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5권
지은이:최명희
출판사:한길사
1. 자시의 하늘
자시가 기운다.
바람끝이 삭도같은 섣달의 에이는 어둠이, 잿빛으로 내려앉는 겨울 저녁의
잔광을 베어 내며, 메마른 산과 산 능선 아래 움츠린 골짜기로 후벼둘고
헐벗은 살이 버슬버슬 얼어 터지는 등성이와 소스라쳐 검은 뼈대를 드러낸 바위
벼랑 허리를 예리한 날로 후려쳐 날카롭게 가를 때, 비명도 없이 저무는
노적봉은 먹줄로 금이 간 몸 덩어리를 오직 묵묵히 반공에 내맡기고 있었다,
어둠의 피는 검은가.
휘이잉.
칼날의 서슬이 회색으로 질린 허공에서 바람 소리를 일으키며 노적봉
가슴패기에 거꾸로 꽂히자, 그 칼 꽂힌 자리에서는 먹주머니 터진 듯 시커먼
어둠이 토혈처럼 번져 났다.
바람이 어둠이고, 어둠이 난도였다.
어지러이 칼 맞은 자리마다 언 산의 생살이 무참히 벌어지고, 어둠은 그
틈바구니 속으로 소금같이 저며들었다.
어디에 원정을 하랴.
종횡으로 날리며 온몸에 먹금을 긋는 바람의 칼날 어디에도, 이른 봄 연하게
눈 뜨는 풀잎을 어루어 쓰다듬던 훈기는 묻어 있지 않았고, 산 또한, 하늘로
머리를 솟구쳐 검푸르게 두른 소나무 둥치 아래 자잘히 피었다 지던 풀꽃이나
산나리, 오보록한 송이버섯들을 다 벗어내 버린 맨살로, 속수무책 내리치는
난자의 칼날을 받으며 잠자코 캄캄하게 어두워질 뿐.
한여름 중천에 놋뙤약볕 풀무같이 이글거릴 때, 달구어진 땅 위로 솟아올라
한 모금 서늘한 약수를 마시게 해 주던 호성암의 작은 샘, 헉헉 지열을 토해 내는
더운 숨을 쾌연하게 씻어 내려 흐르던 계곡의 물살이며, 그 물살이 굽이를
틀다가 베폭같이 쏟아지던 폭포도 지금은 얼어붙어, 진군하는 이 어둠을
달래거나 쓸어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제 살속 깊이 동상으로 허옇게 박혀
버리니.
봄날의 새암과 여름날의 물살이 없었더라면 이 한겨울 삼동의 핏줄에 시린
얼음 박히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인가.
내리치는 칼날에 죽지를 맞은 노적봉은 상처로 먹물 드는 어둠을 피하지
못하고 차라리 웅크리어 보듬으면서 멍든 바람 소리로 울었다.
어우우우웅.
날선 어둠은 가차없이 그 울음을 잘라 버리고, 잘린 울음은 먹피로 무릎에
떨어져 흥건하니, 너적봉의 어둠은 그만큼 더 빨리 깊어졌다.
어둠의 서슬은 하늘도 잿빛으로 질리게 하는데, 발도 없는 노적봉 몸뚱이
하나로야 어찌 당해 낼 수 있으리, 그저 다만 더 이상 찌를 곳도, 자를 곳도,
베일 곳도 없을 만큼 온몸이 어듬에 난자되는 수밖에.
드디어 그는 먹장같이 무겁게 어두워졌다.
밤이 깊어진 것이다.
이제 노적봉은 어둠을 피하지도,울지도 않고,오직 묵적으로 캄캄하게 앉아,
밤에 이르러, 아직도 이 산을 겨누던 어둠은, 어느결에 저보다 더 어두워진
노적봉에 부딪쳐 그만 곤두박질의 허리, 밤의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밤 중의 밤, 자시치고, 산은 제품에 넘어진 어둠을 내치지않았다. 오히려
받아 안았다. 그리고 빙렬로 벌어진 칼자국마다 저미어 스며드는 어둠을 보다
더 깊은 몸속으로 빨아들여 그 살의 갈라진 상처를 메인다.
이제 어둠은 칼날이 아니라 검은 아교였다.
온 밤내 어둠에 베인 자리를 더 큰 어둠이 되어 어둠으로 아물리고 있는
노적봉은, 이윽고 어둠의 어미처럼, 저를 치던 어둠을 크게 품어안고 의연히
재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은, 처음에는 검푸르게 번뜩이는 날을 휘둘러 산을
베었지만, 제가 벤 그 자리로 소리 없이 흡입되어 안겨 버렸다. 그래서 어둠이
노적봉을 찌르고 벨수록 노적봉은 그 어둠보다 더 크고 깊어지니, 검은 파도
물마루 같은 이 산 앞에 어둠은 드디어 칼을 놓는다. 귀순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령처럼 허공에 떠돌던 어둠조차 자력에 이끌린 듯 이 산으로 딸려들어
깃을 내린다.
이렇게 차 오르고 쌓인 어둠이 목까지 밀리어, 더는 어찌할 수 없는 허리를
캄캄하게 곧추세우고 있던 노적봉은 그만,
후우.
겨운 한숨에, 섣달 그믐밤의 한천을 낮게 가리운 구름이 옆으로 밀리면서,
어두운 막 뒤에 숨아 있던 별빛 몇 개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어두울 대로 어두워진 어둠이 절정에 이르러 허리가 휘이며 자시가 기울고,
천지는 시간의 자리를 바꾸려 하는 것이다.
"자시란, 날과 날의 경계에 선 어둠의 극이지만, 또 어젯날은 가고 새날은
아직 안 온 교차 영송의 시간이기도 한것이니라. 기운이 바뀌는 것이지. 그것이
어찌 하룻날의 시간에만 있는 일이겠느냐. 한 달에도 있고, 일년에도 있느니.
가령 한 달을 두고 본다면 초하루 그믐이 그 시간이고, 일년을 두고 본다면
동지가 바로 그 시간이다. 왜냐, 그믐밤과 초하루 사이의 자시에는 하늘의 달과
해가 서로 딱 합허게 되니, 합삭아니냐. 해는 위에 떠 있고 달은 밑에 떠, 그
태양 광선에 눌려 태음이 전혀 빛을 못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때다. 하여,
달빛이 없지. 빛을 가두어 버리니까. 그래서 한 달 중에 가장 큰 어둠이 천지를
지배하고 극성한 시간이 이때인 게다. 허나 이 시간을 고비로 정점에 오른
어둠은 기울기 시작하고 달빛은 싸래기만큼씩 길어 나게 된다.
이때로부터 어제의 달은 지나가고 새달이 되는 것이야.
이러한 이치를 일년 가운데 찾아본다면 동지 절서라. 동지라면 너도 아다시피
일년 중에 밤이, 어둠이 제일 긴 날 아니냐. 태양은 땅에서 가장 멀어져
냉천이고, 이 엄동설한 찬 기운에 삼라만상이 꽁꽁 얼어붙어 녹을 줄을
모르는데, 거기다 밤은 질기게 길어, 천지의 기운이 자시.합삭에 이른 것이
동지다. 허나, 이 동지에, 지나간 기운이 다하고 새 기운이 들어오는, 금년과
명년의 교차가 이루어지니, 동짓날을 지나면 새해로 보는 까닭이 여기 있는
게야. 묵은 어둠이 제 양을 다하고 조금씩 스러져 물러가기 시작하는 때인
때문이다. 바로 이 동지를 고비로 묵은 기운, 추운 기운, 어두운 기운이 쇠하기
시작하면서 대신 새 기운, 다순 기운, 밝은 기운이 싹을 틔우거든. 그래서
동짓달 지나 오는 섣달은 자월이라 하는 게다. 자.축.인.묘의 자. 십이지의 첫
글자를 일년의 끝달에 붙여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물론 자시가 지났다고 한순간에 해가 뜨지는 않으며, 그믐이 지났다고
초하루부터 달이 둥글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동지가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오랫동안 밤은 낮보다 길지만, 이미 어둠의 기운은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줄어가고, 새로 태동하는 광명의 기운은 아직 비록 발아에 불과할지라도 점점
자라나는 것이니.
얼마 가지 않아 수가 차면 이윽고 가장 길었던 어둠을 가장 짧게 만드는 날에
이르게 되리다.
그런 날을 보자면, 어둠을 지그시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다가오는 광명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기다릴 줄은 모르면서 오직 참기만 한다면 터지기
쉬운 것이요, 또 참기는 하지만 기다리는 것이 없다면 그 합벽을 하게 암담한
나날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느냐.
우주 천리가 이럴진데, 한 나라의 운명이나 사람의 일생도 이에서 다를 것이
없을게다.
그래서 천자문 뒤풀이에도 자시생천 하늘 천, 축시생지 따 지, 인기인 사람
인, 하지 않으냐. 자시에는 태양이 땅밑에 드니 만물이 어두워 오직 하늘만이
운행하고, 축시에는 동쪽으로 당겨 가니 동방이 벌어져 땅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인시에는 더 밝은 기운이 터올라 날이 새는지라, 날 새면 자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므로, 인시부터는 사람의 시간이라 하는
것이다. 어둠이 물러가고 사람이 세상을 주재하는 그 인시에 이르도록까지는
여전히 어둠의 새상이라.
그러니 사람도 그 동안만은 세상을 어둠한테 내주고 죽은 둣이 자지 않느냐.
그것이 순리니라.
물론 이와는 반대로 하루에 태양이 가장 밝아 온 천지에 어두운 곳이 없이
쨍쨍한 오시가 있고, 한 달에는 보름이 있어 어디 하나 이지러진 데 없이
둥글게 큰 빛을 온전히 발하는 망월이 있고, 한해에는 일년 중에 낮이 제일 긴
하지가 있느니.
허나 이것들이 시간의 자리를 바꾸는 원리는 자시.초하루.동지나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엄연한 질서 속에서, 안 보이는 천지의 내부 기운은 이미 동지에
한온.명암.신구를 서로 교처했지마는, 보이는 현실 생활 습속으로는 섣달
그믐날과 정원 초하루에 금년과 명년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지."
이제 막 자시가 지났으니 젓달 그믐 어제가 아니요 오늘이며, 작년이 아니라
새해, 갑신년 머리에 앉은 이기태는 전에 없이 큰사랑으로 부른 며느리
효원에게 무거운 입을 열어 한 마디씩 말하였다.
"그것이 어찌 천지 운행에만 한하는 말이겠느냐. 한 나라의 흥망과 성쇠도
이와 같고, 한 가문의 흥왕.쇠미도 이와 똑같은 것이며, 한 인간의 일생에도
이런 원리는 적용되는 것이다. 어두운 기운이든 밝은 기운이든 새 기운이
시작되리라, 하는 징조로 봐야 하느니."
만일 아들 강모가 집안에 있었더라면 그를 앉혀 놓고 해야 할 말들이었지만,
이미 그가 가 있는 곳을 알 수 없는 지금, 고적한 슬하에 대를 이을 손자
철재는 아직 무릎 아래 유아인지라, 그는 효원을 마주하고 이처럼 이르는
것이다.
청암부인 생존시에는, 해마다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한 해를 무사히 보내고
온 식구가 모여서 부인에게 '묵은 새배'를 드렸었다.
"다들 무탈하니 다행이라." 하는 말씀으로 일년 지나온 굽이를 싸다듬어 주는
부인 앞에 둘러앉은 식구들은, 때마침 깎아 들여오는 흰 무를 한 입씩 베어
물었다.
와삭.
그 속이 시리게 무를 먹고 난 이기태는 크게 소리했다.
"무사 태펴엉."
그것은 습속이었다.
"옳지. 인제 새해에는 모든 일이 그저 순조롭고 무사 태평할 게다."
청암부인은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다른 식구들도 따라서 속으로 '무사 태평'이라고 빌었다.
사람 사는 쌍의 하루하루는 좋은 일보다 궂은일이 더 많아, 그날위에 날이
쌓인 삼백예순다섯 날은, 켜켜이 근심으로 자욱하고 검댕이져서, 이제 돌아보면
마치 그을음 덩클덩클한 굴뚝 속 같은 한 해. 그러나 그만만 해도 견딜 만한
일이었다. 때로는 여름날에 우박 치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북풍 한설
허허벌판에 꾀벗을 일 생기는가 하면, 느닷없이 천길 낭떠러지에 까마득히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폭우 속에 악산을 헤매어 기어 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오척
단신 인간이 겪는 수모와 오욕과 서러움, 억울함, 원통함, 그리고 가슴에
무겁게 얹힌 눈물과, 어디다 대고 말 한 마디 못한 채 저 혼자 시커멓게 썩은 속.
이 모든 것들이 가는 해와 더불어 무 먹은 뱃속같이 속 시원하게 소화되어
편안하게 내려가 버리라고, 사람들은 섣달 그믐난 저녁이면 둘러앉아 그렇게
무를 베어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릇 모든 실과들이 울긋불긋 요사스럽게 눈을 현혹시키는 색이 있거나, 그
색을 모조리 깎아 낸다 해도 그 안에는 깡치가 뭉쳐 도사리고 있거나, 아니면
깡치보다 더 단단하여 잘못하면 이빨 부러지게 하는 씨가 있기 쉬웠다. 복숭아
씨나 대추 씨를 보라. 또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 무슨 형태로든지 열매
속애 씨는 박혀 있게 마련이어서 그냥 먹으면 목에 걸리고 만다.
그러나 무만은 껍질도 희고 속도 희어 안팎이 모두 티없이 끼끗한데다, 살이
연하고, 먹을 때 걸리거나 뱉어야 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
부디 새해의 나날이 그와 같이 밝고 환하여, 하는 일마다 순탄하게
되어지기를 비는 소박한 마음이 그런 시속으로 전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도, 고슴도치 가시 돋힌 밤송이를 손가락 찔리며 까서, 그 속의 알밤을
꺼내, 질긴 껍질을 칼로 벗겨 내고, 또 그 안에 떫디 떫게 뒤덮인 비늘을 다시
벗겨 내야 하는 밤을 먹으면서 "무사 태평." 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면 망치나 방망이로 그껍질을 두드려 깨야 하는 호두를 까먹으며 그런
기원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그것을 으깨지 않고 제대로 껍질을 까기도 어렵거니와 겨우 그 일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 다음에 드러나는 호두 속은 구절양장, 올록볼록, 오밀조밀,
굽이굽이,복잡하기 이를 대 없는 그 속을 들여다보고는 차마'무사 태평'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 것에 비기면 무는 무미한 듯 늠연한 생김새가 군자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무 한 토막으로 그처럼 궂은 날은 씻어 버리거 밝은 날은 부를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으리.
이기채가 아직 나이 어려 대여섯 살 먹었을 때는, 청암부인 혼자 덩그렇게
앉아 양자 기태의 묵은 세배를 받고, 두 모자 마주앉아 무를 깎아 먹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나 그가 성혼하였을 때는 새각시 율촌댁과 나란해 부인의
무릎 앞에 앉았고, 해가 지나 딸 강련이와 아들 강모가 자라면서부터는 설날이
참으로 꽃봉오리처럼 화사해졌다. 딸은 남의 식구라, 부실한 대로 나이 되어
시집으로 가고, 강모는 대실에 장가들어 효원을 아내로 데리고 왔다.
"내 이제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청암부인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
부인은 느꺼운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소리 없이 낙루하였다.
"온 방안이 가득 다 내 식구로구나."
어디보자.
청암부인은 아들 내외, 손자 내외. 그리고 이제 곧 날이 풀리고 봄이 오면
태어날 어여쁜 증손자를, 마치 감고 싸서 장롱 속에 갚아 간수해둔 보물을
남모르게 꺼내 보듯이 하나하나 눈여기어 이윽히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럴 때 이기채는 사랑으로 나와 뚜껑이 단정하게 덮인 종이 상자 빗접을
꺼냈다. 그것은 활짝 펼치면 거의 장판지 한 장 정도의 넓이가 되지만, 접으면
가로 세로가 한 자씩이나 됨직한 상자 모양이 되는 것이었다.
종이를 여러 겹 덧발라 부해서 누렇게 기름을 먹인 이 빗접은, 중심부에
손가락 한 개를 세운 높이로 네무진 테투리를 두르고, 그 내모를 또 다른
칸으로 나누어, 작은 칸 속에는 각기 빗이며 동곳.살쩍밀이 같은 것을 담아
두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빗을 때는 이 빗접을 넓게 펼치어 쓰고, 다 빗은 다음에는
다시 접어 간편하게 밀어 놓는 것인데, 혹 어디 출행할 일이 있을때는 메고
다닐 수 있도록 다회를 친 매듭끈까지 달린 것이다.
빗접의 뚜껑에는 한복판에 색지를 접어 가위로 오린 녹색 꽃이 탐스럽고
정교하게 피어 있고, 둘레 네 귀퉁이에는 노랑.주황.보라.남색의 매미와
잠자리들이 솜씨 있게 오려 붙여져 있었다.
이기채는 결코 아무 데서나 머리를 빗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집안의 누구보다 맨 먼저 일찍 일어나는
그가 온 집안이 카랑카랑 울리게 기침 소리를 내면, 아직도 머뭇머뭇 검푸름한
빛으로 뒤안이나 헛간 모퉁이에 고여 있던 어둠은 깜짝 놀라 무색해지고, 그
기침 소리를 들은 방방에서는 황급이 인기척이 부시럭부시럭 들렸다.
붙들이가 놋대야를 받쳐들고 큰사랑 마당으로 달음질치면, 이기채는 어느새
토방에 나와 대추 씨 같이 단단해 보이는 체수를 꼿꼿이 새우고 뒷짐을 진 채로
물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낯을 씻고는 방으로 들어와 이 빗접을 펼쳐 놓고 넓은 종이위에
올라앉었다. 그리고는 행여라도 머리카락이 방바닥에 흩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정성껏 머리를 빗었다.
마치 무슨 의례를 행하는 것처럼.
그렇게 상투를 좆아 동곳을 꽂은 다음에는 한 올이라도 떨어진 머리털이
있으면 반드시 주워서, 그것만 모아 싸두는 종이에 담았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하여 비록 저절로 빠진 쓸모없는 터럭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하지 않고, 정월 초하룻날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소중히 모아서
간수하였다가, 비로소 그믐밤에 태우는 것이었다.
이기채가 해마다 그 머리터럭 뭉치를 들고 사랑 마당으로 나가 공손히 태울
때, 그는 생가의 부모보다 청암부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본디 그에게 몸을 주신 이는 낳은 부모이련만, 웬일로 머리터럭 태우는
노린내 자욱한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연기 속에 망연히 서서 그는 길러 주신
어머니, 종부, 청암부인을 더욱 절실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내 어쩌다가, 지차의 자손으로 생긴 사람이 한 가문의 종손으로 되었는가.
이 험난한 시절에. 나라는 망하고, 가문은 창씨를 하여 조상의 성을 무참히
빼앗긴 채 잃어버린 오늘. 나에게 신체발부를 주신 생부.생모가 누구이시든
그것은 한낱 사사로운 인연이요, 다만 마음에 둘 따름이지만, 강보에 싸인 내가
그 슬하를 떠나 이제 백발에 이르러, 나에게 터럭 주신 이가 누구인가
돌이켜보면, 그는 지금의 어머니이시라. 그이는 종가의 아들이 종손으로 이
몸을 키우셨으니, 나는 한부모의 자식이 아니라 매안 이문의 자식인즉.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내 도리와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다만 천행으로,
절손을 면하여 강모를 두었고, 그놈 또한 조상의 음덕으로 철재 하나 두었지만,
그것만 가지고 일을 다 했노라 할 수 있는가. 어쩌든지 그것들을, 이 집안의
종손으로서 가문의 지붕이 되고 중추가 되도록 실하게 길러야 할 터인데.강모란
놈, 저렇게 유약하니....."
뭉글뭉글 밀려오며 페 속으로 자욱이 끼쳐드는, 터럭 타는 누린 연기가
이기채의 가슴을 채우면서 미어지게 하는데, 그 연기 복판에 강모의 얼굴이
무겁게 얹혔다.
그런 강모는 어이없게도 이기채에게는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이 홀연 집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비단 이기채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할머니 청암부인,
어머니 율촌댁, 아내 효원에게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청암부인은 뒤미처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만주. 만주라니.
마적떼 출몰하는 허허벌판에 누구를 보고, 무엇을 하러 갔단 말이가.
이기채는 기색을 하였다.
동경의 음악학교를 가겠다 했던 그가 만주로 갔다는 것이 도무지 엉뚱하고
실감나지 않아, 처음에는 누구 남의 말을 잘못 듣고 전한 것이려니, 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제 사촌형인 강태와 함께 간 것이 분명해진 것은, 기표가 사방에
사람을 놓아 탐지해 온 말을 들은 다음이었다.
"그래도 아주 혼자 간 것보다는 종형제 나란히 갔으니 다행이라."고
문중에서는 더러 위로의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빈 소리였다.
그가 어떤 종손인가. 어떻게 이어진 종손이라고 이렇게 어이없이 무엇을
보자고,조상의 사당을 비우고 되놈의 벌판으로 가 버릴 수 잇을까.
그러다 돌아오겠지.
그렇지 않아도 그믐날 밤에는 장등을 하지만, 꼭 그래서만이 아닌 등불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강모를 기다리듯이, 대문간과 중문간, 사랑 마당, 뒤안이며,
장독대와 행랑채, 외양간이며 헛간, 곳곳에서 붉은 주황으로 꽃불같이
흔들리었지만. 강모의 발소리는 아직도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이맘 때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야광귀 이야기가 음식 장만하는
부엌에서 들린다.
"그렇게 그 귀신은 섣달 그믐날 밤에 낼온다요?"
콩심이가 턱을 추켜들고 불을 때는 안서방네한테 물으면
"하아.이러어케 하늘에서 낼와 갖꼬 살째기 사람 사는 집이로 들으가서,
토방에 널려 있는 이 신 저 신 신어보고, 저한테 맞는 놈을 돌라간다고 안
그리여? 옛날부텀. 너는 그런 이얘기 안 들어 봤냐?"
"근디. 신을 잊어 불면 어쩌간디요?"
"재수가 없지 어째. 일년 내내. 사램이 신을 신어야 어디를 댕기는 거인디.
일을 허든 마실을 가든, 근디 신이 없응게 어디 갈 수가 있겄냐? 꼼짝없이
감옥살이제, 까깝허게, 일년 동안 그로고 오그리고 앉엿으먼 머이 좋겄냐?
재수가."
"그러먼 어쩐대요?"
"그렁게 그날은 토방으다 신 벗어 두먼 안되제이. 딱 들고 들으가서 웃목으다
놓든지 어디 시렁에다 올려 놓든지. 조심해야지이."
"오오."
"콩심아, 너 그 야광귀가 신발 못 돌라가게 허는 꾀가 머인지 알겄냐? 한
가지 신통헌 거이 있기는 있는디."
"머잉가아?"
콩심이는 고개를 옆으로 꼬고 안서방네는 웃기만 한다.
"체를 이 그녁 뚫린 체를 걸어 노먼 되야. 마당 가운데다가 지드란헌 장대를
높으댄허게 세워 놓고이. 그곡대기다가 이 체를 딱 둘러씌워 놓는 거여.
벙거지맹이로. 될 수 있으면 구녁이 아조 촘촘허고 많은 놈으로."
"크면 더 좋것네? 쬐간헌 것보돔."
"하아, 그렇제이."
"근디, 체가 왜 야광귀 막는 비방이다요?"
그런 이야기는, 철재를 무릎에 앉힌 율촌댁한테서도 나왔다.
집안의 주부로서, 바깥에서 주재해야 하는 일은 효원의 몫이었고, 방안에서
이루어지는 마른 일은 율촌댁이 하는 까닭에, 율촌댁은 손자를 데불고
옛날이야기도 하면서 잠시 재롱을 보는 것이다.
"저도 하늘에서부터 내려오자면 먼 길이라 다리가 아프지 않겄냐. 그래서
마당에 내려앉기 전에 어디 앉을 만헌 데가 없는가아 둘러본단다. 쉴라고.
그래서 장대 끝에 앉은 게야. 넓적헌 물건도 하나 뵈니 오직이나 쉬기에 좋아?
헌데 앉고 보니 이게 생전에 본 일이 없는 것이거든. 테는 동그란데
밑을.....구멍이 촘촘 뚫렸으니. 이게 뭔고. 테 눈이지. 그래서 야광귀는 대체
이 체에 눈이 얼마나 되는가 하고 세어 본단다. 하나,둘,서이,너이, 그런데 체란
것이 눈이 좀 많으냐? 고고마한 그 눈을 세 나가던 이놈이 그만, 어디까지
세었더라? 잊어 버리고 말었네. 그래 다시 처음부터 하나.둘.서이.너이.제기
시작했지. 그러다가 또 모르게 되고, 그러면 다시 세다가 또 잊어 먹고, 몇
번이나 새로 해 봐도 잘 안되니 밤새도록 체를 붙들고 끙끙 씨름을 할 밖에.
그러는 동안 닭이 울고 동이 트면, 할 수 없이 야광귀는 그냥 빈 손으로 하늘로
올라간단다."
이제 이 그믐밤만 지나면 설을 쇠고 한 살 더 먹어 세 살이 되는 철재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재미가 나서 눈을 반짝이다가도 이내 졸리운지 작은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자면 안되야. 눈썹 센다."
철모르는 철재는 할머니 말에 초저녁부터 눈을 비비면서도 어찌어찌 가까스로
버티더니, 아까 참에 그만 시르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신원. 혹은 원일이라고도 하는 정월 초하루는 바로 일년이 시작되는 새해의
첫날이니 명절 중의 명절이여, 날 중의 날이라.
정중하고 경건하게 맞이해야 하기에, 며칠전부터 집 안팍을 깨끗하게 치우고,
차례 올릴 준비를 하며, 식구들 설빔도 빠지지 않게 새로 지어야 하니, 이렇게
바쁜 날, 천하 없는 게으름뱅이라도 부지런히 일을 하여 설 준비를 해야 하는
그믐날, 누구라서 잠을 잘 수 있으랴.
그런데도 만약 잠자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눈썹이 하얗게 세어 버린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잠들지 않으려고 선하품을 하다 하다가 끝내 못 이기어
잠들고 나면, 아침에 정말로 눈썹이 희어져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밤새
장난스러운 누군가가 밀가루를 발라 놓은 것이다.
동지가 막 지나면서부터 석달로 내달아, 이미 그때부터는 온 마을의 집집마다
밤이면 다듬이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불 빨래·요 빨래와 묵은 옷 빨래들이
마당에 하얗게 널리어, 엷은 겨울 햇발에 눈이 부시었다.
아무리 살림이 궁하고 옹색한 집안이라 할지라도 어른의 세장은 한 벌 짓기
마련이고, 아이들 때때옷도 어떻게든 준비하는 석달은 눈만 감았다 떠도 하루가
지나갔다.
그런 섣달의 스무나흗날.
이날은,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하늘로 올라가 한해동안 그 집안에서 일어난
좋은 일과 궂은 일,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낱낱이 고하는 날이라 하여, 집집마
다 주부는 어느날보다 일찍 일어나 부엌에 들어가서 깨끗이 청소하고 부뚜막을
닦았다. 그리고 국솥단지 밥솥단지가 나란히 걸린 부뚜막의 뒷벽 한가운데 턱을
자그맣게 만든 조왕단에 정화수를 올렸다.
"부디 잘한 일은 고하시고, 낮은 일은 다무소서."
어느 해였던가. 문중의 동촌댁은 조왕한테 빌면서, 아궁이에 엿을 철썩 붙였
다고도 하였다. 자기가 잘못한 일이나 집안에서 일어난 좋지 못한 일은, 하늘
로 올라간 조왕이 옥황상제한테 고해 바치지 못하게 그런 것이다. 아궁이에 엿
이 붙어 조왕이 아예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거나, 나왔다 하더라도 입이 붙어
버려 무슨 말을 할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낙의 소행이리라.
조왕을 섬기는 일만은 부리는 것들이 할 일이 아니라, 효원은 언제나 이른
새벽 맨 먼저 우물로 나가 아직 아무도 들여다본 일이 없는 새 물을 정하게
길어 흰 사발에 정성껏 붓고, 두 손으로 받들어 단에 올렸다.
이것을 단 하루라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누구를 대신 시키는 일도 없었다.
부엌이 어찌 단순히 밥을 지소, 반찬을 만들며, 먹은 그릇 설거지만 하는
곳인가. 이곳은 성소였다. 한 집안의 생·사·화·복의 근원이 부엌이었다.
인간이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아니면 무엇으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조왕신은 온 가족의 수명을 지켜 주고 다치거나 병들지 않게 살펴
주는 신이며, 불은 곧 재물을 뜻하는 것이라, 조왕님의 조화여하에 따라 집안의
재운이 움직인다고 하였다.
이 부엌의 아궁이에 때마다 끼니마다 붉은 불길 가득하고 솥전에는 더운 김
뿜어나는 것이나, 불 꺼진 재 써늘히 쌓여 빈 솥단지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 다 조왕신의 바른 뜻에 달린 것이었다.
효원은 정화수를 올리고 나서 아궁이 앞에 단정히 앉았다.
이때는 키녜나 돔바리나, 콩심이, 안서방네, 집안에 일하는 다른 사람 누구도
함부로 부엌을 기웃거려 들여다볼 수 없었다.
주변이 정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효원은 강모가 이 집을 떠나 만주로 갔다는 그 말을 들은 날로부터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이 조왕에 정화수를 올린 다음에는, 갓 지어 푼 밥을 강모의
밥그릇에 담아, 조왕단의 정화수 앞에 노았었다.
그 밥이 곧 강모였던 것이다.
먼 곳에 가서도 부디 배 곯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 따뜻한 이 밥을 식기 전에
먹기 바라는, 마음 지극한 정성이 오붓하게 담긴 밥그릇.
그것은 출행한 가장이나 가족을 둔 집안의 아낙이 조왕에 반드시 갖추어
올려야 하는 기도 의례였다.
몸인 밥.
조왕님.
올에는 할머님이 작고허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방이 어둠침침하여 동이 트지 않은 섣달의 스무나흗날 새벽, 효원은
복받치는 설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세상에 세정을 알아 줄 이 아무도 없고, 경망되게 무슨 말을 해서도
안되었지만, 부뚜막의 정화수를 떠놓고 아궁이 앞에 앉아, 한 해동안 살아온
나날을 누구보다 잘 헤어려 줄 것 같은 조왕신에게 저간의 사정을 말하는
효원의 심정은, 하늘에 계시다는 옥황상제 하늘님께 하소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추췌하게 앉아 뜻밖에도 새벽부터 눈물이 뜨겁게 치밀던 그 날이 저물고
참으로 한 해가 다 갔다는 생각이 절실해지면서, 하루가 지날 때마다 그만큼 더
귀는 바깥으로 열리고 날짜는 깊어졌다.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칠흑의 섣달 그믐날 밤이, 압록강 너머 두만강 너머
만주 석방에서 휘몰아 오는 칼바람 속에, 뼛속까지 얼어붙으며,
위이잉
깊어가고 있을 때
동고스름한 초가지붕이 시울을 순하게 내려뜨린 짚시락 아래.
남루하고 따뜻한 불빛들이 낮은 목소리로 젖은 듯이 번지고, 내일이 설날이라
들떠서 잠 못 이루는 아이들이 저희끼리 툭탁거리다가 그 문짝에 그림자로
비치는데, 어디 먼 데서 늦게야 오는 사람이라도 있는 집에서는 사립간에
두세두세 기척이 들리고, 벌컥 방문이 열리면 주황 불빛이 마당으로 쏟아지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어둠 속에 쓸리는 초가ㄹ 지붕들은 옹기종기 그저 정다운
뒷동산이나 어질고 순한 황소의 잔등이를 닮아 부드러운 그 시울을 아래도
숙이고 있다.
그러나 원뜸 이기채의 집 골기와 지붕은 초가와는 반대의 곡성으로 활처럼
벋어, 하늘로 얹혀 있는 것이, 흡사 천공으로 날아오르려는 검은 새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초가지붕은 땅에 순응하고, 기와 지붕은 하늘에 꿈을 두는가.
그러나 그 기와 지붕의 곡선은 '꿈'이라기보다는, 기세를 한없이 뻗치고자
하는 욕망과, 그 욕망을 하늘에까지 알리고자 하는 원망으로 떨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원망이 아직도 하늘에 닿지 않은 암담함으로 처연히 그렇게
고개 들고 있는 것도 같았다.
온 집안의 기둥 있는 곳에는 등불을 걸어 놓고, 밤을 새워 설 준비를 하는
중에, 율촌댁은 자기도 모르게 대문간까지 나가 서 있곤 하였다.
오는가.
대문에 걸림 불빛은 겨우 저만큼까지 희미하게 비출 뿐 더는 가지 못하여,
불빛이 닿지 않은 고샅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게 어두웠다.
저기 어느 중간에 등이라도 하나 더 달아 놓으면 좀 낫겄그마는.
묻어나게 짙은 어둠 속을 망연히 바라보는 율촌댁은, 다 떨어진 아들 강모가
지치고 힘없는 걸음으로 허적허적 걸어올 것만 같아, 그 길목 어두운 것이
마음에 걸리고 무거웠던 것이다.
원뜸은 지대가 높으니, 아랫몰만 들어서도 먼 발치네서, 온 집안에 섣달
그믐날이라고 불 밝혀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와, 어둠 속에 눈물빛 선연하여,
아, 내가 집에 돌아왔구나.
안심이 될 것이언만.
강모는 돌아오지 않았다.
누구에게 말 한 마디 귀뜸도 없이 훌쩍 떠나 버린 뒤.
그가 온 사람이었으면 어젯밤에 왔을 것이다.
할머니 청암부인의 하세한 소식이야 못 들어서 못 왔다 하더라고, 객지를
떠도는 나그네 거렁뱅이일망정 일년에 한 번 섣달 그믐날에는 고향을 찾아가고,
부모를 찾으며, 사람의 모양을 조금이라도 갖추고 사는 위인이라면 참으로 으레
이날만은 기어서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거이 도리일진대.
설령 덕석말이 조리돌림을 당하고 쫓겨났다 해도 이런 맹랑한 처사를 할 수는
없을 것이언만, 하물며, 남의 자식 된 도리로 제 부모를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무엇보다도 종손으로서 사당을 팽개치고 네가 과연 무엇을 찾아, 무슨
일을 하려고, 이런 천하에 다시 없는 패륜을 저지른단 말이냐.
이놈아, 할머님이 돌아가셨다.
이기채는 이윽고 자시가 기울어 새해로 들어선 첫머리에서 억장이 무너져
침음하며 탄식하였다.
누군가는 '설'이란 말이 본디 '시린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하고,
'서럽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했다는데,
"새해 첫날, 몸을 삼가지 않으면 일년 내내 슬픈 일이 생긴다."
는 뜻에서 그런 말이 생겨났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이날은 너나없이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조심하며 궂은
것은 멀리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웃는 얼굴로 덕담만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기채는 새해의 첫들머리에 앉아 깊은 한숨을 토하니.
일룽이는 불빛에 그림자 지는 그의 얼굴은 깊이 패인 근심으로 검누렇게
보였다.
강모의 일이 아니라도, 엄둥에 거친 베옷 굴건 제복을 입고 있는 상주에게
해가 바뀐대서 무슨 희색이 있으리요만,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는 마음이 너무나
사무쳐서 날마다 산소에 오르내리며,
"눈물이 흘러 성묘 길의 풀이 시들어질 지경."
이라고 말한 옛사람의 심정이 결코 과장이 아닌 지원극통의 흉사를 당한 위에,
자식의 일로 인한 분노와 근심이 바위보다 무겁게 내려누르는 이기채의 낯빛이
결코 밝을 수는 없으리라.
그가 모친 청암부인의 복을 입고 여윈 어깨를 구부린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영연에 향을 사를 때, 부인 생전의 살아온 길목 행장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그
갈피마다, 복병처럼 숨었다가 날카롭게 찌르는 것은 아들 강모의 이름이었다.
돌아가신 부모의 영위도 삼 년간은 떠나지 않는 법이며 그 앞에 향화를
그치게 하지 않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이거늘, 눈뜨고 살아 있는 제 부모를
초개같이 버리고 떠나간 놈이, 나 죽었다 한들 죽은 귀신 신주앞에 향불을 피워
줄 것인가.
이기채는 차가운 재 식은 기운만 썰렁한 지신의 영좌를 문득 떠올리며 머리를
깊이 흔든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지붕이신 어머님은 돌아가시고, 나는 이미 쇠삭하였으며, 자식은 간곳을
모른다. 굳이 위로하자면 천행으로 손자 있다 하나 이제 설을 쇠면 세 살.
세월은 수상하고, 하루가 다르게 무엇인지 절박하게 곧 닥쳐오고 있는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예감에 어느 순간에는 심장이 폐색을 할 만큼 조여들어, 그는
한참씩 숨을 멈추곤 하였다. 그리고 다급해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집어 내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풍향.온냉.건습으로 하루 일기를
알아보고, 한 철 절서를 알아내둣, 이기채는 어떤 거대한 기운이 바뀌리라는
것을 역력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체감으로 왔다. 우르르르으.
아득히 먼 하늘의 어느 자락에선가 구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천지가
미세하게 흔들리다가 이윽고 온 세상을 한 번에 빠개 버릴 것 같은 천둥 소리가
정수리를 친다.
그리고는 번개. 쏟아지는 작달비.
지붕이 떠내려 가고, 기둥이 부러지며, 사태로 산비탈이 굉음을 지르며
무너지는 큰 비가 싯뻘건 강믈을 이루어 ㅂ은 땅을 깍고, 논밭의 흙탕으로 쓸어
버리는 홍수고, 처음에는 그저 아주 먼 뇌명 한 가닥으로 오는 것이었다.
이기채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체감의 파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감지해
내려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런 이기채의 심중에 그래도 의지가 되는 것은 며느리 효원뿐이었다. 어느덧
그의 마음은 비어 버린 어머니와 아들의 자리에 조금씩 며느리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가 '그래도'라고 생각하는 저변에는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서
다 지워 버릴 수는 없는 못마땅한 점들이 편편치 않게 남아 있는 탓이었다.
그리고 꼭 그런 것은 아니엇지만, 강모가 이처럼 훌쩍 집을 버리고 나간 데는
그 아내인 효원의 탓도 없다고는 못하리라는 속짐작을 가지고 있는 때문이었다.
맨 처음 이기채가 효원을 본 곳은 강모의 혼행길에 상객으로 따라간 사가
대실의 초례청이었다.
다홍 비단 바탕에 물결이 노닐고 바위가 우뚝하며 그 바위 틈에서 갸웃
고개를 내민 불로초, 그리고 그 위에 어미 봉과 새끼 봉이 어우러져 나는데,
연꽃.모란꽃이 혹은 수줍게 혹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는 신부의 활옷은, 그
소맷부리가 청.홍.황.으로 끝동이 달려 있어서 보는 이를 휘황하게 하였다.
두 팔을 맞잡고 높이 올려 한삼으로 얼굴을 가리운 신부가 다홍치마를
동산처럼 부풀리며 재배를 하고 일어섰을 때, 한삼에 가리워졌던 얼굴이
드러나자, 흰 이마의 한 가운데 곤지의 선명한 붉은 빛이, 매화잠의 푸른 청옥
잠두와 그 빛깔이 부딪히면서 그네의 얼글을 차갑고 단단하게 비쳐 주던
기억이, 이기채에게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고개를 약간 숙인 듯하였으나 사실은 아래 턱만을 목 안쪽으로 당긴 채,
지그시 눈을 내리감은 그네의 모습에서는 열여덟 살 새신부의 수줍음과 다감한
풋내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위엄이 번져나던 것도.
그 휘황하고 찬연햇던 신부 효원을 본디의 골격 탓에 여읜 기색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화색이 가신 지 오래인 얼굴로 초췌하게 앉아, 이기채의 눈감은
낯빛을 살핀다.
"세배 올리겠답니다."
효원이 낮은 음성으로 사뢴다.
자시가 지난 하늘은 좀더 동쪽으로 기울어 어느결에 축시 말에 닿아 있었다.
얼른 보아서는, 암담하게 드리워진 하늘이나 그 아래 캄캄한 노적봉의
산자, 그리고 천지에 들어간 어둠이 아까와 조금도 다른 것 같지 않았지만,
시간은 발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아직 초하루가 밝은 것은 아니었지만 집안에 부리는 호제와 계집종과
노복들은 이때가 되면 벌써 나름대로 세수를 하고 옷깃을 여미며 저희끼리
우줄우줄 모여서 상정에게로 가 한자리에서 세배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상전의 일가들한테도 두루 세배를 다녀왔다.
이따가 날이 밝으면 어느 참에 세배한다고 눈 돌릴 겨를이 없을 만큼 바빠질
터이니 이렇게 미리 꼭두새벽도 채 안된 시간에 그들은 세배를 하는 것이다. 또
그것이 섬기는 도리였다.
시간으로는 비록 새해가 되어 축시라 하지만 다른 때라면 짐승도 잠이 드는
오밤중에, 기둥에 걸린 등롱의 붉은 불빛을 희미하게 받으며 검은 마당에
옹긋중긋 줄줄이 늘어서서, 사랑채 누마루 제 머리 꼭대기 보다 더 높은 곳에
덩실하니 나와 앉은 상전 이기채에게, 일제히 꿇어 엎드리어 절을 하는 종들의
등허리는, 시꺼먼 그림자를 길고 어둡게 드리우고 있었다. 그 등허리로 구름이
좀 벗겨졌는가, 별빛 몇 개가 스러질 듯 비쳤다.
2. 발소리만, 그저 다만 발소리만이라도
무엇 하러 달은 저리 밝을까.
섬뜩하도록 푸른 서슬이 마당 가득 차갑게깔인 달빛을 밟고 선 채로,
아까부터 망연히 천공을 올려다보던 강실이는, 두 손을 모두어 잡으며 한숨을
삼킨다. 함께 삼킨 달빛이 어두운 가슴에 시리게 얹힌다.
싸아 끼치는 한기에 오스스 소름이 돋는 그네의 여읜 목과 손등, 그리고
바람조차 얼어붙어 옷고름 하나 흔들리지 않는 희 저고리와 흰 치마 위에
달빛은 스미듯이 내려앉아 그대로 서걱서걱 성에로 언다. 그 성에의 인이
교교하게 파랗다. 마치 숨도 살도 없는 흰 그림자처럼 서 있는 강실이의
머릿단에 달빛이 검푸르게 미끄러지며, 그네의 등뒤에 차가운 그림자로 눕는다.
달빛이 너무나 투명하고 푸르러, 그림자는 그만큰 짙고 검다. 먹빛이다.
사립문간에 선 살구나무도 제 그림자를 땅에 드리운 채, 구부등한 검은 둥치
검은 가지를 겨울 한공으로 뻗치고 서서, 빙무같은 달빛을 전신에 받고 있었다.
달이야 어느 땐들 유정하지 않을까.
초저녁 동산 위에 가느스름 곱게 뜬 각시 눈썹같이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초승달이나,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그렇게 흰 살이 차 오른
반달, 그리고 참으로 온전하고 둥글어서 오직 우러러 바라보며 한동안을 그대로
서 있게 하는 보름달이며, 그 달이 한쪽부터 서운하게 이지러져 드디어는
하년에 이르다가, 이제는 사윌 대로 사위어 빛을 다 깎여 버린 마지막 푸른
손톱이, 끝내 잠 못 이룬채, 아직도 캄캄한 사경의 새벽 하늘에 비수같이 떠
있는 그믐달.
우주 만물 삼라 만상이 모두 한 빛으로 어둠에 잠기는 밤, 야청의 하늘에
홀로 뜬 달의 그 모양은, 때로 꿈 같고, 때로 넘치도록 충만하고 때로는 또
처연한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여, 누구라도 달이 있는 밤에는 그 달을
올려다보게 하지만.
정작으로 좋은 것은, 달의 모양이 아니라 달빛일 것이다.
이 온 세상을 두루 다 비츨 만한 광명이라면 오직 낮에는 태양인 해가 있고,
밤에는 태음인 달이 있을 뿐이지만, 태양은 그 빛이 너무나 크고 강렬하여
누구라도 똑바로 쳐다볼 수 없고, 감히 어둠 또한 깃들지 못하니, 기어가는
개미나 한 올 티끌까지도 낱낱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면서, 젖은 것을 마르게
하는데, 이 햇빛은 초목이나 짐승이나 사람이나 목숨 가진 모든 것들을
하나같이 일으켜 세우고 움직이게 한다.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달은
다르다.
빛의 덩어리요, 부성의 빛인 태양이 양명한 낮을 관장하다가 자리를 바꾸면,
달은 어둠 속에서 뜬다. 그것은 분명 커다란 광명이언만, 음이라, 그 빛 속에
서늘한 어둠을 머금고 있다. 그래서 달은 아무리 찬연하게 밝아도 고요히
올려다볼 수 있으며, 어둠 또한 무색하게 쫓겨나는 대신 더욱더 어둠답게
머물러 검은 그림자를 짓는다.
어둠을 데불은 달빛은 제 몸의 푸는 인광을 허공에 풀어, 언덕과 골짜기와
지상의 사물들이 옥색으로 물들어 젖게 한다. 사람의 구곡간장까지도 화안히
비추어 빛으로 적시는 달빛.
그러나 달빛이라고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
해동의 밭머리에 자운영 돋으면서, 건득 스치는 바람결에도 부드러운
흙냄새가 석여 있어, 흙이 열리는 향훈을 느낄 수가 있는 밤. 물오른 나무들이
젖은 숨을 뿜어 내어 촉촉한 대기 속 어디선가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연연하게 들릴 것만 같은데.
연분홍 살구꽃 수줍게 만개한 봄밤이나, 진분홍색 도발하는 복사꽃 같은
기운이 구름도 아니면서 둥근 달의 낯을 가리워 감싸고 번지는 조요한 달빛은,
차라리 맑게 드러난 명월보다 묘취가 있다. 안타까운 연두빛을 머금어 포요롬한
그 달빛은 먼 산 봉우리를 아득히 잠기게 하고, 살 속으로 습기같이 스며들어
피를 자욱하게 하니.
꽃이 지는 밤의 기우는 달빛은 또 어떠하리.
먼 곳에 그리운 사람을 둔 정회로 오직 가슴이 미어질 뿐.
그 황사와도 같은 하늘에 은하수 도도히 흐르는 여름이 오면, 달은 마치
강가의 모래밭에 무수히 빛나는 모래알처럼 영롱한 별들의 무리를 들러리
세우고, 성장한 왕후인 양 당당하게 떠오른다.
여름 달은 젊다.
때로는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같이 검푸르고 광활한 하늘에, 밤이어서
더욱 희어 보이는 구름의 대륙이 거대한 해안선을 이루며 가득히 밀물 져
떠내려와, 그 달을 뒤덮어 가리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윽고
바람에 실린 구름은 또 다시 저 너머 어디론가 흘러가고, 숨었던 별들은 꼭
망망창해 밤바다로 내닫는 고깃배들처럼 영롱하게 불 밝힌 채 미끄러져
나가는데, 이제 아무 거칠 것 없는 하늘에 명랑한 파도 같은 지상의 능선과
어둠 속에 엎드린 지붕들, 그리고 잎사귀 무성한 나무와 길가의 돌멩이며
하찮은 풀포기까기도, 흥건히 적시우며 혹윤으로 출렁이게 한다. 기름진
달빛이다.
멍석에 둘러앉아 웃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차 오르는 달빛이 귓전에 부서질 ,
콸콸콸, 촤르르르으, 저 소리는 개울물 소리인가, 달빛 소리인가, 아니면
구슬을 파랗게 쏟는 소리인가.
이 달빛이 형광으로 찍힌 것 같던 박꽃들이 이울어 둥그렇게 달덩이로 떠오를
무렵이면, 밤 사이 뜰에는 찬 이슬이 내리고, 하늘은 물 속으로 가라앉아
가을이 깊어진다.
펄럭. 귓가에 지는 오동잎 소리에 문둑 놀라 일어나 앉으면 솨스르으,
솨스르으, 늦은 가을 바람이 어두운 입사귀를 갈며 밟고 지나는 소리 소슬하게
들리고, 흰 창호지 영창에는 달 그림자 홀로 호젓이 어리어 있는 밤, 시드는
풀밭에서 우는 귀뚜라미 울음은 목을 놓은 달빝의 피리소리라고나 할까. 가슴을
후비어 파고들며 핏줄까지 투명하게 울리는 소리이다.
수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가을은 나그네가 먼저 듣는다 하고, 가을 바람에 마음 놀란 나그네, 아득히
처자를 그려 편지를 쓴다 하는 이런 밤에는, 굳이 나그네가 아니어도 잠들기란
어려울 것이다. 잎 지는 소리가 깨워 놓은 수심을 재우려고, 외로운 베개를
돋우 괴고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버스럭, 버스럭, 마른 낙엽처럼 가슴에
부서질째, 달이나 보자 하고 홀연 영창을 열면, 아아, 언제 저토록 서리가
내렸는가. 순간 놀라게 한다.
마루와 댓돌과 뜰에, 시리도록 싸늘히 깔린 달빛의 희고도 푸는 서슬은
영락없는 서리여서, 몇 번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이다, 밟으면 검은 발자국
묻어날 것 같아 차마 밟지 못하고 멀리 눈을 들면, 기러기 울음 흐르는 하늘에
달 하나, 서리 빗진 상원이 처연히 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달빛이라면,
역시 한겨울 깊은 밤의 달빛이리라.
촉촉하게 피어나는 꽃잎도, 향훈도, 우거진 잎사귀도, 꽃보다 더 곱다는
단풍도 이미 흔적 없이 사라진 대지의 깡마른 한토에, 나무들은 제 몸을 덮고
있던 이파리를 다 떨구어 육탈하고 오로지 형해로만 남는 겨울.
겨울은 사물이 살을 버리고 뼈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그래서 제 형상을 갖지
않는 물마저도, 흐르고 흐르던 그 살을 허옇게 뒤집어 뼈다귀 드러내며
얼어붙는다.
그뿐인가, 바람 또한 경의 뼈를 날카롭게 세워 회초리로 허공을 가르며
후려치니, 날새의 자취도 그치고, 사람도 다니지 않으며, 짐승 또한 굴 속으로
들어가 몸을 사리는 혹독한 추위 속에, 사위를 둘러보아 그 무슨 위안이나 온기
한 점 얻을 길 없는 삼동.
헐벗은 잿빛으로 앙상한 골격을 뻗치고 있는 낙목한천에, 겨울 달은 얼음처럼
떠오른다. 그래서 그 이름을 빙륜이라 하는가.
얼음보다 차고 맑은 둥근 달은, 얼음가루가 안개같이 서린 손으로, 삭막한
세상의 밤을 쓸어 내리며 푸르게 푸르게 옥물 들인다. 물든 밤은 그대로 다시
투명하게 얼어, 대낮같이 환한 달이 뜬 밤이년, 웬일일지 달 없는 밤보다 더
춥게 느껴지곤 한다.
아마 빛으로 속이 꿰뚫리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이 결곡 청절한 달빛은, 그 영기로, 달빛 속에 선 나무과 언덕과 골짜기의
골수를, 찌르듯 미추고, 남모르는 눈물이 차 있는 사람의 응달진 폐장에까지도,
칼날처럼 꽂히어 투명하게 관통하니, 찬 달빛이 찬 속이 그만큼 시린 탓이리라.
때로는 눈이 내려 산야가 오직 흰 빛으로 덮인 밤에 달이 떠 "월백 설백
천지백" 이라고 고적을 오히려 서로 비추어 주는 밤은 그래도 얼마나 화려한
것인가.
그 흰 눈도 없는 극한의 밤에, 들여다보기 무서우리 만큼 깊고 검푸는
거울이, 티 하나 없이 말갛게 씻기워 상공에 걸린 겨울 밤 하늘, 그 가슴
한복판에 얼음으로 깍은 흰 달이 부시도록 시리게 박혀 있는 빙월이야말로,
달의 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강실이는 그 냉염한 달을 오래 오래 우러르며, 버선의 발 등에 묻은 달빛이
속으로 얼어들어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다만 그네는 몇 번인가 고개를 돌려 희부연 댓돌 위에 뎅그마니 놓인 검은
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었다.
그 신은 얼핏 보면 달빛의 얼룩인가 싶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역력하였던고.
강실이는 모두어 잡은 두 손으로, 싸락싸락 살을 베는 것 같은 찬 바람이
끼치는 저고리 앞섶을 누른다, 그러나 앞섶을 눌러도 한기는 덜어지지 않는다.
싸아 하니 한속이 돋은 가슴의 속장을 헤집고, 저미어 파고드는 찬 기운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며 어깨를 오그려 보아도 이미 어쩔 수가 없다.
아아. 언 가슴이 빠개지는 것 같은 통증에 한숨을 토하며, 후두르르 떨리는
다리를 더는 가누지 못하고, 강실이는 무너지듯 서 있던 마당의 살구나무
그림자에 주저 앉는다.
희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빙무를 허옇게 이고 선 아름드리 검은 고목
살구나무는, 구부러진 둥치과 뻗친 가지의 그림자를, 제 몸보다 더 커다랗게
드리우며 귀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싼 채 쪼그리고 앉은 강실이는, 고개를 수그려 무릎에
묻는다. 그네의 여윈 어깨 위로 나뭇가니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흰 달빛을
눈부시게 받는 흰 등허리, 까칠하게 우거진 가지의 그림자가 선연하게 떨어져,
그네의 동그마니 웅크린 등허리는 마치 모질게 후려친 채찍에 멍이 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쩌면 무슨 그물에 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어찌하랴. 강실이는 묻었던 고개를 들고 다시 한 번 댓돌을 바라본다.
달빛 받는 댓돌 위에 무심히 놓인 검은 신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을
찌르는 것은 날카로운 달빛이었다. 그 찔린 자리가 시리게 저리어, 강실이는
담이 결린 것처럼 숨을 들이쉴 수가 없었다. 그러보 보니, 그네의 가슴을
파고들며 에이게 저민 것은, 한기가 아니라 칼끝 같은 달빛이었다.
그 것을 신에 고인 달. 아마, 굳이 불을 밝히지 않아도 방안이 그렇게
우련했던 것은, 장지문에 가득히 밀리어 비치는 바깥의 달빛 때문이었으리라.
무엇 하러 달은 이리 밝을까.
희부윰한 방안의 한쪽 자리에 모로 누운 강실이는, 부시게 흰 장지문을
손으로 쓸어 보며 생각하였다. 창호지 한 장으로 내려와 그네의 손 끝에
만져지는 달빛은 사르락, 바람 스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그뿐,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는 떨어져 뒹굴
잎사귀 하나 남아 있지 않은 혹한의 뜰에, 사람을 문득 놀라게 하던 나뭇잎
소리조차 들릴 리 없는데.
그네는 귀를 거두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발소리만. 그저 다만 발소리만이라도 들었으면. 그냥 지나가 버려도 좋으니,
왔다는 기척만이라도 들렸으면. 마음의 깊은 골짜기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곳에, 그네는 귀 하나를 심어 놓고 날마다 기르면서, 할머니 청암부인의 출상을
앞둔 저녁 어수름 속에서, 또 새해가 다가서는 섣달 그믐날의 오밤중에, 그리고
아까 그렇게 달 뜨는 한밤에, 오직 발소리 몇 점을 기다리면서 전신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네의 온몸을 어느새 귀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바람 소리마저 달빛ㅇ[ 흡입되어 파랗게 얼어 버린 밤, 문풍지도 울지
않는데, 못 듣고 놓쳤을 리 천만 없건만, 그의 발소리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무정한 사람. 강실이는 시름없이 돌아누웠다.
그러다가 그것이 언제쯤이었을까. 순간이었던 것도 같고, 얼만큼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던 것도 같았다. 저벅, 저벅, 저벅. 그네는 꿈 속에선 자갈 많은
고샅을 귀 가까이 밟고 오는 발소리였다. 그것도 매안에서는 쉽게 듣기 어려운
구두 소리가 분명하였다. 저벅, 저벅, 저벅.
그 소리는 막 오류골댁 사립문을 들어서면서 달빛 교교한 마당을 지나,
강실이가 누워 있는 방문앞 댓돌 위로 올라서고 있었다. 퉁. 가슴이 내려앉은
소리가 제 귀에도 커다랗게 울린 강실이는 미처 그만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장지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지문에는 아까보다 더 새하얀 달빛이 드리워져 오히려 귀시의 옷처럼
섬뜩해 보였다. 누구인가, 라고 생각한 겨를도 없이 그네는, 내려앉은 가슴이
저 밑바닥에서 무겁게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눈물로 출렁이는
무거움이었다.
아아, 오라버니, 강실이의 목소리는 그 무거움에 눌리어 눈물 밑으로
잦아들었다. 오셨구나.
더듬더듬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여미며 강실이가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 장지문에 그림자가 먼저 비쳤다. 아직은 댓돌 위에 선채라 윗몸만
보이는 그림자의 윤곽은, 달빛이 희어서 칼로 그린 듯 새까맣게 또렷하였다.
그것을 분명 강모였다. 각진 어깨에 부수수 일어선 그 머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실낱처엄 다비치는 선연한 그림자는, 참으로 강모가 분명하였다.
아니, 그 그림자가 아니어도, 저만큼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그것은
틀림없는 강모가 아니었던가.
강모의 발소리는 늘 왠지 고단하고 고적하게 들렸었다.
