 오시네?”

시 살 먹은 애기라도 누가 이런 난장판에 꺼덕 꺼덕 오겄능가잉? 어디로 숨

었다가, 이 난리통이 지내간 담에 나와서는, 그 양반은 입심 좋고 수단 좋응게,

구변으로 또 어뜨케 헐티지맹.”

아이고, 어쩌끄나.”

평순네는 탄식을 하였다.

쇠여울네의 처지가 한없이 가엾고 처량하였으며, 수천샌님 기표가 무서웠다.

그리고, 말라 비틀어져 죽었다는 쇠여울네의 자식 새끼 때문에 목이 메었다.

어쩌끄나...”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도 그네를 훨씬 놀라게 한 것은, 쇠여울네가 쇠스랑을

거꾸로 치켜 들고 이기채에게 덤볐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참 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구나.

평순네는 떨리는 다리를 오그려 붙이고 쇠여울네가 미친 듯이 찍어 내린 대청

마루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허연 허깨비처럼 앉아 계시던 청암마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네는,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송구스러워하였다.

(마님은 정신을 놓고 지심서도 얼매나 마음이 아푸시까잉...저어그, 이러어케

앉어 지시든 양반이, 당신 앉으시던 자리를 저렇게 내리찍으니, 말씸 한 마디도

못허시고, 얼매나 원퉁허고 설우실꼬...참말로 인심도 무섭구나...이 일을 어쩌끄

...무신 일이 날라고이러까잉.)

평순네는 안절부절을 못하며 서성거린다. 차라리 청암부인이 이런 저런 꼴을

못 보고 못 듣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부인께서 못 보고 못 들으시니

이런 죄로 갈 일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평순네는 그만큼 심덕이 온순하기도 했으며, 이 원뜸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대하여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원한보다는 오히려 항상 공연히

송구하고 그 은덕이 하늘 같기만한 마음이었다.

더구나, 바로 지난 봄, 밭에서 풋고추와 애호박 한 덩이를 소쿠리에 따 담아

가지고 오다가, 청암부인이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여 곡기를 통 못든다는

말이 생각나서 대갓집에 들렀던 일은 두고 두고 생각하여도 가슴이 벅차고 감격

스러웠다.

가뭄에 딴 애호박이라 물도 제대로 안 오르고 살도 차지 않은 것이었으나,

째서인지 한 덩이 드리고 싶었다.

이께잇 하찮은 것을...무신 천도 복송이라고...기양 가까...?

중문간을 들어설 때는 발걸음이 쭈밋쭈밋하여, 누가 볼까 싶어지면서 그냥 돌아

설까 망설여졌다.

산지 사방에서 일꾼들이 이고 지고 오는 온갖 곡물과 진귀한 물건, 새로 난

과일들도 누가 다 먹지를 못하여 썩어난다는 집안 아닌가, 거기다가 소식의 이

기채 때문에, 바리 바리 싣고 오는 갈비짝이며 귀물단지 생선 상자가 몇 날 며

칠을 가도 헛간에 산적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또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

.

그런데 이런 애호박 한 덩이를 소쿠리에 담아 가지고 가서, 무슨 우세를 당허

려고 내가 이런 마음을 먹었을까.

평순네는 그만 돌아서고 싶었다. 그러나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대청에 나와

앉은 청암부인의 눈에 띄고 말았다. 옆에서 손부 효원이 부축을 하고 있는 것으

로 보아, 답답하여 대청에라도 나와 앉아 바람을 쐬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냐, 들어오다 말고 왜 가?”

......아무껏도 아닌디요.”

그래...?”

청암부인은 더 말이 없었으나, 그때 평순네의 눈에 비친 부인은 예전의 부인

이 아니었다. 허옇게 백발이 되어 버린 그네의 머리와 흰옷이 유난히 그렇게 비

쳤던가. 청암부인은 허깨비처럼 앉아 있었다.

바람만 불면 그대로 펄럭, 누워 버릴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평순네의 가슴을 쩌르르하게 울리었다.

...벨 것은 아닌디요. 마님, 진지를 못 잡숫는다고 허길래요. 이애호박 너물

조께 해 잡수시먼 입맛이 나실랑가 허고요...”

자기도 모르게, 민망한 김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평순네는 두루치 자락을 치켜 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고맙구나...내 그렇잖어도 애호박죽이나 좀 먹었으면 했더니라...네가 내 맘

을 잘 보았다...어디 이리 가지고 와 보아...”

청암부인은 쉬엄쉬엄 말하였다.

그리고 그네를 힘없이 손짓으로 불렀다.

평순네는 자꾸만 눈앞에, 그때의 그 허연 허깨비처럼 앉아 있던 마님의 모습

이 떠오른다.

아주 맛있겠구나...올 농사는...가물어서...고생이 많었지?”

평순네가 두 손으로 올린 애호박 한 덩이를 받아 어루만지던 청암부인의 누렇

게 마른손이 떠오른다. 그때 부인은 애써 미소를 지었었다.

(아이고...어쩌끄나...)

평순네는 내리찍힌 대청마루의 쇠스랑 자국에 몸을 떤다.

그때 기표를 데릴러 갔던 붙들이가 털레털레 그냥 올라와서

전주 가싯다는디요.”

하고 말한 다음에도, 쇠여울네는 죽어 나갈 만큼 몰매를 맞았다.

그네는, 자기 가슴을 쥐어 뜯으면 쏟아지는 몰매를 피하려고 하지도 않고,

정없이, 내리치는 대로 다 맞았다.

해가 설핏할 무렵에야 그네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찢어진 옷자락에 살점

을 너풀거리며 맨발로 좇겨났다.

쇠여울네는 몹시 서럽게 울었다.

이미 다 울어 버려서 목청만 남았을 뿐, 눈물도 흐르지 않는데, 그네는 하염없

이 울었다. 죽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는 절룩절룩 고샅길을 지나갔다.

람들은 웅긋중긋 내다보다가 고샅으로 몰려나왔다.

그네는, 자갈이 비죽비죽한 고샅에 핏자국을 찍으며 맨발로 허청허청 걷는 중

, 연신 코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닦아냈다.

해가 저물어 밤이 되어서도 동네는 조용해지지 않았다.

조용하기는커녕, 더욱더 술렁거렸다.

어흐으으으.

어흐으응.

쇠여울네가 목을 놓아 우는 소리가 온 마을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흡사 여우가 우는 소리도 같았다. 아니면 늑대가.

아마 날이 새기 전에 쇠여울네는 어디론가 떠나가야 할 것이었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울음 소리를 채간다. 곡성은 칼로 자른

듯 끊겼다가 다시 바닥에서 솟구친다.

춘복이는 농막 귀퉁이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그 소리를 새긴다.

무섭게 내리치던 몽둥이와 장작이 새파랗게 불꽃을 일으켰지.

개 한 마리 잡는 것보다 더 처참하게 튀어 오르던 피.

이 피를 갚으리라.

그날, 쇠여울에 피 젖은 뒤꼭지, 헝클어진 머릿단이 생생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되살아나, 춘복이를 격렬하게 뒤흔든다.

그는 소름으로 온몸을 훑는 찬바람 속에서 움쩍도 하지 않고 원뜸의 지붕들을

노려본다. 이미 어둠이 깊어 지척조차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눈에는 불을

밝힌 것보다 더 훤히 보인다. 그 중에서도 조갑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은 오류골

댁의 다소곳한 초가지붕은 더 잘 보인다.

, 이 피를 갚으리라.

온몸의 힘줄이 땡기면서 주먹으로 모인다.

저절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주먹이 힘줄을 땡기고 있는 것이다.

주먹은 돌멩이보다 더 단단해진다.

(쇠여울네. 나를 야속타 말으시오. 내 이날 이때끄장 안 죽고 살어 남은 죄로,

그 집이서 밥 얻어먹은 죄로 쇠여울네 등짝을 내리치고 말었지마는, 인자 그 몽

둥이, 그 장작으로, 때리라고 헌 놈 쥑여 부릴 거잉게. 오늘 니얄 안되먼 모레가

있고 곱페가 있소. 내 것 뺏기고 몰매맞고, 벵신 되고 동낭치로 쬐껴나는 심정은

죽어서도 섹히지 말고, 살어서도 잊어 부리지 마시오. 시방은 혼자 당헌 것 같

, 혼자 쥐어뜯음서 울지마는, 두고 보시오. 두고 보먼 알 거이요. 밤이 짚어지

먼 새복이 오고 마는 거잉게. 쇠여울네. 더 울으시오. 더 울으시오. 울다가 숨이

끊어져서 죽어도 좋응게 울으시오. 나도 따러 울고, 공배아재도 따러울고, 그 옆

집이도 울고, 이 거멍굴이 떠내리가게 우읍시다. 언제 한 번도 한 소리로 소리

내 보도 못헌 놈의 벌거지 같은 인생살이, 인제라도 한 소리로 뫼야서 창사가

터지게 울읍시다. 호령 소리가 아무리 크다고 헌들, 우리들이 죽기로 한을 허고

어는 소리보다 클랍디여.)

그때, 춘복이는 쇠여울네의 통곡이 이기채의 고함을 잡아먹을 만큼 커지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어금니를 맞문다.

그리고 지금. 이기채를 잡아먹은 통곡 소리가 성난 물결처럼 소용돌이치며 솟

구쳐 올라온 마을을 뒤덮고, 강실이네 오류골댁 초가집을 한입에 삼켜 버리는

환각에 등을 부르르 떤다.

(쇠여울네. 인자 두고 보시오. 죽지 말고 살어서 두 눈 딱 뜨고, 꼭 보시오.

실이가, 이놈 춘복이란 놈 자식 새끼를 낳고 마는 것을 뵈야디릴 거잉게. 그날끄

장은 죽지 마시오. 그거이 머 몇 천 년이나 남은것도 아닝게, 쇠여울네, 어디로

가서 살든지 소식 끊지말고 그날을 지달리고 있으시오. 쇠여울네가 울고 내가

울고, 거멍굴에 엎어진 인생들이 울고 울던 설움을 내가 모질게 갚어 줄 거잉게,

오늘 내가 내리친 장작에 어깨 찢어진 거, 너무 야속타 말으시오, 쇠여울네,

안허요.)

춘복이의 번쩍이는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새파랗게 빛났다.

얼핏 보면 승냥이 한 마리가 거기 서 있는가 싶기도 했다.

 

 

2 떠나는 사람들

 

만약에 이 지상에 오직 군소 국가들만 존재한다고 하면, 아마 지금보다 인

류는 훨씬 더 평화롭고 자유스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허나, 한 뱃속의 새끼도

아롱이 다롱이라고 하는데, 생성 존재의 근원이 다르고 역사와 문화가 다른 국

, 엄청난 이권 조직인 국가가 너나없이 어슷비슷 올망졸망 그만그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각기 그 나라의 힘대로 세력이 달라져서 종국에는 힘센 놈. 약한 놈

이 생겨나기 마련인즉. 강대 국가의 존재란 불가피하지. 그런데 강대 국가가 있

으면 반드시 상대적으로 약소 국가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고 강대 국가와 약소

국가의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평화.평등이 아닌 약육강식이 이루어진단 말이야.

약육강식. 천지만물 삼라만상의 본능적 현상이 바로 약육강식이 아니냐. 말없는

우주의 원칙이 그러할진대 국가와 국가, 가문과 가문, 인간과 인간 사이에,

관계가 명확하게 집행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물론 조선의 처지도

강에 먹힌 약의 대표적인 것이지만...군소 국가는 나라가 작어서가 아니라 약하

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비참해지는 거야. 반대로 강대 제국은 나라가 커서가 아

니라 강하기 때문에 번성하는 것이고. 결국 그 나라의 선.악이 아니라 정치적인

힘이 국가 번영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는 셈이지. 비단 국가에만 그런 것이 작

용되는게 아니야. 무릇 만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오직 힘이 필요해. . 물리

적인 힘만이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존속의 첫째 조건이 되는 거야.”

강태는 더부룩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앞에 놓인 청주잔을 든다.

손톱 주변에 허연 꺼슬이 일어나 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이마를 덮으며 흘러내린 머리칼에 가리어진 눈썹이

새까맣다. 그래서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과 하관이 좀 빠른 듯한 모습은 아버지 기표를 그대로 닮았다. 그러나 차갑

게 다물고 있을 때의 입술 선은 어찌 보면 기표보다 더 이지적이고 냉정한 성격

으로 느껴지게 한다.

강모의 얼굴도 초췌하다.

지난 여름 오유끼의 사건으로 집안이 뒤집히고 난 뒤, 이기채는 강모를 작은

사랑에 가두어 두다시피 하였다. 심지어는 안채의 어머니 율촌댁에게 가는 것조

차도 금하였으며, 그러지 않아도 소원한 효원의 건넌방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

었다.

몇 십 년 만이라는 가뭄은 유난하여 누런 먼지가 황토빛으로 지붕을 뒤덮었는

, 큰사랑에서는 놋재떨이 두드리는 소리가 잠시도 멎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부자가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또는 특별히 꾸중

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강모를 방안에 가두어 둔 채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하게 하였다.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스물한 살씩이나 먹은 장정, 애기 애비가

된 자식을 어린애들처럼 방안에다 가두고 그러시요?”

율천댁은 보다 못하여 이기채의 사랑에까지 나와 탄원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기채는 이기채대로 바늘끝같이 과민하여 신경이 벌겋게 청혈되어 있어서,

옆에 누가 서기도 두려워했다. 그가 지나가기만 하여도 살을 베는 바람이 일어설

정도였다.

이기채는 강모를 증오하였다.

강모는 아버지 옆방에 갇히어 녹아 내리는 더위와 허적함, 그리고 견디기 어

려운 모욕감 때문에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강모의 얼굴빛은 누렇다 못하여 검은색을 띠었다.

너도 마셔라.”

.”

강모는 술잔을 든다. 깍정이만한 도자 술잔의 푸르스름한 광택이 얼굴의 검은

빛을 더욱 검게 보이게 한다.

그들은 오랜만에 이렇게 서로 마주앉아 있는 것이다.

결국 군소 국가의 매 앞에 병아리같이 그 존망이 위태로워, 우여곡절을 겪

고 싸우고 버티어 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강대 제국에 완력으로 연합되어 버리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불쌍한 것은 그러한 군소 국가에 태어난 국민이지. 자체

를 방어할 만한 힘도 없고, 궁핍을 면하게 해줄 방도가 없는 국가에 태어난 국민

으로서는, 남의 나라 종노릇을 하는 것이야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그것은 국

가와 국민의 운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한 개인의 운명도 마찬가지인 거야.”

강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말을 하고 있을 때보다도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이 훨씬 차갑다. 사기처럼 단

단하고 날카로운 얼굴은 강태가 강모보다 팔구 세는 연상으로 보였으나, 쇠잔한

표정에 시달리느라고 탈진한 듯 보이는 강모는 얼른 보면 강태보다 더 겉늙어

보인다.

실제로 두 사람은 두 살 차이밖에 안되었다. 조금만 의기가 통한다면 호형호

제 할것도 없이 막 터 놓고 지낼 수 있는 처지인 것이다. 거기다가 종항이 아닌

.

그런데도 강모는 강태에게 깍듯이 형님에 대한 예우를 다하였다. 그만큼 강태

를 어려워한 점도 있었고, 또 성격상의 차이로 그다지 친숙하게 지내지 않는 탓

도 있었다.

강자와 약자. 과연 무엇이 강자이고 무엇이 약자인가? 간단해. 힘을 가진 자

는 강하고, 힘이 없는 자는 약하다. ? 그렇다면 힘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인품도, 체력도,학문도, 가문도, 힘이 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구체적으로

사회적인 힘을 발휘할수 있는 것은 결국 자본이야. 그것은 분명하고 강력해.

본이 있는 자는 강하다.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자는 약하지. 있는 자와 없는 자,

이 적대적인 위치의 두 계급은 필연적으로 반목하고 갈등한다. 이 갈등은, 있으

면서 좀더 착취하려는 자의 폭력과, 없으면서 어떻게든 생존해 남으려는 자의

몸부림이 서로 부딪치는 데서 온단 말이야. 그것은 한 마디로 압제자와 피압제

자의 관계라고 할 수 있지.

그런 관계는 다른 형태로도 나타나, 자유인과 노예, 귀족과 평민, 봉건 영주와

농노, 장인과 직인, 이들은 역사 이래 서로 적대 관계에 있어서. 헌데 이들은 적

대 속에서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 외형적으로 꾸준히 그 관계를 유지해 왔거든.

그만큼 투쟁과 갈등의 역사도 긴 셈이지. 이들은 때로는 은밀히 암투로, 때로는

치열하게 끊임없이 싸워 왔으니까. 이 싸움이야말로 한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한 계급이 무참히 짓밟히거나 또는 두 계급 모두가 비참하게 멸망하는 것

으로 끝나기도 했다.“

강태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의 다문 입귀가 칼끝 같다.

강모는 강태의 모습에 이상하게 기가 질리는 기분이 되었다.

너는 궁도령으로, 하층민 계급이 아니니까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쪽 이야기

가 한낱 피상적인 이야깃거리 정도로 들리겠지. 그렇지만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고 누리기 위한 조건들, 또는 기본적인 아무 권리도 가지지 못한 채 오직 제

몽뚱이 사지를 움직이는 것만이 유일한 재산인 노동자, 농민, 그 빈곤한 하층민

계급이, 사실은 인류의 대부분이야.

즉 약육당하는 계급이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집안만 보더라도 문중의 종가

인 큰집 하나를 빼고 나면 나머지는 거의가 곤궁해. 다 떨어진 문서 쪽지에 양

반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다만.

그래도 문중 사람들은 가문과 학식이 있으니까 기본적인 긍지와 생활은 보장

돼 있다. 그러나 도래도래 그 몇 집을 빼고 난 인근 주민, 소작인, 하인, 노비,

멍굴, 사람들, 그 외에도 엄청난 착취에 시달리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한 사

람들을 직접 네 눈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 논이나 밭이나 혹은 다른 자본의 아

무런 생산 수단을 가지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노동력만을 생존 수단으로 가진

이 사람들의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단 말이다. 그것은 이미 착취당하기

로 사회와 약조된 것이나 마찬가지거든.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하는 말

도 있다만, 그 하찮은 언덕 하나가 없어서 순수하게 자신의 손발만으로 살아가

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신분이 결정되는 거야.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분이란 자신의 사회적 위치, 그 위치에 따르는 권리를 말

하지. 신분이 자기 일생을 결정하고 만다.“

가을 들면서부터 시작해서 초겨울이 되도록 분주한 집 안팎의 일로 이기채가

사랑을 비운 사이에 도망치듯 빠져나온 강모였다. 그의 얼굴은 여름보다 더 말

할 것도 없이 상해 있었고, 목소리조차 버슬거렸다. 그는 말이 없다.

강태의 눈빛이 강모의 모습을 쏘아본다.

, 삶의 구체적인 상황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천성이나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바둑판같이 미리 짜여진 사회적 현실이라는 점을 어떻게 생각허

? 누백 년 누천 년 세월과 문화가 켜켜이 쌓여 요지 부동의 전통으로, 혹은

물 밑바닥 같은 잠재 무의식 전통으로, 견고하게 판짜기 돼 있는 사회적 현실,

말하자면 신분 세습이나 그 세습이 만든 계급은 낱낱의 개인을 인정하지 않아.

무리에 속하는 것이다. 그 무리는 모두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아니, ‘있지

라기보다 있어야한다. 그것은 엄격한 규범이니까. 눈다르고 코 다른 개개의

사람들이 규범의 강제 명령으로 모두 판에 박은 의식을 가져야만 한단 말이다.

물론 상당한 권리와 신분을 보장받고 태어난 너로서, 아무런 갈등이나 고민

없이 이 말을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허나 자기가 원하는 것과는 별도로, 사회

로부터 강요받게 되는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너도 알아야 한다. 그 개인이

아무리 특출해도, 또 남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을 내면에 가지고 있어도, 서자나

얼자, 노비, 상민들은 양반 상전에 대해서 무조건 피압박적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부당한 일이지. 봉건 신분 제도에서, 또 근대에 이르러, 그것은 좀더 다른

양상의 갈등을 야기시키는데 그게 바로 자본가와 무산자의 갈등인 게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것은 예전의 신분 계급보다 더 치열하고 지독한 압제와 피

압제의 관계로 부딪치기 마련이지. 있는 자는 있는 만큼 누리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도 빼앗기고 말 테니까.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아흔아홉 섬 쌀을 가진 사람이 한 섬 쌀을 가진 사람

한테 내 쌀을 백 가마로 채우게 너의 한 가마를 달라고 한다지 않았느냐. 아흔

아홉 가마 가진 눈에는 그까짓 한 가마 있으나 없으나 별 거 아닐 것 같고,

왕에 없는 형편, 그 한 가마 없으나 있으나 별차이 없어 보이는 게지. 자신의 숫

자를 채우기 위해 남의 전부를 빼앗으면서도 명분이 있는 사람들. 이것이 자본

가다. 구십구분지 일과 백분지 백의 비중이 가늠되지 않는 편견, 이것이 자본가

의 의식이야. 그러니 빈곤한 한 가마가 전 재산인 무산자는 필사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 필연적인 갈등 관계는, 이제 두고 봐라만 갈등으로 끝나지 않고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며, 투쟁은 곧 혁명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혁명인 이론이 아니라 유

혈이다. 자기의 존재에 대하여, 그 무엇의 영향이나 압제를 받지 않고 오직 자기

가 책임을 지며, 자기가 제 존재를 스스로 성장 발전시켜 인생을 이루어갈 수

있는 사회야말로 바람직 하지 않겠어?

그러나 부당하게 가진 자가 있는 한, 그런 사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불가능한

거야. 거기다가 가진 자나 자본 계급은 결단코 저절로 멸망하지도 않지. 또 자본

계급과 무산 대중이 평화스럽게 타협할 수는 더더구나 없는 일이다. 결국 먹느

냐 먹히느냐라는 사생결단의 피투성이 싸움이 있을 뿐이다. 이 두 계급에 싸움

이 벌어진다고 할 때 너는 어느 편이냐, 그리고 나는 어느 편이냐.“

강태는 다시 청주 잔을 든다.

초겨울 저녁의 스산한 바람 소리가 어디서 들릴 것만 같다.

그것은 강모의 몸 빈 곳에서 일고 있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한 겹 창호지로 막힌 장지문 바깥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리

, 자리를 끝낸 사람들이 일어서서 돌아가는 구두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다.

어이, 여기 술 가져와.”

바로 옆방에서 손바닥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예에, .”

젊은 여자가 호기롭고 다급하게 대답하며 게다를 따그락 따그락 끌고 주방 쪽

으로 가는 모양이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옆방에 한 패가 와글와글 떠들더니.

까르륵, 여자도 섞인 웃음 소리가 터진다. 젊은 웃음 소리가 간드러진다.

강태가 눈살을 찌푸린다. 강모는 그 웃음 소리에 착잡한 심정을 금하지 못한

. 바람이 이는 공중에, 연기 같은 흐릿한 기운을 몰고오는 풍연처럼 그의 가슴

에 자욱한 먼지가 일어난다. 그것은 취기일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강모는,

벌써 반은 취한 것 같았다. 이야기는 주로 강태 혼자서 하고 강모는 잔을 비우

고만 있었으니, 취할 만한 때가 되기도 하였다.

형님, 술 좀 더 허십시다.”

강모는 강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깥을 향하여 손뼉을 쳤다. 잠시 후에

젊은 여자가 쟁반에 도꾸리를 받쳐들고 들어와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앉더니,

상 위에 놓인 빈 도꾸리를 쟁반에 담아 가지고 뒷걸음을 치며 조용히 나간다.

기모노의 깃섶이 가슴 깊이까지 패어 있어 흰살이 드러나 보이는 여자다.

고사정의 망월. 모찌즈끼.

전에 오유끼가 있던 일본 요릿집이다.

강태는 금방 놓고 간 새 도꾸리에서 술을 따랐다.

지난번에 쇠여울네가 큰집에 가서 부린 행패만 해도 다 그런 싸움인 셈이

. 지금은 그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지만, 이제, ,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무서운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말하자면 혁명 말씀입니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야. 역사의 본능 같은 것이기도 하고.”

나 같은 사람은 구경하다가 말려들어 죽을 겁니다.”

말투에 빈정거림이 역력하다.

기생첩을 끼고 헛눈이나 팔자면 그럴 수도 있겠지.”

강모의 얼굴이 순간 벌개졌다가 가라앉는다.

사람 사는 것이 백양백태라, , 무어라고 말할 처지는 못되지만 너도 참 딱

한 사람이다. 그래, 젊으나 젊은 청춘에 벌써 그렇게 곰삭어서, 한평생의 경영으

로 기생이나 데리고 살다 말 것이냐? 그래도 소위 장부라면 무슨 뜻을 세워야

할 게 아니냐고...뜻을.”

뜻이야 형님이 다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비루한 나야 이렇게 살다말지요,.”

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강태가 입맛을 쩍 다신다. 못마땅한 기색이다.

긴 말 할 것도 없어. 이제 나이 겨우 스물한 살에 네 모습이 그게 뭐냐?

사에 우유부단, 꿈꾸는 사람처럼 몽롱한 얼굴로 그냥 오직 자신을 소비하면서

살다니 그게 말이 돼? 무슨 각오도, 결심도, 야망도 없이, 그렇게 살고 있어?

신을 차려라, 정신을. 앞으로도 오십 년은 더 살아야 할 사람이, 지금부터 이래

가지고서야 무슨 힘으로 그 세월을 버티고 살 수가 있단 말이냐.”

형님...형님은 그렇게 오래 사실 생각입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혁명을 하실 분이 어떻게 오십 년씩이나 무사하게 목숨을 보존할 수가 있단

말이요?”

허 참, 그래서?”

그러고, 혁명 투사 아니라도, 우리 이씨 문중 사람들, 장수한 사람 없습니다.

명해요. 가운이 그러한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가 더 드세고 질긴 집안이올시다.

둘러보세요. 장년을 넘기고 칠팔십까지 장수하신 분, 눈에 띄는가. 어쩌다 남보다

는 좀더 길게 사신 분도 계시지만, 그런 어른들은 또 처덕이 박하여 삼취 사취

를 하셨어요. 나는 예감이 있어요. 오래 살 힘도 없지만, 살 수도 없을 겝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점점 이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지금?”

두고 보면 알 일이지요.”

강모의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전등 불빛이 만들어 준 그의 앉은 그림자가 쇠잔하게 보인다.

그럼 단명할 것을 미리 예감하고 기왕에 일찍 죽을 것, 부질없이 날치는 내

가 한심해 보인다. 그거냐?”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요.”

강태의 눈꼬리가 치켜진다. 그리고 쩟, 혀를 찬다.

형님, 아까 착취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인간은 반드시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면에서만 착취당하는 건 아닐 겝니다.”

강모는 아까보다 좀더 취하였다.

그의 가슴속에 보통 때는 그저 막막하고 어수선하던 것들, 형태를 알수 없이

짓눌리는 것 같던 것들이 취하기 시작하면서 확연하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는

, 강모는 그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다시 잔을 들어 비웠다.

허전함이 야기처럼 가슴을 쓸며 젖어내린다.

그리고 술이 지나가는 자리에 텅 빈 길이 뚫린다. 밤길이다. 음습한 동굴 속

같기도 하다. 그 어둡고 캄캄한 곳에, 홀로 후줄근히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

인다.

그 모습을 지우기라도 하려는 듯, 그는 술잔을 비운다.

허전한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남자가 흥건하게 젖는다.

형님, 사회 구조 속에만 계급이 생기고, 적대감이 생기고, 무능력한 노동자,

농민이 생기는 것은 아니올시다. 자기의 존재 단위를 깨닫지 못하고, 그 존재 단

위를 생산으로 확산시키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그 자는 바로 의식의 무산

자 아니요?”

강모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진다.

나는 가난한 자요.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짓눌렸으니 나야

말로 피지배 계급이 아닙니까? 아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짓눌린 채 어쩔 수 없

이 이 세상으로 밀려나온 건지도 모르지요. 할머니의 한 맺힌 기대, 아버지의 엄

격한 틀에 박힌 기대, 어머니의 눈치 섞인 기대, 가문의 무거운 기대, 종손에 대

한 허울뿐인 기대...안사람...그 태산 같은 사람의 기대...거기다가 인제는 터무니

없게 생겨난 자식까지도, 나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형님,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이 몸뚱이 하나에 빈 손바닥뿐인데, 나는 내 몸뚱이 하나에 빈 손바

닥뿐인데, 나는 내 몸뚱이를 착취당하고 있는 거요. 이건 이름만 내 몸뚱이지 사

실은 내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따로 있어요. 하나 둘이 아니라 줄줄이, 주인들

이 성벽처럼 에워싸고 있단 말입니다. 모두가 나한테 주는 척하지만 오히려 빼

앗으려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나는 내 몫이라고는 가져 본 일이 없었소. 도대체가

내 생각조차도, 나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거요.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그

들의 공유물이었습니다. 형님. 그 지배 계급에 대해서 이 착취당하는 무산 계급,

없는 자가 할 일이란, 뭐라고요? 혁명? 하여튼지 간에, 혁명....이라고 하셨지요?

그게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도대체. , 그 혁명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져 버리고 싶어요. 형님. 나는 산화해 버리고 싶다고요. 붉은 심장을 허공 중에

꽃잎처럼 찢어 날리면서 피투성이가 되어 나는 죽어가고 싶습니다. 형님. 형님은

좋으시겠소. 사상이 있고, 야망이 있고, 행동이 있으니, 빛나는 보람도 있을 게

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잃은 것이 아니라 가져 본일도 없어요.

있는 둥 마는 둥 실없는 인생을 한번 뒤집어 보고 싶은 심정을, 형님, 아실 수

있겠습니까? 형님...나는 힘 가진 사람이 무섭습니다. 두려워요. 이목구비가 또렷

또렷, 튀어나올 것 같은 사람, 나는 겁납니다.“

강모는 상당히 취해 있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장황한 말을 쏟아 놓는 그의

모습이 불안하게 보인다.

강모, 취했구나.”

강태가 잔을 들며 강모를 본다.

, 취했습니다. 오늘 술 좀 마셔야겠습니다. 형님, 나도 한번 취해 봅시다.

나는 지금 무엇에든지 흠방 빠져서 물에 빠진 새앙쥐같이 되고 싶습니다. 익사

라도 하고 싶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왜 나는 취해지지 않습니

? 그건 왜 그래요? 나는 구경꾼. 나는 내 운명에서도 구경꾼 노릇밖에는 못하

고 죽을 거요.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요.”

아니, 이 사람이 정말로 취했구만. , 그만 마시고 일어나자. 늦었어. 나는

또 갈 곳이 있다.”

아직 멀었는데 뭘 서두르십니까? 그렇게 서두리지 않아도, 인간이 함께 있

는 시간이란 찰나에 불과한 것인데, 오늘 내가 좀 마시면 안되겠습니까?”

주정을 하려는 것이냐?”

아니요. 아닙니다.”

강모는 술상 위에 팔꿈치를 괴고 물끄러미 도꾸리를 바라본다.

그럼, 내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디 네 말 좀 들어 보자.”

사실 난 할 말도 없습니다. 언제나 그랬어요. 나는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이상하구나.”

그러나 어쨋든 이대로는 안되겠습니다. 더는 못 견디겠단 말씀이오. 나는 살

아 있는 사람이 아니올시다.”

그래서?”

혁명, 나도 그 혁명이라는 걸 좀 하게 해 주십시오, 형님. 유혈이면 더욱 좋

습니다.”

이 사람이. 혁명이 무슨 몽상적인 연애시라고 생각하는 모양인가?”

그렇다면 형님, 당신은 실속도 없이, 허울 좋은 이론만 밝은 이론가올시다.”

강태의 눈에 모가 선다.

몽상...그래요. 나는, 나의 인생을 다만 몽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허나 뒤집

어 보면 누구의 인생인들 몽상이 아니리요...혁명이라는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곧 커다란 몽상일 겝니다.”

너는 어쩔 수 없는 부르조아야.”

부르조아? 그럼 형님은 진정한 프롤레타리압니까?”

그만 마셔라. 일어서자.”

형님, 당신도 부르조압니다. 반대로 나도 프롤레타리압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형님은 도대체 그 혁명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고자 합니까? 진정으로 이 사

회에 변혁같은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겁니까? 혁명을 하고, 사유 재산

을 폐지하고, 모든 생산 수단을 사회화하고, 그래서 진짜 평등 사회를 과연 실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마 그것은 명분에 불과할 것입니다. 내 생각은 이래요,

형님 말씀대로 인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강자와 약자의 꾸준한 갈등

과 투쟁 속에서 역삭를 이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강자의 권력과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약자의 설움과 분노는 그만큼 큰 것이

지요. 그들의 분노와 설움이 드디어 포화 상태에 이르러, 폭동이든 반란이든 간

에 이름이야 무어라고 붙여도 좋지만, 하여튼 변혁을 일으킨단 말이요. 형님 말

씀마따나 혁명을. 그래서 강자가 무너지고 약자가 세력을 잡는 수도 있겠지요.

허나, 민중은 대다수이니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일선에서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대표자를 뽑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 대표자는 새로운

강자 집단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복수심에 가득 차서 훨씬 더 잔혹하게, 언젠가

자신이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민중의 무서운 잠재 세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조직적인 말살까지를 곁들여서... 종이 채를 잡으면 형문부터 한다

지 않아요? 종이 종한데 상전 노릇하는 것은 더 무섭지요. 형님의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약한 자들이 형성한 권력, 이들은 또

다른 계급을 형성할 게 아닙니까? 이미 그들은 어제의 약한 자가 아니라, 이제

는 권력을 가진 집단으로 강자가 되었으니, 그들에게 탄압당하는 계급이 반드시

상대적으로 생겨날 것이고.

말하자면,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게 그것 아닙니까, 형님의 내심에는 이름만

바꾼 독재자적인 교묘한 야심이 숨어 있단 말씀입니다.“

강태는 사기처럼 차갑고 단단한, 창백한 얼굴에 푸른 빛을 띠면 강모를 쏘아

본다. 입귀가 아까처럼 칼끝 같아진다. 상 위에 놓인 술잔을 잡은 손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연, 진정한 평등 사회가 이 땅 위에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영원한 이

상에 불과합니다. 하찮은 미물 곤충도 강한 놈은 약한 놈을 잡아먹습니다. 물론

사력을 다하여 강적과 싸워 내는 놈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은 그 한순간에

불과한 것, 한 번은 이기겠지만 돌아서면 다른 놈한테 결국 잡혀먹힙니다. 하다

못해 잡초, 들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그렇지요. 번식력이 강하고 뿌리가 억센 놈

은 생명력이 약한 풀뿌리를 죽게 합니다. 약한놈이 살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

디에도 없습니다. 자연이고 인간 사회고, 약한 놈은 학대받아야 합니다. 학대받

고 일찍이 죽어야 한다고요...곤충, 미물, 잡초의 생리마저도 이러한데, 하물며 인

간에 이르러 무슨 말을 더 합니까?”

그렇지 않다.”

강태가 단호하게 말허리를 잘랐다.

어서 일어서자고 하던 때와는 달리 그는 차갑게 말꼬리를 내린다. 그의 말꼬

리에 묻은 찬 기운이 시리다.

너는 혁명의 아름다움을 아느냐?”

강태는 바늘 같은 눈빛으로 묻는다.

반대로 강모의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퍼져 오른다.

그는 지금 알 수 없는 열기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꿈꾸고 있는 세계는 나를 설레게 한다. 그것은 과거의 모반같은 것이

아니지. 지난날의 반란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가 달성한 것, 말하자면 옛

권력층에 대한 새로운 권력층을 형성한 것이었어. 허나, 오늘날 우리의 혁명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대다수를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명제이다.”

과연 거기서 형님의 역할은 무업니까? 지도자를 따르는 민중입니까? 민중을

지도하는 지도잡니까?”

나는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

거 보십시오. 벌써 형님은 하나의 계급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혁명을 목

표한다는 형님의 이론에서도 민중과 지도자라는 구분이 생길수밖에 없지 않습니

?”

그것은 명칭이고 역할일 뿐이지. 우리는 모두 동지야.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

로 자신을 해방하고 전 민중을 해방한다. 그 해방을 통해서만, 인류 사회는 비로

소 착취 없는 역사를 시작하게 되는 거다.”

착취, 착취, 도대체 착취가 아닌 관계도 있을 게 아닙니까? 이 세상이 그렇

게 극단적인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집안의 할머니도 착취자란 말씀인가요?”

그렇지.”

뭐어요? 형님. 그런 말씀이 어디 있어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신단 말입니까?”

물론이다.”

아닙니다, 형님.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할머니도 처음에는 빈손이셨습니

. 당신혼자 힘으로 그 재산을 이루신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는 훨씬 지독한 착취를 하신 거다. 교묘한 방법으로, 전혀 눈

치채이지 않게, 한쪽으로는 덕을 베푸는 척하면서, 소작인으로부터 빨아들일 수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의 재산까지라도 흘리지 않고 악착같이 빨아들인 거지.”

아니, 형님. 진정으로 하는 말씀이시오?”

봐라, 강모야, 물물 교환이라는 직접적 교환 방식으로 살아왔던 원시 시절에

, 필요한 물건과 물건을 바꾸는데 거기에 이윤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 교환

방식은 정직하고 평등한 관계였지. 거기서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보다 이익

을 보는 일이란 없다. 물론 손해를 보지도 않는다. 동등하게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바꾸어 가졌어.

그런데 말이야. 자본주의적 본질은 그게 아니야. 돈에서부터 시작하여 돈을 얻

게 되는데, 처음에 가졌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갖는 것으로 거래는 끝나지.

사람이 교환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가지지 않았던 것을 획득하게 된단 말인가?

적어도 어떻게, 처음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이 획득할 수 있게 되는가?

이상하지 않으냐, 도깨비놀음도 아니고, 너 그 이윤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

? 요술인가? 환각인가. 아니야. 결국 자본가에게 노동자가 자기의 몫을 터무니

없이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주어야 할 몫을,

돈을 빼앗고 있는 것이지.

노동자나 농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가 되겠지만, 이 사람들은 오직 노동력 하

나가 전 재산인 사람들이야. 그런데 이 노동력이 자본가의 자본, 즉 임금과 정당

한 물물 교환이 안되고 있는거다. 노동자는 자기 생존을 위해서 일한 노동력

전부에 대하여 원시 사회의 물물 교환처럼 올바르게 보상받는 것이 아니고,

로지 몇 시간 몫어치만을 임금으로 받고 만다. 나머지의 노동 시간은 보상받지

못해, 그러니까 그 나머지 잉여 노동 가치는, 모두 기업가나 자본가, 혹은 지주

가 갖게 되는 거지. 말하자면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극히 일부분만을 값으로 받

는 셈인데, 자신의 나머지 노동, 거의 대부분의 노동은 고용주가 차지하게 될 잉

여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서 바치는 것이다. 할머니와 소작인의 관계도 마찬가지

였어.“

강모는 그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큰일날 말씀입니다.”

아니다. 할머니가 생전에 이루신 엄청난 재산이라는 것이, 뒤집어 말하면 소

작인들에게서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고 그악스레 긁어 모았다는 증명밖에 더 되

겠어? 정당한 물물 교환으로 할머니와 소작인이 서로 평등하게 이익을 나누었다

, 도저히 그런 재산을 모을수가 없는 일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으냐? 그 양반은, 지주로서의 특권과 횡포를 최대한으로 누리신 분이라고 할

수 있지.”

형님은 그렇게도 할머니를 증오하십니까?”

강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쥐고만 있던 술잔을 들어 한 모금에 마

셨다. 뒤로 젖힌 그의 턱과 목으로 흐르는 선이 날카롭다.

봄에 꾸어 먹은 곡식을 가을에 이자 붙여 갚는 환자야, 나라에서도 다 행하

는 상례법이었습니다. 없는 사람이 긴요히 쓸 때 빌려주고 나중에 가을 걷어 받

는 것이 무어 잘못입니까? 전고에 조선의 숙종 임금 6, 남원부사로 부임한 조

위유는 백성들이 여러 가지 역사에 시달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갖은 애

를 다 써서 처음으로 보민청이라는 기관을 세우고, 말 오십 필을 준비 했다고

합니다. 모든 관용 물자 수송에 이용하려는 것이었지요. 말 그대로 백성이 괴로

움을 덜어 주고 도와 주는 곳이라, 이것이 생긴 후로 백성들은 무거운 짐을 등

에 지고 먼 곳까지 나르는 노역이 없어져, 조부사의 선정을 높이 치하했다지 않

습니까?”

허나 이렇게 편리한 기관도 기본 재산이 없어, 이를 계속 유지 운영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조부사는 논 오십 마지기를 사들여서 보민청 기본 재산으로 삼고,

그 소작료나 이자 수입으로는 본청 운영을 했던 것입니다. 허나 세월이 갈수록

쓰임새가 늘어나 자금이 모자라니, 후에 영조 33년에 부임한 부사 이인석이 다

시 논 사십 마지기를 마련해서, 같은 방법으로 활용해 부족한 비용을 충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증식의 과정에서도 장리는 쓰인 방법이에요.”

강모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할머니 청암부인이 남도 아닌 종손자 강태

한테 이처럼 여지없이 매도당하는 것이, 마치 자기 탓이기나 한 것 같아, 그는

단호히 반론을 편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그 조부사가 세운 사객청만 보아도 증거는 분명합

니다.”

사객청은 손님 맞는 일을 치르는 관청이었다.

남원도호부는 직할 구역 48방 이외에 남원을 에워싸고 있는 1.1.9,

담양부와 순창군, 그리고 임실.무주.곡성.진안.용담.옥과.운봉.창평.장수의 아홉 개

현을 관할하여, 그 규모가 가히 호남의 웅도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 용성

관은 날마다 공무를 띠고 분주히 드나드는 높고 낮은 관원들을 접대하느라 북적

북적 붐비었으며, 끊임없이 찾아오는 내방객들 치다꺼리에 관수미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 산더미같이 밥을 해도 빈 숟가락 돌리기가 일쑤였다. 따라서 자연히

부성에서 밥술이나 먹고 사는 집의 신세를 자주 지게 되니,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보민청을 세운 조위유 부사는 궁리 끝에 백성들한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손님들을 전담하여 대접하는 사객청을 세웠던 것이다.

허나, 비용 없이 이런 일을 어떻게 꾸준히 행할 수 있겠습니까? 조부사는

백미 백 석을 사객청 기본 재산으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사객청에서는 이 쌀을

가지고, 춘궁기에 아쉬운 사람한테 빌려 주었다가 약간의 이식을 붙여서 가을에

는 거두어들였던 것입니다. 그 수입 가지고 모든 내객들 접대하는 비용을 했던

게지요. 이로 인해서 출장 관원들의 관폐와 민폐는 크게 덜어져 백성들이 환호

를 했다고 합니다. 나는 조부사의 운영 방법이 대단히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

. 그래서 남원부성 부민들이 조부사의 선정을 칭송하며, 길이 잊지 않으려고

송덕비를 아로새겨, 광한루 한복판에 우뚝 세워 놓은 것 아닙니까? 형님도 보셨

지요?”

영세불망.

할머님께서도 마찬가지시지요.

, 송덕비? 그것은 대체로 끔찍한 허위다. 너는 남원부사 조위유만 알고,

부군수 조병갑은 모르느냐? 탐관오리. 그는 고종 30년에 흉년이 들자 농민들한

테 강제로 세를 징수하는데, 부유한 농민들을 무참히 잡아들여 온갖 죄목을 씌

워서 이만여 냥 재물을 빼앗았으며, 태인현감을 지낸 제 아비의 송덕비를 세운

다고 백성의 피와 기름을 짜내 천여 냥 돈을 거두기도 했다. 만석보에 관한 일

이며 전봉준까지는 이야기를 끌고 갈 필요도 없어, 저 즐비한 똥막대기, 비석거

, 그것은 진부한 위선의 행렬이며 압제의 사열이다. 인민의 이름으로 세웠다는

그 송덕비에 적힌 노래, 그래, 덕을 노래한 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인민은 과연

몇이나 될까? 대개는 단 한 자도 읽지 못한다. 모른다. 눈끔쩍이 까막눈. 그렇다

면 과연 저 번쩍이는 비석은 누구 보라고 누가 세운 것인가. 우스운 일이지.

리는 이것부터 부셔야 한다.”

강태의 관자놀이에 푸른 힘줄이 뻗친다. 불빛을 받은 힘줄의 그림자가 꿈틀한

. 그러나 강모도 지지 않는다.

형님, 하나 물읍시다. 도대체, 더 좋으면 누구를 위해서, 더 나쁘면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나는 다만 혁명을 통해서 평등 사회를 이루고 싶을 뿐이야.”

형님, 그렇다면 혁명을 하십시오. 부디 찬란한 뜻을 이루어 주십시오. 그래

서 이상을 실현하세요. 그러나 이제 두고 보십시오. 당신들은 새로운 권력자들이

될 테니까. 옛날의 권력자들은 자기의 이름으로 자기 권력을 행사했지만, 형님,

이제 당신들은 민중의 이름으로 당신들의 권력을 행사하게 될 겁니다. 악순환이

에요. 그래서, 존재는 끝없는 갈등이올시다.”

강모의 얼굴이 슬프게 기울어졌다.

희미한 촉광의 전등 불빛이 강모의 검은 얼굴을 쓰다듬듯이 흘러내린다. 옆방

의 손님들이 와글와글 떠들면서 일어서는 소리가 들린다. 뒤따라서 젊은 여자들

의 아양스러운 인사말이 끈끈하게 묻어나는 것 같다. 목소리에서 부연 분냄새가

풍긴다. 누가 어떻게 하는지 몸을 꼬아 틀며 터뜨리는 웃음 소리가 터진다. 취한

남자의 호기로운 목소리가 곁들여지며 바깥은 더욱 어지러워진다.

형님, 이 세상은 꼭 그렇게, 압제자, 피압제자, 이런 것들로만 되어 있는 것

도 아니잖습니까? 중간 집단도 있습니다. 어느 쪽도 아닌...

중인 계급 말씀이요. 관리나 소시민들, 상인, 자영 농민들. 우리 집안에서만도

오류골 숙부님 같으신 분은 자본 지주도 아니고 농노도 아니올시다. 당신 인생을

말없이 살고 계신 어른 아닙니까? 욕심도 없고 획책도 없고...빼앗지도 않고,

앗기지도 않고...순리대로 나서 순리대로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사람 사는 모습

이 저마다 다른데, 어찌 그렇게 칼로 배어내듯이 이쪽 아니면 저쪽일 수가 있단

말이요...? 형님 속에도 가진 자로서의 근성이 있고, 내 속에도 터져 버리고 싶

, 무엇인가를 일으키고 싶은 억눌린 피가 고여 있습니다. 허나, 나는 어느 쪽

도 아니올시다. 구경꾼이에요. 나는 이렇게 한평생 기웃거리다가 죽을 겁니다.“

네가 그러고 있는 동안, 이빨이 칼날이 되도록 시퍼렇게 갈고 있는 놈도 있

다는 것을 염두에 두두록 해라.”

그게 누굽니까?”

춘복이.”

춘복이요? 거멍굴 농막에 사는...?”

그놈을 유심히 보아 두는 것이 좋을 게다. 무슨 일을 내도 단단히 낼 놈이

. 그놈이 일을 내게끔 세상은 변하고 있고.”

강태는 웬일인지 그 말을 하고 나서는 무섭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는.”

그러더니 그는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떠나려고 한다.”

“?”

떠나겠다. 아버지 체면으로 부청에 좀 다니기는 했다마는, 내가 이 청춘에 왜

놈들 공출 심부름으로 세월을 보낼 수가 있겠느냐.”

그럼, 부청 일은 정리를 하신 건가요?”

강태는 고개를 끄덕 했다.

곧 가십니까?”

.”

수천 숙부님도 허락을 하시고요?”

아버지는 모르고 계시지.”

그럼?”

그냥 가는 거다. 혼자 떠나는 거야. 아버지가 내게 바라는 것이 무언지 물론

나도 잘 알고 있어. 허나 아버지와 내 인생은 별개의 것이다. 사는 방식이 달라.

아버지는 협의원에 선출도 되시고 일본 시찰도 다녀오셨다. 그리고 면의 행정에

도 참여하시면서, 어쩌든지 당신 기반을 튼튼하게 구축하고 계시는 것을 내 잘

알지. 그 내막도 있다. 호별세 오 원 이상 납부자, 다액 납세자의 명단에 오른

것을 아버지는 대단히 기뻐하셨지. 이제는 됐다고까지 말씀하셨지만, 나는 아버

지가 어떻게 그렇게 다액 납세자가 되셨는지도 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가난했

었거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에는 어긋나겠지만그 양반은 한 마

디로 거간이지. 큰집 살림을 등에 업고, 큰집 사랑과 마름 사이를 오가며 한 가마

씩 남기기 시작한 거간 노릇을 이날까지 해온 거야. 날이 갈수록 규모를 늘려

가겠지. 아마 큰집 율촌 백부님께서도 다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손해 끼치지

않는 한도에서, 구전 주는 셈치고 눈감아 주셨을 게다.

그렇게 살아오신 아버지가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냐? 어쩔 수 없이 부청

말단 직원 노릇 좀 했다마는 이제는 내 뜻대로 살아 볼 것이다. 네 말마따나 투

사가 될 사내가 칠십 평생을 다 살 수 있을는지 그것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또 이씨 문중 남자들, 수 못한다면, 그피가 내겐들 흐르지 않겠느냐...오래오래 비

루한 행복에 빌붙어 사느니 피가 우는대로 살아 볼 생각이다.“

강태는 입을 다물었다.

순간적으로 강모의 머리 속에는 강태의 아내인 새터댁의 동그스름한 얼굴과

그의 아들 희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기표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의 눈빛

에 번쩍 날이 선다.

까닭없이 그를 대하면 경계심이 앞서고, 사갈처럼 소름이 일던 기표의 눈빛이

강모의 가슴에 와서 꽂혔다. 그리고, 느닷없이 귀청을 찢으며 터져 나오던 희재

의 울음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재작년 여름이었던가. 중문간 마당에서 흙으로 담을 두르고 놀면서 산더미를

쌓듯이 흙더미를 쌓아 올리던 희재의 작은 손.

아아따. 그만 우시요오. 이것이 참말로 곡석이고 참마로 황금이간디요오...이렁

거는 다 흙이요, 흐윽.

이께잇 노무 흙데미, 내가 산에 가서 바지게로 열 번이고 스무번이고 지어다

가 부서 디리께요. 천지에 쌔고 쌨는 거이 흙인디요. 이렁 거는 다 장난으로 집

짓고 노는 거이제 참말로 이거이 노적이고 살림살이 간디요오. 장난이제에.

이렁 거는 다 흙이요오, .

아아따아, 울지 마시요오.

새끼머슴 붙들이의 목소리도 들린다.

검은 지붕에 그물처럼 엉키어 있던 암키와 수키와의 골짜기와, 그 지붕에 서

리 틀고 앉아서 탐욕스러운 대가리를 공중으로 치켜 올린 용마루들이 우르르,

무너지며 강모를 덮어씌운다.

순간 머리가 깨지는 듯한 통증에 그는 소스라친다. 기왓장이 이마를 정통으로

때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왓장이 아니라 이기채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던

진 퇴침이었다.

그때 강모는 이기채가 던진 퇴침을 용케 피하였으나, 그것이 자기 귀밑을 스

치고 날아가 차탁자를 후려치던 것을 지우지 못하였다. 퇴침에 맞은 차탁자에서,

다기들이 와르르 쏟아지며 박살나던 소리는 쉽게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그 소리는 바이올린이 부서지며 지르던 비명과 흡사하였다.

아아, 나는 떠나고 싶었다. 음악을 공부하러 동경으로 가고 싶었다. 아니다.

이 그렇지 않았더라도 나는 다만 어디로든지 떠나고만 싶었다. 그런데 나는 무

엇에 눌리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말았던가.

그림자.

신혼의방, 일렁거리는 촛불빛을 받으며 현란한 꽃밭처럼 오색이 영롱하던 효

원의 화관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큰비녀와 도투락댕기를 드리운 그네의 그림자

가 벽에 비치어 커다랗게 드리워진 것을 보고 덜컥 겁이 났었지. 그때 먹은 겁

은 이상하게도 얼른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무서워졌어...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

겠다. 나는 혹시 그 사람한테서 할머니의 눈매에 서려 있던 서리를 본 것은 아

니었을까?

할머니의 서리. 그 허연 서리. 청암부인.

강모는 흐윽, 숨이 막힌다.

베개 밑 명주 수건에 싸여 있던 삼백 원이야말로 나의 발목을 비끄러맨 동아

줄이 아닌가. 할머니는 생전에 한번도 나를 꾸짖으신 일 없고, 매를 때리신 일이

없는데, 나는 왜 그렇게도 할머니가 어려웠던가. 들어오라 하면 들어가고, 나가

라 하면 나갔다. 오늘 밤은 좋은 밤이니 건넌방에서 자거라 하면 또 그렇게 했

. 나는 할머니한테 벗어날 수가 없다. 결국 이제는 마지막까지, 이렇게, 당신의

체온과 어둠을 한 뭉치 수건에 싸서 내게다가 덜컥, 안겨 놓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내 발목을 잡고 계신다.

나는 아무것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다.

강모는 주먹만한 얼굴로 고무락거리던 철재가 자신의 목을 휘감아 끌어안던

꿈속의 감촉이 다시 살아나, 자기도 모르게 목을 털어냈다.

언제 가십니까?”

며칠 후에 떠난다.”

떠난다면?”

봉천, 시칸방으로 갈 것 같다.”

거기 오래 머무르십니까?”

가 봐야지. 만날 사람이 있는데, 사정을 보아 함께 사회주의 사상을 공부해

볼 생각이다.”

사회주의...”

, 오늘은 그만 일어서자. 너무 늦었다. 나도 또 가다가 만날 사람도 있고

하니, 이만큼 마시고 갈리자.”