무엇인가 머뭇거리는 듯하면서도 떼지 않을 수 없어,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으며, 그 걸음마다 생각을 같이 옮기는 것 같은 그 음향을, 강실이는 알고
있었다. 그 음향은 가슴에 깊이 찍히어 지문을 남겼다.
강모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가슴에서 발소리가 먼저 울리었다. 그 강모가
지금 장지문 밖에 서 있는 것이다. 창호지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강모와 마주선
강실이는, 후우. 짐을 내려놓는 듯한 그의 고단하고 깊은 한숨 소리를 역력히
들었다. 숨소리는 창호지로 스미더니 달빛을 싣고 방으로 밀려들어왔다.
그 한숨을 그대로 강실이의 가슴에 얹혔다. 숨소리가 얹힌 가슴에 습기가
자욱히 어리면서 눈물 같은 물방울로 맺혀 흐르려 할 때, 강모는 마루로
올라서는 대신 다시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의 발소리가 먼저 한 단 아래로
낮아지더니, 그림자 몸이 반으로 내려앉고, 드디어 둥그런 머리 그림자가
사라진다, 그러더니, 휙. 소리가 날 만큼 그의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네의 눈앞에는 옥양목 휘장같이, 쏟아지게 흰 장지문이 맨살로 드러났다.
어디 가시오. 황급히 문고리를 벗긴 강실이가 문짝을 열어젖히자 왈칵 달빛이
밀려들었다. 마치 그네가 밖으로 나서는 것을 온몸으로 막으려는 것처럼.
그네는 달빛에 밀려 더 나가지 못하면서 두 손을 내밀었다.
어디로 가셨소. 금방까지 바로 방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자취도 없이 모습을
감춘 것이 믿어지지 않은 그네는, 기응이 사랑으로 쓰고 있는 건넌방으로
강모가 들어갔는가 하여 황망히 그쪽을 보았으나, 불빛 없는 검은 방이 괴괴할
뿐이었다.
그리고 헛간과 빈 외양간, 뒤안으로 돌아가는 모퉁이. 그 어느 곳에도 사람의
기척은 보이지 않고, 오직. 달빛이 밝아서 더 어두운 어둠만이 구석구석
시커멓게 뭉쳐 있을 뿐이었다.
이럴 수가 있을가.
허망하여 망연히 서 있는 그네의 가슴팍으로, 뭉친 어둠의 덩어리가 무너져
내렸다. 강실이는 무너지는 덩어리를 피하듯 마루로 나섰다.
아무래도 맏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그네는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수그려 마루 아래 강모가 홀연 나타나 그림자로
섰던 토방과 댓돌을 더듬듯이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그 댓돌 위에는 한 켤레 검은 구두가 달빛을 받고 있었다. 조금 전에 비친
것은 결코 헛된 그림자가 아니라는 말을 대신하듯, 아. 안 가셨구나.
그냥 불도 안 켜고 아버지 계신 저쪽 방으로 들어가셨나 보다.
강실이는 그만 마음이 놓이면서 눈물이 목까지 복받쳐, 더는 참지 못하고,
버선발로 토방에 내려가 하염없이 강모의 구두를 들여다보았다.
그의 발을 담았던 구두는 남루하게 낡아서 주름이 깊었지만, 더디 먼곳을
헤매어 돌아다닌 흙먼지가 체온같이 부옇게 묻어 있었다.
춥고 외로운 만주 삭방 낯선 나라의 거리와 골목을 하염없이 걷고 걷다가,
아니면 그네로서는 짐작도 못해볼 그 어떤 세상을 지치도록 곤하게 떠돌아
다니다가, 이제 이렇게 달 밝은 밤. 그네 앞으로 돌아롸 벗어 놓은 구두.
그 구두 속으로 푸는 달빛을 고즈넉이 고여들었다. 그래서, 구두 속에 서리가
소복히 내린 것처럼 보였다.
강실이는 오래 오래 앉아서 그 구두에 고인 달빛을 들여다보았다.
고달픔을 그네 앞에 이렇게 벗어 놓고, 이 집안의 작은방에 소리 없이 들어
그네 가까이 자고 있는 강모의 구두는, 강실이의 한 몸을 다 감싸고도 남을
크고도 눈물겨운 돛단배처럼 느껴졌다. 구두에서 숨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그네는 구두를 서럽고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그런데
손바닥에 묻어나는 것은 얼음 조각의 냉기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차디 차고 써늘하게 식은 그 감촉은 낯설게 부딪쳐 손바닥을 타고 저르르
핏줄로 스며들면서, 소름이 돋게 하였다. 강실이는 후르르 몸을 털었다.
그러면서 깨어났으니, 꿈이었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꿈이라기에는 너무나 그
정경이 선명하여, 아무래도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강실이는
장지문을 열었다. 그리고 홀연 아까처럼 마루로 나와, 댓돌을 내려다보았다.
고곳에는 분명히 달빛 고인 검은 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 이럴수가.
참으로 아상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다시 보니, 그것은 아버지 기응의 검정
고무신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살구나무 그림자에 웅크리고 앉은 강실이는, 구두 속에 고여 있던 그 서리
같은 달빛이, 적막하고 서럽게 그네의 온몸을 채우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달빛은 소리 없이 마당에 고이고, 살구나무 위로 넘치면서, 큰집의 솟을대문과
골기와 지붕을 넘어, 뒷동산 너머, 노적봉 너머, 그보다 더 먼 저 너머 달이 뜬
상공에까지, 시리고 그리운 빛으로 차 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 세상은 얼마나 커다란 구두여서 이 달빛을 이렇게 넘치게 하는가. 그
달빛이 몸 속에서 터지면서 살구나무 검은 그림자에 주저앉은 그네는 드디어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마아우울이야아." "망울이야아아" 먼 논배미에서
아이들이 쥐불을 놓으며 소리 높이 지르는 함성이 달에 울려 긴 여운으로
낭랑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저 아래 어디선가는 꽹매기 소구 치는 소리도
아슴히 들리고, 그에 섞여 간간이 사람ㅁ들이 터뜨리는 웃음 소리도 함께 묻어
왔다. 꽹그랑 꽹 꽹 꽤 꽹 꽹 꽹 두두 이다 두두 이웅
일년 열두 달, 열두 번 뜨는 보름달 중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맑은 겨울 달이,
동지. 섣달, 묵은 달을 다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여 처음으로 둥그렇게 차 오른,
정월 대보름이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새해를 시작하는 정월 초하루, 설날이야 더 말할 것도 없는 명절이지만, 새
달이 신령스럽게 둥두렷이 뜨는 보름달도 그 못지않게 흥겹고 즐거운 날이라,
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징과 꽹과리를 꺼내 놓기도 하고, 북이며 장구, 소구에
앉은 먼지를 털어 내기도 하면서, 한쪽에서는 흰 고깔을 접기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그 고깔에 달 종이꽃을 함박 꽃같이 부얼부얼 노랑.진홍.남색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대보름날 저녁에는 그야말로 한 판 걸게 풍물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동산 기슭에 달집을 만들어 세우려고 대나무밭이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주인한테 때를 얻느라고 바빴다.
"보름날 이렇게 해 놓으면 낙과를 막는다." 며, 찰밥을 한 덩어리 뭉쳐서
뒤안의 감나무 가지에 얹어 놓은 기응이 달마중을 한다고, 해가 지기 전에
일찌거니 저녁을 먹고는 뒷짐을 진채 뒷동산으로 가고 "자네, 다리 밟으러 안
가는가?" 하는 수천댁의 부름에 오류골댁도 따라 나선 집에는, 강실이 혼자
남아 집을 보았던 것이다. "왜, 너는 안 가냐?" 수천댁이 강실이를 돌아보고
물었을 때, 오류골댁은 "집에 그냥 있겄다고 허느만요." 하고, 강실이 대신
대답하였다. "호기사 과년헌 처자가 조심스럽기는 허지. 그래도 뭐 어머니랑
가는데 무슨 별 일이 생기겄냐? 아런 날 달 구경도 허고, 좋은 신랑감 어서
만나게 해 주시라고 달남한테 빌기도 호고, 남들 노는 것 굿도 좀 보고, 그래
나중에 이얘기꺼리도 생기지." 수천댁이 강실이한테 웃으며 말했지만, 질녀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더 권하지는 않았다.
정월 초하룻날은 일년 중에 가장 큰 명절이나,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이라
사당에 참례하고, 어른에세 세배를 올리며, 성묘도 하는 정중 엄숙한 날이어서,
즐거운 가운데 조심해야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여자들은 초사흗날까지는 세배도 다닐 수 없었다. 집안에 찾아오는
세배꾼들 시중 때문에도 그랬지만, 새해 꼭두머리에 여자가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가는 것은 삼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보름날은 다르다.
이날만큼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반.상이 따로 없이. 모두 한 동아리로
즐기는 날이라, 사람들은 설날보다도 보름날을 다 좋아하엿다. 정월 초하루부터
시작된 명절의 흥겨움은, 집집마다 풍믈을 돌며 안택굿.조왕굿을 하는 것으로
이어지다가 보름날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대보름날은 이른 아참 해 뜨기 전부터 부산하다. "꽃니야야, 꽃니야."
봉출이는, 저보다 늦게 일어나 눈을 비비는 동생을 마당에서 불렀다. "응" 아직
잠이 덜 깬 음성으로 대답하는 계집아이한테 그는 재빠르게 "내 더우." 하면서
주먹 쥐었던 손을 활짝 펴 던지는 시늉을 하였다.
그제서야 눈치을 챈 꽃니는 입이 부루퉁하게 튀어 나오고 "아이고, 저런 망헐
놈. 야 이놈아, 니 동생이 더우 먹어서 헐떡거리고 댕기먼 머이 그렇게 좋겄냐?
조선 천지 어디다 더우를 팔 디가 없어서 꼭 거그다 팔어야겄대? 하이고오,참"
꽃니어미 우례는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는 꽃니한테도 일렀다.
"보름날 아칙에는 누가 불러도 대답 않는 거이여. 어쩔래, 인자, 너.
올여름에 더우깨나 먹겄네. 너도 어서 어디 가서 니 더우 팔고 와, 쩌어그
강아지한테라도." 어미의 말에 꽃니는 안채 뒤안 마당에서 요강을 부시고 있는
콩심이한테로 통통거리고 뛰어가 이름을 불렀다.
콩심이는 입을 꼭 오므리고 대답을 하는 대신 새 주둥이처럼 뾰족 내밀어
보였다. 애가 탄 꽃니는 자꾸만 콩심이를 부르고, 콩심이는 그러는 것이
재미있어 웃음 소리도 못 내고 키킥, 웃었다.
사람들은 아직 해가 뜨기 전에 보리. 조.콩에 기장을 섞어 찹쌀로 지은
오곡밥을, 고사리.도라지.호박 오가리 같은 담백한 나물 반찬에 먹고는,
귀밝이술 이명주를 마시는데 "이 술을 한 잔 마시면, 일년 내내 소식을 빨리
듣고, 귀가 환히 밝아져서 남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잘 판단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아침상을 물리고 나면 온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부름 깨물자."
하고는, 콩이나 밤, 호두를 이발로 깍, 소리가 나게 깨물었다.
그리고는 해가 지기 전에 저녁밥을 먹고 나서, 모두 다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달맞이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 동산 기슭에는 하늘을 찌르게 세워 놓은 달집이
있었다. 달집은 푸르렀다.
시퍼렇게 솟구친 대나무를 텅,터엉, 찍어다가 얽어서 꼭대기를 한점에 모은
울타리를 원뿔처럼 만들어 이엉으로 감싸고, 달 뜨는 동쪽은 훤히 터 열어 놓은
달집 속에는, 산에서 쳐 온 생솔가지가 채곡채곡 쟁여져 있었다. 그리고
한가운데 꼭대기에는 새끼줄을 꽁꽁 묶어 달모양을 만들어서 매달아 놓았다.
"아무리 왜놈들이 그악스럽게 공출을 해 가도 대나무 솔가지는 얼매든기
있응게." "아, 농악대 꼬깔에 북 장구는 우리 것이지. 그걸 누가 달라들어서
어뜨케 뺏어가?" "암먼." 이 달집을 공들여서 만들어 놓고 달 뜨기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 서산에 해가 지고 동산에 달이 솟아오를 때, 그 희고 맑은 달이
뜨는 것을 맨 먼저 본 사람이, 불을 당기어 달집을 사르는 것이다.
불이 붙을 달집을 흰 연기를 나우룩이 뿜어 내며 불꽃을 일으키어
푸지직,푸지직, 타기 시작하고 열두 발 상모에, 꽃 같을 고깔을 쓴 농악대는
영기를 앞세워 달집을 돌며 신나게 풍믈을 울렸다.
그 장구 소리, 징소리, 그리고 북소리와 꽹가리 소리들이 얼어붙은 산천의
빙판을 울리고, 하늘로 아득히 달에 사위어 울릴 때, 아낙들은 달을 향해 절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한쪽에서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내아이들은 지난 겨울과
정초에 날렸던 아까운 연들을 모두 불 속에 집어 넣어 태우고, 계집아이들은 제
저고리에 달린 동정을 뜯어 달집에 던져 넣었다.
부잡스러운 아이들은 어느 틈에 그 불에 콩을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나무가 타오르며 터뜨리는 타다닥, 폭죽 소리에 깜짝 놀라
소스라치며, 와아아. 소리를 질렀다. 대나무 튀는 소리가 얼음 같은 하늘에
울려 퍼질 때마다 불꽃은 더욱 세차게 치솟아 타오르고, 온 마을은 그 자욱한
연기의 냇내에 잠겨들었다.
강실이는 아직도 살구나무 그림자 위에 그대로 하얗게 웅크리고 앉아, 만월의
동산 기슭에서 울리는 그 홍소와 여한 없이 어울리며 트이어 흐드러진 함성에
귀를 맡긴 채, 울고 있었다.
그들은, 명절이라 하는 대보름인 것이다.
3 서탑거리
한없이 넓고 푸는 녹색의 지평선, 새로운 대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저는, 아직 불확실한 발길을 한 걸음씩 옮겨
디디었습니다. 기대와 설렘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저 여명의 하는 높이
휘날리어 펄럭이는 일장기와 온 마을에 메아리치는 종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들먹이게 하지요.
우리 개척단 전원이 경건하게 희망에 가득 찬 아침 기도를 올리는 순간에도,
미래를 약속하고 예고하는 심장의 고동은 용솟음치는 맥박으로 뛰고 있습니다.
신천지를 이룩하자는 의기에 불타 우리는, 이 아름다운 낙토 이상 마을에서
단련되고 있습니다. 우리를 격려하는 시찰단과 봉사반의 발걸음도 아주 작고
붐빕니다.
마을 남쪽에는 우리 촌장의 이름을 따서 미나미 기소야마라고 이름 붙인
산봉우리 235고지가 위대한 모습으로 우람하게 서서, 지난날의 괴롭던 투쟁
자욱을 연상시키며, 무언의 힘으로 우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푸를 청공에 뜬 뭉게구름을 두둥실 끝없은 양떼의 무리처럼 피어 오르고,
여름 햇볕은 용서 없이 내리쪼여 살갗이 타는데, 익어가는 작물들은 무럭무럭
풍요롭게 자라고 있습니다.
잡초의 꽃 향기도 온통 들판에 가득하고 그윽하여, 가는 곳마다 꿀의 원천은
무진장이고요.
이곳 만주 사람들이 방목하는 풍경은 한가롭고 안온하여 화창하기
그지없습니다. 달콤한 바람의 선율에 작은 날개를 싣고 나풀나풀 춤추는
나비들의 가냘픈 무용과, 환희에 겨운 대자연의 무르녹은 정경은 눈길이 닿는
곳마다 벅차게 숨쉬고 있습니다.
평화향의 긴 하루에 감사를 싣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석양은 내일을
기약하고, 드디어 이 무풍의 옥야도 밤의 장막에 싸입니다.
밤마다, 개척지에 있는 몸이 기쁘게 느껴지고, 하루의 일과를 다한 희열에
잠겨, 이런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운명에 놓은 분들이, 하루 빨리 도만하시어
함께 일할 날을 어서 맞이하지자고 빌지않고는 도무지 견딜 수 없습니다.
꿈의 마을을 마움에 품고, 저는 야마도 나데시꼬(일본여자를 높여서 일컫는
명사)의 명예에 걸맞도록 강하고 바르게 잘해오고 있답니다.
"좋겠구만." 소화 15년 칠월 십오일자로 되어 있는 일본말 신문 '촌보'를
읽다 말고 철럭 집어던진 강태가 한 마디. 내뱉어 자르듯 말한다. 서창이 붉다.
"뭐라고 했어요?" 위칸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던 강모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바래 낡은 이 신문지 조각은 재작년 여름 것인데, 동문사
인쇄창에서 가져온 책들 사이에 끼여 있었다. 만주에 대해서 우선 알아야
한다고 강태는 책꾸러미를 빌렸던 것이다. "읽어 봐라. 멋지다." "멋지면
좋지." "지아화이따뚜이(거짓말투성이)." "인생이 거짓인데요 뭘. 목숨도
환상이고." "네가 시를 안 쓰는 게 이상해. 잃어버린 바이올린 대신 시를 써
보지 그러냐? 이제부터라도, 형설학회 독서구락부에다 가리방으로 긁어서
등사본을 돌려줄 테니." "거 좋은 생각이구만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잉크병을
두들겨 깰 일은 없겠지요." "꽃 속에 바늘이냐?" "시인이나 깡깽이나, 호박이나
수박이나." 강모의 음성이 비뚤어진다.
그는 봉천으로 오는 기차 속에서부터 오유끼 일로 강태한테 심정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 불편이 목욕으로 느껴지면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긋장을 놓곤
하였다, 거기다가 아는 이 하나 없는 말리 타국의 떠돌이 벌판이라는 것이
강모에게 어느 알 수 없는 굴레를 벗겨 준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예전보다 강태를 대하는 품이 좀더 자유로웠다. "이거나 더 봐라.
읽어 두어야 앞으로 살 준비를 하지." 강태는 강모의 비딱함을 탓하는 대신
신문지 조각을 건네준다. 창문을 때려 치며 뒤집히는 바람 소리는 그 무서운
만주의 겨울을 할퀴는데, 누런 신문지 바람 소리는 그 무서운 만주의 겨울을
할퀴는데, 누런 신문지 속의 계절은 녹색의 무풍 낙원이다.
"대관절 여기엔 또 뭐가 난 겁니까?" "수즈에란 여자가 여기 현지에 무사히
안착했다는 인사 편지를 쓴 것이야. 일본으로." "만주에 왔나?" "무장 개척단의
일원이래. 광장하군. 홀리지 않을 수 없게 썼어." "누구 보라고?"
"내선일첸데 어디 일본 따로 조선 따로겠냐? 하지만 저희들 농촌 빈궁한
농사꾼들을 겨냥한 것 같애. 지금 그쪽 사정도 처참하거든. 노동자 농민이란
언제나 시대와 역사의 맨 밑바닥에 깔린 일차 생산자들 아닌가. 그 등짝을 밟고
전차는 지나가지. 착취와 억압의 전차." "도대체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그
환경을 개선할 수는 없는 겁니까? 짓뭉개 으깨지면서도 깔려서 죽지 도망은 못
가는 거예요? 형님 같은 혁명 열사가 끄집어내 주기 전에는? 오로지 비명을
지르거나, 이런 글에 속아서 개척단 따라 나서는 것밖에 못해요?"
"비웃지 마라, 무지 몽매의 비극이지." "하기는, 속는 것도 운명이에요."
"부녀자까지도 이렇다는데야 장정들은 오죽하겠나? 우선 가슴이
울렁거리겠지. 읽어 보면." "개척단은 조선에서도 오지 안습니까?"
"일본놈들이 교활하고 잔혹하게도 조선 강토를 다 빼앗아 유린하면서,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조선 인민들을 모조리 몰아 삭방의 만주 황무지로
내쫓고는, 그 강토에 저희 내지 국민들을 옮겨 살게 하려는 수작 아닌가. 조선
사람 보고 자꾸만 만주가 낙토라고 부추겨 꼬이는 속이지. 그러면서도 이름은
근사하지. 개척단. 그게 반 강제 아니냐."
강태의 낯빛은 조선에서보다 더 푸르고, 하관도 많이 빠져 날카로운 인상이
깊다.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죽기 마련인 조선 인민, 노동자, 농민들은,
발바닥이 찍어지게 걸어가다 죽더라도 신천지가 있다니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어찌어찌 목숨 붙어 여기까지 왔으면, 본증적으로 손톱 발톱 써래
삼아, 돌 고르고 나무뿌리 캐내면서 개간하기 마련이니, 틀린 말은 아니지.
개척단." "요새 부쩍 더 하는 것 같습디다." "만주 선전?" "예" "정국이
불안해서 그렇겠지. 빛이 부시면 그림자 짙은 법 아니냐. 일본 내부에서라고 왜
소요가 없겠어? 사람 생각은 같은데. 그걸 무마하고 안도감을 주려는 수단
방편으로 이처럼 화려한 소도구, 신도시 봉천.신경을 번쩍번쩍 세우는 거라.
과시도 할 겸. 저희들이 침투 점령한 만주 지역을 군대만으로 다 버틸 수는
없으니까. 이 넓은 땅에 배치할 군인 숫자도 턱없이 모자라지만, 또
전쟁해야지, 인력이 어디 남나, 그러니 농민들을 감언이설로 유치해서, 대신
농사 지어가며 땅을 지키게 하는 셈이지. 다목적으로, 그런데 무어? 평화향의
석양에 무품의 옥야? 망할 놈들." "년이라면서요? 스즈에." 강모가 눙친다.
"너를 내가 오래 참아야겠지?" "이 몸이 얼른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지어 버리는 강태의 얼굴이 어둡다.
"너 변죽이 많이 늘었다." "어차피 역사나 중명할 미친 짓이 겁도 없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난세 아닙니까. 살아 남는 길이란 한 가지뿐이에요."
"무언데?" "마약이거나 농담." "너는 정말 영원한 부르조아야. 쁘띠 도련님."
"한심하시겠지만, 그것이 내 방법입니다." "마약보다 농담을 택해 줘서
고맙다, 힘들거든, 계속 그렇게 까불면서 넘어가거라."
강태는 칼끝 같은 입술을 차갑게 다물고, 강모는 강태가 던져 버린 신문지
조각을 집는다. 마늘 나뭇잎같이 삭은 종이의 촉감.
열렬하고도 환상적인 찬사로 범벅이 된 '다미(일본 백성이 자기들을 스스로
친근하게 지칭하는 말)의 편지 끝에, 그 개척단이 머무는 마을 근교의 소식도
함께 실려 있었다. 이번에는 강모가 강태 들으라고 아예 소리 내어 읽는다.
분촌 마을 안에 '독서신사'가 서게 되었다. 그리고 일망천리 평원에 우뚝
솟은 미나미 기소야마 산 중허리에도 독서신사 분사를 지었다.
다미들은 이 미나미 기소야마에 올라 신사 참배를 마친 후, 무리지어 놀다가
산 중턱에 패인 대포 구멍을 보고, 이전에는 여기가 전쟁터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저 '토룡산 봉기'를 진압한 일본군의 용맹스러운
대포 자욱인 것을 모르고, 다미들은 놀라서 여기 비적이 있었다고들 말했다.
이 구멍을 보고 다미들은 너무나 놀라, 지금껏 마음 놓고 부리던 것과는
달리, 집안일에 '쿠달리(힘든 일울 허눈 중국인)'를 쓸 생각이 없어졌다.
어떤 다미 집에서는 아내도 없는 오십이 세 중국 남자와 그의 딸 그리고 고아
소년, 세 사람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공포증이 일어났다.
모든 중국인들이 비적같이만 여겨져서 마음이 안 놓이는 탓이었다.
그러나 노동력이 없으니까 무섭지만 할 수 없이 쿠달리를 고용하는 것이였는데,
그들이 고된 일을 모두 하므로, 다미들은 일체 아무런 잡역도 하지 않았다. 물
길러 가는 일도 안했다. 그러다가 개척단 생활에 점점 익숙하게 적응하면서,
미나미 기소야마 산 구멍들이 사실은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한 일본 황군의
대포자욱이라는 것을 알고는, 다 같이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
다미들의 가슴에서 한순간에 두려움을 몰아내고, 안심과 감사,그리고 커다란
긍지를 느끼게 해 준 대포 구멍은, 오늘도 여전히 이들을 지키고 있다.
소화16년, 1941년 현재, 만주 개척지 '독서 분촌'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은 이백여 호 팔백 오십여 명에 달한다
"대포 구멍에 안심과 감사, 그리고 긍지라." "기가 막히군."
"지독한 풍자 아닙니까." 강모는 촌보를 휙 집어던진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의 묵은 기록이 오늘도 유효한 신문,
"우리는 그런 곳에 와 있는 것이다." 순간 강모의 가슴패기를 얼음 덩어리로
메다박던 봉천역 바람이 갈기를 일으킨다.
조선에서도 한강 이남 저 아래 남쪽의 매안 둥지 사람이 기습적으로 휘몰아친
강풍에 놀라, 입이 붙어 버린 기억이 살아난 것이다.
"영하 삼십 도, 정말 어마어마했지." 거기다가 그 바람이라니.
말로만 듣던 북국의 도시에 첫발을 내렸을 때, 한겨울 새벽이 트이는 남의
나라 하늘을 무심코 바라보건데, 무거운 회색 덩어리로 왈칵 가슴을 치며
달려든 것은, 구우웅 우와앙.
울부짖는 바람이었다, 바람 소리는 갈기를 날리는 맹수처럼 이빨을 허옇게
드러내고 강모한테로 덤벼들었다. 강모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문득 그 바람
소리가 물어뜯은 가슴팍이 시리게 벌어져,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곤
하였다. 떠나 왔구나. 하는 서러운 실감과 불안, 그리고 결국은 버리지 못한 채
부둥켜 안고온 그림자들이, 그 벌어진 자리의 절벽 한쪽에 웅크린 냉기로 얼어
엉긴 탓이었다.
이렇게 멀리 도망을 와도 그만큼 더 멀리 따라오는 사람. 정녕 내 살아서는
지울 수가 없을 것인가. 삭풍은 좋았다.
대룩의 빙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평원을 후려치며 짐승같이 울어 울어,
울음으로 날선 칼 휘몰아 지평선을 난도질하다가, 사람이고 지붕이고 여지없이
날려 버리는 힘. 울음의 힘. 겨울 내내 봉천의 황막한 하늘에서, 바람은 허공의
례정을 뒤집으며 막힘없이 무너지게 울었다.
그리고 쒜앵, 쌩 냅다 칼질을 하였다. 강풍에 쏠린 지붕들은 바람을 못 이겨
덜컹덜컹 흔들리다가, 통째로 홀랑 벗겨져 공중으로 날아갔다.
드디어 며칠 전 신문에는 "요녕성 개현진의 툰자향 박가촌 촌장집 황소가
바람에 날아갔다." 고 났다. 봉천은 바람막이가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서탑은
조선 사람의 둥지예요."라고, 강모가 거처를 정한 집 주인 김씨는 말했다. 그는
절을 "덜."이라고 발음해서 처음에는 무순 말인가 못 알아들었던, 나이 한
사십된 평안도 사람이다.
그렇지만 서울에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는 그는, 동광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덕분인지, 아니면 팔도에서 온 조선인 말고도 일본인과 중국인, 백계
러시아인들이 섞여 사는 국제 도시의 상인답게 말씨를 다듬어서인지, 평소에는
별로 심한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다만 억양만큼은 평안도식이엇다.
"1910년에 합방이 되고, 1911년 봄, 우리 아버지가 봉턴으로
오셧디요. 그러나까 봉천 근교였는데, 친척 일가분이 먼저 여기로 와서 농토를
많이 일궈 가지고 아버질 부른 거예요. 아버지는 목수였습니다.
그때 땅에 나무 뿌리가 수백 년씩 얼키설키 억세게 뒤엉켜서 보습을 대면,
묵어 자빠졌던 땅이니, 황무지니껜요, 나무 뿌리에 걸려 그만 보습이 뚝뚝
부러져 나갔어요. 참, 대단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들고, 개간을 하면서,
사람이 살아야 할 집을 뚝딱거리고 지어야 하니껜, 목수가 필요했지요."
김씨는 기룸한 얼굴에 키도 훌씬 큰데다 걸음걸이가 단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낯빛에는 엷은 웃음이 배어 있다.
"날 야마또 호떼루에다 세워 와 보세요. 기죽을 일, 책잡힐 일 하는가. 난
누구한테도 얕보이긴 싫어요. 그러자면 내가 앝보일 일을 안해야지. 하는 짓은
망나니면서 존경만 받을려구 그러면 누가. 존경은 뭐 거저 주나? 다 값이 있는
게지." 경우 바른 말투로 카랑카랑 이야기하는 그의 내력 중에 하나.
"맨 처음 우리가 그 시골에 도착했을 때, 아주 우스운 일이 벌어졌어요오.
알어맞춰 보세요.무슨 일인지." 수수께끼를 내는 것처럼,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미소를 깨물며, 그는 강모와 강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모르겠는데요?" 남을 대할 때, 강태는 뜻밖에도 강모보다 붙임성이 있다
할까, 아니면 응대를 해 준다 할까, 대답을 잘하는 편이다. 그 점이 강모는
새롭고 낯설어 기이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새까맣게 배앵 둘러서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죄다 쏟아져 나와 우리를 에워싸고, 신기하다는 듯이 뜯어보는
거였어요. 조선 사람 구경을 하는 거예요오. 생전 처음 조선 사람을 보는
거니까, 꺼울리렌(고려인)이 왔다고, 신기한 인종이 왔다고 막 야단이 났어요.
위에 보고, 아래 보고, 아래 위 훑어보고. 와글와글와글 떠들어 대면서." "그때
몇 살이셨습니까?" "저요? 다섯 살이었죠. 참 쬐꼬맸습니다. 첨에는
멈칫멈칫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내 머리를 만져 보고, 뺨도 찔러 보고, 얼러도
보고, 킥킥거리고,굉장했어요. 그럴 만도 할 것이, 어머니는 등에다 포대기
둘러 아이 업고, 올망절망 보따리는 이고 지고, 아버지는 상투 틀고 아들은
머리 땋고, 우선 복색이 자기네들하고는 판이하게 다른데다 말은 한마디도
못했으니껜. 거기다가 오죽이나 꾀죄죄했을 겁니까? 우리 몰골이. 머, 거기
사는 중국인들이 우리보다 더 나을 것도 없었지만." "일가 친척이 먼저 와
자리를 잡았다면서요? 그 양반은 어디 계셨길래? 서로 연락이 안 됐던가."
"그건 오가황이었구." "오가황이요?" "봉천에서 조선 사람 둥지는 서탑이라면,
남만주 농촌에 조선 사람 둥지는 대흥향의 오가황이에요." 김씨 말에 얼른 지레
짐작은 안 갔지만, 그들이 표랑민으로 처음 도착했을 때 어떤 정황이었는지는
알 것 같아 강태는 고개를 끄억였다. "그게 벌써 삼십 년 전 일이 됐어요오."
"성공하셨습니까?" "조선에서 죽지 못해 그대로 사는 것보담이야 좀 낫겠지.
이까짓 게 무슨 성공입니까? 밀가루 국수집 한 칸 가지구 있는 걸."
"그럼 어느만이나 해야 성공인데?" "아 우리 서탑으 조선 사람 중에도 김창호
같은 이는 아주 큰부자지요. 만삐, 만주 비행기 회사 주주 아닙니까? 아마 몇
십 뿌로는 가지고 있을 걸요? 대주주지요. 그 사람 집이 저 남만주
의과대학에서 멀지 않습니다. 이 요녕성 전체에서 제일 좋은 집이에요, 그게."
엄지손가락을 바짝 곧추세워 치켜 올린 김씨는 어깨까지 으쓱 들어 보였다.
그 말에 강모는 힐끗 강태의 표정을 살ㅍ다. 그러나 강태는 별 내색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뭘 해서 그렇게 부가가 됐답니까?" "땅이
마않아요오." "어떻게 조선 사람이? 남의 나라에 와서. 물려받는 것도
아닐텐데요." "그러기에 하늘이 낸 부자라는 것 아닙니까? 요기 요 애들 먹는
사탕알 두 개에 일 전인데, 김창호는 일 전 이 전에 땅을 눅거리로 엄청나게
사서 되팔고 불리고 한 거죠오. 동북에서는 아마 그렇게 크고 좇은 집 없을
겁니다. 중국 부자들도 장작림 빼고는 그런 집 못 가져요." "들어가 보셨어요?"
"우리야 뭐 겉에서만 봤지, 무슨 수로? 우리 아들놈이 서탑소학교 다닐 적ㅇ[,
그 집에 소제해 주러 가면 사탕도 주고 그러더래요." "아니, 개인 집 소제를
학료 아동들이 가서 해 줍니까?" 이번에는 강모도 의아해서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문요오. 그집이 얼마나 크기에요? 땅끄가 몇대 씩 들어앉아두 꿈쩍 안하게
넓고 튼튼한 지하실에다, 대리석 삼층 집에, 난간두 외국제 대리석이구. 건평만
천삼백팔십이 평방메다, 열한 칸 집인데, 그레 어지간한 관공서 건물만
하지요오." "열한 칸이라니? 방이 열한 갭니까?" "아이구, 참 열한 개가
뭡니까? 백 개는 다 못돼도 한 몇 십 개는 족히 되고도 남을 겁니다아. 그 열한
칸이라는 건, 초가 삼 칸 집을 지어, 노래할 때 그 한 칸 두 칸을 말하는
거에요. 으리으리하지요." 아무런 지식없이 소개장 하나 들고 이제 막 봉천에
도착한 지 며칠 안되었던 강태와 강모는, 집주인 김씨의 이야기를 아주 주의
깊고 흥미있게 들었다. 중요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서탑소학교
아이들이 당번을 정해 가지고 순번으로 가서 청소를 할 만도 하지요."
"부러우십니까?" 강태가 찌르듯 물었다. "부럽지 않구요,그럼?" 그날 밤에
강태는 강모에게 말했다. "보아라, 저 무지 몽매의 비극을, 저만치나 깨이고
처신할 줄 안다는 자가, 어는 참혹한 처지의 농민한테서 부당하게도 사탕 두 개
값으로 마구 사들인 땅을, 굴리고 불려 소위 부자가 된 착취자의 집구석에
대리석 계단을 닦으라고 제 아들을 보내면서도, 굴욕감 대신에 긍지를 느끼며
선망하다니." 그의 음성이 어금니 사이에서 파랗게 갈렸다. 바깥에서는 바람에
기왓장 뒤집어지는 소리가 떨그덕 따그락 들리도니, 짜그르륵, 어는 벽
귀퉁이에 가 부딪쳐 깨지는지 요란스러운 파열음이 났다.
"형님이 어찌 그렇게 잘 아십니까? 아직 그 김창호란 이를 만나 보지도
않았고, 구체적인 사실을 조사한 바도 없는데 무조건 착취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좀 성급하지 않습니까?" "전에도 내가 말한 일이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정당한 거래라면, 어느 한쪽이 그처럼 폭리를 얻을 수는 없는
법이야. 반드시 공정치 못한 이윤의 편중이 있기에 거래를 통해서 이익을 보는
쪽이 생기는 것이다. 그 이익의 폭이 크면 클수록 손해를 보는 쪽의 폭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고, '손해' 정도를 넘어서면 '착취'을 당한 것이
분명해지지." "땅을 판 사람으로서는 그 가격이 정당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어떤 사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그렇게 팔아야만 할." "그게 바로 가진
자의 논리라는 것이다." 이 말에 강모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강태가 강모에게서 가장 못 견디는 부분이 바로 이 '가진 자의 논리'라는
것이고, 강모 또한 강태에게서 가장 큰 장벽을 느끼는 것이 이 말이었으니,
말이 여기에 이르면 두 사람 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침묵으로 떨어져 버리고
하였다.
"중국 사람 땅인데 뭐 어때. 조선 사람이 샀으니 좋은 일이지." 강모가
어색해진 틈바구니에 말을 밀어 넣는다. "국적을 떠나서,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모순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태가 강모를 일별하고 시선을
빗긴다. "자, 이제 나는 오늘까지만 여기서 자고, 날이 밝으면 저기 시칸방
근처로 가서 방을 얻어 볼 테니 그리 알어라." 강태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
깊을 숨을 무겁게 삼켰다. 그 다음 말이 쉽지 않다는 표시다. 창문도 검은
빛이다. "기왕에 집도 한 칸 얻었는데, 멀쩡한 집을 두고 남남처럼 어디로
가겠다는 말입니까? 쓸데없이 비용도 이중으로 나가고." 봉천에 도착한 이래 그
동안 몇 번씩 되풀이된 말인지라, 강모가 답답하다는 시늉으로 마간을
찌푸렸다. "저 여자는 어떻게 할 작정이냐?" 강모의 말이 당치않은 까닭이
강태는 그렇게 밝혔다. 그것은 강태가 아까부터 참고 있던 말이기도 하였다.
아니, 아까부터가 아니라, 기차가 전주역을 출발하고 나서 얼마 안된, 삼례를
지날 때부터 내내 분노와 더불어 폭발하려는 증오를 그는 겨우 참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릅니다." 강모는 수모를 당한 무안함에 툭, 말을 던졌다.
"내내 데불고 다닐 것이야?" "모른다지 않습니까?" 오유끼는 아직까지도 강태의
얼굴을 차마 마주보지 못하고 뒷걸움을 치며, 우선 집주인의 아낙에게로 몸을
숨기듯이 가 있었다.
"그렇다면 내 일에도 모를체해라." 그리고는 며칠 후, 정말 강태는
시칸방에 거처를 정하고 말았다. "시칸방 어디로 가셨답니까아?" 강태가 떠나
버리자 김씨는 말벗이 사라져 섭섭한 얼굴로 물었다.
"북시장 근처랍니다." "가 봤소?" "아니요." 위치를 말로만 들었다고, 이제
곧 가 볼 참이라고 하자 김씨는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갸우똥하였다.
"거기는 좀 험한 곳인데에." "험하다니요?" 마적이 나옵니까? 강모는
하마터면 그렇게 물을 뻔하였다.
"빈궁하다는 거지요." "아니, 거기도 서탑 동네 아닌가요?" "조선 사람이
살기야 많이 살지요만 여기보담은 좀 낮고, 북시장 근처에는 중국인 전용
유곽이 있어서.....거 아주 지저분하고 복잡해요." "중국인 전용 유곽이라니?
유곽에도 무슨 전용이 있습니까?" "있고말고요. 거기는 중국인들만 갑니다.
조선 사람이나 일본 사람은 절대 안 가요." 이상하다." 아니 그럼, 조선 사람
일본 사람 가는 유곽은 따로 있단 말이에요?" 흥미가 있어서라기보다, 조선
것에 대한 파악으로 엉겁결에 물은 것이었지만, 강모는 뒷목이 붉어졌다.
김씨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진지하게 설명한다.
"시칸방 북시장에서부터 저쪽 서탑 보셨지요? 그 서탑 아래 신시장까지 주욱
일자로 넓다랗게 뻗은 시부대로 훤칠한 길 좌우 일대가 조선 사람만 사는 지역
서탑거리안데, 사람들은 그냥 이 거리를 간단히 서탑 그래요. 저기 서 있는 저
탑이 서탑이죠오. 그런데 이 서탑거리의 동쪽 끝은 시칸방이고 서쪽 끝은
신시장이라. 신시장에는 가보셨어요?" "아니요" "그걸 새로 지었습니다. 원래
구시장이 서탑 왼쪽에 있었는데 헐었거든요. 그러니까 서탑에서 치자면
남쪽이죠. 그게 원래 오래된 시장이었어요. 없는 것도 없구요. 그런데 이제
시부대로 오른쪽으로 자릴 옮겼어요. 시장을." 바로 이 신시장 옆구리를 끼고
배암처럼 기다할게 고불고불 굽이치는 골목이 '버들거리', 야나게마찌,
유정이라 하였다.
"거기 가면은요, 버들처럼 흐느적 흐느저억 늘어져 감기면서 걷는 사람들이
마않지요." 버들거리. 어여쁜 이름이 아닐가.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에. 너는 누구의 버들인가, 라는.
그러니까 버들이 애인이죠, 여인이에요,"
기모노 입은 버들여인들이 살고 있는 골목은 우묵하고 좁고 깊었다. "조선
사람들은 여기러 다닙니다." "일본인 전용이라면서요?"
"그래도 조선 사람은 갈 수 있어요. 이등 국민이라고 해서 중국인보다는
대접이 좀 나으니까. 하지만 중국인들은 발도 못 들여놔요. "일등 국민은 일본
사람입니까?" "중국인들조차도 자기네는 삼등 국민이라고 자칭하지 않습니까?
너희 조선 사람이 우리보다 낫다는 게지요." 다른 데는 몰라도 봉천에서만큼은
그 등급이 분명하여, 신분증처럼 찍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통장 색깔조차 세
민족은 서로 달랐다. "지금 서울 인구 칠십만인데 봉천 인구는 백오십만입니다.
이중에 서탑 시칸방 조선 사람이 몇 만 명은 될 거예요. 만주 벌판 다
돌아다녀야 이렇게 조선 사람 모여서 사는 곳은 없지요. 이 봉천 지대에
인구비례가 만족이 삼분지 일. 여진족이 또 삼분지 일, 그리고 고려인이 삼분지
일이라고 했답니다. 그만큼 봉천은 우리 조선하고 연이 깊은 곳이지요. 한
사오백 년 전에는 이 대 일 비율로 고려인 촌 사람이 살았다는 거에요오.
그러니껜 조선 건립 초기 이야기지요." 봉천은 큰 곳입니다. 우선 누구라도
봉천역에 내리면 지하도를 거쳐서 지상으로 올라오지 않습니까? 그게 서울에도
없는 시설이라. 서탑에 와서 우리 동포들끼리 이야기할 때 "야아, 봉천은
뻐근해. 지하철도가 다 있어." 첫 마디가 그겁니다. 그게 철도는 아니고 그냥
지하도인데 하도 규모가 웅장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게지요. 여관만 해도 벌써
몇 갭니까? 이 오 리 남짓밖에 안되는 거리에. 조선 여관이 여섯 갭니다.
평양여관,조선여관,서울여관....협화여관. 그만큼 왕래하는 사람이 많다는
애기지요. 그 여관들이 항상 손님으로 버글버글합니다. 주로 조선
사람들이에요. 내가 잘 알지요. 삼십 년을 이 서탑에서만 살았는데 모르는 게
있겠습니까? 바로 요 서탑교회 건너편에 새끼골목, 조선상점 뒤쪽으로 난 그
골목 말이에요. 그걸 새끼골목이라 하는데, 왜 그러느냐, 하도 가난해서 할 게
없으니까 새끼 꼬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게 불러요, 새끼 꼬아서
니야까에다 둥치둥치 서려 가지군 팔러 다니지요. 그 새끼골목 사는 사람들부텀
바로 그 옆에 화목정에 집 주인 일본 사람까지 다 알아요.
"조선인 거리에 일본 사람도 삽니까?" "그게 아니구요. 거 화목정 집들이 다
좋잖아요? 그건 일본 사람들이 집을 크게 지어 가지고 세를 놓아 먹고 사는
겁니다."
여기는 국제적인 도시니까 변화하죠. 강업 경기가 좋습니다. 정미소도 많고,
상점도 많고, 은행도 많고, 각국 나라 사람들 인종도 많고, 중국의 동북 각처를
다닐래면 전부 봉천을 경과해야 하니까. 지형으로 보면 사람의 목과 같은
곳이죠. 봉천이. "그렇군요." 봉천은 혼하강 강줄기를 따라 세워졌으므로,
동서가 갈고 남북을 짧았다. 그 중에 일직선 한 토막인 서탑거리의 동쪽 끝
북시장 곁에는 강태가 살고, 서쪽 끝 신시장 옆 서탑 아래 서향으로 창이 난
작은 집에는 강모가 살게 되었으니, 걸어서는 한 삼사십분 되는 거리였다.
"어차피 고향을 떠나 왔고, 나도 이제는 일개 무산자에 불과한데, 형님이
굳이 시탄방으로 갈 것이면 나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니면 형님도 이 집에 함께
살든지." 강모가 그렇게 말했을 때, 강태는 미소를 띄웠다.
"시끄럽다. 말장난, 네가 어떻게 거기 가 살어? 하루도 못 견딜걸? 다 견디어
본 자만이 견딜 수 있는 거야." "못 견딜 건 또 무어요?" "너, 생각나? 맨 처음
네가 전주로 유학하게 을 때. 할머니께서 몸소 오시어, 나랑 같이 있던 너를
청수정으로 옮겨서, 따로 하숙하게 하셨던 것." "아, 그때, 그 일?"
강모는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강태를 흘깃 바라보았다. "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참 충격받았었지. 우리는 할아버지가 같은
사촌간이지만, 너는 나와 다르다는 것, 그리고 할머니는 네가 나와 한집에 사는
것을, 즉 가까이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 간단히
말해서 할머니는 너와 나를 떼어 놓으려 하셨다. 내가 사는 동네가 마땅치
않아서라기보다, 바로 내가 마음에 안 드셨던 거다. 위험....하게 여기신 거야.
그래서 나도 의도적으로 너를 멀리했고, 그 동안." "아니,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말 의외라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강모에게 강태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네가 미안할 것을 없어. 하지만 그때는, 쓸쓸했었다." 강모는 눈을
떨구었다. "내가 그때 깨달은 것은, 한 가지, 나는 아버지의 자식이고, 너는
할머니의 손자라는 것이었어.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가진 것이 없었고, 너의
할머니는 가진 것이 많았다." 그 최초의 격리는 강태에게 흉터를 남겼다고
했다.
"격리....흉터....같은 말은 너무 심해." 가까스로 강모는 반박하며 " 이렇게
내 스스로 형님을 따라 왔는데요, 뭘, 지금은." 하고도, 입을 다물엇다.
"그런데, 역시 할머니가 잘 보셨던 거야. 어른이라 예감이 있으셨던게지.
결국 이렇게 나는 너를 도망시켰으니. 참, 할 말 없게 되었다. 이런 날이 있을
줄 알고, 할머니는 우리를 갈라 놓으려 하셨던 것 아니겠냐." "왜 자꾸 자책을
해요? 나보고 반성하라는 역설입니까?" "네가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다."
"무엇이?" "오늘의 모습이." "흉보시는 겁니까?" "도대체 네가,
무산자,무산자..하는데, 정말 웃통 벗고 길거리에 앉아서 점심 한 끼를 아무
반찬도 없는 맨빵 한 개 뜯어먹으며, 살았다,라고 할 수 있어? 이걸 먹었으니
다음 끼니까지는 살겠구나, 하는 그 서러운 안도감 말이야, 그걸 느낄 수
있겠냐? 안되는 널 나무라지는 않는다. 네가 겪어 본 일이 없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너는 겪을 생각도 없잖으냐, 그런 상황이 부닥쳐 온다면, 너는, 곧장
어떻게 할까? 바로 이 서탑거리 여관이나 집집마다 가가호호 뒤져서 남원
사람을 찾겠지? 그리고 빚을 낼 거다. 아마 남원 사람이라면 아무도 묻지 않고
두말 없이 너한테 돈을 줄 것이고, 남원 사람과 청암부인댁 손자 이강모는
남원을 떠나, 조선을 떠나, 만주벌판 봉천에까지 와서도 핏줄같이 질긴 끈을
주렁주렁 잇고 살아갈 테니까, 그건 서로의 필요와 잇속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너든 돈이 필요하고, 그 사람들은 남원으로 돌아가 이자를 받을 수 있을
터이니."
하지만 그런 짓을 제가 아직은 못하는 이유가 있지. 우선은 숨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마치 그런 날이 곧 오리라는 예언같이 들리는구만요." 강모가 언짢은
투로 말끝을 묶었다. "경계해라. 그 말이다."강모보다 강태는 더 언짢은
모양이었다.
"궁도령이 고초가 많아서 보기 딱하고,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하는
일마다 걱정이야. 게다가....."
도대체 조선에서 여기가 어디라고,어떻게 떠나 온 길이라고, 저 따위
계집이나 끌고 다니면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해 보겠다는 것이야? 하는 심정과,
어쩔 수 없이 이것들을 내가 메고 다녀야 하리라는 예감이 그를 짓누르늘 것
같았다.
해가 지는 겨울의 서탑은 아름다웠다. 일찍이 청 태종 황태극이 숭덕으로부터
순치 원년 사이에, 황실의 무궁한 안녕과 태평천하를 빌기 위하여 봉천 고성의
동.서.남.북에 똑같은 모양으로 세운 네 탑 중에 하나인 이 서탑은,
'팅와ㅈ'이라는 벽돌 청와전을 구워서 만든 것이었다.
청외전은 멀리서 보면 검은색이 나고 가까이서 보면 흰 듯한 청회색이
돌았다.
서탑의 높이는 구십 척, 웅대하고 화려하게 하늘을 찌르고, 둘레는 칠십 척,
부둥켜 안고 울려 해도 너무 넓었다.
조선에서는 본 적이 없는 형태의 풍요로운 관능이 차 오른 둥그런 몸통, 그
한가운데 타원형의 녹청색 조각 장식이 된 문이, 주금장식 된데다 ㅈ은 자주
속문에 겹치어 요염히 드러나고, 그것을 받친 석단의 네 모서리에 갈기 날리며
눈 부릅뜬 거대한 해태, 둥글둥글 한 켜씩 좁히며 쌓아올려 비애롭도록
장엄하게 뾰족이 솟구친 꼭대기의 정교 화려한 첨탑들은 라마교 양식이라는데,
하늘을 두른 탑의 어깨에는 풀이 나 있었다.
강모는 해가 질 때면 이 탑이 보이는 서창 앞에 내내 머물러 광대무변의 도시
너머 평원으로 지는 해와, 그 붉은 해를 등진 채 가슴으로 어듬을
받아들이며 한없이 큰 고적과 슬픔의 아름다움에 물드는 서탑을 홀린 듯이
바라보곤 하였다.
그럴 때면 이 석탑을 지키는 절, 서탑 호국 법륜사의 저녁예불 종소리가
길고도 서글프게, 황혼을 섞어 이국의 대지로 내려앉았다. 황혼을 밟고 강태가
들어선다. "어디 갔냐?" 방안을 휘이 둘러보며 강태는 거두절미
묻는다."모르겠어요. 대동양행이나 아세아양행에 갔겠지 뭐." 강태와 함께
동문사 인쇄창에서 모이는 독서구락부 형설학회에 가려고, 윗도리를 챙겨
입으며 단추를 채우는 강모를 향하여 강태는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눈썹을 찡기며 혀를 찬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대관절 그 사람을 무슨 돈이 있어서 픽하면
대동양행이고, 픽 하면 아세아양행이냐? 그러다가 아주 만모백화점이나
기꾸야로 진추라는 거 아니냐?"
강모는 아무 대꾸도 하니 않는다. 그러나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늪속으로 잠긴다.
계신가요?접니다아."
마침, 고구마를 구웠다고. 김씨가 쟁반을 받쳐들고 건너 왔다. "사실은 내가 무어 하나
김히 의논할 게 있어서요."
주인집 김씨는 화덕에서 막 꺼내 뜨거운 군고구마 껍질을 벗기며 기룸한 얼굴을 들어
진진한 낯빛으로 강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바쁘다는 신호로
일부로 팔목시계를 표나게 들여다볼까 어쩔까 하던 강태가 "저한테요?" 의아하다는
낯빛으로 붇는다. '할 말'이 아니라'의논'이라니? 나이도 많지 않은 청년이 고국 산천을
떠나, 타국땅 만리 객창에 빈 주먹으로 깃들어서, 비록 전문대학 과정이라 할 법률학관에
다니고는 있다고 하지만, 책상 놓을 방 한 칸 올바르게 차지하지 못하고, 서탑거리에서
밀려나 저만큼 우정국 너머 시칸방의 후미진 구석지 한 점을 겨우 얻어 살고 있는
강태에게, 나이 훨씬 연장인 토박이 김씨가 과연 의논할 일이란 무엇일까 싶었던 것이다.
단에는 봉천이고 서탑이고 아닉 낯설어서 파악조차도 다 되지 않은 처지라 더욱
그러했다. "두 분이서 다 같이 들어 보시요오. 어디 이게 쓸 만한 일인가 어떤가 궁리를
좀 해 주십사는 게지요."
김씨는 함께 앉은 강모를 향해서도 꼬리를 빼며 말했다. 아마 정작 김씨가 마음에 둔
사람은 강태였을 테지만, 자기한테는 인사로 저렇세 두루뭉수리 싸잡아 운을 떼는
것이려니, 짐작을 하면서도 강모는 김씨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말을 할 때면 거의 살랑거리는 느낌을 줄 만큼 상냥하고 가볍게 말꼬리를 쳐올리며 끌어
빼는 것이 김씨의 특징이었는데, 그것이 웬일인지 경박하게 들리자 않고 오히려 자기 말을
상대방한테 꼭 눌러서 박아 넣는 곡진함까지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였다.
만일에 그가 여자였다면 애교도 있었음직한 사람이랄까.
눈머리가 콧날 쪽으로 오목하게 파였으나 그 꼬리는 찢기워 위로 치켜진 김씨의 두
눈이 광채를 머금는다.
"단도직입으루요, 내가 이번에 이 제일면점을 늘려 가지구 잡화상점을 하나 채려 볼까아
합니다." "그 점방 자리에다가요?"
국수를 뽑아서 막대기에 빨래같이 널어 말리기에도 비좁을 가게 안을 얼른 떠올리며
강태가 물었다.
면점의 한쪽에서는 손길만 스쳐도 툭툭 부러지게 마른 국수를 짤막짤막 잘라서 한 묶음씩
다발로 만든 것을 좁은 진열대 위에 올려 놓아 팔고, 그 나머지 공간은 거의 대부분 면발
늘어진 가닥이 빼곡 들어차 처지하고 있는 형편인데, 잡화상점을 하겠다면 어디다, 어떻게,
또 무엇을. "옆집에서 점방을 내왔지 뭡니까" "남선상회요?" "예에에"
김씨의 대답 소리가 물결을 친다. 그것을 뻐기는 것도 같고, 흥겨운 것도 같고, 당연한
일을 당한 것도 같고, 신통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것도 같으면서, 아직은 탐색의 기색을
거두지 않은 의심스러움을 깔고 있는 예에에 였다.
"그 집이 면적은 우리 면점보담도 더 크지요오? 그러니껜 그걸 벽을 터 가지고 두 자리를
하나루 맨들라치면 그것두 작진 않을 거구, 또 지금마냥 면점을 면점대로 두구선 그 옆에
자리에다가는 내가 계획해서 해 보려는 걸 해두 좋겠구요."
"그런데 왜. 그 남선상회는 잘 안됐던가요?"
가제고 집터고 흉해 나가는 집에 들어야 좋다는 말을 들은 것이 얼핏 생각나서, 강태가
무심코 묻는다.
"뭐 그저 그랬지요, 겨우 밥술이나 얻어먹었달까, 하긴, 아주 잘 됐다면야 기왕에 자리
잡은 데서 눌러앉지 무엇 하러 신경까지 가겠어요오? 그 사람들은 신경으루 떠난다던데.
신경이 여기서 어디라고. 거긴 여기보단 훨씬 더 위쪽이구 춥죠오."
"일본이 아주 마음먹고 도로도 반듯반듯 시원하게 뚫고 건물 번쩍번쩍 깨끗하게 지어서,
과시용 국제 도시를 계호기적으로 만든 곳이라. 장사하기는 좋겠지요."
"거기다가 숫제 만주국 황궁까지 가짜로 지어서 위만의 수도로 삼았으니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입니까아. 정말, 이름까지 새서울이다아 하구선 떠억 신경, 그래 왔으니,
서울은 무슨, 명색도 없는 부의를 꼬여서 꼭두각시 황제로 앉혀 놓고."
다혈질인데다 단호한 바도 있어 보이는 김씨는 매사에 참견할 일 또한 많았다. 그는 그런
일을 두고, 말로라도 꼭 한소리를 짚곤 하였다.
"그렇지만 장사가 아주 안되지도 않았지요. 얼. 목이 괜찮거든요. 장사란 게 목이 반절은
먹고 들어가잖습니까."
바느질할 때는 한 올을 다툰다 하지만, 그것을 장사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길목에 나란히
열린 가게라도 그 처마가 조금 앞으로 뻗쳐 나오느냐 들어가느냐, 혹은 진열대가 한 뼘
길목으로 나앉느냐 들어가 앉느냐, 또 사람들 왕래가 잦은 쪽에서 한 걸음 더 가는 곳이냐
덜 가는 곳이냐 하는, 별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것들에 뜻밖의 복병은 숨어 있다.
물룬 그것이 다는 아니지만. 물건의 품질이나 종류.종업원의 친절도 모두 중요한
항목이겠으나 우선 먼저 장소를 잘 잡아야만 이문이 확실하다고 김씨는 역설하였다.
강모가 오유끼와 함께 세를 들어 살고 있는 김씨의 집 점방 '제일면점'은 목이 좋았다.
봉천역을 등지고 서서 바라보면,막힘없이 대로로 뚫린 길이 다섯 갈래이다. 그 길 모양을
공중에서 내려다본다면 커다란 'ㅈ'자로 보일 것이다. 아니다. 그 한글 자음으로는 네 갈래
길박에 그릴 수가 없다. 그러니 우선 아니 '불'자로 비유해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이
'불'자의 꼭대기에 점을 하나 찍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봉천역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글자를 모로 눕히어 ' ' 로 만들어 놓는다.