강태가 다다미 위에 벗어 놓았던 갈색 캡을 머리에 쓴다.

그러나 강모는 웬일인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술도 깨어 버려 머리 속에 찬바람이 스미는 것 같았다.

혹시 동경에 강호형도 합류 동행하십니까?”

우선은 아니지만, 내가 봉천으로 가는 것은 알고 있다. 연락은 늘 닿고 있으

니까. 편지도 하고 인편에도 소식을 전하고.”

형님, 정확하게 며칱날 가시는 겁니까?”

?”

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고 싶어서 그럽니다. 꼭 의논드릴 말씀도 있고요.”

그래...?”

연락을 주십시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지.”

강모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나요?”

계산대의 여자가 상냥하게 웃는다. 단풍잎보다 붉은 빛깔의 공단 기모노 바탕

에 오색이 찬란한 매화, 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주인여자이다.

계산.”

강모가 지갑을 꺼내자 먼저 밖으로 나간다.

뒤따라 나온 강모는 골목 어귀에 서서 잠시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늘에서는 너풀 너풀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눈이 내리고 있었을까.

길바닥이 희끗거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다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갓을

쓴 전등이 희미하게 골목을 비추고 불빛 아래 눈송이는 꽃잎처럼 하염없이 진

.

눈이 오시는구먼요.”

강모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채로 무심히 말한다. 그 무심한 말투 속에는 무엇

인가 성급함이 깃들어 있는 것도 같다. 그런 강모의 말에 강태는 대답이 없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어둠 속을 한참이나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윽고 강태는

몸을 돌리며

가자.”

하고 짤막하게 말했다.

, 가기 전에 너한테 들르지. 나는 지금 또 가 볼 곳이 있다. 그만 여기서

갈리자.”

그러지요. 꼭 들렀다 가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강태는 고개를 끄덕했다. 강태의 외투 어깨에 눈이 내려앉는다. 어깨에 내려앉

은 눈송이는 금방 스르르 녹으며 올 사이로 스며들어 버린다.

그럼.”

강태와 강모는 서로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며 골목 어귀에서 헤어졌다. 너풀

너풀 내리던 눈송이들은 점점 바람을 타고 흩날리면서 길바닥에 쌓인다. 첫눈치

고는 소담스럽게 내리는 것이다.

...봉천으로? 곧 떠난다...?

강모는 아까 강태가 하던 말들을 처음부터 되뇌어 본다.

눈은 어두운 하늘에서 적막하게 춤을 춘다.

활 흥 훨 후어리.

눈발은 내리다가 날아오르고 아득한 곳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어느 날의 꿈 속에서처럼, 매안의 넓은 들픈 끝없는 매화낙지에 살구꽃이 지

듯 그렇게 눈꽃은 지고 있다. 눈꽃 속에 한 얼굴이 떴다가 진다. 강모의 가슴으

로 날아 떨어지는 그 얼굴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녹아 버린다. 행여 그 이름이

새겨질세라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지른다. 그 손자욱에 눈이 내린다.

강모는, 그 얼굴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돌아서 버린다.

그러나 돌아서도 등뒤에 그림자 지고, 바라보면 살구꽃잎처럼 흩어져 버리는 사람.

강모는 차라리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눈을 맞는다.

눈발은 점점 굵어진다. 어느덧 길바닥에는 발자국이 날 만큼 눈이 쌓였다.

잎을 밟듯 눈을 밟는 강모의 발밑에는 검은 발자국이 웅덩이처럼 패인다. 그 발

자국의 어둠 위에 다시 흰 눈이 날아내려 어둠을 어루 만지며 녹는다.

강모가 다가정의 골목 어귀까지 왔을 때는 이미 골목이나 지붕이나 동네까지

도 소복한 흰 눈을 머리 위에 덮고 있었다. 천지가 조용하다. 처마 밑의 네모진

창문들에서 주홍의 불빛이 아슴하게 비쳐나와 골목에 내리는 눈발을 물들이고

있다. 강모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건너편 관사의 개가 귀를 세우며 짖는 소리가

커겅, , , , 터져나온다. 뒤따라 몇 집에서 개가 짖는다.

강모는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외투와 머리에 덮인 눈을 털어 낸다. 어느

새 그의 어깨에는 눈이 무겁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대문을 막 두드리려는데 정

거장 쪽에서 상행 열차의 기적이 들려온다.

상행 열차.

이 시간에 지나가는 것은 북쪽으로 가는 기차다. 그 열차의 기적이 강모의 가

슴을 설레게 하면서 우렁 우렁, 흔들리게 한다.

오유끼.”

강모는 자기 자신이 급류에 휩쓸린 듯 갑자기 출렁거리는 것을 억제 하지 못하

,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린다.

그는 마치 자기 몸이 연처럼 둥실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하늘 아득한 곳에서 아득한 곳으로 날고 있는, 흰 점점의 눈발들은 형형색색

의 연으로 보인다.

웃죽지, 아랫죽지, 치마연, 수박등, 홍꼭지...청꼭지에 먹꼭지...세눈백이 네귀발

...채반연...나찰귀...장군연.

그 연들은 천공을 주름잡을 독수리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다.

거칠 것이 무엇인가.

맹렬함의 아름다움이라니.

칠을 먹여 윤태를 내고 매끄럽게 손질한 오동나무 연자새에서 실이 풀려 나간

. 사금파리 유리가루로 갬치를 먹인, 손을 베일 것 같은 기세의 명주실이 날카

롭게 빛을 반짝인다.

마침 적중하게 웃바람마저 불어 준다.

연은 천공에 요요하게 떠다니는 한 송이 꽃이었다.

그 꽃송이는 아스라한 하늘 저편으로 날아간다.

.

고려 말엽 최영 장군이 휘하 군사들에게 군령으로 연을 만들에 하여 그것에

기름을 먹인 다음, 일제히 불을 붙여 적진인 지자성에 날려 보냈다는 것이 바로

연 아닌가.

불을 당긴 연은 지자성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강모는 설움에 가까운 희열로 뜨겁게 떨고 있었다.

오유끼.”

그는 오유끼의 이름을 불렀다. 눈 내리는 빈 골목에 목소리가 울린다. 이윽고

마당에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린다.

평소와는 다르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선 강모는, 두려움에 미

리 질려 있는 듯한 그네에게 짤막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봉천으로 간다.”

오유끼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보랏빛이다.

나는 떠난다.”

강모는 그런 오유끼를 비스듬히 피하며 젖은 겉저고리의 안주머니에서 무엇인

가를 꺼내 오유끼의 손에 쥐어 주었다.

“?”

오유끼는 받은 것을 펴 보려고 하지도 않고 벌써 눈에 눈물이 돌아 고개를 떨

어뜨린다.

너는...”

그녀는 강모의 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앞으로 고꾸라지며 울음을 터뜨린다.

마치 예감이라도 했던 것처럼.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알 리가 없을 것이다만, 가지고 가거라.”

강모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끊어서 말하였다.

그는 자기의 품 속에 지니고 있던 할머니의 명주 수건을 오유끼에게 건네준

것이다.

어디로든지...가거라.”

그것은 오유끼한테 한 말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과도 같았다.

리고 명주 수건이 들어 있던 가슴이 헐렁하게 비어 버리는 그 공허에다가 대신

채워 넣는 말이기도 하였다.

빈 자리에 찬 바람이 일었다. 그것은 허전한 공간으로 변하였다. 가슴속에 겨

울의 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스미었다.

강모는 그곳에 연을 띄워 올린다. 하늘로 치솟는 연은 그의 가슴에 끝없는 동

경과 서글픈 연민을 느끼게 해 주었다. 솟구쳐 오르며 나는 그것은 비극적인 방

랑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방랑. 이 서글픈 유혹, 강모는 가슴의 복판에서 아득한 곳으로 날아오르는 연

을 팽팽하게 당기는 실의 날카로운 긴장에 아픔을 느낀다.

마치 살을 베어내 버릴 것 같은 서슬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살이 아니라 이름들이었다.

아마도 이 겨울의 문턱을 못 넘기고 말 것만 같은 할머니 청암부인의 얼굴,

그리고...차마 입 밖에 내어 말도 할 수 없으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사

, 강실이의 이름이었다.

내 어쩌다 너를 만났을꼬...그러고 너는 무엇 하러 나 같은 것을 만났단 말이

. 원수를 지어도 헤어질 수 없는 지극한 인연으로, 친동기 못지않게 태어났건

, 내가 어리석어서 인연 건사를 잘못하였다.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것도 잃지

않았을 것을. 내가 너를 애착하여 평생에 다시 못 볼 원을 너한테 남기고 말다

. , 일이 이리 되리글 원치 않았건만, 어찌하랴...아아, 어찌하랴.

강모는 무너지듯이 주저앉아 버린다.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아

득하다. 그의 발치에서 울고 있는 오유끼의 구부린 어깨를 그는 물끄러미 바라

본다.

울지 마라.”

내가 울게 한 사람이 너 하나만이 아니로다. 너는 차라리 내 보는 앞에서 마

음 놓고 울고나 있다마는, 돌아앉아 눈물로 세월을 메우는 이, 하나 둘이 아니

. 그 각기 손톱 티끌만치도 그릇되지 않았는데도 까닭없이 서러운 나날을 보

내고 있다.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르리. 오로지 못난 이 몸뚱이 하나로 인하여 부

챗살 모양으로 뻗친 설움이리라. 너와 관련된 사람이면 누구라도 한 많다. 그것

은 어인 연고일까. 서슬이 퍼런 할머니도, 대쪽 같은 아버지도, 그늘에 가려 사

는 어머니도, 태산 같은 안사람도...나를 아비라 부르는 어린 자식도...이제 너는

또 다른 주인을 만나 떠나가겠지만, 울고 있는 너 우유끼도...그리고...그리고...

실아.

내 어쩌다 이승의 길목에서 너를 만났던고. 어찌하여 너를 바라보기만 하지

않았던고. 진실의 허망함이 연기만도 못한 것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던고.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며, 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길 없는데, 하물

며 나를 에워싼 사람들이야 말하여 무엇하리. 안개를 잡으려고 허공을 움켜쥐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나를 살지 못하였으므로, 그 어느 누구에게 그 무

엇도 되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차라리 이름 없는 가문에 산지기 아들로 났더라

, 나뭇짐이나 등에 지고 새소리 벗하면서 다정하게 살았으련만.

그는 자신의 탄생부터가 하나의 망집이었던 것만 같아진다.

나는, 한 아낙의 자식이 아니라 할머니의 응어리가 낳은 헛된 이름에 불과했

. 애초부터 뼈 있고 살 있는 육신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으니.

허명.

그 헛되고 실속 없는 찬란한 명예를 등짐으로 지고, 살아 보기도 전에 허옇게

늙어 버린 자신의 모습이 사위어 떠오른다.

어쩌면, 내가 살아 있다고 하는 것도 한낱 저잣거리의 소문에 불과한것이지도

모른다. 허물 하나가 그림자처럼 떠도는, 나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 역시 어찌 어

리석은 미신이 아니리요.

그러 내가 한 여인을 취하여 작배하였으니, 유령을 지아비로 맞은 그네의 나

머지 생애가 어떻게 산 사람의 것이겠는가. 종잇장에 화상을 그려 붙여 놓으니

만도 못한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한 생애를 경영하려 하는 것이 어이 부질없는

일이 아니랴.

내 그 기상에 짓눌리어 감히 맞서 볼 굳건함을 지니지 못한 것이 두려웠으나,

이제 생각해 보니 당신이 만일 일세지웅을 만나 그의 배필이 되었더라면 여한없

이 한세상을 풍미하고도 남았을 것을. 앉은 자리에서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삭

아드는 청춘은 당신의 업인가, 나의 죄인가.

강모는 처음으로 효원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이제 여기서 떠나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돌아오지 않으리라.

고 속으로 다짐하며 바라보는 마지막 모습이라 그렇게 여겨지는 것일는지도 몰

랐다. 그리고 그것은 효원에 대한 연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육신은 떠나가 버렸

는데도 지울 수 없는 지문처럼 효원에게 남아 있을 강모의 허명에 대한 부채를

무겁게 느낀 탓인 것도 같았다.

허나, 허명도 이름이라면 당신에게는 그나마 그것이라도 주어졌지만...

강모는 눈을 내리감은 채 떠오르는 한 얼굴을 지우려 애쓴다.

밝은 등물 아래서는 희미하던 그 모습이 눈을 감으니 선연하게 드러난다.

성한 얼굴들 저 뒤쪽에 웅크린 듯 돌아설 듯 금방이라도 지워질 듯 보이는 얼굴

이었다.

강실아... 차라리 네가 죽어라. 네가 죽어서 나를 놓아다오. 네가 바람과 더불

어 흐레하였으니, 네가 낳는 세월 또한 한 자락의 부질없는 바람 아니겠느냐.

마음은 아무리 깊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살로 이루어진 몸은 한 번만

지나가도 자국이 패인다. 그 하찮은 자국 위에 서러운 빗물이 고이고, 고인 빗물

이 둠벙을 이룬다. 제 한 몸을 다 헐어서 메워도 메워지지 않는 둠벙은 늪이 되

, 한 사람의 한세상을 능히 삼키고 마는 수도 있거늘.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처럼 흔적 없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니었는

. 네가 눈 뜨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나 또한 언제까지나 진흙 바

닥에 빠져 헤어 나오지는 못하리라.

생각해 보면 그가 오유끼를 들어앉혀 함께 살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든지 패

어져 나간 자국을 메우려는 몸짓이 아니었던가 싶었다. 밤이면 밤마다 강실이를

무너뜨려 패인 자리에 흙을 들이붓듯이, 그는 오유끼를 향하여 무너졌던 것이다.

오유끼는 강실이를 대신하고 있었다고나 해야 할는지.

죽어라. 강실아...제발.

언제였던가.

오라버니 등 좀 잡어 줘라.”하던 오류골댁의 말끝에 소리도 없이 등롱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서던 강실이.

그때 강실이가 비추는 등롱의 불빛 때문에 강모의 그림자가 먼저 사립문을 나

섰었다.

가시지요.”

강실이는 강모 곁으로 다가서서 한참 만에야 거의 들리지도 않는 잦아드는 소

리로 그렇게 말했었다. 그네가 들고 서 있는 둥롱의 창호지 안쪽에서 붉은 불빛

이 은은하게 비쳐 나왔었다. 이상하게 그것은 불빛인데도 젖어 보였었다.

“...길이 어두워서...밤길이라...발밑을 잘 보고 가시어요.”

그때 그 강실이의 목소리가 지금도 이렇게 귀에 젖는다.

그네의 어깨가 금방이라도 손안에 잡힐 듯 하였었지.

초승달이 하늘 한 귀퉁이에 걸려 있었으련만 어둠을 비추기에는 너무나 가냘

펐던가. 찬 별빛만 몇 개 보였었다. 사립문간에 서서 올려다 본 겨울밤 하늘의

별빛들은 영롱하게 부서지며 찬바람에 씻기고 있었건만. 그때의 삭막한 밤하늘

, 쓰라리게 영롱하던 별빛은 꿈에 본 것이었던가 싶다.

아아, 강실아, 둥글고 이쁜 사람아, 네가 없다면...네가 없다면, 나의 심정이 연

두로 물들은들 어디에 쓰겠느냐.

어쩌면 강실이는 없는 것인지도 몰라. 목소리만 나를 젖게 하고, 옷자락 빛깔

만 나부끼면서, 강실이는 정말로는 없는 것인지도 몰라.

야기처럼 서늘하게 스며들어 고개를 흔들케 하던 그 생각은, 그후로도 오래

지워지지 않았었다.

나 갈라네.”

한 걸음을 떼며 목에서 밀어내듯 강모는 말했었다.

조심해서...”

대답 소리가 목에 잠긴 채 갈라졌지. 사립문간에 강실이를 남겨 두고 집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에 , 뒤에서 비춰 주는 등롱의 불빛이 걸려 긴그림자를 만들어

주었었다.

마치 그림자가 자기를 이끌고 가는것 같았었다.

그렇게 몇 걸음을 가다가 뒤돌아 보며

들어가아.”

하고 강모가 손을 들어 보였을 때, 그의 눈에는 등롱의 불빛만 어둠 속에서 주

황으로 번지고 있을 뿐, 강실이의 모습은 어둠에 먹히어 보이지 않았었다.

컴컴하게 솟아 있는 솟을대문에까지 와서 돌아보았을 때도 등롱은 그렇게 아

슴하게 비치고 있었다.

강모는, 보이지도 않겠지만, 강실이를 향하여 다시 한번 손을 흔들었다. 그러

면서 속으로...지금 강실이도 나한테 이렇게 손짓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하고 생

각하였었다.

자박 자박 자박.

오류골 숙부와 마주앉아 있을 때, 정지에서 헛간 쪽으로 가는 발짝 소리가 들

리었었다.

문풍지가 더르르 울리더니 등잔불이 흔들렸지, 바깥에 잔바람이 지나갔던가.

그러나 그 바짝 소리가 불꼬리를 밟는 것을, 강실이가 지나간 자리에서 일어난

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어 그렇게 불꽃이 흔들리는 것을, 역력히 나는 느끼었다.

그때 검은 그을음을 뱉으며 잦아들던 작은 불이파리가 지금인 듯 강모의 가슴

을 핥는다. 속살을 덴 강모는 가슴을 오그리며

아아, 강실아, 내 너를 어찌하랴.

그만 바람벽에 등을 부려 버리고 만다.

이제 강실이가 들고 있는 것은, 젖은 불빛이 아슴하던 등롱이 아니었다. 컴컴

한 어둠의 음습한 한기를 강모의 등뒤에 비춰 주고 있는 것이다. 그네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추운 어둠이었다.

나는 비겁하여 도망이라도 가지만, 너는 어찌할 것이냐.

그는 어깻죽지를 장작으로 후려치는 아픔에 소스라치던, 첫날밤의 꿈이 생생

하게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소름을 털어냈다.

한 번만이 아니라 정신 없이 내리치던 그 매는,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뭇

사람이 한꺼번에 때리는 몰매였다.

강모는 꿈 속에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덕석에 말어라.”

쉬어 갈라진 그 목소리리는 오류골 숙부의 것이 분명하였다.

이놈, 이 인륜 도덕이 무언지도 모르는 천하에 못된 놈, 이노옴.”

짐승 같은 놈, 네 이노옴.”

가문에 먹칠을 하고 상피붙은 네 놈이 그래 사람이란 말이냐.”

몰매가 쏟아지고 강모는 비명도 없이 매를 맞았다. 돌팔매가 정수리를 때렸다.

찢어지고 깨진 강모의 피투성이가 된 몸을 누가 뒤에서 순식간에 덕석으로 덮으

며 두르르 말아 버렸다.

허억.

강모는 숨이 막혀 두 손으로 덕석을 밀어내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그것이 꿈인 것을 알고는 비로소 긴 숨을 내뿜었었다.

그때 그의 등에 축축하게 배어나던 식은땀이 지금 새로 돋아, 그를 써늘하게

한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 생시로 돌아왔다만, 강실아, 너는 내가 꾼 꿈을 이제부터

살아야 할 것이니, 무슨 사람의 한평생이 남의 악몽을 대신 살아야 한단 말이냐.

멍에로다. 희롱이로다.

하늘 아래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란 없는 법. 이윽고 드러나게 될 상피의 죄가,

덕석말이, 몰매로만 끝나지 않고 파문에 이르리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강모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파문이라든지 그다음의 모욕과 형

, 또는 쫓겨난 처지의 유리표박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렇게 되는 지경은 처참할 것이 분명하되, 그가 바라는 자유와도 흡

사한 쾌감이 있을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아직 닥쳐오지 않은 일인지라 막연히

떠오르는 공상의 두려움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나는 사실에 부딪치는 그 순간이 무섭다.

그보다는 맨 처음으로 누군가와 맞닥뜨려 토설해야 하는, 이 얼굴을 무엇으로

도 가리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얼굴 앞에 정면으로 맞서서, 붉은 살을 있는 그

대로 드러내고 낱낱이 밝혀야 하는 그 참담한 순간을 생각하면, 그는 자지러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제 강모는 강태를 따라 낯선 곳으로 떠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태가 무슨 목적으로, 무슨 사상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러 가는지는, 물을 것도

없고 알 바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강태가 가는 길목만 따라가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경을

넘으면 거기서는 어떻게든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어쨌든 떠나기만 하면 된다.

매안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좋은 것이다. 어디든지 더 먼 곳으로, 세상

의 막바지까지라도.

그렇게 달아나 버리면 그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으로부터도 멀어질수 있을 것

만 같았다.

허나, 너를 어쩌랴. 내가 비겁하여 샛길로 피해 버린 자리에 오두마니 앉아서

혼자 뒤집어쓸 처참한 좌목과 혹독한 매를 너 혼자 어찌 당하리. 아아, 강실아,

차라리 죽어 버려라. 차라리 죽어서 놓여 나거라.

강모의 가슴에서 비늘처럼 푸른 빛을 번뜩이며 살의가 일었다.

그것은 날카롭게 강모를 사로잡아 저도 모르게 몸을 떨게 하였다.

어쩌면 그 생각은 지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맨 처음 강실이의 둥근 어깨를

보고 사무치던 순간부터 그의 가슴 밑바닥에 숨어 돋은 비밀의 대가리였는지도

모른다.

비단 그것은 강실이에 대한 살의만은 아니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뻗쳐 오

르는 증오로 종가의 용마루와 서까래, 대들보까지도 무너뜨려 버리고 싶었다.

은 기운이 서려 있는 것 같은 솟을대문도, 칼로 자른 것처럼 네 귀퉁이 반듯한

중마당, 안마당도, 거기 각 방마다 뿌리를 서리 틀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중허리

, 그는 마구 뒤흔들어 무너뜨려 버리고 싶었다.

귀밑을 스치고 날아가 차탁자를 후려치던 퇴침과, 퇴침에 맞아 쏟아지던 다기

들의 굉음이 귀를 때린다. 의침도 불끈 들어 내던진다.

쏟아지는 그 소리는 기왓장 무너지는 소리로 들린다. 강모는 진저리를 친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그의 몸뚱이조차 그속에 파묻혀, 산채로 매장되는 것을 절감

한다.

그는 짓눌린 숨통을 터뜨리듯 몸을 솟구친다.

비명을 지르고 싶다. 덕석에 말린 것처럼 숨이 막힌다.

그것을 대신하듯 오유끼가 울부짖으며 대들었다.

당신 마음은 허공에 있어요, 아무곳에도 붙들어 두지를 못해요. 처음부터 당

신은 내게 마음이 없없던 거예요. 그런데 왜 나를 데리고 자는 건가요? 내가.

잘것없는 가랑잎 같은 여자라서 그러시나요?”

오유끼는 울음에 체하여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당신은 남의 생각을 하나도 안해요. 모든 것에서 떠나려고만 하지요. 처음

에 나는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고마워했어요. 속으로...은혜를 입은 만큼 갚

아야 한다고 다짐을 했지요. 그렇지만 사람한테서 은혜를 입는 것은 그 사람의

노예가 되는 일인 것을...

결국 모찌즈끼의 주인은 나를 돈으로 사서 돈벌이에 이용했고, 당신은 나를

돈으로 사서 노리개로 이용했어요. 나는 조금도 나아진 게 없어요. 나는 당신한

테 팔려온 물건에 불과했던 거예요. 강아지 한 마리나 다름없어요. 아니, 그만도

못해. 정도 없이 데리고 살다니.“

그녀는 슬프게 울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반짇고리를 번쩍 쳐들어 장롱에 내다

붙이는 것이었다. 강모는 놀란 얼굴로 패어나간 장롱 귀퉁이를 바라보았다. 반짇

고리의 가위가 튀어 나와 찍은 자리이다.

허공에 떠 있는 강모의 마음을 붙들어매 두는 것이 겨우 장롱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어느 날부터인가 오유끼는 정신 없이 가구를 사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유

끼는 여염집 안방의 가구 집기를, 텅 빈 방의 한쪽에서부터 채워 넣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사람의 손때가 묻은 집안의 흉내를 내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늘 반짇고리를 가까이 두었다.

강모는 그녀가 사 달라고 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사 주었다.

돈을 구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강모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

그의 뒤에는 청암부인이 있었고, 이기채가 있었고, 들판 같은 논이 있었다. 이자

는 이자대로 복리로 쌓여갔다.

오유끼는 점점 살림과 가구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방안의 세간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강모의 마음은 점점 죄어들었다. 그리고

발목을 잡힌 자신의 모습에서 자기가 쳐놓은 덫에 스스로 걸려든 짐승을 보고,

그 어리석은 후회에 진저리가 났다.

방안은 날이 갈수록 효원의 건넌방을 닮아갔고, 청암부인의 큰방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는 탄식하며 한숨지었다.

그가 추구하던 것은 쾌락이 아니요 해방이었다.

그리고 욕망이 아니라 탈피였었다.

어찌하여 그것은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강모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일 때, 오유끼는 돌아누워 훌쩌이며 울었다. 강모

의 한숨은 골짜기의 어둠처럼 음습하였다.

그리고 오유끼는 조금씩 여위어갔다.

오유끼. 나를 붙잡으려 하지 마라. 나는 그저 허공에 불과하다. 내 처음부터 그

러지 않더냐. 너는 희롱의 죄를 묻지 않는 여자. 너를 위한 계산은 족할 만큼 해

주었건만, 너는 아직도 무엇이 모자라느냐.

당신은 나 때문에 빚을 지고, 나 때문에 파면되었어요. 내가 무엇이라고,

렇게도 진정으로 당신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시는가 싶어서, 나는...머리털을 베어

서 짚신을 삼어 드리리라고...나는.”

오유끼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흐느낀다.

이미 지나간 일. 내 지은 빚은 할머니가 이렇게, 몇 곱 이자 붙여서 평생에 갚

을 길도 없이 나한테 무겁게 짐지우셨다.

그런 명주 수건에 싸인 삼백 원은 지금 오유끼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런데 오유끼는 그것마저 내팽개치며 울고 있는 것이다.

따라가겠어요. 나는 노리개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사람끼리 만나서 정들고

헤어지는 것이 냇물에 발 씨는 것마냥 쉬운 줄 아셨단 말인가요? 천한 년 마음

속에 고인 정은, 구정물 한가지로 더러운 것인 줄 아시는가요...?”

강모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물끄러미 방안을 둘러본다. 아랫목에

는 솜과 짐승의 털, 그리고 보드랍게 자란 짚을 섞어 만든 탄탄한 보료가 깔려

있고, 보료 위에는 자를 수놓은 안석이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다. 문갑,

사방탁자 들도 모두 제자리에 서 있고 놓여 있었으며, 화각 삼층장, 피농, 의걸

이장, 반닫이, 자장궤, 갑게수리 들도 제각기 태깔을 내고 있다.

그것들은 붉은 바탕에 노랑과 파랑으로 아로새겨져 현란한 모란과 구름, 학을

무늬 놓고 있기도 하였으며, 가지가 우거진 노송에 백로가 한 쌍 앉아 있기도

하고, 매화나무와 대나무 그늘에도, 물결이 일고 있는 수초 사이에도 이름 노를

새들이 한 쌍씩 노닐고 있었다. 흑칠 바탕에 번쩍이는 자개의 모란당초문이 꽃

봉오리와 더불어 활짝 핀 꽃송이를 희롱하기도 한다.

그 색상은 영롱하기까지 하다.

이 가구와 집기들로만 보면 어느 한다 하는 대갓집의 안방과 견주어 조금도

뒤질 바가 없다. 오히려 턱없이 으리으리한 편이었다. 그것들은 등잔불 아닌 전

등의 주황빛을 받아 더욱 휘황하게 어우러져 있다.

다만 눈여겨 살펴본다면 사방탁자 아래칸에 놓여 있어야 할 함이 빠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함이란, 혼인 때 신랑 집에서 예물을 넣어 보내는 것으로,

각시가 신행 올 때 그대로 가지고 오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 함 속에

는 반드시 혼서지가 곱게 들어 있어 일생 동안 소중하게 간직되다가, 훗날, 부인

된 여인이 죽어 명부로 떠날때, 저승의 강물을 건너서 낯선 길 아득히 홀로 가

는 발에, 종이 신발로 만들어 신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안방의 세간살이에 이것이 빠져 버리면, 가구 집기가 아무리 호화로워

도 첩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강모는 냉수 한 대접을 청한다.

오유끼는 울다 말고 얼른 일어나 미닫이를 소리 없이 열고 나간다. 갑자기 그

의 전신에 끈적이는 피로와 컴컴한 공허가 엄습해 온다. 방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장롱과 문갑, 탁자 들이 거기에 뿌리라도 질기게 박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강모의 이뿌리가 저르르 저린다.

그것들은 마분지로 만들어 세워 놓은 울긋불긋한 각종이와도 같다. 그것은 숨

만 크게 쉬면 우르르 무너져 그를 덮어 버리고 말 것 같다.

마치 거미처럼 발닿는 곳마다 끈끈한 실을 뽑아 내리며 집을 짓는, 사람들의

애착이 그는 두려웠다.

나는 떠나리라. 비록 연이 하늘 높이 날더라도, 실 달린 연자새의 손아귀를 벗

어나지는 못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날아가리라. 이 줄을 어찌하든 끊어 버리고

말리라. 광활하고 외로운 저 불안한 하늘로, 나는 다만 벗어나니라.

그러나 강모의 머리 속에는 까마득한 하늘의 구름 너머로 날아오르던 연이,

, 줄이 끊어진 채 점으로 떠도는 모습이 떠오르며 어지러이 맴을 돈다.

그 끊어진 실은, 바로 자신의 넋을 잡아 맨 핏줄이었던 것이다.

 

 

3. 젖은 옷소매

 

청암부인은 혼곤한 잠에서 깨어난 듯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네의 발치

에 허연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인월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불쌍헌...사람...”

입 속으로 숨소리처럼 남긴 한 마디는 그대로 인월댁의 가슴에 얹혀, 인월댁

은 그만 어깨를 꺾으면서 거꾸러져 체읍을 참지 못하였다.

청암부인은 쓰다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 말게...나만 허면 한세상...자알 살다가 가는 것이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허시는가요. 오래 살으셔야지요...오래...오래...살으...”

오래 살었네.”

인제부터 좋은 세상도 보고 복록도 누리셔야지요. 아짐...아짐이 이렇게 허망

하게 가셔 버리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으라고요...”

좋은 세상은 지금까지 다 살어 버렸어...더 산대도 덧없는 일이지. 나는 다

살었네...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그저 한 세월 손님같이 살다 가는 과객인가

싶으데...그런 것을 모르고...이날까지 질기게도 살었어...인제는 목숨도 나를 풀어

주겄지...”

그날따라 집안도 조용하고, 청암부인도 쉬엄 쉬엄 숨이 차서 몹시 힘들어 하

며 말하는 것만이 다를 뿐, 정신이 맑은 것 같았다.

그네의 목에서는 쉰 바람 소리가 적막하게 새어 나왔다.

 

한번 눈에 나거드면

독수공방 찬 자리에

뉘를 위지하잔 말고

죽은 사람 생각하면

꿈속에나 반기련만

생사람 불화하면

백년이 원수로다

 

일월댁은 속으로 괴똥에미전의 일절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쓴웃음을 머금는다.

아짐, 책함에다가 이고 지고 온, 내칙 수수십권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

...큰애기 시절부터 글씨 공부 삼아서 베끼고, 읽고, 이렇게 속절없이 쓸 곳

없는 것을 귀한 보물인 양 간직을 했지요. 아녀자한테는 보패 배단보다, 아름답

고 올바른 행실이 더 귀한 것이라고 부모님은 가르치시고, 필사한 책마다 씌워

있지만, 여고, 명감, 여사서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괴똥에미 탄식 할 줄

만도 못한 것을.”

그것도 업일세...자네가 무슨 허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기서 그사람 역마살

, 자네 한평생을 그르치게 한 셈이지.”

모진 세상은 이제 다 지나갔어요. 저도 인제는 나이 많이 먹어서 지나간 세

월이 꿈만 같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 인월댁은 신혼의 첫날밤에 자기를 버리고 가 버린 남편을 조금도 원망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네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기다리기 위하여 사는 사람처럼, 그네는 자고 새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속의 갈피 한쪽에 숨겨져 있던 그 기다림이, 마치 씨앗이

어둠 속에서 저절로 눈을 뜨듯 나와 자라기 시작하는 것을 그네는 느끼었다.

조금씩 조금씩 눈치를 보며 자리를 넓혀 가던 그것은, 이윽고 어느 날인가 도

저히 그네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성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미 그 무성한 줄기와 가지는 자신을, 우로와 햇빛으로부터 차단시켜

그늘이 지도록 가리웠던 것이다.

그네는 그늘 속에서 말라갔다.

햇살이 닿지 않는 그늘 밑은 음습하고 추웠다.

그것뿐이랴. 천지를 둘러보아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는 적막함은 또 어지할

것인가.

인월댁은 밤이고 낮이고 깨어 있었다.

어찌 잠든 날이 없었으리오마는 그네는 잠든 꿈속에서도, 오지 않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월이 몇 해나 지나갔을까.

그네는 자신이 헛된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핏속에 어느새 기다림은 질긴 병이 되어 걷잡을 수 없는 뿌리

를 내리고 있는 것을 알고 말았다.

아짐, 저는 이제 내생이 있다고 해도 사람으로는 안 날랍니다.”

그럼...무엇으로 날라는가...?”

“...아무것으로도 나지 않을랍니다. 그냥 이생에서 갚을 것 있으면 이 몸으로

다 갚어 버리고, 아무 인연도 짓지 말고, 원망도 남겨 두지 말고, 그저 소멸하여

없어지는 것이 소원입니다.”

“...소멸...이라...”

이 멸렬한 목숨에 그나마 꿈이 있다면 소멸하는 것이지요.”

나는 한평생 동안, 오직 이루어 보려는 욕심으로 살어왔었네.”

그러셨길래, 이만큼 큰일을 혼자 다 해놓으신 게 아닌가요...?”

청암부인은 인월댁의 말에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처음 시집와서의 정경이야, 청암아짐께서 저보다 더 나으셨을 리가 있겄습

니까. 사주에 천고를 타고난 것은 서로 같지마는, 아짐께서는 백대천손의 기틀을

잡으셨고, 저는 제 한 몸에 서린 업고에 시달리노라고 한세상의 세월을 보낸 것

이지요. 그게 참 이상하데요.

누워서도 그렇고, 깨어 앉어서도 그랬지요. 숨을 쉬면, 담 결리는 것마냥으로 힘

줄이 땡기면서 걸렸어요. 숨을 쉬다가도 뜨끔 놀라서 통증을 가라앉히느라고 한

참씩 그대로 있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잠을 잘 못자서 힘줄이 어긋났거나, 차게

자서 담이 결린 줄만 알었지요. 그런데 이것이 여러 해가 지나가도 풀리지도 않

었어요...풀리기는커녕, 점점 더 사지 끝머리까지 뻗어 나가면서 결리더구만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한숨을 제대로 못 쉰답니다.“

인월댁은 씁쓸하게 웃었다.

몸에 근이 뻗은 게로군.”

그러게나 말씀입니다. 사람의 사대육신이란 지수화풍, 곧 땅...바람의 네

가지로 이루어졌다 하였으니, 살이란 땅이 아니겄습니까. 자연, 근이 살 속에

심지를 박고 모질게 뻗어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다림의 근이었다.

실 같은 잔뿌리가 조금씩 굵어지고, 허리끈만 해지고, 동아줄같이 억세지고,

갈쿠리처럼 그네의 뼈를 움켜쥐는 증오와 원과 한의 근이었다.

기다림과 원한은 한 나무의 가지요 뿌리였던 것이다.

한 사람의 얼굴을 소망하여 우러르며 발돋움하고 내다보는 기다림의 가지가,

어두운 땅 속으로 뻗어 내리면 원한의 뿌리가 되었다.

습기찬 땅 속의 무참한 어둠 속으로 발을 내리는 그 증오의 시린 이빨, 그것

은 제 뼛속에 제 이빨을 박았다.

굼벵이나 와서 집을 짓고 웅크리고 잠드는 어둠, 햇빛이라고는 한 줌도 받아

보지 못한 젖은 자리, 아무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그 땅속에. 힘줄같이

뻗친 근은 결국 날카로운 이빨로 인월댁의 마디마디를 물어뜯었다.

그네는 그것이 결리어 숨을 쉴 쉬가 없었던 것이다.

아짐, 마음이 업인 모양입니다. 생각이 스치면 바로 그 순간에 업은 시작된

다더니, 내 마음이 지어낸 못된 집착이 저절로 뻗쳐서 제몸에다가 그물 같은 뿌

리를 친 것이지요.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고요. 하룻밤에는 이런 꿈을 꾸었답니

.”

그 꿈속에서도 인월댁은, 북향 뒷방의 베틀 아래 누워 있었다.

밤이었던가.

아니면 대낮이었는데도 그렇게 어둑어둑하였던가.

꿈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분명 칠흑 같은 어둠이 주위를 무겁게 두르고 있었는데 베틀은 희끄무레한 회

색으로 비쳐 보였다. 베를 짜다가 고다하여 그랬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누워 있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네는 축축한 기운을 느끼

며 그림자처럼 누워 있었다.

이곳은 굴 속인가...?

습기는 그네의 등에서 흙냄새를 눅눅하게 풍기며 젖어 올라왔다.

...땅 속인가?

순간 그네는, 와락 무서운 생각이 들고, 갑자기 천지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만 이곳에 묻혀 있구나, 싶어서 벌떡 일어나려고 하였다.

내가 죽지 않았는데 왜 나를 묻었을까...누가 나를 묻었단 말인가. 나는 왜 이

곳에 묻혀 있는가.

그네는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리며 고함을 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몸은 누운

채로 옴짝도 할 수가 없었다. 공포에 질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명부의 적막

이 흙더미처럼 무너졌다.

누가 좀 와 주시오...누가 좀...누가.

숨이 지질리어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그네의 눈앞에는 저만큼 웃목에 희미

한 베틀이 보였다.

내가 일어나서 저기까지만 좀 가면 되겠는데...베틀에 앉기만 하면. 그러면 살

수가 있겠는데.일어나기만...하면.

그네는 베틀이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속으로 그것한테 도움을 청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네

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은 돌덩이처럼 굳어 버렸는가, 몸이

땅에 붙은 채 손가락 하나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지의 어느 부분도 살아 있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죽었단 말인가?

그네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땀에 몸이 흥건하게 젖었다. 그리고 꿈속이

어서 그랬겠지만, 그 순간 자기의 온몸에서 허연 뿌리가 땅속으로 뻗어내리고

있는 것을 역력히 보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누워있는 그대로, 등뒤 쪽에서 허

옇게 잔가지를 늘이운 뿌리들은 땅 속으로 땅 속으로 질기게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소스라쳐 놀라 깼다.

그리고, 땀이 배어난 가슴을 쓸어 내렸다.

무슨 그런 몹쓸 꿈이 있었겠습니까...? 몸서리가 쳐지고, 그 다음에는 생시에

도 방바닥에 눕는 것이 두려웠지요.”

그 뒤로 인월댁은 더욱더 베틀에만 매달려 살았다.

그렇다고 억세게 일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이 그네의 할 일이었던 것처럼, 베틀에 앉아 베틀짜는 것이

또한 그네의 할 일이었을 뿐이라는 듯.

꿈속에서도, 내가 저 베틀에만 앉으면 살겠는데...하고 간절히 빌었던 생각이

나서요.그래서 더 그렇게 베를 짰지요. 북이 올 사이로 번개처럼 지나갈 때마다,

제 몸 속에 뻗어 나가던 뿌리를 잘라 내는 것 같았습니다...그것은 칼질이나 한

가지였어요. 어쩌든지 일구월심 그렇게만 빌었습니다. 잘라 내자. 잘라 내자.

도 한도 다 잘라 내자. 내 마음의 업의 근원이라, 이 마음속에서 뻗어 나가는 업

의 뿌리가 나를 사로잡고 있어서는 안된다. 산 채로 죽은 듯이 누워 있던 꿈속

생각이 한시도 저를 떠나지 않았지요...소멸...모든 마음의 뿌리를 잘라내고, 없애

, 없애면서, 드디어는 몸을 이루고 있던 사대까지도, 공중의 티끌마냥 흩어져

버리게 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렇게만 되다면, 저는 제 모진 목숨의

업을 다 갚고, 이 미망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 같었지요.”

자네...성불할 꿈을 꾸었네그려.”

청암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제 몸은 죽고 없는데, 마음이 지은 집착이 남어서, 원이 남고, 한이 남어서,

몸도 없는 이승의 천지를 배회하고 다닌다면, 그것이 무슨 좋은 일이겄습니까...

그저 제가 이승에 난 목숨의 섭리라면, 모든 것을 삭여 버리고,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요. 그렇게 소멸해 버려

야 내생에 다시 태어날 인연을 남기지 않게 되겄지요.”

똑같은 꿈을 내가 꾸었더라면, 나는 달리 생각했을 것이네. 나는...자네와는

정반대였는지도 모른지...자네는, 잘라 내고 없어지려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지

, 나는 뿌리를 내리려고 살아온 사람일세...무서운 집념으로, 더 질기게...더 깊

...자네는, 자네를 비우려고 베틀에 앉았지만...나는...나를 채우려고 땅을 샀네.

열아홉에 소복을 입고, 홀로 텅 빈 집에 신행을 오면서, 나는 많이 울었지...그때

청암양반은 열여섯 살이었어...곱고 애띤 신랑이었다네...강모애비가 사모관대를

쓰던 날도...강모가 사모관대를 쓰던 날도...나는 그 모습에서...어린 나이에 세상

을 떠나간 청암양반을 보았지...참 이상하리만큼 가운이 비색하였던 모양이라.

부께서 그렇게 어이없이 상처를 여러 번 하시고, 당신 자신 아드님을 성혼시키

시고는, 자부 폐백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돌아가시지 않었는가...그랬는데,

암양반도 우리 친가에서 사흘을 묵고는 매안으로 돌아간 다음 세상을 버렸어...

무슨 그런 운수가 있었던고...내가 고과살이 끼었던 게야.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되었겄는가...내 평생 내 마음에 사무치는 것은, 청암양반이 매안으로 돌아갈 때

의 뒷모습이었다네...자신이 그렇게 일찍 죽을 것을 미리 예감이라도 했었던가...

내일이 떠날 날이라면 오늘 밤, 나를 붙들고 그리 울었다네...마치 내가 누이라도

되는 것같이 안타깝게 울면서, 매안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야...반가의 도리

로 그리할 수가 있는 일인가...여러 말로 타이르고 어르고...그러다가 밤이 샜지.

이튿날 길을 떠나야 하는데...다시 나를 붙들고 울었어...하룻밤만 더 있다 가리

. 하룻밤만 더 재워 주소. 내 많이 있다 가지 않을게...하룻밤만 재워 주소...

는 가슴이 미어지고 속이 쓰렀지마는, 위로 층층이 어른 계시고 남의 이목이 번

다한지라...채 이별의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었지...가서 좋이 계시다가,

한 달만 지나거든 바로 오시라고 내가 말했다네...이담에 그때 여러 날 같이 지

내십시다...청암양반은 할수 없이 풀이 죽어서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타박타박

걸어갔지...그런데 그 뒷모습이 그렇게도 측은하고, 어째서인지 영 다시는 못 볼

것만 같더란 말이네...왜 그랬는지 나도 모를 일이야...그 뒷모습이 산 사람 같지

가 않었어. 무슨 꿈 속에 비친 사람 같었네. 그래 나는 와락 울고 싶어지데.

런데 그 양반도 심정이 그랬던가...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힘없이 돌아보았어...

...물끄러미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더니, 웃는 시늉을 하면서 손을 흔들어 보이

...그러고는 길모퉁이를 돌아서 버렸다네. 그것이 마지막이라...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되었지. , 타박타박 걸어가던 뒷모습이며,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을 흔들

던 모습이 그렇게...이날까지도 사무친다네...순리대로라면야 지금쯤이나 서로 나

누어야 할 작별 인사를...참 일찍도 서둘러서 했던 셈이지. 나중에 들었네만 청암

양반은 매안으로 돌아가던 그날...열병을 얻었다네...그날 하루만 피했어도 모를

일 아니었던가...? 그럴 줄 미리 알고 ...그렇게 안 가려고 안 가려고 하였던것

...결국은 내가 몰아내서 아주 먼저 가시게 한 셈이었네...내가 그 명을 재촉한

셈이었어...그렇게 먼저 가나...이렇게 늦게 가나...허망한 것은 다 한가지겄지마는...”

소문도 없이 하루아침에 강모가 매안을 버리고 강태를 따라 국경을 넘어서 만

주 삭방 어디론가 가 버린 뒤, 집안이 발칵 뒤집히어 온통 수라장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청암부인은 정신을 회복하는가싶은 기미로 아슬아슬한 숨을 놓지 않

고 혼란을 견디었다.

, 어쩌든지...강모를...보고 죽어야지.”

주문처럼, 헛소리처럼, 이 말만을 숨소리로 내며 버티었다.

율촌댁과 효원의 수발이 번갈아 잠시도 소홀하지 않은 중에, 삼시 세때 옹백

이에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쌀이 부스러져도 안되고 또골또골 하여도 안되게 정

성을 들여 청암부인의 죽을 쑤느라고, 효원의 손바닥에는 공이가 박혔다.

그것은 남을 시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공이가 박힐수록, 효원은 마음이 굳어지고

(할머님은 꼭 일어나시리라.)

싶어졌다. 쉽게 돌아가실 어른이면 이리하시랴.

그러다가 동짓달에 들어 청암부인 병세는 눈에 뜨이게 시름없어지고, 잠깐씩

이라도 정신이 들던 때와는 달리, 몇 날 며칠씩 그저 혼곤히 눈을 감고 있기 예

사였다.

그런데 오늘은 인월댁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대로 맑은 정신을 되찾아, 자리를 걷고 일어날 것만 같은 청암부

인의 모습이, 오히려 사위스러운 생각을 갖게 한다.

인월댁은 조심스럽게 마음을 모두고,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에 담듯이 새겨

듣는다.

정경이 기막힌 중에도...어쩌든지 심신을 수습해야 허겄길래...함 속에 든 예

단을 팔아...돈으로 바꾸었네. 형형색색 곱기도 한 비단들이, 내 한평생에 소용도

없었거니와...입던 옷이라도 팔어서 한 뙈기 논이라도 사야 할 형편 아니던가.

, 그것이 한이 될 줄이야...다른 것은 다 몰라도...그 양반이 나한테 준 단 한

가지 정표였던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지마는, 이미 논으로 바뀐 다음에, 깨달으면

무얼허겠나...저 논이 그 비단이려니, 저 논에 그 양반 넋이 어려 있거니,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부질없는 일. 그 허전함을 메우려고, 논을 사고 또 사도, 아무것

으로도 그 빈 자리는 메꿀 수가 없었네. 대신할 수가 없었어. 한평생.”

그런데도 어째 이날까지 그런 말씀은 단 한 번도 비치지 않으시고요.”

...언제는, 무슨 말을 하던가...어디 누구한테 말할 데가 있어야지. 내가 명

색이 어른 아닌가...누가 내 설움을 들어 주어야지...나 혼자서...그저, 나 혼자서.”

인월댁은 솟구치는 눈물을 누르며 청암부인의 손을 잡는다.

문득 부인이 아직 정정하던 지날날, 몇 년 전, 정초에 세배갔다가 모처럼 오류

골댁 모녀와 함께 마주앉아 담소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옛말 그런 데 없거든. 좌청룡 우백호만 보더라도 그렇지. 본시 왼쪽은 양이

, 동쪽 해 뜨는 곳을 가리키는데 빛깔로는 푸른색이라. 산세에 좌청룡이 승하

면 친손이 공명을 떨친단 말이지. 친손이라면 남자를 이름이니, 남자의 기상이

늠름하여 남자가 그 집안에 대들보가 된다고 봐야지.”

그때 장지문 바깥으로 싸르륵, 매운 바람 스치는 소리가 났었다.

그러니 자연 우백호라 하면 오른쪽이요, 음이라, 음은 서쪽으로, 해가 지는

방향을 가리키네. 빛깔은 흰색이란 말일세. 그런데 산세의 오른쪽이 승하면 백호

가 포효를 하는 형상인지라, 외손이 승하게 된단 말이야. 외손이라면 여자 쪽을

말하는 셈이 돼서 자연 여자가 잘나고 득세를 한다는 게야.”

그러니 매안의 이씨 문중 선산은 우백호가 승한 셈이란 말인가.

허나 그 승하다 함은 또 무엇이랴.

기대어 의지할 바람벽 한 귀퉁이도 없이 홀로 벌판에 서서, 밭 갈고 씨 뿌리

고 거친 손으로 고단하게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함인가. 아니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조차 아슴한 사람의 서늘한 그림자를 가슴에 드리우고, 한평생 외

로이 사는 것을 말함이었던가.

그도 아니라면 백호의 흰빛은, 평생토록 벗지 못할 서러운 소복을 가리키는

것이란 말인가.

강실이 저것은 이가 쪽 며느리들허고는 달라서, 심성이 곱고 순탄하니 그저

무던허게 살 것이네. 두고 보아 사람이 태깔대로 산다고 안허든가?”

그 말을 들은 오류골댁이 송구스러워 얼굴을 붉히며

별 말씀을 다 허십니다.”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때 청암부인이 이가 쪽 며느리들이라고 말한 사람 중에는, 부인 자신과 그

네의 손부 효원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또 거기서 더 거슬러 위

로 올라가면, 보쌈으로 온 김씨부인도 이 집안 며느리라면 며느리이고, 그 위로

홍씨부인, 한씨부인, 박씨부인들이 모두 이 이씨 집안 며느리들고, 그들은 하나같

이 박복하지 않았던가.

그도 다 선대에 이야기고, 이제는 큰어머님께서 탄탄하게 터 닦으시고 기둥

을 세우셨는데 무에 걱정이십니까...대실 질부만 해도, 여자로서 그만한 기골이

어디 흔한가요?

그때 청암부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인월댁은 그런 청암부인이 태산의 골짜기와도 같이 여겨졌었다.

기골...이라. 그것이 바로 서럽고 고달픈 멍엘세. 저 혼자서 하늘을 이고,

을 받치고, 제 기골로 제 기둥을 삼아야 하니, 허리가 휘일 노릇이 아닌가. 자칫

하면 부러질까 두려운 일이고.”

청암부인은 내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때 그네의 눈에 어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안개 같은 강모였을까. 아니면 허

리를 솟구친 효원이었을까. 아니면 태어날 아기의 얼굴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 그때 청암부인이, 겉으로는 의연하게 미소 지으며 웃음

을 머금고 앉아 있었지만, 그 마음속에는 어린 서방님의 손길이 닿은 예물 비단

을 팔아 버린 허적한 바람이, 무엇으로도 막아 볼 길없이 서럽게 불고 있었는지

도 모르는 것을, 감히 짐작도 못하였다.

허나...목숨만큼 화려한 것은 없네...천산이 헐어서 하해를 메꾼대도...목숨이

비어 있는 자리는 메꿀 도리가 없어.”

인월댁과 청암부인의 눈이 서로 고요히 마주친다.

기진한 청암부인은 한숨 쉬듯 간신히 말하며, 어디랄 것 없는 허공을 물끄러

미 바라보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목숨이란 것은 처음부터 속절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있다 없다 하는 것부터가 한갓 망상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허고요. 그저 허공이

나 바람에 불과한 목숨인데, 그 허울에 속아서 헛된 업을 짓다 가는 것이, 인간의

한세상인가도 싶어집니다. 참으로 산다는 것을 덧없는 일이지요.”

청암부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네는 이제 눈을 감고 있었다. 언뜻 보

면 잠이 든 것도 같았다. 그 얼굴에는 아무런 애증도, 설움도, 회환도 어려 있지

않았다. 다만 조용할 뿐이었다.

그런 모습에 인월댁은 공연히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손등을 청암부인의 코끝에 가져다 대 본다.

순간 눈썹을 모으던 그네는 이윽고 손을 거두며,

아짐, 주무시는가요?”

하고 다급하게 묻는다. 청암부인은 힘들게 고개를 외로 저었다.

누구 불러 드릴까요?”

이번에도 부인은 고개를 젓는다. 젓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시늉에 불과하였다.

그런데도 인월댁은 그 모양을 알아본다.

“...없어...아무도...”

입시울만을 가까스로 움직이는 그네는, 얼핏 그저 입을 반쯤 벌리고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네의 낯빛은 백지처럼 희고 투명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기미를 눈치챈 인월댁이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청암부인이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는 것 같았다.

누구 말씀이신가요?”

인월댁은 청암부인의 입시울 가까이 귀를 모으고 안타깝게 묻는다.

아짐, 누구를 불러 드릴까요?”

아마도 이것이 부인의 마지막 말이 되리라는 것을 인월댁은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순간을 놓쳐서는 안되다는 것도.

인월댁이 다급하게 그네의 귀 가까이 입을 대고 묻는다. 그러나 청암 부인은

무겁게 두 눈을 감고만 있었다. 인월댁은 재촉하듯 다시 한번 물었다. 그만 이

자리에서 정신을 놓아버리면 다시는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말 것이 분명하여

마음이 급한 탓이었다.

그렇지만 청암부인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안타까움이 방안을 짓누른다. 침묵이 어둡게 무너진다.

“...강모...”

이윽고 청암부인은 그 한 마디를 밀어냈다.

아아.

인월댁은 청암부인 가까이 기울이고 있던 상체를 힘없이 뒤로 주저 앉히고 만

. 그네는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강모는 이미 만주로 가 버리었다. 그래

서 오로지 송구스러운 듯 두 손을 가슴께에 모아 붙인 채, 청암부인의 감고 있

는 두 눈을 다만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무겁게 감은 청암부인의 왼쪽 눈귀에 찐득한 눈물이 배어났다. 그것은 댓진

같은 진액이었다. 차마 흘러내리지도 못한 채 눈 언저리에 엉기어 있기만 하는

그 눈물은, 무슨 응어리 같기도 하였다.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불덩어리를 보았다.