가닥이 모여 있는 중심점에서 아래로 법은 오른손 편으로 가면 모래산과 혼하가 있는
남쪽이요. 위로 뻗은 외손 편으로 가면 북쪽, 서탑이 있는 서탑거리가 나왔다. 그리고
가슴팍 복판을 지르며 직선으로 뻗쳐 나가는 갈과, 그 길의 왼쪽 빗금으로 백계 로서아
거리. 오른쪽 빗금으로 평안좌 일본인 거리가 훤칠하게 열려 있었다.
봉천역에서 보아 크게 다섯 갈래 길이지 그대로 더 달려 나가면 백계로서아 거리도,
남북으로 꿰뚫린 계획 도로의 교차로를 여러 번 만났다. 그 교차로마다 광장이 둥그렇게
꽃판같이 벌어져 꿀벌처럼 사람들을 모아 들이며 흥성스럽게 번창하엿으니.
백계 로서아 거리가 첫 번째로 만나는 교차로는, 일본인들이 향수를 달래고 긍지를
느끼도록 일본의 오사까 거리를 그대로 본떠다가 축소하여 길목이며 상점의 건물 모양,
그리고 파는 물건, 입구와 가로수 종류 배치까지도 영락없이 판박이로 만들었다는, 일본인
상점 거리'춘일정'의 화려한 소를 흐으러지게 이루면서, 동북간방으로 장쾌하게 흘러, 두
번째 교차로 광장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틀었다. 이 광장은 드넓었다.
한가운데 왕릉 같은 잔디 동산을 새파랗게 인공으로 만들어 놓고, 가장자리에는 철따라
형형색색 온갖 꽃들을 심을 광장은 늘 뒤설레었다. 광장이 바라다 보이는 각 귀퉁이마다 선
것을 특별한 건물이었다. 맹수의 발톱같이 매섭고 다부지게 지은 삼릉상사는 네거리의 서쪽
모서리에 서 있었고, 청동빛 녹의 서슬이 시퍼렇게 돋은 지붕 꼬대기 봉천 경찰서는 북쪽
모서리에, 그리고 "일본에서 황태자가 만주로 시찰을 오면, 다른 데서는 절대로 안 묵고
반드시 여기사만 묵는다." 는, 그 유명한 '햐마또 호떼루'는 남쩍 모서리에 대리석 궁전을
방불케하는 위용과 호화조움을 삼엄하리 만큼 뽐내며 서 있었다.
이 대화호텔이 있는 쪽으로 난 길은 그대로 더가면, 흐르던 혼하의 한 자락이 막히어
호수가 된 남호, 혹은 장호라고도 불리는 '나가누마'호수에 이른다.
평안좌 거리가 동남간방 빗금으로 흐르다가, 광장에서 나가누마를 향하여 거침없이
똑바로 흘러내려오던 도로를 받아 교차로로 한 바퀴 빙그르르 맴을 도는 곳에, 작은 광장이
또 하나 생겨났다. 이곳은 기념관 광장이다. 일본이 각처에서 승전을 할 깨마다 그
용맹스러은 황군의 전투 모습을 감격적으로 찍은 사진이나 아니면 전리품, 혹은 설명문
같을 것을 전시하고 교육하는 전쟁기념관이 바로 이 광장 로터리에 서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를 '기념관 광장'이라고 불렀다.
야마또 호텔이 있는 것이라 해서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대화혼을 상징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북쪽의 큰 광장은 '야마또 광장'이라고 하였다.
야마또 광장에서 기념관 광장까지 내려오는 신작로 양쪽에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은 거의
모두 일본인의 관공서나 학교, 공공건물들이었다. 그래서 혹 일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조선 사람이나 중국 사람들은 그 근처에 가기도 전부터 미리 오금이 붙어 앉은뱅이 걸음을
하였는데, 야마또 광장 로터리의 동쪽 갈래 골목만한 길 안쪽에 호젓하게 들어앉은 것은
낭속여중이었으며, 큰 길가, 야마또 호텔이 대각선으로 마주보이는 곳에 자리잡을 것은
남만주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었다. 그리고 그 병원 바로 옆에는 소방대가 불자동차를
새빨간 탱크처럼 주야로 즐비하게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까 봉천역
가슴팍에서 직선으로 받은 가운뎃길이, 창대마냥 위쪽에서 뻗쳐 오는 교차로를 맞받아 훌쩍
건너면 충령탑이 우뚝 세워져 있다.
대일본 제국을 위하여 내 이 한 목숨 사꾸라 꽃잎처럼 흩어져서 조극의 심장으로 떨어진
충혼들을 위로하고 기리는 탑이, 어찌 경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몇걸음 떨어져 이만큼에, 살아서 오늘을 누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들을 위하여,
얼마든지 즐길 수 있도록 수만 평에 이르는 위락의 공간 턴세대공원을 베풀어 넣었으니,
여기도 조국인가, 굳이 일본 내지에서만 살려 할 것 조금도 없는 마음이 들도록, 만주
낙토 건설에 몸 바치고 심신이 쇠삭해질까 배려하여 공원 아래, 기념관 광장 바짝 위쪽에다
신식 수영장을 새로 지었을 뿐 아니라, 그 옆에다가는 축구, 배구, 농구를 비롯하여 달
리기, 체조 등의 각종 운동을 양껏 할 수 있는 국제운동장도 만들었다.
그러나 야구장은 따로 있었다. 이 아마또 광장과 기념관 광장을 관통하는 큰 길말고,
아까 저쪽 춘일정과 평안좌를 뚫어 내리는 길의 초입, 구시장 입구에 국제운동장만한
넓이로 야구장이 생기던 날, 온 봉천의 일본 사람들을 어깨를 부둥켜 안고 어린아이들처럼
팔짝팔짝 뛰었다고 했다.
야구장은 전쟁을 순간 순간 잊게 해주었다. 야구장 옆에는 소나무 수풀 우거진 가운데
봉천신사가 눅눅한 향불 연기를 에우며 서 있었다.
그리고 야구장 길 건너편에 남만주 철도총국 건물이 학교 건물에 버금가지 않을 만큼
견고한 위세를 떨치며 딱 자리 잡았다
철도총국에서 춘일정 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오자면 전신회사가 하나있고, 백계 로서아
거리와 춘일정이 만나 교차로가 되는 이 모퉁이에 우정국이 있었다. 우정국은 여기말고도
서탑거리 동쪽 끝 북시장 어귀에 또 하나 더 있었으나, 그 북시장 우정국에서는 중국 국제
우편물만 취급하였다.
전보,편지,소포,송금 따위를 가랄 것 없이 조선이고 일본이고 로서아고 간에 일단 중국
내 주소가 아닌 곳으로 보내려 할 때는 무조건 봉천 중앙우정국, 즉 춘일정 네거리
우정국으로 가지고 와야 했다.
봉천 중앙우정국 규모는 어마어마하였다. 사실은 그래서 조선 사람들은 우편 용무가
있어도 냉큼 그 안에 들어서지를 못하고 쭈밋쭈밋 바깥에서 머뭇거리기 일쑤였다. 물론
중국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게 봉천이, 구시가지말구요.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 서탑거리와 일본인 거리라는 게.
계획 도로라서 아주 간단하지요. 이걸 좀 보세요오. 아.야.어.여에 유짜,유짜에서 똥그래밀
떼어 낸 모양 말이야요."하더니 김씨는 빈 종이에 커다랗게 'ㅠ'글자를 쓰고나서"이
위에다가 아니 불짜를 옆으로 눕혀 가지구 겹쳐 놔 보세요오." 하고는 자신이 그렇게
약도를 그려서 만들어 보여 주었다. "ㅠ의 가로획 부분이 서탑거리랍니다." 그리고
눕히어진 아니 불자의 가로획인 한 일자의 붓 뗀 자리 끝부분은.'ㅠ'의 가로획 첫 붓대는
자리와 맞붙으면서'ㄱ'자 뒤집은' '모양이 되는데, 바로 이 자리, 봉천역에서 왼손 편 쪽인
북쪽으로 기찻길과 나란히 벋어 나가다가 오른쪽으로 휘어 벋은 모퉁이 공중에
'하늘다리'가 걸려 있었다. 이것을 봉천역에서 사방으로 나가는 수십갈래 복납하게 뒤얽힌
철로들이 아직 그 똬리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뭉쳐 있는 듯한, 철로의 여울 소용돌이 위에
둥실 떠서 걸린 천교, 텐쳐 철교였다.
이 하늘다리 바로 옆, 휘익 오른쪽 시부대로 서탑거리로 구부러지려는 입구에 오경의
노도구 파출소가 목을 조여 누르듯이 버티고 있는데, 바로 또 그 옆, 버들거리 유곽 골목
첫들머리에는 일본 경비대가 이빨을 박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서탑이 서 있다.
하늘다리 노도구 파출소, 그리고 경비대만 아니라면 버들거리에서부터는 북시장까지
일직선으로 온통 조선인들의 터전이었다.
김씨의 면점을 버들거리와 서탑을 끼고 새로 난 신시장의 어귀에 작지만 네모 반듯한
터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제 남선상회 자리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일면점은 조선인 거리에 있었으나, 이 면점 맞바라기로 뚫린 일본인 거리가 바로
남만주 철도총국과 야구장을 끼고 흐르는, 번화가 춘일정 가는 길이었다. 면점 점방에
앉아서 보면'금성비루'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잡화점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얼
하려 하시는데요?" 강태는 차분히 묻는다. 김씨 얼굴에 순간 붉은 빛이 번진다. 상기가
되는 탓이리라. 강모는 강태한테 번번이 놀란다.
함께 뒹굴어 크면서 흙장난하던 사촌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모르는 것이 많다 싶어질
만큼, 강테한테는 뜻밖의 면모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ㄷ다.
어려서는, 강모가 강실이의 살구나무 밑에서 흩날리는 살구꽃잎 곱게 모아 사금파리
밥그릇에 꽃밥을 담고 놀 때, 강태는 뒤안의 대나무밭 시퍼렇게 속구친 아랫동을 쳐서,
창을 깍고 칼을 깎아 우우 아이들을 몰며 고샅에서 함성을 질렀다.
자라서는 강모가 문중의 종손으로 핏줄을 이어받듯 토지도 당연히 물려받아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강태는 청암부인을 맹렬하게 공격하며 가차없이 비판하였다.
강태의 언사에는 조롱과 증오가 비늘같이 번뜩이었다. 그러나 강모는 강태를 따라
나섰다. 그만큼 종형 강태한테서는 누가 쉽게 따지고 들 수 없는 삼엄한 힘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 골수를 찌르는 준절함이 너무나 차가워서 자칫 그가 강모를 냉소하는 것처럼
여겨졌으나, 강모는 만주땅에 당도하여 전에 못 보던 강태를 발견하고 다시금 놀랐던
것이다. 뜻밖에도 강태는 자상하였다. 얼핏 보아서야 강모가 훨씬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
모색이었으나, 그는 자기한테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란 터럭만큼도 듣고 싶지 않은 속성질이
있었고, 강태는 낟선 데 와서 보니, 처음 만난 사람이나 험상궂은 막벌이꾼과도 곧잘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면모가 있었다.
사람들도, 인상대로라면 강모한테 말붙이기가 더 쉬울 것 같은데 오히려 날카롭게 보이는
강태 쪽으로 먼저 말을 건내기 예사였다.
"너무나 곱게 그려 놓은 귀공자 같으셔러."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기운이 깊이
배어 있는지라, 강모는 막사는 사람들한테는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주인 김씨의
언담이었다. 기질은 다르지만 그 성깔이나 용모가 강태라고 결코 강모만 못하지 않을
터인데, 지금 김씨를 대하고 있는 저러한 태도가 바로 "나는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라고, 눈 내리던 날 전주 고사정의 망월, 모찌즈끼에서 정종 잔을 앞에 놓고
단호하게 잘라 하던 말을 증명해 보이는 모습이겠지. 싶어 강모는 새삼스러은 눈으로
강태를 본다.
"품목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냥 막연히 잡화라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바로 그걸
의논하겠다는 것인데요오. 이렇게 한번 해 볼려구요, 여긴 조선 사람 둥지잖습니까?
남만주에서는, 그런데 그게 말이 둥지지. 둥지를 틀자면 일이 많지 않겠어요? 목수가 대패
들고 서 있대서 집이 바로 지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조선에서 여기 봉천 서탑거리루 왔대서
곧 보금자릴 얻는 것은 아니거든요오?" "그래서요?" "그냥 간단히 말해서 난 보금자리
둥지의 둥지 노릇을 해 보겠다아, 그거지요." "둥지의 둥지요?" "그러니까 우선 국수말고도
김치나 떡에서부터 온갖 짠지 반찬을 만들어 팔구요. 고국에서 먹던 맛 그대로요. 우리
조선옷 바지 저고리에 차미 저고리. 버선 같은 것. 댕기, 비녀를 판단 말입니다. 얼레빗
참빗 같은 것도."
"그건 좋은 생각이시구만요. 우선 재료가 제대로 없어서 채 마련 못한 의.식을 여기 와서
구입할 수 있다면, 비록 자기 돈 내고 사는 것이지만 편리하고 고맙게 생각할 걸요?"
선선히 김씨 생각에 동조를 하고 나서는 강태와는 달리 강모는, 도대체, 국수는 그렇다
치고 김치나 떡을 만들어서 '팔고'또'사 먹는'행위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아 어이가 없었다.
더욱이나 짠지라니, 도대체 어느 인간이 위안의 장꽝마다 놓인 독아지 속의 고추장과
된장에 박은 짠지를 다 파고 산단 말인가. 하. 강모는 도무지 상상이 안되었다.]
거기다가,무어 버선? "그것뿐만 아니라 내가 꼭 해보고 싶은 거는요오.고국에서 오는
편지를 사람들한테 전해 주고, 여기서 쓴 편지를 고국에다 보내 주는 일, 소포 보따리를
전달해 주는 일입니다." "아니, 그 업무는 우정국에서 취급하지 않습니까?" 강태가 고개를
갸웃하고 묻자, 김씨는 얼른 두 속은 들어 말 막는 시늉을 하였다.
"그거야 글씨도 알구 주소두 아는 사람 얘기죠오. 아 어디 어디 산밑에 버드나무골,
그렇게 밖엔 저 살던 델 말 못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또 고향에서도 봉천 서탑 산다더라,
까지밖엔 모르는 수도 많고, 나야 이 거리에서만 삼십 년 이상 살았으니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누가 어느 날 조선으루 가는지, 누가 누구랑 로씨야로 가는지 훠언하니껜요.
그 인편을 이용하자는 겝니다. 조선 사람은 일본놈 우정국보담 동포 인편이 더
미덥거든요." "그러니까 사설 우정국 노릇을 하겠다는 셈이로군요." "그건 좀 거창하지만."
"해 볼 만은 하겠습니다." "그러자면 자연히 글 쓸 줄 모르는 사람 편지 대필도 해 줘야
하구요. 또 고국에서 온 편지를 대신 읽어도 줘야겠지요오." "돈도 상관하실 겁니까?"
"여기와서 뼈빠지게 번 돈을 고국으로 보내고, 또 거기서 이쪽으로 보내온 돈을 환전도 해
주면 서로 좋지요." "구문을 좀 남기고?" "아무래도 사람이 그 일에 붙어서 품을 들이게
되니껜요." "혼자서 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아이고오, 어림도 없지요오." "그럼 장차 일꾼을 많이 써야겠구만요?" 그러니까 김씨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잡동사니 알상용품 물건을 모아 놓고 파는 잡화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일 좀 같이 도와 줍시사구요." 어느새 고구마 쟁반을 밀어내
버린 김씨가 강태 앞으로 한 무릎 다가 앉았다. "어떻게요?"
강태는 이미 자기한테 부탁할 일이 무엇일 것인지를 짚어 아는 표정으로, 짐짓 모르는
척하며 대꾸한다. "공부하는 분이라 주경야독 여념이 없는 줄을 알지만요,야독하시구요,
주경으로다가 편지 대필, 대독, 소포 꾸레미에 주고 써 주는 일 같을 것을 좀."
좌우간 글씨에 관계되는 쪽 일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시간 파는 값일랑은 서운찮게 쳐 드릴 테니껜요." "내 시간이 얼마나 비싼 줄을
모르시는구만요." "모르면 배워야지요. 모르는 것은 세 살 먹은 어린애한테도 배우랬는데,
하물며 이렇게."
글씨 좋고 문장 좋고, 식견도 있고, 부청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으며, 지금 다시 뜻을
세워 학문을 닦고 있으니, 이런 분이 우리 제일면점 잡화상의 업무를 도와 주신다면, 나는
동업자 얻은 것이나 진배없다. 하였다.
"우리가 아무리 쪽박 하나 차고 왔다지만 그래도 조선 사람인데, 신언서판이야 알지요.
우리 점방이 대팔 업무를 할작시면 글씨가 얼굴이구 문장이 대들본데, 그게 번듯해야 점방
면이 딱 서지요. 믿음성이 있어 보이구요. 글씨가 신통찮으면 사람까지도 그닥 시원치 않어
보이잖습니까?" "아니, 장사하실 분이 글씨 애호론자로 먼저 나서시려고요?"
"머, 김창호 같은 요녕성 제일 부자도 사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요. 글이 글씨
아닙니까아." "그럼 그 값이 얼만지 어디 두고 봅시다." 반승낙이 섞인 대답을 떨어뜨린
강태가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문다. "나두 정말 안해 본 일이 없었어요오. 지금에야 점방을
늘리네 마네 꿈 같은 이야기 하지만." 한시름이 놓인 듯 김씨는 탄식처럼 말했다.
"아 일본놈들 벽돌 굽는 데 가서 온몸이 벌겋게 익어 제 살이 곧 벽돌이 되오록 일을
했었잖아요? 그게 얼만 줄 아세요오? 일천 장에 겨우 일 원이에요. 일 원. 내가 동생을
데리구 함꼐 했는데, 하루 종일 꼽사가 되게 해두 둘이서 천 장을 해내기 바빴습니다.원."
그보다 더한 일도 했었다. "등짝이 벌어지게 거기서 한 일년 일하다가 돈두 적구 견디기도
어려워서 춘하로 갔댔지요. 거긴 좀 나을까 하고. 금광이 있었거든요. 춘화에는, 내가
그때 스물세 살이었댔는데.... 둥무 일곱이서 허리띠 졸라 매고 어디 우리두 금이란 걸
구영이나 한번 해 보자 했습니다. 금광 노동해서 돈 모으면 금을 살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웬걸.
"아이들 또래들을 데리고서 백 메다 지하루 내려가 하루에 한 립방이나 되는 흙을 파내야
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한 립방 못 파냇지요. 숨은 막히고 낯바닥은 늘 때꾹에 흙먼지가
눌어붙어 까마귀가 아저씨 아저씨 부르게 까막둥이, 게으르다고,할당량을 못 채웠다고,
말로 다 할 수 없이 두들겨 맞고, 참. 그렇게 알하구선 하루 오륙십 전벌이를 못햇어요.
산송장이 따루 없었습니다." 그래서 팔월 보름 추석날에, 죽을 힘을 다해서 도망가기고
하고, 머리를 모아 꾀를 내었다. "명절이나 부모한테 다녀오게 해 주십시오." 애가 타게 몇
날 며칠 번을 갈라 서로 들어 간청한 끝에, 이들은 겨우 통행증명서를 한 장씩 받게
되었다. "그놈들도 우리가 추석 명절 쇠는 것은 알았으니껜요." 그런데 같이 갔던 또래들이
광산에서 나오자마자 숙덕숙덕 하더니만, "함께 다니면 왜놈의 눈에 뜨여 잡히게 되니 우리
무두 흩어지자." 고 하면서, 그들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가 버리거, 김씨만 덩그러나 아무도
없는 길에 혼자 남게 되었다.
"난 그때까지두 치렁처렁 머리를 한 벌이나 되게 땋아 늘어뜨리구 댕겻어요. 이렇게,
아. 그런데 우도구에 와서 하룻밤을 나구 겨우 몰래 빠져 나오는데 그만 생뚱같이, 머리
떼문에 왜놈들한테 붙들렸지 뭡니까아.어이, 야.너.쥐꼬리, 이리 오너라."
그 때 그 순사의 음성을 흉내내며, 김씨는 야비하고 냉혹한 표정까지도 지어 보였다.
겁에 잔뜩 질린 김씨는 순간 무조건 튀었다. "나야 도망다니던 참이라 무조건, 잘 잘못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덮어놓고 순사하면 줄행랑을 놓았을 것 아닙니까? 그것이 의심을 더
산 짓이 돼 버리구 말았지요. 아 글세, 내가 뭐 아무리 달아난다구 칼 찬 순사를
당하겠어요? 잽혔지요 머. 머리꽁지를 확 나꾸어 납아채드만요. 그대로 끌려갔댔지요.
그랬더니 경찰서로 가는 것이었어요. 참, 겁은 겁이 나드구만요오." 끄집히어 안으로
들어가니, 겨울철도 아직 아닌데 북방이라 벌써 난로불을 한쪽에 피워 놓고, 순사 한 놈이
앉아 있다가 히끗 눈을 치뜨며 "어디로 가는가?" 장부까지 펼쳐 놓고는 위압적으로 물었다.
"추석날이라 부모님 뵈이러 랍니다."고 기어들어가는 소리고 대답했지만, 그 일본 순사는
기다란 칼을 타고 철걱거리며 다가오더니, 수상쩍다는 듯 어디서 무얼 하다 오는가,부터
이것 저것 서태 잡듯 꼬치고치 캐물었다.
제가 아무리 순사라도 도망가려는 내 마음속까지야 뒤지지 못할 것이고, 또 나는
통행증을 어떻든 가지고 있으니 책잡힐 것을 없다, 하고 뱃심을 좀 가질 요량으로 심호흡을
깊이 들이마시는데, 그 순사가 불시게 군도를 쓱 뽑더니 내 모리를 꽉 움켜쥐구 잡아당기지
않겠어요?아야.소리 지를 겨를도 없이 그놈을 내 머리채를 날이 시퍼런 군도로 뭉텅뭉텅
베는 것이었어요. 목을 베는 줄 알았지요. "그래두 난 한 마디두 못했어요. 가슴속이 벌벌
떨리면서, 넘무나 분하구 서러워 눈물이 툭툭 떨어졌지요. 무섭기두 했구요. 허지만
그놈들하고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그렇게 해서 난 하이칼라가 되구 말엇습니다. "글세 머리두 제 마음대루 못하구
다녔으니, 우리 조선 간민들이 처음에 여기 만주로 들어왔을 적에, 청나라에서
조선인들한테 영을 내렸잖아요? 치발역복하라구. 즈이들 모냥으로 앞머리 아마빡부터
정수리까지 몽땅 까까루 밀구선 뒤꽁지만 늘이구 모조리 호복 입으라구. 그렇게 안하면
부쳐먹을 땅 한 뼘도 안 준다구. 말 안듣는 사람을 몽둥이로 쪼아내구, 그래두 안 듣는
사람을 그 사람 사는 집에다가 불 지루구 다 그랬잖었어요?"
그래도 우리 조상들이 오랑캐 변발에 호복을 입는 것은 조선의 백성으로서 나라를 욕되게
하고, 조상의 후손으로서 선조를 욕되게 하는 짓이라고, 자기 자신의 근본을 팔아먹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끝끝내 청조의 명을 따르지 않았던 일을 김씨는 이야기했다.
제 나라에서 무어 대접이나 한번 제대로 받어 봤다든가, 아니면 행실이나 한번 해 본
것도 아니면서, 백성으로서의 순정만은 본능처럼 뜨겁게 가지고 있었던 조선족들이,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 남의 나라 남의 땅에까지 흘러 와 어떻게든
발붙이고 뿌리를 내려 보려고 몸부림하는 몸빗은 가여운가, 위대한가. 참으로 가련한
백성들이로다.
강태 낯빛에 푸른 골이 패인다. 이마 위로 뻗친 줄이 머리 속까지 퍼렇게 물들인다. 멍이
드는 것 같다. 힘줄이 돋는 것이다. 김씨는 어느새 묵묵히 입을 다물고, 강모는 강태의
얼굴이 어둡고 푸르게 잠겨드는 것을 침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4 조그만 둥지
"만주 벌판 다 돌아다녀야 이렇게 조선 사람 모뎌 사는 데 없다."고 주인 김씨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봉천의 '서탑거리'는, 도시의 서쪽 모서리 하늘에 걸린 철교 텐쳐
하늘다리로부터 동쪽을 향하여 시칸방까지 광목필을 풀어 던진 것처럼 하얗게 벋은
시부대로 일직선 길 양쪽 언저리 일대를 둥그렇게 가리키는 말이다.
묘한 일이었지만 이 서탑거리의 시작과 끝. 그러나까 광목필의 이쪽과 저쪽 끝자리에는
똑같이 시장과 유곽이 있었다.
거리가 시작되는 하늘다리 바로 야래, 노도구 파출소와 일본 경비대석조 건물이 양버티고
선 옆구리 골목은 일본인 전용 유곽 야나네마찌, 버들거리였고, 버들거리 입구에는
신시장이 있었는데, 동쪽으로 뻗친 도로를 따라 한 오 리 남짓, 이 킬로미터쯤 내닫다가
주춤 머물면 조선인 동네 끝 시칸방에 이르렀다. 그 시칸방을 낀 옆구리에는 또 중국인
전용 유곽인 북기 골목이 휘엇하니 구부러져, 음울하게 웅성거렸다.
이곳에는 북시장이 섰다. 서탑에서 갈 때는 동쪽 방향이지만 봉천 시가지를 층으로 놓고
볼 적에는 북쪽에 위치하여 북시장이라 불리는 이 거리부터는 중국인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만일 서탑거리를
잣대같이 잘라 본다면 "신시장과 북시장 사이에 있다."고도 할 수 있고, 버들거리와 북시
골목, 그러니까 "일본인 유곽과 중국인 유곽 사이에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밤이고 낮이고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북시장 어귀에는 북시 파출소가
날카롭게 돋은 송곳니처럼 박혀 있어서 서탑거리는 "노도구 파출소와 북시 파출소 사이에
끼여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조선 사람을 요시찰, 위험하고 수상하니 결코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너희들은 우리 아가리 안에 들어 있다. 고 파출소는 이끝과 저끝에서 차가운 이빨을
번뜩이며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서 또 한곳, 봉천 경찰서는
노도구 파출소 안쪽 골목에 서탑 파출소를 세웠다.
버들거리와 신시장이 한바탕 엉크러진 모퉁이. 길가 쪽으로 호국 법륜사 웅장한 절이
대청 황족들의 영세불망 치적 기념 비석들을 즐비하게 데불고서, 서글픈 위용을 스산히
떨치는 그 한가운데, 아아하게 치솟은 서탑이 보였다.
이미 하잘것없이 무너져 버린 왕저처럼 묵은 담장이 허물어진 채, 아무라도 넘나들게
방치된 사찰의 중심에 청와 벽돌탑이 허옇게 헐벗은 듯 드러나 보이고, 그 옆구리 터진
담장 쪽으로 서탑 골목이 뚫려 그대로 나가면, 마적 출신이었으나, 러.일 전쟁때 일본군
별동대로 암약하다가 후에 청나라에 귀순하여 요녕성.흑룡강성.길림성 전체인 동삼성에
군림하는 봉천군벌을 이루었으며, 나아가 그 지배 영역이 화북.화동을 비롯하여, 멀리
강소성에까지 이르렀던 장작림이 기차를 타고 오다가 열차 폭파로 폭사당한 철로에
다다랐다. 한 때, 그 세력을 중원에 떨치어 육.해군 대원수를 자칭하고 북경 정부를
장악하기도 했지만, 일본 관동군에게 폭사당한, 그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자리는 바로 쌍굴
조금 못 미친 지점, 황도둔이었다.
"의롭다고는 못해도, 전설적인 풍운아인 것만은 분명해, 장작림을 일본의 후원으로,
군벌로 성장했고, 일본은 또 그를 이용해서 동북 진출을 하려고 획책했지만, 장작림이 자기
고향인 봉천성(요녕성)을 비롯한 동북 범주를 넘어서서 전국적인 규모의 대군벌로 막강한
세력을 키우고, 미국 등과도 연계하기 시작해서 일본 뜻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자, 죽인
것으로 봐야지"
강태는 전에 대궐 같은 장작림의 옛집 대문 잎에 서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이 골목으로 꺽어 들어가는 초입이면서 넓은 시부대로에 면한 귀퉁이 장소가
제일면점, 김씨 김성직의 집, 강모가 들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하니 이 집을 길갓집도
되었고 골목 첫 집도 되었다. 골목 쪽으로 들어앉은 살림집은 안채였고, 서창이 달린 방과
부엌이 따로 있는 건너채가 강모의 거처인 셈이었다.
드나드는 출입문이라면 아무래도 점방 쪽이 늘 열려 있으니 손쉬웠지만, 가게인지라
영업에 방해되고 번거로울 것을 생각하여 식구들은 골목길로 난 쪽대문을 썼다.
이 쪽대문에서 서탑 골목 안으로 몇 발짝만 주춤주춤 들어가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왼편 쪽에서 서탑 파출소가 튀어나왔다.
손바닥 한 장 펴서 덮기에도 모자랄 정도로 가깝고 좁은 거리 면적에 노도구 파출소와
서탑 파출소, 그리고 일본 경비대 건물들이 숨소리가 들릴 만큼 바투 밀집해 붙어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일본인을 보호하고 조선인을 감시하는 데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라는 증거였다.
"왜놈들이야 서탑거리가 조선 사람들로 득실거리나까 늘 아슬아슬 하겠지만 , 그
중에서도 유독 서탑 근처에 경찰 공안력을 집중시킨 까닭은, 아마 이 부근이 봉천역에서
내린 사람들이 서탑거리고 들어서는 첫들머리인데다가 번화하고, 무엇보다 조선인들의
쪽박에다 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아 세운 서탑소학교가 바짝 가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서탑 골목에 막 발을 이여 넣을 때, 왼쪽 첫 집이 강모가 사는 곳이요. 오른쪽 첫집은
협화여관이었다. 그리고 좀더 안쪽으로 철로 쌍굴을 향하여 걷다 보면 골목거리인데도
네거리가 열려, 왼쪽으로는 버들거리, 오른쪽으로는 서탑소학교로 가게 되었다.
골목 네서리 왼쪽 모퉁이를 위압적으로 누르고 선 것이 서탑 파출소였고, 오른쪽
모퉁이에 자리한 것은 조선여관. 조선여관에서 네거리를 건너뛰면 서탑 목욕탕이요,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고급 조선 요릿집 명원관이 나왔다. 그리고 명원관 바로 코앞에는
로서아 공원이 푸르고 울창하여 이국적인 풍취를 돋우는데, 공원과 담벽이 맞붙은
서탑소학교 운동장은 언제나 개방되어 조선 사람 누구라도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었다.
"아 우리 조선 민족이 빈손에 쪽박 차구 월강해서 만주땅으로 올 적에는, 다 참혹지경에
남다를 각오를 뼈에 박아 새긴 바 있지 않았겠어요? 수토가 달라서 물똥 싸구 피똥 싸구
얼어 죽구 굶어 죽구, 살어 남기 끔찍해서, 차라리 내 죽느니만 못하다는 세월이 가도 가도
끝이 없었지요. 그거 일일이 말 다 못합니다. 그런 지경에서도 우리 조선 민족들 참
강인하고 무서웠습니다. 여기 서탑소학교 새울 적에요. 어떻게든 자식들을 가르체야 한다.
우리들은 기왕에 조국 산천 다 내비리고 타국 만리 떠도는 신세가 돼서 남의 나라 변병에
빌붙어 살지마는, 우리네 아들 딸은 기어코 가르쳐서 우리네 아들 딸은 기어코 가르쳐서
조선말도 잊지 말고, 조선글도 잊지 말고, 문명한 지식들을 많이 많이 갓듯 배와
좋은 세상 살으라구. 아주 신던 짚신까지 벗어들구 쫓아올 지경으루 성금들을 냈지요오. 열이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비나(비녀)빼서 들고 온 낸(여인), 닳아 빠진 은가락지 뽑아 들고 온 낸, 상투 깍아 달비하라고 들고 온 나그네(남자), 참, 눈물에 목이 메지 않고는 못 봤댔어요."
조선말로 조선글을 배우는 조선인 소학교를 자력으로 만주땅 봉천의 서탑거리에 세운
조선 사람들은, 꼭 꿈만 같아서 자식들을 학교에 갖다 넣고는 하도 벅차고 기꺼워, 공연히
운동장이라도 한번 더 밟아보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학교는 사람들
모이는 장소가 되곤 하였다.
그러니까 서탑거리가 조선 사람 삶의 둥지나면, 서탑소학교는 조선사람 정신의
둥지였다고나 할까. "그것이 알본 경찰의 눈에는 곱게 보일 리가 없었을 테지요." 김씨의
말에 강태가 대꾸했다. "대강 말씀을 알아들었으니 언제라도 필요하시면 연락하십시오,
그러고, 저희들은 지금 좀 가 봐야 할 것이 있어서 이만." 하, 그러신 것을 염치없이.
김씨는 멀금하게 커가지고 나온 강태가 큰길을 휘몰아 때리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몇 걸음
걷다가, 김씨를 가리켜 짤막하게 평했다.
강모는 의외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다는 아닐 겁니다. 속에는 깡치가 있어 보여요." "그렇지 않겠냐?여기가 어디라고
달랑 들고 마누라에 자식들에 주렁주렁 매달고 온 아버지. 꼴 안 봐도 뻔하지, 그 밑에서
이 만큼이나 살게 되기까지 무슨 짓을 안했을까. 하여튼 이 땅에서 안 죽고 살아 남았다면
그것으로 이미 다른 이야기는 들을 피요도 없이 족하다." "노랑 깡치" "워?" "목소리도
그렇고, 왜 그런지 그런 말이 떠오르네요." "별명이냐?" "어째 그 사람 겉은 물러
보이는데, 살 속에 뼈다귀 하나는 노란 심줄로 심지를 질기레 박고 있을 것 같애서. 그냥."
"허튼 사람을 아닐 것이다." "대단합니까?" "장삼이사지."
"그런데 뭘." "허나 저만한 재간도 흔하지는 않아." "돈 보는재간이요?" "사는 재간
말이다." "나한테 없는 것이로군요."
"말끝마다 꼭. 그럼 너는 지금 죽은 것이냐? 여기 이 시부대로를 걷고 있는 이강모는
유령이야?" "떠도는 망령." 강모는 쓸쓸히 내뱉는다.
"그러나 아직은 살아 있으니 너도 재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게 산 겁니까?"
"그러면 어떤 것이 산 것이고?" "나는 봉천으로 오면 무엇인가 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맛볼 수 없었던 장쾌함, 자유, 그리고 넘치는 새로움이 이 미지의 땅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원했든지
원하지 않았든기 간에, 운명적으로 아니면 불운하게도 짊어지게 되었던, 온갖 짐들을 다
초개같이 버릴 수 있기 바랐습니다." "버릴 수 있기를?" "예."
"그 전에 너는, 나도 무산자올시다. 프롤레타리압니다. 라고 절실하게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은 가진 것이 많았던 모양이구나." 아아 그랬었다. 그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 중국으로 떠나오기 며칠 전, 눈 내리는 고사정의 요릿집 망월 모찌즈끼에서, 취한
강모는 강태와 마누앉아 심정을 털어놓았었다.
"형님, 당신도 부르조압니다. 반대로 나도 프롤레타리압니다." 했던 말을 생각하며
강모는 쓴웃음을 지었다.
"버리고 떠나오면 버려지는 것인 줄 나는 알았어요." 탄식처럼 내뱉는 강모의 말이
봉천의 겨울 석양 허공에 가시같이 걸린다.
"오히려 부둥켜 안으면서 버린다고 해?" 강태는 아마 오유끼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다들 와 있겠는데." 강태가 걸음을 빨리 했다.
형설학회 독서구락부가 오늘 모이는 날이어서 그는 아까부터, 김씨와 이야기하면서도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았던 것이다. 물론 강모도 이모임의 회원이 분명했지만 이직 별로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터라, 가면 가고 혹 못 가게 되더라도 굳이 서두르지는
않았었다.
대륙의 붉은 노을을 등에 진 채로 서탑거리를 걸러가는 두 종형제는, 제 발걸음보다 길게
앞서 누워 가는 제 그림자를 묵묵히 밟으며, 각기 서로 깊은 생각데 빠진 듯 말이 끊긴다.
거리 오른쪽에 여전히 사고 파는 사람들로 붐비는 구시장이 얼마 전에 새로 생긴 신시장
못지않게 시끄러운데, 그 구시장목 끝날 참에서 조그만 절이 한 채 나왔다. 귀원사. 그것은
저 서탑의 호국 법륜사 같은 중국의 웅장한 사찰이 아니라 단청이 소박하고 규모가
조촐하여, 조선에서 본다면 어느 암자 한 칸만이나 한 절이었다. 그렇지만 이 절은 조선
사람들이 세운 것이어서 각별하였다. 귀원사라.
어디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말일까. 이 사바예토 더러운 진흙밭에 갚이 빠져 나뒹굴며
허우적이는 윤희의 껍데기를 어서 빨리 벗어 버리고, 존재의 본질로서 시방정토 욕계 사천
도솔천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오로지 저 눈물나는 어미의 땅. 아비의 땅. 내 명줄 받아 태어났던 탯자리라
그리운 땅, 울며 울며 떠나 왔던 조선으로 부디 다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이 거리의 가련한 중생들은 극락정토 가 본 일 없는 불생불멸의 하늘보다는,
남루하여 서러웠으나 에이게 그리워 꿈에라도 가고 싶은 고향 산천 앞냇물 뒷동산을
향하여, 두 손 모아 엎드리어 발원을 할 것만 같았다.
귀원사 절 바로 옆에는 예배당 서탑교회가 뾰족한 지붕 꼭대기에 십자가를 달고 서
있었다.
서탑교회와 같은 담장을 쓰는 건물 명신여관은 지은 지 얼마 안되어 문등 달린
간판부터가 신식이었다. 그렇지만 봉천역에 내린 조선 사람들이 여기 무슨 특별한 연고나
일이 있다면 혹 모를까, 도로 안켠 명신여관까지 들어오기도 전에 길목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눈에 뜨이는 협화여관이나 조선여관에 짐을 풀기 쉬운 탓에, 손님은
아직 뜸한 거처럼 보였다.
그러나 야마또 호떼루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깨끗한 숙소에 머물고 싶은
손님이라면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옴직도 하지 않을까.
"물건은 각기 다 주인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것이 김씨의 장사 철학이었다.
"내 맘에는 안 들어도 저 맘에는 꼭 드는 수가 있거든요. 아조 참 희한하지요. 이것은
팔리기 틀렸다 싶어서 구석에다 처박아 뒀댔는데, 일년에 한 번을 와두 환히 알고 찾는
것처럼 똑 그 물건을, 있느냐고 사러 온단 말이에요? 내, 탄복을 한두번 한 게 아닙니다.
나 그럴 때면 사람 인연두 그런 건가 싶습디다. 아. 그래서 항상 진담삼아 농담을 하지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느 심뽀를 갖지 말구우. 내가 안 쓸 거면 빨리 '버립시다' 꼬리표
붙여서 길에 내놓으라구요. 그럼 남이나 줏어 가지 않겠습니까? 돌보지두 않을 걸 버리지두
않구 꽁꽁 묶어 가지구는, 쩌어 캉캄한 광에다가 턱 처박아 곰팡이 나게 썩후는 건 죄로 갈
짓이라고 그랬지요. 쥐뿔이나 내가 뭘 알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구요. 기냥 장사를
하다 보며는요, 그런 정도 문리는 티이거든요."
김씨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으로 입슬을 누르며 웃었다. 그것은 그의 습성이었다.
명신여관 앞을 지나치는데 강모의 뇌리에 그런 김씨의 말과 모습이 퍼뜩 떠올라, 그는
그만 제발 저린 사람처럼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나 들으라고 한 말이야 아니었겠지. 그 어떤 내막을 그가 알 리도 없는 일이고. 강모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좌우로 깊이 흔들어 털었다. "왜?" 자기 생각에 골똘하여 옆에 사람이
같이 가고 있는 것도 모르는 사람 마냥 걷고 있는 줄 알았던 강태가, 힐끗 강모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요."
무안하여 얼른 더 크게 고개를 흔들어 버리는데, 그의 눈에 누렇게 번쩍이는 금박 글씨
간판이 들어온다. 바탕은 선홍색이었다.
이집은 서탑 골목 조선 요릿집으로 이름난 명원관과 대조를 이루는 신식 음식점인데 서양
술집을 겸하고 있었다. 왕칸카회 자리는 서탑거리 말미 부근이었다.
여기서 몇 걸음만 더 내쳐 걷다가 오른쪽, 그러니까 남쪽으로 휙 꺽어 돌면 바로 그곳이
그 훤칠하고 거침새 없는 일본인 계획도로 야마또 광장거리였다.
시부대로 서탑거리에서 야마또 광장거리로 꺽어지는 남쪽 모서리에선 부사극장은 화려한
치장을 마다 않고, 양껏 멋을 부려 광목필 댕기처럼 기다랗게 펄럭이는 현수막에 새로
상영하는 영화의 제목을 울긋불긋 적어 걸었다.
부사극장에서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을 때면 연극이나 춤을 비롯하여 다른 무대 공연을
하기도 했다. 물론 주로 일본 것이 많았다.
반면에 왕칸카회 길 건너편, 즉 야마또 광장거리 맞바라기 쪽에는 조선인 민족극장이
있었다. 이 극장 역시 서탑소학교 같지는 않았지만, 조선 사람 몇이서 돈을 모아 세운
것이었는데, 원래 이름을 '민족극장'이라고 하였으나 "불온하다."는 이유로 봉천 경찰서
허가가 나지 않아 할 수 없이 '봉천극장'이라고 간판을 달았는데도, 은연중에 이 소문이
퍼져,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건만 자연스럽게 "민족극장"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서도 부사극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상영하거나 연극을 상연하고 또 무용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른 것은 창극과 국극, 그리고 협률사 공연이며 조선에서 온
유랑국단이 흐드러지게 굽이굽비 부르는 노래들을 얼마든지 조선말로 들을수 있다는
점이었다. 화면 속의 배우도, 무대 위에 선 사람도, 의자에 앉은 사람도, 모두 하나같이
조선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시부대로 서탑거리 넓은 길을 사이에 두고, 부사극장과 민족극장은 각각 제 종족들이
사는 쪽에 서서, 대각선으로 엇비키며 모가 나게 각을 세워 바라보았다.
동문사 인쇄창은 민족극장 뽀작 옆에 붙은 허리띠같이 가느다란 골목 안창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기칸방 강태의 하숙에서야 기침 소리라도 들릴 만한 거리였지만, 서탑에서부터
걸어오자면 좀 걸리는 곳이어서 벌써 박모의 노을는 지고, 서걱서걱 얼어드는 땅거미가
어느새 그림자를 덮어 간다.
"들어가자." 강모를 먼저 건물 안으로 들여 보내며 강태가 뒤따라 스며든 동문사에 붉은
주홍 전등 불빛이 밝혀진다. 어두워지는 것이다.
건너채로 돌아온 오유끼도 빈 방에 전등을 밝힌다. 방안에 불빛이 눈물같이 차 오른다.
오늘따라 손끝 하나 까딱 하기 싫은 오유끼는 벽에 등을 기대고 물끄러미 맨몸이 드러난
알전등을 바라본다. 손만 잘못 대로 깨져 버리는 저 얇은 유리막. 그러나 저렇게 뜨겁고
환한 불빛이 가득 밀려들어올수 있는 전구가, 하루종일 기척도없이 써늘하게 빈몸으로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 왠지 하염없이 가여워 오유끼는 (이쁜 갓이라도 하나
씌워줄까) 혼자 생각하였다. 그녀는 그녀의 가슴팍으로, 전에 요릿집에 나앉을 무렵 한 때
가야금을 가르쳐 주던 늙은 기생한테서 들었든 이갸기가 파고든다.
"옛날에, 아조 옛날에 말이다. 두 사램이 있었는디 하나는 기생이고 하나는
소실이었드란다. 이 세상의 난 온갖 생물 삼라만상이 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어서 서로
만나 짝을 이루고 살라고 나왔는디. 그 중에 사람은, 음이라면 여자고, 양이라먼 남자
아니냐, 들한의 핀 꽃들이나, 때가 되면 저절로 즈그들끼리 짝을 짓는 짐생들허고는
달러서, 사람은 암만 때가 되야도 절차 거치고 순서 밟어야 음이 양을 만나고 양이 음을
만나는 것이라. 그 순서 절차 챙기기가 용이치 않은 사람은 과연 넘들보단 복잡헌 세상을
살 수 배끼는 없는 벱이거등. 너도 인자 나이 먹고 세상 물정 알게 되먼 이 말이 무신
말인지를 알어듣는 날이 올 것이다. 사람이 음양이 만날 때, 버젓하게 육례를 갖추고
덩실히니 정실부인 되는 여자가 태반이지만, 그러들 못허고 넘으 소실이나 기생 노릇 헐 수
배끼 없는 여자도 또 많은 거인디, 기생이나 소실이나 여자로 태어나서 복 받고 사는
인생은 아니라, 설웁고 속 아프기 견줄디가 없지 않겄냐. 하루는 그 두 사램이 마주 앉아서
신세 한탄을 핸드란다."
늙은 기생은 꺼두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한 눈을 찡그렸다. 짧은 담배에 불이 붙으면서
피어 오르는 매운 연기가 눈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담배를 잡을 그네의 손톱은 차자물이
든 것처럼 누렇게 절어 있었다.
한연하게 떠는 그 손을 검을 입술 가까이 가져 가던 가야금 선생은 날카로운 기침을 몇
차례 토해내더니 "아이고." 하며 명치를 눌렀다. 기생이 소실을 보고 그랬드란다.
"자네는 좋겄네." 이름이 소실이라 듣기는 섭섭허나 정든 님허고 이별헐 일 없고,
한평생에 한 서방님만 뫼시고 한자리서 정이야 재미야 살 수 있응게 얼매나 좋겄는가. 비록
그리운 님으 모습 뵈지 않는 날이 많다고 헐지라도 바늘으다실 뀌어논 거 한가지라. 어디가
있어도 한식구 대접을 받음서 살지 않느냐.
서로가 너는 내 사램이요. 나느 니 사램이라고 정해 놓고 사는 세상이 나는 부럽네. 우리
같을 사람을 정처가 없어서 어젯밤에 만난 님이 오늘은 속절없고, 금석같이 굳은 맹약
돌아스먼 희롱이니.
저도 나한테 마음 두지 않지마는, 나도 또한 저한테 마음 두지 못허는 팔자, 흘러가는 물
우에다 낭구를 심는대도 이보다 더 허망허고 부질없는 세상이리.
"이 말을 들은 소실은 깊을 한숨을 쉼서 대꾸을 했드라야." 자네는 속 모르는 소리
허지를 말게.
이 세상에서 불쌍허네, 불쌍허네, 매이고 묶인 것같이 불쌍한 것이 또 어디가 있겄능가.
소실의 신세는 눙중노 한가지라. 한번 밤록 덜컥 잡혀 조롱 속으 갇혀 노면, 한평생을 그
속으서 굴레 쓰고 못나오네.
정실부인 마님같이 당당허도 못험서나, 허구헌 난 눈 빠지게 기다림서 사는 세상, 수모는
오죽허고 설움은 또 오죽헌가. 허울이 좋아서 이름이 소실이제. 감옥 같은 새 조롱을
고래등으로 대궐로 삼고, 혼자 먹는 깍쟁이 밥 진수성찬 여기다가, 새들새들 속병 들고
피어 보도 못헌 청춘, 속절없는 꽃봉오리 다 지고 마는디.
자네는 좋겄네.
비록 한 시절이라고는 허지만 만화방창 천변만화 흐드러진 좋은날에
호랑나비.범나비.노랑나비.희나비. 이 님 가먼 저 님 오고, 한바탕 어우러져 여한 없이
노니나니.
묶인 디가 있으까. 매인 디가 있으까. 무변 천지 날갯짓이나 한번 실컷 허다 죽으먼
소원이 없겄네. 만고에 소실이 수절헌다고 누가 열녀문을 세워 준다등가. 나 같은
소실살이에다 어찌 자네 팔짜를 빗들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탄식을 했드리야."
아직 손님이 들지 않은 오후, 모찢끼의 뒤안 화단에 쪼그리고 앉은 늙은 기생은,
꽁지까지 타 들어간 담배를 마지막으로 한 모금 깊이 빨아 들이고는 발밑에 떨어뜨렸다.
그때 누렇게 마른 겨울 풀입 사이에서 이제 막 포릇포릇 돋아나는 새풀에 담뱃불이
떨어지자 그것은 안으로 시들어지듯 오그라졌다. 오유끼는 그 생살이 타면서 새 풀입
오그라지는 모습에 어린 속이 자지러져, 저도 모르게 가슴을 두 팔로 감싸며 죄었다.
그리고 늙은 기생의 검은 얼굴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 기억이 너무나도 선연하여, 오유끼는 새삼스럽게 기금 막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찌즈끼로 보리쌀 서 말에 팔려 온 오유끼한테 주인 남자는 어느 날 "가야금을
배우라."고 하였다. 그것을 오유끼를 특별히 우대하고 아껴서가 아니라, 손님들에게 비싼
화대를 받아 내기 위한 꽃 장식을 달아 주는 셈이었다.
제대로 된 공부를 깊이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었고 일본 요릿집에 가야금이 당치도
않았지만, 오유끼말고도 몇 사람이 더 한방을 이루어, 잠시나마 둥당거리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배우는 시간은 좋았다.
그러는 하룻날, 선생이었던 늙은 기생이 웬일로 오유끼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저 그럴 법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저녁에 낯선 나라 낯선 도시
빈방의 한쪽에 앉아 왜 이토록 가슴 후벼 내게 그 이야기를 구구절절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나는, 기생인가, 소실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가. 아아, 그저 한낱 창부에 불과한가.
5. 수상한 세월
시절은 하루가 다르게 수상하여 아무도 내일 일은 미리 짐작할 수가 없고 집집마다
떡쌀은커녕 싸라기조차 제 대로 남아 있지 않은데다가, 땅을 파고 몰래 묻어 놓은
제기마저 놋그릇이라고 공출을 해가 버린 뒤 끝에, 설날 차례인들 변변히 올릴 수
있었으리.
우스운 말로 놀부는 부모 제사 때를 당해도 음식 장만을 따로 하지 아니하고, 즐비한 빈
접시에 돈을 대신 올리면서 "이것은 떡이요." "이것은 전이요." "이것은 또 무엇이올시다."
하고는, 건성으로 절만 몇 번 한 뒤에 번개같이 철상을 하는데, 돈은 도로 다 쏟아 내왔다
하니, 그 식대로라면, 아무리 마음을 간절해도 없어서 못 올리는 제물 대신 검은 먹으로
주.과.포.혜 글자 적어, 조상의 신명이 부디 가여운 자손의 정성이라도 흠향하여 주시기를
빌어 볼 수 있을는지 모를 일이나. 그런 짓이야 어디 인두겁을 쓴 사람의 자식으로서
상상이나마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저 오직 맑은 청수 한 대접 올리고 돌아앉아 우는 한이 있어도, 정원 초하룻날
원단에는 나름대로 차례를 모셔야 한다.
"산 닭 주고 죽은 닭 바꾸기도 어렵다." 는 말은, 무엇을 꼭 구하려 할 때, 귀한 것을
주고도 흔한 것을 얻기 어려울 경우에 쓰이는 말이지만, 정말 요즘 같은 시절에 곡식을
구하기란 "죽은 닭 주고 산 봉황 바꾸는 것이 쉽다."고 탄식할 만하였다.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벌써 이십여 년 전, 일본이 조선을 식량 공급지로
정하여 미곡 증산을 서두르며 "산미의 개량.증식을 꾀하는 것이 조선의 실력을 증진하고
또한 일본 제국의 향상에 충실히 공헌하는 길."이라고 내세우면서, 토지 개량, 품종 개량을
하라 하고, 비료는 스스로 만들어 쓰도록 강요 장려하던 그때부터, 농촌은 진드기 물것에는
비할수도 없이 악착스럽게 긁어 가는 수탈에 시달려, 사람들은 한 해 농사 뼈빠지게
지어서는 거의 대부분을 공출로 빼앗기고 말았으니, 가을 걷이가 끝나 타작을 하고 나면
남는 것은 몇 눔의 조.콩.옥수수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필경에는 그것까지도 모자라고
귀하여 피폐는 극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벌써 십여 년 전에 일본인 우원 총독도
"현하의 조선 농촌을 본다면 그 약 팔 할이 소작 계급에 속하는 세농으로서, 이들은 과거
여러 해 동안의 비정과 착취, 그리고 관청에서 국민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을 주구에 고민해
온 탓으로, 그들의 심경은 극히 황포하고....매년 식량의 부적을 호소한다. 거기다가
고리의 부담 또한 매년 증가될 뿐만 아니라 수확기에는 채귀쇄도하여, 그들이 한 해 동안
바친 노력도 빌려 먹은 식량을 반제하거나 혹은 무거운 부채 이자의 상환에 충당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그러다 보릿고개가 닥치면 절대 식량이 부족하여 그들은 산야로 흩어져
풀뿌리를 캐거나 나무 껍질을 벗기어 겨우 일자의 호구를 이어간다. 참혹한 상태이다."라고
실토한 일이 있었다.
이 말 속의'부채'란 대부분이 일제의 고리대 자본이어서, 그 빚을 할수 없이 얻어 쓴
농가는 하루아침에 차금예농으로 전락해 버리고, 어느결에 먹고 살 식량이 전무한 궁민의
처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는데, 조선 농가의 절반 이상이 이런 참경을 겪고 있었다. 초근
모피로 연명을 한다더니, 사람들은 말그대로 언덕이나 들로 나가 쑥을 뜯어 먹고, 산으로
올라가 송기껍데기를 먹고 살았다.
너나없이 허기로 속이 패이는 춘공기 가파른 고갯마루를 기진하여 넘을 때는, 더덕더덕
기운 자루 하나 들고 동무하여 나서서, 하루 온종일 노란 횟배 같은 봄 햇볕에 휘어져
엎드린 채 쑥을 캤는데,손가락마디 하나보다 더 클 것도 없는 그 풀 한 포기에 사람의
끼니가 매달려, 다만 한줌이라도 더 캐 보려고 아낙들은 같이 간 사람을 돌아볼 틈조차
없이, 오직 무딘 칼끝으로 마른 땅을 헤집어 쑤실 뿐이었다. 고개고, 언덕이고, 들판이고,
쑥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머리에 무명 수건을 두른 아낙과 노파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것이, 이른 봄날 아지랑이 아른아른 피어 오를 때, 댕기머리 나붓이 드리운 처자나
어린 계집아이들이, 봄 마중 하면서 바구니에 재미로 케 담은 쑥이라면, 뿌리에 묻은
흙냄새도 상큼하고, 멀리서 보는 이의 마음에도 한 폭 그림 같은 정경이 될 수 있겠지마는.
양식으로 캐는 쑥이야 처참하고 한심한 한숨에 가슴이 미어질 뿐, 어디 그런 정감이
스며들 여지가 있으리오. 그저 잠시라도 손을 놀리지 않고 그것을 캐고 캘 따름이었다.
그러다 해가 넘어가면 저마다 고개가 오무라지게 그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삼삼오오
마을로 돌아왔다. 마치 장날, 장에 갔다 오는 것처럼. 그래서 까물까물 잦아드는 등잔불
아래 자루를 부려 놓고 주둥이를 풀면, 혹 끼치는 쑥냄새와 후끈한 열은 무명 옷에 밴
땀내보다 짙었다.
식구 많은 집의 곤고한 아낙이 있는 힘을 다해 캐 낸 쑥을, 마치 무슨 앙심같이,
비명같이 채곡채곡 눌러가며 쟁여 놓은 쑥더미는, 돌덩이처럼 단단하여 갈퀴 손으로
끄집어내고 끄집어내도 한없이 꾸역꾸역 나왔다. 그런 자루 속은 누룩이 뜰 때같이
뜨거웠다.
이 쑥으로 개떡을 찌는 것을 참으로 양반 음식이요, 쑥 절반 쌀 절반 밥을 해먹는 것은
호강에 겨운 일이며, 밀가루에 버무려 범벅을 하는 것만도 언감생심이어서, 쑥을 남비에
넣고 싸라기 몇 줌 섞어 얼굴이 비치게 말전 죽을 쑤어 먹거나, 아니면 쑥만을 끓여 배
고플 때 속이나 다스려 주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이 쑥에다 서속을 넣고 송기를
치대어 뭉쳐 먹기도 하였다.
본디 쑥이란 사람의 속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어서, 밥이나 다른 속기에 비할 수야
있을까마는 그래도 허기를 달래는 데는 제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쑥을 한번에 다 먹어 버리지 않고 말려 두었다. 이윽고 쑥마저도 캘
수 없게 되는 날이 곧 닥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무엇이나 먹을 수 있는 풀이라고 생긴 것은 다 캐러 나섰다. 그러다가
잘못 보고 독한 풀을 캐기도 하여, 그것을 먹은 사람은 풀독이 올라 띵띵 붓기도 하였다.
아니면 너무나 오랫동안 굶주린 끝에 살가죽이 누렇게 들뜨며 밀룽밀룽 부어 오르는
부황에 걸린 사람들이 허다하였다.