안채 쪽에서 솟아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

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섬뜩하도록 푸른 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부인의 혼불이었다.

어두운 반공중에 우뚝한 용마루 근처에서 그 혼불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윽고

혀를 차듯 한 번 출렁하고는, 검푸른 대밭을 넘어 너훌너훌 들판 쪽으로 날아갔

.

서늘하게 눈부신 불덩어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항하여 인월댁은 하늘을 우러르

며 두 손을 모은다.

삭막한 겨울의 밤하늘이 에이게 푸르다.

사람의 육신에서 그렇게 혼불이 나가면 바로 사흘 안에, 아니면 오래가야 석

달 안에 초상이 난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러니 불이 나가고도 석 달까지는

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석 달을 더 넘길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

였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그말이 영락없이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었

.

운명하기 전에, 저와 더불어 살던 집이라고 할 육신을 가볍게 내버리고 홀연

히 떠오르는 혼불은 크기가 종발만 하며, 살 없는 빛으로 별 색깔이 맑고 포르

스름한데, 다름 사람들의 눈에도 선히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도 남자와 여자는

그 모양이 다른데, 여자의 것은 둥글고 남자의 것은 꼬리가 있다. 그것은 장닭의

꼬리처럼 생겼다 한다. 어쩌면 남자의 불이 좀더 크다고 하던가.

비명에 횡사를 한 원통한 사람의 넋은, 미처 몸 속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 채

거리 중천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래서 혼불도 흩어져 버린다.

하지만 제 목숨을 다 채우고 고종명하여,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가는 사람

의 혼불은, 그처럼 미리 나가 들판 너머로 강 건너로 어디 더 먼 산 너머로 날

아간다. 그렇게 날아서 다음에 태어날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도 하였

. 아니면 저승으로 너훌너훌 날아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인월댁은 마당에 서서 지붕을 항하여 침읍하였다.

(...아짐...인제...가시는가요...부디 부디 모든 일은 다아 잊어 버리시고...평안히

가십시다...뒤돌아보지 말고 가십시다. 한 많은 한세상...바늘 같은 몸에다가 황소

같은 짐을 지고...일어나다 쓰러지고...일어나다 쓰러지고...이 서러운 세상, 못 잊

힐 게 무엇이라고 가던 발걸음을 돌리시겄소. 훨훨 벗어 버리고...입은 옷도,

거운 육신도 다아 벗어 버리고...부디 좋은 데로 가십시다...아짐, 인제 후제...저승

에서 다시 마나거든...눈물 많이 흘리노라도 걸음 마다 발이 젖던 이승 이야기도,

옛이야기마냥 나누십시다...이렇게 먼저 가시니...후제, 제가 저승에 가거든...마중

이라도 어디만큼 나와 주실라는가요...그러면 저승이라도 그렇게 낯설고 적막하

지는 않을란지요.)

그네는 홀로 혼불을 울러르며, 마음속으로 하직의 소매를 들어올린다. 그네의

들어올린 소매자락 너머로는 허공이 아득한데, 인월댁의 젖은 넋도 두웅 따라서

떠오른다.

어디선가, 무녀 당골네가 금방이라도 낭랑하게 길닦음을 하는 소리가 들릴 것

만 같다. 그것은 바람 소리인가도 싶었다.

 

망제님 극락 세계루 가시라구 시왕질로 가시라구

질을 닦어 가옵소사 질을 닦어 가옵소사

원퉁허구 설운 마음 다 불배허시구

시왕질로 밝혀 가오 극락질이 꽃밭 소리 사수계루 가옵소사

시왕질을 밝혀 가오 염불 받도 예정 받고 인정 받고 노수 받고

극락 세계루 가옵소사 극락 세계루 가옵소사

법화 소리루 가옵소사 나무아미타불이오

원퉁이 생각 설우니 생각 마옵시고 다아 잊어 버리고

극락 세계루 가옵소사 극락 세계루 가옵소사

법화 소리루 가옵소사 나무아미타불이오

원퉁이 생각 설우니 생각 마옵시고 다아 잊어 버리고

극락 세계루 가옵소사

가다 가다가 저물거든 질에도 앉지마오 질신이 아니 놓소

또 가시다 저물거든 산에도 앉지 마오 산신이 아니 놓소

또 가시다 저물거든 못가에도 앉지 마오 용신이 아니 놓소

또 가시다 저물거든 독에도 앉지 마오 독신이 아니 놓네

또 가시다 저물거든 모래서도 자고 가소

나무 나무 저물거든 모래서도 자고 가소

극락 세계로 가옵소사 시왕질로 가옵소사

예정 받고 인정 받고 노수 받어 갖꼬 극락 세계로 가실 적

걸린 고도 풀으시고 맺힌 고도 풀으시고

극락 세계 법화 소리에 상소리로 편안히 가옵소사

 

당골네의 잠든 꿈길을 지나 청암부인의 푸른 혼불은 하늘의 아득한 저 너머

들녘 쪽으로 날아간다.

한번 가면 다시는 올 수 없는 멀고 먼 길을 이렇게 홀연히 떠나는 그 불덩어

리를 올려다보는 또 한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으니.

그네는 효원이었다.

무심코 마당으로 내려서던 그네에게 가슴속이 시릴 만큼 투명한 빛으로 쏟아

지는 마지막 넋에, 효원에 아찔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할머님.

그네는 무망간에 큰방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부인이 누워 있는 큰방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순간 효원은, 이미 넋이 빠져 나가 버린 저

방안에서 아직도 저렇게 불빛이 번지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도 사무쳐 왔다.

저기 저 방안에 남아 있는 불빛은, 다만 등잔의 불빛이 아니라, 이제 막 육신

을 벗고 허공으로 떠오른 부인의 혼불 그림자가, 저다지도 눈물겹게 어려 있는

것이려니 싶어지는 것이었다.

나 아직 여기 있다. 아가, 이 방은 빈 방이 아니다. 나는 오래오래 여기 있

을 것이니라.”

창호지의 불빛은 그렇게 나직이 말하고 있었다. 청암부인의 목소리는 효원의

살 속으로 배어든다. 목소리는 불빛을 머금은 채 그네의 살을 푸르게 물들인다.

그네의 몸에서 인광이 돋는다. 저절로 투명하게 비늘을 일으키는 불꽃이 그네의

전신을 휩싸며 타오른다. 그것은 물결처럼 굽이를 치는 눈물이었다.

(할머님 가신 한 생애를, 내 또 그대로 살게 될 것이다. 정처없이 떠나가 버린

그 사람은 언제나 돌아올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

, 하시던 할머님. 그 뼈를 다 태우시고 이렇게 한 점 푸른 불꽃으로 떠올라 이

승을 하직하시면서...나한테 점화하고 가시는 것을.)

효원은 언제까지나 마당에 선 채로 빈 하늘을 우러른다.

저 총총한 별들의 그 어떤 별빛이, 금방이라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

보며

아가.”

하고 그네를 불러 줄 것인가.

효원은 사라지는 불꼬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몸을 조이면 숨을 죽인다. 마치

흡월정을 하던 때와도 같은 무서운 정성으로 그네는 청암부인의 혼불을 빨아들

인다. 한번 들이마신그 기운이 행여 세어나갈까 하여 그네는 죽은 듯이 고요히

숨을 참는다.

드디어 그네의 온몸에, 실핏줄의 끄트머리에서까지 청암부인의 넋이 파도 물

마루보다 아찔하고 아득한 기운으로 차 오르며, 그네는 숨이 가빠져, 그만 둥실

허공으로 떠오르고만다.

이제 그네는 청암부인을 낳을 것이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날이 채 새기도 전에 온 마을과 문중, 그리고 거멍굴에도

이 소문은 번질 것이었다.

소문이 은밀하게 차 오르고 있는 한밤중의 허리가 검푸르게 휘어진다.

 

 

4 돌아오라, 혼백이여

 

밤이 깊어 고비에 이르렀다.

달빛 없는 반공으로 치솟은 노적봉의 검은 날개가, 무너지게 캄캄한 어둠을

쓸어 안으며, 금방 마을의 뒷등으로 고꾸라질 듯 위태하게 보인다. 깍아지른 바

위 벼랑과 숨은 골짜기, 검푸르게 우거진 소나무 수풀도 짙은 먹빛으로 무겁다.

마치 거대한 낟가리를 쌓아 놓은것 같은 형국이어도 노적봉이라고 부르는 산마

루의 드높은 능선이, 우줄 우줄 오늘따라 봉두처럼 어수선하다. 어둠이 한 치만

더 목에 차면 곧 난발을 할 기세다. 쌓여 있던 낟가리들이 검은 짚북더미 머리를

풀어 헤치며 우우우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그 허물어진 어둠이 거센

물살로 마을을 휨쓰는 소리가 공중을 가른다. 바람 소리다. 소스라쳐 다시 보면

산마루는 시커멓게 솟구쳐 오른 파도 꼭대기인가도 싶다. 한순간에, 천지를 울리

는 굉음을 토하며 마을을 뒤덮어 삼킬 듯한 위용이 아슬아슬하다.

그 서슬에 질린 바람이 낮은 소리로 운다. 삼키는 울음이다.

울음에 얹힌 바람은 어둡게 엎드린 마을의 지붕과 지붕 위를 지향없이 휘돌다

, 사람 자취 끊어진 고샅으로 곤두박질을 치는가 싶더니, 이윽고, 잎사귀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감나무의 앙상한 가지 끝에 가슴을 박고 흐느끼며 호곡한다.

소리에, 잠 못 드는 마을 사람들의 귀가 허옇게 일어선다.

일이 났는가.

돌아누워 뒤척이던 사람들은 아예 일어나 앉고, 하릴없이 마음을 조이며 등잔

불 아래 앉아 있던 사람은 방문을 비긋이 열고 바깥을 내다본다. 풍지가 더르르

우는데, 바깥은 오직 캄캄할 뿐이다. 일년 중에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를 바로

앞둔 하늘에는 숨은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다. 어둠과 합세한 두터운 구름이 금

방 내려앉을 것처럼 무겁게 웅크리며 하늘 한 자락을 물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뭉친 구름 덩어리가 아니라, 두리 기둥이 받치고

있는 덩실한 골기와 지붕이었다. 이 매안 마을의 입구 평평한 지형인 아랫몰에

서는 물론이거니와, 거기서도 한참이나 올라가는 중뜸에 이르러서도 저만큼 아

득하게 보이는 곳, 원뜸. 노적봉의 엄연한 기상이 벋어 내리면서 또아리를 튼 그

곳에 높다랗게 솟아오른 검은 지붕은, 매안의 이씨 문중 종가의 것이다. 이 지붕

, 순식간에 밀려와 덮치려는 어둠의 기세와, 기어이 떠받치며 버티려는 기둥의

안간힘이 서로 상충하여 뒤엉킨 형상을 하고 있다. 어둠의 기세가 자못 사납다.

짓눌리어 신음하는 용마루가 하늘을 향하여 머리를 든다.

캄캄하신 하늘이여.

그러나, 하늘은 대답이 없다.

간절한 머리를 둘어 하늘을 우러르는 것을 두 눈을 부릅뜬 막새 기왓장, 망와

이다. 잡귀를 물리치고 집안을 지켜 달라고 기와에 도깨비 얼굴을 새겨 지붕마

루 높은 곳에, 하늘을 바라보게 얹어 놓은 망와의 귀면이 애소로 일그러진다.

쩌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우는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옆에서 그 소리를 대신하여 운다.

가슴을 가르며 우는 소리다.

문풍지를 두드리며 우는 바람 소리에 촛불이 놀란 듯 까무러들더니, 이윽고

불꽃을 너훌거리며 길게 펄럭인다.

, 타닥, 타악.

촛불 심지 타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춧불 아래 누운 청암부인의 누렇게 바랜 노안에, 흔들리는 불 그림자가 일룽

거린다. 그래서 두드러져 뼈가 솟은 곳은 적막한 골짜기 같았다. 사람의 얼굴을

두고 이마와 코, 그리고 턱이며 양쪽 광대뼈를 일러 오악이라 한 말이 참으로

옳은 것을 알겠다. 이미 오래전에 살을 다 벗어 버리고 개결한 뼈로만 남은 듯

한 청암부인의 얼굴은 말 그대로 산악처럼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그네의 얼굴은 노근처럼도 보인다. 대저 뿌리란 그 몸을 땅 속

에 숨기어 묻는 것이 이치이다. 그러나 노근은 지상으로 솟아오른 뿌리이다.

뿌리를 뻗고 있는 산의 지질이 비옥하여 흙이 두터운 곳에 사는 나무는 그럴 리

가 없지마는, 천인단애 까마득한 낭떠러지나 만중철벽 척박한 땅에 서서, 그 뿌

리가 암석의 틈바구니에 끼이고, 흙을 깎는 물살에 씻기어 제 둥치를 지탱하기

어려운 나무는, 처절한 젊은 날을 보내고 노목이 되면, 이제 그 뿌리의 뼈가 땅

위로 울툭 불툭 불거져 드러나니.

그 모습은 모질고 끈덕진 세월을 다 육탈하고, 세상을 벗어 버린 초연한 기상

을 느끼게 한다.

어머님의 한세상이 이에서 무엇이 다르리오.

이기채는 청암부인의 머리맡에 여윈 무릎을 꿇고 앉아, 속으로, 터지려는 곡읍

을 삼킨다. 방안에 둘러앉은 사람들도 손으로 입을 막아 울음을 참으며, 하염없

는 눈으로 청암부인을 지켜본다.

그러나 부인은 고요히 감은 눈을 뜨지 않은채. 다만 몇 모금의 숨을 쉬고 있

을 뿐이다.

이기채의 처 율촌댁이 청암부인 머리맡에 흰 백지를 폈다.

그리고 그 위에 색실로 맺은 혼백 매듭을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그것은 다홍과 청람빛이 선연한 명주실 매듭이었다.

이제 곧 이승을 하직하고 떠나려는 사람의 머리맡에 정성스럽게 서서, 남은

사람은 매듭을 맺는다. 두 가닥의 색실을 한데 섞어 꼬아서 한 가닥으로 만들고

, 뒤쪽은 열 십자가 되고, 앞쪽은 우물 정자가 되게 맺은 것의 이 가닥 저 가

닥을 둥글게 뽑아 내, 세 개의 고를 지으면, 그것은 서럽고 아름다운 꽃잎 모양

으로 피어난다. 아무리 조여도 꼭 조여지지 않고, 고가 어느 쪽으로나 마음대로

움직이게 맺어야 하는 혼백 매듭은, 죽은 후에 넋이나마 막힌 데 없이, 걸린 데

없이, 천지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라는 뜻이리라.

아직은 살아 있는 망인의 마지막 숨결을 이 실 매듭에 받아 모신 다음, .

의 색실에 어린 그 혼백은, 이윽고 초상이 나면, 신주를 만들기 전에 흰 비단 천

을 접어서 만든 혼백 속에 끼워 넣는다. 색실에 스며든 혼백이 넋이라면, 신주

대신 접은 흰 비단은 넋을 담은 집이라고 할 것인가.

임종을 맞이하는 절차는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이 오직 가슴을 미

어지게 하는 슬픔뿐일 때는 먼 곳의 일 같던 죽음이, 이렇게 구체적인 형상을

띄우고 모양을 드러내니 가슴이 내려앉으면서,

닥쳐오고 말았구나.

저리게 절감이 되었다.

어둠을 머금어서 더 휘황하게 일룽이는 촛불 아래, 꽃 같은 다홍과 깊은 물빛

청람의 색실 매듭이 요요하다.

그 처연하게 고운 색실 매듭은, 이제는 그냥 실이 아닌 것이다.

어머니, 이 실에 혼백을 모시겠습니다.

부디, 맑으신 당신 넋이 이곳으로 드소서.

하얀 백지 위에 고요히 떠 있는 동심결에 눈이 멎은 이기채는 속에서 치미는

설움을 참지 못하고, 흐윽, 울음을 토한다.

그러나 곧 울음 끝을 자른다. 지금은 울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렇게 임종이

임박하면, 둘러앉은 사람들은 울음을 멈추고, 조용히, 가시는 분의 마지막을 배

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종의 자리에서 자손들이 너무나 애통하게 울부짖으면,

떠나는 망인의 넋을 소란스럽게 괴롭히는 일이 되고, 또 망인의 발이 눈물에 젖

어 무거운 탓에 가볍고 좋은 곳으로 못 간다고 하였다.

아아, 하오나.

이기채는 어금니를 힘주어 문다. 잇사이로 눈물이 배어난다.

원통하여 어찌 그냥 가시게 할 수 있으리.

그의 머리 속에, 아들 강모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머니, 아직은 가지 마십시오. 조금만 더 머무르시어, 강모란 놈, 그놈 보고

가셔야지요.

이기채는 침음 하였다.

언제였던가. 유명을 달리하면 어제도 전생이려니.

기동은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의식은 희미하게 남아 있던 청암부인

, 한동안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깊은 절망에 무거웠다. 그러

더니 미간을 오랫동안 모으고 있었다. 마치 온몸의 남은 기력을 기어이 눈으로

모아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힘이 드는 듯 미간을 풀어 버

리면서 입시울을 몇 번 움직였다. 무슨 말인가 하려는 것이 분명하였다. 숨소리

로라도 대강 짐작하여 알아들을 수 있었던 그네의 말을, 그때는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님, 무슨 말씀 하시려고요?”

율촌댁이 청암부인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듯이 물었다.

청암부인은, 다급히 목 메이어 묻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머니.”

이번에는 이기채가 청암부인의 팔을 잡고, 깊은 잠을 깨우는 사람처럼 불렀다.

그러자 그네의 입 모양이 둥그런 시늉을 했다.

어머님이 혹시 강모 찾으시는 거 아닐까요?”

율촌댁이 이기채를 돌아보았다.

어머니이, 강모 찾으십니까?”

이기채가 청암부인의 귀에 대고 소리를 쳤다.

그제서야 그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끄덕이는 시늉이라고 해야 옳았다.

이기채는 잠시 망연하여 율촌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음 순간, 청암부인에

게로 눈길을 돌렸을 때는 그네가 이미 의식을 잃어버리고 만 뒤였다. 사람의

형체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빈 껍데기에 불과하였다. 의식이 없는데, 모습이 눈

에 보인다 한들 그것이 무엇이리오. 한낱 나무토막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의식의 마지막 실낱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 바로 강모였었다.

그 강모가 지금은 여기에 없다. 한 문중의 종가에 종손으로 나서 가문의 부형

이 되어야 할 그가, 헐렁하게 비워 놓고 떠나 버린 자리에,

만주 봉천 어딘가에 있다더라.

는 허망한 소문만 돌아왔었다.

그 말을 들은 이기채는 놋재떨이를 새되게 두드리며 말했었다.

그놈 말 다시는 내 앞에서 하지 마라.”

, 타닥.

촛불의 심지가 튄다. 심지가 부실한 것인가, 아니면 허공을 가르면 우는, 지월

의 바람이 들어오는 때문인가. 그러나, 그래서가 아닐 것이다. 미동도 하지 않는

청암부인의 바튼 숨결을 대신하여 그렇게 심지가 타는 것이리라. 촛불이 숨결

같고, 숨결이 촛불 같다. 끊어질 듯 잦아들다가, 멈추었던 숨을 한 번에 몰아쉬

면서 가파르게 터져 나오는 숨소리 끝에 촛불의 길고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다.

청암부인의 발치에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인월댁은, 지난번 청암부인이 혼곤

한 잠에서 깨어난 듯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지금처럼 이렇게 발치에 앉아

있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불쌍헌...사람...”

입 속으로 숨소리처럼 남긴 한 마디가 그대로 가슴에 얹혀, 그만 어깨를 꺽으

면서 거꾸러져, 체읍을 참지 못하던 날을 떠올린다.

그날따라 집안도 조용하고, 청암부인도 숨이 차서 쉬엄쉬엄 몹시 힘들어 하며

말하는 것만이 다를 뿐, 정신이 맑은 것 같았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이 살던

이승의 자리를 그래도 한 번 둘러보고 떠나려는 혼백의 마지막 기운이었을 줄이

.

하지만 그 마지막 기운을 함께 나눈 것이, 속절 없이 살아온 인월댁의 한세상

차디 찬 시름을 다 쓰다듬어 주고도 남았던 것이다.

오래 속내 말을 나눈 끝에, 인월댁과 청암부인의 눈이 서로 고요히 마주친 그

순간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었다.

그날 일이 바로 지금인 것처럼 눈앞에 떠오르는 인월댁은, 숨이 고르지 않은

촛불 자위에서 멍울멍울 녹으며 흘러내리는 촛농이 부인의 눈물인 것만 같다.

그 뜨거운 촛농이 인월댁의 가슴 한복판을 가르며 미끄러져 내려간다.

후읍.

그 순간 청암부인은 깊은 숨을 들이쉰다. 방안에 둘러앉은 사람들도 따라서

숨을 들이쉰다. 그러나, 그네의 메마른 몸 속으로 한번 빨리어 들어간 숨은 다시

새어 나오지 않았다.

율천댁이 황급히 몸을 기울여 청암부인의 숨소리를 들어본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옆에 앉은 효원이 백지에 싼 햇솜 한 조각을 청암부인의 인중 위에 송구

스러운 기색으로 얹어 놓는다.

이 무슨 참람한 일이냐, 내가 할머님 절명을 확인하다니, 잠시 숨을 멈추신 것

일 뿐, 아직 살아 계시어 정신이 있으시면, 내 이 못할 짓을 어찌 용서받으리.

효원은, 새어 나오는 흐느낌을 누르지 못한다. 방안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솜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깃털보다 가벼워 스러질 것 같은 햇솜은 움직이지 않

았다. 이미 부인은 숨을 거둔 것이다.

아직도, 내쉬지 않은 숨이 몸 속에 살아 있을 것이언만, 그네는 아무런 말 한

마디 따로이 남기지 않고 눈을 감았다.

아이고오, 아이고오오.

이기채가 곡성을 터뜨렸다. 율촌댁은 머리에서 비녀를 뽑았다. 머리를 풀고 곡

을 하는 율촌댁 옆에서 효원이 호곡한다.

창자가 끊어지는 울음이다.

방안에 낭자한 곡성이 마당으로 흘러 넘치면 기둥을 적시고, 캄캄한 밤하늘을

이고 있는 지붕을 잠기게 하면서 굽이굽이 온 마을을 휘감는다. 닥쳐오는 두려

움을 피하려고 어둠 속에 엎드리어 몸을 숨기고 있던 불빛들이, 먹물 같은 밤의

기슭에서 하나씩 떠올랐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이던 사람들은, 한밤중의

허리를 가르는 곡성에 소스라쳐 일어나 부싯돌을 찾는다. 마을의 이 집 저 집이

수런거리는 기색에 컹, 커겅, 개들이 짖는다. 그 소리에 꼬리를 물고 중뜸에서도

불빛이 돋아난다. 창호지 문짝이 불그스럼 물든다. 그 네모로 젖은 불빛은 눈물

을 머금은 밤의 눈 같다.

봉화의 신호이기나 한 것처럼 그 불빛을 받은 아랫몰의 지붕아래 문짝에도 등

잔 불빛이 눈을 뜬다. 그 불빛이 검은 바닷속 같은 어둠 속에서 붉은 연이 되어

떠오르고, 공중으로 침통하게 떠오른 그 연은, 아랫몰에서도 한참이나 논과 밭의

두렁을 지나 이만큼 와서 흐르는 개울을 건너 부복하고 있는 민촌 거뭉굴에까지

날아간다.

가셨고나.

거멍굴 사람들도, 어둠을 밀어내며 일어나 앉는다. 쑥대강이 같은 머리를 더듬

어 다듬고는 황망히 지겟문을 열고 나와 벌써 봉당으로 내려서는 사람도 있다.

매안과 거멍굴이 서로 반상을 가리지 않고 불빛들로 비보를 나눌 대, 원뜸의

안마당 한가운데 화롯불이 피워졌다. 그 이글거리는 화로의 불덩어리가 어둠의

복판에서 어둠을 삼키며 타오른다. 초상이 있으면, 우선 바로 시신을 모신 방의

아궁이에 불을 끄고, 그 대신 이렇게 화롯불을 마당에 피우는 것이다.

처마끝과 마루 기둥과 중문, 대문, 그리고 안채와 사랑채의 방문 앞이며, 정지,

헛간, 고방의 기둥마다 등불이 걸렸다. 집안의 구석구석뿐만이 아니라 고샅에까

지 내다 걸은 등불은 구슬프게 휘황하여, 무너져 덮쳐 오던 어둠을 저만큼 물러

서게 하였다.

마당 한쪽에서는 장작을 수복하게 고여 화톳불을 지핀다.

큰방과 건넌방과 큰사랑, 작은사랑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손길이 너나없이 분

주하고, 정지에서는 아궁이마다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음식을 차려야 하기 때문이

. 문중의 부인들은 큰방과 건넌방, 그리고 정지에서 소리내지 않고, 공손하면

서도 빠른 손으로 일을 진행하였다.

호제와 비복, 그리고 거멍굴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물건을 나르고, 심부름을 하

, 불을 때고 하면서 부지런히 오갔다.

동녘골댁이 새로 지어 막 퍼 올린 흰 밥 세 그릇을 동그란 소반 위에 올려 놓

, 그 옆에 짚신 세 켤레를 나란히 놓았다. 저승에서 망자를 데려가려고 찾아온

사자들을 대접하는 사자밥이다.

그 밥 옆에 동전 세 개를 놓는다.

대문간에 걸린 장명등이 어두운 고샅길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살아 생전 언제나 들고 나던 이 대문간을 이제는 신발 신고 나가지 못하고,

다시는 그 모습을 뵈올 길이 없으려니, 싶은 동녘골댁은 휘젓한 심정을 가누기

어려웠다.

집안이 불빛으로 휘황한 것에 비해서 대문간은 고적하다. 사자밥에서 피어 오

르는 김이, 걸어 놓은 등불 아래 한없이 적막한 기운으로 흩어진다. 거칠거칠한

짚신 켤레들은 갈 길이 먼 나그네의 발을 기다리며 그림자를 머금고 있다.

아직 나이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읜 동녘골댁은, 그것이, 아버지가 신고 가시

는 짚신인줄 알았었다.

저승이 얼마나 먼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흰 옷을 입은 아버지가 홀로 사자

들의 뒤를 따라서, 짚신을 어깨에 메고 걸어가는 모습이 가슴을 밟아 흐느꼈었

. 아무 말도 없이, 낯설고 머나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 가다가, 짚신이 다 닳으

면 다시 바꿔 신고, 또 그렇게 가고 가다가 어느 산 말랭이 고개 위에서 잠깐,

낡은 신발을 갈아 신는 그 모습이 어찌 그리 선하게 눈에 밟히었던지.

얼마나 남었는고.

아버지는 한 손을 이마 위에 대고 앞으로 가야 하는 더 먼 길, 저승의 어느

길목을 어림하며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같았다.

, 또 가자.

그러면서 아버지는,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 적막한 길을 아득히 혼자서 걸어

가는 것이었다.

그곳이 얼마나 멀고 멀어서 저 짚신이 다 닳도록 가고 또 가야 하는가. 동녘

골댁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발이 담길 짚신이어서 다시 한번 눈물 어린 눈으로 그것을

어루만지듯 바라 보았었다.

그거이 아버지 신발이간디, 아니다. 저승의 사자들이 신고 가는 것이란다.”

나중에, 동녘골댁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쉽사리 그 말을 믿지 못하여, 여전히 그네의 마음속에서는

거칠거칠한 그 짚신을 어깨에 메고, 저승 길을 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생시인 듯

문득 떠오르곤 하였다.

동녘골댁은 청암부인의 사자밥을 오래도록 내려다보면서 얼른 돌아서지 못하

였다. 그 사이 문중의 숙항과 동항 몇이서 대문간의 동녘골댁에게 눈빛으로 인

사를 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들어가는 그

들의 뒷등에 그림자가 발을 내려 컴컴하게 보였다.

방안에서는 벌써 수시를 하고 있었다. 정갈한 햇솜으로 청암부인의 입과 코와

귀를 막고는 백지로 부인의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그네의 좌우 어깨를 베로 단

단히 동이며 묶은뒤, 두 팔과 두 손길을 곧게 펴서, 그 두 손길을 부인의 배 위

에 올려 놓는다. 부인은 여자이니, 오른손을 위로 가게 하였다. 무감하고 담담한

손이었다.

이승에서의 한평생을 경영하던 두 손은 이제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다만 하

나의 형체로 남아, 그 무엇에도 아무런 집착이나 아무런 저항도 보이지 않으면

서 조용히 묶이고 있는 것이다.

그네의 두 다리를 반듯하게 붙여 곧게 펴고는 마지막으로 두 발길을 똑바로

모은다. 걸어오고 걸어온 길을, 또 걸어가고 걸어가야 하는 발이 고단하고 무심

하게 모아진다. 그 발목을 베로 동여 묶는다. 시신이 어그러지면 그런 난감한 일

이 다시 없는 까닭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몸을 고르게 주물러서 펴고 단단히

동이어 묶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인월댁은, 자신의 손발이 묶이는 것처럼 가슴이 끅, ,

조여들었다.

아아, 무엇 하러 저렇게 묶고, 묶는고, 사대를 자유로이 풀어헤쳐서 그냥 훨훨

떠다니게 두지 못하고, 이승에 남은 사람들은 저승으로 가는 사람의 그 무엇을

저렇게 묶고 있는고.

부인의 살아 생전에야 누가 감히 그네의 몸에 임의로 손을 대며, 더욱이나 손

과 발을 동이어 묶을 수 있었으랴. 이제 숨이 떨어져, 빈 집처럼 남아서, 빈 바

람이 드나드는 시신이 되고 보니, 사람들은 애통하여 울부짖으면서도 그네의 몸

을 땅에 묻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버리러 가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월댁은 청암부인의 머리맡에 흰 적삼을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 속적삼이다.

청암부인이 임종하기 조금 전에, 새 옷으로 갈아입힐 때 벗긴 옷이다. 아직도 부

인의 밍밍한 체온이 남아 있는 적삼은, 땀이라도 젖어들었던 것일까. 흘리지 못

한 눈물이 그렇게 적삼에 배어났던 것일까, 축축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

것은 인월댁의 손에서 배어나는 눈물일는지도 몰랐다.

인월댁의 부인의 흰 적삼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간다. 지붕의 동쪽 추녀에 대

어 있는 사다리의 한 단 한 단을 밟고 오르는 인월댁의 눈에 검은 구름이 내려와

덮인다. 그것은 구름 같은 지붕이었다. 그 지붕의 이쪽 끝에서 한 얼굴이 슬픈

듯도 하고 먼 곳을 바라보는 듯도 한 눈빛으로 인월댁을 본다. 망와였다. 그러나

그 기와에 새겨진 얼굴은 청암 부인인 것도 같았다. 벌써 그 혼백이 지붕 위로

올라와, 집안을 지켜 주는 귀면 기와, 망와에 잠시 그 얼굴을 맡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인월댁은 홀로 그 망와를 우러르며 사다리 위에 선 채로 숨을 모두었다.

마치, 부인이 아직 살아 있을 적에, 서로 고요히 눈이 마주치던 그 마지막 순간

에 나눈 기운을 다시 나누듯이.

그리고는 지붕 위로 올라선 인월댁은 북쪽 하늘을 향하여 섰다. 승옥중운,

붕 위는 구름 속이었다. 그곳은 높았다. 지붕 아래 땅 위의 일이란 한낱 꿈속의

것들인가 싶었다. 청암부인의 혼백이 지금이 지붕 위에 어리어 있다는 것이 인

월댁의 심장을 저리게 하였다.

이윽고 그네는 청암부인의 적삼을 활짝 펼쳐 들었다.

그리고, 왼손으로는 적삼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 허리를 잡아 허공으로

크게 반원을 그리며 천천히 휘둘렀다. 캄캄한 겨울 밤하늘에 흰 적삼이 선연하

게 나부낀다.

인월댁은 크고 긴 목소리로 청암부인의 혼백을 부른다.

저 깊은 속의 골짜기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소리이다.

청아암 부이인 보오옥.”

인월댁이 목메이게 고복하여 혼을 부르는 소리는 바람이 실어가 먼 곳으로 아

득하게 흩어졌다.

돌아오라, 혼백이여.

인월댁은 두 번, 세 번, 청암부인의 혼백을 불렀다.

복 부르는 사람은 망인의 혼백과 인신이 통할 만큼 서로 지극한 사람이라야만

한다. 그래야 그 정을 따라서, 떠나가던 허공으로부터 걸음을 다시 돌이켜 집안

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서로 무관하거나 마음 막힌 사람이 아무리 저고리를 내둘

러 형식적으로 부른다 한들, 한번 몸을 떠난 혼백이 옷자락 한 잎을 따라 돌아

올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조금 전까지도 자신이 내내 입고 있다가 금방 벗어

놓고 온, 자시의 땀도 묻어 있고 체취와 숨결도 배어 있는 저고리를, 간절하게

휘두르며

돌아오라, 혼백이여.

부르고, 또 부르고, 다시 부른다면, 몸을 벗고 떠나던 혼백이 어찌 다시 체백

으로 깃들어 합하지 않으리오.

, 내 냄새.”

혼백을 휘어감아 사로잡는 이승의 그리운 몸 애틋하여, 공기 중에 퍼지는 냄

새의 길을 따라, 가시던 분 넋이여, 도로 이리 들어오시라고.

마지막 입었던 속적삼을 그렇게 널리 흔들어 부르는 것이다.

죽어서도 못 잊을 정다운 목소리, 내 맘 같은 사람이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내상을 당하였을 때만큼은 아무리 유교의 규범이 엄격하다 할지라도,

여인이 지붕에 오르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본디의 뜻이 이와 같은 까닭이다.

더욱이나 남녀가 유별한 터에, 안부인의 살에 닿은 속적삼을 사후에라고 어이

연고 없는 남자의 손에 맡길 수 있으랴.

습렴을 할 때도 부녀자의 상사에는 오직 여인들끼리만 시방에 들어 수습하는

.

하물며 일생을 홀로 산 청암부인의 경우에야.

더 말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이 각별하였다.

일찍이 부인의 친정 동네 이름이 청암이어서, 이곳 매안의 이씨 문중 종가의

종부로 시집온 그날부터, 그네는 택호를 청암이라 하였다. 그러나, 시집을

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눈이 시리게 흰 소복을 입은 청상의 몸으로였던 것이다.

그때 그네가 들어선 종가의 형상은 참담한 것이었다.

대문은 비그러지고, 댓돌은 잡초에 묻힌 채 흙먼지 자욱한데, 기와는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마치 험하게 두드려 잡은 고기 비늘 같았었다. 거기다가 거북의 등

짝처럼 이리저리 갈라져 금이 간 벽이라니.

그 삭막 황량한 집안에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앉은 청암부인은 허리를 곧추세

우고 말했다.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부인의 연치 일흔을 가까스로 넘기 뒤, 일흔 세살에,

한세상을 가볍게 놓아 버리고 숨을 거둔 것이다.

나는 이제, 너무 더운 날 삼복이나, 너무 추워 얼어붙는 동지섣달에는 안 죽

을란다. 일허는 사람들이 고생헌다.”

생전에 늘 그렇게 말하던 청암부인은, 그러나, 봄 가을을 다 두고 천지가 얼어

붙는 동짓달에, 그것도 일년 중에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짓날을 바로 앞둔, 기록

캄캄한 밤의 복판에서 운명하였다.

나 죽은 다음에는 동네 사람들을 후히 먹이라.”

고도 말했었다.

제사 때를 당허면, 아무 음식도 아끼지 말고, 술도 빚고, 떡도 허고, 돼지도

잡아서, 온 동네 사람이 재미나고 풍족하게 먹도록 해 주어라. 나는 생전에도 사

람을 좋아했으니.”

했다는 말은, 매안에는 물론이고 거멍굴의 우물가와 고샅에까지 번져 내려갔다.

문중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과연 종부는 다르시다.”

고 하였고, 거멍굴 사람들은 입이 벌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비죽였다.

아이고, 살아 생전에 엥간히 모질게 했어야 말이제, 소복 입고 시집와서 저

큰 재산을 다 모우도록 오직이나 넘 못헐 일 많이 시켰겄능가잉. 그렁게 죽어서

라도 인심을 조께 써야겄지. 그리야 누구한테 척을 안지고 존 디로 갈팅게.”

그래도, 넘으 말잉게 쉽지. 우리 같음사 어디 그 마님매이로 살라고 하먼 살

겄등갑네? 그 양반이 산 세상 거 아무나 못 사능거이네잉. 열아홉 살 나이에

허물어진 대문으로 시집오계서 저 살림을 혼잣손으로 다 일우셌는디.”

, 왜 못 살아? 나도 양반으로 났이먼, 바가치 하나 달랑 들고 나서도 고루

거각을 지을 재주 있을 거인디.”

양반도 나름이여.”

양반 양반 허지 마시겨, 대대손손 영화 누린 양반이먼 멋 헌다냐. 인자는 너

나없이 창씨 다 해 부리고, 왜놈들 시상이 된 지가 벌쎄 몇 십 년인디, 무신 다

떨어진 양반이여? 천지가 다 개밍을 허는 판에. 그나저나 그 양반 초상나먼 우

리 배도 좀 부르겄그만잉.”

죄 받는다, 그리 말어라잉? 암만 왜놈들이 득세헌 시상이라 허드라도 조선

사람은 어디끄장이나 조선 사램이여. 그러고 조선 사램이 왜놈이름 부른다고 일

본 사램이 되능거잉가아? 껍데기만 그렇제. 이름이야 그께잇 거 머이라고 불르

든지 조선 사램이 어디 가든 안헝게. 우리는 우리 법 떠라야제. 양반이 그께잇

창씨 조께 했다고. 긴 거이 아닌 거이 되능가? 살어온 근본이 다 있는디.”

돌아앉아서는 재재거리던 거멍굴 사람들이 막상 일이 닥치자, 빈천한 살림살

이 가운데서도 콩 한 됫박, 길쌈했던 무명, 시렁 위에 올려 놓았던 늙은 호박이

, 자신도 아끼느라고 못 먹은 금쪽 같은 계란 한줄들을 들고 황황히 원뜸으로

올라갔다.

그 오살놈의 왜놈들 공출만 아니였드라도, 암만 없네, 없네, 이렇게 무색허든

않겄는디.”

별 대단한 것도 아닌 물건들을 들고 초상 마당으로 들어갈 일이 민망 한 사람

들은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매안의 언저리에 버섯처럼 피어나 그곳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거

멍굴이지만, 그 중에서도 원뜸의 대갓집이라면 어서 서둘러서 허드렛일을 하러

올라가야 한다. 원망은 원망대로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또 그 댁의 부스러기도

은덕을 입은 것은 입은 것이었고, 말로는 무엇이라고 한건, 누구라도, 부인의 초

상이 허퉁하고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웬일인지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것 같았다.

대실서방님은 임종도 못 보고, 시방 어디 가 지시능고.”

평순네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대실은 효원의 친정이니, 강모를 그렇게 부

르는 것이다.

부모 임종을 못허먼 천천지 불효라든지, 아무리 손자라고는 허지만, 그거이

어뜬 손자여? 아들보다 더헌 손잔디. 그 손자가 없는 디서 어뜨케 눈을 감으겠

능고, 원퉁허고 그리워서 어뜨케 더나실랑고잉.”

매안의 아랫몰로 넘어가는 개울의 나무 다리 위에 서서 평순네는 허옇게 언

물을 굽어본다. 이 개울은 별로 크지도 깊지도 않은 도랑물이나 한가지이지만,

평순네에게는 실로 깊고 넓은 강물보다 건너기 어려운 경계선이었다. 그것은 거

멍굴 사람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이 물건너 매안은 늘 두려웠다. 그곳은,

쪽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기상의 날이 서 있어서, 고개 한 번 바로 들고 가

본 일이 없었다. 자칫 그날에 베일까, 스스로 움츠러들곤 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 개울이 마치, 저승으로 가려면 건너야 한다는 황천인가 싶

어진다. 이 개울물이 갈라놓은 거멍굴과 매안이 서로 다른 세상이듯이, 이승과

저승은 죽음의 강물을 가로 놓고 사로 다르리라.

거그는 어뜨케 생겠으꼬.”

물을 들여다보던 평순네는 저만치 어둠 속에서 작은 자루 보퉁이를 들고 오는

공배네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이 수긋한 공배네는

팥 한 되 담었는디.”

하고는 자루 보퉁이를 들어 보인다.

무명 목도리를 목에다 감고, 한 손으로는 입을 막은 채 잰 걸음으로 다가온

공배네는 눈을 들어 멀리 원뜸 쪽을 바라본다. 두 아낙은 서로 심성이 비슷하여

나이가 많이 층이 나는데도 무던하게 어울리는 사이였다. 무엇보다, 이런 길에

웅구네가 동행이 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입심이 찰지고, 매사에 성깔

이 갈고리 같은 옹구네가 끼었다면 이 조심스러운 마음도 다 써렛발처럼 벌어져

엇선하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옹구네는 평순네와 달라서, 거멍굴에 자기들끼리 모여 앉을 대면, 매안의 이씨

문중과 원뜸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향하여 이빨 박는 소리를 곧잘 내뱉었다.

뿐만 아니라 눈이 돌아가게 그쪽으로 흘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평순네는 심덕이

온순하기도 했지만, 그 원뜸의 대갓집에 대하여 아무 원한도 가지고 있지 않았

. 오히려 항상 공연히 송구스럽고, 그 드높은 기상이 서릿발 같아서 두려울 따

름이었다.

깨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디, 암만 세도허는 양반이라도 죽을 것을 안

죽든 못허능갑다. 원뜸에 노마님이 오늘 내일 허시능갑대? 우리맹이로 이렇게

개똥밭에 어푸러져 살어도, 우리는 살었응게, 그 냥반 고대광실 부럴 거 없겄제?”

엊그저께만 해도, 옹구네는 그렇게 한 마디 박았던 것이다. 그러니 오늘 동행

이 되었더라면 또 무슨 말을 뱉었을 것인가.

그때, 저녁밥이라고, 콩나물을 몇 가닥 넣고 멀겋게 쓴 죽사발을 비우고 난 공

배네 집으로 평순네가 마실을 잠깐 갔는데, 옹구네가 마침 들어섰었다.

양반도 죽으먼 썩겄제잉?”

갈자리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던 공배네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옹구네를 치켜보

, 부수수한 머리를 이고 앉아 있던 공배는 쩟, 혀를 차며 곰방대를 당겼다.

사램이 죽으먼 아조 죽간디? 혼백은 남능 거이고, 또 멩당을 쓰먼 그 음덕

이 다 자손 만대 내리가는 거이제.”

회색이 다 되게 바랜 머리하며, 꺼멓게 졸아 붙어 움푹 패인 양쪽 볼따구니

때문에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공배가 담배를 빨며 말했다.

멩당? 허기는 멩당이 있기는 있답디다.”

말꽁지를 새침하게 자르는 옹구네를 보고

있다뿐이여?”

공배는 당연한 말이라는 시늉으로 목에 힘을 주며 턱을 안쪽으로 끌어 당겼

. 그리고 지금부터 한 백오십 년 전쯤인가, 이 마을 거멍굴에 살다가 어리론가

떠났다는 갖바치, 갖신 짓던 영쇠라는 사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영쇠가 멩사였드리야. 그렁게 아조 영검이 있는 지관 말이제. 손바닥만헌

쇠만 하나 달랑 들고 댕기먼 다 지관인지 아는디, 그게 그렁 거이 아니여. 그것

도 다 사람마둥 재주가 달러서, 넘 못 보는 자리도 한눈에 척 알어보고, 한번 알

어본 자리가 참말로 과연 멩당이여서 모신 조상도 그 유택이 편안허시고, 후손들

도 모다 발복이 되야야지.

그런디 어디 그거이 아무나 헐 수 있는 일이간디?

아무나 못허는 그 일을 귀신맹이로 집어 내서 잘허는 사램이 멩사여.

무단히 아는 시늉 허니라고, 넘으 조상 뫼를 잘못 써 놓으멈 그런 재앙이 없

잖응게비?

멩당은 다릉 거이 멩당이 아니라 우선 땅이 좋아얄 거 아니여? 땅이 무르먼

못써, 단단히야지.

첫째, 봉분 속으로 물이 들으가서 관이 침수가 되먼 큰일 아닝가? 전에 누구

대에 누가 그랬다등만, 어뜬 조상 산소를 멘리를 해 디릴라고 파묘를 헝게, 관이

기양 물 속으 둥둥 떴드라네. 조상이 그러고 지신디야 후손이 머 잘될 일이 있

겄능가.

두째, 사방으로 바람이 술술 들으가먼 큰일이여. 땅이 퍼실퍼실허먼 바람이 들

으가는디, 나중으는 시신이 기양 새까맣게 끄슬러 버러. 바람에, 그것도 안되는

일이고.

셋째로는, 나무 뿌랭이 뻗어 들으가능 거, 이게 아조 못 쓰능 거이제. 아 그런

이얘기 들은 일 있능가? 거 왜 어뜬 사램이, 일 잘허고 밥잘 먹든 사램이 말여,

하룻나잘, 허리가 아푸다고, 매급시 기운을 못챙기고 시르르 드러눕드니만,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낫들 안허고 무장더헌단 말이여. 벵신 한가지로 일어나도 못허

, 나 죽는다고 울어댕게. 옆으 사램이 하도 폭폭해서 당골네한티 점을 치로 갔

드라네. 그런디 대박으 당신 여그 오지 말고 얼릉 아무 아무 산소로 가시오,

런단 말이여. 거그는 왜요? 묻지도 말고 얼릉 가씨요. 가서 멋을 어뜨케 허끄라

? 어릉 가서 제사지내고 허리 풀어 디리시오. 허리를 풀어요? 가 보면 앙게

얼릉 가시오. 점 치로 갔든 사램이 무신 일잉가 싶어서 대체나 당골네 말대로 얼

릉 그 산소로 갔드라네. 그런디 산소 옆으 전으는 못 보든 낭구 하나가 지둥맹

이로 섰드란 말이여. 아하, 그렇구나.

짐작되는 거이 있어서 묏동을 파 봤드니, 그 낭구서 뻗은 뿌랭이가 무신 구렝이

맹이로 백골 허리를 감고 있드라네.“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신 그래서? 두말 더 헐 거 없이 도치로 뿌랭이를 찍어냈는디,

그 도치를 어깨에다 메고, 저엉(저녁)때가 다 되야사 집으로 돌아옹게, 그 아푸

다고, 나 죽는다고, 몇 삼 년씩 누워 있든 그 사램이, 뒷짐을 지고 마당을 왔다

갔다 험서, 아이고오, 꽃도 참 좋다, 그런디 어디 갔다 오냐고 묻드라네.”

시상에, 아푼 사램이 다 낫어 갖꼬 꽃귀경허고 있었구만이요?”

하먼. 그러고 또 있어. 그게 끝이 아니여, 네째로는 벌거지나 짐승들이 산소

에 침범을 허먼 못써.”

왜 거 여시들이 달밤이먼 묏동 속으로 들으갔다 나왔다 험서 뼉다구를 허옇

게 물어 낸다고 허는, 그런 이얘기지요?”

잘 아네?”

그러고 또 머이 못씨까요?”

그런 일도 있기는 있능갑대. 하관을 헐 때는 분멩히 반듯허게 모셌는디,

상허게 나중으 가서 이장을 해 디딜라고 보먼 시신이 엎어졌거나 우아래 상하가

바뀌는 수도 있다대.”

에이, 그것은 잘못 아셌능갑소. 어뜨케 시신이 땅 속으서 재주를 넘는다요?

묻는 사램이 몰르고 깜빡 뒤집든지 엎었든지 헌 일이겄지.”

옹구네가 공배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공배는

그렁가?”

했다. 처음에는 옹구네 말뽄이 얄미워서 눈을 흘기던 공배네도, 먼저 와 있던 평

순네도, 공배의 이야기에 섞여들었다.

그런디, 영회가 어쩐다고요?”

평순네가 묻는다. 그네는 자신의 남편이 곰배팔이인 것이 혹시 누구 산소를

잘못 쓴 탓인가, 해서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 영쇠가, 본디 여그 살든 백장이였는디, 그 아배 때도, 소도 잡고, 돼야지도

잡고, 개도 잡고, 다 잡었는디, 이 영쇠는 에레서부텀도 아배 일은 안 배울라고

그러고, 밥만 먹으면 휘잉허니 기양 나가 부러, 산으로만 댕겠드라네.”

멩사 될라고요?”

머 에레서야 꼭 그럴라고 그맀겄능가잉? 하이간이 머엇이 씨여서 그랬는

지는 모르겄지만 그랬드래. , 자고 새서 눈만 뜨면 뵈이능 거이 산 아닝가?

디를 가드래도. 그렁게 날이 날마둥 그렇게 댕게도 안가 본 디가 있었겄제. 첨으

는 그 아배가, 자가 약초를 캐로 댕긴다냐아, 꿩을 잡으로 댕기다냐, 그랬등갑서.

그런디 맨날 해 넘어가먼 빈손으로 털레털레 기양 오그덩.”

그래서 그 아버지도 물었다.

, 너 멋 허로 댕기냐?”

그때 영쇠는 겨우 여나믄 살이었다.

아배. 산이 자꼬 나를 불르요. 나를 불릉게 가지요.”

야가 머이 헛것이 씌였능게비? 무단헌 산이 너를 왜 불러? 소 잡고, 돼야지

잡고 살 놈이 왜 집구석으가 안 있고 산속으로만 헤매고 댕게?”

아배, 나는 그렁 거 안허고 살라요.”

안허면 너는 멋 처먹고 살라고?”

신이나 갈쳐 주시요.”

?”

소 잡고, 돼야지 잡는 일은 나는 헤기 싫고, 아무 일도 안허먼 먹고 살 수가

없을 거잉게, 까죽으로 짓는 이뿐 까신이나 맹금서 살라요.”

저것이 어린 속에도 짐승 잡는 백정의 신세가 서러워 저러는가 싶은 그 아버

지는

이놈아, 니가 팔짜가 기박해서 이런 집구석으가 났는디, 서러워도 어쩌겄냐.

바꿀 수도 없는 거이고.”

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배. 사람은 산에 지대서 살어야고, 산에서 얻어먹고, 산으 품으로 돌아가

는 거인디요. 산이 우리 어머이 뱃속이그던요. 산은, 하늘으 별자리가 땅에 떨어

져서 된 거이라데요. 그렁게 산으 탯자리는 하늘 아닝교? 우리 사람은 산이 탯자

리고요. 거그서 떨어져 나와 갖꼬 이 세상으서 살다가, 인자 죽으먼 다시 지가

나온 구녁으로 들으가는 거이 무덤이요. 나는 그 자리를 보로 댕기는 거이요.

만히 산을 보고 있으먼 그거이 자꼬 내 눈에 뵈이요. 그렁게 무단히 머에 홀린

것맹이로 자꼬 산속으로 가게 되야요.”

그 아버지는 어린 영쇠의 말에 입이 벌어져 다물지를 못하고는

멩사 나겄다.”

하더니 더는 영쇠를 채근하지 않았다.

인자 나 죽그덩 니가 존 디다 써 도라.”

하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었다.

그 영쇠가, 하도 쇠를 영검허게 잘 바서 영쇤지 본래 이름이 영쇤지는 몰르

겄는디. 세월이 마않이 가고는, 지 말대로 까신쟁이가 되야 갖꼬 이 마을 저

마으로 떠돌아 댕김서, 부잣집으 까신도 지어 주고, 신이 이뿌다고 대접을 자

허먼 그 집 행랑으로 잠도 자고 그럼서 사는디. 가다가 혹 어뜬 집이 초상이 나

, 지니고 댕기는 쇠로 묏자리를 바 주었드란 말이여. 그런디, 참 잘 본단 말이

. 자연히 소문이 나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이름이 났지.”

그러면서도 그는 거멍굴에서 아주 어디로 가지는 않았다. 그저 얼마를 떠돌다

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한 철이고 얼마고 머물곤 하였다.

그때가 아조 더운 여름이였는디, 영쇠가, 더워서 그랬등가, 어디로 안가고

여그 눌러 있었제. 하루는 매안으 어뜬 댁이서, 신 지어 오니라, 헝게는, ,

그러고는 하나 잘맹그렁서 갖다 디리고 내리오는 질이었겄다. 시원헌 대청마룽

에 덩그렇게 울라앉은 양반을 뵈입고 내리오는 질인디, 여그 오자먼 왜 아랫몰

모퉁이에 다랭이 있잖드라고? 손바닥만헌 논 말이여. 거그서 어뜬 알 만헌 양반

하나가 논바닥에 꾸부리고 지심을 매고 있드란 말이여? 저거이 누구냐, 허고 가

찹게 가 봉게 대체나 아는 양반이여.”

그는 매안의 문중에서도 형세가 몹시 빈한한 방죽골양반이었다.

그래서 그 당랑이나마 방죽골양반의 전 재산이었던 것이다.

샌님.”

왜 그러는가?”

멋 허시오 예?”

보면 몰라서?”

아이고, 더운디 먼 지심을 혼자 그렇게 매고 지싱가요?”

암만 더워도 일을 해야지, 내가 안허면 누가 해?”

양반이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림서 지심을 맹게 왜 우습소예.”

별 소리를 다 허네. 양반이라고 여름에 더운데 땀을 안 흘리는가?”

논 안 매먼 땀도 안 나지라우.”

종이 있어야지.”

저 원뜸으로 강게 시원헌디 좋게 앉었든디, 샌님도 그러고 앉어 기시먼,

님도 안 더웁고, 다른 사람 눈에도 좋아 뵈일 거인디요.”

그 집은 부자고, 나는 가난허니 서로 여름 지내는 것도 다르지.”

샌님.”

왜 또 불러?”

저 좀 따러오실라요”?“

일허다 말고 어디를 가?”

제가 봐둔 묏자리가 한 자리 있는디 일러 디리먼 쓰릴라요? 아 이렇게 더

운디, 같은 양반으로 나서 누구는 좋게 사고, 누구는 놉도 없이 지심 매서 어디

쓰겄능교? 샌님이 평소에 저를 백장것이라고 하대 안허시고 저 같은 것 말대꾸

도 해 주신 정리를 생각고, 아무한테도 말 안헌디 하나 일러 디리먼, 저를 믿고

쓰실랍니까?”

영쇠가 이끄는 대로 손에 쥔 풀을 놓고 논에서 나온 방죽골양반은 이윽고 한

곳에 이르렀다.

산천으 꽃은 혈 아닝기요. 이 혈이 정기를 낳는디, 꽃이 한 가닥 가지에 의지

해서 피었다고 허드라도 그 피어난 자리에 따라 탐스럽기도 허고 안 그렇기도

허잖에요? 샌님, 제가 봐둔 디가 사실은 두간디가 있그던요. 한 간디는 지금 바

로 발복을 허는, 당대 발복멩당이고, 다른 한 간디는 좀 더 뒤에 후손 발복이라,

샌님 생전에는 그저 끄니 걱젱이야 않겄지만 벨 효력은 없고요. 샌님은 어디다

가 쓰먼 좋으시겄능가요?”

후손 발복이라니, 그게 대체 얼마나 되는 후손을 말허는가?”

한 삼백 년 뒤에 오는 후손이지요. 제세 인물이 나고, 한 나라를 다스릴 만

헌 자손이 나오는 자린디요.”

당대 발복이라면 어느 정도고?”

샌님 당대에, 한 삼백 석 추수는 실허게 허실 거입니다. 그런디, 여그는 샌

님 한 대에만 그렇게 발복허시고 바로 끝나는 자리지요.”

삼백 석이면 적은 곡식이 아닌데, 내 당대에 그만큼 일어난 살림이 라면 못

가도 삼대는 내려가지 않겄는가.”

여그가 조리 멩당이그던요.”

조리 명당?”

. 왜 쌀이나 보리 일어 먹는 그 조리요.”

조리 명당은 왜 당대 발복으로 끝나는고?”

암만 수북허게 쌀을 일어 담어도, 가득 차먼 쏟아내 버리능 거이 조리 아닝

? 그것허고 같은 이친디요, 샌님, 지금 저어그 저 산 말랭이 능선이 뵈이시지

? 저그서부텀 바로 요 앞으까지 쭈욱 뻗어내린 기운이, 저 맥이 조리 자루고

, 지금 서 잇는 여그는 조리 바닥인디요. 샌님이 지금 형편이 궁허시니 바로

발복허실 자리로 뫼시고 오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봉게, 삼백 년 후에고, 삼천 년

후에고, 내 속으서 난 내 후손이라먼 다 내 몸이나 한가지라, 차라리 기왕으 일

러 디릴 바에야 한 나라를 다스릴 만헌 인물을 샌님 후손에서 나오게 해 디리먼

어쩌겄능가 싶어지등만요. 어쩌실라요?”

방죽골양반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한참 만에 말했다.

지금 당장 밥해 먹을 쌀도 없는데, 언제 삼백 년 뒤에 오는 후손 발복을 기

다릴꼬.”

그런 후손이 내 핏줄에서 나온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애석한 마음을 떨어버리고 샌님이 하는 말을 들은 영쇠는

알었습니다.”

하더니 땅에 귀를 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소를 머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샌님, 이리 와서 이 소리 좀 들어 보겨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아니, 산중의 땅 속에서 무슨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참 소리 좋다. 이게 맥을 바로 짚었다는 증거지요.”

어디?”

영쇠처럼 귀를 땅에 댄 방죽골양반은, 저 알 수 없는 신령스러운 곳에서 은밀

하게 울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톰방, 톰방.

그것은 참으로 맑은 소리였다.

아이고, 그렁게 소코리나 조리에 쌀 일어서 두먼 물 떨어지능 거이나 같은

거이지요? 그래서, 방죽골양반은 영쇠가 일러 준 디다가 참말로 산소를 썼당가

?”

썼제, 방죽골양반 아부님 산소를 그리 이장해 디렸제.”

그 말대로 되얐대요?”

하먼, 그렁게 멩사라고 안허능게비.”

그렁게, 당대에 삼백 석 추수를 바로 했드란 말이요?”

하아, 남노여비를 거느리고 호제끄장 두었드래.”

아이고, 그러먼, 또 그 당대에 참마로 조리쌀 털어 내디끼 그 재산을 다 엎

어 부렀으까요?”

방죽골양반 살아 계실 때까지는 그대로 했제잉. 그러다가 그 아들대에 어찌

어찌 스름스름 다 없어지고, 나중에는 그 다랭이 논 한 마지기만 남었드라네.”

아이고, 아까워라. 한 재산 이룬 거이 무신 꿈꾼 것맹이였겄네요.”

그렁게 말이여.당대에 잘 먹고 살다 갔응게 그것만으로도 고생헝것보다는

갠찮지마는, 그래도 삼백 년 후를 기약해 두었드라면 그것도 갠찮했을 거인디.”

공배는 볼따구니가 우묵하게 들어가도록 담배를 빨아들이며 그렇게 말했다.

단 하나 어린 것도 무릎 아래 두지 못한 공배는, 삼백 년 뒤의 후손을 바라본다

는 호사는커녕, 지금 당장 자신이 죽으면 제삿밥을 챙겨 줄 자식 하나 없는 것

이 새삼 한심하였다.

그 공배의 심중을 헤아린 공배네는 얼른 눈짓으로 사람들을 보내고 말았었다.

그것이 불과 며칠 전 일이었다.

하루하루 뼈는 늙어가고, 아무 이루어 놓은 것 하나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처

량하여 공배네는, 같이 걸어가는 평순네에게

그래도 이승이 더 좋은 것일랑가.”

하고 말을 붙였다.

평순네는 대답 대신 함숨을 쉬며, 지금 막 초혼 고복을 하고 있는 인월댁의

서럽고 긴 목소리를 바람결에 귀기울여 듣는다.

 

청아암 부이인 보오옥.

 

차갑게 끼쳐드는 바람이 옷갈피로 파고든다.

그 파고드는 바람에 인월댁의 삼키는 울음 소리가 묻어 있다.

평순네는 고개를 들어 노적봉의 캄캄한 산마루를 올려다보았다. 먹빛으로 쏟

아질 것 같은 그 산마루 저 너머로, 어둡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희부윰한 기운이

드리워진 하늘이, 가 본 일 없는 다른 세상 어디론가 그 자락을 아득히 펼치고

있었다.

저 너머가 저승일랑가.

그네는 얼핏, 그 노적봉 산마루 어디쯤으로 청암부인이 아무도 없이 홀로 고

적하게 가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5. 아름드리 흰 뿌리

 

구름인 양 쪽찐 머리

몇 해 되면 흙 되련가

 

아직 젊은 나이 숱이 많아 무성한 검은 머리에 자주 댕기 붉은 입술을 물릴

적에는, 그것이 곧 흙인 줄을 누구라서 알 리 있으리.

아침마다 참빗으로 찰찰이 빗어 내릴 때, 그 기름 돌아 흐르는 맑은 윤기는,

흡사 물오른 꽃 대궁같이 신신하여, 단을 자르면 그 자리에 금방이라도 투명한

진액이 어리어 묻어날 듯하지만.

그런 모양은 한낱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던가.

그날 보던 경대의 거울빛은 여전히 맑은데, 어느 하루 무심한 햇발이 비친 머

릿결은, 사위는 가을 풀처럼 기운이 없다.

그러다가 다시 보면 스산한 귀밑 머리 서리보다 희어, 말 그대로 상빈을 이루

.

허망하다.

문득 명부의 습기가 시리게 끼쳐들어, 성근 머리 속이 더욱 수늘한데. 경대 서

랍의 백동 장식에는 손때 그친 푸른 녹이 적막하게 슬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만 해도 이승의 호사이리라.

빈 산에 홀로 누워 뼛속에 흙이 차면, 빗던 머리 대신으로 쑥대가 우거질 때,

바람이 빗어 줄까, 달빛이 쓸어 줄까.

베개에 묻어 있는 청암부인의 낙발 몇 오라기를 줍는 홈실댁의 나이 든 손이

허전하게 떨린다. 타 버린 검불의 재와도 같이 힘이 없는 머리카락은, 집어들어

백지에 올려 놓기도 전에 스러져 버릴 것만 같다. 그러나 그것은 함부로 할 수

가 없다.

자단향을 깎아 넣고 오래 끓인 물을 두 개의 놋대야에 각기 담아 온 부인들

, 시신의 왼쪽과 아래쪽으로 조용히 앉는다. 떠 온 물에서는 그윽하여 아득한

향기가 피어 오른다. 참으로 먼 곳의 향기이다. 그 향기는, 시방에 모여 앉은 부

인들의 머릿결과 저고리와 치마의 갈피로 스며들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저승의

그림자로 에워싸며 자욱하게 하였다.

한 할아버지의 자손인 동고조 팔촌 이내의 복입는 부인이 아닌 무복친이면서,

문중에서도 각별히 범절이 남다르고, 생전의 청암부인과도 같은 항렬로 도탑게

지냈던 홈실댁은 망인의 습을 하려고 둘러앉은 동종 부인들에게 낮은 소리로 절

차를 이른다.

그저 공손히 하는 것이 제일이요, 슬퍼하는 것은 그 다음인즉.”

시신을 대할 때 반드시 정성을 다하라고 하였다.

자단향 물을 적시어 머리를 감기고 깨끗한 무명 목건으로 닦은 다음 가지런히

빗질을 하는데, 힘 없는 낙발 몇 올이 빗에 묻어났다. 그것을 아까처럼 백지 위

에 조심스럽게 올려 놓고, 검은 흑단으로 댕기를 감아 흰 머리를 묶는다.

이제 다시는 이처럼 머리를 빗는 일이 없으려니, 살에서 물러난 머리털 흙 속

에 흩어지고, 반듯한 가리마 길 어느결에 무너져, 그 위에 더북한 청초만 덧없는

바람결에 나부낄 것인데.

홈실댁은 한숨을 쉰다.

눈을 감은 망인의 얼굴을 씻기고, 약간 오그린 듯도 하고 방심한 듯도 한 둣

손을 씻기고, 욕건에 물을 축여 상하체를 고루 씻긴 뒤에,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거두어 내며.

사람의 몸이 이렇게 작은 것인가.

다시 한숨 지었다.

그네는 이미 수기없는 마른 몸을 하염없이 내려다본다.

본디 청암부인의 체양은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천문, 인문, 지문이라 일컫는 주름, 삼문이 잘 갖추어진 넓은 이마와 두드러진

양 광대뼈, 그리고 두툼하고 긴 코에 풍요로운 턱은, 깊고 높은 오악이 분명하고,

어여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색이라기보다는 제세의 호걸같은 기상을 느끼게

하였다.

웬만한 남자라도 올려다볼 만큼 키가 크고 어깨가 우뚝한 부인은, 삼동의 골

격이 두루 당당하여, 그 기혈은 추상 같은 위엄을 뿜어 내고 있었다.

거기다가 눈매에 맺힌 서릿발이라니.

집안의 남노여비나 머슴이나 호재는 물론이고, 대소가와 문중의 사람들, 그리

고 집안에 출입하는 손님들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라도 부인에게는 함부로 범접하

지 못하였다. 부인의 서릿기운에 질린 이쪽이 자기도 모르게 얼어붙는 때문이었

.

그리고 음성은, 보통 평온하게 말을 할 때에도 우렁우렁 울리는 편이었는데,

만일 무슨 노여운 일이나 잘못된 일이 있어 호령을 하고 꾸짖을 때는 벽력 뇌성

을 치는 것 같아 기둥머리가 흔들리고, 듣는 사람 혼이 있는 대로 빠져 버리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부인의 체용은 그 엄숙한 위의가 둘레를 제압하는 큰 산악같고,

상은 상기횡추, 뻗친 서릿기가 가을 하늘에 비낀 것 같았다.

그러나, 덕이 있는 산악은 우뚝 솟은 봉우리를 구름 위에 두면서도 치맛자락

기슭에는 옹기종기 마을을 기르듯이, 청암부인 또한 문중의 집집마다 크고 작은

일 있는 것과, 저 윗대에서 갈리어 나간 작은집이 창성하여 다시 큰 동네를 이

룬 구선동의 일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웃 반촌 둔덕이며 그 너머 서로 혼인할

만한 가문인 동제간의 삼동네 대소사를 잊지 않고 염려하였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매안의 아랫몰 한쪽에 비스듬히 살고 있는 타성바지 아낙이, 그날, 날이 저물

도록 밭에서 콩을 따고 있는데, 마침 도선산의 잔등이 하나 너머에 있는 작은집

동네 구선동에 안서방네를 데리고 다녀오던 부인이 밭에 엎드린 타성을 불렀다.

내 오다 보니 그 집에 연기가 안 나던데, 오늘이 너희 조부 제삿날인 것을

알고 있느냐?”

그 말에 깜짝 놀란 아낙은 목덜미가 홍시같이 붉어지며 당황하여

아이고 마님, 오늘이 메칠잉기요?”

소리조차 차마 하지 못하고, 연신 송구스러운 몸짓으로 두 손만 비비고 있었

. 아낙은 타성들 중에서도 귀가 빠지는 상민이었다.

청암부인은 쯔쯧, 혀를 찼다.

사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찬 물 한 그릇이라도 정성을

다해서 올리고 도리를 챙겨야지. 그래 어찌 제 조상의 기일을 잊어 버린단 말이

.”

아낙은 점점 더 고개가 수그러져 옹송그린 등허리가 둥그렇게 되었다. 그런

아낙을 뒤로 하고 원뜸으로 올라온 그네는, 안서방을 시켜 조기와 과일 몇 가지

를 아낙의 집으로 내려 보냈다.

그 이야기는 곧 마을에 번져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머리 속에 만권 장서를 쌓아 놓은 것처럼 지견이 풍연한 부인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다가 마치, 따로 한 권의 책을 특별히 꾸며 두기나 한 듯,

온 문중의 기제사며 생일, 회갑 등을 안팎으로 다 기억하고 있는 청암부인에게,

사람들은 항상 공경과 어려움을 함께 느꼈다. 그것은 매안의 문중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씨 집안의 사가들과, 동제간의 반가에 있는 애사와 경사를

반드시 기억하고 있다가, 거동을 하거나, 인사 물품을 보내거나, 아니면 편지,

은 말로라도 예식을 갖추었다.

거미줄같이 복잡한 그 날짜들을, 단 한 번도 뒤섞이게 한 일이 없는 그네는,

, 눈만 감으면 필요한 부분의 기록이 소상하게 펼쳐지는 사람같이 정확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다 외우시느냐고, 신기하다는 듯 문중의 질녀뻘 되는 누가 찬

탄하는 말을 했다가, 오히려

별 것이 다 신기하구나. 너는, 끼니마다 밥을 먹는 것도 신기하냐? 밤이 오

면 잠을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 세수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이런 일을 안

잊어 버리고 챙기는 것이 사람이라면 마땅히 행해야 할 기본 도리일 뿐이지,

엇이 그렇게 신기하단 말이냐? 천하에 불상 것들이나 허는 소리를 부끄러운 줄

도 모르고 어디서.”

하는 벼락 같은 꾸중만 호되게 들은 일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 대상이 타성바지에게까지 이를 줄이야.

그것은 미처 짐작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라에서 임금이 몸소 이름을 지어 현판을 하사하시고, 그에 따른 책, 노비,

토지를 함께 받은 사액서원이 있는 마을이어서, 매안에는 타성들이 여러 가

호 사고 있었다.

현유의 위패를 모시고 유림들의 학문을 장려했던 서원들이 거의 모두 강제로

철거될 무렵, 고종 8년 삼월 열여드렛날, 매안서원도 무참히 헐리었는데,

그 훼철령 이후에도 서원에 딸린 사람들은 그냥 매안에 눌러 남아 근근이 살았

.

자작 일촌을, 동성의 문중이 벌족하게 이루고 사는 사부향에 뉘처럼 섞인 타

성바지란, 연유 곡절 여하를 막론하고 천한 대접을 받았다.

물론 타성바지 안에도 구분은 있었다.

상놈이라고 하대하는 상민과, ‘하게를 붙여 주던 중인. 중로, 그리고

겨우 양반이라는 소리를 얻어듣던 무세한 반족이 서로, 몇 집 안되는 타성끼

리도 삼엄하게 나뉘는 것이다.

상놈도 또 구분이 있어, 한 칸 띠집이나마 제가 살 집을 지니고 누구한테

매이지 않은 몸으로 제 먹고 살 궁리를 제가 하는 사람과, 종이나, 호제로 남의

집에 매어 살고 있는 사람이 서로 다르다.

창달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전답이나 마찬가지로 문서에 적힌 종을 여

러 명, 혹은 몇 명을 받은 자손은, 남노여비 할 것 없이 그것을 모두 재산의 한

목록으로 정리하였으니, 종이란, 생사 존망이 제 손에 달려 있지 않은 존재였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출가하는 딸에게 재산 상속으로 전답 문서를 나누어

주면서, 말미에

종 아무개가 비부를 얻어 새끼를 낳으면 그 첫배는 너에게 준다.”

는 말을 적기도 했으니, 새끼는 송아지와 다를 바 하나도 없었다.  

머슴은, 일정한 시한을 서로 약조하고 고용살이를 하며 그 일한 대가로 곡식

이나 돈을 받는 사람들인데, 새경은 보통 연말에 계산을 한다.

그리고는, 그대로 더 눌러앉아 머슴을 살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든지는 제

생각대로 할 수가 있었다.

머슴을 많이 부리는 집은, 큰 머슴, 작은 머슴, 새끼 머슴, 담살이, 이름도 다양

하고, 머슴 쪽에서도 굳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으면서 한 집에서 오래 있다

가 늙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호제는, 종도 머슴도 아니지만, 양반의 집에 들어가 한쪽에 살면서 안

팎으로 종이나 머슴과 똑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다.

같은 성씨 한집안간이라 할지라도 다 각각 앞앞의 살림은 규모가 다르므로,

어떤 집은 대대로 여러 명의 종을 부리지만, 어떤 집은 머슴 하나 두지 못한 채

자기 손으로 논밭을 매야 한다.

그러나, 종은 없으면서도 농사를 많이 짓는 양반은 보통 머슴들을 부리는데,

그것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하고 농사일은 많고 할 때, 갑자기 어디서 누구를 종

으로 데려올 수도 없는 일이니, 형편대로 호제를 두는 것이다. 물론 종이 있어도

호제를 또 두는 집도 있다.

집안에 남는 방이나 아래채, 혹은 대문 양쪽에 붙어 있는 행랑을 내주어, 내외

면 내외, 아이들이 있으면 아이들까지 함께 들어 살게 하고, 그 대신 일을 하도

록 부리는 호제는, 중로(중인) 이하의 사람들이다.

대개 신분이 미천하고 가진 재주 없는데다가 집도 절도 없이 궁박한 처지인

호제들은, 웬만하면 어디로 가지 않았고, 한 집에서 대를 물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가운데 청암부인이 온 마을의 어른으로서, 비노리 풀같이 하찮은 타성바

지 아낙에게 그 할아비의 제삿날을 일깨워 준 일은, 반상을 가리지 않고, 듣는

사람에게 송연한 충격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부인의 눈과 흉중에 든 세상의 넓이가 얼마만한 것이며, 그 세

상의 위로 높은 곳은 어디까지 이르고, 아래로 낮은 곳은 어디까지 손금 보듯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인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데서 오는 경악과, 그네의 눈매

에서 누구라도 단 한치라도 벗어날수 없다는 두려움, 그리고 결코 그 눈 밖에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조심스러움이 뒤섞인 심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문중으로 갓 신행을 온 새댁을 경우에는 어떠했겠는가.

온 남원 군내를 우렁우렁 울리고도 남는 청암부인의 기상과, 그 행하는 범절

, 열아홉 소년 청상의 몸으로서 오늘의 가세를 일으킨 엄청난 힘에 대해서 미

리부터 다 듣고 온 새각시는, 원뜸의 대종가로 올라오기 전부터도 벌써 속이 후들

후들 떨린다.

집안에 새 식구가 들어오는 것은 언제라도 즐겁고 새로운 일이어서, 새각시

시댁의 가까운 대소가를 물론이고, 온 마을의 이 집 저 집에서 갖은 음식을 다

장만해 놓고 새각시를 오라 청하는데, 이때는 저녁마다 흥겨운 잔치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어디도 가기 전에 맨 먼저 찾아 뵈옵고, 극진한 예를 올려야 한

는 곳이 바로 원뜸의 대종가였다.

그곳에는 이미 문중의 부인들이 일찌감치 먼저 올라가서 온 방안 가득히 모여

앉아 웃고 이야기하며 청암부인과 함께, 새각시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으레, 집안 부인들이 매안으로 신행 오던 날이 이야기되는데,

중에서도 원뜸에 올라와 청암부인께 절하던 정경이 제일 큰 이야깃거리였다.

연하게 고운 초록 저고리와 다홍 치마를 입고, 대종가의 대문을 들어서던 그 순

간이야말로, 이씨 문중으로 시집은 부인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길

만큼 화려하고, 준엄하고, 긴장되면서도, 한편 자랑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이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는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낳아 주신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던 친정을 떠나, 이제 지아비의 집안에 첫발

을 들여놓는 순간을 누구라서 잊을 수 있으리오만, 원뜸의 솟을 대문과 구름 같

은 골기와 지붕이 장엄하게 눈앞에 들어오던 정경은 어린 새각시의, 이제 막 유

충의 고치를 벗고 나비로 날아오르는 수줍은 눈에는, 아찔하게 아득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금이 오그라붙는 긴장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이다.

새각시를 보려고 대종가에 모인 사람들이 방안에 가득한데, 숨을 못쉬고 눈을

내리깐 새각시는 발이 마당을 짚는지 공중을 짚는지 모르게, 오직 온몸의 힘을

다하여 얌전하고 조심스럽게만 걸음을 떼었다.

아마, 내 평생에 그렇게 조심스럽고 어려운 절은 다시 할 일이 없을거요.

이구. 절이 그게 그냥 허는 게 아닌 줄은 알었지만.”

이것은 이씨 집안 며느리라면 어느 누구 한 사람 빼놓지 않고 꼭 같이 하는

말이었다.

칼날에 베일 것 같은 아슬아슬한 조심으로 문지방을 넘은 새각시가 방안으로

들어설 때는

숨을 명주 오라기만큼밖에 못 쉬었다.”

는 말이 저절로 나오도록 숨을 죽였다.

그때는 온 방안의 사람들도 다 숨을 죽이고 새각시를 지켜 보았다.

이미 문지방을 넘어올 대 청암부인의 일별은 새각시의 됨됨이와 친정의 가르

, 범절 등을 알아보고도 남았을 것이지만, 아직은 다 본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새각시는 청암부인 앞에 다소곳이 눈을 내리뜨고 서서 지극한 공경이

예를 다하여 공손히 평절을 한다. 두 손을 이마 위에 마주 대고 앉아서 하는 큰

절보다, 오히려 평절이 더 어렵다.

절을 하기 전에, 구름 위에 뜬 것처럼 날아갈 듯 가볍게 서 있는 모습은 전아

하고 맵시가 있어야 하며, 모으고 선 두 발도 안순음전해야 한다.

그리고 사르르 앉을 때는, 마치 꽃잎이 곱게 날아앉는 듯 소리없이, 꺾이거나

기우뚱거리지 않도록, 언제 앉는 줄 모르게 앉아야 하며, 두손을, 다소곳이 모아

눕힌 양 무릎 바깥쪽 방바닥에 내려놓을 때, 역시 살포시 어여쁘게 놓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고개를 수그릴 때는, 공경하는 심정이 가슴에서 우러나와 그

마음을 공손히 조아려 바치는 아름다움이 진정으로 무르익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 팔굽을 굽히면 안된다.

그렇다고 뻗장다리처럼 버티고 앉아서 고개만 툭, 떨구었다 쳐드는 것은 상놈

의 절이라고 호된 꾸중을 듣는다. 곧고도 부드럽게 펴서 잘생긴 나뭇가지처럼

어깨를 받쳐야 고개가 납작 앞으로 어푸러지지 않고, 절 하는 이의 모습에 품격

이 있으며 모양이 아름답다. 절은 예와 미의 꽃이라, 하는 이도 받는 이도 향기

로와야 한다.

연꽃송이, 매화송이, 모란을 받치듯이 조아린 고개를 따라 사푼히 기울이는 등

허리의 안존함, 위에, 절 받는 눈길이 다사로운 미소를 내린다. 그러면, 고개를

들고 공손히 조용하게 일어섰다가, 다시 처음같이 앉는다.

절 한 자리 허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은 물론이고 친정, 외가, 진외가까지 다

보인다.”

고 청암부인은 말했다.

양반의 절이란 우아하고 격이 있어 점잖어야 한다. 무슨 절을 그렇게 교색

으로 간드러지게 허느냐. 기생이라면 모를까, 여자 교색이란 남의 눈에 드러나면

천격인 법이다.”

간신히 절을 다 하고 부인 앞에 앉은 새각시를 향하여 이렇게 한 말씀 내리

, 새각시는 콧등에 땀방울이 돋아나며 어쩔 줄을 모르고, 그말은 곧 지엄한 꾸

중이어서 큰 흉이 된다.

이 첫번째 대면에서 무슨 말씀을 들었는가는 문중 부인들의 관심거리였다.

리고 그것은 나중에까지 두고 두고 그 새각시를 재는 기준이 되었다. 첫자리의

첫절이 그렇게 무서웠다.

절하는 자리에서 새각시는, 시댁의 범절 앞에 자신의 친정 가문의 범절을 여

실히 보여 주게 되는 셈이어서, 단순히,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는 의례

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개는 별 말씀 없이 절을 받지만, 그 면전에서 크게 꾸중을 듣고 불호령을

들은 새각시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너 그 절 어디서 배웠느냐?”

이 한 마디만으로도 이미 백 마디 만 마디를 들은 것과 같았다.

눈만 빗득 잘못 떠도, 앉고 서는 것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걸음 떼는 발이 자

칫 덤성 조심성이 없어도 바로 흉이 되었다. 방정맞고 수선스럽게 절을 하면 상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너 신행 너무 일찍 왔다. 가서 다시 처음부터 새로 배워 오너라.”

방바닥에 눈물 떨어지는 소리가 툼벙 툼벙 들리던 그 새각시들은, 그러나 해

가 바뀌고 또 이듬해가 되고, 삼 년이 지나고 하면서 점점 절하는 모양이 고와

지고, 드디어는 남의 절을 흉보게 되곤 하였다.

아무리 매운 꾸중을 들었어도, 다시 원뜸으로 절 하러 갈 일은 얼마걸러 곧

생기기 마련이고, 같은 말씀 또 듣지 않으려면 잠을 안 자고라도 다리가 붓게

연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니 자연 다른 버릇도 스스로 깨우쳐 고칠 만큼도 되었다.

하여, 이 집안 범절의 엄중함이 어느 누구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게 되는 것

이다.

물론 그 중에는

어여쁘다.”

양반이 분명허구나.”

칭찬을 받는 새각시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 말씀이 없거나 고개만 끄덕이어도 새각시는 황감하여 안도의 한

숨이 남모르게 새어 나왔다.

절을 하고 나서도 다 끝난 것이 아니어서, 나갈 때, 만일 무망간에라도 어른에

게 엉덩이를 보이고 돌아서는 날이면, 뒤꼭지에 떨어지는 불호령에 소스라쳐 혼

이 다 흩어지고 만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알던것도 잊어 버리고, 않던 짓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치며 사뿐히 문지방을 넘어가야 비로소 절차가 끝난

것인데 절을 하고 막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흉이 퍼져 마을로 날아갔다.

청암부인은 절을 받을 때만 그리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동거지 하나

라도 잘못된 것이 눈에 뜨이면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한번은, 무슨 일로 동촌댁 질항의 집에 잠시 들렀는데 꾸중을 한 일이 있었다.

본시 사람은 착한데 성품이 맺힌 데가 없고 게으른 이 사람이, 남편의 저고리

동정이 오래 되도록 갈아 달지 않아, 가무름하게 때가 오른것을 천연스럽게 횃

대에 걸어 놓은 모양이 본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로고, 저 저고리 동정 좀 보소. 사람이 신, , , 판이

라고, 우선 의관을 단정히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거늘, 제 서방 옷 형상

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낯으로 고개를 들고, 나요, 허는고.”

동촌댁은 기어 들어가는 자라목으로 황급히 저고리를 끌어내려 우물쭈물 구석

지에 치웠다. 그래서 또 내처 꾸중을 들었다.

옷이란 그 사람의 몸이나 한가지인데, 남편 옷을 그렇게 아무런 정성도 없

이 함부로 구겨서 아무 데나 박아 넣으면, 그게 제 남편을 구겨 박는 것하고 무

엇이 다른가. 세상에는 공것이 없느니, 내가 정성을 들이면 들인 만큼 내 앞으로

쌓이는 법인 걸, 정성 한 톨 쌓지 않고 무슨 염치로 해뜰 날을 바라는고.”

부인은 진심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제 대접은 제가 받는다.”

는 말을 남겼다.

그네가 한번은 꼼꼼하면서도 오종종한 삼종질의 집에 들렀다가, 마침 그날 밤

제사에 쓰려고 남원 장에서 사 온 제수들을 마루에 내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 중에는 집 터안에서 마련한 것도 있었지만, 젓가락 같은 초 여러 자루와

배득배득 마른 조기, 그리고 그만그만한 과일 몇 가지며 바가지에 담아 놓은 대

추만씩이나 한 반이 그네의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무엇이냐?”

묻는 청암부인에게 그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왜 묻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그

러는지 짐작이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수인 줄 번연히 알고 묻는 것이어서 공

연히 당황이 되었다.

제사 음식이란, 자손이 제 부모 선영한테 드리는 정성인데, 네 정성이 이렇

게 잘잘해서야 어디 감응인들 크게 하시겠느냐. 이렇게 못난 것 여러 개 올리지

말고, 차라리, 비용이 안되면, 단 한 가지를 올리더라도 제일 크고 좋은 것으로

쓰는 것이 좋으니라. 그래야 신명도 흡족하실 것이다. 네가, 큰 것을 놔 두고 그

옆에 차등한 것을 고르는 마음의 몰골을 들여다보아라. 장부가 그래서야 되겠느

. 큰 것을 올리는 것은 바로 너를 크게 만드는 것이니라.”

청암부인의 궁목은 참으로 남이 들여다볼 수 없었다.

서릿발의 시선이 닿는 극한까지, 자신의 안력을 다하여 쏘아보는 끝머리 마지

막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으리오.

그 서슬로, 모질고도 무거워서 막막하기 그지없는 한세상을 온몸으로 떠맡은

, 황량참담한 돌짝밭에 자신의 살로 거름을 주고, 자신의 뼈로 길을 깎아 오늘

에 이른 부인에게, 세상 사람들은 청암대신이라는 별호를 드려 칭송하고 우

러르니, ‘여중군자’, ‘여중호걸’, 드리우신 그 산악은 거대한 지붕인가, 가없

는 울타리인가.

그런데 이제, 이승에서의 무거운 살의 짐을 다 덜어 버리고, 오직 가볍게 마른

뼈로 조그맣게 남겨진 부인의 몸은 애처롭고도 홀가분해 보인다.

홈실댁은, 이제는 잡아 보아 아무 소용이 없느 부인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마른 잎사귀처럼 아무 기운 없이 부스러질 것만 같은 손이다.

얼마를 그러고 있던 홈실댁은 양손의 열 손톱과 양쪽 발의 발톱을 모두 가지

런히 깎는다. 마지막 무거움을 잘라 내는 것이다.

깎은 손톱 발톱이 서로 뒤섞이지 않도록 추려 모아 넉 장의 백지에 차례차례

싸고, 낙발을 싼 백지를 여미어 접는데, 옆에서는 오낭을 챙긴다. 붉은 명주로

만든 이 작은 주머니 다섯 개는, 얼핏 보면 앙징스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그렇게 앙징스러워서 가슴 밑이 북받치는 설움은 더욱 크다.

자신의 몸에서 떨어진 머리카락, 부질없는 손톱 발톱까지도 이렇게 어여쁜 주

머니에 담아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거두어 망인은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홈실댁은 작은 붓을 들어 주머니마다 꼼꼼히,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구분하

여 적는다.

붓이 닿는 헝겊은 마치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헐렁하게 느껴진다.

래서 홈실댁은 문득 세필을 멈추고, 주머니를 가만히 눌러 보았다. 육신의 끄트

머리 손톱 발톱마저 이미 잡히지 않는 곳으로 기화해 버린 듯한 빈 주머니는,

허물같이 벗어 놓은 허전한 휘장인가 싶어진다. 무엇으로 그 속을 채울 수 있으

.

이윽고 그네는, 청암부인의 얼굴을 검은 비단 멱건으로 가리우고, 홑이불을 조

용히 덮었다.

이제 목욕을 마친 것이다.

옆에서 거들던 사람은 목욕물 대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마당 한쪽

에 미리 파놓은 구덩이 앞에 이르러, 잠시 숨을 죽이더니, 마치 하직 인사를 하

듯 허리를 굽혀 대야의 물을 그곳에 부었다.

얼어붙은 땅의 구덩이 속으로, 청암부인의 몸을 머금은 자단향 물은 소리없이

스며들어 지하로 가는데, 그 자리에 젖은 수건과 빗을 놓는다. 가는 빗살에 찬

바람이 스미고, 수건의 물기가 얼어든다.

이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영영 가시는 부모의 몸을 손수 씻기어

드리고, 그 몸에 마지막 옷을 정성껏 눈물로 입혀 드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마땅한 자식의 도리이겠지만, 슬픔을 참지 못하여 가슴을 두드리며 부르짖어 우

는 애자 상제들이 어떻게 이 애통한 절차를 추스릴 수 있겠는가.

옛말에 일러오는 사람들은, 일찍이 그 부모를 여의고는 지원 극통을 가누지

못하여, 주먹을 쥐고 뛰고, 발을 구르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우니, 입은 옷은 갈

가리 찢어지고, 동곳은 빠져 상투가 풀어지며 머리가 흩어져 산발이 되었다 한

.

그러한 정황이야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어서, 부모 형제 상당한 지친

이나, 팔촌 이내 근친들은 슬픔만으로도 이미 벅차서 차마 손수 습과 염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대개는 그 외앳사람으로, 복을 입는 그들 못지않게 서로 가까운 집안

간 사람들이 대신 이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그러니 살아 생전 나누던 정리가 남다르게 두텁고 따뜻했던 손이 아니라면,

어찌 그 가는 길을 평화롭게 해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문중의 그 누구라서

부인의 손길과 숨결을 받지 않은 이 있어, 이 마지막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크게 꾸중 들은 부인이 먼저 너무나 허망하여 슬피 울었다.

호상은 물론 사이 돈독한 친지가 맡았지만, 실제로 뒤에서 일을 본 것은 상주

이기채의 본생가 아우 기표였다. 기표는, 아미 초상이 나기 며칠 전부터 큰사랑

으로 올라와 있었다.

기표는 큰사랑에서 문중 사람들과 둘러앉아, 이번 상례의 모든 문서를 맡아

관장할 사서와, 일체의 재물을 책임 맡는 사화를 정하고, 백지 공책 세 권을 만

들었다.

그 한 권은 초종에서 장례까지의 절차를 소상하게 기록하여 그 진행을 살피

, 남겨 두어 후일의 참고를 하기 위한 신종록이요, 다른 한 권은 조문객의 성

명과 문상 온 날짜를 적을 조위록이며, 나머지 한 권은 부의로 들어온 음식이나

물품, 금전 등을 사람 이름과 함께 적을 부의록이다.

그의 옆에서 연신 먹을 갈고 있는 사람은 아우 기응이다.

이기채와 의논하여 적어 놓은 친척, 친지 벗들의 명단을 짚어 가며 살피는 기

표 앞에 부고를 쓸 백지가 쌓여 있다. 그는 벼루에 붓을 적시어 흰 종이에 찍는

.

청암대신’, ‘여대신이라고 대신칭호를 생전에 주변에서 받았던 청

암부인의 기세 부음은, 문중이나 이웃 동제간 반가뿐만이 아니라 남원 군내 두

루 보낼 만한 곳에는 다 예의를 갖춰 빠짐없이 보내야 했으므로, 붓이 백지 위

를 달리는 소리는 기민하고도 신속하다.

좀처럼 그 거대한 또아리를 풀어 줄 것 같지 않던 어둠의 무거운 먹물빛이 가

까스로 조금씩 풀리는 듯한 기색에, 정지에서는 망인에게 올릴 전을 부지런히

준비한다.

비록 육신은 숨을 거두었다 하나 아직은 신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여기어서,

생시나 다름없이 하루에 한 번씩, 그가 살아 생전 쓰던 그릇에 미음과 과일을

담고 술을 따르어, 시신의 동쪽 어깨 닿는 곳에 상을 올리는 것이 전이다.

귀신의 그릇인 제기가 아니고, 만지면 따뜻했던 생전의 밥그릇이 자신의 어

깨맡에 닿이게 놓인다면, 그 아무리 무감한 사체라 할지라도 어찌 유정하지 않

을 리 있겠는가.

청암부인의 손아래 동서 이울댁은, 전 올리는 잔에 술을 따르는 허전하고 투

명한 음향에 눈물이 고인다.

사람이 이렇게 가려고 그 한평생을 사는 것인가.

내가 만일 종부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진즉에 칼을 물고 자진을 했을 것이

. 열녀가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 허나, 내가 그 참담한 형상 중에도 목숨을 버

리지 않고 살아 남은 것은 오로지 종부였기 때문이었느니라. 내게는 남의 가문

의 뼈대를 맡은, 무거운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종부는, 그냥 아낙이 아니니라.”

청암부인은 몇 년 전, 친정 대실에서 이제 갓 신행 온 손부 효원을 맞이하여

마주앉아 그렇게 말했었다.

너도 이제 이 집안의 종부가 되었으니 내 말을 잘 들어라. 대저 종가란 무

엇이냐. 그것이 단지 큰집이라는 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조상 저 윗대 아득하

신 현조 이래로 그 어른의 장자에 장자로만 이어온, 한 가문의 맏이 집안이 곧

종가이니라. 그것이 어찌 한갓 태어난 순서나 혈통만을 이르는 것이겠느냐. 거기

에 깃든 정신의 골격도 참으로 중요한 것이니라.

종가 한 가문의 맏이로서 그 부형의 책임을 다하고, 선조의 정신을 바르게 받

들어 다음 대에 온전하게 물려주는 책임을 또 다해야 하느니. 한 가문의 바른

피와 정신의 봉화불이 종가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일찍이 이곳 매안에 자리를 잡으신 입향조 이래로 매안은 사백여 년 동안 우

리 이씨 문중 세거지가 되었는데, 자손이 번창하매 자연 가까운 잔등이 하나 넘

는 동네로 분가해 가서 작은집 동네가 생겨나고, 또 그 다음 자손들이 다른 곳

으로 자리를 잡아 분가해 가서 작은집 동네가 생겨나고 하여, 멀리 그 자손이

번창했던바, 우리는 낙남파의 대종가니라.

일문의 사람들은 종손을 누구보다 귀히 여기고, 아끼고, 존중한다. 누구라도

종손한테는 말을 놓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항렬이 낮은 종손을 함부로 하지 못

, 그러고, 시제 때에는, 우리 낙남과 일문이 도종산에 모두 모인다. 서자는 물

론이고 여자와 미장가 소년을 뺀, 성년 자손으로만 삼사백명이 하얗게 모여 제

사를 올리지. 그게 모두 한 할아버지에게서 뻗은, 도덕과 학문이 빼어난 자손들

이니, 그 창성하심을 생각해 보아라.

이 제사 첫번으로 신위에 드리는 술 초헌은 말할 것도 없이 언제든지 종손이

먼저 올리고, 그 위치도 문장은 오히려 문중에 끼어 서 있지만, 종손은 맨 앞자

리 한가운데 혼자 앉느니라.

문장이 누구냐. 문중에서 제일 항렬이 높고 나이가 많은 어른이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장을 받들고, 공경하고, 어려워하지 않느냐. 그런 백발의 문장이 계

셔서 종손을 지켜 주고 문중을 지도해 주는 크나큰 힘이 되는 것이니라.

허나, 종회를 열 때도 문장의 댁이 아니고 종손의 집인 이 종가에서 열고,

중의 모든 기록 문서 또한 반드시 종가에 보관해서 대대로 전하게 허느니. 그뿐

이냐. 종회를 할 때면, 그 앉는 자리도 종손이 문장보다 상좌에 앉는 것이다.

록 종손이 아직 이십도 채 못된 홍안 소년이라 할지라도, 백발의 문장보다 윗자

리에 앉는 게지. , 이제 너는 그렇게 존중한 종손의 아내 되어 이 집안의 종부

가 되었니라.“

청암부인으로부터 단 한 번도 꾸중을 드어본 일이 없는 손부 효원은 오직 공

손히 그 말씀을 새겨 들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자면 죽기보다 어려운 고비가 꼭 있게 마련이니라. 그럴

때는 잊지 말고 내 말을 명심해라. 저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맡고 있는

책임인즉.”

청암부인은 효원과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언제인가는

너는 나를 많이 닮았다.”

고 말한 일도 있었다.

부자지간은 어려워도 조손간은 허물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그 어떤 알 수 없는 기의 맥이 핏줄같이 서로 견인하여 끌어당기는 것

일까.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청암부인이 효원은 오히려 의지가 되고

인자하게 느껴졌으니, 시댁에서 도리로 만난 인연도 이와 같이 따뜻하여 목이

메게 그리울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우스운 옛날 이약 한 자리 해 주랴? 전에 내가 몇 살 안 먹은 조그만

아이였을 때 이야기니라. 그때 청암 친정에는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 해던

, 그것이 새끼를 대여섯 마리 고물고물 낳아 놨지 뭐냐. 나는 그 중 한 마리를

내 것으로 따로 달라 했단다. 집에서 기르는것 어차피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느

냐고, 그냥 두고 놀아라, 어른들이 안 그러시겄느냐. 그래도 나는 꼭 따로 달라

했지. 그래서 내 몫이 된놈을 호제한테 맡겨서 길러 달라고 했더니라. 집안에서

놀다가도 내 강아지는 더 이뻐 보이고, 들고 나며 잘 크는가 들여다보면 뿌듯했

. 그것이 다 커서 새끼를 낳으면 또 다른 사람한테 나누어 맡겨서 길러 달라

고 그랬지. 그렇게 불어나는 것이 좋아서 그 어린 것이 집집마다 돌아댕기며 강

아지 세어 보는 것이 일이었니라. 닭이고, 오리고, 불어나는 것이면 그렇게 했단

. 재미가 있었지.

폐일언허고 양반이라면 돈 세는 것부터 무어 이문이 남는 짓을 해서는 안되는

법 아니냐. 그런데 천성은 어쩔 수 없었던가,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 짓을 그

렇게 했어.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바느질을 하거나 옷감을 짜도 꼭 내 몫을 따로 챙겼는

, 헝겊 짜투리고 무엇이고 나한테 오면 금방 곽이 넘치곤 했다. 그런 내가 몹

시 기구허게 시집으로 신행을 가니 친정에서 마음 낳이 아퍼허셨드니라. 유표히

제 것을 챙기드니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신행을 간다고. 그렇지, 오죽이나 없었

으면 신랑까지도 없었겄느냐. 그런데 지금은, 부잣집으로 시집간 다른 형제들보

다 그래도 내 살림이 훨씬 낫니라. 이 살림은 허실이 하나도 없고 속이 꽉 차

있거든.“

그때 바라본 청암부인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평화로워, 효원은 웬

일인지 눈물이 울컥 솟구쳤었다.

할머님은 평생에 몇 번이나 저렇게 웃어 보셨을까.

새삼스럽게도 바로 엊그제인 듯 그 얼굴이 떠올라 효원은, 이 상사가 거짓말

인 것만 같았다.

 

(유인경주김씨지구)

 

선연하게 고와서 오히려 할머님의 정말 돌아가신 것을 일깨워 주는 명정의 진

홍빛 비단 위에서 이승의 빛깔이 아닌 흰 글씨가 소슬하게 돋아난다.

아직 신수를 만들지 않은 채 신주 대신 가주인 혼백을 접으려는 흰 비단폭 한

자 세 치가 방바닥에 정갈하게 펼쳐진다.

이 비단은, 지금은 그저 비단일 뿐이지만 이제 순서를 따라 정성을 다하여 접

으며 그 다음에는, 청암부인의 유혼을 이곳에 모신 사무치고 엄숙한 집이 되는

것이다.

혼백과 혼백은 서로 다르다.

앞의 말씀은 돌아가신 이의 넋을 가리키고, 뒤의 말씀은 그 넋이 잠시 깃들어

머무는 집을 가리킨다.

머무르소서.

잠시라도 이곳에 유혼이 머무르소서. 형체는 비록 어두운 땅속으로 들어갔으

, 맑은 넋은 부디 이곳에 머무르소서.

혼백은 접을 줄 아는 사람이 정교하게 격식대로 잘 접어야만 한다. 다 접은

모양이 막힌 곳 없이 사방으로 자유로이 들고 날 수 있도록 사통오달하게 접은

이 안에, 아까 망인의 머리맡에서 다홍 철람의 색실로 맺은 동심결, 혼백을 모신

.

그러면 이제 망인의 넋인 혼백은 흰 비단으로 접은 집 혼백에 고요히 머무는

것이다.

장사하고 돌아와서 지내는 첫번 제사 초우에 비로소 이 혼백을 몸 대신, 신주

대신 모시고 제사하며 아아, 망인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간 것

을 절감하여 애곡하니.

슬프다.

그가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흔적과 자취가 어디 있느냐, 그 얼굴과 손은 다시

볼 수도 잡을 수도 없으며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데, 다만 흰 비단 가주 처연히

서 있으니, 저 쓸쓸한 헝겊 한 장으로 어찌이 허망을 달랠 수 있으리오.

그제서야 비단으로 접은 혼백이란 그저 형식이요, 일종의 상징에 불과한 것을

알겠다.

그러나 참으로 선조의 혼백이 있다 하면, 자손의 기운이 선조에 닿고 있고 선

조의 기운은 또 자손에 닿아 있어, 비록 그 몸의 형체는 유명을 달리하여 이 세

상으로 나뉘어 갈라지지만, 살아 있는 기운이 서로 이어질 것이다.

생전의 청암부인은 효원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람이, 비록 핏줄을 통해서 그 부모로부터 생물적인 모습을 받았다 할지라

도 만일 정신이 서로 불통하면, 그것은, 겉모습만 닮었다 뿐인즉 서로 죽은 사람들

인 것이다. 허나, 사람이 죽은 뒤에라도 그 정신이, 혼이 서로 닿아 있다면 그

선조는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이다. 몸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말아라. 살아 있고 없

는 것으로 살고 죽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정신의, 혼백의 길이 서로 막히지 않

도록 늘 그 길을 닦어야 한다. 우리 마을 저 앞 서도역에 서는 기차를 보아라.

제 아무리 그 형체를 거대하고 공교하게 만든다고 해도, 기계는 수, 화가 없으면

못 움직이는 것이다. 수는 기름이요, 화는 불인즉, 이것이 들어가야 기계는 동허

는데, 그 수.화가 바로 혼백인 것이다. 저일.월의 밝은 기운, 맑은 기운이 몸에

들어야 비로소 사람은 물체에서 생물이 되는 법이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리가 아니라, 산 것, 진정한 산 사람이 되는 것이니라. 참으로 오른 이라면,

혼백의 기운이 살아 있는 사람인 것인즉, ...동이 모두 다 이에 근거해서

일어나고 생기고 하는 사람이지. 비록 사람이 죽었다 해도, 그 기운이 살어 있으

면 죽은 것이 아니니라.”

어른.

효원은 그 말이 가슴에 박혀 와 사무친다. 이제 어른은 가시고 천지를 둘러보

아 자신을 가리워 줄 지붕 한 닢 없는 것이 절감되었다.

허전한 머리 위로, 무겁게 아득한 동짓달의 하늘이 드리워져 음울한데, 곡성이

가서 닿을 리 없는 땅, 만주란 과연 여기서 어느 쪽 어디쯤이나 있는 곳이가.

효원은 자신의 머리 위가 열린 채 비어 있는 것은, 청암부인의 임종때문이 아

니고 남편 강모 때문인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순간, 이 세상은 거대한 항아리인가 싶어진다.

항아리 속에 들어앉아 몰라도 좋은 세상은 안 보아도 좋았는데, 어느 하루 써

늘한 기운에 고개를 들었을 때, 지붕처럼 덮여 있던 뚜껑은 간곳 없고, 서리 비

낀 찬 하늘만 텅 빈 우주에 홀로 걸린 것이 보이니,

그 하늘이 이제 뚜껑 없는 항아리 속으로 내려앉아 효원이 짓눌리는것 같다.

가슴을 누르는 것은, 빈 하늘이다.

, 빈 것이 이렇게 무거운 것이구나.

그런데 그 뚜껑을 벗겨 들고 간 사람은 강모였다.

남의 세상을 황량하게 열어 놓고 자신은 자취를 감추어 버린 남편 강모를 대

신하여, 효원이 의지하고 있었던 것은 오직 청암부인이었다.

품계받은 소나무의 퐁모로 서서, 넉넉하고 깊은 그늘로 지붕을 만들어 준 부

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두 팔을 벌린 채 웃으며

이리 오라.

하는 것 같다.

효원은 북받치는 설움에 고꾸라지며 곡을 한다.

저쪽에서 누군가 곡성에 못을 박는다.

관을 짜는 것이다.

미리 널을 만들어서 옻칠을 여러 번 하여, 아래채 호제의 집 점례네 뒤쪽 처

마 밑에 짚으로 싸 놓았던 송판은, 석산에서 몇 백 년 잘 큰 소나무로 만든 것

이어서, 온몸에 붉은 송진이 고루 깊이 절어들어 관목으로 아주 좋다.

사실 가장 좋은 관목은 오동나무지만, 그것은 임금이나 왕족의 장례에만 쓰이

고 일반인에게는 금법이었다.

그리고 은행나무도 상품이다.

그러나 이만한 송판이라면, 오동나무나 은행나무에 견줄 바 아니게 좋은 소나

무를 베어 청암부인의 관목을 만들었다.

부인 아직 생전의 일이었다.

작은 솔씨가 떨어져 큰 관목이 되려면 한 이백여 년 걸려야 한다. 집안에 산

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산에다 씨를 뿌려서 오십년목, 백년목, 이백년목, 솔숲을

만들어 놓는데, 그 중에는 나중에 자손들이 관목으로 쓰라고 길러 두는 이백년

목이 꼭 있게 마련이다.

저 이백 년 뒤에 올 자손이여. , 이나무를 베어 관으로 쓰라.

하고 티끌만한 솔씨를 뿌리는 선조의 심점을 청암부인은 효원에게 여러번 이야

기했었다.

소나무는, 나무 자체가 아주 영험한 생체거든. 옛날 임진왜란때, 우리나라

산야에 소나무 없었으면 우리 백성은 다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것 벗겨 먹고

다 그 비참한 중에도 살어 남은 것 아니냐.”

나무 껍질에 목숨을 맡기어 그 힘으로 살아난 것은 본디 소나무가 가지고 있

는 덕성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껍질 하나가 능히 사람의 목숨을 살릴 만한 것

이라면 다른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소나무 꽃은 송화로, 다식을 만들지? ,솔잎은 선식이란다. 몸의 기를 맑게

해 주기에 예로부터 선승이나 공부허는 사람들이 상식허고. 소나무 껍질은 벗겨

다가 끓여 먹고, 송기 소나무 어린 가지 속껍질 말이다. 송기로는 송기떡을 해먹

지 않느냐. 송기를 멧쌀가루에다 버물여 섞어서. 그뿐이냐, 솔방울은 따서 송실

주를 담고, 둥치는 잘라서 관목을 만든다. 이 소나무 송판은 결이 부드럽고 조밀

헌데 아주 단단해서 관목으로 좋으니라. 관목뿐 아니라 판자로는 송판 이상 없

. 그리고, 소나무가 숲에 가득 차면 가뭄이 없단다.

노송 한 그루가 머금고 있는 물이 엄청난 것이거든. 그뿐 아니야. 잎갈이 하느라

고 떨어진 낙엽은 긁어다가 불을 땐다. 가리나무 불땀이 제일 아니냐.”

참으로 나무 한 그루의 쓰임이 이만 하다면, 이는 영물이라는 말이 조금도 과

장이 아닌 것을 알겠다.

실제로 쓰이는 덕이 그만 하거니와, 풍채와 운치를 좀 보아라. 그야말로 용

의 기품이 아니냐. 하늘로 솟구치는 그 기상하며 조금도 속기없는 몸통의 귀격

은 속진 속의 군자로다. 거기다가, 사시사철 푸른 잎은 너훌거리지 않아서 점잖

, 바늘 같은 침엽은 그 결직이 선비의 성품 그대로라, 감히 누가 흉내낼 수 있

으리오.”

한번은, 이백여 년 된 관목을 베어 낸 소나무 뿌리에서 백복령을 캐다가 떡을

해먹은 일이 있었다.

산을 둘러보다가, 관목하려고 베어 놓은 노송 큰것이 쓰러져 있으면 그것을

잘 눈여겨 보아 두었다가, 그로부터 한 이 년쯤 지난 뒤에 그 나무 뿌리를 헤쳐

캐는 이 백복령은 참으로 귀한 약재이다.

관목으로 잘라 낸 아름드리 나무 밑둥의 뿌리는, 둥치가 베어져 없어져도 그

대로 살아서 여전히 무서운 기세로 땅의 정기를 빨아들여 위로위로 솟구쳐 올려

보내는 것이다.