쑥 못지 않게 요긴한 식량으로는 송기가 있었다.
소나무 어린 가지의 겉껍데기를 벗겨 내고, 허옇게 드러난 속껍질을 찬찬히 벗겨 내
자루에 담아 오면, 거칠고 삶아서, 방망이로 탕탕 두드려 밥도 지어 먹고, 아니면 밀가루와
섞어 비벼 솥에 넣고 찌거나, 그런 호사를 바랄 수 없는 형편에는 그냥 멀뚱하게 죽을 쑤어
먹기도 하는 송기. 이것은 절량의 농가에 소중한 양식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소나무가 서 있는 산이면 산마다 칼을 들고 나무 껍질 벗기는 사람들이 무슨 일
난 것처럼 박히어 들어차 있었고,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벌거벗기어, 먼 데서 보면 온
산이 희었다.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 때에도 조선에 소나무가 없었더라면 백성의 거개가 굶어 죽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을 만큼, 이 송기는 구황덕으로 제 껍데기를 다 벗겨 가도록 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 해도 호사인 셈이었다. 메밀 가루 갈아서 죽 쑤어 먹기도 어렵게, 농사를
지으면 공출로 다 쓰러 가다시피 하는 세월이 되면서, 사람들은 가져다 바치니 곡식 대신에
콩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 콩깻묵을 배급으로 받았다. 둥글둥글 넙적한 두리판 상같은 이
콩깻묵은, 거름이나 하지 사람이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인데, 그나마 넉넉히
주는 것도 아니고, 식구대로 수를 세어 조각조각 쪼개 한 덩어리씩 먹고 앉아 있을 때.
"이래도 저승보다 이승이 나은가."하는 생각이 목구멍을 처받고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와중일망정 눈꼽만한 여유라도 있는 집에서는 토담을 헐어 그속에 쌀가루를
감추거나, 후미진 텃밭 귀퉁이를 깊이 파고 거기 항아리를 묻기도 하였으며, 농사를 많이
짓는 집에서는 나름대로 어떻게든지 긴요하게 쓰고 먹을 만큼의 미곡은 비축하여 두었으나,
그것은 열에 한두 집 정도였다.
"그저 쌀이 제일이라.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이기태는 말하고 했다
그것은 옳은 말이었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쌀 가지고는 구하지 못한 것이 없었지만,
지게로 돈을 지고 와도 쌀 한 됫박 얻어 가기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쌀은 금보다 더 값진 것이었다. 쌀 한톨에 금 한 톨이 맞먹는다 해도, 쌀로는 밥을
해먹을 수 있지마는 금으로는 아무것도 해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쌀은 곧 목숨이었다. 그러나 이 쌀은 아무 곳에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읍내보다는 시골의 잘 사는 집에, 속새로 숨겨 놓은 쌀이 있다는 것은 암암리에 소문이
번지기 마련이어서, 알음알음으로 그 말을 들은 읍내 사람들은, 가방에다 고운 비단이나
박래품 고희잔, 혹은 향기로운 비누 같은 것들을 담아 들고, 양식을 구하려고 마을을
찾아가곤 하였다.
그들은 매안의 원뜸으로도 왔다.
내방한 사람이 남자라면 사랑에, 여자라면 안채에 가방을 열어 놓고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쌀과 바꿀 수 있는지를 간곡히 물었다.
방물장수도 아닌 그들이 초면의 집을 방문하여, 쌀 있는 사람이 욕심을 낸 만한 물건을
내놓고, 오직 쌀을 얻고자 할 때, 대소가의 다른 집에서도 혹 벼르던 것이 있었으면,
아무도 모르게 흰 쌀을 감추어 들고 종갓집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쌀 있는 사람들은 진귀한 것을 싸게 살 수 있었다. 때로는 섬사람들도 찾아왔다.
끼니거리 양식이 없어서 김이나 톳, 머자반 같은 해초류를 둥덩산같이 머리에다 하나씩
이고 마을로 들어온 그들은 쌀 한 되만 떠 주면, 그 한 보따리를 다 주고 갔다. 미역은
귀한 것이라 얻기가 어려워 아이를 낳고도 김으로 국을 끓여 먹던 산모도, 쌀이 있어야
미역 다발을 구할 수가 있었다.
이런 곤궁하고 빈핍한 나날 속에서도 사람들은 설이 다가오면, 어떻게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차례 올릴 쌀을 준비했다. 다만 한 되 한 줌이라도.
그것은 지엄한 것이었다. "천하 망헐 놈들, 이제는 허다허다 안되니 설을 다 바꿔 쇠고
허네 그려. 아,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풍습이 나라마다 다르고, 그 조상 모시고 섬기는
제사.차례가 다 우리대로 날짜가 있는데, 뭐? 음력은 미개한 것이니 버리고, 양력으로 설을
쇠라고? 미개하기는 누가 미개하다는 겐가, 제 몸들이야말로 손바닥만한 훈도시 하나 차고
백주대로에 너벌거리고 다니는 미개한 종자들이면서, 어쩌다 우리 국운이 이토록
비색하여 그 같은 왜놈들한테 나라를 빼앗겼는고. 그놈들이 강토를 빼앗더니, 농사 지은
식량도 다 빼앗고. 인제는 설까지 일본설을 쇠라 하니, 정신의 골수를 빼겠다는 수작
아닌가."
명데서 나온 서기가, 올부터는 국민 모두가 양력으로 과세해야 한다고 전하더라는 말을
이기채에게 들은 이정의는, 노안에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꾸짓득 말했었다.
"그까짓 것 안 따르면 그만이지요, 원. 말 겉어야...." "말 같잖은 것이 결국은 말이
되고 만 것이 어디 하나둘인가. 작은 것을 하찮게 보다가는 결국 큰코 다치고 마는
법이야." 이징의는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이기채도 더 이상 무슨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이기채가 아직 여남은 살 소년이었을 때, 조선 개국 오백사 년 동짓달 열이렛날을 건양
원년 양력으로 1월1일이라 칭하고는, 고종 임금이 몸소 솔선수범 머리를 깎은후, 전국에
단발령을 내렸었다. 그때 내무대신 유길준의 고시를 따를 관리들은 강제로 백성들의 머리를
깎았다. 가위를 들고 쫓아오는 관리를 보고 달아나는 사람들은 집에까지 따라 들어가
기어이 상투를 잘라 내기도 하였다.
이에 문정공 이도재 같은 대신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오랑캐 습속이라고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는 분연히 사퇴했으며, "내목을 자를지언정 부모로부터 받은 머리를 자를
수는 없다."고 전국의 각지에서 유생들이 들고 일어났었다.
"이는 왜놈들이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사람의 정신을 잘라
버리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빗다가 빠지는 머리털 한 올도 유재에 싸 두고,여인의 이마 한가운데다 정수리까지
반듯하게 가르는 가리마 금이 손톱만큼만 틀어져도 정신이 비뚤어졌다고 꾸중을 듣는 조선
사람들로서는, 그것을 쑹덩 잘라 낸다는 것이 도무지 말 같을 리가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신분이 미천하여 상투를 트는 것조차 금법이었던 백정이나 천민 판천들, 그리고
제때에 감고 빗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던 사람들은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어, 누가
무어라고 사기도 전에 스스로 "이 웬수엣 놈의 머리."를 깍아 버리기도 하였다.
"어 씨언하다. 어차피 내 한펭상 망건 쓰고 관자 달고 갓 써 볼 일 없는 머리, 자고 나도
빗질헐 새 없고, 떡이 져도 깜을 새 없는 디다, 흙투성이 땀 투셍이 이나 끓고 서캐 실어,
하루 죙일 긁니라고 머리 속이 패이는디, 머리가 개법게 날아갈 것맹이네 기양."
"싹 깍어 불면 더 씨언허제이. 중대가리맹이로." 택주와 춘복이는 한바탕 목을 젖히고
뱃속까지 들여다보이게 웃었다.
처음에는 다시 없는 불상한놈이나 아니면 머리에 바람 든 개화꾼들이 거치없이 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단발이, 하루 가고 이틀 가면서 한 사람 건너 두 사람으로 번져 나가,
드디어는 학생이 있는 집을 말할 것도 없고 웬만히 점잖은 장년들에 이르기까지, 으레
단발을 하는 것으로 알게끔 되어 버린 지금, 밖에서 보아 향내 나는 양반이라 하는 매안의
문중에서도, 가문을 지켜야 하는 종손 이기채를 비롯하여, 문장 이헌의와 그의 재종
이징의같이 항렬과 언치가 높은 노인 몇을 제하고 나면, 거의 모두가 단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녀자들은 아직도 감히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없겠지만, 그것까지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부터인가 조선 사람이 흰옷 입는 것 또한 삼엄하게 금하여, 물정 모르고 장에
갔던 사람들이 길 모퉁이에 숨어 있다 쏘아대는 검은 물총 벼락을 맞아, 무명 바지
저고리에 그만 흠뻑 먹물을 뒤집어쓰고는 돌아오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으니, 한번 먹물이
튄 옷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하릴없이 시꺼먼 검정물을 들여야만 했다.
"족제비같이 숨어서 물총 쏘는 놈들은 다 왜놈들."이라고 사람들은 더러워진 옷을
들여다보며 이를 갈았다.
모처럼 마음먹고 진솔 새옷을 해입고 길에 나섰던 이헌의도 이 뜻밖의 횡액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길 가다가 아차 잘못 흙탕물만 한 방울 튀어도 애석하여 몇 번이고 비벼 내개 되는
흰옷에 느닷없이 먹물이 범벅지면, 어느 누구라서 그 옷이 아깝지 않고, 어느 누구라서 그
순간에 수모를 느끼지 않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전 국민이 전시체제로 무장해야 한다면서 남자들은 바지에 각반을 치게
하고, 여자들은 긴 옷고름 자락치마 대신에 몸빼를 입게 하여, 도무지 지금까지는 없던
광경이 생겨났다.
"참으로 물풍이로다." 이헌의는 탄식하였다, 속곳 고쟁이 같은 몸빼를 입은 채 마을로
들어오는 읍내 아낙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그는, 복장이 그렇지 않더라도 내외를 해야
하였겠지만, 하도 어처구니 없어 오히려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던 것이다.
매안만 하더라도 도회나 읍내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이요, 정거장에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어서, 거센 바깥 바람이 그대로 몰아치지는 않는지라, 마을 안에서는
구습이 지켜지고 있었지만, 누구라도 출입을 할 때는 시속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은 소위 대동아전쟁 때였던 것이다.
이렇게 어지러운 시절 속에서도 염량은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고 동지 섣달이 지나 다시금
정원 초하루가 되어 설을 맞이하니, 양력설을 쇠라,쇠라, 하는 면 서기의 강요 독촉이
아무리 빗발쳐도 사람들은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여전히 음력 설을 '설'이라 하였다.
이것만은 상투를 잘랐거나, 혹은 각반 찬 당꼬바지, 몸빼, 그리고 창씨개명을 하고 안한
것에 상관없이 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다.
명절. 그것은 어미의 품이었다.
이렇게 세상살이가 고되고 서러워 온몸이 다 떨어진 남루가 될 수록 어디에서도 위로
받지 못하는 육신을 끌고 와 울음으로 부려 버리고 싶은 것이 바로 명절이었다. 그 울음은
정중 엄숙한 차례나 세배로 나타나기도 하고, 얼음같이 차고 푸른 하늘에 높이 띄워 올리는
연이나, 마당 가운데 가마니를 베개처럼 괴고 뛰는 널, 혹은 방아네 둘러앉아
도.개.걸.윷.모, 소리치며 노는 윷놀이로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 놀이들이 토하는 함성과
흥겨운 노랫소리는 서럽게 뭉친 울음 소리였다.
찢기고 빼앗기어 가진 것 하나도 남지 않은 빈 몸뚱이에 대나무 속같이 텅 빈 창자를
눈물로 채우고, 정월 대보름날 타오르는 달집 앞에 둘러선 마을 사람들은, 검푸른
밥하늘로 터지며 현란한 불티를 날리는 대나무 폭죽 소리에, 와아아, 한 무리 함성을
터뜨린다.
먹을 것이 없다고 대나무도 없으랴.
비록 그 껍데기 다 허옇게 벗겨 냇다 하지만, 산에 가면 또 소나무가 없으랴.
비록 그 껍데기 다 허옇게 벗겨 냈다 하지만, 산에 가면 또 소나무가 없으랴.
대나무로 울을 하고 생솔가지 쟁여 넣은 달집은, 매안에서도, 고리베미에서도, 검은 연기
흰 연기를 뭉글뭉글 올리며 하늘까지 닿도록 불꽃을 일으켜 태우니, 투욱,투욱, 이글거리는
불꽃 내려앉은 소리에, 불각이는 소리, 징 치고 꽹과리 치는 풍물 소리가 문고리에
손이 쩍쩍 들러붙는 한겨울 달밤의 복판을 투명하게 울리고 있었다.
옹구네는 저녁밥을 누구보다 일찌거니 먹고는, 공배네 평순네도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잰걸음을 놓아 고리배미 쪽으로 갔다.
해마다 이렇게 대보름날 저녁이면, 거멍골 사람들은 고리배미로 달집 구경을 가곤
하였다. 매안에서도 달집을 태우지만 그곳은 서슬이 푸르러 문중의 자기네 종족끼리나
흥겨울까, 호제.노비들은 상전들 치다꺼리 하느라고 놀지도 못할 뿐만아니라, 혹 옆에서
구경을 한다 해도 소리 없이 기웃거리기나 할 뿐 언감생심 함께 뛰고 손뼉을 칠 수는 없는
처지여서, 이들은 그보다 좀 만만한 고리배미로 가는 것이었다.
고리배미는 각성바지 산성촌이라 굳이 무슨 집안 누구 자손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어디
타촌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텃세로 박대하는 일도 없었으며, 백정.당골, 사천.팔천이라 해서
동좌석을 안할 만킁 모질게 하지도 않았으므로
"내가 살기는 거멍굴에 살어도 본시 상민이라, 백정년도 당골년도 아닌디 즈그들허고
어울려서 어깨춤을 못 추까 머."하는 심사도 있어, 옹구네는 으레 고리배미로 갔던 것인데,
비슷한 처지의 공배 내외, 평순네, 춘복이 들도 모두 달그림자 앞세우고 동행을 하였다.
물론 거멍굴에서 달집을 만들어 태우면 더 좋을 일이겠지만, 오막옴막 몇 가호 되지도 않는
소쿠리 속이라 누가 그렇게 커다란 달집을 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또 세우려 해도 대밭
가진 사람이 없어 대나무 얻기도 어려웠다. 대나무 농사도 재산이어서 애지중지 아끼는
왕대를 낫으로 찍어 와야 하는 일도 수월치 않았다. 그것도 한 집에서 다 얻을 수는
없었으니, 인심 좋은 대밭 주인들을 찾아가 한 다발씩 얻어서 이 집 저 집 것들을 한데
모아야 비로소 달집 울을 두를 수 있었다. 그것이 서로 집안간이라면 당연히 그럴 줄로
알아 대나무를 내주지만, 아닌 경우에는 안면을 보아 차마 거절하지 못할 때에나 추렴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 대나무를 찍어 가라고 했다 하여 낫 가진 사람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주인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그가 가리키는 것으로 쳐냈다. 그러나 때로는 엉뚱한
놈을 치기도 하여 두고두고 주인속을 애돌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대나무를 얻을 재주가 거멍굴 사람들한테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거멍굴에는 풍물이 없었다. 그러니 흥이 날 리가 있겠는가. 결국 한
마장 좀 못되는 이웃 마을 고리배미로 가는 것이, 사람도 많고 달집도 크고, 흐드러지게 놀
수도 있어 그리고 가는 것이다.
고리배미에서 달집을 태우는 곳은 늘 비오리네 주막 옆, 적송의 무리가 구름을 이는
삼거리였다.
별로 볼 만한 풍치가 없고, 거기 올라가 달맞이를 함직한 동산도 없는, 해빠닥한 마원의
형형한 지형에서 어찌 꿈같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 숲 머리 뒤로, 속이 시리게 차고
맑은 보름달이 떠오르는 풍광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달이 뜨면 비오리는 늘 주막 앞에 평상으로 나와 앉아 혼자서 소리를 하였다, 그저
배우다 만 소리라 명창은 못되지만, 달이 밝아 잠 안 오는 밤이면, 그 소리가 길고도 깊게
적송의 둥치와 머리를 휘러 감고 마을 안 갈피로 파고들어, 공연한 사람을 뒤척이게 하는
소리였다.
어아아 꿈 속에서 보던 님을 산이 없다고 일렀건마안
오매불망 그린 사람 꿈이 아니면 어리 보리
천리 만리이이 그린 니임아아
꿈이라고 생각 말고 자주 자주 보여 주면 너와 일생을 지낼란다아
아이고오 데에고오 허허어야아 성화아가아 나았데에 에에에에
꿈이로다 꿈이로다 세상은 모오두우 꿈이로오다
너도 나도 꿈 속이요오 이것이 모두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이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아아 네가 꾼 꿈을 두고서 무엇을 헐끄나아
아이고오 데고오 허허어 나아아 성화아가아 나았네에 에에에에
비오리는 새초롬한 맵시로 하얀 목을 뽑아 올리며, 달집 앞에서도 소리를 했다. 한바탕
풍물로 농악을 놀고 나면 사람들이 기어이 끌어내 그네의 소리 한 대목을 듣고는,
비오리 어미가 내놓은 동이에서 막걸리 한 사발씩을 떠먹곤 하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꽹과리를 꽤꽹 꽤꽹 울리며 달집을 돌았다, 타오르는 달집의 불너울이 비오리 낯빛을 붉게
물둘일 때, 달은 상공의 중천에 이르는 것이다.
마음먹은 일이 있어 일찌감치 해 떨어지기 전데 고리배미로 온 옹구네는, 비오리네 주막
안을 힐끗 들여다보았다.
"오늘 바뿌겄네잉." "오시요오?" 안데서 내다보고 대답하는 사람이 마침 비오리인지라
내심 잘 되었다 싶은 옹구네는 냉큼 안으로 들어섰다.
비오리는 남치마에 연두 저고리를 막 꿰어 입고 있었다. 그네가 옷고름을 매며 새침한 듯
갸웃이 고개를 들고는 눈꼬리를 흘리며, 아는 사람 오느냐고, 시늉으로 물었다.
아이고, 망헐 년, 색기 허고는, 너도 참 주막각시 팔짜로 천상 타고났다. 팔짜 도망은
시상 없어도 못헌다등마는 낯반대기가 저렇게 빚어논 것맹이로 배꼬롬히 생겼이나, 니
팔짜가 순탄허겄냐.
동구네는 속으로 공연히 샐쭉해지는 마을믈 사리면서 "방으로 들으가도 되까아? 하이고,
추워야. 시안에는 거그서 여그도 걸어올라먼 한탬이여이? 입이 다 얼어서 말도 지대로
못하겄네." 하고는 비오리 눈치를 보았다.
"들오시오." 비오리는 웃목에 놓인 분통과 연지곽을 한쪽으로 밀었다.
"아이구, 나. 오다가 벨 소리를 다 들었그마안."
옹구네는 화장품 밀어낸 자리에 웅크리고 앉으면서 팔짱 낀 어깨를 한번 후를 털고는,
아닌게 아니라 추워서 파랗게 돋아난 소름이 아직 가라앉기도 전에 말문을 떼었다.
이런 말일수록 막 들은 것처럼 숨가쁘게 말해야 듣는 사람도 실감이 나서 바로 또
다른사람한테 옮길 것이라고 그네는 생각했던 것이다
더구나 조금만 있으면 해는 지고 달이 떠올라 온 동네 고리배미 사람들이 다 몰려 나올
터이니, 달집을 태우며 뛰고 구르는 그 사람들의 흥겨움 속으로 독한 약물같이 소문이
퍼지도록 하려면, 지금 말해 놓는 것이 제때가 아니랴.
오늘밤 잔치는 길고 사람들은 밤을 새울 것이매."무슨 소리간디?" 남의 소문에는 이골이
난 얼굴로 비오리가 고개를 돌렸다.
"양반.양반. 허드니만 그 사람들도 속을 까보먼 참 그런 것이 있드만잉. 아나 그런디
이런 말은 잘못 나가면 큰일날 소리디이. 무단히 놀랜 짐에 한 소리 했다가 끄집헤 가서
작신 뿌러지게 뚜드려 맞고는 꼼짝없이 죽을랑가 모른다고오."
"머 얼매나 무선 소문이간디 그렇게 벌벌 떨어감서."
"아이고오, 추워서도 떨리고, 겁나서도 떨리네이, 비오리. 내가 이런말 허드라고 어디
가서도 말 안헐랑가? 혼자만 득고 말어얀디.잉?"
"헤기 싫으면 마시요오. 그쎄잇 거 안 들어믄 그만이제, 넘으 말이머 배부르다고 줏어
듣고, 죽네 사네 허는 소리를 내가 듣는다요?" "아이구, 사참해라아."
옹구네가 얼른 말을 끄집어내지 못하여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옴질옴질 하고 있는데,
비오리는 더 채근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그래야 더 빨리 말을 하리란 것을 건너짚어 본 것이다.
"저그...매안에 원뜸 오루꿀덕 강실이 말이여." "그 작은아싸가 왜?" 그제야 비로소
비오리는 의아하다는 낯색으로 옹구네를 바라보았다.
"작은아씨는 무신. 홰냥년이등만." "이?"
눈을 크게 뜨는 비오리 뒤쪽에 닫힌 덧문이 벌컥 열리면서 그 어미가 찬 바람을 몰고
들어왔다. 주름진 턱을 떨며 어금니를 딱딱 마주티는 것이 어지간히 추운 모양이었다.
"무신 이애기들히여?" 아랫목 요대기 아래로 손을 집어 넣으며 비오리어미가 물었다.
딸내미의 놀란 얼굴이 심상치 않게 짚인 것이리라.
"나도 모르겄네. 무신 오루꿀덕 강실이가 홰냥년이당가가." "으이?"
비오리어미도 순간 놀라 무슨 대꾸를 못하였다.
언제 마주서서 똑바로 볼 일도 없는 애기씨였지만, 사람들이 오가며 하는 말로
짐작하기는, 참으로 음전하고 귀태나는 규수라고 알고 있던 그 큰 애기가 화녕년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다.
"무신 말을 잘못 들었능게비제." 비오리어미가 못 미더워 고개를 짜우뚱하며 옹구네를
바라보았다.
"앗다, 참말로. 엥간헌 사램이 헌 말이먼 내가 요러고 숨이 넘어가겄소? 내 눈으로 본
거이나 똑 한가지로 틀림없는 사램이 그러는디."
찰진 입귀에 허연 거품이 물리는 옹구네의 말에, 비오리와 그 어미는 어느결에 흘린 듯이
빨려들어가, 눈을 번들거리며 바싹 다가앉았다.
옹구네 얼굴에 맹렬한 기름이 돈다.
"아니 그 대실서방님을 시방 여가 지시고 안허잖여?"
"하아, 그 일 있고는 도망을 가 부렀제이. 잘못을 해도 어디 데지간히 했어야 얼굴을
들제, 죽어도 못 들겄잉게 어조 먼 디로, 만주로 가분 것 아리라고? 그것도 벌세 언지 쩍
이애긴디? 안 오잖여. 여그는, 당최 빗김도 안히여. 소식도 없고, 아매 영 인자 안
올랑게비여, 그렇게로 집안에 할머니 초상이 나도 안오제, 해가 바뀌어 설이 되야도
안오고, 그 가문에 그 재산에 그 학식에, 머이 아쉬서 만주 벌판을 헤메고 댐김서 집을
두고 못 와아. 긍게, 다 지은 죄가 있잉게 그러제. 강실이도 나이 몇 살인디 그런 집안으로
아직끄장 시집을 못 가고 았겄는가잉? 설 쇠야서 스물하나 아니라거? 늙었제잉. 인자,
고동이 나와 부렀어. 그렁게 낮말은 개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늘 아래 누가 알
거이냐, 싶어도 소문이 나는 거이 인간사여. 알게 모르게 소리 새서 혼인헐 만헌 디는 다
그 소믄 들었능가도 모르제. 아 사람 눈치란거이 거 비상헌 거 아니여? 우리가 사람 저뻐
바도 말이여. 엉겁질에 헌 일이지만 사촌간에 상피붙었다먼 이런 상놈들도 맞어 죽는디.
양반은 더 무섭겄지. 가문이다 성씨다 험서 덕석에다 몰아서 쥑이고 안 그럽디여? 그전에도
왜."
옹그네는 제가 전에 궁리해 놓은 일도 있는지라 장담하고 나섰다.
"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에 올라앉는단 말도 있기는 있지만, 하이고매, 시상에, 그게
그렇그마잉."
비오리어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옹구네 입김이 불길같이 뜨거웠다. 그 입김에
묻은 말이 비오리와 그 어미에게 옮겨 붙은 것이다. 이제 이윽고 오는 밤, 이 소문은
산더미 같을 달집처럼 활활 무섭게 타오르며, 그 달집 앞에 모여 선 사람들 속으로
일렁일렁 혓바닥을 너훌거려 번질 것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고리배미 불길을 넘어 이웃마을과 매안의 문중으로도.
서둘러 평순이를 앞세우며 사립문을 나섰다.
"감나무에 까치밥 냉게 놨는디? 왜 또 밥을 주어?" 작년 가실에 감 딸직에 한
개 냉게 놨잖이여? 꼭대기에."
"너는 어저께 밥 먹으면 오늘은 안 먹냐?"
안 그래도 명절이라 다른 날보다 나물 반찬도 많고 찰밥도 먹어 흥겨운데. 달
맞이를 한다고 제 어미랑 동산에 가는 것이 어린 마음에 못내 좋은지 강종강종
모둠발로 옆걸음을 치던 평순이가 또 묻는다.
"근디 왜 개는 밥을 안 준대? 아까 택주 아재네 놀로 가서 봉게로 누렝이가
굶어 갖꼬는 픽 씨러져서 기운이 하나도 없데?"
"개는 그렁 거이여. 보름날 개 밥 주먼 여름에 파리가 말도 못허게 꾄디야. 개
가 삐삐 말르고. 긍게 아조 ㄱ기는 거이여. 그러먼 갠찮당만. 아. 말도 있잖냐
왜. 개 보름 쇠디끼 헌다고. 넘 다 먹는디 안되기는 안되지. 지름내는 한 죙일
핑기는디 아무껏도 주든 안허고 그렁게잉. 까마구 간치도 챙게 멕이는 멩질날.
넘들은 찰밥 먹고 꽹매기 치고. 달은 뜨는디. 졸쫄 굶고 체다보는 달이 똥그람헐
랑가. 밥그륵맹일랑가."
말을 하던 평순네는 마침 고샅에서 마주친 공배 내외를 보고는
"가시게요?"
한다. 달겨드는 추위에 어깨를 부르르 떠는 공배네는 잿박 같은 머리에다 무명
목도리를 둘러스고 팔짱을 낀 모습이 썽클해 보인다. 늙은이 형용이 다 된 공배
의 갈퀴 손에는 홰가 들려져 잇었다. 아직은 서산에 노을이 붉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해는 지고 곧 날이 어두워질 더인데.
달은 한참 기다려야 떠오를 것이니. 사람들은 미리부터 그렇게 홰를 챙겨 들
고 가는 것이다.
달은 좀체 쉽게 뜨지 않았다.
평순네나 공배 내외보다 휠씬 먼저 동산으로 올라가 바위를 차지하고 선 춘복
이는 저만치에서 두세두세 올라오는 그들을 보고도 바위에 선 채로 움쩍도 하지
않았다. 한 번 내려서면 다시 올라가기 어렵기나한 것처럼.
"너 벌세 왔냐?"
공배가 다박솔 검은 무더기 틈에서 비죽 고개를 내밀며 위를 보고 알은체를
하였다.
"하앗따아. 부지런허다이? 저녁밥 먹으로도 안 오고 너 밥이나 먹었냐? 택주
네 누렝이맹이로 안 굶고? 금강산도 식후겡이라는디."
공배네가 바위에 버티고 선 춘복이를 아래서 올려다보며 물었다.
"먹기는 무신 밥을 먹어? 어디서 누가 주는 사램이 있어야제. 자가 지
손으로 멋 해먹을 놈이간디. 너도 얼릉 장개가 그라잉. 이? 존말로 헐 때 빌어.
달님한테. 달뎅이 같은 시악시 하나 보내 주시요오. 허고. 홀에는 꼭 장개가게
해 주시요오. 알었냐? 떡두께비 같은 아들도 하나 낳게 해 주시요오. 이놈아."
공배가 궤털이 허옇게 일어선 채 푸스스 재가 날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공배
네가 그 옆에서 웃었다. 그리고 얼른 옹구네 이노무 예펜네가 어디 있는가. 주변
을 훑어보았다. 다행히 옹구네는 보이지 않았다.
"너 그렇게 바우 몰랭이에 섰능 것 봉게로 달 볼라고 작심허고 왔능게비다잉.
무신 소원 있냐? 달님한테 빌라고?"
공배네가 반은 놀리며 묻는데 그 말끝을 공배가 무지른다.
"지성이먼 감천이여. 비는 디 당헐 장사 없단다. 빌어라. 빌어. 딴 거다 씨잘
디 없응게 지발 덕분에 연분 좀 만나게 해 도라고. 그것만 빌어라잉? 무단히 상
놈 자식 안 날랑게 장개 안 갈란다고 복 달어나는 소리 허지 말고."
"부정 탕만 멋 헐라고 나중 말은."
"나도 빌어 줄랑게 너도 빌어. 나는 인자 다 살었는디 머 더 빌 것도 없고. 저
망구텡이허고 그작저작 살든 대로 살다 가먼 되제."
그런데도 춘복이는 입을 봉한 채 단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택주네와 당골네 식구들이 저 아래서부터 무슨 이야기인가 주고받으며 얼어붙
은 동산 비탈 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멀리 고리배미 쪽에서는 풍물 치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이제 여기서 달맞이를 하고 나면 사람들은 고리배미 쪽으로. 달집 태우며 농
악하는 구경을 한바탕 하러 갈 것이었다. 그러나 달맞이만큼은 저 사는 제 동네
에서 하려고 늘 달이 뜨던 자리로 이렇게 올라오는 것이다. 내 동네에 뜨는 우
리 달님이어야 밤이면 밤마다 들여다본 내 속을 말 안해도 잘 알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까마구도 내 고향 까마구가 반갑다는디."
하물며 달님이야.
그해 들어 처음 맞이하는 보름달이며, 소원을 빌어야 하는 그 달님을. 곁방살
이 하듯 눈치보며 남의 동네 뒷동산에 가서 어정어정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거멍굴에는 거멍굴의 달님이 뜨고, 고리배미에는 고리배미의 달님이 뜨며, 매
안에는 또 매안의 달님이 뜰 것이었다.
춘복이는 달바라기로 서 있던 자리에서 고개를 뒤로 돌려 매안 쪽을 바라보았
다.
동향하여 앉은 마을 매안은 뒷 등에 서산 노적봉을 두르고 앞자락은 이쪽 거
멍굴을 보고 있으니 두 마을 사이를 가로막은 등성이만 아니라면 그 지붕이나
불빛들이 멀리나마 마주 보일 터이지만.
등성이에 가려져 매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춘복이의 눈에는 그 마을이 선하게 들어왔다.
개울을 건너 아랫몰과 중뜸에 이르는 고샅이며, 돌담과 대나무 울타리들이 어
우러진 굽이굽이에 붉은 비늘 돋은 적송 서너 그루씩 등천하는 기세로 검푸른
머리 드리운 정경, 그리고 검은 구름 덩어리가 위용으로 뭉쳐 있는 것 같은 골
기와 지붕의 원뜸 대갓집이며 솟을대문, 그리고 그 아래 다소곳한 머리를 아담
하게 수그리고 있는 오류골댁 초가지붕과 살구나무 둥치, 그 고목의 아름드리
뒤에 소리 없이 숨어 있는 작은아씨 강실이
강실이
춘복이는 그네의 모습이 떠오르자 어금니를 물었다. 그리고 점점 땅거미가 내
려앉고 있는 매안 쪽을 충혈된 눈으로 쏘아보았다.
서산에 걸린 겨울 노을은 이미 붉은 기운마저 가시고 잔광에 섞여드는 보라의
어스름이 노적봉을 어둠 속으로 잠겨들게 하고 있었다.
매안 위에 떠 있던 해가 진 것이다.
매안으로 해가 졌으니 이제 거멍굴 동산으로 달이 뜰 참이었다.
"소원을 빌라."
고 공배는 아까 말했다.
소원
춘복이는 그 말을 다시 한 번 되뇌인다.
그리고 둥그런 달이 하늘 높이 떠오르는 광경을 마음속에 그린다.
달님. 내 소원 하나만 들어주시오.
부디 매안에 작은아씨. 내 사람 되게 해 주시오.
그 말을 삼키고 있는 춘복이의 가슴 한복판에서 달이 둥두렷이 떠오른다. 참
으로 희고 맑은 달이었다. 눈이 시릴 만큼 차가운 달빛을 투명하게 머금은 달은,
그의 흉중을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너무나도 맑아서 손
끝만 스쳐도 그대로 지문이 찍히는 명경처럼.
그 달은 바로 강실이의 얼굴이었다.
춘복이는 행여 그 달이 흔들릴세라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그리고 동녘 하늘 저만큼을 숨죽이어 바라보았다.
그러나 달은 좀체로 쉽게 뜨지 않았다. 서산 노적봉이 완전히 어둠에 잠겨들
고. 하늘은 시리게 푸른 갈메빛에서 까마귀 등허리같이 검푸른 야청으로 깊어지
는데 별들이 돋아나는 그 너머 어디서도 달이 뜰 기미는 비치지 않았다.
"달 언제 뜬대? 해 떨어졌는디. 캉캄허그만 왜 시방끄장 안 뜬당가? 잉? 아고.
추워라."
평순이가 발이 시려 동당거리며 제 어미한테 묻는다.
"인자 뜨겄지. 해찰허지 말고 눈 똑 뜨고 바야지 글 안허먼 놓쳐."
"달이 어디로 가간디 놓친대?"
"시끄럽네. 그러라면 그러제."
평순이가 어미 말에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달은 이상하게도 기다리면 더 안 뜬다. 그런데 또 눈금 재듯 산봉우리에 눈을
맞추고 초저녁부터 꼼짝도 하지 않으며 월출을 기다리다가도, 아주 잠깐 눈 깜
박할 사이 옆엣사람하고 이야기 한 마디 하거나 옆눈을 판 순간. 꼭 달은 그때
떠 버리는 것이다.
오래 기다린 심정을 놀리듯이.
보통 때는 초저녁이나 한밤중에 무심히 마당에 내려서거나 고샅길을 가다가
문득 올려다보면 언제 떴는지도 모르게 저 홀로 중천에 떠있던 달. 아깝게도 그
만큼이나 높이 오래 전부터 떠 있던 달.
그런데 이렇게 기다리면 새삼스럽게 달은 더디 뜨는 것이다.
춘복이는 점점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상하게도 달이 너무나 절실하게 기다려지면서 가슴이 무겁게 뛰었다. 그것
은 제의같았다. 이제부터 하려는 무슨 일에 대하여 신명에게 고하고 그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이 떠오르는 달은 그냥 단순한 정월 대보름 달이 아니라 그것이 곧 강실이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달을 맨 먼저 보고.
"달 봤다아."
내 것이다. 고함치며 차지했을 때. 그대로 강실이조차 내 것이 될 것만 같은
그러나 그 순간을 놓치면 그네 또한 그렇게 놓치고 말 것만 같은 초조함이 일었
다. 다른 때는 몰라도 오늘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염력이 둥근 달에 닿으면 그
것이 바로 강실이에게 투사되어 염력대로 될 것이라는 예감이 그를 강력하게 사
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온몸의 기운을 눈에 모았다. 그 눈에 핏발이 섰다.
바로 그때였다.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어두운 하늘이 트이면서 황금 눈썹같이 눈부신 달의 정
수리가 능선 위로 가느다랗게 비치었다.
"달 봤다아."
춘복이는 거멍굴 동산의 꼭대기 바위 날망에 올라 두 다리를 장승마냥 뻗치고
선 채로 두 팔을 공중으로 번쩍 치켜 올리며 부르짖었다.
그 소리는 사나운 산짐승이 달을 보고 잡아먹을 듯이 응그리며 무서운 용틀임
으로 으르렁거리는 것같이 들렸다. 아니면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오래 참고 참
아 온 울음을 한 목에 터뜨리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달 봤다아야."
비명에 가까운 춘복이의 고함소리가 동산을 뒤흔들며 공중에 울릴 때 함께 올
라온 거멍굴 사람들은 달을 향해 넙죽이 큰절을 올렸다.
소원을 비는 것이다.
해가 지기도 전에 일찌감치 할랑거리며 고리배미로 앞서 간 옹구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백정 택주네 붙이들과 당골 백단이네 푸네기, 그리고 공배네
내외, 평순네들이 우줄우줄 뒤섞인 거멍굴 동산은 떠오르는 보름달 아래 검푸른
인광을 띄우며 술렁술렁 흔들렸다.
남들이 다 하는 대보름 달맞이여서 춘복이도 어려서부터 정월 보름날이면 으
레 마을 사람들을 따라 동산 위에 오르고 또 몇 번인가는 호기심에 장난 삼아
달 봤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한 번도 절실하게 소원을 빌어 본 일도 없었
고 빌 만한 소원 또한 없었다. 또 만일 소원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달이
무슨 힘을 가져 그것을 이루어 주리라고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달맞이가 어디 오늘 같았으랴.
춘복이는 마음에 먹은 일이 있어. 힘이 되기만 한다면 풀뿌리, 바윗돌, 지나가
는 바람한테라도 절절히 빌고 싶은 심정이었으며 꾀를 빌릴 수만 있다면 사람은
그만두고 들짐승, 날짐승한테라도 엎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며칠 전부터 옴짝도 하지 않고 제 오막살이 농막에 웅크린 채, 그는 오직 한
사람 강실이를 생각하며 궁리에 궁리를 기웠다가 뜯어냈다 뒤척이던 끝에 오늘
달맞이에 일의 성패를 건 미친 사람처럼 단걸음에 내달아 누구보다 먼저 동산
위의 날망에 올라선 심정이야.
그리고 드디어는 이렇게 달을 보고 만 것이다.
달을 차지하고 만 것이다.
춘복이는 숨이 막혀 지레 가슴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작은아씨를 내 사람 되게 해 주시오."
북받치는 이 말을 속에 삼키고 달을 향하여 그는 어금니를 윽물었다.
"언강생심 그런 일을 생각이라도 허는지 알먼 그대로 끄집어다가 덕석몰이 두
드러 패고 종당에는 뼈다구 뿐질러서 동구 밖에 패대기칠 거인디? 어 매안냥반
들 하루 이틀 저꺼 봐? 더군다나 이게 무신 과부 보쌈도 아니고 금쪽 같은 양반
댁 시집도 안 간 처녀를 날도적질해 오는 일인디. 살기를 바래?"
하고 오금박으며 조근조근 덤벼들던 옹구네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목심이 서너 개 되는게비네잉."
하던 말도.
"상민으로서 양반을 욕되게 하는 자."
는 오랜 향약의 규범에서도 무거운 극벌에 처하는 것을 아무리 근본 없는 춘
복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 근본이 없는 상놈이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
도 이 조목만큼은 더욱 명심해야 될 것이었다.
"양반 세도 말해서 멋 헌다냐? 무단히 입만 아푸제."
공배도 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아. 너 그 새비젓 장시 이얘기 몰르냐? 머 얼매 되도 안헌 이얘기다. 그게. 새
비젓통 지게 욱에 똥그람허니 지고는 그놈이 목청이 컸등가 왜가리 소리를 험서
매안골을 고샅 고샅 댕기는디. 부지런도 했등갑서. 이른 새복부텀 새비젓 사라고
외치등게비드라. 모두 집집마동 아침밥들 허니라고 귀뚝에서 연기가 나쌍게
로 한 접시라도 더 팔고자퍼서 그랬겄지맹. 새비이저엇. 멩라안저엇. 어리굴저엇
있어요오. 허고는 젓장시들은 외고 댕기지 왜. 아 그런디. 아랫몰 지내 중뜸 지
내 원뜸 미처 못 갔는디. 머심이 하나 오드니 시끄럽다고. 샌님께서 글 읽으신디
소란허다고 죄용히 허라신다고 헌단 말이여? 새복 정신이 산란허다고 동네 복판
에서 어떤 불상놈이 저렇게 외장을 치냐고. 여그가 어딘디. 굳이 새비젓을 꼭 팔
아야겄으먼 죄용죄용히 사겄단 집이나 들으가서 소리 없이 팔 거이제. 저 무신
해괴헌 짓이냐고 꾸지람이 대단허시다. 그랬단 말이제. 근디 이노무 새비젓 장시
가 먼 물정을 몰랐든지 안 그러먼 심사가 뒤틀렸든지 하이간에 그 말을 금방 듣
고도 또 새비젓 사라고 외치네. 새비이저엇. 맹라안저엇. 어리굴저어엇 있어요
오."
"잘했구만."
"머이 잘했냐. 이놈아. 샌님이 진노를 허계서 그 새비젓 장시를 번쩍 들어다가
젓통째 지게째 기양 방죽으다 패대기를 쳐부렀단다. 괘씸허다고 왜 그 원뜸 조
께 미처 못 가서 있는 둠벙 말이여, 거그다. 그거이 솔찮이 짚지."
"샌님이 기운도 좋등갑소. 발 개고 앉어서 글만 읽는디 먼 심으로 젓장시를 지
개째 들어요? 젓통이 또 얼매나 무건디."
"아. 그런 일을 머심이나 종 시기제 어뜬 양반이 직접 나선다냐? 체신없이 아
까왔든 그 머심이랑 종이 달라들어서 했제."
"아앗따아. 체신? 그 점잖은 체신에 새비젓은 어뜨케 먹능고? 그것조께 팔어
서 목구녁에 풀칠이라도 헐라고 허는 인생을 불쌍허게는 못볼망정 젓 사란 소리
시끄럽다고 방죽으다 처박음서."
"그게 매안냥반들 성깔 아니야. 대쪽 같고 쇠꼬챙이 같고."
"그 대쪽으로 대관절 얼매나 상놈을 후려치고 그 쇠꼬챙이로 또 얼매나 상놈
들 인생을 찌르고 못박었으꼬. 상놈은 상놈 된 죄로 그 짓 다당허고 그래서 어
뜨케 된다요? 그 젓장시."
"머이 어뜨케 되야? 풍덩 빠져서 허우적거림서 살려 도라고 어푸어푸 빌고 지
게는 벗어져. 젓통은 엎어져. 새비젓이 둥둥 떵댕겠지."
"썩을 놈. 칵 죽어 불제."
"누가?"
"어뜬 놈이든지."
"야 좀 바. 너 시방 누구보고 허는 소리냐?"
"누구먼 멋 헐라요?"
춘복이는 공배의 다음 말을 미리 짐작하고 있는 터라 미리 무질러 말을 잘라
버리고 말았지만, 물에 빠져 젓국물을 뒤집어쓰고는 살려 달라 애원하는 젓장수
가 가엾고 안됐다기보다는 그만한 일로 그렇게 당했다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진
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대로 빠뜨려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격렬하게 느꼈었다.
그 젓장수의 남루한 무력함이라니.
그렇게 살라먼 차라리 죽어라.
죽어 부러라.
그리고 그보다 더 가눌 수없이 격력하게 끓어오르는 것은 매안의 샌님에게 느끼
는 증오의 살의였다.
글 읽으신디 소란허다고? 새복 정신이 산란허다고? 어뜬 불상놈이 동네 복판
에서 저렇게 외장을 치냐고? 여그가 어딘디?
대관절 글이 머이간디. 대관절 양반의 새복 정신이 머이간디. 어뜬 놈은 꼭두
새복 넘 다 자는 시간에 짠내 찌들은 젓통 짊어지고 한 종재기라도 더 팔아 보
겄다고 목이 쉬게 외장을 침서 휘청걸음을 걷는디.
어뜬 놈은 책상다리 점잖허게 개고 앉아서 발부닥 씰어 감서 공자왈 맹자왈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노래를 부름서. 글이요, 정신이요. 허능 거이여? 시방.
양반은 즈그 문짜로 글 읽어야 살고. 정신 갖춰야 살겄지마는 상놈은 상놈대
로 젓사라고 외어야 사능 것을 살자고 지르는 소리를 패대기쳐? 여그가 어딘디?
그래. 여그가 어디냐. 여그가 어디여? 사람 사는 시상이다. 사람 사는 시상에 사
램이 사람끼리 이렇게 서로 틀리게 살어야니. 이게 무신 옳은 시상이냐. 뒤집어
야제. 양반은 글 읽어서 머에다 쓰고, 그 좋은 정신은 시렁에다 뫼셔서 무신 생
각을 허능고? 상놈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암서. 왜 그렁 것을 몰라? 무단
히 공부라고 헛짓하고 있능 거이제.
춘복이는 그 이야기 속의 샌님을 새우젓 장수처럼 방죽에 처넣어 흠빡 젖은
참혹한 몰골로 허우적이는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리고
"왜 양반은 양반으로만 살어야능가는 내비두고, 어째 상놈은 한 번 상놈으로
나먼 내리내리 대물려서 상놈으로만 살어야능가. 그 이얘기 좀 해 보시오."
그 얼굴에 대고 물었다.
나는 상놈 껍데기를 벗고 싶다.
나도 사람맹이로 살고 싶다.
나는 절대로 상놈 자식은 안 날랑게.
아아. 작은아씨. 내 자식 하나 낳아 주시오.
달님. 작은아씨를 내 여자가 되게 해 주시오.
작은아씨가 부디 내 자식 하나만 낳게 해 주시오.
춘복이는 달을 향하여 뻗쳐 올린 두 팔을 모두어 내리며 그대로 바위 위에 무
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깊이 머리를 조아려 절하였다.
그의 조아린 이마에 막 떠오르는 달빛이 비친다.
달빛 속에 강실이가 어린다.
예부터. 희고 맑아 아리따운 얼굴을 월용이라 하고. 꽃같이 어여쁜 얼굴에 고
운 자태는 화용월태라 하여 그 모습을 달에 비기었다. 그리고 여인이 덕이 있고
어디에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절세의 미인일 때 월궁 항아라 하였다.
이는 여인이 곧 달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춘복이는 강실이의 얼굴을 제대로 본 일이 없었다.
다만 먼 발치에서 옷자락인 듯 그림자인 듯 아니면 그저 무슨 빛깔인 듯. 언
뜻 스치며 본 것이 전부였으니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대도 달
같은 그네의 모습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도렷하고 선연하였다.
아아. 작은아씨
춘복이는 터지는 한숨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 것으로 맨들리라.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그의 눈앞이 누우렇게 덮치듯이 밝았다.
그 불잉걸같이 이글거리는 누우런 빛에 부딪친 순간 춘복이는 너무나 악연하
여 질린 채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것은 거대한 달이었다. 온전하게 둥그런 얼굴로 검은 파도처럼 첩첩한 산
능선을 발 아래 치맛자락같이 거느리면서 떠오른 보름달은 놀랍게 크고 너무나
가까웠다. 무엇만이나 하다고 해야 할까. 춘복이는 그렇게 큰 달을 이렇게 가까
이서 본 일이 없었다. 얼른 보면 커다란 방죽만 한 것 같지만 누우런 황금빛 용
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빛의 물살을 끝없이 뒤채는 이 달에는 어림없는 말이었
다.
보통 때 무심코 올려다보면 둥그렇게 눈 안에 들어오던 그 조그만 달이. 지금
은 그의 두 팔을 벌린 아름으로는 당치도 않게 거대하여 그것은 떠오른다기보다
는 흥건하게 무거워서 금방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달은 그의 머리 위에 뜬 것이 아니었다.
싯누렇다 못하여 화광을 받은 것처럼 붉은 주홍빛을 머금고 있는 그달은 바로
춘복이의 눈앞에 바짝 들이밀려와 있었다. 마치 놀라 바라보는 춘복이를 그대로
덮쳐 한 입에 삼켜 버릴 듯한 기세로.
가슴패기 맞닿게.
그는 숨이 질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얼른 다물지를 못하였다.
달은 거대한 빛의 아가리였다.
그 아가리의 빛이 장마진 붉덕물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회오리 돌았다. 한
번 빠지면 못 나오는 늪이 용틀임으로 뒤집히는 아가리.
그것은 두렵고 무서웠다.
춘복이의 등줄기를 써늘한 소름이 훑어 내렸다.
저 달의 어디에 대고 인간의 소원을 빌어 볼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갈피에 고인 시름과 눈물을 서럽게 위로해 주기는커녕. 아무것도 용서
하지 않고 빨아들여 빛으로 덮쳐 버릴 것 같은 그 붉누런 빛의 밀물을 칼로 도
려낸 듯 차갑게 뚜렷한 원으로 삼엄하게 가두는 달의 서슬에 몇 날 별빛마저 무
색하게 지워져 버린 겨울 밤 하늘은 속이 시린 궁청빛으로 깊어 더욱 시퍼렇다.
그 앞에 홀로 마주선 춘복이는 한 점 티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달빛에 휩쓸리면 그 심연의 수렁 속으로 말려 들어가 다시는 헤어나오
지 못할 아니면 그 물살에 떠밀려 곤두박질치며 떠내려 갈.
달은 무서운 기세로 점점 가까이 부딪칠 것처럼 다가왔다.
그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견고한 빛의 바위덩이 암벽 같기도 하였다.
아아. 차라리 저 달에 부딪쳐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죽고 싶다.
춘복이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달을 향하여 가슴을 내밀고 온몸으로 버티고 마주섰다.
달은 아까보다 숨막히게 더 가까웠다.
가까이 온 달은 다시 싯누렇게 뒤집히어 붉덕물을 일으키면서 거뭇거뭇 멍든
골짜기로 춘복이를 빨아들여 삼키려 하였다.
내가 너를 삼키리라.
어금니를 물고 주먹을 부르쥔 그의 두 다리가 후드르르 떨린다.
그는 다리를 엉버티어 굳게 딛고 단전에 힘을 모으며 달을 뚫어지게 노려보았
다. 그의 부릅뜬 눈방울에 달빛이 비쳐 번들거리고 동자 한가운데로 달이 들어
와 박힌다.
춘복이는 입을 크게 벌리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달의 싯누렇게 뒤집히며 붉덕물을 일으키는 소용돌이 달빛
을 깊이깊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목으로 빨려들어오는 달빛은 가슴을 깎으며
아프게 비집고 내려가 다시 폐장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가슴이 벌어져 쪼개질
것 같은 통증에 그는 잠시 숨을 멈추었지만. 그곳에 뼈다귀처럼 걸린 달빛을 아
랫배로 밀어내리고 다시 무서운 기세로 흡월을 하였다. 머리꼭지 정수리에서 어
깨뼈와 가슴팍. 그리고 단전과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터질 만큼 차 오르도록 달
빛을 들이켜는 춘복이의 몸은 둥그렇게 부풀어 올랐다.
내가 너를 삼키리라.
그는 드디어 달빛에 딸려 오는 달이 덩어리째 삼켜질 때가지 그렇게 사나운
짐승처럼 서서 흡월을 할 작정인 것 같았다.
8. 인연의 늪
신라 성골 진평대왕은 기골이 장대하고 위엄이 있어 그 키가 십일 척이나 되
었다. 그래서 곤룡포를 지으려고 비단을 펼쳐 놓으면 방안이 마치 넘실거리는
붉은 바다 같았다.
그리고 늠름한 가슴과 우뚝 솟은 두 어깨에 발톱이 다섯 개 달린 황룡의 꿈틀
거리는 무늬를 금실로 수놓은 용포를 입은 그의 위용은 흡사 붉은 구름 속의 산
악 같았다.
하루는 왕이 창건한 내제석궁 천주사에 거동하여 섬돌을 밟자. 그 힘에 돌계
단 두 개가 한꺼번에 부서졌다.
이에 왕이 좌우 사람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돌을 옮기지 말고 그대로 두었다가 뒷날에 오는 세상 사람들이 보도록 하
라."
이를 본 사람들은 왕의 힘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 찬탄하며 깊이 흠모하고
우러르니. 이것이 바로 성안에 있는 다섯 개의 움직이지 않는 돌 중의 하나이다.
또한 왕이 즉위한 원년에 홀연 하늘의 사자가 대궐의 뜰에 내려와
"상제께서 내게 명하여 이 옥대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하고 맑은 소리로 말한즉. 왕이 꿇어앉아 친히 이것을 받았다.
하늘이 내려준 이 옥대는 길이가 물경 십 위로 열 아름이고 장식고리가 예순
두 개나 되었는데 찬연한 순금에 푸른 옥으로 새기고 화려하게 꾸민 허리띠였
다. 왕은 이것을 소중하게 받들어 해마다 동지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교와 하지
에 땅에 제사지내는 사, 그리고 종묘의 큰 제사가 있을 때는 언제나 이 옥대를
띠었다.
구름 너머 높은 하늘이 주신 긴 옥대는
임금의 곤룡포에 아름답고 알맞게 둘리어 있네
우리 임금 이제부터 몸 더욱 무거우시니
이 다음날엔 쇠로 섬돌을 만들 것이네
백성들은 모두 칭송하여 이렇게 노래 불렀다. 심지어는 고구려 왕까지도 이를
알고는 신라를 치려 하던 계획을 중지하였다.
이러한 성골이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없어. 공주만 셋을 두었다.
그 중 맏이는 어질고 덕망이 높아 훗날 부왕이 후가 없이 붕어하자 백성들의
옹립으로 즉위하여 선정을 베풀고 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첨성대를 세워 우주를
헤아리고자 한 선덕여왕이 된 덕만공주이고, 둘째는 후일 문흥대왕으로 추증된
각간 김용수에게 출가하여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가 된 천명부인이다. 그
리고 셋째는 미염무쌍. 그 자태가 달빛 아래 모란보다 아름답고 어여뻐 감히 그
곁에 견줄 사람이 없는 절세의 미인으로 꽃이 오히려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는
선화공주였다. 거기다가 공주는 마음이 온화하고 얼굴빛은 단정하였다.
이만한 아름다움이라면 인적 없는 궁곡의 민가에 숨은 처녀라도 소문이 나기
마련이어니 하물며 고귀한 신분의 금지옥엽 공주임에랴.
온 나라 안에 자자한 소문은 국경을 넘어 백제에까지 널리 번지었다.
백제의 서울 사비성 남쪽 연못가에 오막살이 집을 짓고 홀로 된 어머니와 함
께 단둘이 살고 있는 그 아들 장도 이 말을 들었다. 그는 일찍이 남편을 여읜
어머니가 어느 날 못 속의 용과 교합하여 낳은 아들이었는데.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지혜로워 꾀가 많고 무슨 일에나 신통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덕이 있고 너그러운 성품에 도량이 커서 실로
그 속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가난한 고로 항상 마를 캐다가 성중에 파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으니 나라 사람들은 그를 본 이름 대신에 마동이라고 불렀
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가 세상에 드문 미인이라."
는 말을 듣고 마동은 한 꾀를 생각한 후에 머리를 깎아 중의 행색을 하고 가
장 먹음직스럽고 맛있는 것으로만 고른 마를 한 자루 그득 담아 등에 짊어지고
걸어 걸어서 산 넘고 물을 건너 신라의 서울 금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가지고 간 마를 마을 마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니 달큰하고 신기한
맛에 아이들이 기뻐하며 따르는지라. 그는 이내 아이들과 친해졌다. 이윽고 마동
이 가는 곳마다 아이들의 무리가 모여들어 그를 에워싸고 좋아하자. 그는 동요
를 지어 아이들한테 가르쳐 주며 소리 높여 부르게 하였다.
선화공주님은
그스기 얼아 구고
마동방을
밤의 몰 안고 가다
선화공주님은
남모르게 그윽히 어우러 두고
마동 도련님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네
아이들이 있는 집의 추녀끝과 골목 골목에서 바람을 타고 울려 퍼지는 이 동
요는 삽시간에 온 서울에 가득 차고 넘쳐서 귀 달린 자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
이 없게 되었는데.
드디어는 대궐 안에까지 들리고 말았다.
함부로 뒹굴어 사는 저자의 상것들이라도 만인이 박자 치며 노래를 부르도록
몸을 가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거늘. 그냥 여염의 규수도 아니요. 만백성의 본
이 되어야 할 공주의 몸으로 저엄한 궁금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차마 입에 담기
해괴한 행실을 저질렀다 하니 근거 없는 노래가 어디 있으리.
조정의 백관들이 모두 나서서 왕에게 극간하였다.
이에 왕은 공주를 벌하여 멀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원방의 황막한 곳으로
귀양을 보내라 하였으니 공주의 아버지로 한 나라의 임금이요. 기골도 장하여
신장이 십일 척이나 되며 힘 또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섬돌을 밟으면 한꺼번에
두 개가 으스러져 부서지는 진평왕이 하늘이 몸소 주신 열 발 옥대를 띠고 있으
면서도 이만하신 대왕이 한낱 아이들의 동요에 불과한 소문 한 토막을 이기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음행의 소문이기 때문이었다.
왕의 권세로도 그것은 맞서볼 수가 없었다.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갓난아기 때부터 향기로운 방령에 이르기까지 어여쁘
고 아름다워 부왕에게 귀애받고 만사람들에게는 선망 칭송을 받던 공주가 그 모
든 것을 무참하게 빼앗긴 채 한순간에 더러운 죄인이 되어 내쫓기는 것은 오로
지 다른 것 아닌 '음행'하였다는 '소문'때문이었다.