자기가 죽은 것을 아직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지상의 양명 속에 선 둥치는 이미 베어져 죽었을지라도, 지하의 어둠

속에 뻗은 뿌리는 따로 살아 남은 것일까.

나무는 지상의 둥치와 지하의 뿌리가 그 길이나 모양이나 굵기가 똑같다고 하

, 하늘을 찌르게 높았던 소나무의 푸른 꼭대기 그만큼 땅속의 땅 속, 저 깊은

어둠의 골에 뿌리의 끝은 닿아 있으리라.

헌데, 분수처럼 위로 솟구친 양분은 둥치가 잘렸으므로 더 가지 못하고 다시

뿌리로 내려간다. 그 소나무 정기가 뿌리의 끝끝까지 하얗게 어리어 백설기처럼

덩어리져 엉겨 있는 것이 바로 백복령이다.

캄캄한 땅 속의 뿌리에 무성한 가지마다 눈부시게 하얀 덩어리로 엉기어 있는

백복령의 한가운데는, 소나무 뿌리들이 꿩 꼬리마냥 박혀 있는데.

이런 나무 한 자리에서 캐내는 백복령이 보통 몇 가마니씩 된다.

이것은 백복신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도 귀 헌 집 사람들은 이걸로 떡을 해

먹었느니라. 이걸 찹쌀허고 버무리기도 허고 멥쌀 허고 버무리기도 해서, 여기다

인삼가루를 곱게 빻아 가지고 같이 버무려. 그러고는 팥 한 켜 놓고, 백복령 버

무린 쌀 한 켜 놓고, 형형색색 맛있는 것들도 놓고 시루에다 찌면 된다. 이것은

정말 몸에 좋은 떡이니라. 오죽이나 귀하고 좋은 약재면 백복신이라고 신자를

붙여 부르겠느냐. 이걸로 떡을 해서 노나 먹자. 그러다가 신선될라.”

그때 효원은 백복령의 떡보다도, 얼마만한 기운이면 나무가 베어져 없어진

다음에도 이 년씩이나 더 살 수 있는 것인가, 깊이 놀랐었다.

백복령이 그렇게 어리는 것이 어찌 하루아침의 일이리오.

살아 있는 줄 알고 전심전력 힘차게 솟구쳐 올려 보낸 기운이, 제 몸통 잘려

버린 자리에서 얼마나 허망했을까.

거기 이미 둥치는 없고, 막막한 하늘만 무심한데,

가자, 도로 가자. 갈 곳이 없다.

어둠 속으로 우우 내려가는 그 기운은, 어쩌면 몸을 잃은 혼백일는지도 모른

.

어둠의 뿌리 끝으로 다시 돌아가는 기운이야 솟구치는 기운하고 어찌 같으리.

적막한 혼백을 뿌리에 부리고 눈물같이 하얗게 어리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뿌

리는 다시 새 기운을 빨아 올려 지상으로 보냈다가 도로 내려와 뿌리 끝에 어리

는 세월이 칠 백여 일, 이년이나 쌓이면, 이토록 휘황한 한 세상이 열리는 것이

.

베어진 둥치를 잃어 버리고서야 비로소 이만한 백복령이 어리는 것이. 효원은

예사롭지 않아서 오래 그 일을 생각했었다.

죽지 않고 천 년을 산 소나무는 그 가슴속에 구슬이 열린단다. 송진이 어리

고 어려서 고약마냥 엉기고, 또 세월이 가고 가서 한 천 년 지나면 이제는 돌덩

어리같이 단단하고 해같이 말간 구슬이 되는데, 그게 바로 호박이니라.”

송진이 마치 안개나 이슬같이 맑은 어린 소나무가, 어떤 간난신고 비바람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살고 살면 천 년이 가며, 그 천년이 어떻게 어리

면 그토록 투명하고 영롱한 구슬이 될 것인가.

도려 낼 수도, 베어 낼 수도 없는, 그 댓진보다 끈끈한 점액을 가슴에 담고,

엉기고 엉기게 두어,뒤엉긴 송진이 옹이로 박힌 소나무, 차마 삭이지도 못한 그

무슨 진액인가.

그러나, 그것이 구슬이 된다니.

효원은, 백복령을 뿌리에 하얗게 남겨 두고 온 소나무 관목으로 짠 관 속에

누우실 할머님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효원의 가슴속에 뻗으신 할머님의 뿌리에 백복신 정령이 서럽게 눈부

시게 어리는 것이 보이는 것만 같아진다.

아아, 할머님. 구슬은 어디에 열리시려는고.

 

 

6 가도 가도 내 못 가는 길

 

"내 이제 죽어 육탈이 되거든 합장하여 달라."

청암부인은 유언하였다.

이승에서의 인연은 사람마다 다 서로 다른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전생과 금

, 그리고 내생에까지 이어진 인연이 지극하여 끊어질 수 없는 사이를 삼생 연

, 부부라 한다.

그것이, 오다 가다 쉽게 어우러진 사람이든, 우여곡적 뒤얽힌 끝에 어렵게 만

난 사람이든, 아니면 도도하게 흘러가는 물줄기같은 좌우 풍경을 데불어 거느리

고 만난 사람이든 한 번 부부가 된 연후에, 누구는 삼생보다 더 길고 깊은 한세

상을 누리어 살기도 하고, 또 누구는 삼생의 원수를 한 지붕 아래 둔 것처럼,

질고 그악스러운 평생을 겪기도 한다.

"전생에 은인이나 원수가 금생에 부부로 난다는데, 은헤를 갚을래도, 원수를

갚을래도, 멀리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거든, 바로 지척 가까운 곳에 한 몸이나 다

름없는 관계로 만나야, 선연이든 악연이든 지은 대로 갚고 받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동아줄 같은 인연은 다 놓아 두고, 스쳐가는 바람이나 옷자락만도 못

하게 어이없이 이별하는 사람도 있으니.

고희라 하는 일흔을 넘기고 칠십삼 세에 숨을 거둔 청암부인의 한 생애에,

랑 준의가 머물다 간 것은 단 사흘이었다.

부친을 상객으로 모시고 청암 고을에 이르러 초례를 치른 열여섯 살의 그는,

다만 사흘을 머문 뒤에 신부 청암부인을 홀로 남겨 두고 매안으로 돌아갔다.

신랑 준의가 청암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하나, 온 날을 내내 신부와 함께 지낸

것은 아니었다.

신방에 든 새 내외는, 이른 새벽 일찍이 일어나 매무새를 단정하게 갖추고 나

란히 나와, 안방으로 가서 부모님께 문안을 드리고는, 바로 신랑은 바깥 사랑으

로 나가야 했다. 이때 혹시라도 신랑이 신부 곁에서 머뭇거리면 그런 큰 흉이

없는 것이다.

사랑에서는 벌써 소세 의관을 가지런히 마친 상객, 준의의 부친이 아들의 문

안을 받았다.

이윽고, 처가의 집안간 대소가와 문중의 하객들이 하나씩 둘씩 사랑으로 모여

와 둘러앉아, 새로 맞은 취객과 사돈을 환영하고, 한편으로는 신랑의 됨됨이를

여러모로 시험도 해 보면서 온종일 문답 담소를 그치지 않았다.

학문이며 시재, 그리고 집안과 인물의 국량을 두루 재 보고, 되어 보고, 다루

기도 할 때, 신랑은 신랑대로 이제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라는 긴장감 속에서,

자신의 기량과 호연한 기상을 보여 주게 되는 이 시간들은, 이쪽이나 저쪽 모두

에게 서로 큰일 치르는 수인사인 셈이었다.

부친이 옆에 같이 있어 든든하다고 하지만, 일생에 큰일인 혼례를 치르고 어

린 나이에 심신이 고단한데다가, 낯선 동네의 처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의례를

차리는 일이, 신랑으로서도 결코 홍감한 것만은 아니었으리라.

즐겁다기보다는 오히려 번거롭고 어려운 마음에, 어서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하였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아직 얼굴을 익히지도 못한 신부와 수줍은 기색으로 잠

시 마주할 수 있을 뿐이었으니, 그것은, 옷자락 한 번 스치기에도 모자라는,

나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찰나를 한 생애로 지니고, 메고, 청암부인은 살아온 것이다. 그것

, 금생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남기고간 찰나였으며, 그가 남기고 간

것의 서러운 모두였다.

이제는 갈 수 있으리,

저만큼 앞서 가던 그 길 모퉁이가 얼마나 멀고 먼 곳이어서, 한평생의 밤과

낮을 걷고 걸어도 닿지 않던 옷자락 곁으로, 단 사흘을, 삼십년이나 삼백 년보다

더 길고 깊은 삼생으로 품어 안고, 이제는 갈 수 있으리.

시신을 모신 방에서 동종 부인들과 둘러앉아 습을 하던 인월댁은, 홈실댁이

조심스럽게 펼치는 녹원삼의 휘황한 자락을 바라본다.

어찌 아직 이대도록 고운가.

세월이 오래 흘러 근 오십오 년이나 다 되었어도 여전히 그 빛이 선연하여 조

금도 바래지 않은 비단 원삼은, 초록의 몸 바탕에 너울같이 넓은 색동 소매를

달고 있었다. 진홍, 궁청, 노랑, 연지에 연두, 다홍을 물리고, 부리에는 눈같이 흰

한삼이 드리워진 색동 소매는, 초례청에 선 신부가 입던 그대로여서, 죽은 이의

푸른 몸에 수의로 입히기에는 섬뜩하고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청암부인이 혼인하던 날 입었던 원삼이었다.

아무리 혼인을 앞둔 딸이 집안에 있다 하더라도 쉽게 마련하기 어려운 옷이

비단 원삼이고, 또 한 번 입은 다음에는 다시 입을 일이 없는 것이 원삼인지라,

웬만한 사람들은 문중이나 집안간, 혹은 마을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공동으로

돌려가며 입는 것이 보통인데, 청암부인의 친정 가세가 그럴 만하여 따로이 새

원삼과 비단 족두리를 공들여 지었던 것이다.

흰 가마 타고 흰 옷 입고 매안으로 오는 신행 길에, 그네는 이것들을 소중하

게 가지고 왔다.

청암부인의 어머니는 보자기에 반듯하게 싼 원삼과 족두리를 청상이된 여식에

게 건네주며 말했다.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마치 처녀

, 정든 자기 집을 떠나서 산 넘고 물 건너 먼 곳으로 시집을 가득이 말이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의 수의는, 시집갈 때하고 똑같이, 녹의 홍상에 원삼 족두리

를 해 드리는 것이니라.

망인의 살아 생전 일생을 두고 제일 곱고 화려하게 입은 것이 바로 이 옷 아

니겠느냐. 여자라면 누구라도. 아이에서 비로소 배필을 만나 성인이 되는 좋은

날 입었던 그대로 다시 차려 입고, 성장을 다한 모습으로, 죽어 후세로 가는 것

이니. 형편이 닿는 사람들은 혼인날의 원삼 족두리를 잘 간직해 두었다가, 저 훗

, 자신이 입고 갈 수의로 썼단다."

이 옷을, 소용이 있을 때 쓰라.

청암부인의 어머니는 낙루하였다.

원삼을 반듯하게 펴 놓은 홈실댁은, 초석 위에 누운 망인의 두 발에 먼저 버

선을 신긴다. 평소에 신던 것보다는 훨씬 크게 만든 버선이다.

원삼말고는, 모두 수의로 만든 것인데, 겉감을 흰 비단과 명주로 쓰고 안에는

사베를 받쳤다.

그런데 명주는 나중에 뼈에 붙고, 삼베는 살과 더불어 황토같이 다 썩게 된다

고 하였다.

"시신 위로는 손 왔다갔다 허는 것 아니네, 허리띠나, 치마끈이나, 저고리나,

다 이 자를 써서 허리 아래로 밀어 넣어야지."

밑부분만 약간 붙여 치마나 다름없이 길게 터진 속곳과 겹바지를, 제일 위에

입는 단속곳의 허리말에 한꺼번에 박아 만든 바지를 조심조심 입힌 뒤에 허리띠

를 묶으며 홈실댁이 말했다.

치마는 청상을 먼저 입히는데, 흰색 안감을 받친 푸른 비단 다섯 폭 치마이다.

그리고는 그 위에, 꼭두서니빛 다홍 치마를 공손히 입힌다.

산 사람보다 시신을 더 공손히 대하여야 하는 법이라, 암만 귀한 비단으로 습

렴을 한다 해도, 자꾸 여러 번 들썩거려 시신을 번거롭게 해드리는 것은 예가

아니므로, 같은 종류의 옷은 입힐 순서대로 미리 끼워 한 벌처럼 해 놓는다.

솔기가 살에 닿지 않도록 뒤집어서 입힌 속적삼 위에, 분홍색 속저고리와 노

랑 삼회장 저고리, 그리고 초록색 곁마기를 같이 끼운 저고리 삼작을, 좌우에 앉

은 부인들이 지성껏 입힌다.

소맷부리에 손을 넣어 가만히 시수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옷깃을 맞잡아

조금씩 당기며 입히고는, 고대를 바로 하여 깃을 단정하게 여민 저고리의 초록

빛은 치마의 선연한 붉은 빛을 받아 여염요요하게 보였다.

그러나 이 녹의 홍상 아래, 다리와 무릎과 발목은 삼베 교대로 단단하게 동이

여 묶여 있었다.

그리고 두 귀는, 풀솜을 대추씨만하게 뭉쳐서 만든 충이로 막아, 바람이 빈 집

처럼 시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놓았다. 일가 친척 집안 권속, 곡비의

낭자한 울음 소리도, 누가 와서 부르는 애끊는 소리도, 이 여린 솜 한 조각을 뚫

지 못한다.

유명의 벽이 이처럼 무정한 것인가.

오직 조용하게 누워 있을 뿐인 청암부인의 양 손에, 붉은 명주 안을 받친 검

은 헝겊 악수를 씌우고 난 홈실댁과 인언댁은 펼쳐 놓은 원삼을 맞잡아, 둘러앉

은 부인들과 함께 망인에게 입힌다.

색동 소매 드리운 초록의 바탕에 다홍 대대를 맨 모습은 영락없는 초례청의

새 신부이다.

그러나 눈을 감은 망인의 얼굴은, 흰 솜으로 귀를 막고, 반듯하게 빗은 흰 머

리에 검은 흑단 댕기를 물려, 귀색을 띠고 있다.

그 머리에 홈실댁은 검은 비단 족두리를 씌운다.

정수리 한가운데 옥판을 대고, 옥판의 복판에 주홍 산호, 노란 밀화, 물빛 비

, 붉은 유리, 푸른 구슬들을 영롱하게 한 줄로 꿰어 세운 족두리 앞쪽과 뒤쪽

에는, 진주 같은 광택이 나는 등황색 석웅황이 두 개, 갸름하게 가로놓여 있다.

쟁가랑,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오색의 구슬빛들이, 원삼의 화려한 색동자락과

황홀하게 부딪쳐 어우러지며 귀기를 뿜어 낸다.

그 휘황한 서슬은 이미 이승의 옷이 아니었다.

성장을 다한 망인의 푸른 시안에, 인월댁은 조그만 분첩을 들어 곱게 바르며

읍곡한다.

분의 향기가, 저승을 머금은 낮은 가루로 내려앉는다.

부인의 발 아래 앉아 있던 동녘골댁은, 명주에 청암부인 혼서지를 곱게 배접

하여 만든 신을 망인의 발에 신긴다.

이제 신까지 신으셨으니, 참말로 길을 떠나시겄구나.

그네는 망인의 발에서 손을 놓으며 눈물 지었다.

청암부인 운명 후에, 무시곡으로 목이 쉬어 원통함을 가누지 못하는 상주 이

기채는, 시신을 모신 방문 밖에 마련된 상막에서 조객을 받고 있다가, 습을 마친

자리로 들어온다.

시방에는 바깥 바람이 들어오면 안되는 까닭에 철벽을 하고 문을 닫아 놓아

, 자욱하여 잡히지 않으면서도 살 속으로 파고드는 저승의 기운이 분 냄새와

섞이어 그의 폐부를 찌른다.

설움의 침이 오장 깊은 속에 꽂히며 통곡이 터져 나온다.

비록 자식이라 하여도 내간상일 때는 망인의 수의는 여자가 입혀야 하므로,

아들이 어머니의 옷 입는 것을 볼 수가 없는데, 이제, 색깔의 꽃밭 같은 원삼과

족두리를 갖추어 입고 누운 청암부인의 모습을 보는 이기채는, 억장이 무너져

꿇어 엎드린다.

남의 자식 된 사람으로, 차마 자기의 부모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가 없어서,

상이 나면서 바로 급히 성복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인지라, 아직 상복을 입지 않

은 이개채의 힌 옷이 애통하게 출렁인다.

아무리 평소에 의관을 명경같이 하던 사람이라도, 부모가 세상을 떠나 골수에

슬픔이 북받쳐 실성 발광에 이르렀을 때, 누가 자신의 복장을 돌아볼 겨를이 있

으리오.

어버이를 잃고 미친 듯이 몸부림을 치며 우는 자손이 머리는 흩어져 산발이

되고, 옷고름은 다 풀어져서 앙가슴이 드러난 채, 신발조차 챙겨 신지 못하여 맨

발로 땅을 구르며 뒹굴어 애곡하던 옛사람의 효심을 가슴에 새기는 상제는,

도포나 홑두루마기를 한쪽 어깨에만 걸치고 다른 한쪽 어깨는 내놓는 것이어서,

이기채의 흰 두루마기 오른 어깨는 벗기어져 의지할 곳 없이 드러나 있다.

옆에 앉은 율촌댁이 울음을 그치고, 쌀이 담긴 그릇을 받쳐든다.

반함을 하려는 것이다.

살아 생전 그 몸에 젖이 날 리 없었던 어머니 청암부인은, 암죽을 떠 먹여 자

신을 기르고, 자라면서도 내내 별로 음식을 탐하지 않아

무엇을 먹이랴.

늘 애가 타서 밤낮으로 어린 구미에 당길 것을 궁리하여 먹였건만.

그 염려로 기혈과 골격을 얻어 어른이 되고 오늘에 이른 자신은, 어머니의 입

속에, 이승의 음식인 밥이 아니라 저승을 가면서 먹을 식량이라 하는 쌀을 물려

드리려고 하다니.

하얗게 소복한 쌀은 찹쌀을 물에 부리었다가 물기를 뺀 것인데, 이기채는 버

드나무로 깎은 수저를 들어 가만히 쌀을 뜬다.

그리고, 청암부인의 시구 오른쪽에 공손히 넣으며

"백 석이요."

목이 메어 말한다

다음에는 왼쪽에 한 수저를 넣었다.

"천 석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운데 한 수저를 넣었다.

"만 석이요."

아아, 어머니.

죽음이 무엇이요.

고꾸라지는 이기채를 가까스로 만류하고, 홈실댁은 망인의 얼굴에 덮을 멱모

를 두 손에 든다.

네 귀퉁이에 끈이 달린, 짙은 검은색 공단 멱모의 안쪽에는 소름이 돋게 붉은

명주가 받쳐져 있다.

묵연히 청암부인의 시안을 바라보던 홈싷댁은, 혀를 차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망인의 얼굴 위에 멱모를 덮고, 족두리 쓴 흰 머리의 뒤로 손을 돌려 끈을 묶는

.

여태까지 휘황하던 오색의 찬란함이 일순에 무참하게 적막해지면서, 죽은 얼

굴을 가린 검은 헝겊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린다. 그 검은 빛은 캄캄하게 당당하

여 온갖 현요한 색깔들을 일식에 제압하고, 이승과 저승의 길목을 절벽같이 차

단해 버린다.

악연하여 가슴이 내려앉는 빛깔이다.

멱모가 갈라 놓은 절벽의 엄숙하고 까마득한 단애를 메우려는 곡 소리가 깊은

물의 검푸른 소용돌이처럼 방안에 차 오른다.

그 소리가 무슨 신호이기나 한 것처럼, 소렴을 할 사람들이 명주 이불과 교태,

솜 뭉치, 동정과 옷고름을 뗀 산의들을 들고 들어왔다.

망인이 여자일 때, 수의를 입히는 것까지는 여자가 하지만 그 다음 일들은 남

자가 해야 한다. 시신을 묶고 동이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청암부인의 시신을 감아 쌀 명주 이불은 길이가 다섯 자 다섯 치에 폭은 다섯

폭이고, 시신을 조여 맬 끈 삼베 교대는 가는 베를 빨아서 다듬은 것이다.

소렴포 이불이 초석 위에 펼쳐지자, 이기채는 청암부인의 시신에 기대어 가슴

을 치면서 통곡을 하고, 율촌댁과 효원은 부인의 옷자락을 받들어 잡고 엎드려

곡을 했다.

방안의 사람들도 따라서 눈시울을 붉히며 울었다.

청암부인의 손아래 동서 이울댁은 슬픔을 다하여 우는 이기채를 이만큼에 서

서 망연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속으로 낳은 아이들이면서도 웬일인지 늘 어려운 마음이 들곤하여,

보다도 더 먼 곳에 있는 것만 같던 이기채가, 지금, 생모인 이울댁에 앞서 세상

을 떠난 양모의 죽음을 당하여 극통의 슬픔을 가누지 못하며 울고 있는 것이다.

일곱 이레 막 지난 어린 이기채가, 조세한 시숙의 사후 양자가 되어 청암부인

슬하로 들어간 것이 벌써 아득이 마흔여덟해 전이니, 새삼 그 세월이 꿈만 같다.

이울댁 자신의 나이도 벌써 예순을 훨씬 넘어 칠십이 곧 닥치는 마루에 걸려

있는데, 이기채를 보면 이상하게도 막 신행 오던 그 무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형님한테로 이 아이를 양자해야 한다."

하던 이울양반 병의의 목소리가 그대로 살아나는 것 같았다.

길고 긴 인생에 단 사흘 만난 것으로 인연을 다한 병의의 형 준의는 열아홉

신부의 복중에 한 점 혈육도 남기지 않은 채, 그 모습을 이승에서 거두어 갔다.

의지할 만한 사람 아무도 없는 삭막 첨담한 정경 중에, 오직 한 사람의 동기

로 실날 같은 명맥을 쥐고 있는 소년 시아재 병의를 막중 애중히 여긴 청암부인

, 삼 년 탈상을 하고 나서, 이윽고, 이웃에 면한 마을 이울에서 새 식구를 맞

이하니, 비로소 동서가 생긴 것이다.

자신과 나이 차이 몇 살 되지 않은 시아재의 혼사에 청상의 형수 청암부인이

보여 준 솜씨와 범절과 규모는, 이울의 시가에서나 매안의 문중에서나 모두 깊이

놀라고도 남았다.

그네는 문중의 문장과 더불어 규수를 구하기 위한 의논을 하고, 마땅한 자리

가 나섰을 때 저쪽으로 믿을 만한 중매인을 보내 뜻을 물어 본 후에, 양쪽 집안

이 서로 허락하는 의혼에서부터 청혼, 허혼 과정에 단 한 가지 소홀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

푸른 옷감에 붉은 종이에, 붉은 옷감을 푸른 종이에 싸서 혼서지와 함께 함에

넣을 때, 종이 한 장을 귀 맞추어 접는 일이며 보자기에 봉자를 써서 매듭 끝을

봉하는 일 하나까지도, 귀와 각의 모양을 맞추어 반듯하게 세우면서 격이 살아

나도록 정성을 들었다.

이에 다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어서, 외로운 형수가, 없는 살림에 치르는 혼

사였지만 조금도 궁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검박이 지엄하여 품격을 어려워하

게 하였다.

그것은,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사대 봉사 기제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소를 잡고 가마니로 떡을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닭 한 마리에 제

수 간소하게 올린 제사 음식을, 어떻게 나누길래, 온 마을 칠십여호를 다 돌고도

도선산 잔등이 너머 작은집 동네로 넘어가 지손들까지 두루 음복하게 하였다.

그 규모 있고 매시라운 손끝은, 실오라기 한낱을 동아줄보다 크게 쓰고, 흩어

진 흙먼지를 진흙처럼 잘치게 썼으니, 갓 시집온 손아래 동서 이울댁은 청암부

인을 마음속으로 조심하기 시부모에게 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하늘 아래 오직 단 두 형제 동서지간에 그 나이 차이 몇 살 안되는데,

하나는 홀로 되어 밤이면 온 산을 헤매는 늑대 울음에 잠이 안 오고, 다른 하나

는 지아비의 베개를 나누어 베는 것이 몹시도 송구스러워, 마음에 눈치가 가시

처럼 박히는 것이었다.

종가의 대문 바로 아래,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가하여 위아랫집이 한울안

같이 나란히 사는 이울댁은, 새벽잠이 없는 청암부인이 행여라도 달리 생각할까,

미리 염려해서, 누가 무엇이라고 한 일 없는데도 늘 꼭두새벽이면 일어나, 먼저

방에 불을 켜 놓고 밖으로 나와서 대빗자루로 마다을 쓸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아 검은 어둠이 겨울 푸르스름한 기색으로 바뀌는 시간에 싸

악 싸악, 이울댁이 마당 쓰는 소리가 들리면 그것은, 내외가 한자리에 있지 않다

는 표시였다.

과형수에 대한 병의의 마음씀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방문 바깥에서는 결코 젊

은 내외 희히낙락 다정한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청암부인이 비록 의연하고 정대하여, 그 성품이 굳고 도량이 넓다 하지만,

하지 않는 가슴속의 갈피를 낱낱이 헤아릴 수는 없는 일이라 이쪽이 조심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울댁은 회이하여 첫아들로 이기채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형님 자식이요."

몸을 갓 풀어 비린내 눅눅한 해산 머리에서 병의는 그렇게 말했다.

큰집에 아들이 없으면 당연히 작은집에 난 첫아들이 양자로 들어가야 하지만,

이울댁은 콧날이 시큰해져 말을 잇지 못하고

"날 풀리고 봄에 가면 어쩌겄소?

겨우 그 한 마디를 밀어낼 뿐이었다.

"여기서 큰집이 무어 천리 밖인가. 기왕에 보낼 것을 공연히 머뭇거리다가 이

런 저런 정 들면 떼어 내기 더 어렵지."

"그래도 이 엄동에."

"우리 생각만 허지 말고 형님 내외분 생각을 해 보시요. 한 부모한테서 난 형

제는, 한 나무에서 난 한 가지와 똑같은 것 아니요? 헌데 망형께서 종가의 종손

으로, 그 명을 오래 누리지 못허시고 그만 조세하신 지금, 돌아가신 형님 일을

누가 대신헐 것이요? 나 아니요? 배나무에 열린 배는, 내 가지의 배, 네 가지의

배를 다투는 법이 없지 않소. 그것은 다만 배나무의 배일 뿐이잖은가. 이 아이도

그런 이치로 생각하면, 내 것을 누구를 준다, 누구 것을 내가 뺏는다, 이런 마음

이 안 들지."

그런 줄을 누가 모를까.

그러나 도리보다 앞서는 것이 사정이어서, 새끼 낳은 이울댁은 고개를 숙이고

만 있었다.

"지손들의 집안에서도 이런 일은 당연한 것인데 더군다나 종손의 집안에서야

더 말해 무엇 하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이런 내색 추호라도 하지 마시요. 종가

의 종손으로 양자 들어가는 것은 이 아이한테도 복된 일 아니요? 한 가문의 으

뜸이 되는 조상의 직계손으로서, 가묘를 지키고, 제사를 받들고, 가문으로부터

존중을 받는 사람이 종손 아닌가. 종가는 가문의 큰 집이요. 그래서 명절 때마다

잡숫는 차례도 반드시 종가에서 끝난 뒤가 아니면 지가에서는 먼저 올릴 수 없

지 않소?

또 종가의 집이란, 종조의 유령이 머무시는 곳으로서 일문이 숭앙하여 높이

받들고 우러르며, 대대로 종가의 소유로 하는 것이요. 그러고, 조상 제사에 바치

는 위토도 종손이 소유하고, 종중 재산도 모두 종손이 관리하는 것이요. 만에 하

나 종가의 생활이 어려울 때는, 문중이 힘을 합해서 돕는 것이고."

그때 이울댁은, 잠 든 애기의 머리맡에 포대기를 세워 바람을 막아 주었다.

음 낀 겨울 바람이 방문을 때리며 시리게 끼쳐든 때문이었다.

"그러고, 형수님이 참으로 범연한 분이 아니시니, 이제 두고 보시오. 우리 집안

을 크게 일으켜서 명망을 떨치고, 예전의 가운을 되찾으실 거요. 그 성품이 준절

해서, 위엄 있고 정중한 것이 추상 같고 무서운 분이지만, 또한 인자한 분이라,

이 아이를 당신의 자식으로, 가문의 기둥으로 잘 길러 주실 것이요."

이울댁은 더 두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기채는, 강보에 싸여 청암부인의 안방으로 옮겨졌다.

이울댁이 포대기를 내려놓던 바로 그 자리에 지금, 소렴포 명주 이불로 몸을

감싼 청암부인이 하얗게 누워 있다.

그 옆에서는 염하는 사람들이 말없이, 시신을 동여 묶을 교대의 한쪽 끝을 세

갈래로 찢는다.

애통하게 부르짖어 곡을 하는 이기채를 바라보는 이울댁의 가슴이 그 삼베폭

처럼 찢긴다.

너는 모를 것이다마는, 나는 그때, 많이 울었느리라. 처음에 너를 가져, 부끄럽

고 고마운 중에 아들 낳기만을 간절히 축수하였더니, 천지 신명이 무심하지 않

고 조상의 음덕이 내게 끼쳐서, 손 귀한 집안에 해 같고 달 같은 너를 낳았는데.

젖도 떼기 전에 큰집으로 너를 보내 놓고, 아무도 모르게 돌아앉아 눈물 짓곤

하다가, 아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마음을 다잡아 먹곤 했었더니라. 비록

너를 떼어 보냈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나이 젊고, 너의 아버지 옆에 계시니,

집의 형님처럼 고단한 데 비기랴.

아이는 또 낳으면 된다. 이 다음에도 부디 아들 낳아지이다. 하늘이 감응하사

아들 낳아지이다. 전생이 있다 하면, 내가 아마 전생에서는 형님의 아들을 양자

로 데려왔었던가 보다, 이렇게 전생의 빚을 갚는가 보다, 데려왔던 아들을 돌려

보내 드렸으니 이번에는 부디 내 인연으로 나한테 태어나는 내 아들을 주십소

.

헌데 그때 너도 많이 울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강보의 떡애기가 무엇을 알

랴마는, 낯이 설어 그랬던가, 품이 달라 그랬던가, 그보다는, 어미 젖을 양껏 빨

아야 할 애기가 그리 못하여 울었던 것이리라. 소년의 청상으로 젖이 날 리 없

는 너의 어머님이 손수 밤을 낮같이 너를 보살피어, 깊은 잠을 주무시지 못한

채 암죽을 끓이고, 데우고, 너한테 먹이셨지마는, 아무래도 애기 입에는 달지 않

았던가. 너는 숟가락을 혀로 밀어내며 먹지 않고 늘 배가 고파 보채다가, 밤이

되면 젖 달라고 우는 소리가 아랫집 나한테까지 역력히 들렸었다.

젖이 있는 어미는 애기를 달래기가 쉽지마는, 안 그런 사람은 우는 애기를 달

래는 것같이 힘든 일이 없는데, 너의 어머님 심정도 오죽하셨으리, 생모가 바로

터 아래 있는데, 아무리 양자로 데려와 당신 자식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네가 그

렇게 울면 얼마나 나한테 미안하셨겠느냐.

허나, 나는 나대로 부질없는 젖을 대접에 받아 장독대의 정한 곳에 흘려 부으

, 참을래도 참을래도 눈물이 북받쳐 흘러 무심한 대접을 적시었다. 아마,

젖의 절반은 흘리지 못하고 참은 눈물이 가슴에 모여 고인 것이었으리라.

그날은 몹시도 추웠는데 눈발까지 섞여 날려 고샅에 발소리도 일찍 끊어지고

밤이 유난히 깊었었다. 세안 삼동이었지. 그날따라 너는 초저녁부터 칭얼거리더

니 밤이 점점 깊어갈수록 어떻게나 자지러지게 우는지 내 귀에 그 울음 소리 파

고들어, 나는 좌불안석 방안에서 서성거리다가, 방문을 열어 보다가, 주저앉았다

, 일어섰다가, 어찌할 줄을 몰랐다. 꼭 어디가 아픈 것도 같었고, 배가 고파 그

런 것도 같었다.

조그만 애기 창자가 다 마르고, 그 조그만 애기 배가 등에 가 붙은 것만 같어

, 내 가슴이 미어져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

달려가서 보듬어 주면 금방 그칠 것만 같아서 토방까지 내려섰다가 다시 방으

로 들어오기를 몇 번이나 했어도 너는 울음을 그치지 않었다.

밤이 되면 젖이 더 불어, 짜내려고 대접을 들다가, 나는 더 못 참고 대접을 내

려놓고 웃집으로 올라갔다. 우아랫집이 한 울안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게 몇 걸

음이나 되었겠느냐.

그래도 그 걸음은, 가서는 안되는 걸음이었다.

목이 쉬어 우는 너를 달래는 너의 어머님 음성이 마당에까지 들리는데, 등불

을 돋우어 놓은 방안의 불빛이 붉고, 방문에는, 너를 등에 업고, 방 네 귀퉁이를

가로 지르고, 세로 지르고, 둥그렇게 돌면서 하염없이 너를 어르는 너의 어머님

그림자가 비쳤느니라.

얼음같이 찬 바람은 허공에서 배폭 찢는 소리로 울고, 너는 방안에서 어미 가

슴 찢는 소리로 우는데, 나는 무슨 못할 짓 하러 온 것마냥 가슴이 쿵쿵 뛰어

수습하기 어려운데, 한 모금만, 꼭 한 모금만 이 젖을 먹이면 네 울음이 그칠 것

만 같았다. 누가 도로 아들을 찾어오겄다는 것이 아니라, 젖 모자라는 애기가 저

렇게도 울고, 나는 젖이 불어 짜내야만 헐 형편이니, 한 번만 먹이자고, 우선 애

기 울음을 달래자고, 그렇게 말씀 드리고 싶었다.

허나, 나는 그리 못하고 말았느니라. 이것이 한 번이 아니고 번번이 되면 어찌

할 것이냐, 무슨 일이든 그 한 번이 무서운 일이지, 한번 저지른 일은 두 번 일

을 쉽게 하게 만드느니. 이 한 번을 못 참으면, 형제간 우애하기 어려우리. 이제

는 울리든 때리든, 내 아들이 아니다, 형님의 아들이다. 내가 나서서는 안된다.

이번에는 내가 나를 어르고 달래었느니라. 허나, 나는 일개 새끼 낳은 아낙에 불

과한지라, 눈물이 앞을 가려 찬 바람에 얼어붙고, 그 위에 또 눈물이 새로 흘러

내렸었다.

그보다 더 내 마음을 가로막는 것은, 혹시라도 너의 어머님이 어찌 생각하실

는지, 털끝만치라도 오해하고, 서운히 생각하신다면 어찌할꼬, 하는 것이었다.

의 어머님 정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내 일에 앞서 살펴드려야 마땅한 일인데,

애기 좀 운다고, 생모 유세한다 하신다면 얼마나 송구스럽고 민망한 일이냐.

안 나시는 너의 어머님 앞에 보란 듯이 젖을 먹여 울음을 달랜다면, 내 속은 그

게 아니라 하더라도 너의 어머님 한스러우신 심사를 어지럽게 해 드리는 것밖에

또 무엇일까.

차라리 우는 너를 무섭게 윽박지르고 번거로워 짜증내시는 기색이 보였더라면

내가 달려들기 쉬었으련만, 그 준절 엄중하신 성품에 음성 한 번 변하는 일 없

이 오직 자애로 너를 어르며 안타까워하시는 너의 어머님 모습이, 내 속을 쓰리

게 하였더니라. 아무리 네가 울어도 나를 부르지 않으시는 너의 어머님 심정을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나는 그날 밤, 바람이 살을 가르는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은 채, 턱을 가슴에

박고, 소리도 못 내고 많이 울었다. 눈 섞여 날리는 동지 섣달 설한풍에, 아프게

불어오르는 젖을 너 대신 부둥켜 안고 한없이 울다가, 온몸이 얼어서 집으로 내

려왔었느니라.

이울댁은 이기채의 등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이기채는 청암부인 시신 앞에서

그칠 줄 모르고 곡을 한다.

내가 죽어도 네가 그리 슬피 울어 주려느냐.

이울댁은 문득 속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소렴을 마치고 대렴을 한 뒤에, 입관까지 하면, 이기채는 거친 베옷에 오

동나무 지팡이를 잡고 성복을 할 것이다.

그때도, 청암부인을 위해서는 모상이니 재최 삼 년을 입겠지만, 남자로서 남에

게 양자를 간 사람이나 여자로서 남의 문중으로 시집을 간 사람은, 그 생가 부

모나 친정 부모를 위하여 입는 복을 한 등급씩 낮추어 입는 법이라, 생모 이울

댁을 위해서는, 지팡이를 짚는 장기 일 년만을 입을 것이다.

최는 상복의 앞가슴에 달린 베 조각인데, 부모를 잃은 효자가 비애를 억누르

는 뜻이 있는 것이라, 눈물받이라고도 하며, 부판은 뒤에 붙이는 베 조각으로 비

애를 등에 짊어진 것을 나타낸다.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극추생마포로 베옷을 지어, 가위질 한 그대로 아랫단을 너실너실 꿰매지

않은 옷 참최의 상복을 삼 년간 입는다.

아버지 여읜 상복을 ''이라 이름 지은 것은 창자가 끊어지고 슬픔을 달리 나

타낼 말이 없기 때문이리라. 극추생마포는, 삼승베로, 삼베 중에 제일 거칠고 얼

금얼금 발이 굵은 것이다. 최는 또한 효자의 슬픔을 말하는 것인데, 어머니의 죽

음에는 차등추생포로 옷을 지어 아랫단을 꿰매어 입는 상복, 재최 삼 년을 입는

.

그 다음 복은 장기로서, 지팡이를 짚고 일 년간 재최를 입는 것인데, 적손이

그 아버지는 죽고 조부가 생존해 있을 때, 조모를 위하여 입는 복이다.

다음은 부장기이다. 상복은 입지만 지팡이를 짚지 않고 일년 동안 입는 것으

, 조부모, 백숙부모, 형제, 그리고 맏아들 아닌 뭇아들의 죽음에 입는다. 만일

맏아들을 잃었을 때는 그 복이 다르다.

대공복은 대공친인 종형제와 종자매들을 위해서 입는 상복으로, 굵은 베로 지

어 아홉 달 동안 입고,

소공복은 소공친인 종조부, 종조모, 형제의 손자, 종형제의 아들, 재종 형제들

을 위해서 다섯 달 동안 입는다.

끝으로 시마는, 종증조부, 종증조모, 종조의 형제나 자매, 그리고 형제의 증손

, 뭇 현손들을 위하여 석 달 동안 입는 것이다.

그래서 참최, 재최, 대공, 소공, 시마를 일러 오복이라 하고, 장기, 부장기는 상

복을 입되 지팡이를 짚는가 안 짚는가를 구분하는 일이다. 물론 지팡이를 짚는

상의 슬픔이 더 무겁다.

다른 상복은 모두 복식과 기간이 하나인데, 재최만은 관계에 따라 삼년, 장기,

부장기, 오월, 삼월의 다섯 종류가 있는 셈이다.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는 모든 관계의 사람들이 오복의 경우를 헤아려 슬픔

을 표하고 복을 입지만, 요사한 사람을 위해서는 순서에서 한 등급을 낮추어 입

, 시집을 갔어도 남편이나 자식이 없으면 부장기를 입으며, 서자는 자기를 낳

은 어머니를 위해서도 삼년복을 입니 못한다. 또 첩도 남편의 장자나 뭇 아들이

죽었을 때, 그를 위하여 애통히 여기고 복을 입는다.

부모상에 대나무와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 것은, 그 나무의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물론이고, 오동나무도 다 자라면 속이 메워지지만, 지팡이를

만들 만큼 어려서 아직 크기 전에는 비어 있다.

혹 누구는 그것이,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에 너무나 노심 초사하여 속이 다

녹아 없어진 것을 슬퍼하며 기리어 짚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무 사

심 없이 자신을 모두 비워 내고 존재의 천연심으로 돌아가, 우주 정기의 공간에

서 부모와 자식이 아무 걸린 데 없이 서로 감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충정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나면서부터 제 한 몸에 모

든 것을 가지고 있으니, 죽순에 응축된 마디 수 그대로 일년 안에 다 커 버린

, 더 자라지도 줄지도 않으면서, 사시 사철 푸르고 청청하다. 그리고 마디마디

절도가 있어 엄준한 성현 군자 그대로이다.

대나무를 베어 만든 피리나 대금 단소 같은 악기에서 울리는 음향을 율이라

하는데, 이것은 우주 천지 음양의 기운 중에 양성 소리이다. 양은 하늘의 기운을

받은 것으로 아버지를 상징하니, 부상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 것은, 아버지의

정신을 받들어 추모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대나무의 마디마디는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슬픈 마음의 옹이를 나타내

, 더울 때나 추울 때나, 해가 바뀌나 변함없이 추모의 마음을 이어가겠다는 다

짐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동나무도 겉으로 보아 아무 마디도 없는 것 같지만, 속을 자세히 들

여다보면 눈에 얼른 안 보이는 마디가 가다 있고, 가다 있고 하여, 겉으로 드러

나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깊은 어머니의 자애 심정과 같은데.

오동은 베어서 거문고를 만든다. 오둥 중에서도 석산에서 큰 오동은 소리가

짱짱하여 깊고 맑은데, 이것은 여라고 한다.

''는 음성 소리이다. 음은 땅의 기운을 말하는 것이니 어머니를 상징하여,

상에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고 울며, 어머니 정신을 그리워하고 새기는 것이다.

대는 차고 오동은 다숩다.

나무의 성품과 온도가 그리하매, 음률도 대나무로 만든 악기는 폐부를 찌르며,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심정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대나무 잎은 서슬이 날카로우며 오동나무 잎은 크고 넓어 치마폭 같

.

그러니 이 율과 여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율려가 되어, 심원하고

그윽한 현묘에 이르듯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신과 기운을 빈 마음으로 받아들

, 그 혼백과 통하고자 하는 자식의 효심이 지팡이에 간곡하게 어리어 있는 것

이다.

또한 대나무의 겉마디나, 오동나무의 속마디처럼, 정연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사람이 가고 오는 것 또한 그 한 마디인 것을 돌아보게 하고, 하나의 마디가 끊

어져도 또 다음 마디가 이어져 높이 높이 커오른 이 나무들을 바라보며, 조상과,

부모와, 자식이 서로 그와 똑같은 이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이 대나무 지팡이

저장이요, 오동나무 지팡이 삭장이다.

, 양의 조화는 오묘하여, 하늘이라고 오직 양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땅이라고 오직 음으로만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에도 음, 양이 두루 있고, 땅에도 음, 양이 고루 있다. 사람 또한 남자라고

그냥 양이 아니요, 여자라고 다만 음이 아니니, 남자에게도 음, 양의 기운이 함

께 들어있고, 여자에게도 음, 양이 성품이 같이 들어 있어, 어느 한편으로 치우

치지 않고 고루 갖춘 사람만이 그 조화로움으로 이 세상에 상생의 덕을 베풀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몸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살면서 어린 이기채를 기르고, 이제는

영결 종천, 다시 서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시는 어머니, 청암부인의 입관을

할 때.

굄목 두 개를 백지로 싼 등상 위에 관을 올려 놓고, 풀솜으로 관 안을 깨끗하

게 한 후에 사람들은 백지를 잘라서 위로부터 아래까지 펴서 놓았다. 그리고 관

의 가장자리로도 백지를 병풍처럼 세워 놓은 뒤, 차조의 짚을 태운 재를 서푼

두께로 고루 깔았다.

그리고는, 방판에 기대어 세워 놓았던 백지를 덮어서 재가 보이지 않게 가렸

.

그러더니 그 위에다 칠성판을 깔고, 자주색 안을 받친 붉은 명주 지요를 깔았

.

지요의 머리쪽에는 자주색 명주 헝겊 베개가 꿰매어져 있었다.

대렴포에 감긴 청암부인의 시신은 얼굴에 검은 멱모를 쓴 채로 묵묵히 누워

있는데, 입관할 사람들은 중목 세 개를 관 위에 상, , 하로 걸쳐서 놓고, 가로

묶을 베 횡교와 세로 묶을 베 종교를 중목 위에 걸쳐 놓는다.

드디어 두 사람은 위에서 시신의 머리를 받들고, 두 사람은 허리를 받들고,

사람은 다리를 받들어, 시신을 들어올린다.

중목 위에 모신 시신을 횡교, 종교로 묶은 뒤에, 관의 좌우에 서서 상, ,

중목 놓인 곳에 걸쳐진 횡교를 똑같은 힘으로 잡고 들어올릴 때, 다른 사람은

얼른 중목을 빼낸다.

들어올린 그대로, 지하의 묘혈로 내려가듯이 시신은 관 속으로 내려졌다.

균제 방정, 바르게 되었는가 살핀 사람들은, 종교, 횡교의 매듭을 풀어서 시신

위에 펴 놓고, 낙발을 담은 주머니는 머리 쪽에, 손톱을 담은 주머니는 겉면에

씌어진 방향을 따라 뒤섞이지 않도록 좌우의 손 옆에, 그리고 발톱을 담은 주머

니는 양 발 옆에 넣으면서, 관 속의 사우 네 모퉁이 빈 곳에 입던 옷과 종이로

보공을 하여 채우고, 그 위에 홑이불 천금을 덮는다.

이제 관 뚜껑 천판을 덮을 차례이다.

그러면, 다시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에 본다고 보는 것이며, 마음에서 그린다고 보는 것이랴.

애원 극통의 심정이 살을 마르게 하고 뼈를 녹게 하여도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가슴을 두드려 피멍이 들어도 소용이 없다.

그 심정을 헤아리어 천판을 덮기 직전에 망인의 얼굴을 덮은 검은 멱모만은

잠시 벗겨서, 자손들에게 부모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해 주니.

그 얼굴을 대하며 이기채는 무너져 통곡한다.

아아, 어머니.

부디 평안히 가소서.

이 세상에 남겨 놓고 가시는 일 아무것도 근심하지 마시고, 돌아보지 마시고

부디 안혼정백, 편안히 쉬소서.

그리우신 아버님을 맨 처음 만나던 날 입었던 옷 그대로 입으시고, 지금 어디

쯤 마중 나와 계실 그 옆으로, 부디 좋은 곳으로, 다 떨쳐 버리고 가볍게 가소

.

너무 오래 다른 유명에 살아서 몰라보면 어찌하리, 하시더니만, 입으신 그 옷

보면 아버님도 반가우시리다.

열여섯 살 아버님이 남겨 놓고 가신 세상, 일흔셋이 되도록 어머님이 다 맡아

서 사신 이야기, 그러면서도 차마 말 못하게 못 사신 세상, 이제는 만나셔서,

디 그 정회를 다 나누소서.

폐를 도려내는 이기채의 처참한 곡성이 청암부인을 덮는다.

그 위에 검은 멱모를 다시 씌운 사람들은, 하늘의 뚜껑인가, 천판을 닫고,

의 귀퉁이에 투웅 투웅 못을 박는다. 나무못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차단하여 무정하게 가로막은 문, 검은 관 뚜껑에 못 박

는 소리가 심폐의 한복판으로 깊이 저며들어 효원은 관 위로 고꾸라지며 흐느끼

어 곡을 한다.

 

김씨 맹인님 김씨 맹인님

황혼이 점점 밝어가는디

무슨 잠을 그리 오래 주무시고 있습니까

어서 일어나서 극락 세계를 오시라고 하니

극락 세계에 가시거든 맹물 향물 쑥물로 잘허고 오셨다고

진 세상으 입든 옷은 저녁 보신 낭구에 걸고

마른 옷 입고 오셨다고

사대 부친 왕림해 가시거든 염불로 질을 닦을 테니

잘 들어 보고 극락 세계로 잘 가시요 그려

 

상여를 매고 장지로 떠날 상두꾼들이 머리에 삼베 두건을 쓰고 양쪽에 열한

명씩 줄을 맞추어 서 있는데, 상여 앞의 선소리꾼이 놋쇠 요령을 울린다.

 

땡그라앙 땡그라앙 땡그라아앙

 

삼동의 한가운데 동짓달의 에이는 찬 바람 속에 오늘따라 무엇하러 파랗게 트

인 빙청 하늘이, 노적봉 위 저 먼 상상에 앙장처럼 걸려 있는데, 상여 지붕 위에

차일같이 두른 넓은 앙장은 속이 시리게 흰 빛이다.

발인 일시와 장지, 하관 일시, 반우 일시를 적어서 대문간에 붙여 놓은 발인기

의 백지 끝이 바람에 일어났는가, 흐느끼는 풍지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누르며

검은 먹빛은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다.

먼 곳에서 오는 조객인지 막 발인하려는 대문을 들어서던 노인 하나가, 마당

에 선 상두꾼들과 덩그렇게 높이 든 상여를 보더니

"허어."

허망한 한숨을 자른다.

바람 자락이 허공에서 운다.

"강모, 왜 강모가 안 보여?"

누군가 등뒤에서 숨죽인 소리로 수군거린다.

"모른대요."

대답하는 이 음성도 낮다.

"아니, 할머니가 돌아가셨그만, 손자는 어디로 갔어?"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유택으로 떠나는 망인의 마지막 모습을 배

웅하려는 사람들이 상여 뒤쪽에 에워 서 있는데, 굴건 제복의 이기채는 오동나

무 상장을 짚은 채 창자를 훑어 내는 아픔으로 곡을 한다.

효건을 쓴 위에 굴건을 쓰고, 거친 삼베로 재최복을 입은 그는, 삼대를 발라

낸 피삼을 왼새끼로 동아줄같이 꼰 삼노로 수질을 만들어 머리에 두르고 요질을

만들어 허리에 두른 채, 다리에는 삼베 행전을 치고, 흰 무명을 신총에 감은 짚

신을 꺼칠하게 신고 있다.

앞으로 쏟아지는 그의 몸을 받치는 것은 오직 한 자루 오동나무 지팡이 삭장

이다.

옷깃이 없고 소매가 넓은 저고리 대수장군의 긴 허리 아래로, 좌우에 달린 세

폭의 삼베 자락이 뒤에 드리운 여섯 폭 자락을 데불고 슬픔을 달래는데, 등을

덮은 부판은 바람에 뒤집히며, 업은 비애를 때린다.

발인제를 마친 뒤, 사람들은,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의 머나먼 길로 영영 가는

청암부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마당에 웅긋중긋 서 있는데, 무정한 상두꾼들

은 어깨에 올려 멘 상여를 천천히 흔든다.

그것은 마치, 망인이 서럽게 흐느끼면서, 가기 싫다, 가기 싫다, 하는 것도 같

, 아니면, 모여 선 일가 친척 동네 사람들과 이승에서 만났던 정다운 얼굴들을

향하여, 잘 있거라, 나는 간다, 하직 인사를 하는 것도 같았다.

흔들리는 상여의 사방에 매달린 색실 매듭 유소와 윗난간에 드리운 수실들이,

망인의 혼백이 흔드는 마지막 손처럼 나부낀다.

흔들리며 머뭇거리던 상여는 드디어 한 발을 앞으로 뗀다.

상여 앞에서 소리를 매기는 선소리꾼이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요령을 흔들고,

상두꾼들은 목소리를 맞추어 구슬픈 후렴을 부르면서 대문쪽으로 움직였다.

곡성과 상여 소리가 서러운 물살을 이루어 마당에 차 오르고, 휘황한 비단 공

단 만장들은 바람에 물결처럼 나부끼는데, 상여는 그 물마루에 높이 뜬 채로 저

승의 강물 저 먼 곳으로 떠나고 있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어서 이다지도 곱게 치장을 하고 가는 것일까.

상여를 사방으로 에워 두른 아랫난간에는 목단꽃 무늬와 연꽃 무늬, 그리고

구름 무늬들이 단청을 입어 화사하다.

그리고 윗난간 네 귀에는 봉수가 부리에 고리를 물고 우뚝 솟아 무궁한 창천

을 쏘아보는데, 그 아래 운각판에는 오색 구름이 영롱하다.

본디 상여가 앞뒤가 있을 리 없으나, 나가는 방향이 뒤바뀌지 않도록 앞쪽에

표시하여 붙인 용두판의 황룡은 등에다 삼천갑자 동방삭을 조그맣게 태우고 있

. 시자의 갈 길을 이끌어 앞 세우고 인도하는 신선이라 하는데, 단 백 년을 다

못 살고 허망하게 죽은 인생을 자기만큼 오래 살게 해 주고 싶은 염원이 서려,

그는 상여 머리에 신선이 된 것이리라. 그래서 상여는 동방삭의 얼굴이 바라보

는 쪽으로 나가는 것이다.

봉수에 감아서 드리운 휘장은 외흑내백 펄럭이고, 색색가지 각색의 색중대는

흰색과 초록, 노랑, 붉은 띠를 날리는데, 봉수마다 걸린 매듭 유소에는 작은 종

이 매달려 은은하고 맑은 소리로 운다.

상여 네 기둥에 청, 홍 갑사 등롱을 달아 저승의 밤길에 불을 비추라하고,

그런 상여 지붕 정수리에는 연꽃 봉오리를 단 위에, 앙장이 천정처럼 펼쳐 드리

워져 있다.

망인을 생시에 대하듯 정성을 다하여 꾸미고 치장한, 그 무엇 하나라도 소홀

히 하지 않은 상여는, 운각의 구름을 타고 덩실하니 하늘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여를 운궁이라 하는가.

그러나, 돌아올 길 다시 없는 이 걸음에 이만한 호사가 무슨 위로가 되리오.

오히려, 어서 가라, 어서 가라, 재촉하는 것이 아니랴.

 

어어허어노 어어허어노

 

못 가아겄네 못 가아겄네

차마 서러서 내 못 가겄네에

 

구슬픈 후렴에 가슴을 에이게 하는 선소리꾼의 상여 소리가 매안의 고샅과 지

붕과 나무 위에 넘친다.

 

오늘 해도 다 져간디

어서 빨리 가야겄군

 

어어노 어허노오

어러리 넘차 너와넘

 

돌아가신 망인은 서럽다고 허는디

뜻도 모르는 명정 공포는

우줄 우줄 춤을 추네

 

어어노 어허노오

어어노어 어하노오

 

매안의 도선산 아래 종산으로 떠나가는 청암부인의 상여에는, 황금 빛으로 네

누깔을 그린 가면을 쓰고 검은 윗도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모습으로, 한 손에

방패 들고 한 손에는 창을 세운 방상시가 앞을 섰다. 초상이 난 곳에는 흉사한

것이 많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물리치며 가게 하는 것이다.

방상시 뒤에 따르는 곡비 두 사람이 서럽게 목을 놓아 하는 곡이, 얼어붙어

투명한 겨울 하늘에 사무치는데, 상두꾼들의 상여 소리는 명정, 공포를 흥건하게

적시며 솟을대문을 빠져 나가 물결을 이루면서 고샅으로 내려간다.

청암부인의 죽음을 슬퍼하여, 살아 생전의 덕을 기리고 추모하는 만사, 만시를

적은 만장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참으로 휘황하고 긴 강물처

럼 출렁이며 넘실거리며 대문을 벗어나 중뜸을 지나 아랫몰로 흘러내려 갔다.

붉은 비단, 노랑 공단, 흰 베폭들은 불고 있는 바람에 날리어 길게 나부끼면서

하늘을 뒤엎었다.

상두꾼들의 상여 소리는, 뒤에 남아 베웅하는 산 사람들이나, 마을의 지붕들과

나뭇가지까지도 한 물결에 띄워서 멀리멀리 데리고 갔다.

 

땡그라앙 땡그랑 땡그라아앙

 

어어노 어허노오

어어노어 어하노오

어이가리 넘차 너와너엄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멀고 먼 길 황천 길로

일락 서산 해 저문다 어서 가자 재촉하네

 

엊저녁에는 우리집서 잤드니

오늘 저녁으은 어디서 자고 갈꼬

 

산토로 집을 짓고 송죽으로 울을 삼아

두견이 접동새로 벗을 삼네

 

어쩔그나 어쩌를 헐끄나

이 노릇을 어쩔끄나

참으로 갔네 그려 보고 싶어 어찌 살꼬오

 

놀다 가세 놀다를 가세 이 해 지드락만 놀다를 가세

갈 거짜야 설워를 마라 보낼 송짜 나도 있네

오늘 해도 다 되는디 골골마닥 연기 나네

 

하적이야 하적이야 오늘날로 하적이로세

가자 가자 어서 가자 황천 길로 어서 가자

인제 가면 언제나 올끄나 오실 날도 창망없네

 

황천이 멀고 멀다드니 앞 냇물이 황천이로구나

북망산이 머다드니 비개 밑이 북망이로세

 

잠이 와야 꿈을 꾸고서 꿈을 꾸어야 임을 보제

꿈에 와서 보인 님은 신이 없다고 일렀건만

아애 무정하고 야속헌 사람아 어디를 가고서 못 오신가

둘이 비자고 만든 비개를 나 혼자 비는 이 신세야

 

가세 가세 어서 가세 영장지지로 어서 가세

못 가겄네 못 가거었네 눈물 지워서 못 가겄네에

내 집 두고 못 가겄네 친구 두고는 못 가겄네

 

명사 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에 춘삼월 봄날이 돌아오면

그 꽃은 다시 환생을 하고

해도 졌다 다시 드고 달도 졌다 다시 뜨는디

 

우리네 인생은 한 번을 가며언

다시는 못 오네 환생을 못 허네에

내가 살던 이 땅을 밟기를 몇 십 년이나 밟었던 길

발자죽이 남었을 것이니 날 생각고 밟어도라아

 

어어노 어허노오

어어노오 어하아노오

 

땡그라앙 땡그랑 땡그라앙

 

가네 가네에 어데로 갈까

이 땅을 벗어지면은 어데로 갈까

 

하적이로고나 하적이로고나 오늘날로 하적이로고나

어이를 갈거나 어이를 갈거나 심산 험로를 어이를 갈거나

날짐생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북망 산천을 어이 갈꼬

 

춘초는 연녀록인디 왕손은 귀불귀네 그려

어와 세상사가 허망하다

젊어 청춘 소년들아 백발 보고서 웃지 마라

우리 같은 젊은 사람도 늙을 때가 있드란다

비단같이 곱던 얼굴 고목으로 변해 간다네

 

어어이노오 어어허와너

어너리 너어화 어어화너어

 

나는 가네 나는 가네

구사당에 하적하고 영결 종천에 나는 가네

먹더언 밥을 개 덮어 놓고오

들던 수저가 상녹이 나겄네 그려

날 간다고 설워 마라 죽어서 가는 나도 있다

공수래 공수거 허니 초로 인생이로고나 그려

 

무정하더 무정허요 못 가시리요 못 가시리요

산 첩첩 적막한 곳에 혼자 누워 계시게 되네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헌디

혼은 어디로 행하실까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명정 공포 운아삽이 어서 가자고 재촉을 하니

동네 어르신 우리 일가 친척이든지 우리 자녀들 남은 친구들

날 간다고 설워어 말어라아

 

가도 가도 내 못 가는 길

길이 달러서 나는 영원히 가네에

이승의 애기로 탄생하여 또 다시 찾어를 오실라요오

 

땡그라앙 땡그랑 땡그라아앙

 

어어노 어허노오

어어노어 어하노오

어이가리 넘차 너와너엄

 

 

7, 부디 그 땅으로

 

기차 천장에서 비추이는 불빛이 메마른 주홍으로 가루처럼 부옇게 내려앉은

강모의 얼굴은, 움푹 패인 눈그늘과 창백한 콧날 음영 때문에 핏기가 없고 푸석

푸석한 마분지 가면 같아 보인다.

"빗자루냐? 좀 풀고 편안하게 앉어라. 갈 길이 멀어."

강태는 부스럭거리며, 선반 위에 올려 놓은 가방과 짐보따리를 매만져 반듯하

게 들이밀기도 하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누런 봉투를 꺼내어 앞뒤로 주소 확인

도 하더니, 의자에 털썩 앉으며 어깨를 좌악 펴 등받이에다 부리고 기댄다.

그리고는 강모한테 농담을 던지듯이 한 마디 하고, 눈을 감았다. 심호흡을 하

면서, 마치 이제부터 출발하면 봉천에 도착하기까지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을

사람처럼. . 날카롭게 감은 눈이 뜨고 있을 때보다 단호하고 예리해 보인다.

기차 안 풍경은, 전주 매안 간에 가까운 이웃집처럼 노상 통학차를 타고 다닐

때와는 아주 판이하게 달랐다.

여수에서 떠난 전라선 철도가 순천을 거쳐 구레, 곡성, 남원을 지나 전주에 이

르도록 걸린 시간도 적지 않은 것이었지만, 전라북도 도경을 벗어나서 충청도와

경기도, 한강을 건너 경성까지만 간다 해도 여기서부터 열 시간이 훨씬 더 걸리

는 거리라 멀 터인데. 평양, 대동강, 신의주, 압록강을 넘어 남만주 봉천이라니.

거기는 얼마나 먼 곳일까.

"아마 온 하루 밤낮을 꼬박 잊어 버리고 가야 할 것이다. 어쩌면 스물네 시간

도 더 걸릴는지 몰라. 연착하고 연발하고."

"기차 속에서 밤을 새우며요?"

"세우기 힘들면 눕히렴. 느긋하게 마음 먹어. 만만디로 가는 길이니까. 떠나는

간다만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 않느냐. 이 한겨울 삭풍에 달 뜨는 만주 벌판을

달리면서 대륙의 정취를 한껏 맛보는 것도 좋겠지. 그 맛에 다 마적질도 하지

않겠냐?"

"마적이야 말을 타겠지."

"차나 말이나."

두 사람은 실없이 말에 서로 웃어 버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설렘과 두려움이 뒤엉킨 긴장을 감추기도 어려워 일부

러 눙치는 것이다.

"기왕 이렇게 길이 멀 줄을 알았으면 아예 침대표를 끊을걸..."

아까 정거장에 당도하여, 강태한테서 만주로 가는 삼등 완행열차 기차표를 받

아 들고, 선 채로 몇 마디 나누다가, 강모는 저도 모르게 불쑥 그렇게 말했다.

차표는 강태가 끊어 오기로 했던 것이다.

강태는 이 말에 강모를 쳐다보지도 않고 간단히

"부르조아지."

라고 일축해 버렸다.

"꼬딱하니 앉아서 그 먼 길을 어떻게 갑니까? 몇 시간도 아니고 몇 십 시간씩

걸리는 데를. 막대기라면 몰라도."

"서서 안 가는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라. 이런 좌석조차 못 구해서 자리가

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들은 서서 간다."

"그거야."

"형편? 이제부터는 너도 그다지 좋은 형편이 아니야."

걸어서 가지 않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겠지.

맞는 말씀이오.

무엇을 타고 이렇게 가든지 멀리만 갈 수 있으면, 나는 좋습니다.

달 뜨는 만주도 해 지는 벌판도 나에게는 상관없습니다.

강모는 건네받은 기차표를 양복 저고리 안주머니에 깊이 넣었다.

면죄부.

이것만 있으면 벗어날 수 있다.

.

강모는 고개를 들어올리며 한숨보다 깊은 그 말을 어둡게 삼킨다.

삼킨 말이 덩어리져 걸린 가슴을 누르며, 자리에 앉아 그는 비로소 사방을 둘

러보았다.

서로의 숨이 눅진눅진 묻어나리만큼 붐비는 사람들 중에는, 더러 옷가지나마

그런대로 갖추어 입은 남자와 부인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행색들이 남루하였고,

낡은 양복 윗도리에 솜을 두실두실 둔 핫바지를 꿰어 입거나, 솜 놓은 미영 저

고리에 몸뻬를 걸친 아낙네들이 추워서 팔짱을 낀 채, 둥덩산 같은 짐덩이 보퉁

이들 틈바구니에 엉키어 앉고 서고, 두런두런 불빛 아래 이야기하는 모습들은,

왜 그런지 을씨년스럽고도 뒤설레는 것이어서 미묘하게 들떠 보였다.

하기야, 기차라는 것 자체가 길 위에 뜬 것이라, 그 안에 실려 흔들리는 사람

의 마음인들 어찌 고요히 가라앉아 있으리. 비애도 희열도 출렁이며 움직이는

것이 당연할 일이다.

이런 중에도 어디쯤부터 오는 사람일까, 잠을 이기지 못한 더벅머리가 엄동의

얼음판자 기차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져, 비쩍 마른 새우처럼 꼬부린 채 자고 있

었다. 바로 그 옆, 큼지막한 보따리에 걸터앉은 중늙은이 영감 하나도 꿉벅굽벅

조느라고 이마를 의자 손잡이 모서리에다 곧 부딪쳐 찧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시렁 위의 바가지들.

이삿짐을 꾸린 듯 보이는 고리짝과 이불더미 짐꾸러미 끈에는 와그랑 다그랑,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조롱박이며 작은 바가지 쪽박, 쌀이는 이남박, 그보다

좀더 큰 함지박에 조그만 됫박들이 길떠나는 일가족의 중요한 세간살이로서,

치 그 식구들 앞앞의 얼굴이기나 한 것처럼 둥그름히 누렇게 매달린 채 오롱조

롱 묶이어 있었다. 너무나 정성스럽게 달아매어진 그 바가지들 형상은 우습고

엄숙했다. 그리고 눈물겨웠다.

별 신기한 것을 다 구경한다는 표정으로 기모노 입은 일본 여자 하나가 기차

선반을 올려다보며 키들키들 손가락질을 하는데, 저만큼 문간 옆 뒤쪽에 앉은

중년의 아얌 쓴 여인이 웬일인지 눈살을 찌푸린다.

무엇이 못마땅한 것일까.

뛔애애액.

희미한 새벽이 푸르스름 전주역 골기와 등허리 너머로 차갑게 트여 오는 시

, 기차는 어느결에 스스릉 미끄러지며 새벽빛을 뿌옇게 뒤덮어 가리우는 연기

를 목메이게 내뽐는다.

뛔애액.

이것은 비명인가, 기염인가.

부르짖어 대답할 리도 없는 그 무엇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도시의

새벽과 산야의 복판에 대고, 목이 쉬도록 부르는 소리, 외마디.

강모는 서서히 흐르는 기차 차창 바깥 건물과 기둥과 전송객들을 다급하게 내

다보았다. 그들은 휘익 스치며 멀어진다. 기차의 허이연 입김이 그들을 지운다.

뛔애애액.

기적이 운다.

저 소리의 이름을 '기적'이라 지은 이는 누구였을까.

그는 어떻게 이 시꺼먼 몸뚱이에서 저토록 우람하게 토해 내는 증기의 산더미

구름을 보면서, 쉰 목소리로 토해 내는 저 엄청난 굉음 탁성을 가리켜 기적,

기의 피리 소리라고 할 수가 있었단 말인가.

피리나 대금, 단소, 또는 흔히 호적이라 하는 태평소 날라리와는 그 크기나 빛

깔 모양새부터가 너무나도 동떨어진 이 기차를 보고.

그러나 한편으로 두 물건이 생김새부터 서로 아주 다른 것만도 아니어서,

자를 다루는 이들의 상상법이 엉뚱하면서도 딴은 그럴 듯한 한지라, 강모는 문

득 기가 막힌 심정으로 실소하였다.

순간, 자신이 타고 있는 이 기차가 운명의 검은 피리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너는 나를 입김으로 불어 내어 그 어떤 노래를 부르려느냐.

비가.

어쩌면 나는 지금 여지껏 살아오던 모든 것과 함께, 이 기차의 울음속에 증기

로 기화되어 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형체도, 시간도, 관계도.

어린 시절 매안의 아랫몰 복사꽃 핀 냇물과 버들가지 꺾어서 불던 피리, 푸른

풋내 서투른 입김 속에 섞여 번지면 까닭도 알 수 없는 풀물이 가슴에 들어,

루 종일 필릴릴리 판막이 떨리곤 하였는데, 버들피리 연두 물빛 아득히 흔들리

는 아지랑이 너머로, 아아, 봄의 비늘처럼 하염없이 날리고 날리던 연분홍 살구

, 꽃잎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었다.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그러던 날, 어느 해 봄, 전주로 유학하여 고향을 떠나 왔을 때.

고등보통학교 음악선생이 유난히 강모를 기꺼워하며,

"자네, 음악을 공부해 보지 않겠나?"

하고, 애착어린 격려를 성심껏 해 주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 플루트, 그리

고 클라리넷 같은 악기 다루는 법을 방과 후에까지 남아서 열심히 가르쳐 주었

.

강모는 그때 서양의 금속 은빛 피리를 처음으로 만져 보았다.

"자네가 지금 배우는 것은 모두 기초다. 겨우 악기의 문맹을 면하는 것이지.

나는 연주자가 아니라서 더 깊고 진정한 음악혼을 자네한테 심어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허나, 그릇이 못돼. 나는 다만 안내판. 표지 역할은 할 수 있지.

그런데 자네는 세포에 음의 혼이 있으니, ."

어느 악기가 나를 울려 부르는지 귀기울이고 들어 보라 하였다.

그래서 그는 동경으로 떠나고 싶었다.

실핏줄 밑바닥까지 자신을 당기는 바이올린 네 가닥 현 위에 생애를 싣고,

는 마음껏 떠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부서져 동강이 난 바이올린 중허리처럼 꺽이고 말았다.

참 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더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채, 앞이 보이지 않는 굴 속에

앉아 장님처럼 검은 시간의 벽을 더듬는 손. 강모는 파리한 제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흰 손등에 푸릿푸릿 돋아오른 정맥이 스산하게 비친다. 춥다. 그는

손을 오그리어 차디찬 주먹을 쥔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는지도 몰라.

돌이킬 수 없다는 것과 돌아올 수 없어다는 것은 어찌하여 같은 말인가.

두 말은 톱니같이 맞물리면서 강모의 뇌리에 송곳니를 박는다.

전주 이씨, 자신의 본향이어서 이곳에 입성할 때 감회가, 어린 나이에도 유달

리 진진하고 유심하였으나, 이제 그가 껍질 벗는 배암처럼 허물을 벗어 놓고,

차를 따라 몸만 빠져 나가려 하는 지금, 전주는 허연 껍데기 한 장으로 남아서

검은 기차의 꽁무니를 아연히 바라만 보고 있다. 그 서글프고 허전하게 벌어진

아구를, 버리고 달아나는 기차 증기가 허어옇게 메운다.

"제군들이여, 그대들의 관향은 어디인가?"

전주고보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심진학 선생은 말했었다.

"나는 청송 심가다. 아직까지 그곳에 가 보지는 못하였으나, 나는 꼭 나의 관

, 나의 본, 청송에 가 보고 싶다. 아마 가 볼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

의 관향에 가 본 일이 있는가. 전주 이다. 김해 김이다. 밀양 박이다 하지만,

상 내가 왜 내 성씨 앞에 그러한 지명을 달고 붙여 부르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뿐만 아니라 나의 성씨를 맨 처음 쓰기 시작하신 나의 뿌리, 최초

의 거룩한 씨앗, 시조께서 나셨던 고을 관향에 가 본 이는 더욱 많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누구를 만나 수인사 통성명을 할 때

"본이 어디냐?"

고 묻는다.

그러면 으레 그 대답으로, 조선 팔도 삼천리 강산 어느 곳엔가 엄연히 실재하

는 동네 지역 이름을 대어 말하기 마련이다. 가령

"파평이요."

"달성이요."

"광산이요."

"안동이요."

"진주."

라고.

''이란 글자 그대로 '근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한 몸 존재의 근본.

나의 근본이 되시는 분이. 내 성씨 앞에 붙인 지명의 땅에서

"인간적인 일을 했다."

하는, 기림을 이 말은 담고 있다. 가령, 그곳이 저 경기도 연천군의 북쪽에 있는

삭녕이라 할 때, 덕망 있고 훌륭하신 성씨의 맨 처음 어른이 여기

"삭녕에서 인간을 이루었다."

하는 것이 곧 ''이다. 그러니, 단순히 시조의 탄생지를 기념하거나 다른 성씨와

구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한 성씨의 시조가 되실만큼 어질고 크신

어른의 덕행과 학문, 정신을 훼손 없이 이어받자는 각오로 관향, 본을 쓰는 것이

.

그러니까 이 본을 굳이 제 이름 성씨 앞에 밝히는 뜻은

"삭녕에서 그분이 사시던 모습을 그대로 이 몸에 이루리이다."

하는 결심과 다짐이요, 자신이 그분의 자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표시다.

"이 세상에 근본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혹자는 훗날에 오다가 잃거나 잊어 버릴 뿐.

허나, 근본을 모르고서야 뿌리 없는 줄기가 어떻게 창창히 뻗어 나가며 가지

는 또 어떻게 우거질 것인가. 하물며 열매야.

내가 오늘 우리 성씨의 수수만만 잎사귀 중에 한 이파리로서, 내 조상의 맥을

짚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나아가 곧 겨레의 맥을 짚는 일과 꼭 같은 것이다.

그 둘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바로 한 몸의 조직, 이 손과 저 손의 엽맥인 것이

. 그 맥들이 모여 우리 민족의 역사 세포와 모세 혈관, 힘줄, 근육, 그리고 뼈

와 살을 이루느니. 우리는 자기 자신 하나하나에 대하여 진정한 존재 자각을 지

엄하게 가져야만 한다.

제군들이여.

우리는 외톨이가 아니다.

또한 외톨이여서도 안된다.

기댈 데 없고 매인 데 없는 외돌토리는 생명의 유기체 속에서 그만 피돌기가

막히고 끊어져 겉돌아 버린다. 나만 그렇게 끊어지고 마는가. 내가 끊어지면서

불행히 남의 것도 끊어 놓는다.

그 외톨들로 가득 찬 강토는 단 한 톨의 씨앗도 품을 수 없고, 실뿌리 하나

뻗을 수 없는 박토, 각동배기로 떠글거리는 삭막한 돌짝 자갈밭에 불과할 터인

. 비옥한 미래를 어이 꿈꾸랴.

내 조상을 잊지 않는 것이 나를 잇는 길이다.

우리는 조상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이 훗날, 어느 누군가의 조상이 될 때, 자손에게 어떤 존재로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우선 이 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제군들, 각자의 관향이나 고향,

은 시방 살고 있는 주거지의 내력과 설화를 조사해 보도록 하라.

마을의 유래, 유적을 찾아보라.

조상의 땅에까지 갈 수 없는 사람은 멀리 갈 것 없이 자기 동네 우물가 버드

나무는 누가 언제 심었는지, 저절로 났는지, 지금 이 동네 이름은 왜 그렇게 지

었으며 언제부터 불리기 시작했는지, 또 이곳에 예전에는 무엇을 하던 어떤 곳

이었는지, 맨 처음 이 동네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였으며, 그는 어느

곳에 터를 잡았는지, 그가 살던 그 집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섬세한 지도를

그려 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적어 놓아라.

실없이 보이는 이 면밀한 그림이 바로 당대의 기록이요, 후대한테는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대들의 성씨

관향에 가 보기 바란다.

그곳이 그대들이 성지이다.

그 성지를 순례해 보면, 오늘보다 더 구체적이면서 절실한 이야기가 얼마든지

생생하게, 질기게, 거룩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웅혼하고 지혜로운 지형의 기맥과 울분의 용틀임, 들꽃 같은 어여쁨, 아쉬워

고개 숙인 인생의 애잔함, 그리고 끝없는 좌절과 소망의 회오리 숨결들이 점점

이 고을 고을 새겨진 골목길들을 결코 놓치지 마라. 붙잡으라. 그 이야기와 삶의

흔적들을 지금 우리가 놓치면, 이제는 아무도 못 찾는다. 끝내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국토와 마을과 집안마다 흘러내리는 이 숨결과 이야기

, 갈피마다 주워 담아 품고 길러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인

지도 모른다.

우리는 위태로운 외나무 다리다.

보라, 이제 세상은 급속도로 무너지고 부서지리라.

우리는 이미 나라마저 잃지 않았느냐.

물려주신 조상의 강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일본에 짓밟힌 채 오늘날 나

라는 없어져 뜻밖에도 식민지의 백성이 되어 버린 우리.

이것은,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군들은 제군의 자손들에게, 식민지의 조상으로서 이 더럽고 서러

운 식민지를 또 다시 물려줄 것인가. 원하지도 않은 그들에게. 그리하여 영원히

못난 굴욕의 조상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심진학 선생은 그때, 목이 꺾인 채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

학생들도 따라서 묵연히 고개를 떨어뜨리었지.

"제군들이여, 그대들은 조상의 간절한 염원이 어리고 어려서 그 정혈로 생긴

사람들이다. 좋은 자식을 낳고 싶은 제군의 부모 양위께서 합심하여 정성으로

합일하시고, 그 부모 두 분을 낳으신, 그대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대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렇게 하셨다. 조부모와 외조부모님, 네 분의 염원

이 제군의 부와 모를 낳으시고, 그 부와 모께서는 또 제군을 낳으셨는데. 제군

하나의 몸에 벌써 숨소리 닿는 조상 여섯 분이 직접 작용하시거늘, 증조와 고조,

또 그보다 더 윗대조로 아득히 더듬어 올라가자면 그 수를 다 어이 헤아리리.

이 모든 조상의 지극한 염원으로 자식들을 태어났고, 이제 드디어 제군이 세상

에 났다. , 제군들이여, 지금 이 순간, 자기의 머리터럭과 얼굴, 가슴, 그리고

손이며 손톱들을 한번 스스로 만져 보라."

아이들은 웃지 않았다.

다소 장난스러운 기분으로 킥 소리를 터뜨린 놈도 있었지만, 힐끔 옆의 친구

를 곁눈질하며 어쩐지 떨리는 손으로 쑥스럽게 까끌까끌한 머리통을 어루만지거

나 가슴을 쓸어 보는 표정들은 자못 진지했었다.

"제군들은 이윽고 그대 자손들의 조상이 될 것이다."

이 몸이, 지금은 다만 남의 자손 된 몸에 머무르고 있지만, 미구에는 남의 조

상이 될 몸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라.

나는 청송으로 가리라.

"가서, 우리 시조 할아버지 기식하시던 자취를 찾아가 흠숭하고, 우리 몇 대조

할아버지께서 어이한 연고로 언제 청송을 떠나, 어느 길을 따라서 지금의 이곳

전주에 입향하시었는지, 꼭 그 어른 오신 그대로 발자국 밟으며 따라 걸어와 보

려 한다."

아름다우리.

오는 길에는 새도 울겠지.

그 옛날 고개 마루 언덕을 넘을 때 잠시 앉아 쉬시던 너럭바우며 붉은 비늘소

나무 둥치, 그리고 고불고불 황톳길, 길섶에 강아지풀 석양을 받고도 있었을 것

인데, 느릿느릿 흐르는 강물은 세월보다 멀리 누워 아득하였으리라.

그 길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을지.

아니면 속절없이 무너졌을지.

하다못해 토막진 한 뼘 길 촌단이라도, 가시덤불 쑥굴헝 그 어디 남아 있기만

하다면 나는 가서 내 가슴에 끌어안아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옛골 그리운 관향에는 아직 누가 어떻게 남아 있으며, 다른 혈족붙

이들은 또 어디로 나뉘어 떠나갔는지, 어디서 살고 있는지. 이삭을 줍듯이 한 톨

한 톨 주워 알아보려 한다.

"제군들이여, 그대들의 본은 어디인가."

심부재하면, 시이불견이요, 청이불문이라.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찾아보려 해야 비로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느니.

"이 세상에 사람이 몇 억 년이나 살았는지 몰라도, 귀와 눈구녁이 있다고는 하

지만 바로 듣고 바로 본 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개가 삼밭 지나듯이 핵심 속으로

는 못 들어가고 바깥에서만 빙빙 돌다 마는 경우 허다하리라."

우선 조선, 비록 국호는 없어졌다 하나, 나라는 여전히 백성을 품고 있으니,

우리가 제 핏줄과 성씨를 확실히 간수 건사하고 있노라면, 성씨들이 켜켜이 성

을 지어 지키는 나라를 누가 감히 파고들어 오겠는가. 정치적으로는 멸망했을는

지 모르나, 결코 귀화 승복하지 않은 성통과 정신들이 시퍼렇게 살아서, 등걸 죽

은 자리에 또 새순 날것인데.

이 나라 조선의 성씨를 가진 사람 중에서 반상과 빈부를 막론하고, 본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제군들이여.

부디 그 땅으로 찾아가 보라.

그것이 바로 나를 찾는 첫걸음이다.

대저 우리가 나라를 어디 가서 찾을 것이냐. 정객은 정치를 통해서 찾으려 할

것이요, 군인은 싸움을 통해서 찾으려 할 것이다. 정객도 군인도 아닌 일개 학생

이나 시민 백성은, 공염불 같은 구호로만 나라를 찾자고 부르짖을 뿐, 아무런 대

책도 방법도 없지 않은가.

나는 생각한다.

나를 찾는 길이 곧 나라를 찾는 길이라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조국을 알 것 아니냐.

모국이라는 말에는 어미가 들어가고, 조국이라는 말에는 할아비가 들어가는 속

뜻을 곰곰히 짚어 보기 바란다.

자신의 성씨 시조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 본관은, 달리 관향 혹은 향관, 성관

이라고도 한다.

물론 우리가 단군조선 개국 이래 본관을 써온 것은 아니다.

애초에는 풀과 나무 같은 우리말 본디의 생래적 이름이 저마다 있었을 것이

,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한반도와 중국의 문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극적으로 한화를 꾀하였던 신라 정책을 따라 중국 성과 본관의 제도는 유입,

용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정착된 시기는 대개 신라 말엽부터 고려 초기로

본다.

, , 김 신라의 3성에, , , , , , 설을 비롯한 진골 육두품 계층이

일반 백성들과는 다르게 비로소 확실한 성을 가진 것이 이때였다.

"그러다가 고려에 들어서는 지배 계층에 널리 성이 보급되면서 본관 제도 역

시 함께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뒤, 전국의 군과 현이 명칭을 바꾸고 각읍 토성을

나누어 정리한 다음, 유이민들을 정착시켜 살도록 했다.

그러면서 신라의 유물인 폐쇄적 골품제도를 청산하고, 신 왕조를 이끌어 나갈

기틀로서 새로운 지배, 지도 계급으로 지방의 호족을 기용하며, 그 성씨가 살고

있는 지역을 밝혀 매기는 본관 제도를 실시하였다.

이렇게 백성을 지역별로는 군현제로, 계층별로는 호적제도로 편성함으로써 상

호간에 신분이 질서를 유지하고, 이 질서를 통하여 중앙 집권의 손이 미처 닿을

수 없는 지방을 통치하면서, 징세와 조역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었던 것이

.

인간의 삶을 이루고 있는 바탕은 기본적으로 동서고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혈연과 지연이였다.

이 중에 성은 부계의 혈통을 나타내는 징표로서, 한 조상의 줄기와 가지 아래

끊임없이 지며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성을 보여 준다면, 본관은 조상이 어느 한

때 그곳에 머물러 몸소 거주하며 살았던 땅 지역을 가리키는 바 '공간'의 의미가

더 크다.

"따라서 성이 같고 본관도 같으면 거의 본능처럼 부계 친족 혈속의 친근감을

남달리 밀접하게 느끼는 것이다."

허나, 만일에 성과 본관 중 어느 한 가지가 다르다면 이는 이미 혈연은 아니

어서 서로의 대인 상관에 판이한 차이가 생긴다.

이 성과 본과의 관계를 좀더 살피어 본다면, 성도 본도 같은 동성동본, 성은

같으나 본이 다른 동성이본, 성도 다르고 본도 다른 이성이본이 있다.

본래 성씨와 본관은 아무나 쓸 수 없었으므로, 그 시대 사회 속에서 계급적인

우월성과 신분을 드러내는 표시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이 제도는 왕실

에서 귀족과 일반 지배 계급으로 파급, 확산되었으며, 나아가서는 드디어 양민,

천민에 닿기까지 두루 씀에 이르렀다.

"맨 처음 성을 쓰기 시작할 때, 스스로 정하여 쓰는 자칭성도 있고, 나라에서

내려 준 사성도 있다. 본관도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나라에서 붙여 준 본관은, 그 본관을 받게 된 연유와 성격, 또 그것

을 쓰는 사람의 신분과 직역에 따라 서로 격차가 있었다. 의미 또한 현격하게

달랐다.

여기서도 신분의 차이는 확연하였다.

말하자면 본관의 고을 읍격이 높은 성씨나 이미 명문이 된 가문은 그 본관을

명예롭게 생각하였고, 외딴섬이나 향, , 부곡 또는 역과 진을 본관으로 한 계

층은, 어떻게 하든지 기회만 있으면 이 미천한 본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처럼 신분과 지역을 세분하여 파악했던 본관도 고려 후기를 지나 조선에 이

르면서,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일대 변혁을 겪게 되는지라. 신분 구조가 엄청나

게 뒤바뀌어 기왕의 본관은 획기적으로 개편, 변질되었다.

이에 속현의 승격과 소속의 이동, 군과 현의 구획 폐합 등으로 촌과 향이 새

로이 정리되니, 이를 따라 신분 이동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다.

관향을 제정하던 당초에는 성의 본관과 거주지가 서로 일치하였지만, 후대로

올수록 차츰 달라져서 고려나 조선 시대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간 귀족과 관료

층은, 대체로 이 둘이 서로 같지 않았다.

이는 지방의 토성이 상경하여 벼슬에 임하기도 하고, 서울의 관료가 낙향하기

도 하며, 조정에서 백성을 이주시키기도 하여, 유이민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탓이

었다.

그러므로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이미 뿌리와 얼개가 그물코처럼 촘촘히 얽히

어 파고들어갈 여지가 없는 성을 바꾸려고 하는 일은 극히 적은 반면에, 본관을

변경하는 경우는 매우 많아졌으니. 이는 관향이라도 바꾸어 신분 상승을 꾀해

보고자 하는 편법이었다.

그만큼 조선은 성씨를 중심으로 엄격히 이루어진 사회였다.

세종실록에 보면 벌써 이때 우리나라의 성씨 수는 약 이백오십 개, 본관의 수

는 일천오백여 개가 넘었다고 한다.

"조선 왕조의 양반 지배 체제가 존속하는 동안, 성과 본관을 감히 가지지 못한

천인들고 있었으나, 한말에 근대적인 호적 제도가 시행된 뒤부터는, 조선 사람이

면 누구라도 성과 함께 본관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성씨와 본관의 우열에 대한 관념은 아직도 남아 있으니.

본디 성씨와 더불어 본관 제도는 계급적은 우월성과 신분의 상징으로 대두되

었던 만큼, 그것에 입각한 신분 관념은 오랜 세월 음으로 양으로 층층이 뿌리를

내려, 좀체 쉽게 떨치거나 바꾸기 어려운 탓이다.

그러므로 본관은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어떤 성원들의 혈통

계열을 표시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것의 높고 낮은 구분을 좇아, 그에 속한

성씨들의 등급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대를 더듬어 올라갈수록 더욱 심하였겠지만, 성과 본관의 등

급은 동성동본의 성원들을 내적으로 결속시키고 범주화하여, 그들이 가진 지체

를 굳게 유지해 나가게 했다.

그런즉, 같은 등급의 성씨와 본관을 가진 성원들은 자기들 무리끼리 하나의

계층을 형성하였고, 그 계층의 벽은 우열이 견고해서 감히 타파하거나 넘나들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혼사를 할 때면 이 벽은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토록 오랜 우리의 성씨를 일본제

국주의 침략자들은 무도하게도 깡그리 부수고 근거를 말살하여, 창씨 개명하라

한다. 저희들 일본식으로 바꾸라 한다. 안 바꾸면 죽이겠다 하니, 목숨이 더러워

어쩔 수 없고, 후손을 보존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시국을 원망하며 창씨하는

경우, 자신의 본관을 성씨로 세우는 사람도 많다. 그나마 참혹한 마음 한 자락을

눈물로 비빌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군들이여.

사람의 한평생에 길떠날 일이 많다 하나, 일본으로, 중국으로, 아라사로, 미리

견으로, 구라파로, 드넓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활약하고 다닐지라도, 한 점

내 존재의 씨앗이 비롯되었던 본관 근원지에 못 가보고 만다 하면, 이 아니 허

퉁한 일이겠는가. 씨앗 없는 과일 같은 것이리라.

자두, 사과, 복숭아, 수박, 그 맛난 과육을 사람이 다 먹어 치운다 해도, 씨앗을

먹히지 않는 한 그것들은 다시금 온전히 나무와 넝쿨로 살아나 번창할 것이다.

잃은 것은 살, 잠시일 뿐.

"그대들은 그대들의 씨앗 속으로 돌아가 보라."

고 심진학 선생은 말했었다.

"부디 그 땅으로."

라고도.

강모는 전주 이씨 관향을 찾는 대신 지금 그 땅과 고향을 버리고 타향 만리,

객창 천리, 아득한 만주 삭방, 아는 이 하나 없는 남의 나라 남의 땅으로 실려

감에 만감이 착잡하다.

 

 

8. 거멍굴 근심바우

 

서산 노적봉을 등뒤에 병풍같이 둘러 세우고 멀리 아득한 동쪽으로 지리산의

능선을 바라보는 마을 매안의 지형은, 검푸르게 우거진 소나무 산 노적봉의 기

맥이 아래로 벋어 내리다가 기슭에 이르면서 평평한 둔덕을 짓고 고이는데,

자락 끝에 나붓이 드러난 발등과 같이 도도록하다.

그냥 뒷동산이라고 불리는 산 자락 기슭에는 해묵은 밤나무가 들어차 우뚝하

거나 드러누운 바위의 큰 덩어리들과 어우러져 동무를 하고 있는데, 이 밤나무

숲을 뒤안으로 한 원뜸이 마을의 맨 위쪽이다.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암수 서로 마주하고 서

있는 종가의 솟을대문 아래쪽으로는 형제, 지친과 그 붙이의 집들이 모여 있다.

"송무백열,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더니만, 이것은 행무행열,

집에 은행나무가 무성하니 우리집에 살구나무가 즐거워하는 격이네 그려. 허기

, 은행이나 살구가 무슨 속이 같어도 그리 같아서, 살구 행, 동자를 쓰겄는가

마는."

하고 기응이 말하며 웃은 일이 있는 오류골댁 살구나무 둥치는, 가을이면 눈이

시린 궁청의 하늘 아래 황홀 휘황하게 물이 드는 노란 은행나무 눈부신 떨기를

한겨울 내내 제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가, 이른 봄 땅이 녹기 시작하면 멀리 연

두빛으로 트이는 봄 하늘 아래, 비로소 애달프고 자욱한 연분홍의 구름 머리로

꽃 피어 대구로 화답하였다.

이만큼 내려와 가운데 모인 중뜸의 언덕과 사립문 어귀에는, 그들의 새끼 나

무들이 다문다문 흩어져 자리를 잡았는데, 어느결에 어미 나무가 되어 있곤 하

였다.

그리고, 노적봉에서 날아온 솔씨가 어느 때쯤 떨어진 것일까. 매안에는 마을의

굽이마다 적송이 몇 그루씩 모여 서 있었다.

막 등천하려는 듯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는 기상의 붉은 몸에 용의 비늘 같은

갑옷을 입고 푸른 머리를 성성한 바람 속에 드리운 적송은, 울근불근 뿌리의 뼈

가 땅 위로 드러나 있었다.

마을 왼쪽을 끼고 물이 흐르는 계곡이 그 흐름을 낮추어 개울로 변하는 아랫

몰 언저리부터는 무논이다.

울안마다 감나무가 지붕을 넘어 선 키에 가지를 늘리우고, 또 나름대로 배나

무와 모과나무들을 마당 귀나 사립문 옆에 데불고 있는 매안의 집집들은, 지천

으로 흔한 돌을 주워 쌓은 돌담말고도 심심치 않게 물소리를 내는 대나무로 울

을 두른 곳이 많았다.

아랫몰 발끝에 서서 펼쳐진 논밭을 바라보면 어머니의 앞자락 같은 안온함이

느껴지지만, 뒤돌아 노적봉을 올려다보면 그것은 부성의 웅자가 분명하였다.

이 산의 풍광 명미한 골짜기에, 일찍이 용성지에도

"그 경치가 아름다워 호남에서 이름난 절"

이라고 씌어진 사찰, 호성암이 있다.

본디 그 규모가 커서 수도하는 승려가 무려 이삼십 명이나 되었다던 이 절은,

옛날 어느 도승이 좋은 절터를 찾아 남원의 산천을 두루 돌아 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주위의 빼어난 경치에 취한 채 걸음을 멈추고

"참으로 절을 세우기 알맞은 도량이로다."

탄복하였다는 곳이니.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바 있는, 황희 정승의 작은아들 남원공 황수신이

"남원의 옛이름은 대방으로 산과 들, 냇물이 비단같이 아름답고 기름지다.

은 들이 백 리나 뻗쳐 있어 그 산자수명하고 살기 좋기가 실로 신선이 살고 있

다는 하늘과 같으니라."

고 말한 구절의 한 갈피인 셈이었다.

그러나 '백 리 넓은 들', 요천강과 적성강이 흐르는 유역의 평야부를 말하는

것이리라.

지리산맥이라고도 부르는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일대 분수령을 이루면서 서

로 나뉘는 지붕 꼭대기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낙동강의 맨 윗머리가 되

고 서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섬진강의 맨 윗머리가 되는데, 서쪽으로 가는 여러

줄기 흐름은 이 골 저 골 물이 모이고 모이면서 합류하며, 남원군의 산동면에

이르면 제법 긴 강이 된다.

여기서부터 물의 이름을 요천이라 부른다. 이 강물은 산동면 아래 이백면을

거쳐 남원읍의 동족을 휘감으며 유유 완만하게 비단필처럼 흘러가, 전라남도와

접경하고 있는 금지면에 이르러 적성강 하류와 만나 합수하니, 이제 순자강을

이룬다.

도도하게 굽이치며 흐르는 이 강이 섬진강의 크고 깊은 강물에 이르면, 푸른

물 흰 모래로 어울리어 구례, 곡성을 지나고 경상남도 하동땅을 적시면서 남해

로 가는 것이다.

이 강물의 유역들은 지질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여 기름진 평야를 가없이 이

루어 내니, 요천강 유역에는 가방평야요, 적성강 유역에는 금지평야여서, 그 아

득한 넓이는 실로 백 리를 가고도 남았다.

이런 남쪽의 넓은 평야부를 제하면, 동쪽으로는 소백산맥의 준령들이 드높고,

다른 쪽으로는 노령산맥이 위용을 떨치고 있는데, 이 노령산맥은 다시 여러 지

맥으로 갈리어, 북쪽으로 마이산맥, 서쪽으로 부흥산맥을 이루어서, , , 서 삼

방면 모두가 크고 높은 산맥의 줄기와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 바로 남원

군이었다.

이렇게 큰 산맥들에 에어싸인 남원군의 동쪽 어깨는 그 중 산악이 높아, 어깨

꼭대기에 올라앉은 운봉면은 제가 속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삼도

접경 몰랭이로, 겨울 적설기에는 눈이 내리는 대로 얼어붙어 빙판이 된 채, 이듬

해 봄이 돌아와 남들은 꽃 핀다는 춘삼원이 지나가고 모내기 해야 할 사월이 되

어서는 얼음이 겨우 녹기 시작하는 산간 고원지대이다.

그러나 지리산맥과 노령, 마이산맥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산 위에 산이요,

너머 산으로, 높은 산과 깍아지른 골짜기, 그리고 빼어난 봉우리와 험준하고 가

파른 고개들이 첩첩으로 연하여 있어, 곳곳마다 신선이 노닐 만한 청량한 계곡

과 구름이 스치는 기암 절벽들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신가한 것은 이 운봉의 지형이다. 이렇게 높고 고원의 어깨마루 지대

, 운봉면과 아영면, 그리고 그 옆에 동면까지 삼개면을 이룰 만큼 넓은 평원이

여원치 고개를 막 넘어서면 한눈에 풍요로이 펼쳐져 들어오는 것이다.

이곳에 동천, 서천의 물길 또한 넉넉하니 마을은 물론이고, 가히 가방평야,

지평야와 더불어 이 고장의 삼대 곡창이라 불리어 무색하지 않은 운봉평야가 생

겨난 것이다.

이처럼 두드러진 산간 고원의 치솟은 어깨나, 맑은 강이 흐르는 평야부의 비

옥한 가슴말고는, 대체로 넓은 지역에 걸쳐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는 곳이 많았

.

매안 마을이 있는 사매면은, 남원읍에 맞닿아 인접한 곳으로, 군의 복판에서

서북 간방으로 약간 빗기어 앉은 이 면에 이어, 서쪽 손으로부터 복쪽 머리를

돌아 동쪽으로 띠를 이루며 거대한 삼태기처럼 주위를 에워싼, 대강면과 대산면,

그리고 덕과, 보절, 산동, 이백, 주천, 송동, 수지 같은 면들이 다 이 구릉지대에

속했다.

이 준평언의 구릉지대 안에는 크고 작은 들이 산재하여, 주위 경관을 데불고

농사짓기 마땅한 곳도 있고, 척박한 토질에 손가락이 갈퀴처럼 벌어지는 곳도

있었다.

이런 지세를 높고 크게 에워싸고 있는 소백, 마이, 부흥을 두고 사람들은 삼대

산맥이라 하였다. 이 산맥들은 저마다 한 영봉에 그 정기를 갊아 넣었으니, 동쪽

의 소백산맥은 지리산 묘경을 이루었고, 성수산맥이라고도 불리는 북쪽의 마이

산맥은 천황봉을 우뚝 세웠으며, 서쪽의 부흥산맥은 저 노적봉에다 위엄있고 의

연한 기상을 아무려 세상에 보여 주고 있었다.

이 노적봉의 발등이 매안 마을이다.

마을 끝 아랫몰에 이르러, 치마폭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논을 가르며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점잖은 밥 한 상 천천히 다 먹을 만한 동안을 걸으면 정거장에

닿는다.

본디 이곳은 무슨 이름을 따로 붙일 일이 없었던 논 가운데였다.

그러던 것이 전라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이곳에 정거장이 생긴 것이다. 이 지

점은 매안뿐만 아니라 그만그만한 주위 사방 마을과 여러 골짜기며 조금 더 멀

리 떨어져 있는 마을에서까지 사람들이 골물처럼 모여 오기 알맞은 곳이었다.

논 위에 철도가 놓이고 정거장 역사가 세워지면서 역장의 관사와 역관의 집,

그리고 밥집이며 점방이들이 처마를 맞댄 옆에 몇 채의 새 집이 들어서고 주막

과 여각이 어울려 생겨났다.

지금까지는 근처에 없던 모양의 동네가, 철갑차와 더불어 새 풍물을 보이며

제법 불어나 정거장 동네는 북적거리게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남원도호부로부터 서울까지의 거리는 육백오십오 리인데 걸어서 이레하고 반

날이 걸리느니라."

고 하였다.

그래서, 철도가 생기기 전, 멀리 한양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괴나리봇

짐을 등에 메고, 몇 켤레의 짚신을 갈아 신으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여 걷고

걸었던 것이다. 먼 길에 재를 넘고 물을 건너며 하염없이 걸어갈 때 오직 죽장,

망혜, 단표자를 벗 삼으니 죽장은 대나무 지팡이요, 망혜는 짚신이고, 단표자는

도시락과 물떠먹을 표주박이 아니겠는가.

옛날, 남방에서 북으로 서울을 가는 길은 크게 나누어 경상도 길과 전라도 길,

두 갈래였다.

그런데 경상도 길은, 소백산맥에서도 험하기로 이름난 추풍령과 죽령, 그리고

조령 새재를 넘지 않고는 아무리 해도 한양으로 갈 수가 없었다.

반면에 전라도 길은, 섬진강의 유역을 따라 남원을 거쳐서 진주를 지나고 공

주로 접어들어 서울로 가는데, 비교적 순탄한 길이라, 한양에서 뻗는 팔도 길을

통틀어 말할 때, 남원을 통하는 전라도 길이 가장 부드러운 길이라고 일컬어 말

했다.

예전에는 이런 길목의 요소마다 찰방이 있었고, 찰방이 있는 곳을 역이라 하

였다.

찰방은, 조선시대 각 도의 역참을 관리하던 종6풍의 외관직으로, 세조 8년에는

충청도와 전라도에 찰방과 역승을 각 3인씩, 경상도에 각 5인씩, 황해도에 역승

은 없이 찰방만 2인씩 두었는데, 이들은 역승의 잘잘못을 규찰하거나 주군수령

의 탐학과 민간의 고통을 살펴서 엄히 다스리는 것이 주 임무였다.

또한 전시에는 봉화를 올리고, 언제나 급한 관용, 공용에 대비하여 역에다 역

마와 역졸을 챙겨 두었다.

찰방은 대체적으로 역리를 포함한 역민을 관리하고, 역마를 보급하며, 사신 접

대 등을 총괄하는 역정의 최고 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으며 북방지역에서는 군사적 성격의 역촌을 순행하면서 부방의 임무도

수행하였다. 도로는 나라의 뼈대요 핏줄이며 강토의 국방 기밀이기도 하며, 평상

시에는 운송의 수단이지만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징발하는 말또한 나라의 일급

재산이어서 찰방은 각별히 신임받는 관리를 임명했다.

거기다가 행정면에서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이나 정랑직의 명망 있는 문신

을 차출하여 지방 주현에 파견, 수령의 탐학과 민간의 질병까지도 상세히 고찰

했으니, 민생의 안정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에 따라 나라에서는 역의 관리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특별히 역둔토를 역

에 딸려 내려 주었다.

찰방 있는 곳은 한양으로부터 그 고을에 들어가는 첫 머리 초입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일과 시정의 소식에 빨랐다.

그래서 장사하는 시정아치들이 자연히 사방에서 모여들고, 물산의 교유가 저

절로 이루어져 큰 장이 서게 되었다. 이것이 다 역을 중심으로 되는 일이라,

방이 있는 역은 흥성거리게 마련이었다.

조선 시대, 남원진 도호부의 찰방은, 오수역에 주둔하고 있었다. 한양에서 남

쪽으로 내려올 때, 남원진의 입구는 오수였던 것이다. 이 오수역에는 역사와 찰

방의 관사, 그리고 역의 소유인 둔전이 있고, 역마 스물일곱 필이 역졸과 함께

항상 대비되어 있었다. 역마를 갈아타거나, 역졸을 부려 관물을 나르거나, 공문

서를 전달하려고 먼 길을 가야 하는 관리들이, 말과 마부를 이용하고 또 숙박도

하는 곳이 ''인지라, 여기는 늘 사람들이 북적북적 넘치었다.

이 역이나 비슷한 곳으로 원이 있었다.

먼 길 가는 사람이 이용하고 묵는 것은 같았으나, 오로지 관용이었던 것이 역

이라면, 원은 민간의 나그네 길손이 숙박하거나 머물기도 하는 곳이었다.

이곳도 사람의 통행이 많고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원에 본거를 두고 오수 찰방이 관할하는 곳은, 십일역, 십오원이었다. 그러

니까 오수역 찰방은, 역과 원을 다 합하면 모두 스물여섯 군데나 맡아 관장하였

던 것이다.

매안에서 오수역까지는 시오리 길이요, 원이 있는 밤두내 율두천원까지는 십

리 길이고 남원 읍내까지는 삼십 리 길이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찰방도, 역마도, 역졸도 모두 없어지고 그 대신 철도

와 정거장이 생겼다.

그것이 벌써 칠팔 년 전 일인데 다만 아직도 역이라는 옛말은 그대로 남아 뙈

애액, 검은 연기를 온 하늘에 뿜어 내며 시커멓게 달려드는 철갑차를 맞이하고

보내고 하였다.

찰방이 있던 역만큼이야 법석거리지 않지만, 그래도 정거장에는 언제나 사람

들이 사방에서 모여와 어우러져 있었다. 상행으로 서울로부터 하행으로 여수에

이르기까지 기차를 타려고, 여러 마을 여러 골에서 이곳으로 나온 사람들이 보

퉁이를 하나씩 안고 들고 앉은 대합실은, 오수 장날이나 남원 장날이면 으레 더

많아지게 마련이었다.

예전부처 오랫 동안 그래 왔듯이, 시오 리 오수는 물론이고 삼십 리 남원장에

도 걸어다니는 사람이 태반이었지만, 무슨 이기지 못할 큰 짐이 있을 경우에는

놉을 사는 것보다 차비가 더 적게 먹혀, 처음에는 낯설고 무서워서 쭈밋거리던

기차를 타게 되는 것이다.

이고 지고 나온 보퉁이와 꾸러미를 들고 장으로 가려던 사람들은, 이 정거장

에서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그만 저절로 물건을 바꾸고 사고 파는 일들이 이

루어져, 굳이 장에까지 안 가고 여기서 셈이 끝나 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자연히 장날이면 이 정거장 마당에 작은 장의 시늉이 서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장날이라고 해도, 매안의 이씨 문중 사람들은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장 길에 익숙한 머슴이나 재바른 하인을 시켜 심부름을 보내기 때문이

었다.

만일 이도 저도 여의치 않은데 피치 못할 급한 일이 생긴 누가 있다 하더라

, 장에 가는 일만큼은 정거장으로 나오지 않고, 오수, 남원까지 걸어서 소롯길

로 혼자, 눈에 뜨이지 않게 다녀왔다.

장바닥이란 원래 선비가 나설 곳이 아닌데다가, 반상이 마구 뒤섞이어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하는 광경은 더구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그런 일을 만부득이 하러 가는 경우라 할지라도

"팔도 모산지배가 위아래도 없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정거장."

은 매안의 성품에 맞지 않은 탓이었다. 행세가 빠지는 집이라면 모를까, 넓은 갓

쓰고 두루마기 떨쳐입은 양반이 상것들하고 나란히 앉아 한자리에 가야 하는 철

갑차는 도무지 비위에 맞지 않았다.

어디의 누구네 집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행동거지 모색으로 보아 상것

이 분명한 사람도 이쪽을 보고는 멀뚱멀뚱 하고 있거나, 토방에도 못 올라서고

뜰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하정배를 올려야 마땅한 신분의 것들이,

소 핑계를 대고 마주선 채로 우물쭈물 인사를 때우는 것도 도무지 아니꼬워,

라리 그 꼴 안 보고 내 다리 품을 팔지 싶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디 원행할 일이 생겨 만일 정거장으로 나오게 되면, 웬만한 사람

들은 먼 발치에서도 이씨 문중 누구인지를 알아보아 그쪽에서 먼저 미리 조신하

게 몸가짐을 고쳤다.

더욱이 혹 거멍굴이나 고리배미 사람들이 문중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두 손을

맞잡은 채 고개를 깊이 수그리고 들지 못하였다.

거멍굴은, 정거장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철도와 이만큼한 거리에 나란히 길

이 난 산 밑을 따라 한 식경쯤 걸으면 보이는, 근심바우 옆, 몇 가호 옹색한 마

을이다.

그저 다박솔이나 옻나무, 잡목들이 생긴 대로 우거진 나직나직한 동산들로 이

어지던 능선의 풍경이 문득 출렁 높아지는가 싶은 무산 봉우리 아래 자리잡은

거멍굴은, 소쿠리 하나 안에 들만치 도래도래 모여 앉은 납작한 초가집들의 마

을이다.