소문은 연기와 같이 모양도 없는 것이 칼과 창 하나도 쓰지 않고 장수와 재상
과 임금을 점령하여 굴복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선화공주가 남루한 의복으로 먼 귀양길을 떠나 하염없이 걷고 걸으며
홀로 가고 있을 때 숨어서 뒤를 따르던 마동이 길가로 나와 공주에게 절하면서
시위하여 모시고 가겠다고 하였다.
지치고 외로웠던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 누구이며 무엇 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우연히 만났는데도 믿음직하게 여겨져 그에게 길을 의탁하고 함께
배고로 가다가.
이윽고 사로 마음이 맞아 한자리에 잠통하니.
노래가 그대로 맞고 말았다. 그때야 비로소 공주는 그의 이름이 마동인 것을
알았고 자신이 대궐에서 쫓겨나게 된 연유를 알게 되었다.
이에 그들은 귀양지로 가던 걸음을 돌려 같이 백제로 왔다.
마동은 훗날 백제 제삼십대 왕 무왕으로 등극을 하여 재위 마흔한 해 동안 굳
건한 왕권을 다지고 안정 강성한 나라의 세력을 만방에 떨치었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집요하게 신라를 침공하여 낙동강변으로 진출. 영토를
확장했으며 정복 전쟁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붕어한 뒤에는 무왕 생존시에 막대한 경비와 시간을 들여 동방 최대
규모의 미륵사를 창건하고 장차 궁성이 될 왕궁 평성을 축조하였으며 마침내는
천도하려고 했던 전라북도 익산 땅 팔봉면 신왕리에 비 선화공주와 함께 나란히
묻혔으니.
이름하여 쌍릉이라 한다.
"쌍릉은 오늘도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고 마동방 이야기는 민간에 널리 설
화처럼 퍼져 있지만 백제의 사비 시대 정치사에 우뚝한 획을 긋는 무왕을 삼국
유사의 서동설화에 연결시켜 단순히 일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
이라고 봐."
강호는 어느 해 설날 강모와 강태 종형제와 함께 마주앉아 담소하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 이야기에서도 나름대로 건질 것은 있으나 역사를 거꾸로 더듬어 유추해
보면 전혀 다른 면이 확연히 잡힌다. 우선 무왕이 누구인가 보자. 그는 백제 제
이십구대 법왕의 아들이요 제삼십대 의자왕의 아버지인데. 그의 아버지 법왕 시
대에 백제는 그 당시 삼국 가운데 가장 강성한 나라였어. 그래서 법왕 시절에
영토 확장이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졌지. 그래서 자연히 신라 변방을 많이 치게
되었는데 신라로서는 괴로운 일이지. 이때 백제 법왕은 후손에 왕통을 이을 적
자가 없었다. 무왕은 서손이었어. 그러니까 법왕이 마한족의 여인을 비로 맞이하
여 낳은 아들이 백제 무왕이었지. 물론 어려서야 아직 무왕이 아니지만. 그는 서
자였기 때문에 그때 사비성에 살지 않고 자기 어머니인 마한족이 살던 이리 익
산 옆 금마성에 어머니하고 같이 있다가 적자가 병들어 죽고 난 뒤에 그 후계를
이을 사람이 없어서 이 왕자가 곧 무왕으로 즉위를 했는데 무왕이 서손 왕자 시
절로 있을 때 아까도 말했지만 백제 법왕 때가 굉장히 강성한 나라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힘이 부치는 신라에서 유화정책을 쓰기 위해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인 선화공주를 백제 법왕의 서자인 무왕한테 정략적으로 시집을 보낸 것이다.
이렇게 본다. 나는 그러니까 마동이 연못가 오막살이에서 홀어머니와 단둘이 마
를 캐먹고 살던 초라한 마장수라고 삼국유사에 씌어진 이야기는 무왕에게 늘 위
협 당하고 변방을 점령당하다가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를 멸한 통일신라
이후에 신라인의 시각을 근간으로 하여 고려에까지 전해진 것이므로 잘못된 것
이라는 게지. 오히려 당시 정황으로 보아 무왕과 진평왕에 대한 묘사는 반대로
뒤바뀌어야 할 것 같어."
강호의 말에 강태도 동조했다.
"나도 항상 그게 이상해요. 신라의 선화공주는 천하 절색에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돼 있고. 백제 무왕은 연못가 오막살이 홀어미 자식이라. 초라하게 마나 팔
고 다니는 촌무지랭이처럼 그렸잖아."
"그래도 그 어머니가 연못 속의 용과 교합했다는 말은 임금과 통정했다는 상
징적인 표현일 거야. 용이 곧 왕이니까. 또 홀로 된 어머니라든가. 이게 후궁이
라는 비유고."
강모는 유심히 듣고만 있다.
"헌데 그렇게 격차를 두어 묘사한단 말이에요?"
"백제 무왕뿐만 아니라 백제에 관련된 모든 부분이 그렇게 비하 편향돼 있지."
"그 이유는 오로지 백제가 망하여 모든 사료는 멸실되고 남은 기록이라는 것
은 다시 말해 적국인 신라와 신라를 바친 고려의 손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야.
왜곡 굴절된 것이지."
강태는 강호와 말할 때 형이라고 깍듯이 경어를 쓰지는 않는다. 강호도 그것
을 나무라지 않는다. 곁에서 보는 사람 또한 그러는 강태가 버릇없다기보다 강
호형과 아주 친근한 사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것이 강태의 묘한 힘이었
다.
"결국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에 옛 백제 영토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라고
못박은 항목을 받든 고려 사가들이 백제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서 견훤이라든
지 무왕 의자왕 들을 포함한 백제 사람들을 호색한이나 탐관오리. 무지랭이로
마음놓고 마구 폄하해서 쓴 거지."
"사실, 무왕이 마동이었을 적에 신라의 서라벌로 몰래 들어가서 코흘리개 아이
들한테 마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선화공주가 자기와 놀아났다는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게 얼마나 야비하고 비겁한 구애 방법이에요? 사내답지 못하고."
"그래. 하지만 그런 소문 끝에 공주를 쫓아내서 마동방과 혼인하는 것은 우리
가 현실적으로 판단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지. 논란할 꺼리가 될 수 없는거다.
왕실이 장난이며 공주가 인형이냐? 역사는 개인의 일기장이 아닌데. 이토록 왜
곡되어 비판도 없이 수용된다. 정사는 아니지만 이것들은 백성의 의식에 침윤해
서 가공의 영상을 만들어내니. 거짓말이 굳어져 사실로 믿어지는 것과 같지. 그
러니까 백제 무왕을 희화시켜 손상된 신라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은 편법이었
다고나 할까. 결국 거꾸로 읽으면 정답이 보여 특히나 백제와 신라. 백제와 고
려. 그리고 후백제와 고려의 관계는."
"두 사람 인연이야 둘만이 알겠지만."
강모가 한 마디 곁들였다.
집안의 자손인 청년들이 무릎을 맞대고 모여 앉아 담론하던 이헌의 사랑채도
새해를 맞이하였으나 웬일인지 전처럼 활기롭지는 못하다. 그것은 시절의 탓이
리라. 그래도 역시 명절은 명절인지라 다른 때보다는 분주하여 안팎의 세배객들
로 모처럼 동계댁은 화기가 돌았다.
강실이가 초사흘을 넘기고 동계어른 이헌의에게 세배를 하러 갔을 때. 마침
한 무리의 집안간 동종들이 먼저 왔다 돌아가고 그의 재종 이징의만이 헌의와
사랑에 대좌하여 담소하고 있었다.
"그래 올에는 부디 몸도 충실허고 마음먹은 대로 모든 소원을 다 성취허도록
해라."
세배를 받는 이헌의는 그 앞에 다소곳이 앉는 강실이를 보고 고희를 넘긴 지
여러 해 된 노안에 실뿌리같이 드리워진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음 머금은 음
성으로 덕담을 해 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더 붙였다.
"꼭 시집도 가고."
이 말에 강실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수그렸다.
"가만 있자. 네가 인제 올에 몇 살이더라? 무슨 생이던고?"
나이를 묻던 그는 손가락을 짚어 보고는 잠시 침묵하였다.
"농사도 때가 있고 인사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실기허면 좋은 결실을 보기가
어려운 것은 세상의 이치가 다 똑같지. 옛날 같으면 혼인의 때를 무단히 넘기는
사람은 중벌을 엄허게 다스렸느니라. 향약에도 그것은 명시돼 있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음양이 만나 우주 질서 속에 조화를 이루고 사람이 사람 된 자신의 존재
에 대해서 책임을 행해야 헐 때를 무슨 퍼치 못헐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게으름뱅이 아니면 말썽꾸러기 아니겠느냐. 그런 까닭에
향약에서도 벌을 받는 게지.
그게 바로 인륜지대사 아니냐. 대사
사람이 일생 동안 살아서 허는 일 중에 제일 크고 중한 것이 바로 이일이라.
사람은 누구라도 반상. 고하를 막론하고 때가 되면 남녀에 만나 이성지합 혼인
을 해야만 그제야 비로소 유아를 벗고 성인이 되어 한 몫의 사람으로 완성되는
것인데 그것을 제때 못허고 있으면 아무리 사십 오십을 먹어도 미완성이다. 아
그래서 십여 세 유소자라도 장가들어 상투를 틀었으면 어른이고 다 늙어 꼬부라
져 머리 허얘도 미장가인 사람은 아직 아해라. 그 늙은이가 상투 튼 어린 사람
한테 어른에 대한 공례를 바치는 게야. 지금이야 어디 그러냐만.
그래서 부모는 반드시 때를 놓치기 전에 자식의 혼인을 서두르고 그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무세하여 그런 일을 추릴 만헌 사람이 못될 적에는 문중이나 마
을에서 부모 대신 그 일을 맡어 가지고 합심해서 혼사를 주선허는 것이 상례이
다. 거기서조차 한미해서 성사를 시키지 못헐 때에는 고을 관장허는 원이 나섰
지. 원은 그 고을 백성의 어버이로서 그 일을 염려허고 주선허는 게지. 그래 원
이 중매를 서서 책임지고 혼인을 시켰느니라. 그만큼 혼인이란 게 중헌 일이라
는 것 아니냐. 지금은 시절이 그전 같지 않어서 너나없이 암담 혹독헌 세월을
사노라고 언제 남 돌아볼 겨를도 없이들 이러고 지낸다마는 너 그러고 있는 것
이 네 탓이 아니라 네 부모 탓이고. 또 우리들 탓이다. 네 종조모님 살어 계셨더
라면 좀 달렀을 것인데."
그럴 생각은 아니었을 테지만 말이 청암부인에게로 번지자 그의 음성이 무겁
게 갈라졌다. 덕담 끝이 침중해진 것이다. 징의도 입을 다문채 상체를 좌우로 조
용히 미동할 뿐 말이 없었다. 강실이는 앉은 그대로 고개를 수그린 채 가슴 밑
바닥으로 밀려드는 무거움을 가까스로 가누고 있었다. 그녀의 낯빛은 창호지 같
았다.
"아이구. 인제 우리 강실이가 처녀가 다 되었구나. 시집가야겄다."
그것은 열다석 살 되던 해의 설날이었던가.
청암부인이 모반에 엿을 담아 내주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세배 온 강실이의
손을 잡았다. 강실이는 손을 잡힌 채 고개를 외로 돌리며 얼굴을 붉히었다. 그네
의 검은 머릿단 끝에는 검자주 제비부리 댕기가 곱게 물려 있고. 수줍음에 물이
든 귀와 흰 목의 언저리에는 살구꽃빛이 아련히 돌았다. 그리고 거기에 몇 오라
기의 잔머리가 애잔한데 장지에 은은히 비쳐드는 밝은 햇살을 등지고 앉은 그네
의 둥근 어깨 너머로 완자 살창은 햇빛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연분홍 치
마에 연노랑 명주 저고리를 입은 강실이는 무지개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여위고 파리해진 얼굴에 수심이 깊어 희푸른 빛이 서리고 마른 목은 머리를
지탱하기 겨워 보였다. 그리고 단정히 빗었으나 윤기 없어 까칠한 머릿단이 좁
은 등의 한가운데를 검은 고랑처럼 타고 내려가다가 시르르 멈춘 모습은 당혼한
처녀로서 한참 피어나야 할 나이라기에는 누가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너 어디 아프냐?"
오류골댁은 몇 번이나 그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묻곤 하였다. 그때마
다 강실이는 입을 다문 채 고개만 가로저었다.
"안 그래도 시름시름 기운 없는 것이 이번에 할머니 돌아가시고는 더 눈에 띄
게 축이 났으니. 저 애가 점점 왜 저러는지 모르겄소."
밤이 이슥해졌을 때 오류골댁은 강실이 듣지 않는 곳에서 기응에게 낮은 소리
로 말하였다.
"저를 좀 귀애허셨던가. 그립고 슬픈 마음에 그러겄지."
"허기는."
건넌방에서 내외가 근십스럽게 주고받는 말이 어느 때는 무망간에 커져서 오
밤중에도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 강실이의 귀에까지 들리는 날도 있었다. 안
채와 사람을 따로 둘 수 없는 형편이어서 보자기만 한 대청 한 칸을 사이에 둔
건넌방을 기응이 거처하는 사랑으로 쓰고 있는 오류골댁인지라. 안방에서는 모
녀 함께 잠들지만 가끔 무슨 의논할 일이 있을 때면 오류골댁이
"먼저 자거라."
강실이한테 이르고는 건넌방으로 가서 밤이 깊어지도록 양주가 두런두런 이야
기를 하곤 하였다.
"집안이 흥헐하면 가장이 실해야 허고 가문이 흥헐라면 큰집이 잘 돼야 헐 것
인데. 청암 백모님 저렇게 하루아침에 별세를 하시고 율촌 형님 강단은 놋쇠 같
지만 상중에 근력이 도무지 전 같지 않으신데다. 강모란 놈 불효자식으로 일자
소식을 돈절헌 채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허고 사는지 풍편에도 연락이 없으니 도
대체 울 없는 한 데 같어서 어디. 큰집이 이렇게 수수롭고 산란헌데 누구한테
강실이 혼인말 의논해 보기도 난처허고 내가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것
을 어서 여워야 나도 한 시름을 놓겄구마는."
"아따 전에는 내가 그렇게 강실이 혼사 근심을 해도 태평이시드니."
"이리 늦을 줄을 누가 알었는고?"
"그러니 미리 때 늦기 전에 서둘러야지. 남의 논에는 나락 패는데 그제서야 모
내기 헌다고 놉 얻으러 다니는 꼴 안되었소 그래."
"속 터지는 데다 불 붙이는가."
"부모 속이 이럴 때 제 속이라고 온전허겄소? 내놓고 말도 못허고 저것이 자
꾸 저렇게 패로와지는 것도 다 그런 속이겄지요."
"이노무 인연이 어디 가서 있는가. 없든 안헐 것이고."
오류골댁이 답답한 심정으로 길게 내뱉는 한숨 소리가 어두운 밤의 중치에 얹
히고 그 짓누르는 한숨에 대고 기응이 부싯돌 치는 소리가 따악. 들려왔다. 이윽
고 마른 쑥 부싯깃에 옮겨 붙는 불티에서 연기가 매캐하게 일어나듯 오밤중에도
잠 못 이루고 있는 강실이의 숨죽인 폐장에 미어지는 연기가 자욱이 차 올랐다.
그 암연하고 매운 기운에 그네는 기침을 토하듯 참지 못하고 하염없는 눈물을
토하였다. 그눈물은 몸의 마지막 진기를 다하며 배앝는 무슨 진액 같기도 하였
다.
눈물은 방안에 가득 밀려와 고인 어둠을 무겁게 흡수하고 있는 베갯머리에 소
리없이 어리면서 검은 아교로 엉기었다. 그 엉긴 눈물은 방안을 아까보다 더욱
무겁게 하면서 검은 웅덩이를 이루고 웅덩이를 이루고 웅덩이는 어리고 엉겨드
는 눈물을 빨아들이면서 밑 모르는 늪의 밑바닥으로 강실이를 잡아당기는 것이
었다.
질기고 깊어라.
강실이는 손가락 하나 들어올리지 못하게 누르는 어둠과 귀신의 손아귀처럼
잡고 놓아 주지 않는 늪의 캄캄한 끈끈이에 잡히어 삼키는 울음으로 부르짖었
다.
오라버니 나를 놓아 주시오.
아아 나를 제발 놓아 주시오.
차라리 내가 죽어 나를 놓으리이까.
그 눈물. 그 어둠. 그 늪의 이름은 강모였던 것이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오류골댁은 속 모르게 여위면서 시름시름 겨우 제 몸을 추
스리는 딸의 행색을 애가 마르게 안타까워만 하고 있었다. 옹색한 살림에도 손
끝이 야물고 음전 규모 있는 오류골댁은 좋은 나이를 놓치면서 고운 때가 가시
는 딸의 모습에 어미 못난 것을 탄하며 지난 섣달 세안에도 마을로 들어온 방물
장수한테서 반달로 사람 옆모습을 그린 상표의 '가오루'화장 비누 한 곽을 사 반
닫이에 소중하게 넣어 두었다. 강실이의 혼수였다.
없는 형편에 명주 비단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강실이 나이가 열다섯을
넘기면서부터는 금방이라도 어디서 낭재가 나타나 혼사를 치르게 될 것만 같아.
알게 모르게 한 가지 한가지씩 힘 닿는 대로 마련해 온 혼수는 치마.저고리.두루
마기 옷감에 다홍.초록 이불감. 그리고 오밀조밀한 살림 세간이며 반짇고리와 화
장품들이었으나, 그것들은 해가 가고 바뀌어도 여전히 반닫이 속에 쌓이기만 할
뿐 아직도 쓰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게 언제 나간다냐. 이것들도 갑갑허겄다. 어디 바람이나 한 번 쐬어 주자.
무엇이 얼마나 들었는지 구경도 좀 허고."
하루는 오류골댁이 강실이를 부르며 반닫이를 열었다. 청.홍에 노랑. 연두. 분
홍 감들을 차례차례 꺼내 활짝 펼쳤다가 다시 접으면서 거풍을 시키던 그네는
색동 보자기에 싸 놓은 화장품을 풀어 보며 문득 미소를 머금었다.
"이쁘지?"
이번에는 강실이도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건네주는 병을 받아 이윽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우데나'
도마도 화장수였다. 병 모양이 마치 도마도 같아서 붙은 이름이리라. 안개로 빚
은 유리병인가. 볼그롬한 살구꽃빛 연분홍 화장수가 애달플 만큼 곱게 비치는
병의 앙징스러운 뚜껑은 노랑색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수줍은 봄을 맞이한 꼬
막각시 같은 병의 조그만 모가지에는 진초록 이파리를 종이로 만들어 실을 달아
걸어 놓았다. 네가 이대도록 고와서 무엇에다 쓸거나.
강실이는 저도 모르게 그 빛깔에 물들면서 한숨을 지었다.
웬만한 집안의 처자는 혼수품으로 반드시 장만한다는 방물장수의 말이 아니라
도 이처럼 어여쁜 화장품이라면 누가 탐내지 않으랴. 그러나 그것은 어여뻐서 오
히려 한없이 서럽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손안에 들고 있으면서도 아득한
빛깔.
오류골댁은 그 옆에다 이번에는 분백분 곽을 놓았다. 그리고 위에는 맑은물로
떠오르고 아래로는 보얀 분이 가라앉은 물분과 '구리무' 거기다 비누같이 생긴
기름막대 '직꾸'도 나란히 놓았다. 그 고형 기름을 참빗으로 빗은 머리에 바르면
검은 공단같이 매끄러운 윤이 자르르 흐른다고 하였다. 그 머리에 자주 댕기를
들여서 비취 비녀를 꽂고 거기에 금잠을 꽂으면 더할 나위 없는 맵시가 난다던
가.
오류골댁은 생전에 한 번도 써 본 일이 없지마는 성혼한 강실이의 자태를 상
상하며 서슴없이 물품을 들여놓았었다.
"이런 것도 사 놨다."
오류골댁은 꽃 달린 머리핀을 손바닥에 얹어 강실이한테로 보여 주었다. 선연
하게 빨간 동백꽃에 노란 꽃씨까지 박아서 붙인 실핀이었다.
"이런 게 개화 머리꽂이겄지. 이게 꼭 왜식이 아니라 우리도 전에는 다 떨잠에
뒤꽂이에 밀화장식 금패보옥으로 봉황도 새기고 산호꽂도 깎고 해서 머리에 꽂
았지 않으냐."
어디보자.
오류골댁은 강실이의 가리마 왼편에 동백꽃 머리핀을 찔러 주었다.
"이쁘네. 신여성은 그렇게도 찌른다더라만. 너는 인제 나중에 낭자머리 뒤꽂이
로 쓰거라."
그러고 나서 그네는 수놓은 바늘집이며 색색깔 헝겊 입힌 골무들을 반짇고리
에서 꺼냈다. 반짇고리 안에는 꼰사실. 푼사실 들이 색동저고리 소매처럼 알록달
록 나란히 줄을 맞춰 누워 있었다. 요요한 빛깔들이었다.
"오류골댁이는 언제언제부텀 오만 가지 이뿌고 존 것으로만 혼수감 다 장만해
놨다등만. 어째 아직 따님 시집을 못 보내고 있이까잉? 성짜가 모지래까 인물이
모지래까. 그만허먼 원 너무 짱짱허고 높아서 탈이겄는디. 안 그러요이?"
아랫몰 타성 임서방의 아낙이 한 번은 제 남정네한테 지나가는 말처럼 물은
일이 있었다. 늘 매안으로 드나드는 방물장수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
었다. 여러 해를 두고 다니는 그 방물장수는 마을을 한 바퀴 돌며 물건을 팔고
나면 으레 임서방네 집으로 들어와 점잖으신 부인들 앞에서 하루종일 얌전 내느
라고 조심하며 오그리고 있던 다리를 시원하게 쭉 뻗고 한바탕 쉬다가 갔다. 흔
한 일은 아니지만 해가 저물면 방 한 귀퉁이에서 끼여 자고 가기도 하였다. 그
러면서 그날 다닌 집이 어디어디이며 누구네 집에다 무슨 물건을 팔았다 하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래서 임서방의 아낙 앵두어미는 매안의 집집마다 반닫이
안에 어떤 방물들이 들어 있는지 안 열어 보고도 환히 알 만했던 것이다.
"그 속은 내가 모르겄지만. 사람의 운명이 팔짜 도망은 못헌다고. 다 앞앞이
정해진 무신 팔짜가 있을 거이여. 전에 이런 사람도 다 있었다는디. 참 인연이
될라먼 그렇게 되는 수도 있드라고."
본디 성정이 싹싹하고 이야기도 잘하는 위인이라 임서방은 딸내미 앵두까지
앉혀 놓고 곰방대에 담배를 재며 헛기침부터 커험. 하였다. 전에 어뜬 부잣집에
머심이 하나 있었는디. 생김새도 밉잖허고 허는 짓도 담쑥담쑥 보기 싫잖헌 떠
꺼머리 총각이였드리야. 나이 한 이십이나 되얏등가. 그보다는 조께 더 먹었등
가. 하이간에 그런 머심이 하나 있었어. 그 사람 성이 머이냐 허먼 김가여. 그렁
게 김도령이제. 이 김도령이 에레서 그만 조실부모를 해 부리고는 일가 친척도
벤벤찮어서 기양 이집 저집을 떠돌아 댕김서 얻어먹고 지내다가 어찌어찌 하루
는 그 부잣집이로 들으가게 되았당만.
에린 거이 눈치밥은 안 먹게 했등갑서.
너 어디 갈 디 있냐.
헝게로 없다고 그런단 말여?
아 그러먼 우리 집이가 있그라. 내 담뱃대 심바람도 허고 불도 때고.
주인 나리가 그렇게 말을 헝게 이 김도령이 오직이나 좋겄어?
아. 그러지야고 고맙다고 그러고는 부지런히 일도 허고 달랑달랑 심바람도 잘
했단 말이여. 그러다가 한 해 두 해 강게로 나이를 먹을 거아녀? 나이 먹으먼
힘도 생기고 일도 더 잘허겄지. 그래서 인자 그 집이서 너 쓸만허다 허고는 새
경 주는 머심으로 올려 줬어.
그런디 이 김도령이 나이 스물이 넘고 서른이 넘어도 당최 장개갈 생각도 안
허고 어디 다른 디로 가도 안허고. 기양 한 집이서 한 십 년을 변통 없이 머심
살이를 히여. 그렁게 주인 나리야 좋제. 한 식구맹이로 똑 믿고 농사고 머이고
다 맡길 수가 있잉게. 그저 그 집 일해 줄라고 난 사람맹이로 자나깨나 일만 헝
게.
그런디 바로 고 옆에 이우제 고샅에 고래등 같은 집을 지니고 부인 한 분이
사는디. 이 냥반은 성이 머이냐. 조씨여. 그렁게 조씨부인이제. 이 조씨부인이 만
석 거부여. 그러장게 집안에 노속들도 많허고. 담살이에 머심들도 욱근욱근 많이
부리고 했겄제. 그런디 그것을 다 부인 혼자 관장을 허는 거이여. 과수라. 웬만
헌 남자는 못 당허게 담력 있고 아조 지모가 있어서 살림은 만석 거부를 혼자
다 관장을 허지마는 젊어서 남편을 잃고는 눈먼 애기 하나를 못 낳고 그저 치부
나 험서 그냥 저냥 벨라 재미있는 중도 모르고 인생을 살고 있었드라네. 나이는
솔찮이 먹고. 그런디 하루는 그렁게 가실이였등게비여. 그해 농사를 잘 지여서
추수를 다 해 놓고는. 나락을 엮어서 이엉을 맨들고 지붕을 이을라고 놉을 얻으
러 나가는디. 그날따라 어쩐 일잉가. 김도령이 나가는 길목에 저만치 서서 아는
체를 허드란 말여? 시방끄장은 거그 서로 이우제 살어도 그 부인 얼굴을 보들
못했는디. 부인이 어찌 김도령을 알어보고 손짓을 하여.
"뭣 허러 가는가?"
"예. 마람 엮을라고 놉 얻으러 가요."
"그려. 그러거든 일허고 이따 저녁에 나한테로 와서 좀 댕겨가소."
"예"
김도령이 대답을 하고 나서 놉을 얻어 일을 마쳐 놓고는 저녁밥끄장 먹고 이
거 어쩐 일잉고 허고 인자. 암만해도 그 속을 짐작헐 수가 없는 일이라. 이 궁리
저 궁리를 해 보니라고 얼른 그 집이를 못 가고 몬창몬창허다가. 사랑꾼들이 다
놀고 돌아갈 임시에사 그 조씨부인 과수 집으로 갔단 말이여. 그 집이로 강게로
"어찌 이리 늦었냐?"
고 반색을 험서 맞이를 허더니 이리 들오라고. 과수가 거처허는 안방으로 데리
고 가. 데리고 들으가서는 배깥에다 대고
"아무 것이야아."
불러 불릉게로 계집종이 대답을 허네.
"너 아까 물 데우라고 했는디. 물 다 데웠느냐?"
"예. 데웠습니다."
그 말을 듣더니 조씨부인은 김도령을 보고 나가서 모욕을 깨깟허게 허고. 머
리도 싹 감고 오라고 그러는 거이여. 김도령이 어안이 벙벙해서 얼른 어쩌들 못
허고 섰응게. 시각이 지체되면 안된다고. 서두르라고 재촉을 헝만. 등을 떼밀다
시피. 대체나 시키는 대로 허고는 다시 안방으로 들응게. 아 과수가 딱 달라들어
갖꼬는 빗을 들고 김도령 머리를 빗기기 시작히여. 아조 곱게 곱게 그러더니 문
갑에서 금비네를 꺼내 김도령한티 딱 비녀낭자를 시키네. 그러고 비단 치마에
비단 저구리를 입혀. 과수 옷으로.
그래서 누가 얼른 모르고 보먼 영락없이 과수로 알게 뀌메 놨어.
놓고는 허는 말이
"이놈 입고. 내 이불 이놈 덮고. 여가 드러누웠으먼. 다름아니라 시방 김도령이
머심살이 허고 있는 그 집 주인이 오늘 밤에 나를 보쌈해 갈라고 올 거이여. 그
렁게 내 대신으로 이 속에 누워 있으먼. 보쌈 온 사람들이 난 줄 알고 싸 갖꼬
갈 거이여. 그렇게 싸 갖꼬 간 연후에. 아무리 달라들어 이불을 벳길라고 해도
절대로 못 벳기게 꽉 붙잡고만 있으먼. 김도령은 오늘 밤에 장개를 들어 열아홉
살 먹은 큰애기한티로. 내 말을 꼭 명심허먼 내 말대로 될 거이네."
그런단 말이여. 그러고는 과수가 나가 부러.
그래서 헐 수 없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는디. 마음이 싱숭생숭 해 갖꼬 무
신 잠이 올 거이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험서 조께 있잉게 아닌게 아니라 배깥
이 우세 두세 허드니 몇 놈이 베락같이 달라듬서 이불끄장 두르르 말어 부리드
니. 그대로 둘러메고 달어난단 말이여.
그러드니 김도령 머심 사는 집이다가 보독씨려(부려) 놔. 그렁게 주인 나리가
점잖허게 방으로 들으와. 잘라고. 김도령이 기가 맥히제. 그건 디다 대고 이불을
벳길라고 허네. 그 냥반이. 아까 과수한테 들은 말도 있고. 허고 낯바닥을 드러
낼 수도 없는 일이라. 젖 먹든 힘을 다해서 이불을 두 손으로 틀어 쥐고는 절대
로 안 놨제. 안 농게. 무신 수로 벳길라고 해 봤자. 벳길수가 있능가. 머심이라
힘이 장산디. 어째 볼 수가 없잉게 주인 나리가 안에다 대고 자개 딸을 불러대.
그 냥반이 열아홉 살 먹은 딸이 있었그던. 애지중지 눈에 넣어도 안 아푸게 키
운 딸인디. 헌다 허는 디서 혼삿말이 많이 들오는 판에 즈그 어머이가 죽어서
못 예우고. 인자 복 벗으면 시집을 보내야지. 마음먹고 있는 딸이제.
"아무 것이야아. 아무 것이야아."
"예"
"아매 잘 아는 이우제서 보쌈을 해 갖꼬 부끄러서 그러능갑다. 오늘 저녁에는
니가 느그 어머이를 모시고 자그라. 나는 나갈란다."
아 그러더니 딱 나가 부린단 말이여. 머심을 자개 딸한티다 남기고. 그렁게로
열아홉 살 먹은 이 큰 애기가 이불 보따리에다 대고
"우리가 서로 가차이서 속을 다 알고 그런 처지 아닝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니 어머이가 인제부터 우리 어머이가 되야 갖꼬 같이 살먼 안 좋겄소."
험서 옆에 나란히 누워 온갖 소리로 세세허게 달래고 소청을 히여. 그러고는
이불을 떠들고 같이 자자고 들올라고 허네. 김도령이 아까맹이로 이불을 움켜쥐
고 안 놈서 못 들오게 히여. 큰애기를 그렁게 큰애기는 그러지 마시라고 제가
어머이 잘 모시고. 효도도 헐 거잉게 마음을 돌리시라고 빌었제. 그래서 이불을
못 벳겨. 김도령이 안 벗어. 캉컴헌 이불 속으서 똑 숨이 맥혀 죽겄는디 지침도
못허고. 메주 띄우디끼 잔득허게 몸뗑이를 띄움서 참고 있능 거이라.
큰애기가 아무리 애원을 해도 쇠용이 없어. 큰애기는 즈그 아부지를 생각해서
어쩌든지 새어머이 마음을 돌려 볼라고 그렇게 애를 쓰는 거이제. 근디 안되야.
새복녘이 다 되드락 땀이 나게 공을 딜이다가. 해도 해도 안된게 지쳐 갖꼬 큰
애기가 기양 그 옆으서 꼬부라져 잠이 들어 부렀네. 꽃잠이 들었어. 곤허게 그때
서야 이놈이 이불을 걷어차고 달라들어서 보듬고 장개를 들어 부렀단 말이여.
큰애기한테.
왜 진작에 안 그러고 그때끄장 참고 있었냐고?
바로 그 방문 앞에 즈그 아부지가 밤새도록 지키고 있었그덩.
행이나 무신 일이 있을랑가 허고.
딸내미가 같이 있다고는 해도 가이내라 아무 힘도 없을 거 아니여?
만약에 보쌈 부인이 용을 씨고 떠다 밀어 붙이고는 달어나 부리든지. 분허고
독헌 마음에 쎄를 물고 죽어 불먼 큰일 아닝가. 그렁게 배깥에서 꼼짝도 안허고
지킹 거이제. 그러다가 날 샐라고 헝게로 하룻밤 잤잉게 인자 벨일 없겄지 허고
는 자개 방으로 갔등 거이여. 딸내미가 지성으로 달래고 비는 소리에 저만허먼
무쇠라도 녹겄다 싶은 감동도 있고.
그런디 바로 그 순간에 김도령은 장개를 든 거이여.
그렇게 장개를 들어 부리고는 이튿날 아칙에 큰애기가 살째기 일어나서 배깥
으로 나갈라고 헝게는 못 나가게 꽉 붙잡고 나란히 드러누워 있었제. 둘이 한
이불을 덮고 머리빡만 내놓고.
그렁게 그 큰애기는 겁짐에 일을 당해 부렀제.
아 소리 한 번 못 내고.
인자. 주인이 엊저녁 잠을 설치고 일찌거니 기동을 허고 앉어서 딸내미 문안
디리로 들오기를 지달르는디. 안 오그덩? 그 전에는 딸이 일찍 일어나 갖꼬 문
안도 허고. 부지런히 정짓년들 시켜서 막 밥도 허고 그러는디 오늘은 소식이 없
어. 통 안 나온단 말여. 까깝허제.
그래서 지달르다 못해 안방 문앞에 토방으로 가서
"아. 야야. 그만 일어나그라이. 나오니라. 날 샜다. 엊저녁에 그리 오래 놀다가
이렇게 늦잠을 자냐? 어머이 진지 해 디리야지?"
그래 봐야 아무 소식이 없어. 있을 리가 없제. 김도령이 큰애기를 꽉 보듬고
누워서. 대답도 못허게 손으로 입을 솜방맹이 쥐구녁 틀어막디끼 막고 있는디.
무신 소리를 헐 수가 있간디? 없제. 헐 수 없이 주인나리가 집안을 한 바꾸 삐
잉 돌고 와.
그러고 와서 봐도 안 나오제.
"아. 그저 안 나오냐?"
이 냥반이 안되겄다 싶어서 문고리를 잡어땡기고 보닝게. 아차 즈그 머심놈허
고 딸년이 머리빡만 이불 배깥으로 내놓고는 둘이 꽉 보듬고 자빠져 누웠그더
언. 머심이 딸년을 꽉 틀어쥐고 팔을 안 풀어.
"에에잇. 이 천하에 도적놈의 자식 같으니."
비호같이 방안으로 들이닥쳐 발을 구르고 호령을 했지만 인자는 어쩌겄어? 어
크러진 물인디. 허기사 도적놈은 그놈이 옳게 도적놈이제. 도둑질을 헐라먼 사램
이 그렇게 해야 여. 한 번을 허드라도.
"꼴도 뵈기 싫다."
턱을 바르르 떨고는 그 냥반이 얼매나 기가 맥히겄어?
그래도 헐 수 있능가.
"내 집에 머심 살던 놈을 내가 업어다가 딸자식을 엥게주엇으니. 참말도 안되
는 소리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발 등을 도치로 찍고 주먹으로 가심을 쳐도 시언찮허제. 그런다고 인자 와서
머심을 내쫓거나 패 쥑일 수도 없고. 그래도 딸내미를 생각고. 니가 왜 그랬냐고
따질 수도 없고 자개가 헌 짓이 있잉게로.
"한 번 저렇게 짝이 맞어 부렀으니 헐 수 있느냐. 이것도 다 즈그 팔짜 소관이
겄지. 인간이 일을 뀌밀라고 헌대서 이렇게 공교롭게 될 수가 있으까. 인력으로
는 못헐 일이다."
그래서 날을 잡고 채비를 갖촤 갖꼬 예를 올리니 두 사람은 올 데 갈 데 없는
부부요. 내우간이라. 하늘이 알고 사람이 아는. 그런디 이 주인 냥반이 암만 곰
곰이 생각을 해 바도. 분허고 속이 상해서 열이 받쳐. 월렁월렁 생병이 생길라
허고. 그놈 보고 사우라고 허기도 싫고. 왔다갔다 허는 꼴도 뵈기가 싫어서 도저
히 못 살겄어.
세상 사람들한테 이런 저런 일이 챙피허기도 허고.
그런 보쌈이 천지 어디에 있겄능가.
그래 그만 딸허고 사우허고 짬매서 내쫓아 부렀네. 새경도 안 주고 그런디 그
조씨부인은 미리 다 그렇게 될 중 알고. 돼야지도 잡지. 소도 잡지. 만석 거부라
가마니 떡을 허고. 술을 당구고. 왼갖 음석을 가지각색으로 걸게 다 장만해 갖꼬
는
"이리 들어오라."
고 이 내우간을 부르네.
그러고는 두 사람을 마주허고 앉아서
"내 말 한 번 들어 보시오. 내가 나이 아직 젊었을 때 이 집안으로 시집을 왔
소. 그러나 내가 박복해서 일찍 청상이 되야 갖꼬 일점 혈육도 없고. 누구 가직
헌 일가 친척도 없소. 그래 갖꼬는 살림만 좋지 이 살림을 갖꼬 있은들 어디다
쓸 디가 없어. 이러다가 나 죽으먼 인생이 너무 허망해서. 내가 오래 생각허고
김도령을 가만히 지켜봤는디. 저 사람을 만나서 살먼 끝이 갠찮허겄다 싶었소.
그래 내가 인연을 맺고 자퍼서 처음부터 이리 되라고 일을 뀌민 거이요. 보쌈허
로 왔을 직에 내가 그 집으로 가기 싫으먼. 아무리 다른 방법이 없어서 김도령
을 불러 여장을 시켰겄소? 다 내가 짐작이 있어 헌 일이요. 허나 김도령과 인연
을 맺고 자픈 것은 내 욕심이고. 도령은 도령대로 깨깟헌 정 연분을 만나야 허
겄기에.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르고 그리했소."
조씨부인이 침착허게 허는 말을 김도령은 묵묵히 듣고만 있고. 큰애기는 아니
제. 인자는 새각시제. 세각시는 이게 무신 소린가 놀래서 체다보네. 눈이 똥그람
해 갖꼬.
"당신은 나이 적고 에레도 저 냥반과 귀영머리를 마주 풀었응게로 본처. 큰어
머이가 되고 나는 아무리 재산이 많고 나이가 당신보다 많어도 헌사람이여. 흠
이 있는 사람잉게 내가 작은 사람으로 쳅이 되야서. 우리가 한 남자에 둘이 의
지허고 같이 삼서. 무신 언짢은 일이 있드라도 서로 다 이해를 허고 애껴주고
평생 죽을 때끄장 다정허게 잘 살기로 맹세를 헙시다."
조씨부인이 그렇게 말을 허더니. 단박에 낯색을 고침서 단호허게.
"오늘 저녁에는 서방님을 내가 모셔야겄소."
그런단 말이여. 그러고는 아까 장만헌 소. 돼야지에다 떡이랑 술이랑 온갖 음
석을 온 동네에 다 풀어 크게 잔치를 했드라네이.
좋은 날이라고.
그렁게 인연법은 아무도 몰르는 거이여. 그 떠돌이 김도령이 머심 살든 집 주
인 나리 외동따님을 큰각시로 맞이허고. 만석 거부 조씨부인을 작은 각시로 맞
이해서 양처를 거나리게 될 중이야 누가 알었을 거이며. 금이야 옥이야 불먼 날
아가까. 쥐먼 터지까. 손안에 보배로 크든 큰애기가 넘도 아니고 아부지 탓으로
부리든 머심한테 시집가게 될 중이야. 누가 또 알었겄능가. 그것도 동낭치맹이로
내쫓김서. 또 거그다가 수완좋고 억센 디다 저보다 늙은 시앗꼴끄장 보는 팔짜
라니.
"그래서 그 조씨부인잉가 허는 작은 각시가 서방님을 아조 독차지를 해 부렀
다요? 큰각시한테는 말로만 위해 주고?"
"그 것이야 몰르제."
"흥자(횡재) 만난 것은 김도령이그만. 조씨부인도 머 손해날 것은 없고. 이름
이 쳅이라 그게 좀 그렇지마는. 젤로 불쌍허게 된 것은 큰애기네. 무단히 아부지
땀새 효도 헐라도가 몸만 망치고."
"그게 다 팔짜랑게. 인력으로는 되는 일잉가 어디."
"참."
그때까지 임서방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정신이 팔려 잊고 있다가. 쪼끄만 딸년
앵두가 어미 아비 앞에 턱을 받치고 앉아 눈을 깜박깜박 하며. 어른들 말을 다
듣고 있는 것에 생각이 미친 임서방네는
"너 멋 허고 있냐? 잠 안 자고?"
하며 나무랐다.
"내비두어. 다 그런 이애기도 듣고 크는 거이제. 그래야 시상이 그런 거잉갑다
제절로 배우제."
"아앗따아. 큰선생 났네에. 아그들 들어 졸 거 한나도 없는 이애기그만. 야야.
얼릉 자. 니께잇 거이 멋을 안다고 어른들 이애기에 잠을 안자? 아이. 그런디.
그 보쌈 참 아무나 허능 거 아니네요이? 큰일 낭만 그리여. 만에 하나 내가 몬
야 죽드라도 행여 어디 누구 과부 있다고 보쌈해 올 생각허지 마시오. 잉? 앵두
저것을 시집보내 놓고 나서 보쌈을 허등가. 어쩌등가. 잉?"
그 말에 임서방이 벌끈하며 아낙한테 낯박살을 주었다.
"에펜네 방정허고는 엇다 댈 디가 없어서 그런 이얘기 끝에다 꼭 앵두 이애기
를 붙이야 쓰겄어? 말이 씨 된다 소리도 몰르능가?"
임서방네가 찔끔하는 모양을 보고 앵두가 킥 웃었다.
"요번 섣달 시안에도 오류골댁이 그 방물장시한테 요렁 거 조렁 거 사드란 말
허다가. 이애기 한 자리 잘 허고는 매급시 나한테 퉁을 주네. 왜. 양반 각시에
부자 소실에 양처 거나린 김도령 팔짜가 못되야서 부애가 났소? 부러먼 곱게 부
럽다고 허제."
"어. 시끄럽네. 지가 헌 말은 생각을 못허고. 소가지라고 꼭."
오금박는 목소리로 쥐어박는 임서방 말에 더는 토를 달지 않았지만. 임서방네
는 강실이 혼수 화장품 말을 꺼냈다가 들은 이야기라. 혼자 머리 속으로 그 이
야기에 나오는 큰애기와 강실이를 섞바꾸어 세워 놓아 보았다.
인연은 모르는 거이라는디.
하면서. 왜 그랬는지 그네는 강실이가 아주 가련하게도 집에서 내쫓기어 수악
한 머슴한테로 시집을 간다면 누구한테로 가며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도무지 거짓말로라도 그 모습을
떠올려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네는 되작되작 원뜸의 종가에 있는 상머슴
에서부터 매안 마을 집집마다 한 집씩 더듬어 가며 상머슴. 중머슴. 물담살이.
깔담살이. 그리고 노비들까지 하나하나 짝을 지워 강실이 옆에 세워 보는 것이
었다.
그리고 거멍굴 춘복이까지도.
머 넘의 머리 속그짱 쫓아 들오든 못헐 거잉게.
그네는 들킬 염려가 없는 상상을 남모르게 감추어 놓고.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땔 때나. 하루일을 마치고 잠을 자려 할 때. 혹은 새 암으로 가는 길에 문득문득
한 장씩 들추어 보곤 하였다.
그것은 이상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놀이였다.
흠도 티도 묻지 않은 귀문의 아리따운 작은아씨가 그네의 상상 속에서는 얼마
든지 처량하고 가련한 처지가 되어 온갖 천한 놈. 낮은 놈. 궂은 놈에게 이리 저
리 짓밟히며 접붙여지는 것은 그 무슨 은밀한 복수 같기도 하였다.
그런데 강실이는 언제나 고개를 서글프게 갸웃이 숙이고. 눈을 아래로 비스듬
히 뜬 채. 웃지도 울지도 않는 얼굴에 스산한 바람이 끼친. 소름이 오스스 돋은
모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좁은 어깨에 가녀린 몸 여윈 가슴에 안고 있는 모퉁
이 하나.
그 강실이는 상상 속에서 어디로 가지도 오지도 않은 채 얼핏 무슨 꿈속인가
싶게 비치다 스러졌다.
"사람으로 났으면 인연이 다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하늘의 이치거든. 나이 먹은
사람의 노파심으로 한 말이니 그저 너를 염려해서 그러는 것이라고나 생각해라."
이헌의는 무거워진 강실이의 얼굴을 근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만큼 그네의 낯빛이 창백하고 어두웠던 것이다.
"어디서 좋은 인연이 지금 너한테로 오고 있겄지. 길이 너무 멀어서 남보다 조
금 더 오래 걸리는 게야. 하룻밤 자고 나면 내일은 그만큼 너한테 더 가까워길
것이고."
옆에 앉아 있던 이징의가 한 마디를 거들었다.
"아. 거 인연이라는 것이 말이요. 이것은 좀 다른 이야긴데. 물리적인 숫자나
세월의 양을 탄할 것이 아닙디다. 중국의 청대에 등완백말입니다. 그 사람이 청
나라 제일의 서가 아닙니까?"
징의는 이헌의에게로 상체를 조금 돌리며 잘 아시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동의
를 구하면서 말했다.
등완백은 초명이 염으로. 자는 완백. 호는 완백산인이었다. 그는 필법이 근엄
하고 웅건뇌락하여. 글씨의 기상이 하늘을 찌르게 정대하고 우뚝하면서도 또한
너그럽고 활달하여 거리낄 것이 없는 필봉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해서. 행서. 예서. 전서. 초서에 모두 능하였지만 특히 청나라의 외교관이며 무장
이었던 오대징과 함께 전서를 크게 부흥시켜. 진한의 예술 정신을 높이 고취시
킨 공적이 지대한 사람이었다. 또 북비를 배워 심취하다가 드디어 북비파의 대
가가 된 그는. 대청 삼백 년을 통틀어 가장 높고도 우람한 서가였다. 붓과 더불
어 노니는 자. 그 누구라도 등완백의 경지를 흠모하지 않는 이 없고. 또 누구라
도 그를 감히 넘어선 이 없는 이 사람에게는 걸음이 이르는 곳마다 구름이 일
듯 배우기를 청하는 사람이 몰려오고. 점 하나 찍어서 남겨 주면. 생애를 다하여
아끼고 대를 물리어 그 먹 자취를 전하였다.
이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의 제자는 누구입니까?"
등완백은 대답하였다.
"포세신"
이라고
포세신의 자는 신백이었다. 만년에는 권옹이라고 하였으며 소권유각외사라고
도 불렀다. 가경 13년의 거인(擧人:지방관에 의하여 조정에 추천된 사람)으로 신
유지현에 벼슬하였던 그는. 절세의 명필로 시와 서에 능하여 그 광채가 찬란한
사람이었다. 포세신의 필봉은 신묘하여 각체에 두루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경지
를 이루었는데. 그 중에서도 그는 행서를 잘 썼다.
그리고 서론에 탁월하게 밝아. 고전에 대한 비평과 운필법을 논하며. 비파의
서예 이론을 고무한 '예주쌍즙'을 저술하여.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한 생애
에 글씨로서 자신의 세계를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크고 깊은 영향을 주었
다.
그래서 청나라 말기에 광동성 남해의 명문에서 태어나 소년에는 성인을 이상
으로 하여 엄격한 주자학을 공부하고. 청년기에는 양명학에 전심. 정통파 유교에
대립하고 있던 금문학파 및 춘추공양학파의 영향을 크게 받아. 방대한 중국사를
탐독하고 불교서를 섭렵하였던 광하 강유위 같은 이도. 포세신의 '예주쌍즙'을
보고는 그 감명으로 '광예주쌍즙'을 썼던 것이다. 강유위는 포세신이 여든의 나
이로 세상을 떠난 지 삼 년 뒤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이 포세신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이에 그는 대답하였다.
"등완백"
이라고.
천방신일한 두 거봉 대가가 서로 서슴없이 하늘 아래 단 한 사람 나의 제자라
한 이가 포세신이요. 그 분이 나의 스승이라 한 이가 등완백이었다.
참으로 이만하면 여한 없는 사제이리라.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등완백의 육십 년 생애와 포세신의 팔십 평생을 통하여.
서로 만난 것은 오직 한 번. 그것도 단 열흘뿐이었다.
포세신보다 삼십여 년 연장이었던 등완백은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 다니
었는데. 그가 어느 곳에 머문다는 말을 들은 포세신이 그 길로 쫓아가 가르침을
청하고. 그로부터 열흘간을 함께 지냈던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더 안 만나도 그 열흘로 두 사람 생애의 인연은 다 완성된 것이요. 눈빛만으
로도 심혼이 교감해서. 선생은 서법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제자는 모든 것을 깨
쳤으니. 됐지. 손잡어 가르쳐 준다고 되고. 평생 배운다고 그게 될 일인가. 그런
즉 인연에 만나는 횟수나 세월의 양을 탄헐 일이 아니지요. 다만 서로 무엇을
만났느냐가 중요허지."
징의의 말에 강실이는 문득. 그네의 한세상에서 강모와의 인연은 이미 그날로
다하여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닌가. 가슴이 허물어졌다.
9. 액막이 연
강실이가 문장어른 댁에서 나와 오류골댁 사립문간으로 막 들어서려할 때. 그
네의 등뒤로 엇비켜 꺼북하고 허수름한 남정네 하나가. 그네를 보고 공대하여
고개를 숙이는 시늉을 하며 지나갔다. 아랫몰 타성 부서방이었다. 나이 오십에
조금 못 미친 그는 꼬지지한 무명 조끼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비쩍
마른 어깨를 치켜 모가지에 잔뜩 웅크려 붙이고는 위쪽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설을 쇠면서도 입던 옷 빨아 새로 짓는 것조차 변변히 하지 못한 그의 머리
뒤꼭지가 마치 재를 섞어 쑤석쑤석 비벼 놓은 것처럼 반백으로 스산한데. 초장에
진즉 머리를 깎아 버린 탓으로 더욱 그렇게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
다.
그 머리 너머로는 티 한 점 없이 새파랗게 트인 정월의 빙청 하늘에. 크고 작
은 갖가지 형용의 연들이 팽팽하게 풀먹여 날선 창호지 조각들처럼 떠 있었다.
그것은 흡사 무궁한 창천에 부리를 세우고 솟구치는 색색의 솔개들 같기도 하였
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언덕 위에 나직이 날고도 있었지만. 창백한 가오리연은
희고 긴 꼬리를 나울나울 흔들며 동무 것을 넘어 오르고. 그보다 더 높은 하늘
에는 온몸의 네 귀퉁이 각을 발톱같이 세운 기상이 바람을 가르는 장군연. 바로
그 옆에서 그 장군을 공격하여 덤비는 장수의 방패 같은 꼭지연. 그리고 그보다
더욱 높은 하늘의 꼭대기 저 먼곳에 아스라이 점 하나 찍힌 듯 누군가의 연들
이. 차가운 햇빛 속에서 실낱을 달고 날았다. 아이들의 함성이 연을 따라 물살처
럼 투명하게 울리며 논배미 너머 언덕 너머 아득히 높아진다. 지금이야 세월이
어수선하여 그전 같지 않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정초가 되면 온 동
네 아이. 어른이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마을 언덕으로 나와. 귀가 떨어지게
찬 바람 속에 가슴을 좌악 펴고 서서. 연자새(얼레)를 감았다 풀었다. 하며 푸른
하늘에 꽃 같은 새를 날리듯 연들을 날리는 그 풍경은 바라보기에도 참으로 화
려하고 장쾌한 것이었다. 연이란 그저 바람만 잘 타면 뜨기 마련인 종이 조각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같은 연을 날려도. 자새를
감고 푸는 솜씨며 실을 당기고 늦추는 재주에 따라. 창공에 뜬 한 마리 연은 그
야말로 아무도 당할 자 없는 솔개가 되기도 하고. 그만 힘없이 떨어져 버리는
나뭇잎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 무엇보다도 연은 우선 모양이 잘생
기고 풍채가 당당해야 하며. 오려 붙인 꼭지나 그려 넣은 그림이 예쁘고 좋아야
했다. 아녀자의 바느질 솜씨나 마찬가지로 남자가 자신의 연 만드는 솜씨를 한
껏 뽐내어 많은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만일 손이 둔
하고 무디어. 틀이나 겨우 얽어서 후줄근하게 만든 연이라거나 하찮고 볼품없는
그림이 얼룩덜룩 그려진 연을 들고 나와. 여럿 가운데 서서 날리게 되면 본인도
머쓱하여 부끄러워하였고. 남들한테도 은근히 흉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에
나가. 한 개에 몇 전씩 하는 연을 사다가 날리는 것은 더욱 체면이 깎이는 일이
었다. 연은 자기가 만들어서 놀아야 멋이었다. 그래서 으레 정초가 되면 집집마
다 어린 아들이나 손자를 앉혀 놓고. 한지를 장방형으로 반듯하게 자르며 가느
다란 대오리를 곱게 깎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의 자상한 손길이 신명나고 흥겹
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방안에는 벌써부터 들판과 언덕 위의 바람이 설레이며
부풀어 차오르는 듯하였다. 이기채도 어린 날의 강모를 위하여 연을 만들어 주
었으며 기표도 그의 아들 강태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 연을 손수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집안에 연을 날릴 소년이 없는 기응은. 남달리 매시라운 손끝으로 장구
도 잘 쳤지만. 연 만드는 솜씨도 그에 못지않아 큰집 작은집의 두 조카들을 주
려고 공들여 고운 연을 만들곤 하였다. 깐깐하고 대쪽 같은 부친을 몹시 어려워
하던 강모는 차갑고 날카로운 중부 기표보다 수더분하고 모나지 않은데다 욕심
이나 꾀가 없어 대하기 편안한 오류골 숙부 기응을 더 좋아하여. 곧잘 이 작은
집으로 내려와 그의 옆에 앉아서 제 연 만드는 것을 구경했었다. 그럴 때면 강
실이도 함께 그런 것을 신기하게 들여다보았었다.
"이 연이란 것은 말이다. 잘 만들어서 띄우면 재미도 물론 있지마는 그보다 올
한 해 아무 탈없이 무사하게 연이 저 하늘로 거침없이 높이 날 듯이. 하는 일마
다 모두 성취하고 잘 풀리게 해 주시라고 간곡히 비는 마음을 실어서 바람에 띄
워 하늘로 올려 보낸다는 뜻도 있는 것이다. 이게."
그러니 할 수 있는 껏 정성을 기울여 어여쁘고 튼튼하게 만들어야했다. 자신
의 소망을 보다 고운 색색깔 오색으로 아로새기어. 보다 놓이 보다 멀리 드높은
천상의 그 어디까지라도 날아오를 수 있도록 하려고.
기응은 물기가 완전히 빠져 마른 대나무 토막을 잘 드는 주머니칼로 잘게 갈
라. 한 개 한 개 기다란 꼬챙이처럼 깎았다. 연살이었다. 그것은 서투른 어린아
이가 덤벼들어 하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야말로 연의 뼈대를
이루는 대가지로서 연이 제대로 균형 잡힌 몸매를 갖추는 기본이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걸 '달'이라고 하는 것이다.'"
기응은 꼬챙이를 들어 강모에게 보여 주었다.
연 하나 만드는 데 달은 다섯 개가 필요했다.
"이 머릿달이 그 중 굵어야 허니라."
연종이의 맨 윗단에 가로로 붙이는 이 살은 연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치솟아
오를 때. 갑자기 부딪치게 되는 바람의 세찬 압력을 견디면서 앞으로 강하게 밀
고 나가야 하는 탓이었다. 머릿달이 약하면 대가 그만 부러져 버리고. 만일 전체
의 굵기가 고르지 못하면 연이 한쪽으로 기울어 날기 어려웠다. 그래서 혹 마디
가 있는 대오리를 머릿달로 쓰게 될 때는 그 마디를 한가운데로 오게 하거나 아
니면 선 양쪽에 꼭 같이 가게 하여 무게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연의 네
귀퉁이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서 가위표로 붙이는 귓달은 다르다. 귓달은 머리
쪽은 아까의 머릿달처럼 굵고 튼튼하게 깎아야 하지만 점점 치마 쪽으로 내려갈
수록 흘리듯이 가늘게 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치마가 무거우면 안되는 탓이다.
그리고 연의 몸 한가운데 세로로 내리긋는 살대 꽁숫달도 귓달같이. 위쪽은 단
단하고 강하게 깎고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다듬어 나갔다.
그런 다음 끝으로 연달 중에 제일 가늘고 날렵한 허릿달을 다듬는다.
"사람의 몸에서 제일 유연해야 허는 데가 어디냐? 허리지? 허리가 바르고 유
연해야 몸에 균형이 잡히는 것이다. 연도 마찬가지라. 이 허릿달이 바로 연의 중
심을 잡는 것이야."
이것은 그래서 다른 달의 사분지 일이나 될까 하게 가느롬히 깎지만. 그렇다
고 너무 가늘면 연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올라가지 않고. 또 너무 굵으면 뱅글뱅
글 허공에서 헛맴을 돌게 되니. 이 미세하고 정확한 무게와 흐름을 저울에 달거
나 눈금으로 재 가며 깎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오직 세월이 묻은 손끝으로 익
숙하게 가늠하여 꼭 알맞은 것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개 어린 사내
아이들이 제 손으로 처음 만든 연들은 서투른 생김새로 바깥에 나와서는 위로
한 번 떠 보지도 못한 채 땅바닥에 직직 끌려가다가 나무 뿌리 솟은 것이나 돌
부리에 무참히 걸리어 애석하게도 찢기어 버리기 일쑤였다. 행여 그렇게 될까
봐 미리 형이나 누가 연을 멀리 가지고 가서 휘이 날려 놓아 주기도 하지만 그
런 마음이 무색하게 연은 그 자리에서 거꾸로 떨어지며 고개를 땅에 박아 버리
기도 하였다. 내 손으로 만든 연을 내가 하늘에 띄울 수 있다아. 간밤 내내 설레
어 잠을 못 이루며. 대오리 깎느라고 칼에 베인 자리조차 아픈 줄 모르게 들떠
있던 소년이 꿈속에서도 제 연을 타고 높이 높이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던 그
연을 처음 창공으로 띄웠을 때. 뜻밖에도 비상의 황홀한 기쁨 대신. 찢기고 추락
하는 낙망을 맛보게 되었으니. 어떤 아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기도 하였다. 그
아깝고 슬픔 마음이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여지없이 찢기고 나서야 비로소 모양
을 제대로 갖춘 연 하나가 만들어지고. 어느 날 드디어 그것은 날개를 차며 머
리 위로 가벼웁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아.
탄성을 발하며 제 연을 따라 함께 날던 그 짙푸른 마음이라니.
그런 뒤에 해마다 조금씩 더 익어 가던 손끝이 이제는 어느덧 어른이 되고 또
노인이 되면 눈감고 칼을 밀어도 저절로 알맞게 깎이고 다듬어져. 머리 쪽은 두
터운 이마와 강인한 뼈대를 갖추고 치마 쪽은 가볍고 유연한 연을 만들 수가 있
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훌륭한 연이 다 된 것은 아니었다.
장식이 남아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저마다의 연이 가지는 태깔과 맵시가 달라져. 각기 이름까지도
어엿이 따로 불리는 판가름이 나는데. 이마에 둥근 해와 달처럼 꼭지가 붙어 있
으면 꼭지연. 반달 모양이 붙어 있으면 반달연. 눈이나 코 같은 형상이 박혀 있
으면 박이연. 색지로 머리를 동이었으면 동이연. 연의 아랫도리 치마에 무슨 색
을 칠하였으면 치마연. 그리고 허리에 마치 띠를 두른 것같이 색지를 동였으면
허리동이연. 둥그런 꼭지만 빼고는 온몸에 모두 색칠을 한 초연. 지네발 모양으
로 종이를 오려붙인 발연 들이 서로 자태를 다투었다.
만일 이렇게 종이를 덧붙여 꾸미지 않는다면 날개 갈피마다 정교하고 호화로
운 색깔을 먹인 나비를 그리어 나비연을 만들거나 굽이굽이 굼틀거려 승천하는
황룡을 그린 용연. 혹은 검은 얼굴에 붉은 눈깔이 넷이나 달린 그 모습이 하도
무시무시하여 귀신도 혼이 나 달아난다는 방상시를 도형화하여 그린 눈깔머리
장군연. 또는 허리띠 양쪽에 붉은 눈알만을 그려 넣은 눈깔허리 동이연 같은 것
들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도 아니면. 연달이 갈라 놓은 여덟 개의 세모칸에 알록
달록 다른 색지를 바른 바둑판연. 꼭지 붙은 머리 쪽의 양편 귀때기에 푸르거나
검거나 붉은 색지를 바른 귀때기연. 발톱연. 얼마든지 재미나게 도안할수 있었
다. 연에 쓰는 물감은 적. 청. 황. 흑. 백의 오색이었다. 우주의 근원인 하늘에 띄
워 올리는 빛깔이므로 동. 서. 남. 북과 중앙을 나타내며 음양 오행의 원리를 담
은 오방색만을 썼던 것이다. 이 천지 자연에 순응하는 경건하고 겸허한 마음의
바탕 위에서 오색은 얼마나 찬란하고 눈부시게 어우러지고 또 강렬하게 절제되
어 얼어붙은 창천에 저다지도 현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그래서 그 색깔따라 연
에는 각기 다른 이름이 붙었다. 흰 몸에 둥그런 꼭지가 선연하게 붉으면 홍꼭지.
새까만 먹빛이면 먹꼭지. 푸른 반달을 접어 붙였으면 청반달연. 또 만일 몸판을
삼등분하여 색동으로 물을 들였으면 삼동치마연. 그리고 아름다운 오색 무지개
를 넣었으면 무지개 꼭지연이라고.
허나 만일 연에다 아무 빛깔도 넣고 싶지 않으면 이마에 꼭지만 하나 붙이고
수. 복이나 용자를 먹으로 써서 날리기도 하였다. 이 형형색색의 연들은 매안의
언덕 위에서 바람을 타고 하염없이 떠오르며 흐르듯 날기도 하고. 이마빼기를
느닷없이 후려치는 바람에 호되게 맞아 공중에서 휘청 흔들리기도 하며 자기를
베어 내려고 사기 먹인 실의 날카로운 이빨을 허옇게 드러내며 달려드는 옆엣놈
서슬에 소스라쳐 허릿달이 휘어지게 달아나기도 하다가 그 곤두박질치던 연이
얼레의 퀴김을 받아서 몸을 다시 곧추세워 이번에는 거꾸로 쫓기던 몸을 반공에
솟구치며 쫓아오던 놈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런 광경들은 장관이었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유아를 막 벗은 어린아이가 서투르게 날리는 가오리연말
고는 그 달빛같이 흰 얼굴에 붉은 곤지 찍은 듯 곱고도 요염하여 하늘을 홀리려
는 빛깔이며 엄중하고 위엄에 가득 찬 혹은 위풍이 당당하여 구긴 데 없이 제왕
처럼 떠 있는 아니면 한 마리 매나 솔개마냥 민첩하고 날쌘 또 처연하리만큼 아
득히 높이 뜬 연들은 하나 같이 가슴 한복판이 둥그렇게 뚫려 있었다. 가슴을
도려내 버린 그 자리에는 메마른 연달만이 가슴에 걸린 가시처럼 드러나 있고
그 구멍으로는 하늘이 그대로 푸르게 비치는 것이었다. 애도 창자도 없이 비어
버린 연의 가슴을 푸른 하늘이 대신 채워 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빈 집
을 아무 뜻없이 통과하는 바람처럼 하늘은 비치는 것일까.
강실이는 사립문간에 선 채로 하염없이 연들의 뚫린 가슴을 올려다 보았다.
그 연들은 가슴에 하늘이 시리게 박힌 것처럼도 보였다.
"왜 연에다가는 구멍을 뚫는대요?"
어린 날 강모는 그렇게 물었다.
"그래야 잘 날지. 그게 바로 연의 비밀이니라."
기응은 웃으면서 대답했었다.
"비밀?"
"비어야 상하. 좌우. 자유 자재로 날 수 있는 것이다."
강모는 알 수 없는 말이라고 고개를 갸웃하였다.
"봐라. 이걸 방구멍이라고 허는데."
기응은 연달을 다 깎아 한쪽으로 밀어 놓고. 깨끗한 연종이를 가로 한 번. 또
다시 세로 한 번 접어서. 각이 지게 접혀진 한가운데를 칼로 그린 듯 동그랗게
오려 냈다. 반듯하고 온전했던 하얀 백지는 그만 한순간에 가슴이 송두리째 빠
져 버려 펑 뚫리고 말았다.
종이의 오장을 무참하게 도려내 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이상하게도 그것이 너
무나 아까워서 강실이는 아버지의 손을 숨죽이어 바라보았었다. 기응은 구멍이
뚫린 연종이를 지금 막 바람을 받아 떠오르기나 하는 것처럼 비스듬히 경사지게
세워 들었다.
"바람이 여기 이마에 와서 탁 부딪쳐 때리면서 이렇게 연을 공중으로 띄워
올리지 않냐? 그럴 때 바람을 맨 먼저 받는 것이 이 이마다. 그래서 연 이마는
찌어지기가 쉬워. 허나 이 복판 구멍 도려낸 꼭지를 이마에 붙이면. 안 찢어진
다. 질겨져. 이마가 네 겹이 되거든. 연 몸이 한 겹. 꼭지가 또 한 겹. 그러고 풀
칠이 한 겹. 참 묘허지? 헌데. 연 이마에 한 번 부딪친 바람은 그냥 그 이마 위
쪽으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라. 그럼 어떻게 되꼬? 요 이마 뒤쪽이 순간 바람 없
는 진공이 되겄지? 그때 바로 이 방구멍으로 빠져 나간 바람이 진공된 자리를
메꾸어 주는 게야. 좌우로 미끄러져 나간 바람허고 같이. 이 바람이 조화를 부려
서 묘기를 내는 것이다. 물론 띄우는 사람이 연자새를 잘 다뤄서. 실을 당기고.
놓고. 튕기고를 때 맞추어 잘해 줘야 하지만. 연을 제대로 날릴 테면 바람을 읽
을 줄 알아야 헌다. 그 바람을 실로 가늠해서 손 끝에 탁 느끼고는 연자새를 팽
그르르 감었다. 풀었다. 살살 땡겼다. 놓았다. 옆으로 눕혔다. 바로 세웠다. 허는
걸 잘해야지. 그래야 연을 잘 날려."
기응은 아까 오려 낸 종이를 구기거나 버리지 않고 한쪽 옆에 두었다. 그리고
물감을 곱게 풀어 때로는 선연한 다홍으로 때로는 쪽빛청람으로 또 때로는 아주
검은 먹물로 색칠하여 연의 이마에 갖다 붙였다. 그것이 바로 '꼭지'였다. 그러면
창백하게 핏기를 잃었던 연의 흰이마에 선홍색 붉은 해가 찍히고 푸른 달이 만
월로 뜨며 검은 동산이 신비롭게 뚜렷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뿐인가. 먹머리
동인 띠 아래 반달로도 숨고. 어느 해인가는 소스라치도록 여염한 꼭두서니빛
초승달이 걸리기도 하였다.
기응만이 그렇게 오만 가지 도안을 해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연
을 만들 때는 그렇게 했다.
"이렇게 꼭지를 붙이면 머리가 두터워지고 강해져서. 웬만한 바람이 세게 불어
도 견디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고 이 문양은 그냥 무단히 이쁘라고만 붙이
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빌면서 연을 날리는 마음이 저 하늘에 뜬 해와 달에까지
가서 닿아 모두 이루어지고 나쁜 액은 또 이 연에 그린 것들이 다 막아 주기를
바라는 심정을 붙이는 게지."
그러니까 그것은 부적이기도 한 셈이었다.
연이야 무슨 생각이 있을까마는 그렇게 제 가슴을 아프게 도려낸 애를 곱게
곱게 물들이어 이마빼기에 붙이고. 그 어느 연보다 더 휘황한 빛깔로 자태를 자
랑하며 이름까지 지어 받아 소원을 싣고 악귀를 쫓으면서 높고 높은 하늘의 먼
곳으로 나는 것이다.
얼마나 서럽고도 아름다운 일이리.
사람도 그러하랴.
한 생애를 두고 그 무슨 못 견딜 일 당하여서. 순결한 눈밭처럼 희고 깨끗한
백지의 인생을 무참하게 달려들어 반으로 꺾은 허리. 다시 한 번 접어서 또 반
으로 꺾은 종이. 이제는 도려내어 구멍 뚫는데 죄도 없이 운명에게 폭행당하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폐장이 다 썩어 내려 텅 비어 버린 가슴. 혹은 삶의 고
비 막다른 곳에서 피할 길 없는 비수를 들이댄 누구인가에게 난자당한 가슴. 그
비수같이 꽂힌 어느 이름이 밤마다 흘리는 눈물에 녹아서 이제는 흔적마저 희미
한데. 그 이름에 함께 녹아 썩은 물이 되어 버린 애.
그 애 녹은 자리의 쓰라린 공동. 이 상실과 상처와 상심이 버린 가슴은 오히
려. 해 같고 달 같은 꼭지로 물들어서. 한숨과 눈물의 풀로 한 생애의 이마에 곱
게 붙여질 것인가.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비어 버린 것의 힘으로 가
벼이 되며. 또 그 비어 버린 것의 힘으로 강하게 되어 바람이 불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것인가.
옴시레기 도려내어 가시만 남은 가슴이 없었더라면. 무엇으로 저 연의 오채
찬란한 꼭지를 장식할 수 있었을까. 참으로 모양 없고 무미 건조한 종잇장 하나.
그저 날고 싶은 욕망으로 떠다니고 있을 뿐이리라.
강실이는 하늘에 뜬 연의 투명하게 뚫린 가슴을 올려다보았다.
사람의 가슴도 차라리 저처럼 애의 찌꺼기 한 토막 붙어 있지 않을만큼 말갛
게 뚫리어 비어 버릴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좋을 것인가.
강실이는 명치를 밀고 올라오는 눈물을 지그시 누른다.
그때였다.
어느 것보다 높이 날아. 하늘 꼭대기 상상의 갈피로 점 하나처럼 반짝이며 오
르던 연이 아칠아칠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힘없이 어깨를 떨구면서. 아득히 떨어
져 내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실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땅
으로 내리박혀 떨어지지는 않았다. 가라앉을 무게조차 가지지 않은 가벼움 때문
이리라. 그래서 그것은 실이 끊어져 버린 연이면서도 살아 있는 다른 연들보다
아직은 더 높은 곳에서 바람에 실리어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연은 아까보다 휠
씬 더 먼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
웬일인지 강실이는 그 연이 자기 자신인 것만 같아. 얼른 눈을 거두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서 있었다. 이미 그 어떤 힘으로부터 끊기어져. 살아 있는 줄
알고 가물가물 흘러가지만 사실은 죽은 연 하나가 파리하게 여위어 사립문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저토록 공들이어 치장하고 정성을 다해 만든 연이
라 할지라도, 이윽고 머지 않아 보름날이 되면 모두 걷어 달집에 넣고 태워야한
다. 보름이 넘어서도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이라고 크게 꾸중을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보름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연을 날리고, 신명나게 연싸움을 하며, 볼
따구니가 바람에 터 발갛게 갈라지도록 논배미와 동산과 언덕을 누비고 다니었
다. 그러다가 가시 많은 대추나무에 걸린 연을 떼어 내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
르기도 하고. 아차 놓쳐 버린 연을 까마득히 바라만 보며 오직 눈물을 글썽거릴
뿐이기도 하였다.
그 연 날릴 수 있는 날들이 다 지나가고.
오늘은 보름밤.
지치게 날리고 놀던 연이나 금방 만든 새 연이나 가릴 것 없이. 이제 더는 가
지고 있지 못한다. 생솔가지와 생대나무로 푸르게 엮어 지은 달집이 뭉글뭉글
구름덩이 같은 흰 연기를 토하며 타오르는 붉은 불길에 던져 넣은 연들은 화르
르 불너울을 일으키며 눈 깜짝할 사이에 스러져갔다.
"모든 액은 다 타 버리라."
고 사람들은 연을 던져 넣으며 빌었다.
제 연이 허방하게 불티로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에 불 그림자
가 주황으로 일룽였다. 그러나 아까워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이 대보
름날 밤이면. 집집마다 멀리 날리어 앞으로 다가올 액을 미리 막으려는 액막이
연을 띄우는 것이었다. 마치 소복을 한 듯 아무 색도 입히거나 칠하지 않은 백
지의 바탕이 소슬한 흰연에다 섬뜩하리만큼 짙고 검은 먹빛으로
"액"
"송액"
"송액영복."
을 써서. 갓 떠오르는 새 달의 복판으로 날려 보내는 이 액막이 연은 얼음같
이 푸르게 비추는 정월의 달빛 속에 요요한 소지처럼 하얗게 아득히 올라갔다.
얼레에 감긴 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모두 풀어 그 연을 허공에 놓
아 주었다.
멀리. 저 멀리 더 먼 곳으로 날아가라고.
"강실이 저것이 올해 신수가 영 안 좋다고. 당골네가 무슨 소리를 허드마는.
몸이라도 어디 성찮을까 걱정이 되니. 거기서 허라는 굿이야 말대로는 다 헐 수
없는 일이지만 제웅이나 하나 띄워 줍시다."
오류골댁은 매안으로 올라와 신수를 짚어 주던 당골네 백단이의 말이 마음에
걸려. 기응에게 며칠 전부터 말을 해 두었다. 제웅은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
어 액막이로 쓰는 허수아비다.
"드는 삼재보다 나는 삼재가 더 무선 거인디. 애기씨는 재작년에 삼재가 들으
와. 작년에는 쉬는 삼재. 올에 인자 나강만요. 나가는 삼재는 뒷발질로 차고 나
가는 거이라. 재앙이 많이 불고 탈도 많은 법인디. 애기씨가 올에 죽을 수가 들
어서 산에 가도 놀래고. 물에 가도 놀래고. 가마안히 집안으 들앉어 있어도 무단
히 퉁 놀래서. 가심이 밑빠진 것맹이로 내리앉어. 아이고 내가 왜 이런다냐. 내
가 살라고 이런다냐. 죽을 라고 이런다냐. 세상 사람 아무도 몰라도 나는 나 혼
자 앉었으먼 꼭 기양 사그르르 숨을 놓고 죽을 것만 같은디. 어머이도 그 속을
모리고 아부지도 그 속을 모리고. 천지신명 일월성신한테나 빌어 보끄나. 한숨으
로 안개가 찌여 앞을 보아도 캄캄허고 뒤를 보아도 낭떠러지라. 애기씨가 어디
사람한테 놀랜 일이 있었능가. 자꼬 사람 애가 찌여 뵈이네요잉. 안 그러먼 앞으
로 놀랠 일이 있을랑가.
애기씨 신수가 나이 아직 젊어서 넘들이 보머는 꽃다운 이팔 청춘. 꾀꼬리 날
고 버들이 춤 춘다는 호시절이지마는 속이 삭어 비어 부러서. 바람 들어 썩은
부시맹이로 씨커멓게 비치네요. 왼갖 매디 삭신은 팔십 노인도 이만허든 안헐
거인디. 손을 들어 머리 빗기도 힘이 들고 앉은 자리서 돌아앉기도 힘이 드니.
아니 애기씨가 왜 이러까아. 운수가 이럴 때는 접시물도 조심허고. 넘의 말도 조
심해야 해요오. 기양. 오다가다 무신 말 한 마디만 비끗해도 무단히 오해 사고.
사단이 나는 거인디요잉. 망신살에 구설수가 들어 놨이니.
신수 괘가 그렇다 그거이제 머 꼭 그런 일이 생길라등가요 머. 넘들 같으먼
이럴 때 굿을 꼭 해 주라고 그러겄는디. 애기씨 아직 혼인도 안 허신디다가 벌
어지게 굿허고 어쩌고 허먼 참말로 머이 씌었는가. 구설에 오르내링게. 어디 헛
일 삼어서 제웅이나 하나 띄워 보내 보시지요. 이 달 정월 보름날에 연 끄터리
다가 조그막허게 맨들어 달어서 돈 한닢 짬매 갖꼬. 훠어이 훠어이. 먼 디로 가
라고 날려보내 보서요. 제웅속으다가 생일 생시 써서 넣고. 이름 쓰고요."
당골네는 그러고도 무슨 자잘한 말들을 더 하였으나 하나같이 불길한 것들이어
서 오류골댁은 그것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었다.
"꼭 사람 조심을 허세야 쓰겄는디요."
당골네 일어서면서도 당부하였다.
"어디 문밖 출입이라고 허는 사람이어야 말이지. 누구를 조심해야 허는고. 그
저 맨날 보는 제 부모말고는 어디 누구 말허고 지내는 사람도 없는데."
"운수가 그러시다는 거이지요 머."
"알겄네. 조심해서 가소."
오류골댁은 마음이 수수하여 배웅도 대강 하고는 그 길로 지푸라기부터 챙기
러 갔다.
정초에는 으레 매안으로 올라와 세배를 도는 당골네한테 강실이 혼처는 어디
서 나겠으며. 언제쯤이나 혼사가 이루어지겠는가 물어 보려 했던 것인데. 말이
씨 되면 어쩔꼬 싶은 마음이 드는 말만 골라 듣고나니. 심정이 뒤숭숭하여 며칠
간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보름날이 되었던 것이다. 강실이도 그
제웅이 달린 액막이 연을 보았다.
귀신의 낯빛으로 허옇게 질린 연의 이마에 꼭두서니 홍꼭지 대신에 검은 글씨
로 '액'이라 써 놓은 것이 달빛을 받아 더욱 귀기를 띠는데. 꽁지에 매단 지푸라
기 허수아비 제웅은 손가락 길이보다 조금 더 컸지만 백지로 얼굴을 씌워 감은
데다 눈이며 코며 입술이며 검은 붓으로 그려 넣은 것이 강실이를 철렁 놀라게
하였다. 저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를 대신하여 멀리 허공으로 죽으러 가는가.
제웅은 시늉으로 그린 눈을 부릅뜨고 강실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허새비
의 고리 눈빛이 표창같이 그네의 가슴을 뚫고 복판에 꽂힌다. 무서웠다. 그것이
단순한 허새비가 아니라. 정말로 무슨 넋이 스며들어 자신의 혼을 빼 가는 것도
같았다. 매달고 있던 나락 모가지가 다 잘려 버린 지푸라기 몇 올을 이리 엮고
저리 결어 만든 제웅의 마른 가슴 갈피에다 생일 적고 생시 적어. 몇 번이고 접
어서 조그맣게 찔러 넣은 백지는 이제 한낱 종이 조각이 아니라 강실이의 혼백
이 되었으며. 제웅 또한 한낱 지푸라기 인형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 강실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그 허새비 인형이 실제 강실이
고. 그것을 보고 섰는 강실이가 오히려 허옇게 껍데기만 남아 사람 시늉하고 있
는 허새비인 것만 같았다. 그네의 신수에 낀 액운만을 뽑아 내어 허새비 속에
담아서 멀리 멀리 날려보내 버리고자 하는 일인데. 그런 일들이 오히려 그네에
게는 소름이 돋도록 불길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이름을 가슴에 품은 지푸라기 허새비 제웅이 자신의 액을 안고. 연에
매달리어 홀로 아득한 허공을 흘러흘러 가듯이 그네는 독하고 서러운 이름 하나
를 가슴에 에이게 꽂은 채로 허새비처럼 이미 무게도 부피도 없이 자욱하게 한
숨을 타고 떠오르고 있었다.
액막이 연은 내장까지 푸르게 비쳐들어 그 영령한 물 소리로 채우는 달빛을
받으며 달집이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가 저만치서 일룽이는데. 허어옇게 소리도
없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넋의 흰 그림자 같았다. 연 꽁지에 매달린 제웅
의 조그만 몸뚱이가 고적하게 깟닥깟닥 흔들리고. 저 아래 어디만큼에서인지 풍
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제웅은 그 풍물에 장단을 맞추는 것처럼도 보인
다. 아니면 가겠노라는 무슨 인사의 시늉처럼도.
강실이는 달빛 속에 서서 멀어지는 연꼬리의 제웅이 그 엄지손톱만하던 창호
지 낯바닥에 그린 고리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같아. 흰 소름이 등
을 훑어 내리는 한기에 몸을 후르르 떨었다. 기응은 얼레에 감긴 무명실을 풀고
풀었다.
오류골댁은 두 손을 맞잡아 가슴에 모두고 낮은 소리로 "멀리 멀리 갑소사. 아
조 먼 데로. 머언 데로 가십소사." 흰 연을 우러르며 중얼거리듯 빌었다.
10. 아랫몰 부서방
얼레에 감겨 있던 무명실을 다 풀어 검푸른 밤하늘의 한가운데로 연을 깊이
날려보내 버린 기응은 얼레를 마루 위에 내려놓고는
"풍물 치는 구경이나 잠시 허고 올란다."
하면서 뒷짐을 진 채로 사립문을 나섰다. 흰 달빛에 그림자 검은 머리가 앞을
서는데. 바깥쪽에서 그와 엇갈리어 그림자 하나가 사람보다 먼저 문 안으로 들
어선다. 기표의 처 수천댁이었다. 문간에서 마주친 수숙간에 무어라고 두어 마디
나누는 소리가 달빛 속에 두런두런 들리더니
"자네. 다리 밟으러 안 갈라는가?"
마당으로 들어선 수천댁이 오류골댁한테 물었다.
대보름날 밤이면 으레 남자들은 동산으로 달맞이를 하러 가고 달불놀이를 하
며 한 동아리로 어우러져 달집을 사를 때. 여자들은 마을 가까이 있는 다리로
어울려 가서. 자기 나이 수대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오가며 다리를 밟는 것이
었다. 답교는 많이 할수록 좋다 하였다. 그렇게 하면 일년 내내 다리가 아프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전 같으면 이렇게 대보름날 밤에는 아녀자가 다리를
밟는다고 바깥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보름날 밤의 답교는 엄금이었다. 그 대신
에 하루를 늦추어 열엿새날 밤에 하게 하였다. 다시없는 명절의 차고 맑은 달은
하늘에 높이 떠 휘영청 밝고. 온 마을이 모두 달빛과 불길에 들떠 풍물 소리 요
란하게 울리는 대보름날 밤이란. 신명만큼 혼잡하기 마련인 탓이었다. 그것도 자
기 마을 사람들끼리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이 마을. 저 마을. 이웃 마을에 삼동
네가 너나없이 장구 치고 북 치며. 꽤괭 꽤괭 꽹과리에 지이잉 징 징을 두드리
어 한바탕 노는데다. 맞붙은 동네끼리 횃불싸움 한다고 천지가 떠나가게 함성을
지르면서 불꽃을 휘두르는 와중이란. 당자들로서는 엄동에 땀투성이가 되게 신
이 나는 일이고. 구경꾼들에게는 그런 장관이 없어서 공연한 사람까지도 어깨가
들썩이어 흥분하게 하지만 바로 그런 탓에 부녀자들은 바깥에 나가면 안되었던
것이다.
"대보름날 아니라도 달이 뜨면 무단히 잘모르는 개도 짓는 법인데 하물며 심
정 가진 사람이랴. 한 식구 같은 동네 사람도 이런 날이면 자칫 못 믿을 판에.
횃불 논다고 이웃 동네 장정들이 불덩어리 치켜들고 범떼같이 몰려드는 밤에.
행여라도 바깥출입 생각도 마라. 얼씬하다 까딱하면 생 큰일난다."
엄중한 어른들은 집안의 아녀자에게 그렇게 오금을 박았다. 거기다 과년한 처
자가 있는 집은 단속이 각별한 것을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러나 횃불싸움은
참으로 볼 만하였다. 큼지막한 짚뭉치 속에다 닭똥과 사금파리 그리고 숯덩어리
를 집어 넣어 만든 횃불을 손에 손에 든 온 동네 청년과 남자들은 옆 마을과의
경계인 둔덕으로 올라가
"와아아."
"와아."
함성을 지르며 팔을 휘둘러 횃불을 공중에 돌렸다. 둔덕에는 벌써 옆동네 횃
불들이 넘실거려 주홍의 불무리를 일으키며 붉은 불살의 회오리같이 밀려와 있
었는데. 그것은 이 동네로 들어오려는 횃불들이었다. 둔덕에 선 두 무리의 휘황
한 횃불들은 서로 상대편 불무리를 결사적으로 막아 내며 혹은 밀치며. 이쪽으
로 들어오려 하고 저쪽으로 넘어가려 하였다. 누구든지 상대편 동네로 먼저 불
을 밀고 들어가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었다. 검은 그을음을 길게 뿜으며 너울너
울 타오르는 횃불이 달빛을 물들일 때. 불 속에서 달구어진 사금파리는 허공으
로 튀어올라 타닥. 찬연하게 부서지며 선홍으로 흩어졌다. 그럴 때 사람들은 다
시금 와아아. 함성을 질렀다. 이 횃불싸움에서 이기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동네
청년들의 혼삿길이 환히 트인다고 해서 이 마을과 저 마을의 온 동네 남자들이
다 나와 응원하고 싸우는 이 놀이는 정월 대보름날 흥겨움의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그만 진 동네에서는. 밀고 들어오는 횃불의 무리를 위하여 동이술을
내놓고 음식을 한판 걸게 대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또 두 동네가 한자리에
어우러져 왁자아. 하늘이 울리게 풍물을 놀았다. 그러니 어른의 분부가 아니더라
도 감히 문 밖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녀자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
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달라져서 그토록 흥에 겨운 놀이들이 어느결
에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명맥만 남아. 어린 사내아이들이
"망울이야아."
"망울이야."
하며 논둑 밭둑에 쥐불을 놓고. 저희끼리 놀이로 횃불을 돌리는 정도였다. 달
집을 사르고 풍물을 치는 것도 완연히 규모가 줄어. 그전에 비기면 시늉에 불과
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자연히 매안 마을 아녀자의 답교도. 굳이 열엿새날이 아닌 보름날 밤
에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꼭 누가 허락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의 동네 개
울로 다리를 밟으러 가는 것도 아니요. 혼자서 가는 밤길도 아니었기 때문에 은
연중 묵인이 되었다고나 할까.
"금방 오마."
강실이를 혼자 남겨 두고 나서는 것이 어쩐 일인지 다른 때 같지 않아 마음에
걸린 오류골댁은 사립문간에서. 마당에 선 딸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버지 곧 들오실 것이다."
다시 한 마디를 더 붙인 오류골댁이 수천댁을 따라 고샅으로 나갔다.
"큰집에 형님은 어쩌고 계신가 모르겄네요."
그네는 율촌댁 걱정을 하였다. 그 말 속에는 같이 모시고 갔으면 좋으련만 하
는 뜻도 들어 있고. 아직 상중에 두 동서만 답교하러 간다는 것이 왠지 송구스
럽다는 뜻도 담기어 있었다.
"들렀다 가지 뭐. 잠깐."
"율촌형님 근력이 이번 설 쇠고는 눈에 띄게 노인 되셨드마는."
"하루가 무섭지. 인제부터야. 무슨 기가 맥히게 좋은 일이나 생긴다면 또 모를
까. 크는 어린애 오뉴월 하루 햇볕이 무섭듯이 나이 자신 노인네 하룻밤새가 무
서운 법 아닌가. 거기다가 근심이 댓진같이 꽉 차있는데……."
"청암백모님 상당허시고는 그만."
"초상도 초상이지만. 집 나가서 안 오는 자식을 두고 그것도 참 여느 자식허고
같은 아들인가. 잠이 올까 밥이 넘어갈까 그 정황을 생각허면 내가 도무지 죄
지은 것 같어서. 그 형님한테 어디 몸 둘 바를 모르겄네. 정말로."
수천댁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무겁게 가라앉은 한숨을 토했다.
"그리 된 일이 형님 탓인가요. 무어. 자식도 품안에 자식이지. 다 큰 아들이 생
각 있어 허는 일을 부모라고 어찌 맘대로 헐 수가 있어야지요. 생각해 보면 형
님이나 율촌형님이나 똑같은 입장이신데. 그래도 어디 가 있든지 혼자 가 있는
것보담은 저희 종형제 같이 있을 터이니 한결 낫지요. 사실 또 여기 있대서 편
안한 세상도 아니고. 징병 때문에 모다 저 난린데."
"그나저나 마적떼가 되었는가. 동냥치가 되었는가."
"젊어 한때 바람이겄지 평생 그럴라고요? 부모 여기 계시고. 제 자식들 여기
서 크고. 저만 기다리는 제 처 여기에 있는걸."
"그런 것 아는 놈이 이러고 소식 한자 없겄는가? 중정이라고는 솔잎 끄터리만
큼도 없으니. 그렇게 독허게 제 생각만 허지."
"인제 곧 무슨 소식이 있겄지요. 설도 쇠고 했으니."
"그믐에 안 온 놈이 설 쇠었다고 와? 아. 갈라면 혼자나 가지 왜 넘의 집 종
손은 끌고 가아. 글세. 명색이 형이라는 위인이. 아무리 종항간이라지만 친동생
한가진데. 그래 헐 짓이 없어서 도망을 같이 가? 야반도주를? 설령 동생이 그러
자 허드라도 형이 말리는 것이 도리지. 이거는 거꾸로. 이런 노릇이 어디 있단
말인가. 참말로 면구스러워서. 형님이 나한테 내놓고 그러시든 않지마는 나만 보
면 꼭 그 말씀을 허실 것만 같어 조마조마……허네. 내가 강모 그리 된 것이 부
랑배 형을 둔 탓이라고……."
수천댁의 음성이 속에서 치받으며 격해졌다. 오류골댁은 수천댁이 말은 저렇
게 하지만 속으로는 아들 강태가 하루아침에 만주로 가 버렸다는 소식에 입술이
거멓게 변색될 지경으로 놀란 뒤. 아직도 푸르둥둥 제 색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네의 애간장도 그렇게 멍들어 질린 빛으로 상하여
버렸으리라는 것도. 그리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 견디어 야속한 마음에 원망까
지 얹혀서 울컥 토해 내는 말이라는 것도 그네는 짐작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지
금 한 말들을 오류골댁이 율촌댁한테 대신 전해 주어. 율촌댁의 심기를 조금이
라도 누그럽게 만들고자 하는 저의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왜 그런 말씀을 허셨던고. 청암 백모님 생전에 봐라. 인제 나 죽으면 저 마당
귀퉁이에 풀 날 것이다. 그러셨다드마는 그 말이 안 맞겄는가. 시방 같으면. 누
구 풀 뽑을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두부모같이 희고. 반듯하고. 부드러운 흙이 도탑게 다져진 마당을. 청암부인은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이른 새벽 푸른 미명에 앞뒤로 구석구석 돌아보고 어제
없던 풀이 돋아나 있으면 비록 눈꼽재기만한 것이라도 반드시 손수 뽑았다.
"마당에 풀 나게 허지 마라. 오죽 게으르고 오죽이나 의젓잖으면 사람 사는 집
마당에 풀이 나리. 이러고도 얼굴을 들어? 낯부끄럽게."
뽑은 풀을 노복들한테 보이며 마룻대가 우렁우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벽력같
이 꾸짖어 호령을 하면. 종들은 등골에 식은 땀이 흘렀다. 그리고는 불불불 기다
시피 그 앞에서 물러나 그야말로 개미 눈꼽만한 것이라도 풀이라고 돋아나 있으
면 놓지치 않고 뽑아 냈던 것이다. 솟을 대문 옆에 하늘로 치솟은 은행나무 우
람한 둥치며. 중마당 안의 매화 고목 늙은 줄기가 반이나 말라 버린 듯 거멓게
웅크리고 있더니만. 홀연 거기서 한 가지가 길게 벋어 나와 옥골빙자를 겨울 달
빛 아래 드러내는 풍운. 그리고 안마당 화단에 봄이면 흐드러진 떨기로 피어나
는 모란과 작약의 희고 붉은 꽃무리와 뒤안의 감나무들. 후원의 대숲. 그 푸른
그림자가 바람에 일렁이며 드리우는 그늘.
이런 것들이 집안을 에우고 있는 속에. 언제나 찬지게 탄탄하고 장판같이 정갈
하여 네 귀퉁이 날이 선 이 마당을 두고 사람들은
"맨발로 딛기에도 아까운 마당."
이라고 하였다.
"마당 쓸 때 집안에 먼지 내지 말아라. 비단 치마 방바닥 스치듯이 가벼웁게
빗자루 다루면서도. 검부라기 티 떨어진 것까지도 말끔히 쓸어 내야 한다."
"마당을 쓸 때는 안에서 바깥쪽으로 빗자루질 하지 말하라. 복 나간다. 바깥에
서 안쪽으로 쓸어 들여라. 그런 것도 다 정성이니."
"너무 깨끗이 한다고 흙 패이게 쓸지 말아라. 돌자갈 드러난다."
고 청암부인은 말했다.
이 마당에는 이따금씩 기다란 대빗자루를 손에 쥔 손님이 아무도 모르게 찾아
들곤 하였다. 그는 아직 날이 밝으려면 한참이나 있어야 하는 신새벽 검푸른 꼭
두에. 이 집의 마당쇠보다도 먼저. 가지고 온 빗자루로 조심스럽게 소리 없이 한
쪽부터 마당을 쓰는 것이었다. 그 손님은 때로 문중의 무세한 일가이기도 하였
고. 또 아랫몰 가난한 타성이기도 하였다. 이윽고 천지가 푸르스름 어둠을 풀어
내며 동이 틀 무렵. 새벽 이내 자욱한 큰사랑 안에서
"어흐음."
이기채의 카랑카랑한 큰기침 소리가 나고. 이어서 놋쇠 재떨이에 장죽 두드리
는 새된 소리가 딱. 딱. 딱. 들리면 화드득 놀란 노복과 머슴들. 그리고 계집종들
이 저마다 이불을 개는 둥 마는 둥 황급히 눈을 비비며 튀어 나왔는데. 마당쇠
는 재가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해 놓은 손님이 빗자루를 세워들고 마당 한쪽에
쑥스러운 기색으로 오두마니 서 있는 것을 그때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마
당쇠는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곧바로 청암부인에게로 가서
"마님. 아무 아무가 오늘 아침에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았습니다."
하고 고하였다.
"알았느니라."
청암부인의 대답은 그뿐이었다. 손님은 그 대답에 송구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
며 고개를 숙이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부인은 광으로 가서 자루에 쌀이나 보
리 혹은 다른 곡식을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담아 내. 그가 타성 같으면 직접 가
지고 가게 주었고. 문중의 일가라면 마당쇠한테 가져다 드리라 시켰다. 그러니까
그 곡식이 마당 쓴 값이라고나 할까. 집안에 양식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게 되
면. 가난한 가장은 그렇게 빗자루 하나 들고 그 마당으로 찾아가. 성심껏 쓰는
것으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였으며. 청암부인은 그 정경으로 모든 것을 짐작하
고 두말없이 곡식을 내주었던 것이다.
"신새벽에 귀설은 빗자루 소리 들리면. 오늘은 또 누가 와서 마당을 쓰는고 싶
더니라. 인제 후제 내가 죽더라도 그렇게 이 마당 찾는 사람을 박대허지는 말어
라. 그것이 인심이고 인정이다. 이 마당에 활인 복덕이 쌓여야 훗날이 좋지. 태
장 소리 낭자허먼 안택굿도 소용이 없어. 집안이 조용허지를 못헌 법이다."
청암부인은 이기채에게 그렇게 일렀다.
"내 젊어서는 혼자몸으로 눈앞이 캄캄하여 살림을 이루노라고. 남한테 모질고
독한 소리도 많이 들었다마는. 그것은 한때라. 종내 그렇게 모으기만 한다면 그
것이 도척이지 사람이겠느냐.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만 허게 되었으니 나눌 줄도
알어야지 싶어지고. 또 내 앞에 모이고 쌓인 재물이 다 내것이 아니라 남의 것
눈물나게 억지로 빼앗은 것도 있지 싶어져서. 하늘이 무섭고 사람이 가여워 무
엇으론가 갚어야 가벼이 될 것만 같았더니라. 이제는 전답이 무거워. 눈물이 무
겁다……. 굳이 좋게 생각허자면. 내가 남보다 좀 치부한 것은 하늘이 내 능력을
믿고. 여러 사람 쓸 것을 나한테 한 번에 맡기어 심부름 시키는 것이라고. 고지
기 시키신 것이라고나 헐까. 나는 그러니. 곳간의 쇳대만 책임지고 있을 뿐. 내
한 입에 내 뱃속에 그 곡식 그 재물을 다 둘러 삼키라는 뜻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사람의 욕심이지 하늘이 그리허라고 그대로 두시지도 않어. 그것을 혼자
다 삼키려고 헐라치면. 입이 찢어지고 배가 찢어져 살 수가 없게 되느니. 그래서
옛말에도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랬다고. 재물이란 비록 비루하고 독하게 번
것이라 할지라도 쓸 데를 제대로 알아 선하게 써야 헌다. 그래야 누에가 고치
벗고. 매미가 허물 벗듯이. 치부할 때의 누추한 부끄러움도 다 벗을 수가 있는
게야. 그러고는 나비 되고 매미 되어서 훨훨 날어가는 것이지. 가볍게 홀가분허
게 빚 다 갚고. 이게 다 빚이니라. 내가 세상에 진 빚."
청암부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거운 열쇠 꾸러미를 쩔거렁. 연상 위에 올려놓
았었다. 그때 그네의 파리하게 여읜 손목은 비단실 매듭을 색색으로 앞앞이 달
고 있는 열쇠 무더기를 들었다 놓기에도 겨워 보였다. 그것은 임종이 가까워 올
무렵이어서 더욱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모시고 앉은 이기채와 율촌댁은 고개를
수그리었다. 그러나 열쇠패는 손대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죽기 전에는 감히 물려
받을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마당에 이제 자신이 죽고 나면
풀이 날 것이라고 그네는 말했었으니. 잡초 우거질 것이라고 한 말보다 그저
"풀 날 것이다."
고 한 짧은 말이 더 가슴을 후비게 하였다.
"저번에 설 쇠고는. 부서방이 와서 백모님 영연에 절하고는 많이 울었다대."
"또요……."
수천댁의 말에 오류골댁은 측은하다는 낯빛으로 동서를 바라보았다. 부서방.
그는 지난번 청암부인 초상 마당에 허청걸음으로 반 넋이 나간 듯 들이달아 고
꾸라지며 몹시 서럽게 울던 사람이었다. 남루하게 기워 입은 저고리 동정에 기
름때가 거멓게 절어든 그는. 제 가슴팍을 갈퀴 같은 두 손으로 움키어 쥐어뜯으
며. 머리를 땅에 박고 울었다. 메마른 목이 쉬어 갈라진 그 곡성에는 애통으로
다하지 못하는 절분이 뒤엉켜 있어. 집안 사람들과 빈소에 선 문상객들을 놀라
게 했던 것이다.
"가까운 대소가 사람도 아니요. 문중의 일가도 아닌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저
다지도 절통하게 운단 말이냐."
빈소에 이기채와 함께 있던 이헌의가 곡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와 부서방을
내려다보며. 그 곁에 웅숭그리고 선 머슴에게 물었다.
"아랫몰 부서방인디요. 곡절이 있능게비여요."
"곡절이라니……?'
아무리 옆에서 말려도 좀체로 울음을 그치지 못하던 그는 옷섶에 떨어지는 눈
물이 무명 올 사이로 스며들어 서걱서걱 얼어붙도록 그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은
채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진정이 된 연후에 그는 더
듬더듬. 한참씩 숨을 삼키어 울음을 가라앉혀 가며 이헌의 앞에 사정을 털어놓
기 시작하였다. 마당 가운데 화롯불을 담아 내고. 큰사랑. 작은사랑에 그득 들어
앉고도 모자라 사랑마당. 중마당. 안마당에 차일을 몇 개씩 친 아래 모여 앉은
문상객들에게 술과 전과 떡을 정신없이 나르던 종들이며 집안팎의 머슴. 호제들
도 잠시 일손을 멈추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안서방네가 개다리 소반에 따로
음식을 챙겨 부서방 앞에 놓아 준 것을. 그는 끝내 한 점도 집어먹지 못하였다.
동짓달 엄동의 한뎃바람 속에 창자가 다 비어 버릴 만큼 눈물을 쏟아 온 얼굴이
퍼렇게 얼어 질린 그는. 그의 할아비 때부터 이 마을 언저리에 얹히어 살게 된
타성이었다. 비록 지금은 서릿발 같은 훼철령을 감히 거역하지 못하여 원통하게
도 헐어서 걷어 내고 말았지만. 일찍이 임금이 친히 이름을 지어 사액한 매안서
원에는. 그에 딸린 전답이며 노비까지도 함께 하사되었고. 또 서원에는 일이 많
은지라 부릴 사람도 필요하여. 매안에는 동종 이씨들말고도 타성들이 쌀밥에 뉘
처럼 섞여 살았다. 서원 일을 하다가 머뭇머뭇 주저앉은 성씨며. 서원이 헐리는
바람에 속량된 노비들이 상민이 되어 그냥 이 마을에 눌러 사는 경우들이었다.
부서방도 그 붙이내림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아랫몰 개울가에 새막 같은 오두
막 하나를 겨우 얽어 놓고 사는 구차한 형편에 손재주도 남다르지 못한데다. 재
바르고 부지런한 사람 또한 못되어서. 늘 남의 뒤에 처지곤 하였다. 정짓간의 부
지깽이도 깨금발을 뛴다는 농사철이 닥쳐도 그에게는 일이 없을 때가 많았다.
제 농사 있는 사람은 더 말할 것 없고. 송곳 꽂을 땅 한 뼘 없는 사람이라도 이
철이면 놉일이 끊이지 않아 콧등이 다 벌겋게 벗어지건만. 그는 굼띠어서 손이
느리니. 누가 선뜻
"우리 일 좀 헐라요?"
부탁하지를 않았다.
"아이고. 옆집이 임서방 반절만 좀 허시오. 예? 사램이 땅바닥에 금뎅이 떨어
진 것 바도. 아이고 저것 줏어야지. 험서 한나잘이나 꾸부려 갖꼬 보도시 줏을
거이여잉. 누가 그때끄장 내비두간디? 아나. 줏어가그라. 허고? 무신 보살이나
되먼 몰라도. 어이그흐. 내속이여어. 임서방은 우리맹이로 아무 근본 없어도 어
디로 가든지 어서 오라고 안허요오? 아 저 중뜸. 원뜸 꼭대기 용마루도. 기왓장
깨졌다 허먼 임서방 안불릅디여? 다 저 헐 탓이요. 조상 원망 말으시오. 상놈이
라도 저만 잘허먼 매안 양반 지붕 꼭대기에 날름 올라앉어 지근지근 밟고 댕길
수 있능 거 아닝게비. 참말로. 눈치만 있으먼 절깐에 가서도 새비젓을 얻어먹는
다는디. 무신 사램이 새비젓통에 들앉어서도 소금 어딨냐고 허게 생겠이니. 멋
헐라고 아그들은 논바닥에 머구리 새끼들맹이로 와글와글 나 놓고. 저 주뎅이를
다 멀로 채와 줄랑고. 이 깡보리 숭년에 피죽 한 그륵도 없이. 아이고오. 시끄러
어. 그만 좀 처울어라. 귀때기 떨어지겄다 기양. 처먹은 것도 없이 그렇게 울어
제낄 기운이 어디서 나능고. 휘유우."
부서방의 아낙은 올망졸망 연년생으로 예닐곱이나 되는 새끼들을 새 쫓듯이
저쪽으로 몰아내며 턱에 찬 한숨을 길게 뿜어 냈다. 오뉴월 염천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늘에 대밭 드리우고 앉아만 있어도 목덜미에 가슴패기에. 등줄기에. 줄줄
골을 타고 땀이 흘러내리는데. 만삭이 다 되어 오늘 내일 금방 낳게 생긴 아이
를 또 하나 동산만한 뱃속에 담고. 놋젓가락같이 정수리에 꽂히는 뙤약볕을 받
으며 하루 종일 남의 밭에 가 놉으로 일하고 온 아낙은. 헐떡헐떡 숨을 제대로
못 쉬었다. 그 네의 턱에까지 찬 것은 숨이 아니라 고달픔이었다. 그런 어미 속
을 알리 없는 아이들은 깨알만한 등잔불 밑에서 무엇을 가지고 타드락거리는지
시비가 오가더니. 급기야 위엣놈이 아랫놈 대가리를 딱. 소리가 나게 쥐어박는
다. 왕땀띠 곪은 자리를 정통으로 맞은 아랫놈은
"으아아아."
모가지를 발딱 뒤로 제낀 채. 아프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어미 역성을 바라
느라고 더 숨이 깔딱 넘어가게 울었다. 그 총중에 가운뎃놈은 엉거주춤 선 채로
절절절절 방바닥에 오줌을 누는데. 황급히 방구석지 걸레를 집어 드는 어미한테.
아직 기어 다니는 어린 것이 칭얼칭얼 기운 없이 보채며 품으로 기어들었다. 배
도 고프고 잠도 오는 것이리라. 한 손에 걸레 들고 한 손으로 아이를 안아 무릎
에 앉히는 어미의 등에 또 한 놈이 찰싹 들어붙는다. 업어 달라는 말이었다. 뜨
끈한 기운이 목을 감고 늘어지며 등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흔들어 떨구고는
"아이고. 이노무 새깽이들아. 차라리 에미를 뜯어먹어라. 뜯어먹어. 느그들이
자식이냐. 웬수냐아."
악을 쓰며 탄식을 터뜨렸다.
왜애앵.
아이들이 어미 서슬에 잠시 멈칫 하는데. 모기 한 마리가 대신 아낙의 잔등이
를 따끔하게 쏘았다. 번개같이 짧은 순간에 아낙은 다 떨어진 부채를 집어 등뒤
를 탁 쳤지만. 한 번 쏘인 자리는 한참이나 가렵고 얼얼하였다. 그러나 모기는
한 놈만으로 그만두지 않았다. 마당에 피워 놓은 생쑥 모깃불만으로는 다 쫓을
수 없는 모기떼들이 방으로 달려들어 생살을 모두 뜯어먹을 듯이 왱왱거렸다.
오직 이 어미한테로 달려들지 않는 것은 눈구녁 퀭하게 뚫린 계집아이 하나뿐이
었다. 배들배들 말라 비틀어진 계집아이는 그래도 아이들 중에 맨 위엣것이라.
동생들 뒤엉킨 곳에 같이 엉기지 않고 저만치 한 쪽 구석지에 오도카니 혼자 앉
아. 검은 눈구녁만 끔벅끔벅 하며 어둠속에서 말없이 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모가지라고 똑 저렇게 실내끼맹이로."
눈썹 위로 앞머리를 빗어 내려 비뚤비뚤 한 줄로 단발로 머리통을 가까스로
받치고 있는 딸년의 목이 위태로워. 그만 툭 꺾이며 떨어질 것만 같이 보인다.
그 모양이 문득 안쓰러워 가슴이 미어지는 어미의 얼굴은. 오래 굶주린 끝에 부
황이 들어 밀룽밀룽 멀겋게 들뜬 살가죽이 누렇게 부어 있었다. 그때가 바로 작
년 여름 일이었다. 이태 전 경진년에 조선 팔도 농사가 유례 없는 대흉작이었던
데다가 그 이듬해인 작년 신사년에는 삼한 일대를 모조리 꼬실라 태워 버린 한
발이 너무나도 극심하여. 그렇지 않아도 국민정신총동원이다. 근로보국대다. 공
출이다 하여 흉흉하기 짝이없는 세상을 더욱 각박하고 극악하게 만들었던 것이
다. 새암가에 심어 놓은 호박 넝쿨도 말라 꼬드라져 타 들어갈 지경이니. 논에
꽂은 모는 꼬딱하니 선 채로 부스러지고. 논바닥은 돌덩이처럼 딴딴하게 굳어서
쩍쩍 금이 가 거북이 등판처럼 갈라졌으며. 보리밭이나 서속밭, 면화밭에서는 누
런 황토 흙먼지가 부옇게 날았다. 아무리 그렇단들 아예 밭을 안 맬 수는 없어
서. 호미를 갖다 대기만해도 퍼스르르 모래같이 부서지는 밭에 김을 매면서 뚝
뚝 떨어지는 땀으로 물을 주고는. 황을 대고 팍 그으면 그대로 불이 일어날 것
만 같은 하늘을 원망하여 올려다보았다.
"쥑일 놈들. 자식 같은 황소는 생으로 끌어다가 왜놈 군대 괴기국 ㄲ에 먹고.
그 까죽으로는 장화를 만들어 신는다더라."
"그놈들이 철이 모지랭게 벨 지랄을 다 허는디. 관공서고 건물이고 간에 쇠난
간 있으먼 미친 듯이 뜯어 내고 학교에 쇠울타리를 다 뽑아 내서 불에 녹이고.
질가에 전봇대고 머이고 눈구녁에 쇠라고 비치기만허먼 선불 맞은 멧돼야지맹이
로 달라들어서 뽑아 간다더라."
하는 말은. 직접 본 것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말 수도 있지만. 칼 찬
순사가 집안으로 들이닥쳐 쟁기에 박힌 보습을 빼 가며. 부엌에 걸린 가마솥까
지 모조리 뜯어 가는 데는 하도 기가 막힌 끝에 차라리 얼이 빠져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거기다가 놋그릇은 물론이고 숟가락. 젓가락. 제기까지 남
김없이 뒤져 내어 훑어 가는 데는. 이것이 순 날강도지 인성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는 도저히 없었다.
"철은 갖다가 녹여서 비행기 맨들고. 놋그릇. 숟가락. 제기는 갖다가 녹여서 총
알 탄피를 맨든다대. 참 무신 노무 세상이 환장을 해도 유분수제. 밥상으 밥그륵
이 총알이 되고 밥먹든 숟구락이 탄피가 되야. 긍게. 미쳤제. 미쳐. 눈꾸녁들이
삐이래 갖꼬."
"호성암 부체님은 끄집혀 가서 시방 비행기가 되시능가. 탄피가 되시능가…."
사람들은 넋을 놓고 주저앉아 겨우 그런 말이나 할 수밖에 무엇을 어떻게도
해 볼 수가 없었다. 상대가 한두 사람이어서 떼로 덤벼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
고. 말이 통하는 동포여서 하소연을 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백성의 억울한
처지를 굽어살핀 조정에서 대신 나서 해결을 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눈
번히 뜬 채로. 내 집 내 땅에서 내 손으로 일하고. 거두고. 장만한 내 것들을 깡
그리 빼앗겼으니. 일본에서는 조선에서 수탈. 공출해 갈 품목을 산물별로 나누고
다시 세목을 하나하나 정하여 물경 여든 몇 종류로 열거하였는데. 이 물품들을
반드시 할당량만큼 걷어가기 위하여. 삼십여 만 명에 달하는 기관원을 별도로
두고. 삼십오만여 개의 애국반과 십삼 개의 병사구 사령부를 두어. 헌병. 정보원.
왜경들을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만 비끗하면 행정력을 발동하여 일본
도를 빼들고 단칼에 베어 넘길 듯 살기 등등 강제로 집행하는 데야 어느 누가
당할 수 있었으랴. 그들이 칼빛을 번뜩이며 공출해 가는 것들은 실로 다 헤아리
기 어려웠고. 그 방법은 혹독하였다. 쌀. 보리. 밀. 콩. 팥. 녹두. 참깨. 조. 그리고
땅콩. 피마자에 감자. 고구마. 무. 배추 같은 채소며 사과. 배. 감. 밤. 복숭아의
과일. 면화. 누에고치. 대마. 아마. 모시. 그리고 칡이나 왕골. 갈대도 걷어 갔고.
마초나 꼴 같은 말 먹이고 소 먹일 풀도 베어 내라 하였다. 거기다 가마니. 멍
석. 새끼. 짚까지도. 농산물을 그렇게 지푸라기 한낱 남기지 않고 깡그리 걷어
갈 때 소. 돼지. 닭이라고 어찌 놓아 둘 리가 있겠는가. 그것들은 산 채로 끌어
갔다. 뿐만 아니라 토끼 가죽. 쇠가죽. 돼지털. 양털에 계란. 우유도 공출하였다.