깊은 산간의 벽지는, 농사를 지어 먹고 살 만한 한 뙈기 땅을 구할 길이 없으

니 결국 불을 놓아 일구는 화전민 생활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반대로 산이 전

혀 없는 허허 벌판은 또 땔나무를 얻기에 힘이 들 것이므로, 산과 들이 알맞게

어우러진 지형이 살기에 제일 좋다는 생각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예로부터, 사람이 모여 살아 마을을 이루는데 제일 좋은 명당은, 비산비야,

중도 아니고 들도 아닌 곳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 곳이라야 인물이 나고, 마을이 번성하며, 오래 오래 자손이 이어져 향화

가 끊이지 않는다 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이런 곳이 피난에 가장 적지라는 말인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매안의 지형이 바로 비산비야였다.

노적봉의 영기가 벋어 내린 발등에 터를 잡아서 그 발 아래 논을 밟고 서 있

는 형국이 매안의 지세였던 것이다.

그곳에 처음으로 입향한 현조 한 몸의 자손이, 몇 백 년 동안 나고 또 나서

온 매안에 가득 차고, 잔등이 너머 다시 작은집 마을 하나를 더 이루도록 창성

한데.

이런 벌족한 동성 마을의 이만큼에 외따로 멀리 물러앉은 여남은 집 산성촌

거멍굴은, 서로 생업이 달라 세 무더기로 끼리끼리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처음에야 그렇게 길이 나뉜 곳이 아니었지만, 철도가 생기면서, 저만큼 있는

몇 집과의 사이에 금이라도 그은 것같이 된 대여섯 가호는, 언덕배기만한 동산

아래 엎드려 있었다. 발치에 작은 개울을 끼고 있는 그 동산은 얼른 보면 무심

한데, 뜻밖에도 제 키와 덩치에 맞먹을 만큼 시커멓고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제

가슴에 덜컥, 안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바위 덩어리의 형상이었다.

마치 한없이 큰 사람이 무슨 근심스러운 일이 있어 웅크리고 앉은채, 이마를

무겁게 수그려 제 가슴 쪽으로 기울인 형상이 분명한 바위였다. 높이는 올려다

보아 서너 길이 넘을 것 같고 넓이는 장정 대여섯이 팔을 있는 대로 벌린 만한

, 가슴이라 할 곳은 우묵하게 패여 들어가 있어 더 거멓게 보였다.

검은 근심.

그것을 쓸어 내리지 못하고, 웅크린 무릎 위에 시름 없이 얹어 놓은 두 팔도

모양이 확연하였다.

그런데 이 바위 덩어리는, 앞 모습만 그렇게 역력할 뿐, 뒷등은 무덤을 업은

것처럼 동산을 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동산의 한복판에 검은 바위 덩어

리가 어둡고 깊게 박힌 것도 같았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이 바위를 두고 '근심 바우'라고 불렀다.

그리고 숯덩이리 같은 검은 이 바위의 빛깔을 빌어 생겨난 동네 이름이 '거멍

'이었다.

거멍굴 어귀 근심바우 아래 살고 있는 사람은 백정 택주였다.

그는 눈이 바늘같이 가늘고 온 낯바닥에 누런 수염이 소털처럼 가득 덮여 있

는데다가 어깨가 쩍 벌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 나이 수월치 않아 흰 머리가

더북한 택주는, 대대로 그 집에 나고 죽고 하면서 살아온 세습 칼잡이다.

택주 옆에 모여 사는 대여섯 집들은 모두 택주의 살붙이로 아우와 조카들인데

다 같이 칼 잡는 일을 했다.

그는, 남원 읍내 천거리, 천삼백여 평 넓은 광장에 장날마다 열리는 우시장에

가서 소를 골랐다.

장날이면 삼도 팔군에서 삼백 마리 이상이 몰려오는 이 우시장에는 암소보다

황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좋은 황소를 사거나 팔려는 사람들이 전

국에서 모여들어, 그 거래 규모가 첫째 아니면 둘째에 이르렀다. 그러니 성수기

에는 집채만한 황소가 무려 오백여 마리나 누렇게 물결을 이루며 광장을 채웠

.

전라북도의 남원, 순창, 장수, 임실, 그리고 전라남도의 곡성, 구례, 경상남도

함양, 거창에서는 모두 이곳으로 왔는데, 도야지는 백오십이나 이백 마리 가량이

새까맣게 모여들었다.

돼지나 개는 백정의 손까지 빌리지 않고 보통 자기들이 집에서 잡는지라,

주는 주로 소를 잡았다.

소를 잡는 것은 개를 잡는 것보다 더 쉬웠다.

어떤 황소도 택주 앞에서는 용을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수장으로 쓰는 헛

간의 천장에 있는 높은 가로대 중동에 동아줄을 걸고, 늘어진 줄 끝을 둥그렇게

고리 내어 소의 목에 걸면, 소는 주루루 눈물을 흘렸다.

가로대에 걸린 동아줄 한쪽을 잡아당겨 도수장 귀퉁이에 박힌 기둥에다 단단

히 묶으면, 소는 앞발이 들리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때 소 머리의 양 뿔 사이 고지통을 도끼나 참나무 몽둥이로 단 한번만 내리

치면, 그 큰 소는 그만 힘없이 죽었다.

동아줄을 풀어내릴 때,

.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쓰러지는 소를, 네 다리가 공중으로 가게 반듯

이 눕혀 놓고는 재빨리 목에서부터 날렵한 칼로 배를 갈라 껍질을 벗긴다. 시뻘

건 피 뭉치나 다를 바 없는 창자 내장을 다 들어 내고 부위별로 고기를 발라 내

는 손은 칼끝보다 정확하다.

가죽은 다시 기름을 완전히 벗겨 내고는, 털을 불에 그슬려 잘 비벼낸 다음,

떡 치는 안반처럼 두껍고 넓은 나무판에 좌악 펴서, 사방에 못을 박아 팽팽하게

말린다.

오그라지거나 틀어지지 않게 말린 가죽은 바로 갖신 짓는 갖바치한테로 갔다.

만일 가죽으로 안 쓰려면, 털을 그슬린 뒤에 기름을 얇게 벗겨 내지 않고,

톰하게 그대로 둔 채 덩어리 덩어리 썰어서 장을 붓고 끓이며 졸인다. 이것이

'껍데기 자장'인데, 그 맛이 담백하고 졸깃졸깃해서 상등 반찬이었다. 그러나 이

런 것은, 음식을 갖추어 먹고 잘 지내는 집에서 해 달라고 할 때만 만들었다.

머릿고기, 살코기, 앞다리, 뒷다리, 꼬리뼈에 온갖 뼈를 다 추리고 나면, 택주의

아낙 달금이네는 살코기만 골라 광주리에 담는다.

갈고리가 달리고 점점이 눈금이 찍힌 긴 저울대를 꾹 찔러 넣고 달금이네는,

고기 담긴 광주리를 보자기로 덮어 머리에 이고서, 이 마을 저 마을 집집마다

다니며 고기를 파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네가 자주 가는 곳은 매안이었다.

그곳에서는, 무슨 큰일이 아니면 미리 기르던 소를 내주어 택주한테 잡으라고

하거나, 아니면

"어디에 쓸, 얼마만한 소를 잡아 오너라."

하고 전갈을 보내 왔다. 그럴 때는 택주가 알아서 소를 구하고, 잡고, 손질까지

다 해서 가지고 올라갔다.

그러나, 보통은 달금이네가 이고 간 광주리에서 필요한 만큼 내려놓곤 하였다.

젊어서부터 머리가 회색이 된 오늘까지 이고 다닌 걸음이라, 달금이네는 이제,

어느 날 어느 때쯤 어떤 양반의 댁에 어느 만큼의 고기가 필요할 것인지 먼저

꿰고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대개 기제사나 어른들의 생신이 주였다.

또 매안에서도 어느 날 어느 시쯤 달금이네가 고기 광주리에 저울을 꽂아 이

고 나타날 것인지를 미리 짚어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그럴 줄 안다."

는 것이지, 서로 꿈에라도 한자리에 마음을 나란히 두어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엄중하고 준절한 신분의 벽이 까마득한 절벽의 아가리처럼 벌어져, 달금이네

가 아닌 거멍굴의 그 누구라도 그것은 건너뛸 수가 없었다.

건너뛰다니.

바라보기에도 너무나 아뜩한 곳이었다.

아니, 그냥 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달금이네가 서 있는 이쪽은 낭떠러지 아래

쪽이요, 매안은 천 길 단애 깎아지른 저 암벽 위 꼭대기였다. 누가 무슨 재주로

그 꼭대기까지 날아올라가, 다시 또 그만큼이나 되는 저쪽으로 건너뛸 수가 있

단 말인가.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는 제일 천한 것이 종이라는데, 그 종만도 못한 처지의

백정 아낙 달금이네는 한숨 지었다.

종이나 호제, 하인, 머슴들조차 하대하여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누구라도

그네한테는

"해라."

를 붙였다.

머리가 쉬어빠진 회색으로 재를 뒤집어쓴 것처럼 된 이날 이때까지 그네는 세

상 누구로부터 공대를 받아 본 일이 없었다.

거꾸로 달금이네는, 아무리 상민한테라도 말을 놓지 못한다.

그러니 매안 문중 어른들한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어린 아이들한테

라도 그네는 반드시 말을 바쳐서 했다. 그것이 법이었다.

마님, 아씨, 새아씨, 작은아씨, 애기씨 하고 평생 동안 양반의 부인과 따님들에

게 바쳐 부른 그 호칭들은, 달금이네 그 자신은 언제 지나가는 미친년한테라도

들어 본 일이 없었으며, 언감생심 그 말들을 넘본 일도 없었다.

매안에 올라가 고기를 내놓은 집에서는 셈만 하고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쓰일 소용에 따라서, 정성껏 썰고, 뜨고, 저미고, 다지는 일까지 다 해 주었다.

"아씨들이 이런 일 허시면 쓰간디요? 손 베린디."

달금이네는 그렇게 말했다.

"그럴라먼 먹지도 말어야지. 이빨로 도구질을 어뜨케 허능고? 귀찮허고 천해

."

달금이네 하는 일을 보고 언젠가 거멍굴 옹구네가 오금 박는 소리를 한 일도

있었지만, 달금이네는 엷은 미소를 머금는 듯 마는 듯.

"그렁 거 뇌꼴시럽고 서러우먼 이런 일 못허고 사네잉. 그렁 거잉갑다 허고 살

어야제. 또 법도가 그렇고. 어쩌겄어.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는디. 날 쩍에야

사람으로 난 것을 같을랑가 모르겄지만, 앞앞이 사는 시상이 다른 것을 어쩌."

"시상?"

"조상 공덱이 그거뿐이라 우리 조상은 대대로 소만 잡고 괴기 장시만 했는디

자손한티다가 멀 물려줄 거이 있겄능가. 벌그런 괴기 뎅이나 일펭상으 주무르는

거빼끼."

"그렇게 사람은 뼈다구를 잘 타고나야 하여."

"그것도 맘대로 못허는 일이고."

"아 머 매안 양반들은 거 가 낳고 자퍼서 맘 먹고 났간디? 어쩌다 봉게 씨가

글로 떨어징 거이제."

"다 전상으 진 인연이 있어서 그러겄지 머, 나는 먼 죄를 져도 졌고. 몰라서

그렇제, 안 그러고야 누구는 왜 어디가 나고 누구는 또 어디가 나고 그려? 해필

이먼."

"아이고, 그 속을 누가 알어? 이놈으 시상 어쩌능가 보게 꼭 한 번 꺼꿀로 되

야서 대그빡으로 걸어댕기는 것을 보먼 쓰겄는디. 아니 무신 놈으 시상이,

나무도 해갈이를 허니라고 한 해 많이 열먼 한 해는 몇 개 안 열고 그러능 거인

디 말여. 사램이란 것은, , 여는 낭구는 가쟁이가 찢어지게 그쪽으로만 열리고,

없는 낭구는 말러 죽고 말제, 떠런 땡감 한 개 못 달고. 제 당대에만 그러고 만

다먼 또 몰라. 무신 웬수를 졌다고 그 존 팔짜를 대 물리고, 대 물리고. 몇 백

, 몇 천 년을 그러고 가능가 모리겄어."

"참말로."

그러나, 팔자 타령을 하면 무엇하랴.

어제 살아온 세상도 아니요, 하루 이틀 살아갈 세상도 아니었다. 그저 속으로

바라느니 고기라도 좀 많이 팔려서 남모르는 돈이나 좀 늘어났으면 싶을 뿐이었

.

"아이, 일년 가야 꼬드라진 말괴기 한 점 못 먹음서도 성짜 빤듯헌 양반 허능

거이 낫을랑가아, 괄시받는 백정것이라도 한 펭상으 괴기 하나는 여한없이 많이

먹고 사능 거이 낫을랑가아."

옹구네는 그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달금이네는 무슨 대답이 얼른 떨어지지 않았다.

자기가 잡는 짐승이나 별 다를 바 없는 대접을 받으면서 사람 시늉 한번 제대

로 해보지 못하는, 서럽고 원통한 처지를 생각하면, 차라리 행세하는 대갓집의

씨종을 살고 말지 이 노릇은 못하겠다, 싶은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마는, 허구

한 날 배를 곯고 누렇게 뜬 빈 속으로 앉아 있어야만 된다면 그 또한 과연 어떨

는지.

그럴 양이면 무엇이 좋아서 양반을 하려 할 것이며, 또 양반은 무슨 힘으로,

굶고 앉아서도 카랑카랑하게 호령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들이, 얼른 가닥

이 잡히지 않는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왜 그런 말을 허능고니, 그래도 달금이네는 칼일 헝게로 머 꼭 챙

게 먹자고 앙 그려도, 아 팔고 남은 부시레기만 줏어 먹어도 다 못 먹잖이여,

다구는 고아 먹고, 껍데기는 쫄여 먹고, 저 뱃속으 답북 들었는 그 창시는 다 멋

히여? 지져 먹고, 끓여 먹고. , 꼬랑지도 먹제잉?"

"하이고오, 먹을 것 많아서 오지겄네에. 왜 볶아는 안 먹는당가?"

그 말끝에 달금이네는 옹구네 말 속뜻을 알고는, 옹배기에 걷어 담던 내장 한

칼을 베어 냈다.

어느 때는 고기가 쉽게 팔려 금방 광주리가 가벼워지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팔리는 것은 좀 더디지만 다행히 날이 추워 고기 상할 걱정이 덜한데, 더운 여

름 같은 때.

"여름 소는 풀을 먹고 가을 소는 여물을 먹는데, 풀 먹은 소는 고기에 독한 기

운이 있고 맛이 없다."

고 하여 잘 팔리지도 않는데다가 날은 더워 고기가 상하려고 하면, 달금이네는

다 못 판 고기 광주리를 들고 근심바우 아래로 갔다.

사시 사철을 두고 거기 그렇게 웅크린 모습으로 이마를 무겁게 수그린 근심바

우는, 바위 살 속까지 얼어서 쪼개지는 엄동 설한에도, 온몸이 다 타 부슬부슬

껍질이 부스러지는 오뉴월 뙤약볕에도, 단 한 걸음 어찌하지 못하고, 근심으로

패인 검은 가슴속을 시름없이 들여다보면서 한데 나앉아 있었다.

"아이고오, 내 신세야아. 어찌 그리 너 허고 앉었는 거이 똑 나맹이냐. 너는 대

체 먼 근심이 그렇게 많허냐."

달금이네는 타령조로 한숨을 쉬고 바위한테 말을 건네면서, 이미 화덕같이 뜨

겁게 달구어진 근심바우 무릎 위에 얇게 썬 고깃덩어리를 널어 말리곤 했다.

검은 바위에 벌겋게 널린 고기 무더기는, 작은 산 모롱이 하나를 돌고도 얼마

를 더 들어가야 하는 매안에서야 보일 리가 천만 없었지만, 고리배미 마을에서

는 멀리 희미하게 붉은 치마를 씌워 놓은 것처럼 보였다.

고리배미는 거멍굴에서 남쪽으로 한 식경쯤 걸어가는 곳에 있는 마을인데,

앞에는 들판이라 아무것도 거치는 것이 없어서 그만큼은 짐작할 수 있었다.

달금이네는 고기 광주리를 이고, 이 고리배미로도 갔다. 그리고 고리배미로 들

어가는 어귀에서, 지게 작대기 끝에 갈라진 알구지같이 두 길로 나뉘어진 다른

쪽 길로도 갔다.

그것은 비얌골로 가는 길이었다.

바위에 빨래처럼 널려 있던 고기가 뙤약볕에 바싹 마르면 이제는 그것을 잘게

여러 조각이 나게 두드려 깬다. 그리고는 다시 몽글게 바수어 가루를 주머니 주

머니에 나누어 담아 여러 개를 만들었다.

이 고기가루는 확독에 갈아 낸 쌀가루를 섞어 죽을 끓여 먹으면, 다시 없는

맛이 났다.

노인이 계신 집이나 환자가 있는 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밥맛 잃은 사람들

과 별미 찾는 사람들이 반가워할 것이었다.

이런 저런 일들이 대강 마무리져질 때쯤이면 택주는 으레 남원 장날 우시장으

로 나갔다.

그리고 날이 저물 무렵 소 한 마리를 몰고 거멍굴로 돌아왔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택주는, 일이 끝나면 근심바우 발치의 개울물에 피

묻은 손과 칼, 도끼들을 담그고 꼼꼼이 오래오래 씻어 냈다.

고기기름에 범벅이 된 피는 씻어도 씻어도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노랑내를

풍기며 연장과 살 속으로 스며들었다.

들판에 어스름이 내려앉고, 근심바우는 더욱 검은 빛으로 어둠 속에 잠겨 들

어가는데, 천민 중의 천민이라 상투도 법으로 못 틀게 하여, 쑥대강이 봉두난발

로 쭈그리고 앉아 묵묵히 피를 씻어 내는 쇠백정 택주의 손등에 무심한 달이 푸

른 빛으로 떠오르는 때도 있었다.

노비, 승려,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 여덟 가지 종류의 팔천 천민

을 나라에서 정하여 구분한 세월이 얼마나 되었는가.

그 중에서도 가장 천한 것이 백정과 무당이다.

이 세상에서 짐승말고는 노비보다 더 심한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이 백정인지

, 일반 양인들과는 같이 섞여 살지도 못하고 성문 바깥 멀찌감치 물러나 저희

들끼리 모여 사니, 다른 사람들한테 '성 아랫것'이라는 비칭 낮춤말을 들었다.

그것은 부성 고을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였다. 사부 반촌의 마을에는 말을 꺼낼

것도 없고, 민촌이라 할지라도 그 마을 안에 버젓이 섞여 살 수는 없었다.

안에는 그만두고 언저리도 안되었다.

그래서, 매안을 바라보고 그 서슬 아래 살 것이면서도 그쪽으로는 감히 허리

들고 들고 지나갈 엄두조차 못 내고는 산 모롱이 하나를 꺾어서 한참이나 내려

와 돌아앉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리라.

그래도 민촌 고리배미까지는, 그보다는 좀 가까웠고, 길도 조옥 나있어 가기도

쉬웠으며, 서로 아득하게나마 바라보이기라도 하였다.

옛날에는 백정들이, 한 자리에 정착하지 못하고 떼지어 떠돌아 다니면서 패악

한 짓을 많이 했었던가.

택주의 저 먼 몇 대 할아비 때 일인데, 방방 곡곡 흩어진 백정들을 조정에서

한꺼번에 모조리 조사하여, 서울과 각 지방에 골고루 나누어 배치를 했다고 한

. 한 번만 그러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그렇게 하였다. 그리고는 이들의

명부를 작성했다.

각 고을에서는 백정의 거처를 한곳에 정해 주어 못박아 두고는, 그 사는 모양

을 엄격하게 감독하니, 어디로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고 일반 사람들의 마을로

들어갈 수도 없이, 외딴 곳 이만큼에 떨어져 엎드려서 대대로 살아온 것이다.

람들의 마을은 멀었다.

하기는, 제 몸 제 살에서 나는 피도, 피는 끔찍하고, 살아 꼼지락거리는 목숨

은 개미 한 마리라도 무단히 죽여서는 안되는 것인데, 이 세상에 아직 나기도

전부터, 아비와, 아비의 아비가 오직 도살로 평생을 보내고 피 냄새에 살 가죽이

깊이 절어 버린, 그 아들은 또 어찌 그 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겠으며, 누구

라서 그런 무리를 어여삐 여기리.

우리나 우리끼리 비비고 살 뿐.

그래서 백정들 사이에서는 근친혼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거멍굴의 근심바우 아래 맨 처음 자리를 잡은 할아비는, 산천 경개 명당 산수

를 보고 이곳에 기둥을 박은 것이 아니었다.

아니면 무슨 연고가 있어 이곳으로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살라."

고 나라에서 말뚝을 박아 놓으니 여기서 살기 시작한 것이었다.

택주네 붙이들이 오물오물 모여 앉은 대여섯 집 옆이 금생이네 '성냥간'이었

. 대장간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누구는 '불무간'이라고도 했다.

본래 짐승 잡는 일에 쓰이는 칼이나 도끼는 그 날이 조금만 무디어져도 안된

. 늘 새파랗게 잘 들어야만 한다. 그런데 가죽을 벗기고, 그 큰 짐승의 고기를

다 썰고, 가르고, 발라 내느라면 아무리 잘 들던 칼도 대나무 잣대처럼 되고 만

. 거기다가 뼈를 자르고 쪼는 일이며 온갖 자질구레한 일에 쓰이는 연장들은

이빨이 빠지거나 망가지기가 쉽다.

그래서 늘 칼을 갈고, 날을 벼리고, 못 쓰게 된 쇠는 불에 녹여서 새것으로 만

드는 대장간이 꼭 있어야 한다. 늘 쓰는 그 많은 연장을 일일이 남의 손 빌려

할 수도 없고, 집안에 대장장이가 느닷없이 날 리도 없어서, 집 옆에다 조그맣게

성냥간을 하나 만들어 그들은 제 필요한 것은 제가 손질하고 또 만들어 썼다.

그저 오두막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시늉은 갖춘 성냥간은, 저 위에 할

아비 때부터 있던 것인데 이제는, 사정이 있어 이곳으로 들어와 눌러앉은 대장

장이 금생이한테 아예 성냥일은 맡겨 버린 것이다.

불에 쇠를 불리는 것을 '성냥한다'고 하니, 대장장이가 쇠를 다루어 대장일 하

는 것을 '성냥일'이라 하는데, 이 일 역시 팔천 중의 하나였다.

원래 백정은 신분을 바꾸어 평민이 되거나 생업을 바꾸어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천민이어서 멸시를 받을 뿐이지 나라에 매인 종은 아니다.

그래서 일반 평민이라도 생활이 궁핍 곤란해지고 다른 살 길이 없으면, 백정

으로 들어가는 수가 있었다. , 같이 그 일을 하지 않더라도 금생이처럼 서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대로 수수하게 생긴 딸년 얌례를 여의살이 시키고 부쩍 늙어버린 벙어리

금생이는, 그래도 여전히 이글거리는 화덕 앞에서 웃통을 벗어부치고 쇠를 달구

었다.

그는 일년 내내 택주네 푸네기 대여섯 집에서 쓰는 칼과 도끼를 손보고,

외엣일로 심심치 않게 낫이며, 호미, 괭이, 쇠스랑 같은 것들을 달구고, 벼리고,

녹이고 만들었다.

제대로 된 대장간이 아니어서 아주 이 길로 나설 수는 없었지만, 할줄 아는

일이라, 매안의 농기구 손질도 하고, 건너 고리배미 같은 데서 소소하게 부탁을

하면 택주네 일하던 중에 조금씩 해 보는 것이다.

그런 것은 어쩌다 맞돈을 받는 수도 있었지만 대개는 외상 일이어서, 그는 섣

달이 되면 농가를 한 바퀴 돌며 그 동안에 해 준 일의 품값을 받는 '성냥노리'

나갔다.

그럴 때말고는, 밤이고 낮이고 거의 꾀를 벗다시피 벗어부친 채로 쇳덩어리를

두드려대면, 시뻘겋게 이글이글한 불 속에 쇠를 달구었다가, 또 물 속에 푸지지

지 요란스럽게 집어 넣고, 또 다시 내려치는 금생이의 성냥간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 쇠 치는 소리는 바로 눈앞에 무산 골짜기로 파고들었다.

택주네 무더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올리면, 저쪽에서부

터 남실남실 흘러오던 동산 능선이 여기 와 출렁하고 솟으면서 물살 또아리를

이루는 무산이 눈에 들어왔다.

감시르르 봉우리를 감아 올리는 듯도 하고 깊은 한숨을 무겁게 삼킨채 토해

내지 못하고 앉아 있는 것도 같은 산.

늘 달은 이곳에서 떴다.

무산 위에 떠오른 달은, 토월, 이상하게도 토해 내는 것처럼 보였다. 제 눈앞

의 근심바우 검은 덩어리가 그대로 가슴에 와 박히고, 또 그 아래 흐르는, 피 노

린내 배어든 개울물이 땅 속의 실핏줄로 스며 스며들어 무산의 온몸에 차 오르

는데, 대장장이의 쇠 치는 소리까지 그 속에 꼬챙이를 지르니.

더는 참치 못하고 밤이면 캄캄한 하늘에다 토해 내는 숨.

그것이 무산의 달이었다.

이 무산 기슭 바로 밑에, 제멋대로 자라나 스산하게 어우러진 대나무로 울을

두른 초가집 서너 채가, , 산의 오지랖 자락에 대가리를 모두고 깃들인 것처럼

옹송그리고 있었다.

당골네와 점쟁이, 그리고 고인 잽이들이 사는 집이다.

꼬막조개 껍데기보다 더 클 것도 없는 지붕이 동고마니 덮고 있는 황토 흙벽

과 지게문, 그리고 겨우 시늉이나 하고 있는 손바닥만한 마루와 토방.

여기에도 무산의 달은 푸른 물 소리로 떠오르고, 뭉친 먹물 같던 대나무 울타

리는 이파리 낱낱의 비늘을 검푸르게 씻으며 몸을 솟구쳐

쏴아아

귀신이 쓰다듬는 소리로 달빛 소리를 받았다.

이 거멍굴에 누구네가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왔는지 아니면 같은 때 나란히 묶여서 이곳으로 던져졌는

지 알 수 없지만, 무당도 백정이나 마찬가지로 팔천 중의 하나요, 그 여덟 가지

천민 중에서도 백정과 동무해서 제일 업신여김을 받아온 것만은 같았다.

마을 사람 어른들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한테도 반드시 말을 바쳐 써야만 하

, 절대로 일반 사람들과는 혼인할 수 없다고 금지되어 있는 무당 당골네는 아

무리 사람들한테 천대 하시를 받아도 무업을 그만둘 수 없었다. 다른 일로 바꿀

수도 없었다. 거꾸로 보통 사람이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었

. 그래서 당골네들은 동파들끼리만 서로 혼인하고, 저희들끼리 판을 나누어 대

대로 세습하여 이 업을 이어왔다.

어디고 한 마을에는 한 당골만이 있는데, 이 당골은 마을 한 개, 혹은 두 개,

많으면 너덧 개까지 혼자서 맡는 '당골판'을 가지고 거기서만 굿을 했다. 결코

남의 판을 넘보아서는 안되었다.

거멍굴 무산 밑의 세습무 당골네 백단이는, 두 마을을 합하면 이백여 호가 훨

씬 넘는 매안과 고리배미를 자기 당골판으로 하였다. 그것은 본디 당골네의 시

어미가 보던 판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죽고 그 판을 물려받은 것이다.

백단이는 이리로 시집오던 그날부터 두 마을의 어느 집에서 굿을 할 때마다

시어미를 따라가, 잔일, 큰일, 겉의 일, 속의 일들을 속속들이 배우기 시작했었다.

전라도에서는, 굿을 여자만이 할 수 있었으니, 당골네의 아들들은 어려서부터

장구를 치고, 피리를 불며, 구음 넣는 가락을 배웠다.

장가든 다음 무부가 되면, 제 아낙이 하는 굿에서 악기로 반주하는 잽이 노릇

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안이면 격이 높은 곳이요, 고리배미는 민촌이라도 가호 수가 많아서, 무산

밑의 당골네는 일손이 많이 필요했다.

한없는 설움으로 구천을 떠돌며 흐느끼는 가여운 귀신, 원한 맺힌 귀신, 갈 곳

을 모르는 귀신들을 서럽게 서럽게 불러서, 그 맺힌 고를 풀어 주는 굿의 사설

을 뼈에서 우러나오게 노래 부르는 일부터, 춤의 가락과 굿상 차리는 절차, 그때

입는 옷 같은 것들을 세세 낱낱 배운 당골네는, 마을에서 으레 철 따라 하는 굿

이며 집집마다 경우 따라 해야 할 굿들을 정확하고도 흐드러지게 다 배워야 한

.

그러나, 가령 아무개가 왜 그렇게 아픈지 그 원인을 점치고, 굿하기에 좋은 날

짜를 받는 것은 점쟁이가 하였다. 점쟁이는 그 몸에 신이 실려 접신한 사람이니,

어리석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계의 일을 점칠 수가 있는 것이다.

것은 아무리 굿을 잘하는 당골네라도 알 수 없는 점쟁이의 세계였다.

헌데 점쟁이가 아무리 점을 잘 쳐도 굿를 맡아서 할 수는 없다. 굿은 하루아

침에 홀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꼼꼼이 배우면서 외우고 익히고,

드디어는, 귀신이라도 이 당골네의 정성과 솜씨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경지

에까지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지붕의 이마를 맞대고 앉아 점쟁이는 점을 치고, 당골네

는 점괘 나온 대로 굿을 하였다.

그리고 무부와 함께 악기 반주를 하는 잽이가 사는 집이 바로 그 옆이었다.

잽이는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굿상에 꾸미는 종이꽃을 만들거나, 굿에 쓰일 물품들을 사러 장에

다녀오고, 봄에는 보리 때, 가을에는 나락 때, 당골판에서 주는 보리나 벼, 혹은

쌀을 거두는 일도 한다.

당골은 제 당골판인 마을에는 굿을 할 때 일일이 그때마다 떡 값 얼마, 초 값

얼마, 하고 받는 것이 아니라 일년 내내 으레 그 마을에서 무슨 굿할 일이 생기

면 제 일로 알고 그냥 했다. 그러면 마을에서는 봄, 가을로 보리나 쌀을 거두어

일년 먹을 곡식을 마련해 주었다. 그것이 '동냥'이었다.

점쟁이 집에는 이른 새벽부터 해 넘어갈 때까지, 문복하러 오는 아낙들의 발

길이 끊이지 않아 코빼기만한 토방에 짚신짝들이 어지럽고, 당골네 집에서는 굿

에 쓸 창호지 혼백을 하얗게 오리고 있는데,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어찌 그리 맺

힌 일이 많은가, 남의 귀신 피멍도 풀어 주는 당골네가 막상 그 자신의 그 무엇

도 풀지 못하면서, 흰 무명필을 펼치어 마디마디 일곱 개의 고를 맺는다.

오늘 밤 굿에서 풀 ''이다.

대개 굿은 그 당사자 집에 가서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만부득이 무슨 사정이

있어 여의치 않을 때는 당골네 집에서 대신하는 경우도 있어서, 밤이면 어둠의

갈피를 헤집어 에이는 시누대 피리 소리에 장구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데 데 데 뎅

지이 징 지리 징 지잉 징

 

놋쇠 징소리가 거멍굴의 검은 하늘 깊은 가슴을, 말로는 다 못할 애원으로 두

드렸다.

그럴 때 무산은 달조차 토해 내지 못하고 오직 흐느끼듯 캄캄하였다.

이 무산과 저 근심바우 사이에 거진 한가운데쯤 되는 곳이 바로 옹구네와 평

순네, 그리고 공배네, 또 조금 떨어진 동산 기슭에 춘복이가 살고 있었다.

이곳은 길가였다.

어느 옛날부터 있어 온 것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다져 놓은 소롯길이 제법 탄

탄한 이 길은, 북쪽에서 벋어와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잔잔한 동산들을 데불고 발길이 여기가지 오면, 동그라니 옴막한 거멍굴, 오른

쪽은 근심바우요, 왼쪽에는 무산이 보였다.

가던 걸음을 이 자리에서 멈추고 하나씩 하나씩 주저앉은 사람들이 백정도 당

골도 아니면서 머뭇머뭇 정착하게 된 이들의 윗대에서는, 금방이라도 다 떨치고

일어서서 다시 길을 가려고 이렇게 길가에 자리를 두었는지도 모른다.

본디 어디서 무엇 하던 사람들이었건 간에 다른 어디에는 아무래도 몸을 붙이

고 살 수가 없는 궁색한 형편들이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가 어디라고

팔천들 사이에 끼여, 아낙은 당골네 일을 돕고 남정네는 백정의 칼질을 도와 그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살겠는가.

그래서 걸핏하면 옹구네는

"안 듣는 디서는 상감님 욕도 허다는디 머 시께잇 것들 말을 못하여? 아이고

그 당골년 낯빤대기."

하고 당골네 욕을 평순네한테 찰지게 하기도 하고

"저런 순 백정놈이."

하고 택주네 무더기 누구를 마구 잡아 몰아붙이곤 했다.

물론 듣는 데서는 어림없는 일이지만,

그러면서도 일손은 재발라서 산 밑으로 가나 바우 밑으로 가나, 어서 오라는

말을 듣지 왜 왔느냐는 말을 듣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 봐 주는 집에서 이곳으로 돌아오면 꼭 그렇게 뜯어 내는 소리를 하

는 것이다.

그것은 매안으로 일하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뜸의 대갓집이거나 문중 사람들의 집이거나 허드렛일은 많았고, 눈치껏 몸

을 놀리면 얻어먹을 것이 생기는데다가, 농사철이나 추수할때나 놉이란 언제나

필요한 것이어서, 이 사람들은 매안으로 올라가곤 하였다.

고리배미, 거멍굴에서나 매안에서나 날삯도 삯이지만 어디로 밀어내지 않고,

오면 오는가, 가면 가는가, 해 주는 것이 이들에게는 큰 의지가 되었던 것이다.

날마다 날품을 팔아 그날 먹을 것 그날 벌어야만 한다면, 얼마나 멱이 막힐

노릇인가.

근본도 모르고, 가진 땅 한 뙈기도 없는 이들이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살아 보

는 것이, 아슬아슬한 세상에 발을 붙일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늘, 길바닥과 발바닥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물 막이 있어 발이 땅에 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은 공배네는,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길가에 앉은 공배네 집 이쪽 저쪽으로 좀 들어가고 좀 나오면 모여 있는 이들

, 나름대로 동산 기슭에 채마밭을 일구어 그저 반찬거리나 걷어 먹었는데,

, 모두 한 우물을 썼다.

그저 사람 사는 것이 이런 것이려니 하고 하루하루 넘기다가 한번은 공배가,

몹시 무거운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서 늙은 볼따구니를 주먹으로 받친 채 고개를

기울이고는,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애초 백정도 아니고, 차라리 그러면 포기나 허제, 배운다고 당골일을 헐 수

있능 것도 아니고오, 그러먼 머 땅이나 한 쪼객이 있능가 허먼 그것도 아니고.

다른 재주 머 맹글찌 아능 거이 있는가 하먼 그것도 아니고, 그러먼 또 종이냐

허먼 그것도 아니고오. 우리 아부지, 오직허먼 이런 팔천놈으 복판으다 나를 나

놨겄어. 그러고는, 나 이레 지내먼 뜰라고 그릿겄지. 그러다가 걸어댕기먼, 장개

가먼, 손지 보먼, 헝 거이 제머. 아이고, 몸썰 난다. 자식 없기 잘했제. 에에이.

지런 놈으 시상. 이러고 살어도 이게 무신 사램이여?"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좀처럼 그런 말 안하는 공배의 푸념에

공배네는 속이 뜨끔하여 헐끗 낯빛을 훔쳐보았다.

무슨 조상을 타고나서 시방 어떻게 살든, 또 부모 죽은 다음에 제가 어찌 살

아가든, 그네는 '자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부모가 비록 백정이고, 당골네일지라도, 아니면 떠돌이 동냥아치일지라도,

자식은 마땅히 그 핏줄을 받아 부모의 대를 이어주어야만 한다고 그네는 믿었

.

부모의 껍데기가 무엇이고, 하는 일이 무엇인가, 양반인가 상놈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귀하면 귀한 대로, 천하면 천한 대로, 제 생김새를 갖추게 해 준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를 거슬러 더 까마득히 올라가면 만나게 될 할아비를 공배네는

그리워했다. 또 실같이 가느다라면서도 살과 뼈의 심지 속에 또렷하게 박혀서,

아들을 넘고 손자를 건너 증손자에게 흘러내려가는 할아비의 넋이, 그대로 그네

의 살 속을 지금 꿰뚫고 지나가는 것만 같아서 그네는 가슴을 오그렸다. 그러나

그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어쩌다 하나 얻은 아들을 꿈에도 믿지 못할 순간에

놓쳐 버리고, 다시는 더 낳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한

것일까. 그네는 자신의 몸에 갖힌 채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는 할아비의 넋이

핏줄을 동여매는 것 같은 아픔에 어금니를 문다.

"자식 소리는 또 왜. 머 잘난 사람만 사램이랍디여? 못난 사람은 또 못났다고

사램이 아니고? 아 꼭 멋이 돼야야만 사람이간디, 기양 사램이먼 돼았지."

혼자말처럼 대꾸하며 눈을 돌린 사립문간에,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온 길인지

는 모르나, 이곳을 지나 또 어디론가 끝간 데 없이 흘러 갈 소롯길이 누워 있었

.

 

 

9 고리배미

 

만일 낫을 놓고 이야기를 한다면, 날카로운 날끝이 노적봉 기슭의 매안이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한참을 걸어와 낫의 모가지가 기역자로 구부러지는 지점이

새로 생긴 정거장이며, 그 목이 낫자루에 박히는 곳쯤이 무산 밑의 근심바우 거

멍굴이다.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와 맨 꽁지 부분 손 잡는 데에 이르면, 고리봉 언저리

민촌 마을 고리배미가 된다.

이름 그대로 둥그런 고리의 등허리같이 생긴 산이 모난 데 없이 수굿하게 앉

아서 좌우에 나직나직한 능선을 그으며 마을을 보듬고 있는 이곳에는, 어림잡아

백이십여 호가 넘는 집들이 집촌을 이루고 있었다.

산중도 아니요, 들도 아닌 비산비야의 난양지지, 따뜻하고 양지 바른 터에 처

음으로 들어온 한 헌조, 어질고 덕망 있어 이름이 높이 드러난 할아버지의 자손

들이 그곳에서 오 대, 십 대, 그리고 몇 백 년씩 살아오며 같은 조상의 가지로서

동족 마을을 이룬 것이 집성 반촌이라면, 고리배미는 제 각기 이 마을에 들어온

내력이나 성씨가 서로 다른 각성바지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무간하게 섞여 사는

산성촌 민촌이었다.

물론 이 중에는, 고리배미에 맨 먼저 자리를 잡아 대대로 살면서 거의 삼십여

호 가까운 일가붙이를 데리고 있는 집고 있고, 그보다 한 발 나중에 들어와 이

십여 호 되는 집, 또 그보다 더 이만큼 중간에 정착하여 여남은 가호가 생겨난

집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빼고는 많아야 예닐곱, 아니면 너댓 집들이 같은 성씨

로 형제 분가하거나 혹은 아재비, 조카를 부르면서 살았다. 그리고 그 나머지들

은 그야말로 각동박이, 한 성씨에 한 집씩이고 기껏해야 늘어나서 두 집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수효가 많다고 해서 집안을 내세워 텃세를 한다거나, 한 집만

산다고 얕잡아 업신여기는 일은 별로 없었다.

"외나 우리 동네는 타촌서 들온 사램이 더 잘되는 디 아닝가. 기양 보따리 하

나만 달랑 들고 들와도 얼매 안 가서 심 짚고 일어나잖등게비."

"먼 짓을 허든지."

하는 말이 꼭 빈말만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조상을 묻지 않았다.

그래서 '부지소종래'라 하여, 자기가 비롯되어 온 곳을 모르니, 그 자신의 근본

이 어디에 있으며, 조상은 누구인지, 또 어떻게 살아왔는지, 집안 내력을 도무지

모르는 사람들이 산다고, 고리배미는 반촌으로부터 하시를 받았다.

비록 그곳이 판박이 천민인 무당이나 백정, 갖바치들이 사는 수악한 마을이

아니라 할지라도, 상인, 상민, 상한, 상놈, 상것, 상사람, 나라에 매인 종은 아니지

만 그 신분이 낮아서 곤궁하고, 가지가지 불리는 이름도 많은 상민들이 살고 있

거나, 향교 출입을 할 수 없는 신분인 중로들이 살고 있는 곳은 민촌이라 하였

.

중로는 중인이다. 그들은 양반 다음가고 상민 위에 있는 사람들이라, 행세는

할 수 없었지만 천한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실리에 밝았다. 그래서 오직

공리와 효용에 가치를 두고, 자신이 가진 기술로 생업을 삼아 재물을 모았다.

세상에 재물보다 확실한 기둥은 다시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재물

로 그들은 많은 전답을 사들였다. 물론 모든 중로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부자는 민촌에 많다."

는 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고리배미에는, 이 중로와 상민들이 서로 어우러져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신분의 구분은 있어서, 그들은 아무리 허물없이 이웃하고 살

아도, 쓰는 말만은 마구 섞지 않았다. 그 사는 형편이나 나이와는 상관없이 중로

는 상민에게 '하게''하소'로 말을 놓았고, 상민은 중로에게 '합니다', '하지요'

며 말을 올려 했다.

지금이야 옛날 같지 않아서, 그런 신분을 정하여 옮도 뛰도 못하게 만들었던

조정도 망하고, 이제는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창씨개명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

지나 외피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겉옷 밑에는 여전히 오래 오랜 세월 동안 묵고, 가라앉고, 엉겨붙은 관습이

소금 버캐 켜켜이 자욱한 몸뚱이처럼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새로 난 철도가 마을 뒷산 고리봉의 저 뒤쪽으로 벋어 지나가듯이, 개화

개명이라는 새 문물은 마을 바깥 저 뒷등허리로 저희끼리 지나가고 있을 뿐.

마을 안 고리배미는 예전부터 나 있는 길을 그대로 끼고 앉아, 변함없이 걸어서

다니는 사람들 모양 어제 살던 대로 오늘도 살고 있는 것이다.

양반들이야 민촌이라고 웃든지 말든지 여기서는 여기서대로 그런 것을 가리면

, 중로는 체신과 실속을 챙기려 하였고, 상민은 자신들이 쇠백정 도한이, 고기

잡는 어한이, 소금 굽는 염한이에 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스스로 위로하

였다. 이는 삼한이라고 하여 몹시 천대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갯가에 났드라면, 도한이는 몰라도 어한이, 염한이 중에 하나가 되얐을 거잉

, 우리 같은 상놈이 무신 근본이 있어야 말이제. 떨어진 디서 기양 목심 부지

허고 살었을 거잉게. 앙 그렁가? 불행 중 다행이여, 농사 짓는 디서 나서 농사

짓고 상게 말이여."

"옘병하고 앉었네, 도통을 헐랑가, 지 땅이라고는 단 한 볼테기도 없음서 머이

그렇게 다행이냐, 다행이."

"긍게나 말이다. 아이고, 옘벵이나 엄벵이냐, 천지에 깔린 땅 도지 받어서 다

머에다 쓴다냐."

"논 사지."

"그놈 도지 받으먼?"

"밭 사고."

"또 그놈 받으먼?"

"첩 딜이고."

"핫따, 어뜬 놈 좋겄다. 비오리 지금 몇 살잉가?"

"한 삼십 안되쓰이까?"

"넘었지맹."

"넘어? 아이고, 아까워라."

거개가 농사일을 하는 이 마을에서 제 논 가진 집은 얼마 안되지만,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농사를 크게 짓는다고 소문난 사람은 엄서방, 엄병곤이었다.

, 경술국치 이전에, 자못 위세가 당당하던 오수역 역리 엄구용의 손자로 나이

오십이 벗어진 사람이다.

고리배미 토박이인 병곤은 키가 땅딸막하고 어깨에 살이 올라 바라진 체구에

목이 굵고 짧은 외양이 좀 훤칠하지 못한 것이 흠이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기호성은 대단하여 그의 몸에는 늘 팽팽한 바람이 차 있었다.

거기다가 이곳에서 대를 물려 살아온 집안인지라 일가붙이도 넉넉하여 삼십여

가호나 되는 그는, 사위도 그다지 고단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주로 이 마을의 동편쪽에 모여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엄

씨네를 두고 '동엄'이라고 하였다. 이 동엄의 머리에 앉은 것이 병곤인 셈이었다.

그들 일가 중에는 병곤의 논을 부치고 있는 집도 몇 있었다. 그러니까, 아까 '

' 소리 끝에 '옘벵'이냐 '엄벵'이냐고 한 말은, 엄병곤의 이름을 두고 빗댄 말이

, '비오리'는 마을 어귀 삼거리 주막의 매초롬한 술어미이다. 그리고 둘러앉아

한 마디씩 한 것은, 매안 원뜸의 소작인들이다.

엄병말고는, 농사 지어 자기 앞 가리면서 곳간에 찬 바람 나지 않을 만한 서

너 집을 제하면, 그저 근근이 굶지나 않을 정도의 논 뙈기에 온 식구 목구멍을

의탁하는 사람들과, 그나마도 없어서 소작을 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은 일가붙이인 엄병곤의 논을 부치는 엄씨 들이나, 매안에서 소작을 얻는 사람

들은 그래도 나았다. 이도 저도 못하여 동척에 소작 계약을 한 여러 집은

"차라리 동냥아치가 낫다."

고 말라 붙은 한숨을 모질게 쉬었다.

앞앞이 사는 형편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고리배미 사람들은, 대개는 농사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 외에 다른 생업을 가진 경우도 많았다.

이 마을의 한쪽 끝에 사는 부칠은 나이 오십의 나무꾼인데, 그는 오직 한 가

, 나무를 하고, 그것을 장에 내다 파는 나무장수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

.

지게 하나 짊어지고 산중으로 들어가서, 소나무 가지를 낫으로 쳐내 동이로

묶어 나뭇짐을 만들거나, 가을이면 발치에 수북히 쏟아져 쌓이는 마른 솔잎을

갈퀴로 긁어 가리나무 다발을 만들거나, 혹은 나뭇간에 쟁일 장작단을 만들어,

장날이면 부칠의 아낙은 머리에 이고 사내는 등에 지고, 읍내로 나갔다.

읍내 나무전 거리에서도 그의 나뭇단을 알아 주었다.

어려서부터 나무 일로 뼈가 굵은 그는 이제 그 뼈에 바람이 스며들어 예사로

운 날씨에도 쉽게 속이 시리지만, 나뭇짐만큼은 여전히 바윗돌 같이 단단하고

무겁게 묶어 내는 때문이었다.

부칠과 이웃에 살면서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 온 모갑이는, 박달 방망이, 빨래

방망이, 홍두깨들을 깎아서 팔았다.

"에레서 팽이를 깎어도 말이여, 우리는 기양 대강 숭내만 내 갖꼬는 울둑울둑

헌 대로 치잖이여, . 근디 모갭이 이 사램이 깎어 논 것은 달르드라고. 맨드로

옴허니 태가 나서 아조 이뻤제잉."

그것은 부칠의 말만은 아니었다.

유난히 솜씨가 곰살가워 일 맵시가 남 다른 그의 손으로 만드는 것 중에 일품

은 아무래도 나막신이었다.

보통 '나무께'라고 하는 이 나무 신은, 비 오늘 날 진흙 땅에서 신는 진신과

마른 날 신는 마른신 두 가지인데 어느 것이든 높은 굽이 달려 있었다. 이 굽이

서툴게 달리면 높이가 맞지 않아, 신고 나서면 뒤뚱거리고 걸음이 불안하여 넘

어지기 좋았다.

그런데 모갑이의 나막신 굽은 맨땅을 디딜 때보다 오히려 더 상큼한 기분이

들게 알맞았고, 먼 길을 가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으며 아무리 오래 신어도 굽이

쪼개지거나 빠지는 일이 없었다.

"사람만 양반 상놈이 있는지 아능가? 나무깨도 있네이. 어뜨케 달르냐고?

선 나무가 달체. 개법고 보드람서도 단단헌, 좋온 나무는 양반신으로 가고, 상머

심 괭이 백인 마당발맹이로 심 좋게 막 생긴 나무는 상놈 신으로 가고. 근디,

나는 어디가 달르냐먼 뫼양이여, 뫼양."

퉁퉁하니 뭉시르르하여 둔한 코빼기는 볼품이 없어 막신밖에 안된다. 동그스

름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져 계란이 오히려 거칠게 느껴지는 뒤꿈치도 말할 것이

없지만, 그 뒤꿈치에서부터 쪼옥 곧은 선으로 유연하게 벋어난 선이 콧부리에

이르면서 날렵하게 위로 휘어 오를 때, 여기서 그 나막신의 모양과 품이 결정났

.

"코빼기 멍청허먼 신 베려. 딴 거 다 잘해도 헛짓해 부리능 거이여. , 바라,

코빼기는 요러어케, 닭 대가리가 발등으로 고개를 홰애 돌림서 모가지 따악 쉭

인 것맹이로 이뿌게 깎어야여."

그는 옆에서 일을 배우는 아들한테 번번이 일렀다.

그렇게 다 된 나막신의 신총에, 가늘고 검은 먹줄을 선명하게 두 줄로 그리기

도 하고, 인두로 지져서 수를 놓듯이 고운 꽃잎이나 구름 무늬, 넝쿨 같은 당초

문을 새겨 넣기도 하는

"모갑이 나무깨."

는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하나씩 가지고 싶어했다.

"갖신 부럽잖다."

는 말을 듣는 그의 나막신은, 그 결이 비단같이 부드럽고, 신었을 때 발을 오무

려 감싸 주는 느낌이 안정되면서 편하고, 깎고 꾸민 모양이 발에 신기 아깝게

어여뻤다.

모갑이는 장날이면, 방망이, 홍두깨와 함께 한 죽, 두 죽, 솜씨를 다해 파 놓은

나막신을 어깨에 메고 읍내로 나갔다.

갖신이야 거멍굴 백정 택주네붙이 중에 갖바치가 있어 거기서 짓지만, 모갑이

의 나막신도, 운혜, 당혜, 비단 입힌 갖신 못지 않게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다.

그러나 갖신이고 나무깨고 다 그만두고, 그저 짚신짝이라도 아쉽지 않게 있었

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방물장수 서운이네였다.

그네는 마치 함을 지듯이 뚜껑에 손잡이가 달린 버들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낡은 무명 멜빵을 멘 채로 장날이면 읍내로, 아닌 날은 이 마을 저 고을로 찾아

다니며 행상을 했다.

윤이 반들반들 나고 손때가 버들 속으로 깊이 배어 들어 투명하게 얼비치는

가방 뚜겅을 열어 세우면, 그 속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 있었다.

위짝 아래짝 칸에는 올망졸망 형형색색 여자한테 소용되는 용품들이 가득 차

있는데, 그 앙징맞고 영롱한 모양이나 색깔들이라니.

하얀 무명실, 다홍, 연두, 노랑, 남색 명주 푼사실, 꼰사실, 가위, 바늘, 골무,

리고 쟁가랑거리는 은단추, 호박 단추, 앵두 단추, 막단추, 거기다가 참빗, 얼레

, 화각빗이며 빗치개에 귀이개, 그리고 비취 물빛 영락없이 흉내낸 사기 비녀

와 검은 비녀, 술이 달린 노리개, 반지. 그 옆에 숨막히게 보얀 향을 뿜어 내는

분통이며 반드르르한 머리 기름병. 구리무 곽.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를 곱게 놓은 경대보와 매화 꽃 벙그는 비단 수저집, 바늘집, 댕기, 이런 것

들이 빼곡 들어 찬 가방을 지고, 서운이네는 걸어서 걸어서 마을과 마을을 하염

없이 떠돌아 다녔다.

"참말로 나 다리 품 하나는 여한도 없게 팔었그만, 긍게 내 다리가 나 멕에 살

링 거이제, 나 그런 생객이 들등마잉. 지가 갖꼬 나온 지 몸뗑이 사대육신이라도

저허고 진 인옌이 다 각각 달릉 거잉가아. 어쩡가. 아 왜 어뜬 사람은 손으로 먹

고 살고 어뜬 사람은 발로 먹고 살아아. 또 어뜬 사람은 소리 하나로 살고. 그게

다 지 몸뗑이허고 저허고 진 인옌이제잉."

젊은 날부터 방물장수로 나서서 한평생을 길바닥에서 햇빛 아래 돌아다닌 탓

으로 이제는 정수리 머리가 버슬버슬 부스러져, 고시라진 옥수수 수염같이 되어

버린 서운이 할미는 그런 말을 했었다.

"그러면 외눈백이 곰배팔이는 머이고?"

이야기 듣던 노파가 한 눈을 찌그리며 말을 받았다.

"내 말이. 그렇게 그게 요상타고. 어뜬 것은 한펭상을 부레 먹고 또 그거이 나

를 멕에 살리고잉, 어뜬 것은 그렇게 써 먹능 건 고사허고 달려 있도 안허냐고.

긍게 그 눈구녁허고는 무신 웬수 갚을 악연을 지었등게비지. 당최 그 몸뗑이에

는 달려 있고 싶도 안헌."

"아이고, 안 달린 것으로 웬수 다 갚었그만 그리여, 그런다먼."

"그렇게, 작고 크고, 잘 났고 못 났고 무신 원망을 말어야 히여. 그것다 지가

진 인옌이 모다 뫼아 갖꼬 사대육신 생게 났을 거잉게."

"사주 팔짜 낯바닥도 그렁 거이나 똑같겄그마잉."

"아이고오, 내 팔짜야아."

한숨을 쉬던 서운이 할미 곁에서 어린 서운이는 조작조작 걸어 다니며 놀고,

나이 젊은 서운이네는 시어미한테서 물려받은 방물 가방을 등에 지고 나섰다.