산에서는 아름드리 목재를 베었고. 장작. 솔가지. 솔뿌리. 관솔을 자르고 캐고 따
서 바리바리 실어 내갔다. 또 옻이며 잣. 심지어는 산나물조차도 할당량을 주어
캐라 하였다. 그래서 산에는 언제나 강제 동원된 사람들이 허옇게 나무에 매달
리거나 땅에 엎드리어 헉헉거리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공부 대신 자루
를 둘러메고 산으로 가 관솔을 하루 종일 따는 일이 허다하였다. 그러나 그것만
이 아니었다. 바다에서 잡은 온갖 생선도 막 건진 채 선어로 궤짝 궤짝 다 실어
가고. 또 말려서 건어로 공출하고. 톳. 김. 다시마도 남김없이 가져 갔다. 조선에
해산물이라고는 씨가 마를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집집마다 베 짜는 소리 덜
컥 덜커덕 밤이고 낮이고 들렸으나. 그것은 한 올 한 올 고운 날 앉는 소리가
아니라 가슴이 덜컥 덜커덕 내려앉는 소리였으니. 무명. 삼베. 모시. 비단이 필로
쌓이면 무엇 하겠는가. 짜는 대로 자투리까지 걷어 가는 것을. 밤을 낮 삼아 잠
못 이루고 베를 짜는 것은 오직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노역이었던 것이다. 만일
할당된 양을 제 기한 안에 짜내지 못하면. 신민정신이 투철하지 못해서 게으른
것이라고. 차마 못 당할 수모와 처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질 좋은 조선지를 그들
이 놓아 둘 리 없어서 그것도 베나 마찬가지로 낱장 하나 남기지 않고 걷어 갔
다. 금속으로 금. 백금. 은이라고 생긴 것은 머리에 찌르고 있는 비녀와 손가락
에 끼고 있는 가락지까지 다 빼가고. 구리. 유기. 놋쇠도 마당을 파 뒤집어 창끝
으로 찔러서. 아무리 깊이 숨겨 놓은 것도 기어이 찾아내 빼앗아 갔다. 마치 미
치광이처럼 눈에 핏발이 돋아. 한편 광산에서는 총독부 광공국의 지시를 받은
광공부에서 일사불란하게. 철광석. 구리. 납. 아연. 흑연. 수연. 망간과 운모. 형
석. 석면. 텅스텐 같은 온갖 광석을 무한정으로 캐내었으며. 석탄. 연탄을 산더미
처럼 무너지게 싣고 실었다. 그것은 거대한 걸귀야차가 두억시니 대가리를 땅
속에 처박고 한없이 갈퀴질을 하는 것보다 더 악착스러운 형태였다. 거의 강제
징용되어 그 탄광의 갱내로 무참히 몰아 넣어진 노무자들은 이미 사람이라고 부
를 수 없을 만큼 가혹 참담하게 사역되었다. 그들은 약초도 있는 대로 공출하였
다. 향료. 음료. 약재로 쓰이는 박하. 담. 구토. 기침에 쓰이는 반하. 향신료와 건
위제로 이용되는 생강. 땀을 내는 힘이 탁월한 창출. 소화제인 백출. 해열제와
강장제로 쓰이는 구기자에 성질은 온하고 맛은 시어 혈액 순환을 돕는 약초로
특히 부인병에 많이 쓰이는 천궁. 승검초 뿌리인 당귀. 인삼과 꿀. 또 오미자와
호두. 그러고도 다 일일이 꼽을 수 없는 조선 약초 약재들을 모조리 훑어 공출
했던 것이다. 일찍이 제 한 몸뚱이를 위해서나 늙으신 어버이를 위해서 혹은 어
린 자식을 위해서도 이만한 약초를 캐 본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
로도 모자라서 마침내 길가의 잡초까지. 훌륭한 군수품 및 생산 원료라고 승격
시켜. 걸레. 깡통. 누더기. 헌 병. 헌 쇠 같은 폐물과 함께 휩쓸어 공출했던 것이
다. 그러니까 잡초는 비료와 말먹이로 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을 단위 면단
위로 벌초 대회가 거창하게 열리고. 강제근로동원이 여름 내내 실시되었다. 이글
이글 달구어진 불볕이 숯가마를 거꾸로 들이붓는 것처럼 쏟아지는 뙤약볕을 이
고 어푸라져. 입안이 파싹파싹 타고 마르는 가뭄에. 제 논을 갈아 밭작물이나마
심어 보아야 무슨 콩깍지 한 조각이라도 볼 수 있을지 말지 한 형편인데. 허구
한 날 잡초를 베러 낫을 들고 나가는 사람들은 피골이 상접한다더니 과연 살가
죽 한 겹을 마른 뼈 위에 씌워 놓은 것 같은 얼굴로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죽지
못하여 하루하루 연면해 가고 있엇다. 사람의 목숨이란 참으로 모진 것이어서
그렇게 속속들이 다 긁어 가게 빼앗기고 곡식 한 톨 남지 않은 정황에도 어떻게
든 살아 남아 날이 밝으면 눈을 뜨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죽지 못하는 것도 한
도가 있는지라. 드디어 팔도 각처에서 부황이 나고. 굶주림에 지쳐 흙을 파 먹다
가 하룻밤 자고 나면 송장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아우성처럼 생겨났다. 그런 중
에 할 수가 없어 깨진 바가지 하나 겨우 들고 온 식구가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무리들이 동네 어귀마다 즐비하였다.
"만주로 가거라."
"그곳에 가면 임자 없는 땅이 지천이다. 누구든지 먼저 가서 말뚝 박고 개간하
면. 그것이 바로 자기 땅 되느니. 만주로 가거라. "
일본에서는 그렇게 충동질하였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부여대로.
사내는 이불 보퉁이를 뚤뚤 뭉쳐 등에 지고 아낙은 다 떨어진 옷 보따리 하나
를 머리에 인 채. 바가지 덜렁거리며 만주로 마주로 흘러갔던가. 그런 총중에 총
독부는 일본의 영농 인구가 대량 출정하여 감소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한 방편
으로 '농업보국청년대'를 조직하고. 조선인들한테
"진보된 영농법을 견학 실습시켜 준다."
는 구실을 내세워 매년 봄.가을로 두 차례씩 인력을 강제 동원하여 일본으로
파견하였다. 일손이 가장 바쁜 농번기 모내기철과 추수철에 나라. 사가. 미에와
그 외의 다른 영농지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일본인 출정 유가족의 농가에서 무
려 사십여 일씩이나 등뼈가 휘어지게 모 심어 주고. 벼 베어 주고. 온갖 자질구
레한 일을 다 해 준 뒤에야 조선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노동력의
착취였다. 농사일이란 단 하루 한나절만 비워도 눈에 띄고 표가 나는 것인데. 제
논밭 돌보느라고 잠시 옆눈 돌릴 틈도 없어야 할 농번기에 조리장수 체곗돈이라
도 움켜다가 놉을 사 대야 할 제 농사를 버려두고. 생전에 코빼기도 본 일 없는
남의 나라 남의 땅에 남의 집 농사 지어 주고 지쳐서 털래털래 돌아오는. 농부
들의 어처구니없는 정경이라니. 아 이래서 종이로구나. 종. 그렇지. 이것이 종이
아니고 무엇이랴. 조선 팔도 삼천리 고고샅샅 강토가 땅덩어리째 옴시레기 일본
의 것이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남녀노소 몇 천만 인구 전원이 모두 일본에 매인
종이 되어. 풀뿌리 나무 껍질로 여물 먹으며. 오직 일본이라는 상전을 위하여
개. 돼지. 짐승처럼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이 조선 백성이었다. 이럴 때에
조선의 모든 초등하교 학동들은 매일 아침 조회가 있을 때마다 우렁차게 소리
높여 '황국 신민의 서사'를 외쳤다.
1.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3. 우리들은 인고 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일본 국내에는 없었던 이 맹서를. 조선의 아동들이 조선의 임금이 아니고 대
일본 제국의 천황 폐하에게 충성으로 바치는 목소리는 노랗게 맴도는 조선의 허
공으로 어질머리를 일으키며 울려 나갔다. 열에 세 명이 채 못되던 자작농들도
말이 자작농이지 금융조합에 부채 없는 집이 없었으며. 해마다 늘어나는 공출로
그 빚을 갚지 못하여 끝내는 조합에 토지를 빼앗기고 마는 집도 하나둘이 아니
었다. 그러나 본디 살림이 탄탄하여 부농 소리 듣던 천석꾼이나 만석꾼. 혹은 그
만은 못하여도 몇 백 석씩 짓는 사람. 또는 한 고장에서 대대로 세거하여 남다
른 문벌로 벌족한 집안들은 예전 같지 않아서 그렇지 고달픈 가운데도 여전히
누릴 만큼은 누리고 살았다. 매안의 청암부인 살림도 그러하였다. 부인이 한 생
애를 다하여 일으킨 가산을 이기채는 타고난 이재의 재능으로 빈틈없이 지켰으
며. 수완이 뛰어난 아우 기표가 그 옆에서 시대 정황을 따라 민활하게 대처해
준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재작년의 그 참담한 흉작과 작년의 목타는 가뭄을 겪
고도 실농의 자국이 종가 살림을 위협하지는 않았다. 허나. 사람마다 그 인생은
천차만별이라. 아랫몰 부서방의 집 몰골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었으니. 제 살
림이 있다 해도 살아 남기 어려운 시대고에 그나마도 한푼어치 가진 것 없는 세
궁민이 교활하지도 못하여 한없이 무르고 착해빠진 것만이 자랑인지 허물인지.
몇 날 며칠째 끼니를 끓이지 못한 부엌의 아궁이는. 한여름 오뉴월 염천에도 식
은 냉기에 써늘한 바람을 머금고 있었다. 검댕이 그을은 아궁이에서 끼치는 찬
바람은 저승의 냉기였다. 그리고 그 아궁이는 바로 저승의 아가리였다. 이제 그
찬 기운이 자칫 조금만 더 식으면 방안에 늘피하게 드러누운 새끼들과 부황들린
몸으로 아이를 낳고는 미역국 한 대접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내리 굶어 기진한
어미와 젖 안 나는 어미 곁에서 보채는 것도 힘에 겨워 가랑가랑 숨소리만 내고
있는 핏덩이가. 떼거리로 식은 송장이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미 여러 날 전
에 불기 가신 아궁이는 한입에 이 식구들을 시커멓게 둘러 삼키려고 음험한 아
기리를 벌리고 있었다. 애기 낳은 첫날이야 동냥을 해서라도 첫국밥은 한 그릇
얻어먹일 수 있다손 치지만. 미역이고 김이고 모두 공출해 가 버리는 바람에 산
모 미역국은 대갓집에서나 겨우 먹을 수 있는 것이었고. 일 반 사람들은 미역
대신 그래도 좀 구하기가 쉬웠던 김을 풀어 뜨겁게 먹으며 땀을 내곤 하였다.
그러나 김이라고 어디 흔해서 부서방 같은 처지에 그것을 사다가 끓여 먹을 수
있었으랴. 옆집 뒷집에서 인정으로 한줌씩 보태 준 피 같은 곡식으로 한두 끼는
넘기었지만. 그 사람들도 너나없이 흉년에. 가뭄에. 공출에. 동원에. 껍데기만 남
아 그것마저 벗겨 내라 할까 무서운 마당에 더는 산모를 측은히 여길 여력조차
없었으니. 일가 문중 큰집 작은집이 있었다면 이보다는 아무래도 좀더 나았겠지
만. 하잘것없는 타성바지 미천한 신세에 누구를 붙들고 하소연하며. 누구한테 의
지하여 울어라도 본단 말인가. 부서방은 넋이 나가. 죽은 듯이 눈을 감고 땀투성
이로 혼곤히 누워 있는 제 아낙과 조막만한 애기의 잿빛 손가락이 힘없이 안쪽
으로 도르르 말려 있는 것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만일에 죽는다면 이 둘이 식구
중에 맨 먼저 죽을 것이라는 데 펀뜻 생각이 미쳤다. 지난 열 달 동안. 소나무
껍질 벗겨 서속 넣고 죽 끓여 먹은 것과. 쑥 캐다가 물 붓고 끓여 먹은 것말고
는 곡기라고 언제 한 번 제대로 입에 대 본 일도 없이. 빈 속에 애기한테 먹은
것을 다 빨리우고. 이제 저렇게 보도시 애기를 낳아 놓고는 지쳐서 나가떨어진
어미가. 이토록 여러 날을 굶고서 어떻게 살아나기를 바랄 것인가. 빈 젖조차도
빨 힘이 없는 저 어린 것은 또 어떻게. 부서방은 새새끼 주둥이보다 더 조그만
애기의 노랗게 벌어진 입에 눈이 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물었다. 도독
질인들 못해 와….
그의 눈에 퍼렇게 불이 일었다. 그리고 그는 그날 밤. 더덕더덕 기운 자루 하
나를 감추고 아무도 모르게 청암부인의 광 모퉁이로 숨어들었다. 그날은 마침
달도 없는 그믐이었다. 온 집안에 불이 꺼지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집채가
깊이 잠겨 들어갈 때. 그는 손으로 더듬더듬 더듬어 광의 문고리를 찾아냈다. 손
끝에 툭 부딪치는 쇠통의 묵중하고 썬득한 촉감에 그는. 아이고매. 놀라 철렁 가
슴이 내려앉았다. 여기구나. 싶은. 바로 찾았구나. 하는 안도의 느낌이 언뜻 스치
듯 지나갔지만. 그것은 순간이고. 무겁게 잠긴 그 쇠통의 견고함이 절컥 그의 가
슴까지 채워 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틀렸구나. 하는 절망의 낙담이었다. 광은 바
위 벼랑 절벽같이 깎아지른 허리를 캄캄한 허공에 곧추세우고. 어느 한 구석 벌
어진 틈 없이 사면을 철갑한 채. 문고리에는 무거운 쇠통을 물고 있었다. 그 쇠
통은 광보다 더 무거운 것이었다. 절거덕. 절거덕. 이리저리 흔들어 보고 가만히
소리 안 나게 비틀어 보고. 두드려 보고. 잡아 빼 보아도 그것은. 절그락. 잘그
락. 소리만 낼 뿐. 요지부동 좀체로 열리지 않았다. 오금이 붙은 부서방은 등골
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무 꼬쟁이 하나 어디 없을랑가. 저 쇠통 구녁에다 꼽아
보면 혹시 열릴랑가 모르는디. 아이고. 깡깜허구라. 큰일났네. 이러다가 날 새겄
는디. 누가 나오먼 어쩐다냐. 아니 긍게 이놈의 쇠통을 어쩌얀디야. 철거덕. 철거
덕. 이번에는 좀더 세게 흔들어 보았다.
"누구냐."
그때 어둠 속에서 굵고 우렁우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서방은 뒷골을 망치로
맞은 것처럼 소스라쳐 놀랐다. 그리고 가슴이 쿵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오금
이 딱 오그라붙은 다리를 엉거주춤 구부리고 선 그대로 부서방은 차마 돌아서지
도 못한 채 와들와들 떨었다. 소리는 그의 등뒤에서 들리었다.
"웬 놈이냐."
그것은 청암부인의 음성이었다. 그 음성은 의외에도 낮았다.
"마님."
부서방은 그 자리에서 거꾸러지며 불밤송이같이 깎아 버린 머리통을 땅에 박
았다. 부인이 들고 있던 등롱이 그의 모습을 비추었다.
"살려 줍시오."
부서방은 목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소리로 오직 그 한 마디를 하였다. 그것은
외마디 단말마 비명 같았다.
"살려 줍시오."
그러는 부서방의 눈에서 북받쳐 오른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도둑이야."
하고 부인이 소리를 지르면. 온 집 안팎의 노복과 계집종. 호제들이 단 걸음에
문짝을 차고 튀어나와. 부서방을 붙잡아서 덕석에 말아 버릴 것이었다. 그리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몰래를 치고. 온 동네에 조리를 돌리고. 여기저기 마구 끌고
다니며 구름같이 모여드는 구경꾼들에게
"나는 도독놈이요오."
"나는 도독놈이요오."
큰 소리로 외게 하는 회술레를 시킬 것이었다.
둥. 둥. 둥. 둥.
조리를 돌리거나 회술레를 시킬 때는. 북을 쳐서 모두 알게 하였다. 그러나 그
것만이라면. 만인의 손가락질과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것으로 벌이 끝나지만. 다
른 집도 아니요. 원뜸의 세도 문중 종갓집에 든 도둑이니. 더 말할 것도 없이 치
도곤이를 당한 그날로 마을에서 당장 쫓겨나고 말 일이었다. 이 마을에 붙어 있
어 누가 특별히 보살펴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흉흉하고 살벌한 타지. 생전에 나
가 본 일이 없는 마을 바깥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평소에도
그는 엄두가 안 났었다. 더구나 지금 굶어 죽어가는 자식들과. 아이 막 낳은 아
낙과 핏덩이를 데불고. 만일 쫓겨난다면 동구밖을 다 못 나가 길거리에서 죽게
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다.
"살려 줍시오."
부서방은 비쩍 말라 여윈 등허리를 캄캄하게 구부리고. 무릎을 꿇어 엎드린
채 다시 한 번 오직 그 말을 되뇌었다. 그 목소리에는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
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부서방은 덕석말이나 몰매나 조리돌림. 그리고 회술레가
무서워서 살려 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밀룽밀룽 누렇게 부어오른 제 아낙과
벌써 잿빛으로 잦아든 어린 것. 그리고 오불오불한 자식 새끼들을 부디 살려 달
라고 비는 심정이 복받쳐 울음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언감생심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담을 넘어. 광을 열고 곡식을 훔쳐 가려고 들어온 도둑이
라는 것을 이미 잊어 버린 사람 같았다. 등롱을 든 청암부인은 우뚝 서서. 엎드
려 우는 부서방의 등허리를 한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 흐느끼는 등허리
에 어둠의 주황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청암부인은 아무 말도 더 묻지 않고 손수
광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그 먹장같이 어두운 광 속으로 등롱을 비추며 성큼 들
어섰다. "따라오너라."
겁 김에 저도 모르게 부인의 말을 따라 일어선 부서방은 주춤주춤 발을 옮겼다.
등롱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곡식 가마 위에 검은 무늬로 비치며 커다랗게
일룽였다. 눅눅한 겨 냄새의 온기도 같이 흔들렸다. 그 겨 냄새에 부서방은 휘청
어지러웠다. 뱃속을 훠어 할퀴어 머리꼭지까지 가르는 어지러움이었다. 그리고
뒤미처. 여그나 나를 가둬 둘랑게비다. 시방은 밤중잉게 가둬서 묶어 뒀다가. 내
일 아침 날이 새면 데꼬 나가 치도곤이를 칠랑게비다. 아이고. 그러먼 그렇제.
부자 인심이 더 무섭다는디 자개 집으 들온 도독놈을 어뜬 보살이 기양 놔 줄
거이냐. 아까 들켰을 때 기양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쳐 부렀어야는디. 인자
나는 죽었다. 나는 죽었어. 나 죽으먼 다 죽제. 집구석으 있는 것들 눈꾸녁도 못
뜨고 그대로 다 죽어. 아이고. 이 노릇을 어쩌끄나. 내가 무신 도독질이여. 도독
질이. 언제 해 본 일이 있다고 겁도 없이 이렇게 서툰 짓을 해 갖꼬는 매급시
일만 크게 저질러 놨네. 밤새 생각헌 꾀가 죽을 꾀라드니. 내가 그짝이 났구나.
덕석몰이고 조리고 회술레고 다 안 무선디. 쬐께나는 것도 인자는 안 무선디. 나
를 주재소로 넹기먼 어쩌꼬잉. 그러먼 인자 어쩌꼬잉. 도독놈잉게 그렇게 허겄지
맹. 하이고오. 부서방은 광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청암부인의 뒤를 더 따르지
못하고. 이대로 돌아서서 달아나 버릴까. 순간 걸음을 멈칫 하였다. 그의 등뒤에
는 열린 광문이 희끄무레 바깥을 비쳐 주고 있었다.
"지고 길 수 있겠느냐?"
막 몸을 돌려 바깥으로 튀려는 부서방의 귀에 청암부인의 음성이 무겁게 얹혔
다. 덜컥 놀란 부서방은 그 음성에 덜미를 잡혀 도로 오금이 붙어 버렸다.
"예?"
놀란 끝에 터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질려 있었다.
"네 기운에 이것을 지고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느니라."
안쪽에서 청암부인은 곡식 가마 중에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영문을 몰라
두 손을 맞부비며 부서방은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고 가거라."
부인은 등롱을 높이 치켜들었다. 어둠의 가루가 섞인 주황빛이 부옇게 번지며
곡식 가마를 아까보다 더 두렷이 드러내 보여 주었다.
"그러고. 네 일생 동안 아무한테도 오늘 일은 말허지 말아라."
청암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부서방은 얼른 입이 떨어지지 않아 숨을 들이쉬어
헉. 삼킨 채 내뱉지도 못하고. 얼어붙은 사람처럼 혼이 나간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러더니 그만 무너지듯 꿇어앉으며 머리를 조아려 어흐으윽. 울음을 토하고 말
았다. 어푸러지며 넘어지며 아랫몰까지 무슨 정신에 어떻게 지고 왔는지를 모를
곡식 가마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목이 메이게 흰 쌀이었다. 그 메인 목을 놓아
부서방은 청암부인의 영연 앞에서 그토록 울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털
어놓지 못하여 더 목이 메이던 이야기를 그는 이헌의에게 비로소 엉엉 울며 하
고 있었다. 부서방의 둘레에 앉아 숙연히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 중에서 그 이야
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청암부인 역시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가 그 쌀을 어떻게 먹을 수가 있었겄습니까. 체다만 바도 배가 불른디. 그
배불른 거이 눈물이 차서 그런 것맹이였지요. 그래 속으로 어치케든 내가 살 도
리를 찾아바야겄다고 굳은 마음을 먹게 되얐지요. 이거이 내 목숨이고 내 식구
들 목숨잉게. 애끼고 애껴서. 내가 한 번 심을 잡고 일어스는 무신 발판으로 꼭
삼어야겄다. 무신 궁리를 꼭 해야만 쓰겄다. 결심을 헌 거이지요. 그래서 차마
먹들 못허고. 조께씩 속새로 사람 놔서 돈으로 바꿨는디요. 만주로 한 번 가 볼
라고요. 거그 가서 참말로 부지런히 한 번 일해 갖꼬. 사람맹이로 사는 것 좀 마
님한테 뵈 디릴라고 그랬는디요. 가기 전에 그런 저런 말씀도 좀 디리고. 지 속
에 있는 말씀. 맥헤서 못 터지는. 이 속에 말씀 좀……그날 저녁 일 좀……지가
언제 한 번 죄용히 찾어 뵙고 말씀 디릴라고 했는디요. 마님이 그날 저녁 저한
테 주신 그 쌀 이얘기 좀. 언제 한 번 마님한테 속 시원히 디릴라고 했는디요.
아니 꼭 무신 무신 이얘기를 해야겄다고 정해 논 것이 아니라. 기양요. 기양……
기양 이것 저것 다 털어놓고……만주 갈라고 허는 계획도요. 가기전에 꼭 와서
뵈어야지 했는디. 병환중이신 거 암서도 차마 에러와서 못 오고. 그날은 그러고
염치도 없이 쌀가마니를 지고 갔지만. 그날이 지내고 날이 밝응게 가심이 두근
두근 가라앉들 안허고. 도저히 맨얼굴로 마님을 다시 뵈입든 못허겄길래 기냥
방안 맴만 돌다가……설에 세배허로 올라고 그랬는디요. 사실은 이 못난 놈이
여그 잘못 왔다가는 지가 그날 도독질허로 온 거 매급시 들킬 것만 같어서. 도
적놈 소리 들으까 무서서. 그래서 못 왔그만요. 도독놈이 지 발 제린다고 저 혼
자 그렇게 그 말이 무서서 여그를 못오고……마님이 덜컥 돌아가세 부렀어요.
살어 지실 적으 단 한 번만이라도 더 뵈일 것을. 인자는 영영 다시는 못 뵈입게
……되야 부렀어요."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서방은 사뭇 서럽게 울었다. 이기채의 눈시울이 축축히
젖었다. 이헌의도 묵연히 앉아만 있었다. 문상객들이며 다른 안팎 사람들도 소리
없이 고개들만 끄덕이었다. 아무도 부서방을 도적놈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부서방이 만주로 가먼 어디로 간다등고?"
수천댁이 큰집 솟을대문 앞에 발을 멈추고 물었다. 오류골댁은 옹송그린 어깨
를 부르르 한 번 떨고는 팔장을 끼어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목단강가 어디라데요. 전라도 사람들은 그리 가서 많이 산다고."
"만주에도 전라도 사람 가는 데. 경상도 사람 가는 데가 따로 있는가? 국경
넘어 남의 땅에 새로 가서 사는데도?"
"암만해도 누가 먼저 가서 자리 잡은 데로 아는 사람들이 연줄 찾어 따라가니.
고향 사람은 거기서도 고향사람을 찾는 것이겄지요."
"그럼 부서방은 만주 가면 강모도 만나고 강태도 만날 수 있으까."
오류골은 대답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까 띄워 올린 강실이의 액막이 연
은 이미 하늘의 늪 어느 깊은 곳으로 아득히 빠져 들어가 버리고. 그 검푸른 야
청의 수면에는 너무나 차고 맑아서 이상하게 귀기 어린 달이 창백하게 떠 있었
다.
11. 나 죽거든 부디 투장하여 달라
버석. 버스럭.
창호지 구겨지는 소리가 음습한 주홍의 등잔 불빛이 번진 방안에 오싹할 만큼
커다랗게 울린다. 그것은 불빛이 구겨지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무명씨 기름으로
밝힌 등잔의 불빛은 그 주홍에 그을음을 머금고 있어. 됫박만한 방안의 어둠을
환하게 밀어낸다기보다는 오히려 벽 속에 스민 어둠까지도 깊이 빨아들이고 있
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주홍을 내쉬고 어둠을 삼키는 등잔불 혓바닥이 제 숨결
을 따라 팔락. 파르락. 흔들린다. 그 불빛을 받으며 등잔 아래 숨을 죽이고 앉아.
무엇인가를 창호지로 싸고 있는 당골네 백단이의 손이 자기도 모르게 후드르르
떨린다. 어두운 불 그림자가 흰 창호지에 검은 손가락 무늬를 드리운다. 버스럭.
버스럭. 뭉치가 흩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싼 것을 다시 한 번 더 겹으로 싸는 그
네의 주홍 비친 얼굴에 긴장된 날이 파랗게 돋는다. 얄포름한 입술을 무겁게 다
물고 양미간을 깊게 모아 찌푸린 그네의 이마에 골주름이 한 줄 먹금같이 패인
모습이 여느 때와는 아주 달라 보였다. 그것은 엄숙하고도 두려움에 가득 찬 얼
굴이었다.
"어지간히 다 되얐능가?"
그네와 이마를 맞대다시피 바싹 가까이 앉아 옆에서 거들던 만동이 숨죽인 목
소리로 낮게 물었다.
"그 보재기 이리 주시오."
백단이가 역시 낮은 소리로 말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동산 위에 달
맞으러 올라간 춘복이와 공배 내외. 그리고 백정 택주네 오물조물한 붙이들이며
평순네들과 어울려 아무 내색 없이 횃불을 잡고 흥겨운 듯 달 구경을 하던 당골
네 백단이는. 어느 틈에 아무도 눈치 못 채개 다복솔 사이로 몸을 숨기며 제집
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마치 무슨 소피라도 잠깐 하고 오려는 사람처럼 흔연스
럽게. 만동이는 그보다 조금 더 앞서.
"고리배미 농악대. 나 없어도 갠찮응가아?"
하면서 옆에 사람 들으란 듯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길게 빼물어 그쪽 동네를
멀리 바라다보더니. 어느결에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그리고는 한 걸음 먼저 집에 닿아 초조하게 서성거리며 뒤미처 백단이가
바로 쫓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동이는 백단이의 서방으로. 사람들은 그를.
"무부"
라고 불렀다. 무당 서방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또 굿판의 무악인 시나위 반
주를 하는 자라 하여 고인이라고도 하고 또 그냥 잽이라고도 하였다. 그는 다른
무부들이 그러한 것처럼 제 아낙 백단이가 굿을 할 때면 으레 따라가서 이만큼
한쪽에 앉아. 시누대 피리를 불거나. 장구를 치거나. 혹은 징을 데뎅 뎅뎅 뎅 뎅
뎅 데뎅. 두드리기도 하였다. 만일 그 굿이 '동정재비'같이. 흙을 잘못 다루어 지
신이 노한 끝에 가족이 병이 나서 앓거나 혹은 흙이 아니라도 장롱을 잘못 옮기
어 탈이 붙은 경우. 아니면 부뚜막을 함부로 건드리거나 집을 고치다가 동티가
난 집에서 간단한 제상을 차려 놓고 하는 것이라면 굳이 여러 고인들이 함께 갈
필요는 없었다. 제상 앞에 앉은 백단이가 도끼를 방바닥에 뉘어 놓고. 자귀를 들
어 도끼 머리를 두당당당 두당당당 낮게 두들기며 무경을 읊는 정도의 것이기
때문이다.
날 사납고 수 사난 날 나무 지둥 돌 지둥을
디리고 내고 디리고 내고 디리고 다리고 기여서도 흠탈을 마옵소사
옴여률영급급사바하아 대장군방 원진방 삼살 오구방을
디리고 내고 디리고 내고 디리고 다리고 기여서도 흠탈을 마옵소사
옴여률영급급사바하아 대장군방 원진방 삼살 오구방에
인간덜이 허고 사는 일을 다 허물타를 말으시고
무릎 밑에 접어 넣고 치비하고 내부하야 주업소사아
옴여률영급급사바하아아
쒜에 쒜 쒜에
쒜 쒜 휘이이
쒜 쒜 휘이이
쒜에에 쒜에 휘이이
그러나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고. 해 넘어갈 무렵. 흰 쌀이 담긴 함지에 시
퍼렇게 뻗친 대나무 가지와 촛불을 꽂아 술 한 병과 청수 한그릇을 부뚜막에 올
리며. 징을 두드리어 부정을 물리고 액과 살을 막아 달라 비는 조왕굿으로부터
시작하여. 안당과 성주굿. 그리고 시왕. 칠성. 지신. 장자풀이. 오구물림에 제석
굿. 고풀이. 넋풀이. 씻김을 다하고. 길을 닦어 종천멕이 해원굿을 다 하자면. 일
이 컸다. 온 밤을 그대로 새우고 나서 동이 틀 무렵에야 끝이 나는 큰 굿이 있
을 때는. 만동이 한 사람만으로는 어린도 없어. 늘 한 패가 되는 여러 고인들이
어우러져야만 했다. 거멍굴 근심바우 옆에 백정과 이웃하여 대대로 대를 물려
살면서. 서슬 푸른 매안과 가호 많은 고리배미를 당골판으로 가지고 있는 세습
무가 점데기의 집에. 애가 닳게 느지막이 쉬흔둥이로 태어난 만동이는. 나이 몇
살 안 먹어서부터 그 아비 홍술에게서 장구와 피리를 배웠다. 만동이의 아비 홍
술이도. 만동이의 어미 점데기 굿판에서 잽이 노릇을 하였다. 그리고 굿이 있을
때면 장에 나가 제물을 사오고. 굿에 쓸 종이꽃을 만들거나 혼백을 창호지로 하
얗게 오리기도 하였다. 그것이 무부가 하는 일이었다. 전라도에서는 반드시 여자
만이 굿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굿판의 주인은 무녀 당골네였고. 무
부는 들러리. 반주자였다. 늦게 본 손자 같은 자식을 앞에 놓고 홍술은 장구를
두드리며. 피리를 불며. 이제 나이 차서 장가를 들면 그 또한 무부가 되어 당골
이 된 제 아낙의 굿판에서 주악을 하는 잽이 노릇을 해야 할 만동이한테
"잘 배와라. 건성으로 허지 말고. 너는 그저 내가 장고다. 내가 피리다. 허고…
…니가 기양 소리가 되야 불 때끄장 오직 두디리고. 불고. 해라. 그것만이 니가
헐 일잉게. 니가 세상에 나서 헐 일이라고는 이것뿐잉게. 다른 일을 헐 수는 없
잉게."
라고 일렀다.
"왜 딴 일은 못헌당가? 지게 지고. 꼴 비고. 농사도 짓고?"
만동이는 동그만 턱을 두 손으로 받치고 앉아 아비한테 물었다.
"니가 아직은 에레서 잘 모르겄지마는 사램이 세상에 나와서 허는 일이 다 같
든 안헌 거이다. 어뜬 사람은 글 읽고 베실허고. 어뜬 사람은 농사 짓고. 어뜬
사람은 질쌈하고. 또 어뜬 사람은 장사도 허고. 저그 택주네맹이로 소도 잡고.
또 우리맹이로 어매는 굿을 허고. 아배는 장고 치고 피리 불고. 어디 그런 사람
만 있간디? 누구는 넘으 집에 종을 살고. 또 머심도 산다."
"왜 그렁고?"
"머이 왜 그리여?"
"바꿔서는 못 산당가?"
"그거이 벱이여. 국법."
"국벱이 머인디?"
"나라에서 정헌 벱이다아. 그 말이여."
"긍게로 못 바꿍만?"
"하아. 그것이 얼매나 엄중헌 벱인지 너 아냐? 한 번 그렇게 정해졌으먼 죽으
나 사나 그런지 알고 살어야제. 이러고 접다고 이러고. 저로고 접다고 저러고.
지 맘대로 바꿀 수가 있는 거이간디? 안되는 거여. 우리 맘대로는."
"왜 안되까이……반찬도 이것 먹었다 저것 먹었다 허는디."
"야 이놈아. 세상살이가 무신 밥 반찬이다냐? 벱이랑게. 법. 버업."
"밥이 아니고?"
"에라이. 썩을 놈."
홍술이는 제 아비 말을 달콩달콩 받는 만동이의 대가리를 쥐고 있던 장구채로
한 대 때려 주었다. 그러면서 어이가 없어 웃었다.
"니 말대로 이놈아. 세상 사는 나날이 반찬 집어 먹는 것맹이로. 입맛따러 요
놈도 살어 보고 저놈도 살아 보먼 오직이나 좋겄냐. 근디 그게 안되는 거이. 절
대로 안되는 거이 세상이란 거이다."
홍술은 웃다 말고 무겁게 말하며 깊은 한숨을 지었다.
"그러먼 왜 누구는 이렇게 살고 누구는 저렇게 살고 헌디야? 지가 그러고 자
퍼서 그렇게 살라고 골랐이까? 허고 자운 놈으로?"
"타고나제. 맘대로 골라 살 수 있다먼 어뜬 쎄 빠진 놈이 무당 서방을 허겄
냐? 지집 덕에 먹고 사는 지둥서방 한가지로."
"타고나?"
"그리여. 조상 뼈다구 모양을 따러서. 어뜬 놈은 갓 씨고 도포 입는 양반으로
도 나고. 어뜬 놈은 밤잠 못 자고 젓대 부는 잽이로도 나는 거아니냐. 그것을 가
문이라고 허능 거이여. 가문. 알겄냐?"
"그러먼 양반은 양반만 낳고. 당골은 당골만 낳는당가?"
"호랭이는 호랭이만 낳고. 구렝이는 구렝이만 낳디끼."
"낯바닥은 사람마당 다 똑같은디잉. 뼈다구가 머이 달릉가아?"
"긍게 말이다. 우리는 잘 몰라도 머이 달러도 달르기는 달릉갑제. 껍데기 활랑
벳게 보든 안했잉게 그 속은 알 수가 없지마는."
"까깝허네."
"쬐깐헌 놈이 무신 소리여?"
"무단히."
"벨일이구만."
"아부지는 무신 뼈다구에서 나왔대?"
만동이는 여전히 동그만 턱을 두 손으로 받친 채 홍술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로 제 아비를 깜작깜작 올려다보며 물었다. 조
선의 법으로. 노비. 승려.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
을 팔천이라 하였는데, 이 여덟 가지 천민 중에서도 가장 수락한 것이 백정과
무당이었으니.
이들은 사람축에 끼일 수가 없어, 일반 양인들이 사는 부성이나 마을 안은 물
론이요, 그 언저리에서도 감히 살진 못하고, 저만큼 물러나 귀빠진 곳에 저희끼
리 웅크리며 어깨를 부비고 살아야만 하였다. 그것도 제 마음대로 살 곳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백정 같으면 고을에서 한 곳에 거처를 정하여 주고 어디
로도 함부로 떠나지 못하게 감시하였다.
무당이라고 그것보다 더 나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양반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민촌의 마을 사람 누구에게라도 존대로 말을
바쳐 써야만 하였으며, 심지어는 어린아이에게조차 반드시 경어를 써야 하는 무
당 당골네 집 아니. 홍술의 가계였던 것이다.
"아부지, 나는 크먼 나중에 머이 된당가?'
"너도 나맹이로, 인자 각시를 얻으면 무부가 되제잉."
"당골 각시 안 얻으먼?"
"안 얻을 수가 있간디? 당골네 집안은 꼭 당골네 집안끼리만 시집가고 장개가
고 혼인을 허는 거이여, 그거이 벱이여."
무당은 절대로 일반 사람들과는 혼인할 수 없다고, 법으로 엄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당골네 무당의 집안끼리 무계혼만을 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아들을 낳으면 훗날 그는 무부가 되고, 딸을 낳으면 무녀가 되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자 살어 보그라. 살자먼 설운 일 많은 거이 한세상이라, 여늬 사람도 이 세
상을 진세상이라고, 울고 울어서 질퍽헌 세상이라고, 눈물이 젖어서 무겁다고 허
는디, 조선 팔도에 팔천 사천 무당의 자석으로 나서, 올 디 갈 디 없이 무당 서
방이 되야야 하는 우리 같은 사람의 한세상에, 마른 일보다 진 일이 더 많은 것
은 불을 보디끼 훤헌 일 아니겄냐. 그럴 때는 축축허다고, 젖었다고. 설웁다고
울지 말고, 그저 내가 한낱 소리니라 허고는, 귀신 데불고 한 가락 장고 소리로
놀고 한 가락 피리 소리로 놀아라. 귀신허고 놀아. 천대허고 박대허는 사람 소리
는 듣지 말고, 니 소리 듣고 좋아라 화답허는 귀신들허고 가락으로 놀아, 축축
허고 젖은 육신 살어서는 못 벗는 게 사램이지만, 너는 그 육신을 고치 삼어 은
실 같고 금실 같은 가락으로 너를 다 뽑아 내그라, 안 좋냐? 넘들은 논 맨다고
밭 맨다고 어푸러져 고생인디, 너나 나는 그런 일 안허고, 요렇게 허구헌 날 떡
해 놓고 밥 해 놓고, 장고 치고 피리 불고 신명들허고만 상대허고 노닝게."
악기란 손에 들면 짓이 나게 마련이어서, 어린 만동이는 아비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저 혼자 앞뒷마당을 돌며 덩기 덩기 덩더키, 장구를 두드리거나, 나아아
나나아 나나니아아아, 피리를 불었다.
저보다 일찍 낳은 손위 누이들은 더러 죽거나 혹은 다른 동네 무당의 집으로
시집을 가고, 다 늦어 해 저물녘에 낳은 아들 만동이만 혼자 남은 당골네 접데
기 집 울 안에는, 어느 날부터인가 꾀벗은 도막 장단 대신에 습기 어린 그늘을
머금은 시나위 가락이 제법 애절하게 차 오르기 시작하였다.
만동이가 열여섯 살이 되었던 것이다.
"잽이는 장고며 징이며 젓대 피리 다 잘 다뤄야 허지마는 구음도 잘 넣야혀.
구음. 이 세상으 기운 중에 젤로 무섭고 독헌 거이 사람기운인디, 그런 만큼 또,
천지 신명 우주 공간에 사람의 기운으로 비는 것마치 간절허고 정확헌 거이 없
는 거여. 사램이 비는 거이 직효여. 지성이먼 감천이란 말도 다 그리서 생게난
거인디. 그렁게 굿을 헐 때도, 느그 어머이 바라, 독경허고 사설허고 끝없이 말
로 안 비냐? 빌어서 ㄴ이는 거이그덩. 귀신을. 그 옆으서 반주허는 잽이도 마찬
가지라. 인간으 심금으로 다 헐 수 없는 말을 대신해서, 귀신으 가슴팍으로 파고
들어 그 애간장을 다 녹이게 귀곡으로 악기 장단을 놔야 허지마는, 그것만으로
는 다가 아니여. 사람으 흉중에서 터지는 구음이 있어햐능거이다. 중간 중간에,
그 구음이란 거이 참 절묘허제."
홍술은 흐느끼던 시누대 피리를 입에서 떼어 내며,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어 먼 허공의 갈피를 휘어잡는 목소리로 처창하게
아하아으어아 하아이아 아아으어아
한 가닥 구음을 내어 보였다.
누구라서 그 음성을 흉내낼 수 있으리.
울다가 울다가 목이 쉰 소리도 같고, 켜켜이 쌓이고 쌓인 시름오로 더께가 진
가슴의 어두운 억장이 이제 더는 어찌할 수 없어 저절로 무너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포한이 사무쳐 귀신의 가슴을 주어뜯는 것도 같은 그 구음가락은, 아직 그
다지 서러울 일 없는 열여섯 살 만동이의 심정에도 헤아리기 어려운 감흥을 불
러일으켰으니.
꽃밭 같은 이승에 왔다가 남 사는 세상을 못 다 살고, 못 다 먹고. 못 다 쓰고
가오신, 원통하고 서러운 넋이야, 혼이야, 거리 중천 무주 공산 떠돌던 중음신들
이라면 그 가락을 듣고 어찌하랴.
감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대도록 정성것 우리를 부르는 이, 저 누구냐.
허공을 줄로 삼아 켜는 구음의 애통 곡진한 육성이, 귀신의 가슴을 하염없이
갈피 갈피 쓰다듬어 어루만지면, 살아 생전 맺힌 일을 죽어서도 못 풀어 퍼렇게
시퍼렇게 응어리진 멍울을,
알았노라, 알았노라, 내 다 알았노라.
연기같아, 안개같이, 이슬같이, 다 풀어 버릴 것이다.
그 구음을 웬만큼 넣게 되었을 때 홍술은 드디어 만동이를 데리고 점데기가
하는 고리배미 굿판으로 나갔다.
호리낭창한 몸매에 봄물이 도는 낯을 발그롬히 기울이고는, 제 아비곁에 수줍
은 듯 허음으로 나앉은 만동이는, 그러나 이제는 한 몫의 고인, 잽이가 된 것이
었다.
"아니 자가 누구를 탁에서 저렇게 옥골선풍이다냐아, 하이고오, 참, 아깝다. 아
까워. 저그다가 갓 씌우고 옥색 도포 다홍끈 늘여서 입헤노먼, 누가 보고 무당
자식이라고 허겄어? 납작없이 글망 데린님이제. 안그런당가, 아이? 저것 좀 보랑
게, 저, 저, 감시르르 눈감고 피리 부는 것 좀 바아."
"앗다, 그노무 예펜네, 그렇게도 이뿌먼 가서 깍 물어 줘라. 안 그럴라먼 데리
다가 외동딸의 데릴사우를 삼든지. 곡 숨이 넘어가네 기양."
마당에 차일을 티고 병풍을 세운 굿당의 뒤편에서 아낙네들은 만동이를 두고,
옆구리를 찌르면 꼰지발을 딛으며 한 마디씩 하였다.
"자도 인자 나중에 지집 깨나 엥간히 호리게 생겠그만. 굿판에 애벌나앉자마자
예펜네들 이렇게 시시닥거리는 것 봉게로."
그나저나 자는 참말로 아깝네이. 당골 자식 허기는."
"귀헌 집이 데린님으로 났으먼 거그다 대고 언감생심 이런 농을 헐 수가 있능
게비? 맞어 죽을라고? 이런 말 허물없이 허고 노는 것도 다 저게 당골 자식이
라 그렇제."
"당골 자식이먼 머 니 화초 기생이냐? 데꼬 놀게."
"데꼬 놀아? 품고 놀제. 아조."
"명지 바지 해 입히먼 더 좋겄네. 보드로옴허니 착 갱기고."
키이익. 크큭.
아낙 하나가 꼬집힌 허리를 배틀며 웃을 눌러 터뜨렸다.
그런 말들이 들릴 리 없는 만동이는 어미 점데기보다, 아비 홍술이보다. 그 모
색이 더 곱상하고 자세에 태깔이 있어, 이제 막 피어나는 꽃빛을 온몸에 띄우며,
고개를 가지처럼 뒤로 젖히고 검은 허공을 향하여
아으어아 하아이아 아하아으으
간절한 구음으로 귀신을 불렀다.
그러던 만동이가 이듬해 열일곱 살을 먹으면서 저 건너 비얌굴 당골네 집안과
혼인을 하여, 동갑내기 열일곱 살 백단이를 각시로 맞이했는데. 그 모색은 얼핏
보아 만동이만 못한 것 같았지만, 흰 얼굴에 도화빛 도는 살결만은 한눈에 들어
오는 그네는, 시집오던 그날부터 시아비 홍술이와 시어미 점데기를 따라 매안과
고리배미를 오르고 내리면서, 제상을 차리는 법이며 굿하는 절차, 독경, 사설 그
리고 굿판의 큰 일, 작은 일, 젖은 일, 마른 일들을 속속들이 배우기 시작하였다.
어려서부터 친정에서 보고 익힌 것이 있었던 터라, 그네는 오래지 않아 시어
미 눈 안에 들 만큼 솜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 중에 이윽고 그네는, 아들을 낳았다.
저도 인자 크먼 어쩔 수 없이 무부가 될 거이냐.
만동이는 포대기에 싸인 아랫목의 제 자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자기도 모
르게 속으로 탄식을 하였다.
우리 아부지도 전에 나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을랑가.
얼굴이 고우면 무엇하고 태깔이 있으면 무엇에 쓰랴.
사내로 세상에 나서 반듯하게 책상다리 개고 앉아,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경세제민, 공부를 한 번 해 본 일도 없고, 그것이 아니라면 농자천하지
대본이라. 온뭄에 땀흘리며 구리 같은 팔뚝으로 논을 갈고 밭을 갈아 농사를 지
어 본 일도 없고, 쇠푼 한 닢이라도 더 벌어서 돈궤를 무겁게 채우는 기쁨으로
무슨 장사를 해 본 일도 없이, 그저 한세상을 제 아낙의 뒷전에서 이런 저런 굿
판의 치다꺼리를 하며, 허구한 날 기껏해야. 사람 사는 세상의 땅 어디에도 부빌
곳 없는 마음을 검은 강, 검은 하늘 너머, 구천에서 맴도는 귀신한테다 메인 목
을 놓아 부벼 보니.
아, 세상이 이렇게도 허한 것인가.
전에 홍술이는 쉬혼에야 얻은 자식 만동이의 조그만 낯바닥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또 조그마한 주먹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이 애기의 손으로는, 허하고 서러
운 세상이 아니라, 실하고도 기쁜 그 무엇을 쥐게 해 주고 싶은 심정이 북받쳐
하마터면 눈물이 솟을 뻔했었다.
그것은 단순히 팔천.사천의 천민으로 태어나 세상 사람들한테 괄세받고 천대
받는 것에 대한 포원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의 한 생애를 두고 제 손으로 직접 만져 흙이나 나무나 가죽이나 그
감촉을 느끼며, 제 몸으로 힘을 들여 파고, 갈고, 깎고, 다듬어 일하고, 드디어는
완성하거나 거둔 실체를 가져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정말 한 가닥 음률, 그 순간이 지니고 나면 천지 사방 어디에도 남아 있
니 않은 음률의 실낱 같은 오라기 한 줄에 자신을 메고, 거미처럼 하염없이 허
공의 귀신에게로 귀신에게로만 오르려 했던 것 같았다.
제발 너는 나맹이로 살지 말었으먼.
홍술이는 갓난아기 여린 주먹을 주둥이처럼 벌리어, 자기의 검지손가락을 막
대기같이 그 사이에 끼워 보았다. 갓난 것은 그 손가락을 본능적으로 쥐어 잡았
다. 마치 나무에 앉은 새가 그 발가락으로 가지를 움켜쥐는 것처럼.
그때 홍술이는 문윽. 그 어린 것이 한 마리 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움켜쥐고 앉아 있던 나뭇가지 따위는 가볍게 차 버리고 후르룩 날아갈 수
있는 새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러나 물려받은 뼉다구는 나뭇가지가 아니고, 누워 있는 어린 아들 만동이는
한 마리 새가 아닌 까닭에. 이 아이는 자라서 아비인 홍술이와 그 할아비인 누
구와 그 윗대의 누구, 누구처럼, 그저 또 한 사람의 무부가 되고 말 것이었다.
니가 나한테서 안 났드라먼.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으리요.
홍술이는 쉬흔둥이 아들 만동이를 놓고, 즐겁다기보다는 시름에 겨워 점데기
도 모르게 한숨을 삼키었다.
그러했던 만동이가 어느결에 각시를 얻고 또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날로 홍술은 칠십이 다 되어 백발이 허이연 머리를 이고 앉아, 꼬부라진 허
리를 웅크린 채 갓 태어나 손자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후에 만동이가 제 자식
을 들여다보고 그러했었던 것처럼.
너도 인자 크먼 또 벨 수 없이 무부가 될 거이냐.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는 또 다른 생각을 골똘히 하고 또 하였다.
나뭇가쟁이맹이로 차고 날러가 버릴 수 없는 거이 타고난 조상의 뼉다구라먼,
그거이 저 앉은 한펭상의 근본이라먼, 내가 인자 저것의 조상이 되야서, 내 뼉다
구를 양반으로 바꽈 줄 수는 도지히 없는 거잉게.
멩당이라도 써야제, 천하에 멩사.멩풍을 다 데리다가 묏자리 본 양반으 산소 옆
구리를 몰래 따고 들으가서라도 멩당을 써야제. 우리 재주로는 어디 그런 집안
으서 신안 뫼세다가 잡은 자리만 헌 디를 달리 구헐 수도 없을 팅게. 그 봉분
옆구리를 째고 들으가서라도. 양반이 쓴 멩당인디 오죽헐 거이냐.
뼉다구 하나 잘 타고나 양반이 된 그 뼉다구 옆에 내뼉다구 나란히 동좌석허
고 있다가. 세월이 가고 가서 나중에는 그것도 썩고 내 것도 썩어 한자리에 한
몸뚱이로 얼크러지먼, 니 다리. 내 다리. 니 복, 내 복을 누가 앉어 따로 따로 개
리겄능가. 어찌 되얏든 그 자리다가 뫼 쓴 거이 되야 부렀는디. 그런 뒤에 멩당
기운이 발복을 허먼, 그 자손 내 자손이 똑같이 받겄지.
양반이 그렇게 대대손손 내리내리 양반으로 사는 것은, 그들이 권세있고 재물
있고 식견이 있어, 한다하는 지관들을 낱낱이 다 불러다가, 몇 날 며칠을 물론이
고 혹은 몇 달씩, 아니면 몇 년씩이라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경비를 대 주면
서, 부디 좋은 자리 하나만 잡아 주기를 소원하며 온갖 치성을 다 들인 끝에, 드
디어 명당을 쓴 탓이라고 홍술은 생각했다.
"이제 나 죽으먼 투장하여 달라."
고 그는 숨을 거두면서 아들 만동이와 며느리 백단이에게 유언하였다.
투장. 그것은 밀장이었다.
"나중에 파기 좋게...... 기양 아무 디나 양지 짝에 묻었다가...... 내 살이나 다
썩그던...... 뼈다구 대강 취해서...... 저 욱에...... 매안에..... 누구 초상이 나먼...... 그
때 ......살째기.....암도 모르게......새 산소 옆구리 파내고......거그다......거그다 묻어
도라......"
홍술은 바튼 숨을 몰아 쉬며 메마른 입술을 가까수로 달싹이어, 한 마디 한
마디씩 끊어지는 소리로 그렇게 일렀다.
만동이는 이미 핏기가 가시어 누런 아비의 손을 부여주고 연신 고개만 끄덕이
었다. 온기 없는 그 손의 손가락은 죽은 나뭇가지 삭정이처럼 바짝 말라 있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그대로 두두둑, 바스라져 꺾여 버릴 것만 같았다.
아들 만동이는 이미 어쩔 수가 없었고, 그 만동이의 아들 귀만이만은, 그래도
당대 발복하는 명당에 더부살이로 들어가면 제 애비보다는 좀더 나은 세상을 살
수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니.
살아서는 못 살아 본 대가 거실 양반의 집이지만, 죽어서 혼백이라도 유택을
귀한 곳에 짓고, 원통하고 서러운 자신의 넋을 달래 주고자 그리한 것이 아니라,
한 생애를 다하도록 아무것도 실체로 쥐어 보지 못한 손의 허기를 대대 손손 무
당의 자식으로 태어날 제 후손들에게 더는 물려주고 싶지가 않아서, 그 허한 운
명의 손가락 마른 가지를 날카로운 발톱의 두 발로 차 버리고, 멀리멀리 더 높
이 까마득히 새가 되어 날아가도록 해 주고 싶어서, 홍술은 마지막 숨을 다하여
유언했던 것이다.
그것이 벌써 너덧 해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 홍술의 살은 축축한 땅 속에서 이미 다 썩어 검은 물로 흐르고 드러난
뼈다귀는 버석버석 고갱이가 떨어지면서, 무겁게 덮인 흙을 걷어 내 개장되기만
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홍술은
"저 욱에 매안에 초상이 나먼."
이라고 하였지만, 어차피 투장이 남의 땅이나 남의 산소 명당에 아무도 모르게
유골을 밀어 넣어 밀장하는 것이라면, 굳이 매안만을 바라보고 있을 일은 아니
었다.
그래서 당골네 백단이는 은근히 다른 동네 당골한테로 마실도 가 보고, 혹시
어디 명당 있다는 말 나지 않았는지. 사람들을 만나면 이리 저리 돌려서 소문
속을 떠 보기도 하였다.
당골네는 무부와는 달랐다.
무당은 물론 더 말할 것도 없이 천하디 천한 팔천 중에 하나여서, 그 신분으
로만 보면 짐승 잡는 백정이나 한가지지만, 그러나 백정과도 다르고 또 함께 사
는 서방인 무부와도 좀 다른 것은, 무업의 주를 맡고 있는 사람이 당골네 무당
인지라, 그들은 만일에 용하다고 이름이 나면, 궁중에서도 부르고, 권세 높은 재
상가나 돈 많은 장자의 집에서도 부르니. 때로는 덩을 타고, 때로는 다소곳이 따
르는 대갓집 시비를 앞세워 거느리고 태깔 내어 걷는 품은, 얼핏 한다 하는 사
대부의 부인 못지않아 보이기도 하였다.
그만한 곳에 드나드는 당골네라면 복채도 상당하여. 보패도 화려하고 비단 명
주 피륙도 색색깔이라, 솜씨 좋은 집에 삯을 주어 맡기면 날아가는 바느질은 꿰
맨 자국 흔적도 없게 지어내니, 본디 귀신도 호리는 맵시로 춤을 추며 굿을 하
는 당골네 몸매에, 그 옷을 떨쳐 입고 장신구 곱게 꾸며 나서노라면 언뜻 양반
의 부인인가 속을 만도 하엿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래도 자신들의 몸에 밴 탯거리를 숨기지 못하여 당골네 행
투를 곧 드러내곤 하기는 하였다.
덕과면 안동네 이씨, 소씨들 사는 곳에 당골이 하나 다녔는데. 그네는 재간도
있고 붙임성도 좋아 그 동네에 들어가면
"마님."
"성님."
하면서 가히 양반의 부인과 한 방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친숙하게 지내었
다. 당골네는 분명히 천민이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사람이 양반일 때는, 가정사
깊은 것까지 은밀히 의논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고, 남모르게 문복을 하거나 굿
을 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어서, 당골은 댓돌 아래 무릎 꿇어 엎드리고 마나님
은 누마루 높은 곳에 우뚝 서, 소리소리 외치며 호령하여 물을 수는 없는 것인
지라, 자연히 안방으로 깊숙이 들어가 면대하고, 무릎 대고, 나즉나즉 말하다 보
면, 심기도 통하고 허물도 없어지며, 혹 때로는 그 부인이 당골네를 형님같이 위
바쳐야 할 경우도 생기지 말란 법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집안 사정을 소상히 알게 되고, 제를 지내거나 양반네 선산에 자
주 출입할 일도 생겨서, 자연히 어떠어떠한 곳에 산소 자리 보아 둔 곳이 있는
데 그곳에 조상을 모시면 어떻겠는지, 그곳이 주인 대주와 부인 계주의 사주와
연대가 맞는지, 혹시 세살, 겁살, 재살의 불길한 액이 낀 삼살방은 아닌지, 이야
기가 저절로 오고 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당골네는 그런 내용들을 은밀히 기억해 두었다가, 때를 보아 쥐도 새
도 모르게 자신의 조상 유골을 수습하여, 그 명당 자리 묘의 옆구리를 파내고
뼈 뭉치를 그 속에 던져 넣은 다음, 감쪽같이 다시 흙을 메워 놓고는 씻은 듯이
시치미를 떼었다.
그것이 바로 투장이었다.
그런데 제 당골판이 아닌 남의 당골판에 있는 명당을 이쪽에서 알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지간히 가찹게 지내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그런 내
막을 좀체로 남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당골네의 습성이었다. 그것은 자기 판에
대한 당골네의 도리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들의 잇속이기도 하였다.
또 만일에 여차 잘못하여 그런 사실이 발각된다면, 그 길로 내외간에 다 같이
산소 주인네 집으로 끄집혀 가, 덕석말이를 당하는 것은 두말 더 할 것도 없거
니와, 심하면 볼기가 너덜너덜 해어지도록 몽둥이로 몰매 맞고, 선혈이 낭자하게
흩어진 몰골에 북을 치며 온 동네에 조리를 돌고, 무부는 귀때기에 화살을 꽂아
회술레를 돌 것인데.
양반의 산소가 어떤 것이라고 감히 누가 그것을 훼손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풀포기 하나 건드린 것이 아니라. 상종 못할 천민의 뼈다귀를 서슬 푸른
양반의 조상 유골 위에 걸레같이 쑤셔 넣은 행위는, 그 자리에서 박살을 내 때
려 죽인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투장한 당골네는 그 모든 사형을 다 받아 마땅하고, 또 그것만으로 그
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시는 그 마을에 발걸음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
은 매 맞고, 조리 돌고, 회술레 도는 것보다 더 큰 벌이었다. 지금까지 그네를
먹여 살려 주던 당골판을 고스란히 잃어 버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당골판이란 당골네들끼리는 서로 엄격하게 지켜지는 제도여서, 자기판이 아닌
동네에 혹 놀러 가는 것은 나무라지 않았지만, 행여라도 슬그머니 끼여들어 굿
을 할라치면 본판에 있던 당골네가 결코 가만 두지 않았다.
한달음에 달려들어, 그 굿에서 번 것을 모조리 빼앗아 버린 뒤에, 다시는 그런
생심을 못하게 흠씬 두들겨 멀리 쫓아내고 말았다.
당골네 한 사람이 마을 한 개나 두 개, 혹은 서너 개, 아니면 올망졸망 대여섯
개를 둘러 한 테두리로 정한 그 판은 칼날같이 구획되어 남이 절대로 범접할 수
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습되었다.