그 서운이도 어느덧 아홉 살이 되었다.

시어미가 다니던 길을 따라, 다니던 집을 찾아 다니고, 한 속처럼 그집에 필요

한 물건을 꿰어 알게 된 서운이네의 머리 정수리도 벌써 먼지를 뒤집어쓴 당나

귀 갈기처럼 빛이 바랬다.

서운이네는 가까이 매안으로부터 숲말, 밤두내, 수월, 덕평, 매내골, 풍촌, 어의

, 황새터, 화정리, 계동을 고루고루 더터서 날짜를 가늠하여 돌았다.

단골이 된 집의 안방에 방물 보따리를 내려놓으면, 소식을 듣고 안사람들이

모여 오고, 혼기에 달한 처자를 둔 집에서는

"아무 만한 아무 것을 구해다 달라."

고 주문을 하기도 했다. 한 집에 길게 머무를 수 없어 마을의 집집을 꼼꼼이 도

느라면 해가 저물기 일쑤였다. 여자가 사는 물건이란 한없이 섬세한 것이어서,

단추 한 개 사는 데 한나절 걸리는 것도 예사인, 아예 그럴 줄 알고 마음을 누

그럽게 먹어야 한다.

"단초 한 개가 그거이 단초 한 개만이 아닝 거이다. 첨에는 서 푼짜리 단초 한

개로 시작이 되지마는 거그서 고리가 걸리먼 삼십 년 단골이 되는 거잉게. 그러

고 그 한 사람만 나허고 걸리능 거이 아니여. 그 사램이 하늘서 떨어졌겄냐?

(형제) 있고 친척 있고 동무 있고, 그 동무는 또 동무가 있고. 그 사람덜하고

다 연줄 연줄 거무줄맹이로 얽어지먼 그거이 대관절 몇 멩이냐. 나는 그 생각을

잊어 부린 일이 한번도 없었니라. 방물 짐 이고 댕김서. 그렇게로 시방 나 댕기

든 질을 니가 또 댕길 수 있는 거이고. 장사는 내일을 바야 히여."

시어미는 며느리 서운이네한테 방물 가방 속에 든 앵두 단추 한 개를 지어 들

며 말했었다. 저승꽃이 거멓게 번진 늙은 손의 두 손가락 사이에서, 영락없이 앵

두 모양을 한 단추가 투명한 진홍으로 빨갛게 빛났다. 그것은 어린아이 조끼에

다는 단추였다.

"여그다 너를 걸어야 히여. 가문 좋고 문벌 존 사람은 거그다 저를 걸고, 재산

이 많은 사람은 또 거그다 저를 거는디, 이도 저도 아무것도 없는 너는, 여그다

이 단초 한 개에다 너를 걸어야 히여. 무신 교옹장 헌 넘의 껏, 체다보도 말어

, 넘의 껏은 암만 좋아도 다 쇠용없는 일잉게로. 니 꺼이나 놓치지 말어."

시어미는 그 빨강 앵두 단추를 서운이네 눈앞으로 바짝 들이밀며 오금박듯 말

했었다.

"사램이 옷을 입는디. 옷고룸이나 단초가 없으면, 앞지락이 이렇게 벌어져 갖

꼬 미친년이나 농판맹이로 요러고 안 댕기냐? 다 벗어지게. 그런 중도 모르고

헐레벌레 기양 댕기먼 어뜨케 되야? 꾀 벗제잉. 망신허고, 동지 섣달에 그러고

댕기먼 얼어 죽고, 그거이 먼 짓이겄냐. 옷고룸 짬매고, 단초 장구고, 앞지락 못

벌어지게 붙들어 걸어야제. 근디 그거이 쉽들 안헝 거이다. 니 인생 미친년 안되

, 꾀 안 벗을라먼, 요단초 한 개 수얼허게 보지 말어라. ?"

한평생 동안 햇볕을 맞받고 다닌 시어미의 낯빛은 바짝 말라 물기 없이 검붉

은 대추색이었다.

서운이네는 먼 길을 나갔다가 해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캄캄한 밤길에, 쏟아

지는 별무리를 등에 받으며 재를 넘기도 했다. 달빛 같은 호사를 어찌 바라랴.

별빛마저 두꺼운 구름 뒤에 숨어 버린 그믐밤의 지질리는 먹장 어둠 속을 허휘

허휘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할 수 없이 아는 집의 방

귀퉁이에서 하룻밤을 묵고는 다음 마을로 가곤 하였다.

그런 밤이면, 쪼그랑망태가 다 된 서운이 할미는 새우처럼 마른 등을 잔뜩 꼬

부린 채로, 칭얼거리는 손녀 서운이를 보듬고 잠이 들었다 깼다하며, 수숫대 울

바자를 쓸고 가는 바람 소리에 늙은 귀를 기울였다.

온갖 잡살뱅이 물건을 저마다 등에 지고 팔러 다니는 도부꾼들은 서운이네말

고도 이 마을 저 마을마다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은 나랏님도 상투를 자른 지 오래라 하고, 보도 듣도 못하던 철갑차가 철

도 위를 바람같이 시커멓게 내닫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 하는 양반들은 으레 그런 일을 안하는 것으로 알아, 장날에도 몸소 장에 나

가는 법이 없었으니.

웬만한 것들은 눈썰미 야물고 매운 하인들이 재바르게 다니면서 충직하게 심

부름을 하였다.

이처럼 사랑에서도 안 가는 장에를 안에서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이 다 무엇인가, 기껏 샘길이나 문중의 집안 마실 정도가 출입의 전

부일 것이다. 그러니 마을을 벗어나 어디 바깥에 나가는 일은 좀체로 없었다.

그렇지만 집안에서는, 하인한테 시켜서 사 오는 소소한 물건들말고도 언제나

필요한 것은 많았고, 또 정작 중요한 일을 당하여 사야 하는 물건들은, 하인이

알아서 사 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럴 때 도부장수들은 요긴하게 이용되었다.

만일 집안에 당혼한 자녀가 있어 각종 혼수를 준비해야 할 때는 황아장수를 찾

았다.

장날이면 장에 벌린 황아전에서 비단을 팔고, 다른 날에는 청, , , 색색깔

의 비단을 등에 지고 마을로 돌아다니는 이들은, 남자인 경우, 오래 다녀 단골이

된 집에 이르러서도 결코 덜퍽 안채로 찾아가지는 않았다. 내외의 법이 엄중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랑채로 찾아가, 지고 온 비단을 내려 펼쳐 보였다.

또 멀리 해변과 섬에서, 말린 미역이나 멸치, , , 마른 새우와 홍합, 자반

조기, 그리고 민어포, 상어포, 피문어 들을 둥덩산같이 수북하게 인 건어물장수

들이 때 맞추어 찾아들기도 한다. 그들은, 지난번 들렀을 때 주문받은 마른 전복

이나 해삼을 내놓고, 특별히 혼인에 쓰려고 부탁한 참문어를 잊지 않고 챙겨 오

기도 하였다.

문어 쌈지라고 하는 문어 대가리가 사람의 머리만씩이나 한 참문어는, 거기

달린 다리들이 모두 한 발이 넘는 길이인데, 보통 때는 좀체로 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지만, 혼인의 초례청에서야 이보다 더 화려한 장식은 다시 없어서,

리 주문을 하는 것이다.

몇 날 며칠을 두고 공들여 오리고, 집안에서 아주 솜씨가 좋은 어른이 모셔지

기도 하는 이 문어발 오리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려 놓은 문어발에서는 온갖 형용 정교하고 아름다운 국화송이, 매화

송이가 참으로 제 줄기에서 금방 핀 것처럼 피어났다.

그러나 역시 가장 화려한 것은 봉황 오림이다. 금방 천공으로 상서롭게 솟구

치며 날아오른 듯한 꼬리를 휘황한 깃털로 장식한 봉황은,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에 거북의 등과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두루 갖추고, 봉은 수컷, 황은

암컷으로 초례청에 마주서니, 그 화려한 자태는 봉황이 뿜어 낸다는 오색에 오

음의 소리가 그대로 곧 보이고 들릴 것만 같았다.

큰 물건을 팔아야 이문이 많이 남는지라, 방물장수, 도부꾼, 황아장수, 행상들

은 크고 문벌 좋은 마을 쪽으로 자주 길을 잡곤 하였다.

그러나 도레도레 제 근처를 맴도는 것은, 엿 목판을 앞에다 메고 큼지막한 가

위를 철걱 철걱 두드리는 엿장수, 흰 무리, 시루떡, 콩떡, 찰떡, 인절미, 무지개떡,

배피떡을 번갈아 머리에 이고 나타나는 떡장수들이었다.

고리배미 떡장수는 곤지어미였는데, 엿장수는 배암골 쪽에서 왔다.

엿장수만이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많이 들어왔으니, 그 중에는 체장수, 상고는

사람, 테 매는 사람이 있었고, 또 얼마큼 있다가는 소금장수가 이 마을을 찾아오

기도 하였다.

그들을 맨 먼저 맞이하는 것은 마을 초입에, 성성한 바람 소리를 내며 검푸른

구름머리를 이루고 있는 솔밭, 적송 숲이었다.

한결같이 행색이 남루하고 찌들어 보이는 이 장사꾼들은, 세 갈래로 갈라진

마을의 어귀에서 동네 쪽으로 들어서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솔밭의 모정에서

한숨을 돌리며 일단 다리를 쉬었다. 그리고 곰방담배를 꺼내 물거나, 여름 같으

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솔바람 소리를 듣기

도 하였다.

물론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랬다.

이 솔밭은 고리배미의 장관이요, 명물이었다.

마을을 둘러보아 눈에 띄는 명승이나 정취로이 바라볼 만한 무슨 풍경 하나도

없이, 그저 둥실한 고리봉 아래 평평한 마을이 해바라지게 한눈에 들어오는 것

이 고리배미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져 마을을 나직히 두르고 있는 동산이

점점 잦아내려 그저 밋밋한 언덕이 되다가 삼거리 모퉁이에 도달하는 맨 끝머리

, 무성한 적송 한 무리가 검푸른 머리를 구름같이 자욱하게 반공중에 드리운

, 붉은 몸을 아득히 벋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성황당이 있었다.

"민촌에 아깝다."

고 이 앞을 지나던 선비 한 사람이 탄식을 하였다는 적송의 무리는, 실히 몇 백

년생은 됨직하였다.

이런 나무라면 단 한 그루만 서 있어도 그 위용과 솟구치는 기상에 귀품이,

잡목 우거진 산 열 봉우리를 제압하고도 남을 것인데, 놀라운 일이었다, 수십여

수가 한자리에 모여 서서 혹은 굽이치며, 혹은 용솟음치며, 또 혹은 장난치듯 땅

으로 구부러지다가 휘익 위로 날아오르며, 잣바듬히 몸을 젖히며, 유연하게 허공

을 휘감으며, 거침없이 제 기운을 뿜어 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것은 오직 고요히, 땅의 정과 하늘의 운을 한 몸에 깊이 빨

아들여 합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붉은 갑옷의 비늘이 저마다 숨결로 벌름거리고, 수십 마리 적송은 적룡의 관

능으로 출렁거려 피가 뒤설레는데, 제 몸의 그 숨결로 오히려 서늘한 바람을 삼

아 사시 사철 소슬하게 솔숲을 채우는 이곳을 두고, 고리배미 사라들은 그저

"솔 무데기."

라고만 하였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정자는 그만두고 모정 하나 없이 그냥 소나무 아래 무심히

앉아 쉬고 놀고 하던 것을, 바로 바짝 그 옆에서 주막을 하여 돈냥이나 모은 비

오리어미가, 손님을 더 끌어 볼 욕심으로 궁리를 하다가 모정을 세웠던 것이다.

껍질만 벗긴 기둥목 소나무를 생긴 그대로 써서 네 귀퉁이에 박고, 송판으로 몇

조각 마루를 들인 뒤에, 볏짚으로 손바닥만한 지붕을 덮는 이런 일은 어려울 것

도 없어서, 솜씨 좋은 마을 목수 도식이가 사람 하나 데리고서 한 며칠 뚝딱,

, 하더니, 아주 사나흘 뒤에는 말끔히 마쳐 놓았다.

그것이 십여 년 전 일이었다.

관연 모정을 세운 것은 잘한 일이어서, 마을 사람들한테 좋은 일 했다고 치하

도 받고, 그 덕에 한 걸음이라도 더 하는 사람들에게 술도 더 많이 팔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을에 찾아드는 장사꾼들 말고도, 오고 가며 이 길목을 지나가던 길손

들까지도 솔 바람 소리 성성한 적송의 무리 속에 조촐하게 세워진 순박한 모정

에 눈이 가면 저절로 걸음을 멈추곤 하였다.

그래서 비오리네 주막은 종종걸음을 치게 부산하여졌던 것이다.

우선 이곳은 길이 좋았다.

이 근동 사방을 에워싼 크고 작은 뫼들의 물결과 주름 갈피에 박힌 여러 마을

에서 물곬같이 흘러나오는, 남원 읍내 쪽으로 가자면 이리로 빠지지 않을 수 없

, 꽤 오래된 길이 구불구불 하얗게 벋어 오다가 평평하게 화악 퍼지면서 둥그

러미를 이룬 곳이 고리배미였다. 길은, 마을에다 한 짐의 땅을 넉넉히 부려 놓고

는 다시 홀가분한 줄기로 읍내를 향하여 흘러갔다. 거꾸로, 남원에서 북행을 하

재도 마찬가지여서, 아래쪽 삼동네는 물론이고 더 먼 곳에서도 이 마을 앞을 지

나야 역이고 원이고 갈 수가 있었다. 그래서 자연히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지

, 웬만한 짐바리를 실은 마소라도 비좁지 않게 걸음을 떼어 놓는 길이 저절로

닦여지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머지않은 곳에 정거장이 생겨나고, 마을을 싸고 있는 고리봉 뒤자락

을 가르며 철도가 놓이는 바람에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그러기 전만 하여도 마

을 앞 갈림길 솔밭 옆의 비오리네 주막은 밤낮으로 흥청거렸었다.

"아이고, 그 오살 노무 철동가 머싱가 날라먼 요 앞으로 나제, 멋 헐라고 존

질 놔두고 대가리 홰액 틀어 갖꼬 외면을 허고는 저 지랄을 허고 절로 가, 개기

, 잘 오다가."

이제는 딸 비오리한테 술청 일을 다 넘기고 뒷전이나 살피는 비오리어미가 손

님이 뜸한 날이면 손님 대신 주막의 평상에 우그리고 앉아 하는 말이었다.

생김새가 매초롬하고, 몸매가 호리낭창한데다가, 저 혼자 서거나 앉아 있어도

감기는 듯한 태가 있는 비오리는, 그렇지만 온몸에서 파르스름한 찬 빛이 번져

났는데, 한창 나이가 되면서 물이 오르던 열아홉 스무 살 때는 새침한 얼굴에

도화색이 발그롬하여, 인근 사람들 입살에 어지간히 오르다가 결국 남의 집 소

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몇 해 못 지나, 어느 봄날, 고리봉에 진달래 애터지게 붉은데 꼭 제

어미 그만한 나이 때 모양으로, 작은 보퉁이 하나를 가슴에 보듬고, 다시 고리배

미로 돌아왔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비오리는 제 몸뚱이 저 혼자서 오고, 맞아주는 어미와

집이 있다는 것이며, 비오리어미는 모가지가 실내끼 같은 젖먹이 비오리를 등에

업은 채, 올 데 갈 데가 없어 막막하게 떠돌던 끝에 고리배미로 들어왔는데,

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비오리어미를 내쫓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네는, 누더기가 다 된 헌 옷 보따리 하나에 애기 하나 업고 고꾸라

져 주저앉은 마을 앞 솔밭 옆에 그대로 터를 잡은 것이다.

그것이 벌써 삼십 년 전 일이었다.

"애기 이름? 가이내년이 이름은 무신 노무 이름. 애깅게 기양 애기, 그러먼 되

."

"그런 이름이 어딨다요?"

"어딨어. 여그 있제."

"커도 애기여? 나중에 인자 안 크간디?"

"크먼 큰애기고."

"하이고매."

"다 쓰잘디 없는 짓들이여. 이름 있으먼 멋 히여, 불르기 조먼 대답허기만 귀

찮제. 상놈의 이름은 안 불릴수락 존 거이여. 멀 알도 못험서. 아조 없으먼 더

좋고. 왜 그런지 알어?"

"일이나 시길라먼 불릉게 그러겄지맹. 이뿌다고 씰어 줄라고 부를랍디여?"

"아네. 성도 귀찮시러. 부모한테 받응 거잉게 엇다 띠어 내불도 못허고 자석한

테로 물려쥐기는 해야겄지마는. 머 써먹을 디가 있어야 생광시럽제. 나 그렁 거

멀라고 있능가 모르겄데잉. 산에 낭구는 이름도 성도 없어도 잘만 크등만."

"왜 이름이 없어? 도토리나무우, 상수리나무, 옻나무우."

"에라이, 그러먼 사람 보고는 씨리둥 사라암 그런당가? 그럼사 좋겄지, 오직이

. 우리가 산에 나무 허로 가서 너 이름이 머이냐, 안 그러고, 너 무신 성짜 쓰

, 안 그러고, 양반이다, 쌍놈이다, 안 그러고, 딱 생김새 바서 그거 한나로 씰

거잉가 안 씰 거잉가 정허디끼. 사람도 사람 볼 직에 본성만 봄사 누가 마대?"

하고 말하던 비오리 아비는, 걱실걱실한 생김새 그대로 성질도 별로 조인 데 없

던 도부장수였었다.

이름 이야기를 몇 번인가 하다가 흐지부지되어 그냥 '애기'라고 부르던 비오리

와 비오리어미를 남겨 두고, 그 아비는 별 것도 아닌 일로 그만 어이없이 생목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때 일찍이 부모 동기를 잃어버리고 저 혼자 때갈로 크던 비오리어미는 세상

에 핏줄이나 연고라고는 머리에 쇠똥 갓 벗어진 딸년 비오리 밖에 없었다.

"죽은 사람 이얘기 허먼 멋 히여. 기양 그렇게 생긴 사람이지 머. 너 맹이로

생겠능가아, 누구맹이로 생겠능가아."

열아홉이 되도록 '애기'라고 부르는 딸이 한번은, 저희 집 술청에 들러 탑탑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도부장수의 뒷등을 이만큼 벗긴 곳에 앉아서 무슨 생각에

잡힌 것처럼 바라보면서

"울 아부지는 어뜨케 생겠능고."

하고 혼자말로 묻는 말에 어미가 한 대답이었다.

비오리는, 제 아비가 도부장수라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혼자서

짐작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큰집 작은집도 없능가?"

"내가 말은 들었는디. 늑 아부지는 에레서부터 그러고 등짐 지고 댕겠다등만.

어디 한 간디가 붙어 살어야 그렁 것도 챙계진디이. 나는 가본 일도 없고, 찾도

못해. 말만 들어 갖꼬 알 수가 있간디? 머 재 넘고 물 건네 어디라고 그러등만,

조선에 재 너고 물 건네는 디가 어디 한두 간디냐?"

"긍게, 어머이허고는 장에서 만났당가?"

"내가, 장에 있는 주막에서 기양 심바람도 허고, 정지꾼맹이로 불도 때고, 그륵

도 싯고, 빨래도 허고, 그러고 있는디, 늑 아부지를 만났제. 그 주막에를 늘 댕겠

잉게."

"아부지가?"

"."

"아부지 이름은 머이간디?"

"본쇠."

"본쇠..."

입 속으로 그 이름을 되받아 뇌어 보던 비오리는, 두 팔로 깍지를 낀채 괴고

앉은 무릎에 턱을 받친 그대로 한참을 있었다.

"나 울 아부지 한 번만 봤으먼."

그 말에 비오리어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윽고 무슨 생각을 저만치 밀어내듯이, 번지는 소리로 말끝을 흐렸

.

"어디 가서 바. 없는 디."

"큰아부지라도, 작은아부지라도, 누구 아부지 핏줄이고 탁인 사람 한 번만 봤

으먼. 그런 사람 만나먼, 이어어케 손 한번 대 보먼 아부지 살 같을 것맹이여."

"."

"."

막걸리를 마시던 술청의 도부장수는 어느결에 일어나 가 버리고, 저무는 주막

의 됫박만한 방에 비스듬히 마주앉은 두 모녀는, 말이 없이 그냥 고개를 숙이고

만 있었다.

"양반, 상놈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못 배워 모르면 그것이 상놈인 것이다. 근본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라도 이 세상에 났으면 낳아 준 부모가 있고 또

그 부모의 부모가 있지 않으냐. 헌데 그 가닥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 가닥을

놓쳐 버리면 그것이 곧 상놈이니라. 곧 선조의 유래를 모르고, 제 아버지, 어머

니가 누구인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누군지를 모르고, 그 위 상대도 모르고, 지금

의 자기가 있게 된 그 말미암음을 모르게 되면, 상놈이라고 한다.

자기의 선조가 미약하고, 향교 출입을 못하면 양반이라고 할 수 없지마는,

렇다 하더라도, 자기 조상에 대해서 잘 알게 되면 모르고 사는 것하고는 다르지.

아무리 미천한 사람이라도, 자기 조상에 대해서 잘알면, 어디서 어떻게 무슨 가

닥으로 무슨 파가 갈려 나왔는지, 또 그 가닥들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지금은

무엇을 허는지 챙겨 볼 수가 있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자연히 서로 연락도

되고, 출입도 넓어져 견문이 생기고 아는 사람도 많아져서, 사는 힘을 얻을 수

있으니. 사람은 어쩌든지 제 조상줄을 놓치면 안된다."

언젠가 주막에 들러 목을 축이던 매안의 사람이 어떤 젊은이를 상대하여 하던

말이 귀에 남았지만, 비오리나 그 어미는, 어느 누구 단 한 사람도 찾아볼 만한

붙이라고는 없었다.

그런 중에도, 남 다르게 태깔이 고와지는 비오리를 위하여 비오리어미는 황아

장수한테서 옷감을 끊어 놓기도 하고, 방물장수 서운이네 한테서 시집가는 데

필요한 바느질 용품이며 하얀 분백분을 사두기도 하였다.

"나는 어머이 탁했다고 넘들이 그러든디."

"아이고오, 몸썰난다. 나를 탁에서 무신 존 일이 있다고 나를 탁에."

"어머이가 머이 어디가 어찌간디?"

"그런 소리 말어라. 당최 허들 말어. ? 너는 인자 말 헐만 헌 디서 말이 나

먼 기양 치워 불란다. 고온 때 가시기 전에."

하던 비오리는,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꽃심이 진분홍으로 피어나는 복사꽃 가지

아래로, 남의 소실이 되어 집을 떠나갔다.

남원 읍내에서 꽤 큰 한악국을 하는 진의원을 따라간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는 마흔두 살로, 비오리 나이의 꼭 두 배였다.

"고리배미 솔밭 주막에 큰애기가 그렇게 이쁘다고 소문이 자자허든디."

맨 처음 그가 주막으로 찾아왔을 때 한 말이었다.

그는 흰 두루마기를 떨쳐입은데다가 머리는 상투를 쳐버리고, 발에는 하얀 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때는 막 봄이 무르익으려 할 때여서 주막 옆구리의 솔밭 언저리에 저절로

벙그는 각시복숭아꽃 숨결 터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었다.

남의 중매도 더러 심심찮게 하는, 방물장수 하던 서운이 할미가 그날 따라 일

부러 맞춘 것처럼 같은 시간에 주막으로 놀러 나왔는데, 아는 사람이라고 진의

원을 반가워하였다.

그네는 진의원에게, 방물짐을 막 며느리에게 넘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며, 그간

댁에서 신세 많이 졌었노라는 것을 말하고, 앞으로 며느리의 방물도 많이 팔아

주시라고, 한 가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개를 꼽박, 꼽박, 하면서 숙이곤 했다.

서운이 할미는 비오리어미와 나이도 비슷하고 처지도 닮은 점이 있어 다른 사

람보다 서로 더 허물없이 지내왔었다.

두 노파는 둘 다 영감이 없었고, 기대고 살 만한 남정네나, 아들이 없는데다

한쪽은 과년하여 시집 보낼 딸이 있고, 한쪽은 며느리가 혼자되어 갓난이 하나

품에 안은 과부가 되었는데, 그 모습이 자신의 젊었을 때 같아서 비오리어미는

서운이네한테 마음을 많이 써 주곤 했다.

"마은 살이 넘었잉게 벌쎄 메느리는 봤제잉. 그래도 자개가 의원이고 약국도

헝게로 녹용으로 인삼으로 존 약은 다 혼자 먹고, 속상헐 일 벨라 없이 살어 놔

서 사람 땅땅히여. 인심도 무던허고, 나보고 말 잘해 돌라고 그러등만."

며칠 후에, 서운이 할미가 조심조심 눈치보는 척하면서 옆에 앉은 비오리한테

들으라고 말했다. 비오리어미는 속으로 반은 접어 넣고 밖으로 반은 펼쳐 보이

는 소리로

"마흔이며, 호박이 노랑물이 막 들라고 헐 땐디."

하고 미심쩍은 듯 입맛을 다셨다.

"노랑 호박, 잘 익으면 그것같이 해먹을 껏 많고도 맛나까? 깎어서 호박 오가

리 해 놓고, 눈 펑펑 쏟아지는 날이먼 호박떡 해먹고, 누렇게 조청맹이로 풀어서

호박죽 쒀 먹고, 또 있제잉. 호박 범벅도 맹글어 먹고, 아이고, 맛나라. 그것뿐이

? 늙은 호박은 약에도 좋잖이여?"

"노랑 호박 한 뎅이 갖꼬 아조 물고를 낼라고 작정을 했그만이."

"나이는 좀 있제. 말이사 바로 말이지만. 그런디 차라리 이런 자리가 실속 있

, 사람 점잖고 갠잖다고오. 솔직이 이짝 헹펜도 있는디이"

"헤기는, 나이 마흔이먼 쉬염도 지댄허니 지룰라고 허고, 이자 어른 가락을 뺄

라고 헐 때지."

"진의원이 거 할량이라고. 놀 찌 알고, 여자 애낄 찌 알고. , 약도 잘 짓고,

글도 많이 허고. 유식허잖여?"

진의원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비오리에게 하루는 금방 시집가게 생겼

는데 아직도 애기냐고, 이름을 하나 지어 주겠노라 하였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비취 비 자, 달 월 자, 비월이었다.

"꼭 너한테 맞는 이름이다. 너는 비취로 깎은 달이로다."

고 몹시 흥겨워하던 그는

"저만한 적송 속에 초당이 서 있는데 이름이 없을 수 있느냐."

하면서, 하루는 좁으장한 현판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왔다.

"못 쓰는 글씨지만 손수 썼다."

하는 현판에는 '송풍정'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잔 재미가 많았던 그는, 비오리에게 소리선생을 하나 붙여 주기도 했다. 남원

권번 출신인 소리선생은 비오리를 데리고, 요천수가 푸른 비단 띠처럼 흘러가는

흰 모래밭으로, 또 요천수에 발을 담근 암벽 위에 날아갈 듯 서 있는 정자 금수

정으로, 같이 다니면서 소리를 가르쳐 주었다. 그저 소리 맛만 보는 것이지 테머

리를 하고 덤벼들어 배우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이나 제자나 심심파적

으로 하는 셈이었다.

두어 해를 그렇게 보내고는, 어찌 되었든 다시 고리배미로 돌아온 그네에게

나은 것은 '비월'이라는 이름과 검푸른 적송 숲의 모정에 걸린 숭풍정의 현판뿐

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돌아온 그네를 보고 수군거리면서 그냥 부르기 쉽게 비오리,

비오리 하고 불렀다.

"비오리가 왜 못 살고 왔당가?"

"그 속이야 누가 알어? 팔짜겄지."

"술에미 딸이라고 첩으로도 안 쳐 주었으까?"

"모르고 데리갔간디? 첨부텀."

"아니, 무신 흉악헌 소문도 있기는 있등만."

"흉악이라니?"

"아이고, 내 입으로 욍기든 못허겄어."

사람들 귀가 쫑긋 일어섰다.

고리배미로 돌아온 비오리는 한동안 덧문을 깊이 닫고 그림자 얼씬도 하지 않

은 채, 죽은 듯이 지냈다.

"무던히 울었드라대."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내외간의 정이란 것이 열 살 줄에는 몰라서 살고, 스물 줄에는 좋아서 살고

서른 줄에는 정신없이 살고, 마흔 줄에는 못 버려 살고, 쉬흔 줄에는 서로 가여

워 살고, 예순 줄에는 등 긁어 줄 사람이 필요해 산다."

고 하더라만.

첩이라 하는 것은 본디 맹랑하여 그 어디에도 들지 않는 모양인가. 홀로 무색

하게 돌아온 비오리를 두고 고리배미 사람들은 샘가에서, 동네 사랑에서 모이기

만 하면 수군거렸다.

"왜 저러고 왔이까잉?"

"말도 말어. 나도 어디서 들은 소린디. 저렇게 태깔도 곱고 목청도 좋은 비오

리를 마흔 넘은 중늙은이 진의원이 기양 덤썩 물어갔어니. 살진 암캐 물어간 호

랭이맹이로 아 통으로 씹어 먹어도 비린내 한나 안나고, 눈에다 넣어도 아픈지

모리게 이뿌지 않겠능가? 진의원 따라간 그날부텀 진의원 물팍이 비오리 요대기

, 진의원 품속이 비오리 베람박(바람벽)이여. 오직허먼 심지어 약을 지을 때도

보듬고 앉아서, 한 손으로는 버들가지맹이로 낭차앙헌 비오리 허리를 감고, 남은

한 손 갖고 마지못해 보도시."

"옘병을 허등게비."

"너 같으먼 앙 그러겄냐?"

"그렇기도 허겄어."

나무장수 부칠이가 하릴없이 맞장구를 치고 말자 나막신 깎아 파는 모갑이는

이야기하는 사람 앞으로 무릎을 당겨 앉으며 물었다.

"그런디 왜 더 못 살고 기양 와?"

"왜는 왜여? 진의원 마느래 땜이 그렇제."

"마느래?"

"옳제, 투기를 했등게비구나?"

"투기라도 기양 머 첩의 년 머리 끄뎅이나 조께 잡우댕기고, 세간살이 뿌수거

시끄럽게 해 놓는 정도가 아니라, 아조 제대로 했능갑서."

"어뜨케?"

"진의원이 왕진가는 날을 지달르고 있다가잉, 그 마느래 수족 같은 예편네 몇

이서 작당을 해 갖꼬는, 불문곡직 달라들어 질질질 끄집어다 비오리 꾀를 활씬

벳겨서, 터럭이라고는 다 쥐어뜯고 뽑아내 민둥이를 맹길었다대."

", 독헌 년들."

부칠이와 모갑이는 머리를 털었다.

"거그서 끄쳤드라먼 그래도 낫었을 것을."

"더 헌 짓이 있었어?"

"하문에다 박달방맹이를 쑤셔 박었드래."

"다들이질...허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엄청난 말이라 사람들은 더 이상 무어라 덧붙이지 못한 채

모두 얼굴이 흙빛으로 질려, 서로 눈길을 피하며 우물쭈물 하였다.

"진의원이 돌아와서 울어도 쇠용이 없고, 광생당 한약국에 있는 온갖 약재를

다 써서 고쳐 볼라고 해도 이미 될 일이 아니였드라대. 아 저 중국으로끄장 사

람을 보내서 약재를 구해다 써 봤당만그리여. 옆에서 본 사램이, 진의원 정성이

하도 가련해서, 하늘이 다 무심하다 싶드랑만..."

동네 사랑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샘가에 모여 앉은 아낙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비오리가 못 쓰게 된 것까지는 같은 내용이었으나, 그렇게 누더기로 만든 사

람이, 진의원의 '마느래'가 아니라 바로 비오리를 소실로 데려간 진의원 자신이

었던 것이다.

"아니 암만 질같(길가)에 꽃이라도 맘에 있어 꺾었으먼 애지중지 허든 못헐망

정 그 지경으로 모질게 짓뭉개서 사람 구실도 못허게 맨든당 거이 말이나 되야?

허이구, . 세상에나 제대로 앉을 수도 없능갑드라고."

배추거리를 다듬던 아낙이 퍼르르 성질을 돋우었다.

"샛서방을 봤능갑대."

"? 비오리가?"

"진의원이 분을 못 참고 기양, 연놈을 잡어 족치다가 미친디끼 비오리한테 달

라들어 쥑일라고 작정을 험서, 못 헐 짓 없이 맹글어 부렀능갑등만. 그때 비오리

안 죽은 거이 천행이라든디?"

"암만 그렇다고 소위 의원이람서 사람의 낯가죽을 쓰고 그럴 수가 있어?"

"아이고매. 찢어 쥑인대도 헐 말 없지 머. 일부종산디."

"첩도 일부종사 해양가?"

", 첩은 머 벨 거이여? 여자로 났으먼 헐 수 없능 거이제."

"어이. 수악허다. 참말로."

아낙들은 쌀을 씻고, 배추거리를 다듬으며, 물을 긷는, 저 할 일을 다 마친 뒤

에도 샘가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그러나 어느 하루는 떡장수 곤지어미가 새 말을 물어 왔다.

"이런 경천동지를 헐 일이 있능가이? 아이고머니나, , 비오리 샛서방이 긍게

진의원 아들이었드라네. 진의원이 벌쎄 마흔 넘었잉게로 그 아들도 한 스무나뭇

이짝 저짝 안되겄다고? 이런 말 욍기는 내 입이 더렁가?"

그 자리에 있던 방물장수 서운이네는 곤지어미 말에 고개를 갸웃하였다.

"진의원으 아들이라먼 나도 본 일이 있는디?"

"어뜨케 생겠등고? 말 딛기로는 즈그 아배를 탁에서(닮아서), 매꼼허고 내노라

허는 할량이라든디. 놀 찌 알고."

"나도 머 방물 짊어지고 그 집이 갔다가 실쩍 지내감서 봐 갖꼬잉. 잘은 모르

겄는디, 기양 시악씨맹이로 뵈이등만, 얌전허게."

"얌전헌 강아지 부뚜막에 올라앉은단 말, 듣도 못 했능가?"

한량이 되었든 숙매이 되었든, 진의원의 아들이 제 아비의 첩과 농탕치게 어

우러졌다는 말은 고리배미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만고에 한량인 진의원 아들이 색태 자르르한 비오리를 보고 그만 앞뒤 분별을

잃었다는 말도 있고, 젊은 비오리가 매일 늙은이처럼 소리선생이나 데려다 주는

진의원한테 별 마음이 없이 시들어가던 중, 어처구니없게도 아들한테 반하여 사

생결단 목을 매고 그를 홀렸다는 말도 있었으나, 누가 직접 본 일이 없으니,

위를 어찌 알리. 그러나 이미 그 이야기는 맹렬하게 불이 붙어 걷잡을 수 없도

록 온 마을 고샅 고샅 번져 나갔다.

전에 비오리가 진의원의 마누라에게 도륙을 당하다시피 했다, 하는 말이 돌

"나도 님의 마느래지만 본마느래 권세가 그렇게 대단헌 거잉가. 첩도 사램인

, 어뜨케 차마 그 지경을 맨들 수 있당가."

하고 편역을 들었던 아낙도, 이번에는 한 마디로 잘라서

", 상종 못 헐 개상년이로그만."

해 버렸으며. 거꾸로 비오리가 샛서방을 보아 진의원이 물고를 낸 것이라는 말

이 돌았을 때 역시

"사람이 지 분수를 알아야제, 암만 돈이 많다고 나이 생각도 안허고, 젊으나

젊은 첩을, 자식보다 에린 것을 데꼬 살라고 욕심 내다가 낭패를 본 거이제 머.

아 호강도 좋지만 새파랗게 젊은 년이, 어디 먹고 입는 호강만 갖꼬 살 수 있간

?"

하면서 은근이 두둔해 주었던 사람도 이버 소문에 대해서만큼은

"더러운 년."

이라고 거두절미 단호히 매도하였다.

"추접시러서 어디 고리배미 산다고 말 허겄능가?"

"이래 놓으니, 양반들이 민촌것 민촌것 험서나 우리를 하시하고, 사람 취급도

않는 거이라고."

"헐 말 없지 머."

"개 뒤야지 한 가지로, 에민지 애빈지 구분도 못허고 그저 아무케나 들러붙어

, 인륜도 없고, 도리도 없고, 못 헐 짓이 없응게."

아무리 술파는 계집이라지만, 한 동네에 머리 두고 같이 사는 것이 창피하다

, 아낙들은 솔밭 삼거리 주막집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으며, 남정네들도

발길을 끊었다. 동네의 풍속을 더럽힌 년의 집인탓이었다.

"그 주막 술은 구역질이 나고 던지러서 못 먹겄다."

그런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리배미 토박이로 이 마을에서 남부럽지 않게 농사를 많이 지으며 어른 행세

로 자못 위세를 떨치고 있던 엄병곤이, 이 소문을 듣고는 노발대발하며

"진상을 가려서,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본때를 보여 조리를 돌리라."

고 했던 것이다. 지금껏 웅성웅성 뒷소리만 하고 있던 사람들은 삽시간에 벌떼

처럼 일어나 금방이라도 주막집으로 쳐들어갈 것처럼 사납게 흥분했다.

그러나 결국은 그리하지 못하였다.

부칠이와 모갑이를 비롯하여 떡장수 곤지어미와 방물장수 서운이네, 그리고

비오리를 진의원에게 중매했던 서운이 할미 등 몇 사람이 우선 작당을 하여 선

발대로 노기등등 몰려가자, 뜻밖에도, 반항할 줄 알았던 비오리가 선뜻 덧문을

열어젖히며 방으로 들어오라 하였다. 그리고는 술상을 내왔다.

"내가 신세 처량하게 소박을 맞고 왔더니, 입에 못 담을 소문들이 제멋대로 돌

았능갑습디다잉. 태생이 비천헝게 누가 지내가다 매급시 한대 쥐어박어도 말 못

허고, 아닌 말로 때려도 변명 못허고... 사램이 어디 독()으로 쳐야만 아픈 거

잉가요. 말로 치먼 멍이 더 깊제. 주먹으로 한 대 맞은 멍은 날짜 가먼 풀리지

, 말로 맞은 자리는 죽을 때 끄장 풀리덜 않고 원한이 되능 거 아닝교? 내가

고리배미로 돌아온 그날부텀 알게 모르게 떠돌던 말, 그게 다 헛소문이요. 나는

날마동 그 말매를 맞고 살었소. 이 멍을 다 어쩌실라요? 안 그래도 서러운 인생,

죽기 전에 풀어 주실라요? ?"

허기 쉬운 넘으 말이라고 그렇게 막 허능 거 아니그만요잉.

비오리가 하도 찬찬하게 변설을 하매. 우우하니 몰려갔던 사람들이 도리어 무

색하게 공연히 방바닥만 문대여 만지작만지작 하는데, 서운이 할미가 중매 선

연고로, 남들 앞에서 비오리를 씻어 주려고 짐짓 물었다.

"아니 땐 귀뚝에 연기 나라는 속담도 있지마는, 왜 무단히 그런 숭악헌 소문이

다 갖꼬 생사람을 잡는당가. 참말로 그런 일이 없었어?"

"없당게요."

비오리는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서운이 할미 얼굴에 이윽고 미심쩍으나마 안도의 빛이 번지는데, 곁에서, 나이

그 중 많은 부칠이가 머뭇머뭇 무슨 말을 얼른 꺼내지 못해 움찔거린다.

"그런디 말여, 자네는 그렇게 확실히 월백 같고 설백 같지만, 동네에는 또 동

네법이 있잉게로. 풍행이 난잡헌 것 아니란 징명을 헐라먼, 저 그 동엄에 어른한

테로 조께 같이 가야겄는디, 어쩌까잉. 거그가서 자네가 직접 발명을 해 보소.

시방 자네 오기를 지달르고 지실 거잉만."

그러자 비오리가 하얀 이를 싸악 드러내고 웃었다.

갑작스러운 그 웃음에 등골이 쭈뼛해지며 놀란 것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동엄 어른네 마당으로 가능 것은 에럽잖으나, 징명은 에럽겄소잉? 버얼

건 대낮에 사람들 다 둘러선 마당에서 멍석을 깔어 놓고 머엇을 어뜨케 징명을

허까요? 암만 해도 그 징명을 헐라먼 동엄 어른보톰 하나씩 번을 갈라 나를 봐

얄 거잉게 요리 오시얄랑갑소. 이번 일은 내가 절단난 것 아니랑 것만 아시먼,

다른 말은 다 뜬소문인 것도 자연히 알게 되실 것 아닝가요?"

하도 막 대고 하는 말이라 듣는 쪽이 오히려 민망해진 사람들이 서로 면구스

러운 눈치만 보는데, 비오리는 썩 한 무릎을 내앉으며 팔을 쑥 내밀더니 모갑이

손을 나꾸어 잡는 시늉을 했다.

"누구, 아재가 몬야 징명을 해 보실라요?"

모갑이가 악연하여, 잡히지도 않은 손을 뿌리친다.

"이 사램이 시방 누구 망신을 줄라고 작정을 했능가?"

얼굴은 물론 목덜미 손등까지 벌겋게 물드는 모갑이를 보고, 눈시울에 핏기가

오른 비오리는

"이판사판, 나도 죽냐 사냐요."

하더니만 고개를 숙이고 투두두둑, 눈물을 떨구었다.

"동엄 어른도 징명을 헐라먼 이리 오시라고 허시요. 내가 해 디리께."

그 말을 던지면서 비오리는 훌떡 일어나 술청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구슬픈

목소리로 천역덕스럽게 흥타령 한 대목을 길게 토해 냈다.

 

월명사창에 슬피 우는 저 두견아

네가 울랴거든 창전에 가 울지

세상을 잊고 사자는데

앞에 와 슬피 울어

남의 심사를 산란하게 하느냐아

아이고 대고오 어허어어

성화가아 났네에 흐으으응

 

그날로부터 비오리는 술청에 나앉았다.

사람이 보이니 소문도 조금씩 누구러져 누가 더 이상 비오리한테 무슨 말을

캐묻지는 않았다.

비오리는 손님이 뜸하고 호젓한 날이면 모정에 혼자 나와 앉아 구슬프고 서러

운 목으로 흥타령을 하였다.

적송의 붉은 몸뚱이를 부여 안은 소리는 한 굽이를 휘돌아 감으면서 푸른 머

리 솟구친 공중으로 소리의 머리를 풀며 처창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마을 쪽으로 파고들어갔다.

"우리 동네 황진이 났네 그려."

"황진이는 무신 황진이. 비오리는 기양 풋소리 해 보는 거인디."

", 죽은 황진이 엇다 쓸랑가? 산 비오리가 낫제."

"비오리가 황진이 될라먼 말여, 저 호성암으 중 한 놈 호레야제잉."

"지적선사만헌 중이 있어야 호리제."

"앗다. 구색한 갖추먼 되제. 멀 그리 까락까락 따져, 따지기를."

"긍케, 도 딱는 사람들이 딱으라는 도는 안 딱고 떡만 달어 먹어서 저렇게 젤

이 멩색도 없이 없어졌이까? 시방은 머 페사 다 되다시피 해버리지 않이여."

"거 빈 말은 아니네."

"오직허먼 호성안 중 떡 달디끼 헌다는 말이 다 속댐이 되이까."

"아이고, 그 이 얘기는 언지 들어도 재밌등만, 호성암이 그게 상댕이 큰 절이였

능갑드라고. 중들이 한 삼십 명씩 뫼아서 수도를 허는디, 해마동 오얼 단옷날이

되먼 떡을 맨들어서 잔치를 허는 전통이 있었드리야, 거창허게 떡을 해 갖꼬는

몬첨 불전에다 불공을 올리고는 어뜨케 되겄어? 부처님이 그 떡을 참말로 야몽

야몽 잡숫겄어? 결국은 중들 차지제잉. 근디 이 시님들이 욕심이 많아서 서로

한 볼테기라도 더 먹을라고 쌤이 난단 말이여. 수선시럽고. 그런디다가, 낮에 떡

을 나누먼 불공 디리로 온 신도들한테도 다 나눠 줘얄 거 아니여? 글 안해도 아

까워 죽겄는디. 그래 생각다가, 낮에는 아닌 데끼 점잖허게 그대로 놔 뒀다가,

해가 떨어지고 한밤중이 되먼 신도들이 다 간 뒤에 기양 막 뎀베들어서 서로 먹

을라고 헌단 말이여? 젊은 중들은 더군다나 한 입이라도 더 먹을라고 야단법섹

이여. 그래서 씰 거잉가? 그래 서로, 누구든지 공평허게 떡을 먹을라먼 어치게

헐 거이냐, 존 방안이 없겄능가, 궁리를 했드라네이."

"그래서 저울로 달어 먹기로 했그만."

"그렁게. 저울로 달어서 나누먼 머 털끄터리만치도 틀림이 없잉게. 그러기로

헌 담에는, 오월 단옷날 한밤중에 넘들은 다 자는디, 호성암 중들이 촛불을 써

놓고 두세두세 둘러앉어서 저울로 떡을 달고 있드라네. 도 딱는 시님들이 허는

짓인디 얼매나 우숩겄어? 첨에는 그런 말이 배깥으로 안 나가고 비밀이 지켜진

뫼양이지만,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소문이 한 입 건네 두 입

을 지내갔네. 그리 갖꼬는 왁짜허니 나 버렀지."

"아 긍게, 저 노적봉 밑이 매안서는, 농사철에 비가 안 오먼, 산 밑잉게 물이

귀허잖이여. 서로 논에 물 댈라고 물쌤이 안 나겄능가. 서로 자개 논에 물 댈라

고 넘으 논으로 들으가는 수통을 막고, 밤을 새워 지키고 그런단 말이여. 그러다

가 니 물이니, 내 물이니 쌤이 나. 그럼서니 논에 물이 얼만큼, 내 논에 물이 얼

만큼 있다고 서로 재 보고 비겨보고 양보를 해라 마라, 그렇게 시끄럴 때, 옆으

서 점잖게 한 마디 헌당만, 거 호성암 중 떡 달디끼 허능가?"

"왜 여그서도. 고리배미 나가시 걷을 때나 먼 일이 있어서 추렴헐 때 안 그런

다고? 으레 욕심이 과헌 사람 나오고, 남달리 인색헌 사람도 나오고, 그러먼 한

마디 허제."

"호성암 중들 저울에 떡 달디끼 헐 수는 없느니이."

뒷목을 꾸욱 누르면서 사또 목소리 시늉을 하는 바람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한바탕 웃고 말았다. 어쩌면 은연중, 그 욕심 과한 사람과 인색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둘러앉아 하고, 재미나게 어울리던 시절도 옛

날인 것만 같다.

둥그렇게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고리봉도 고리봉이지만, 이상하게 마을의 지

형도 마치 초승달 두 조각을 동쪽과 서쪽에 맞물려 놓은 것 같은 모양이어서,

어찌 보면 동그란 보름달의 속을 도려낸 것도 같고, 아니면 가락지 같기도 한데,

누구는 그보다는 말발굽 같은 모양이라고 하는 이 고리배미의 각성바지들은,

달픈 생업에 자신의 무겁고 헐벗은 세상을 의탁하며 오늘 하루, 내일 하루를 그

런대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참혹하게 고달픈 것은, 동척

의 농사를 맡아 짓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웬일인지, 자신이 농사를 짓고 있는 농사꾼이라는 생각보다는, 꼭 무슨

하루살이 농사 품팔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참혹한 중에도 불안이 가실 날이 없

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어중"

이라고 인쇄되어 있는 종이에, 지문도 없이 닳아져 버린 엄지손가락을 눌러 인

주 범벅이 되고 만 계약서 한 장.

이것은 참으로 낯선 문서였다.

지금까지 작인들은, 소작을 부치거나 뭇갈림을 할 때, 무슨 문서를 쓰고, 계약

을 하고, 지어 먹는 기간을 정하고 해 본 일이 없었다.

"네가 짓도록 해라."

고 말하면 그것으로 되었고, 한번 부치게 된 땅은, 웬만한 변동이 없는 한 짓던

사람이 그대로 짓는 것이며, 아무리 자주라 하여도 작인의 기득권을 가벼이 하

지 않았다.

그래서, 대를 물려 어느 한 집의 논을 부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동척은 달랐다. , , 일을 정한 기간 동안만

계약을 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그 규정이 까다로운데다가 소작료 또한 엄

청나서 일년 내내 뼈가 빠지게 일을 하고, 가을이면 추수를 다한 다음에도 빈

껍데기만 남게 되고 말았다.

 

소작계약서

귀사 소유의 이면 기재의 토지를 금반 본인이 경작의 목적으로 소작하도

록 승인하여 주심에 대하여 하기 조항을 확약함.

1. 소작계약의 기간은 소화 년 월 일로부터 소화 년 월 일까지로 함.

 

으로 시작되는 이 계약서에 깨알같이 박힌 조항들은 글자를 모르고 고리배미 농

사꾼에게는 당치도 않았다. 그러나 읽을 수 없다고 해서 몰라도 되는 것이 아니

었다.

27. 본 계약에 관한 소송은 귀사 이리 지점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재판소를 관할

재판소로 함.

 

에 살벌하게 적힌 것처럼 아차 잘못하면 재판소로 끌려 갈 판이어서, 동척 농사

맡은 사람들은 늘 전전긍긍, 가슴이나 손바닥에 예리한 칼날을 품고 사는 것같

이 아슬아슬하였다.

거기에는, 본인 스스로 경작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소작지 및 소작지

에 관계되는 경계, 도로, 수로, 휴반(밭도둑), 물꼬 등 경작에 필요한 것은 본인

의 비용으로 관리 수선하겠다는 약조로부터, 귀사의 허가 없이는 소작지의 경계,

지형 또는 토지의 주된 사용 목적이나 성질 등에 따라 전, , 과수원, 임야 등

으로 토지의 종류를 표시한 지목을 임의로 변경하지 않음은 물론, 가옥의 건축

등도 일체 하지 않겠다는 항목, 그리고 귀사가 지정한 보통 작물을 토지의 용법

에 따라 재배하겠다는 것들이 세세 낱낱 적혀 있었다.

그것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소작인은 소작지를 애호하고, 조금이라도 지력 소

모를 가져올 것 같은 것을 경작하지 않음은 물론, 모두 귀사의 지도에 따라 전

심으로 농사 개량에 정려하고 이를 열성, 충실히 실행하겠다고 하는, 말 같잖은

말 같은 것에는 어이가 없다 못해 숨이 다 막혔다.

하늘 아래, 내 땅이야 있건 없건, 농사꾼이 농사를 지으면서 누가 제 자식 같

고 어버이 같은 땅을 아끼지 않겠으며, 또 어느 누가 열심을 다하지 않겠는가.

말하지 않고도 너무나 당연한 것까지 위압적으로 적어 놓은 그런 항목들은,

리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사라는 차꼬를 차고 앉아 오도 가도 못하게

갇혀 버린 징역살이 같은 생각이 들게하여, 소작인의 며가지를 조이는 말이 아

닐 수 없었다. 그리고, 말이 좋아 '지도'지 사실은 '감독', 동척의 유사 행차도

참으로 못 당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또 백 보 양보해서 아무래도 좋았다.

집조지, 그러니까 도조 세 잡을 땅의 소작료는 총 수확의 백분지 오십, 말하자

면 오할로 하되, 그 집조지가 수리조합 구역 내에 있다든가 혹은 개량 공사를

시행할 토지일 경우에는 소작료가 총 수확고의 백분지 오십을 초과하여도 이의

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만은, 그야말로 두 눈깔이 튀어나올 노릇이었다.

"그렁게 순 날강도지, 날강도. 뻬 빠지게 농사 지어 갖꼬 딱 절반을 뺏깅게 두

눈꾸녁 번언히 뜨고 날강도를 당허는 거이여."

"절반? 전부 다제. 그거이 어찌 절반이여? 껍데기만 냉기고 다 갖다바치는디."

그것도, 수리 조합이 있는 구역 내에서는 물세를 포함하여 소작료 육할을 거

두어 갔다. 열 가마 거두면 다섯 가마나 여섯 가마를 소작료로 내야 하니, 동척

의 농사 지도원이

"검견."

하겠다고 구두로 통지를 해 오면, 사람들은 머리 속이 아찔하게 휘돌리며 다리

에 힘이 수르르 빠지는 것이었다.

소작료를 매기려고, 논에 서서 눈을 가무스름하게 뜬 채로 휘이휘이 사방을

둘러보는 유사의 얼굴을 헐끔헐끔 바라보는 작인의 허옇게 메마른 입술은 애가

타다 못해 다닥다닥 딱지가 앉아 있곤 하였다.

이렇게 해서 매겨진 소작료는, 동척이 지정한 기일에 지정한 장소로 가서 바

쳐야 했는데 만일 기한 내에 내지 못하면, 그 미납액에는 월 이푼의 과태료를

물렸다. 그리고 만일 소작료가 체납되어 소작 해제를 당하는 경우에는 해당 토

지의 작물을 모두 무조건 내놓아야만 했다. 혹시 이것에 대하여 보상을 할 경우

에 그 평가액은

"귀사 사정에 따르겠다."

고 계약서에는 박혀 있었다. 그러나, 소작료를 못 내서 빼앗기는 작물에 보상을

해 주는 일은 거의 없어서 다만 허울뿐인 구절이었다.

그 대신

 

15. 소작료는 곡물 검사규칙대로 하여 한 가마니 미만의 우수리일지라도

가마니에 넣어 납입하겠음.

 

이라고 되어 있으니, 다만 몇 되, 몇 홉일지라도 모두 깡그리 훑어 빼앗아 가는

이것이 바로 야차나 두억시니가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그 모습이 흉칙 추악하고 어두운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해친다는, 잔인하

고 혹독한 귀신 염마졸도 이보다는 덜 악착스럽고, 더 인정이 있을 것만 같았다.

 

 

3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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