당골네는 이렇게 자기가 독점한 당골판의 마을에서 행하여지는 굿이나, 그 마
을의 집집에서 일어나는 길흉의 대소사에 있는 굿을 책임지고 모두 해 주었으
며, 마을에서는 봄.가을로 보리 추수 때나 나락 추수 때, 곡식을 걷어 당골네 식
구들이 일년 동안 먹을 양식을 대 주었다.
그것을 '동냥'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무당은 마을의 집집마다 크고 작은 액을 지켜 주고, 마을에서는 무
당의 생계를 돌보아 서로 공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하다 이 판을 잃게 되면, 당골네는 조선 천지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정말로 바가지 차고 동냥아치로 나설 작정이 아닌 바에야, 얻어먹을 곳
도 없었다. 본판의 당골은 다른 동네 당골이 와서 일없이 오래 묵는 것을 좋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판'을 잃는 것은 곧 양식을 잃는 일이었다,
"차라리 염라대왕 저승사자 턱을 차는 거이 덜 무섭제, 하이고오, 투장은 못헐
일이여. 간뎅이가 얼매나 크먼 그런 짓을 허능고이?"
지난번에 찾아간 덕과면 당골네는 마치 백단이의 속을 들여다본 듯이, 무슨
이야기 끝에 그 말을 하며. 버르르 어깨까지 떨어 보였다.
아무리 이족에서 능청스럽게 돌려가며 물었다 해도, 귀신하고 노는 사람이라
눈치가 비상하여 이쪽 마음을 넘겨짚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서운 일을 두고, 제 눈앞에 번개 치듯 닥친 사정이 절박한 것도 아
닌데, 무단히 어느 누가 옆엣사람한테 인정을 쓰노라고
"아무 아무 곳에 누구를 뫼셌는디 아조 멩당이라드라."
소리를 해 줄 것인가.
그랬다가 만일 일이 서툴러 꼬리를 잡힐작시면, 물론 당사자인 백단이는 치도
곤으로 난장질을 당한 뒤에 아까 꼴을 못 면하겠디지만,
"네 이 년, 이 내력을 어디서 들었느냐."
고 죽인다고 형문하면, 아픈 매를 못 이기고, 아무개 올습니다.
자기를 끌어댈 터인데 그 다음이야 불을 보듯 훤한 노릇 아니겠는가.
비록 아는 명당이 있다 하더라도 덕과면 당골네가 무슨 선심으로 백단이한테 그
런 말을 해 줄 리가 없었다.
백단이는 난감하여 마음이 착잡하였다.
12. 아아, 무엇 하러 달은 저리 밝은가
어찌하랴.
쉬흔에 낳은 아들 만동이를 장가들여 다시 그 아들을 본 홍술이 일흔도 훨씬
넘은 머리털을 허이옇게 눕히고 숨이 진 지 벌써 여러 해.
삼 년 지나 사 년 지나 어느덧 세월로 흐르는데, 아직까지 마땅한 곳에 그 유
골을 옮겨 드리지 못한 만동이는, 아비의 한도 한이지만, 제 한세상 앞에 놓인
천골의 천함과,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또 다시 할아비와 아비가 그러했듯이
무부의 길을 터덕터덕 걸어가야 할 어린 놈의 허깨비 같은 생애가 뼛골에 맺혀
서도, 부디 어서 아비의 뼈다귀를 질척하고 검은 어둠 속에서 건져내 고실고실
한 양지녘의 해 바른 흙 속에다 안장하고 싶은 안타까움에 늘 가슴이 찝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날은 좀체로 쉽게 오지 않았다.
겨울 가고 봄이 와서 먼 들에 아지랑이 오르고 산야의 나뭇가지 새움이 터오
를 때, 야산 기슭 발 닿는 곳에 아무렇게나 묻어 놓은 아비의 몽그라진 무덤 위
에서 포릇포릇 잡초 섞인 떼가 살아나
"아부지가 눈뜨능가."
싶은 심정이 문득 돌게 하다가, 이윽고 여름 되어 그 풀이 우줄우줄 커올라
쑥대강이 귀신 형용 더북하게 뒤엉키어 산발을 하면, 낫도 댈 것 없이 두 손으
로 거머쥐어 우거진 잡초를 우둑우둑 뜯어 내었다.
아이고, 이 풀이 어찌 이리 억세다냐.
뿌랭이를 아부지 머리빡으다 박고 있능게비다.
울 아부지 살 썩은 거름 먹고 큰 거이라 이렇게 무성헌가.
질긴 뿌리는 그대로 남은 채 풀잎사귀만 몇 줌 뜯기는 잡초는 여름독이 사납
게 올라 있어 만동이의 손바닥에 잡히면서 여지없이 살을 베어 버렸다.
풀에 베인 손바닥은 쓰라리게 아리었다.
저 하찮은 풀잎에도 베이는 살이, 일곱매 모질게 동인 몸을 검은 구덩이 축축
한 땅 속에 눕힌 채, 일월의 기운 한 번 쏘이지 못하면서 명부의 냉기에 저미고
저미어져, 이제는 한낱 검불같이 흩어지고 말았을 아비의 육신을 생각하며 만동
이는 턱을 고였다.
검푸러진 뗏장에 망초조차 섞여 자란 봉분에는 흰 꽃까지 헛것처럼 피어나 건
듯 스치는 바람에 적막하게 흔들리니
"저거이 아부지 넋인가."
망혼 같은 그 꽃을 차마 뽑아내지 못하고 그는 이윽히 바라만 보며 한숨을 삼
켰다.
그리고는 둥그먼 봉분에 우북한 떼와 잡초를 가만히 어루만져 쓰다듬었다. 손
바닥에 쓸리는 감촉이 꺼끌하고 뻣센 것이 이상하게 유정한 것은 아비의 무덤
위에 돋는 풀이기 때문이리라.
아비의 살이 썩고 뼈가 녹은 그 거름을 먹고 뻗는 풀뿌리는 곧 아비의 몸이라
하지 않으랴.
뽑아 내야 옳은 잡초인데도 그는 선뜻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살아 생전 한
번도 잡아 본 일 없었던 것만 같은 아비의 손을 잡듯, 풀포기를 어루며 더듬었
다.
풀포기에서는 그늘진 향기가 살 속으로 파고들게 풍겨났다.
그것은 어쩌면 굿이 있던 여름날 해 넘어갈 무렵에 풀먹여 다려 입은 아비의
옷에서 풍기던 몸 냄새 같기도 하였다.
한 손에 장구 들고 한 손에 피리 들고, 기우는 저녁 해를 등뒤에 받으며 주황
으로 물드는 그림자를 길게 끌면서, 어미 점데기와 함께 휘적휘적 굿판으로 가
던 아비의 뒷모습에서는 고적한 풀 냄새가 났었다. 그풀 냄새가 무덤 위의 풀에
서 배어나, 만동이는 이 뗏장이며 잡초들이 아비의 넋이 입은 옷인가 싶어지기
도 하였다.
인간세에 묻은 먼지, 오밤중의 개울에서 다 씻어 내고, 옷 빨아 새로지어 다려
입고, 구천에서 귀신이 되어 떼옷 입고 홀로 누워 일월 아닌 어둠을 캄캄하게
덮고 있는 정황이라니.
"압씨, 조께만 지달르시오. 인자 곧 멩당이 날 거잉게. 까깝허다 말으시고, 조
께만 더 썩으시오. 빽다구 노릇 한 번 못 해보고 눈물 지어 살던 삶. 인자는 여
한 없이 그 눈물로 다 씻어 부리시고, 다 ㅆ헤서 검부라기 티 하나 냉기지 말고
말강물로 삭어서 지하로 흐르시고, 살 썩으신 그 물로 뻬를 씻어 헹구시고, 입
속의 이 드러나 디끼 희게 희게 당신 뻬를 드러내고 지십소사."
살은 원이 많은 것이라 다만 한 올이라도 안 썩고 붙어 있으면 그 뼈가 가볍
지 못하니, 홀가분히 다 벗고 저승으로 가려 해도 살에 감겨 제 걸음을 못 걷는
게 당연하다.
뼈는 마른 것이요, 살은 젖은 것이니 이 젖은 옷을 어서 벗어 풀어 버려야 뼈
가 드디어 뼈만 남지 않겠는가.
육탈
그러나 아비는, 무게의 몸을 받아 천하게 살다 간 이승의 젖은 살을 이제 비
록 다 썩이어 벗어 냈다 하더라도, 여전히 제 살 썩은 물 속에 질퍽하게 잠겨
있을 것이니 어찌 그 뼈가 옷을 벗었다 할 수 있으리.
그 멍들어 검은 물 속에 아직도 무겁게 잠겨 있는 아비의 뼈를 하루라도 빨리
건져내, 좌청룡 우백호가 번듯한 양지녘 고실고실한 유택에다 새로 모셔 설움도
원한도 다 씻어 내고 오래오래 편안히, 고이 잠들도록 해 드리고만 싶은 것이
만동이의 소원이었다.
그것도, 이승에서는 감히 넘볼 수도 없었던 양반의 서슬 푸른 혼백과 동무하
며 노닐며 나란히 누워.
그러자면 그 길은 오직 투장밖에 없었다.
그것도 묵은 명당이 아니라 지금 막 쓴 새 자리 새 명당이라야만 했다. 오래
된 자리는 비록 명당이라 할지라도 이미 발복을 해 버렸거나 기운이 다하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점쟁이고 무당이고 새로 난 사람이 잘 맞히고 영험한 거이나 같은 이치라. 새
기운이 무선 거잉게. 짐 나가 부린 자린, 써서 멋 헐 거잉가. 실속도 없이 껍데
기뿐인디."
날이 갈수록 시름없이 애달파하는 서방 만동이의 모습을 보다 못한 백단이가
한 번은
"오래된 산소라도 멩당은 멩당일 거인디 거그라도 쓰먼 어쩌겄소?"
물었을 때 만동이는 시큰둥하니 그렇게 대답했었다.
"나서야 말이제. 누가 몰라서가 아니라."
"지달러야제."
"애를 닳지 말든지."
"맴이 씨인디 어쩔 거이여."
"씨인다고 되야, 긍게? 그런 일이 맘대로 되는 거이면 멋 헐라고 일 없이 한
세월을 지관 앞세우고 팔도를 도는 사램이 있고, 사랑에다 드글드글 멩사 멩풍
돌팔이끄장 멕이고 입히고 재움서 세월에 좀이 실게 지달른다요? 맘대로 안된게
그러제. 내가 자리 찾는 것도 아니고 지달렀다가 넘의 자리 옆구리 따고 들어갈
람서 발싸심만 헌다고 되간디? 그런 일이? 멩당 쓸라다 집안 망헌 사람 하나둘
보능게비? 쓸 때 잘 써야제 무단히 서둔다고 먼 일이 되야 긍게? 다 적공에 인
연이 익어야제에. 나도 제발 시압씨(아버지)한테 효부로 효도헐래서가 아니라,
나도 좀 호강허고 살고 우리 금쪽 같은 아들내미 귀남이란 놈 생각해서라도 꼭
좋은 디로 이장해 디리고 잡응게, 어디 또 지달러 봅시다. 아무러면 양반이라고
불로장생들만 해서 초상이 안 날랍디여? 누군가 죽겄지. 삼천갑자 동방색이도
때 되면 다 죽는디."
"아무나 죽어 갖꼬 멩당을 간당가?"
"아 긍게 죽어도 심있는 양반 죽기를 지달를랑게 쉽들 안헝 거 아니요오. 송사
리사 냇갈에 가먼 짝 깔렸지마는."
"휘유우."
"한숨 쉬지 마씨요. 부정타게 맘을 질게 묵어야제 그렇게 한숨으로 토막을 치
면 쓰간디. 신명이 돌아보먼 방정맞다 그러시겄소."
"저어그 대산면 한울리 이딘가는 시암 속에도 멩당이 있다고 허드마는. 그게
있을라면 그렁게도 있는 거인디."
"헤기는."
"아 그 왜 새비 자리 쓴 이얘기도 안 있소?"
"그것도 그리여."
내외 마주앉아 한숨 섞어 하는 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귀남이가, 꼭 만동이
어렸을 때 아비 홍술이를 올려다보고 묻던 모습으로
"새비 자리가 머이당가?"
고개를 반짝 치켜들며 물었다.
"그렁 거이 있어."
"있다고만 말고오."
"이얘기 좋아허면 가난허게 산대."
"가난허면 어쩌간디?"
"못 쓰제 어쩌."
"끈 달어 쓰제 머."
"아냐, 끈."
만동이는 귀남이 두 귀때기를 깜짝 순간에 양손으로 감싸서 꽉 부둥켜 쥐고
공중으로 끌어 올리며 웃었다.
"모가지 빠지겄네."
징을 닦아 웃목으로 밀어 놓으며 백단이도 옆에서 웃는데, 귀남이는 으아아,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이야기 해 주어어."
"그리여, 그려. 그러자."
전에 전에 금지면에 어뜬 사램이 있었는디, 나이 똑 너만 해서 즈그 아버지가
그만 죽어 부렀드란다.
그 아부지가 영갬이 다 되드락 어찌 자손이 없었다가 천행으로 늘그막에 아들
하나를 두었등게빈디, 복이 그것배끼라 이 아들 낳는 것 보고는 그만 죽고 말었
디야. 아들도 딸도 더는 없고 외아들 독자로 이 자손 하나 달랑 탯줄에서 떨어
져, 할마이 같은 어매허고 단 둘이서 궁혀게 하루하루 살었드래.
그저 뒷산으서 나무나 한 짐 해다 팔고 제우 입에 풀칠이나 험서 에린 아들
데꼬 꼬부라진 즈그 어매가 가냥 사는디, 하루 가고 이틀가고, 한 달 가고 두 달
강게, 어느새 한 해 가고 두 해 가서, 야가 인자 한 여나무 살 먹게 되얐능게비
드라.
가가 가난해서 그렇제 영리허고 신통헌 디가 있었등가.
"인자 지가 이만치 나이 먹었응게 나뭇짐을 해도 지가 허고 어머이 봉양을 해
도 지가 헐라요, 어머이는 집이가 가만히 지십시오."
그러고는 지게 하나 딱 둘러메고 산으로 가네. 그러더니 그날부텀은 눈만 뜨
면 새복같이 산으로 가서 하루 죙일 가리나무 긁어대고 삭젱잇단 짬매 묶어, 대
체나 즈그 어매 대신 장에 내다 팔어 오고 했는디.
하루는 가마안히 속으로 생각을 해봉게,
"내가 울 아버지한테는 단 하나 혈육인디, 아부지 자식으로 태어나 아부지한테
아무껏도 해 드린 거이 없고나. 인자 와서 효도를 헐라 해도 아부지가 이 세상
에 지시기를 않으니 도리가 없어. 어쩔끄나. 내가 지금부텀이라도 공부를 해서
우리 아부지 유골이나마 멩당에다 펜안히 뫼시야겄다."
허고는 작심을 했겄다.
"허나 내가 집이서 이러고 있으면 공부허기가 에럽제. 펭상에 나뭇꾼으로, 살
아 지신 어머니 끄니조차 지대로 챙기기 에러울 거이고, 돌아 가신 아부지 멩당
에 뫼시기는 아예 그를 거이니, 내가 이 질로 명산 대찰을 찾어가 산소 공부를
좀 해야겄다. 그러고 돌아오리라."
즈그 어매한테 십 년 수에 오마고 하직을 허고는, 물어 물어 강원도 금강산을
향하여 떠나가서는, 드디어 그 공부로 이름 높은 어느 절에 이르러서 큰시님을
찾어 뵙고 공손히 꿇어 앉어
"나는 이러이러 전라도 땅 아무 디 촌으 사는 아무갠디, 우리 아부지 나이가
많아서 늙은 후에야 태어난 탓으로 내가 이빨도 안 나 주먹만 헐 때 그만 돌아
가세 부렀소. 늦게 난 자식 재롱도 다 못 보고. 나는 그 냥반의 자식으로 나서
내 손으로 따순 밥 한 그릇을 생전에 못 지어 디리고, 내 손으로 그 방에다 불
한 부석(아궁이) 못 때 디린 거이 한이되야. 인자라도 멩당에다 아부지를 뫼서
보까 허고는 지금 이렇게 산소 공부를 허로 왔습니다. 내가 십 년 결단을 세우
고 왔으니 부디 나한테 가르침을 주십시오."
간곡하게 청을 올렸드란다.
그 효심을 읽은 큰 시님이
"그러먼 그래라."
해 갖꼬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대. 산소 공부를, 그런디 어떻게나 열심히 배우
고도 총명헌지, 선생님이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고 둘을 갈치면 열을 미리 짚
어 부러서 선생도 그 재주에 깜짝 놀랬드리야. 그러장게 넘들보다 갑절이나 공
부가 빨러서 인자 만 구 년간을 배우고 나니, 통머 그 선생이 거그다 더 갈칠
것이 없게 되얐드래.
그 동안 고향도 잊어 불고, 굶는지 먹는지 즈그 어매도 잊어 불고, 제백사 제
만사를 헌 채로 일구월심 오직 공부에다가만 온 정신을 씨고 헝게로, 번쩍번쩍
아능 거이 늘어나네이, 아 그렇게 십년 결단 시간은 아직 일 년이나 남았지마는
공부가 차고 넘쳐서, 이 아들이 선생한테 멀 물을래야 더 물을 거이 없드래.
선생도 인자는 멀 더 갈칠라고 허능 거이 아니라, 야보고 기양 오락가락 험서
흘러가는 구름이나 체다보고 계곡에 물 소리나 듣고 놀으라고 헌단 말이여.
까깝허제. 공부를 허니라고 시간을 씨는 것도 아니고, 달리 무신 헐일이 있는
것도 아닌디, 무단히 십 년 결단을 채우니라고 벌 시간을 보내는 것만 같아서,
날 가는 거이 아깝고 마음이 조급히여. 어서가서 배운 대로 아부지 멩당도 씨고
잡고 어매도 보고 자와 도저히 안되겄어. 좀이 쑤셔서. 아, 그러다가 하루는 야
가 더 못 참고 선생 앞에 물팍을 딱 꿇고 앉어서 토로를 했네.
"내 요먼허면 인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부지를 멩당에다 뫼실 자신이 있으니
떠나야겄습니다. 늙으신 어머이가 혼자서 어뜨케 살고 지신지 그것도 모르겄고."
"오, 그러냐? 허나 장부가 한 번 십 년 공부 뜻을 세웠으면 반다시 십년 기한
을 채워야지. 아직 일 년간을 더 공부허도록 해라."
"아, 내가 더 배울래야 선생님한테 인자는 더 이상 배울 거이 없습니다. 구름
보고 물 소리 듣는 거이야 금강산 아니라도 어디서나 헐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조선 천지."
"익어야제. 익어서 저절로 꼭지가 빠져야제. 설익은 재주에 코 깨지느 법이니
라."
그런디도 야가 한 번 먹은 맘이라 들떠서 주저앉들 못허고 기어이 질을 떠났
드란다. 금강산으로 들어갈 적에는 여나무 살 소년이었는디, 그새 구 년이나 세
월이 흘러서 인자 의젓한 총객이 되야 갖꼬, 큰시님 밑에서 멩당 풍수 공부를
헌 사램이라 생김새도 점잖허니 보기 좋게 갖춰져서,절에서 떠날 때는 차림새
갠찮었는디, 강원도서 전라도 땅이라는 게 험허고 멍게로 걸어걸어 고향 찾어가
는 질이 쉽들 안히여, 어쩌겄냐. 천리 질을 가는디 아는 사람 아무도 없고 수중
에 가진 돈도 없응께, 비렁비렁 빌어먹음서 밤에는 한뎃잠을 자고 낮에는 찌그
러진 동냥치 다 된 꼴로 질을 걸었드란다.
그러다 하루는 어뜬 잔등이를 넘을라고 기진맥진 배가 고파서 허덕허덕 올라
가는디, 거그 잡곡 수풀에 웬 조그막헌 머이매 하나가 나무를 닥닥 긁고 있거든.
지게에다 도시락을 하나 얹어 놓고.
그것을 본 이 사램이 그만 시장끼가 할퀴디끼 돔서 희가 동허네. 여러 날을
굶어서 배는 고프고, 한 숟구락이나 얻어먹을라고 동네로 들어스먼 온갖 개가
한끕에 달라들어 물어뜯을라고 짖어 제끼고, 그래서 등에 가 붙은 뱃가죽을 틀
어쥔 채 하루라도 앞댕게 집으로 가고 자와 가고 있는 중이가, 시방. 그런디 눈
앞에 밥이 뵈이네. 도시락이. 그것도 안 먹은 거이 분명헌. 밥을 다 먹었으면 도
시락을 지게 뿔따구다가 짬매서 걸어 놨을 거인대 그게 아니그던?
이 사램이 순간 염치를 불구하고 그 애한테 사정을 했드란다.
"야야, 나 좀 보자. 미안허지마는 내가 질 가는 사람인디 하도 배가 고파 기진
을 허게 생겠으니, 너 나한테 밥 한술 줄 수 없겄냐?"
나이로 보나 덩치로 보나 그 머이매보담 두 배는 되게 생긴 놈이 덜썩 커 갖
고 쬐깐허니 에린 것 점심밥을 얻어먹을랑게 그 총중에도 낯바닥이 뜨뜻헐 일이
지마는, 그렁 걸 챙길 겨를이 없는 처지여. 지치고 배 고파서 죽게 생겠잉게.
"아, 디리지라우, 잡수시오."
아, 이 조그마헌 머이매가 선선허게 도시락을 내주고는, 저는 도로가서 나무를
긁는디, 꼭 이 총객이 산소 공부를 허로 집을 떠나기 전의 지 모습 같드란 말이
다. 어쩐지 안쓰럽고도 고마운 마음으로 체다봄서 쪼끔만 먹으리라 허든 밥을
반이나 먹어 부렀그만, 에린 것 밥을.
"하이고, 이거. 그저 기척만 해도 죽든 안헐 거인디, 내준 밥이라고 염치도 없
이 이렇게 다 퍼먹고 자한테 미안해서 어쩌꼬."
그럼서도 자꼬 손은 밥으로 가.
원청 배가 고파 농게, 그만 먹들 못허고.
그래도 말로는 체면을 챙겠제.
"야아, 너도 시장헌디 어서 와서 이 밥 먹어라. 아나, 나는 다 먹었다. 먹어야
힘이 나서 낭구도 허제, 그만 먹고 너 주께 얼릉 먹어."
"아니라요. 나는 한 끄니만 참으면 저녁에 집에 가서 밥먹을 수 있지마는, 여
러 날 굶고 먼 질 가시는 모양인디 기양 그놈 다 잡수시오."
"허허어, 고맙다."
그래 눈을 딱 감고 그 밥을 다 먹었네.
그러고는 물었어.
"너 어디 사냐?"
"저 아래요."
"누구랑 사냐?"
"어머이 한 분 뫼시고 둘이 사요."
"아부지는 안 지시냐?"
"돌아가셌소."
"하, 그래. 그거 참 안되얐구나. 에린 니가 고생이 많겄다. 그런디 장사 치른
지는 얼매나 되ㅇ고, 또 산소는 어디다 썼냐?"
"한 삼 년 지냈는디 시방 뫼신 디는 최빙굴(초빈골)이고, 아직 뫼는 못 썼그만
이요. 관 욱에다 이엉 덮은 그대로 있습니다."
"허허어, 그러냐."
이 사램이 만감이 착잡해서 한참 동안 물끄레미 머이매를 체다보다 속으로 저
놈 불쌍헌 놈, 내가 저놈 밥을 뺏어 먹고 기양 간다먼 사램이 아니제. 내가 그래
도 배운 공부가 있으니, 자 아부지를 참 어디 따땃헌 자리에다 뫼셔 주고, 그 발
복으로 밥이나 좀 먹게 해 주고 가는거이 도리리라. 굳이 도리를 안 찾드래도
그러고 싶은 거이 내 마음이다. 에린 놈이 가난헌 중에도 인정이랍시고, 이렇게
나 고맙게 저 먹을 밥을 내줬는디. 나도 얻어먹은 밥을 갚어야제.
그래서 인자
"너 내가 느그 아부지 산소 자리 하나 봐 줄 거잉게. 느그 집으로 가서 어머이
만나자. 이런 일은 어른이 알어양게."
허고는 머이매 앞세워 오막살이 초가집으로 갔제.
가련허게 생긴 그 집에 잠시 머뭄서 이튿날부텀은 가허고 둘이서 일삼어 근처
를 돌아댕기는디,아무리 산을 타고 댕게도 자리가 없어. 멫날 메칠을 뒤지고 댕
게 봐도 도대체가 눈에 띄는 자리가 나오들 안해. 헛걸음이제. 멩당이 무신 호박
넝쿨에 호박 달리디끼 여그 저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꼭 하나 자리를 잡어 줘야
겄는디, 이럴 수가 있으까 싶게 혈이 안 잽혀. 참 별일이다.
이러고는 그날도 터덜터덜 산으서 낼오는디
"그러먼 그렇제."
한 간디가 탁 눈에 들오네.
눈에 번쩍 띠여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좌우 사방을 돌아봉게, 틀림없이 삼
년 내에 한 백석은 허게 생겠어, 이 자리가.
"내 말 듣고 여그다 느그 아부지를 뫼시면 앞으로 삼 년 못가 한 백석지기 살
림은 이루고 살 거잉게, 그리 알고 아부지 유골을 여그다 뫼세라. 이 자리가 바
로 새비 자리다."
헝게로 얼매나 좋을 거여?
아들이고 어머니고 기양 은인 도사로 극진히 떠받들어 공대를 허고는 날을 잡
어 뫼셨제. 산역꾼 살 형편도 못 되는지라 이 사램이 머이매 데꼬 직접 나서서
땅을 파는디, 땅이 뻘건혀. 시뻘건 흙이란 말이제.
흙색이 그렁갑다 허고는 벨 생각없이 유골을 뫼신 뒤에, 간단헌 제수를 채려
평토제도 지내고,그 모자한테서는 눈물로 바치는 감사를 받고, 흐뭇헌 심정으로
길을 다시 떠났어.
"밥값 옳게 했능가 모르겄습니다. 내가 산소 공부를 많이는 못했지만 인자 보
도시 그 깊이를 알 듯도 해서 한 자리 써 디렸는디요. 허나 두고 보시먼 제가
별 짓 안허고 갔다고 허실 겁니다."
"이 은혜를 어뜨케 다 갚으꼬. 언제라도 요 근방 지내시그던 잊지 말고 꼭 들
르시오. 백 석지기 부자가 되얐능가 어쩠능가 궁금해서라도 꼭 한 번 다시 오시
오 그려. 그래야 은혜를 갚지 어찌 갚겄소."
아들 손을 잡고 언덕 날맹이끄장 배웅 나와 어디만큼 아득히 가드락, 돌아보
면 거그 서 있고 돌아보면 또 거그 서 있는 사람들을 뒤로 허고 고향으로 고향
으로 갔드란다.
고향에 와서 봉게 즈그 어매가 그때끄장 안 돌아가셌어. 살어 지신다 그 말이
여. 머리가 멩주꾸리맹이로 하얗게 시어 갖꼬는. 허리는 다 꼬부라져. 쪼글쪼글.
그랭서 둘이 기양 붙잡고 한바탕 울고불고 헌 뒤에
"너 오먼 죽을라고 내가 아직 못 죽고 있었다. 나는 니가 하도 보고자와 얼매
나 많이 울었능가 눈이 다 짓물러서 아무껏도 안 뵌다."
어매가 다시 한 번 목을 놓아 통곡을 했드래.
"너만 보면 되얐제 다른 것 봐 멋 허끄나. 아무것도 쇠용없다. 금도 싫고 은도
싫어. 온갖 꼴도 다 뵈기 싫어. 그렁 것 갖기도 싫고 뵈기도 싫다. 너만 있고 너
만 보먼 나는 되ㅇ다. 아이고오, 내 새끼이."
"안 갈라요 어머이, 인자는 갈 일도 없소. 내가 아부님을 멩당으로 뫼실라고
십 년을 결단하고 자아깨나 쉬임없이 공부를 했드니, 그 세월이 다 안 걸리고
구 년 만에 공부가 끝나서 더 배울래야 배울 거이 없습디다. 인자는 어서 좋은
자리 찾어내서 아부님을 뫼세 놓고 어머이한테 효도 험서 살겄으니 눈물을 거두
시오."
허고는 그날부텀 산소 자리를 찾을라고 일구월심 원을 험서 인근을 이 잡디끼
헤매고 돌아댕기기 시작했다드라.
그런디 통 자리가 없어. 뵈이들 안혀. 눈 깡깸이여. 하 이런 낭패가 있능가. 암
만 눈을 비비고 봐도 안개 찐 것맹이로. 당최 안 뵈여. 하루 가고 이틀 가고, 한
달 가고 두 달 가도 없어.
나중에는 낙심천만이라 밥맛도 떨어지고 기운도 떨어지드란 말이다. 그런 날
이 참 몇 달이 흘러가고 그 욱에 또 세월이 흘러 몇 년이 또 훌쩍 지내갔드
래. 속절도 없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제잉.
귀신이 곡헐 노릇이라.
그러다 하루는 문득
"내가 이거 처음에는 십 년 공부를 서원허고 갔었는디, 십 년을 다 못 채우고
구 년 만에 돌아와서 머이 모지래능 거 아니까. 나는 다 배운 줄 알었지마는 아
직도 못 배운 머인가가 있길래 이렇게도 자리를 못 찾는 거 아니까. 암만해도
이러다가는 아부님 멩당에 못 모시고 말 것 같다. 내가 그 십 년을 다 채우고
왔다먼 혹시 모르겄는디. 안되겄다. 다시 가야제. 가서 다시 일 년간을 더 배와
야겄다. 벨 것 아무리 없을망정 옛선생님 시키는 대로 구름이나 보고 물 소리나
듣다가 오는 한이 있어도 그 옆에서 그 기한을 채워야만 허겄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옷자락을 부여잡고 우는 즈그 어매한테
"일 년만."
지달르시라고 간곡히 작별을 하고는, 자기가 공부했던 그 절을 찾어 또 질을
떠났단다. 여러 날을 걸려서 가고 가다가 어느 만큼에 다다라 잔등이를 넘는디,
아차, 여그가 바로 거그여, 그 동네. 어린 머이매한테 도시락 얻어먹고 즈그 아
부지 묏자리 하나 써준 곳.
그 순간에 정신이 펀뜻 들었제.
"그 아는 시방 잘 되얐능가 어쩠능가. 묘소나 한 번 들러 봐야겄다."
그런디 아 거그를 찾어가서 봉게 이놈의 묘소가 쑥대밭이 되야 부렀네. 풀이
엉크러져 우거져 부렀어. 봉분도 무너지고, 누가 언제 사람이 왔다 간 자취도 안
뵈이는, 임자 없는 무덤이 분명허드란 말이여.
"참으로 괴이헌 일이로다. 내가 그때 공부헌 원리대로 자리를 잡었는디 이럴
리가 있능가. 설령 다소 빗나갔다 허드라도 이 지경에 이르다니. 이럴 텍이 없는
디. 우리 아부님 산소야 자리가 안 나와서 못 썼지만, 이 자리는, 자리만큼은 분
명헌디..."
고개를 갸웃갸웃 험서 사방 좌우를 둘러봉게, 저 건네서 나무 허는 사램이 하
나 있어.
"여보시오, 거그 낭구 허는 양반. 미안허지만 말 좀 물읍시다. 여그 이 묘소,
임자가 있소, 없소?"
"아 그 묘소 말이요? 임자가 없는 무덤이요."
"어찌 이 묘소에 임자가 없단 말이요?"
"아 그 몇 년 전잉가, 벌써 한 삼 년 넘어 되얐능게비요. 어떤 동냥치질 가든
놈이 배야지가 고프게 밥을 얻어 처먹을라고 그랬등가 무단히 가만 있는 사람을
들쑤셔서, 여그다 멩당 쓰먼 삼 년 내에 한 백 석은 실히 허겄다고 장담을 허드
라요. 시퍼렇게. 그래 아조 그 말을 딱 믿고 시킨 대로 뫼를 썼다가, 그만 석 달
못가 그 아들이 죽어 부렀소. 매급시 하루아칙에. 머 어디 아푸도 안허고. 불쌍
허게 가난헌 집 홀에미 외아들인디. 그 외아들이 죽어 부러 갖꼬 시방 즈그 어
머이 혼자 사는디, 참 볼 수가 없게 처량허고 가련헌 생활을 허고 있소이다."
하이고, 참 기가 맥히그던.
"틀림없이 삼 년 내에 백 석을 허게 썼는디. 대체 어찌서 이러냐." 허고는 그
질로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뱀이나 낮이나 발이 부르트게 걸어서 그 절을
찾어 쫓아갔어. 쫓아가서는 선생님을 뵈입고 엎어져 절을 한 다음에, 이러 저러
한 이얘기를 거두절미, 안허고는 대짜고짜로 그 묘소 앞산 뒷산 좌우 지형을 자
세히 말씀 디린 뒤에, 자개가 산소 쓴 자리 혈을 짚어
"응, 똑 그렇게 생긴 자리만 같음사 삼 년 안에 백 석은 허겄다."
"그런 혈은 무어로 봅니까?"
"새비로 본다."
아, 말이 저와 똑같이 떨어진단 말이여, 하나도 틀린 디가 없어. 그런디 이게
웬일이냐. 무얼 잘못했길래 그런 변이 난단 말이냐. 그래서 실토를 했어. 이 사
램이.
그래도 다 말허든 않고 한 자락은 접어서 물었제.
"사실은 얼마 전에 바로 그 자리를 잡어서 뫼를 하나 써 주고 오는 질입니다.
고마운 어린아를 만났길래 즈그 아부지 산소를 써 줬습니다. 그럼 지가 제대로
썼습니까?"
"너 그 천광(무덤 구덩이) 팔 때 흙색을 봤느냐?"
"예."
"땅이 뻘겋드냐. 거멓드냐."
"뻘건했습니다."
"음, 그것은 죽은 새비다. 산 새비는 거멓고 죽은 새비는 뻘건 거이다. 니가 만
일에 일 년을 더 배우고 나갔드라면 그것까지 알었을 거인디. 일 년을 못 배우
고 나갔으니, 혈은 제대로 짚었지마는 산 거인가 죽은 거인가를 못 짚어 내, 너
그애를 산소 쓰고 석 달 안에 틀림없이 희생시킬 것 같으다."
아하.
이 사램이 물팍을 침서 탄식을 했드란다.
"과시 선생님이시라. 살고 죽는 이치가 마지막 일 년에 들어 있었던 것을. 구
년이나 공부해서 아는 거이 제 아무리 많다 해도 그것은 한낱 죽은 지식에 불과
했다. 눈먼 용, 점안 안된 부처 같은 지식이 그 불쌍허고 선량헌 목숨을 살린답
시고 쥑였구나.
애석하고 무서워라.
구름이나 바라보고 물 소리나 들으란 말, 헛짓 같어 안 들었더니 바로 그거이
천지와 숨소리 나누란 말이었든 것을, 그 숨소리 딛키고 그 숨소리 소통해야 비
로소 화룡점정, 그림 속의 용이 눈을 얻어 하늘로 날어가고, 나무토막, 돌덩어리,
쇠덩어리에 불과헌 불상이 점안의 순간에, 눈에 동자 그려 넣는 그 순간에 대자
대비 영검허신 부처님으로 현신허디끼, 이 일 년 남은 공부가, 아무것도 안 허는
것 같은 이 공부가 내 공부의 눈구녁이었구나.
아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이 사람은, 그 에린 머이매한테 얻어먹은 밥 덩이가 어떠케나 아푸게 목에 메
이는지 이러어케 가심을 두디림서 눈물을 흘렸드란다. 만동이는 제 가슴을 주먹
으로 회한에 찬 몸짓처럼 두웅, 두드려 보였다. 한숨을 쉬며. 그리고는 한동안
손을 떼어 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렁게 무단히 무신 일을 서둔다고만 꼭 존 거이 아니여. 다 때가 있는 거이
제. 아부님 일도. 안 그러요이?"
백단이가 이야기 끝을 문다.
"그건 그리여."
귀남이는 아까부터 만동이의 무릎을 베고 누워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결에 새
그르르 잠 속으로 빠져들어 버렸다.
사람의 죽음도 이와 같이 달고 깊은 잠이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목숨의 아비인 우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어쩌면 명당에서 그토록 외우는 좌청룡 우백호란, 이 어린 것의 머리를 받아
감싸고 있는 아비의 두 무릎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동이는 제 아들 귀남이의 이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이 애비같이 힘없고 불안헌 무릎말고, 더 실허고 따숩고 풍족허고 지체 있는
무릎을 네가 베고 누었드라먼, 그랬드라먼 좋았을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제 아비 홍술이 베고 누운 무릎, 그 하찮은 무덤에 생각이 미치자 다
시 한 번 그는 가슴을 두드리고만 싶어졌다.
좌청룡 우백호는커녕 겨우 초빈이나 면한 관을, 개가 와서 파내지 않을 정도
로만 얕게 묻은 그 무덤은, 나중에 개장할 때 일을 생각해서도 그렇게 했지마는,
아니라도 그보다 더 호사스럽게 분묘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었다.
"아무 곳에 아무개네 무덤이 있다."
고 남이 다 알게 표시나는 것은 절대로 이로운 점이 아니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그 무덤을 헤치고 유골을 옮겨야 하는 뒷일이 있어 만동이
와 백단이는 귀남이한테도 할아비의 산소 자리를 말해 주지 않았다. 데리고 가
지도 않았다. 억새풀 서걱이는 야산 발치 기슭에다 버리듯이 묻어 놓은 홍술의
무덤은 다른 산소처럼 번듯한 모양도 없고, 그 앞에 상석도 비석도 물론 없었으
며, 뗏장조차 곱게 입히지 않았다.
그래서 은밀하게 두 사람이나 알까, 누가 얼른 보면 그저 산기슭에 도도록이
돋아 오른 지형인 줄로 알기 쉬운 이 무덤에, 만동이는 버젓이 낫 들고 벌초를
와 본 일도 없었다.
일부러 그렇게 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어찌 편안하리오.
여름 지나 가을 오면 서리 내리고 상로지사, 아비의 무덤에 찬 서리 시리게
덮이는 그 냉기가 흙 속으로 뻗치어 스미듯, 제 뼛속으로 끼치는 서슬은 만동이
의 무릎을 더욱 여위게 하고 떨리게 하였다. 쑥대강이 같던 봉분의 잡초들이 누
렇게 말라 시들어지며 하루아침에 짚북더미로 쓰러지다가 그나마 얼어붙어 저절
로 죽어 버리는 겨울. 엄동설한의 심정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추위에 이빨이 부딪치는 것처럼 딱. 딱. 마주치게 시린 두 무릎을 베고. 이 허
하고 하찮은 무릎을 베고. 어린 아들은 이토록 달고 깊게 자고 있는가. 아무 근
심도 없이 모든 것을 아비에게 맡기고. 아부지도 이 귀남이맹이로 우주와 천지
의 어린애로 돌아가서. 비록 하찮고 초라한 산천에 야윈 뼈를 드러낸 박토의 무
릎일지라도 거기 머리를 평화롭게 누이고 고요히 썩으며 잠들어 있을까. 지금.
그러나 아닐 것이었다.
그는 결코 아무 것에서나 잠들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이제 나 죽으먼 투장하여 달라."
고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아들 만동이와 며느리 백단이에게 분명히 유언
했었다. 그리고.
"저 욱에 매안에 초상이 나먼."
이라고도 하였다.
그는 살아 생전 자신의 천한 육신 서러운 머리를 아늑하게 기대어 의지 삼을
무릎이 없었으니. 죽어서 혼백이라도 그렇게 포한을 풀 수 있는 명당의 무릎에
몸을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자신이 아들 만동이와 그 아들 귀남이
의 무릎이 되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거대한 보금자리 둥지로 여길 수 있는. 음
덕의 무릎이 그는 되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벌족한 가문의 솟을대문 기둥 같은 무릎 아래 한세상을 살아가는
양반의 무덤 속. 그 좌청룡 우백호의 산수 무릎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던 것이
리라. 그리하여 다시 태어나려고.
다시 태어나 쉬흔둥이 만동이와 손자 귀남이와 그의 아들. 그리고 또 그의 아
들의 아들이 받고 태어날 운명 속으로 은밀히 스며들려고.
그 심중을 알 것만 같은 만동이는. 제 이야기를 듣다 말고 잠이 든 귀남이의
이마와 눈썹과 뺨이며 귓밥. 콧방울 들을 가만히 어루어 쓰다듬어 보았다. 마치
아비 홍술의 잡초 우거진 봉분의 풀들을 하염없이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듯이.
붕분의 풀들은 꺼끌하고 뻣세면서 적막한 기운이 이상하게 유정하였는데. 귀
남이의 동그만 얼굴은 여리고 보드랍고 따뜻하며 뭉클했다. 그 두 감촉 사이에
만동이의 손이 놓여 다리가 되는가. 그 감촉들은 손바닥의 온기를 타고 이리로
저리로 서로 흘러 넘나드는 것만 같았다.
그런 모습에서 우러나는 심정은 이만큼에 앉아 바라보는 백단이의 마음에도
묻어들어. 어떻게든 시아버지 유골을 수습하여 알맞춤한 명당 산수 한복판에 고
이 모셔 안면토록 하고 싶은 것은 만동이나 마찬가지 심정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묵은 가지에 새잎 나는 봄비 내리고. 번개 치며 바람 부는 장마가 봉분의 옆
구리를 깎으며 쓸고 가고. 우거졌던 나뭇잎이 하염없이 날아 내려 봉분 위에 흩
어진 뒤. 적막 강산 얼어붙는 동지 섣달 흰 눈이 쌓여. 눈물로 그 눈이 다 녹게
울어도. 마음같이 냉큼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런 중에 한 해, 두 해, 세 해가 갔다.
그리고 또 다시 네 번째 겨울을 하릴없이 보내 버린 이듬해.
백단이는 어느 때보다도 고리배미 비오리네 주막 쪽에 귀를 대 놓고, 스치는
소문 한 조각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주막에는 언제나 매안을 비롯한 인근
마을이며 먼 동네. 혹은 타관에서 묻혀 오는 소문거리가 수북한 때문이었다.
시어미 점데기가 죽으면서 물려준 그네의 당골판은 고리배미와 매안을 합하여
이백여 호가 휠씬 넘었으니 결코 작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고리배미는
민촌이어서 웬일인지 그 하는 일들이 미덥지가 않았고, 매안은 엄중 준절한 곳
이라 누구한테 무슨 말을 붙이러 가기에는 감히 오금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굿 자제가 기만이라. 무당들이 본디 간교한 것들이어서 어리석은 사람들한테
거짓말하고 그 마음을 꼬여내 속여 먹고 사는 족속들인즉, 마음을 낚이지 않도
록 중정을 뚜렷하게 가져야지. 무단히 무슨 일에 앉으면 앉어서 그런가. 서면 서
서 그런가. 경박하게 천한 말에 부화뇌동하지 말라."
는 것이 매안의 말이었다.
허나 사람 사는 일이 그렇게 대쪽 같지만은 않은 탓에 살다 맞는 고비고비 뜻
밖에 궂은일을 당할 때나 해가 바뀔 때. 살을 막고 액을 막고 신수를 가려 보려,
그곳에서도 안부인들이 곧잘 백단이를 부르기는 불렀다.
그렇지만 이쪽에서 넘나들게 허물없이 대해 주지는 않았다.
덕과면 안동네 당골은 양반의 부인들과 마주앉아 겸상하고 한 방에서 형님.
아우. 하면서 잠도 같이 잔다는데. 백단이는 수완이 그네만 못한 탓인지 아니면
아직은 나이 젊어 서로 사귄 정이 엷은 탓인지. 그도 아니라면 워낙 매안의 성
품이 깎아지른 탓인지. 백단이는 속으로 헤아려 보기도 여러 번이었다.
"산소가 있는 산에 불을 놓거나 밭을 일구는 자, 혹은 나무를 마구 배는 자는
무거운 곤장으로 불기 쉬흔한 대를 친다." 고 향약에 명문이 되어 있는 마당에,
하물며 아차 잘못하여 불을 놓은 것도 아니요, 먹고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한 뙈기 밭을 일군 것도 아니고, 나무 몇 그루 만부득이 배어 낸 것도 아니, 투
장이랴.
"죽을라먼 상감님의 덕을 못 차겄느냐."
는 말도 있지만, 그 못지않은 것이 바로 투장이었다.
그것은 시퍼렇게 눈뜨고 서 있는 양반의 생옆구리를 따고, 그 속에다 제 창자
를 우겨 넣는 것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감히 먹어서는 안되는 마음을 먹고 있는 백단이는 아무도 모르게 귀를 곤두세
워, 행여 무슨 소리를 못 듣고 놓칠세라 마음을 졸였다.
그네가 청암부인 병의 소식을 맨 처음 들은 것도 바로 이 비오리네 주막에서
였다.
물론 누구네 집으로 굿을 하러 가거나, 어디서 문복하러 오는 사람들한테서도
사람들 소식은 가랑니야 서캐야 들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비오리네 주막에
떨어지는 소식이 제일 빨랐다.
그리고 제일 정확했다.
그것은 여러 갈래 여러 골의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을 한자리에서 모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백단이는 고리배미에 갈 일이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렇
지 않을 때도 유난스럽지 않을 만큼 비오리네 주막에 들러 비오리와 그 어미를
만나는 척하면서 요령껏 소문을 흡수하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백단이보다는 만동이가 주막에는 이무러워. 틈만나면 그는
마치 일없이 막걸리나 한 사발 마시러 온 것처럼 혼연스럽게 평상에 앉아 있곤
하였다.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생김새 곱상하고 자세에 태깔이 있어 반드롬한 만동이
가, 아무 동무도 데불지 않고 호젓이 개다리 소반을 앞에 놓고 앉어, 한 보시기
김치를 안주로 술을 마시는 모습은, 비오리가 훔쳐보기 딱 알맞아
"비오리란년한테 갱기기만 해 봐라 기양."
하고 백단이는 쥐어박으며 눈흘기는 시늉을 만동이한테 하곤 하였다.
그런 말을 만동이는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은 거기에 있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던 작년 세안 동짓달, 동지를 바로 앞둔 어느 날, 그네는 매안의 청암부인
병세가 위중하여 심상치 않다는 말을 거기서 듣게 되었다.
"암만해도 오래 못 가시겄다."
근심스럽게 낮은 소리로 주고받는 말을 들은 지 얼마 안된 때였다.
"오늘 밤이 고비라대. 못 넹기기 쉽겼다든디."
사람들은 수상하게 수군거려졌다.
그 말을 얼핏 들은 그네의 가슴은 그때, 저도 모르게 퉁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후드르르 떨리더니 이윽고 가슴의 밑바닥에서부터 육중한 힘으로 서리
를 틀며 희오리져 밀고 올라오는, 그 어떤 다른 말로도 형언할 길 없이 오직 벅
차면서 터질 듯
"드디어."
라고밖에 하지 못할 희열을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았다.
"드디어 아부님을 뫼시게 되얐다."
그리고 그날 밤, 밤이 깊어 고비에 이른 검은 어둠 속에서
"청아암 부이인 보오옥."
목메이게 부인의 혼백을 부르는 소리가 아득히 울려 왔다.
거멍굴에서야 그 소리가 들릴 리 천만 없지만, 그네는 대단챦은 핑계로 매안
의 아랫몰 타성바지 임서방 집에 들러, 문청문청 머뭇거리며 밤 깊은 줄 모르는
사람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흰 적삼을 캄캄한 빈공중에 하염없이 흔들며 인월댁이 목메이게
돌아오라, 혼백이여.
부르고 있는 그때, 백단이는
떠나시라. 부디 떠나시라.
빌고 있었다.
그리고 달도 없는 깊은 밤, 명부의 베폭처럼 나부끼는 흰 저고리 옷소매와 옷
고름에 몸이 잡힌 청암부인의 혼백은 바람 소리로 울며,
놓으라, 나를 놓으라.
이제는 제발 나를 놓으라,
흐느끼었다.
"음양이 서로 달른디 한자리다 그렇게 써도 될랑가?"
청암부인 산소에다 시아비 홍술의 유골을 투장하자는 그네의 말에 멈칫 의아
한 얼굴로 아낙을 바라보며 만동이는 백단이한테 그렇게 물었다. 백단이는 눈은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안될 거이 머 있다요? 이 세상 천지 만물이 다 서로 음양의 조화로 이뤄져서
하늘이 양이먼 땅이 음이고, 꽃이 음이먼 나비가 양인디, 음양이 아니먼 무신 조
화로 비가 오고, 음양이 아니면 무신 재주로 열매를 맺을까. 이 세상 사람들이
모다 살어서도 음양을 좇아 살고 죽은 뒤에도 음양이 만나 함께 살먼 혼자보다
좋제 멀. 내우간에 합장허능 거 듣도 보도 못했소?"
"그거사 내우간잉게."
"아, 날 때부터 내우간이 어디 있다요? 여그 저그 이 집 저 집이서 각각 부모
따로 따로 뫼시고 살다가 나이 차서 성혼허먼 그때사 서로 한 집서 살고 내우간
이 되는 거이제. 우리는 머 어내 뱃속으서부텀 내우간이였소 머?"
"그래도."
"참, 걱정도 팔짜요잉, 왜 혼백들끼리 합장허능 거이 어째 합방이나 허능 것맹
이로 넘사시럽고 내우 개레지시오? 외나 아부님은 그렇게도 엄청난 마님허고 신
방을 채레서 좋으실 거인디?"
만동이는 대꾸 대신 얼술을 붉히었다.
"생각해 보시오. 애러울 거 머 있능가. 우리가 사방 멩사 씨고 지관 써서 우리
자리 정당헌 산소를 씨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도적질, 맹당 도적 허는 거인디,
아 왜 마나님끄장 훔쳐 불먼 금상첨화지, 머이 걸려서 망설인다요? 망설이기를,
그것도 다 인옌잉갑제. 아부님 복이고, 그렇게도 눈이 빠지게 지달르던 맹당이
헤필이먼 그 대갓집 종부 마님 산소에 날지를 누가 알었겄소. 기가 맥해서. 그렇
게 맞촤서 찾일래도 인력으로는 못 찾겄소, 원. 그 가문에 그뼈대에 그 풍모에
그 인품에, 아 오직허먼 추상 같은 그 서슬에 안 떠는 남자가 없고, 그 기상이
천하라도 다스릴 만허다 해서 청암대신 칭호끄장 붙은 냥반 아니요. 그만허신
인물이 아부님허고 혼백이라도 짝이 되야 우리 엄씨가 되시먼 머이 좋아도 좋제
나쁠 거이 머 있어? 사실은 우리 자손들은 그 마나님이 누린 세사, 그런 세상
살게 되라고 이런 투장도 다 허능 거 아나요?"
"핫다, 자네 참 무선 사람이네."
"누구는 용해 빠져 갖꼬."
"헤기는 나쁠 거이사 없겄제. 혼백 되야 합방을 해도 음양이 만났잉게 내우 합
장헌 거이나 머 달를 것도 없고, 생각허기 나름일 거이여."
"그렇당게요. 나는 재미가 나 죽겄소. 응골지게 그런 자리가 날라고 그렇게 애
가 말르게 지달렀등게비여."
"어차피 도적질?"
만동이는 백단이의 말을 되뇌었다.
그리여. 어차피 의지헐 빽다구 못 타고난 설움으로 한세상 스산허게 살다 간
인생이 원통해서, 좌청룡 우백호, 실허고 아늑헌 무릎 빽다구 속으로 들으가 자
리잡고 싶었던 것이닝게, 헐라먼 큰 도적질허제, 기왕. 아조 그 음기끄장.
그러서요, 아부지 거그서 좋은 아들 하나 낳으시오.
실허고 좋은 놈으로, 양반 중의 양반이요, 천골 중의 천골인, 두 유골이 서로
만나 양반도 없고 천골도 없는 합방을 허시고, 양반도 천골도 다 뛰어넘는 걸물
아들 하나만 낳으시오.
부디 그 아들 음덕을 우리한테 끼쳐 주시오. 아부지.
"나이도 서로 비젓 안허요? 두 냥반이. 글체?"
"그렁가?"
"거그다가 그 마나님은 한펭상에 단 사흘간 꽃각시 때만 서방님을 뫼세 보고
일생에 혼자 사신 냥반이라 이승의 독수공방이 이가 시리고 뼈가 시려서도 인자
는 지긋지긋헐 것이요. 혼백이라도 독수공방은 마다헐 거이라고오. 안 그래도 무
주공산 혼자 누워 적막헌디, 밤이먼 여시짖고 늑대 울어, 달 뜨먼 더 무선디, 아
부님이 동무허시먼 오직이나 든든허시겄소? 무덤 속이라도 따숩제."
백단이가 느닷없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쿡 숙이며 킥킥 웃었다.
"왜 웃어. 부정타게."
"안 우습소? 그 가문에, 그 서슬에, 오직이나 고르고 골라 맹당 자리 기가 맥
히게 써서, 옆구리 띳기고 혼백 뺏기고, 명당 기운도 돌리고.
거그다가 마나님끄장 다 뺏기고. 이게 보쌈이제, 혼백 보쌈. 그런지도 모르고는
온갖 위엄 다 부림서, 내노라아, 하는 양이 눈에 뵈야 시방부텀 우숴 죽겄소."
킬 킬 킬.
"저 방정떠는 거이 똑 먼 일 나게 생겼네. 불길허게."
"내가 귀신허고 춤후고 노는 년이요. 먼 일은 먼 일이 나. 나먼 내가 풀먼 되
제. 뱅이(방어)허먼 될 것이고, 부적 써서."
순간 백단이의 눈꼬리에서 파란 불빛이 이는 듯하였다.
그것을 본 만동이는 웬일인지 가슴이 씻기어 식으면서
"아부지가 참말로 좋아허실랑가?"
그 무덤 속 청암부인의 삼엄한 뼈다귀 옆이 참으로 편안하고 아늑허실 것인
가, 싶은 생각이 끼쳐들었다.
살아 생전 무부로서 아낙이 주도하는 굿판의 뒤치다거리 변죽으로 허깨비같이
살아온 아비가 그토록 염원하여 유언까지 한 투장을, 어미 점데기보다 더 세고,
더 두렵고, 더 까마득한 양반의 종부, 천하가 어려워하는 청암마님의 서릿발 같
은 뼈 옆에다 해 드리는 것이 과연 자식으로서 잘하는 일일까. 아니면 이제는
영영 그 염원마저도 가질 수 없는 족쇄에다 영원히 짓눌러 묶어 두는 것일까.
아아, 무거워라.
만동이는 가슴이 짓눌리어 어깨를 오그렸다.
그런 속을 들여다볼리 없는 백단이는 민첩하고 재바르게 날짜를 잡고 무덤을
열어 시아비 홍술의 뼈를 추린 뒤에, 정월 대보름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밤, 수습된 유골을 몇 겹이고 몇 겹이고 백지에 싸서, 금방이라도
들고 나갈 수 있게 해 놓았다.
"투장에는 겨울이 차라리 좋아. 인적도 드물고 파묘헌 자리 표도 잘 안 나고.
거그다 눈이나 몇 번 오먼 흔적도 없제. 저쪽 산소도 쓴 지 얼매 안되야서 흙
이 아직 버성버성 헐 거이고, 떼도 인자 막 갖다 입했을거인디 엄동에 무신 떼
가 자리를 잡간디? 조께 뱃게진 디가 있드라도 얼어서 떨어졌능가 헐 팅게 걱정
없고. 설 쇠고 보름 안데 성묘들도 다 한 번식 댕게갔을 거잉게 인자 날 풀릴
때끄장은 발걸음도 뜸헐 거 아니요? 머이든지 아조 맞춘 것맹이로 잘 맞어드요.
보름날 밤에는 온 동네 이우제 동네 삼동네가 다 벅적벅적 달맞이야 불놀이야,
징 치고 꽹과리 치고 뛰니라고 넘 돌아볼 새도 없능게. 자. 인자 갑시다. 앞장
스시오."
백단이는 몸을 일으켰다.
버스럭.
창호지 뭉치가 구겨지는 소리를 내는데, 그 음산한 기운이 후르르 등골을 훑
어 내린다. 어쩌면 그 뭉치 속에서,
떠그럭.
뼈다귀 부딪치는 소리가 났던 것도 같았다.
창호지같이 희게 깔린 마당의 달빛이 사립문을 나서는 두 사람의 검은 그림자
를 소리 없이 빨아들인다.
두 사람은 발소리도 내지 않고 고살으로 나갔다.
"이제 나 죽어 육탈하거든 합장하여 달라."
고 청암부인은 유언했었다.
열여섯에 먼저 가신 어린 신랑 준의의 시신은 이미 오십여 년도 더된 세월의
풍화로 백옥같이 희고 여린 몇 마디 뼈로 들아갔을 터인데, 그보다 아득히 더
멀리 오래도 살아온 자신의 늙은 몸은 노근처럼 질긴 뼈에, 깊이 근 박힌 살을
아직도 입고 있어 차마 지금은 곁에 갈 수 없으니.
앞으로도 삼 년만 더 기다려 육탈하고, 무거운 살, 겨운 살을 다 벗은 뼈만 남
아 씻기워져 그의 곁으로 가리라.
살아서는 유명이 달라 명부의 그림자를 좇아갈 수 없었으나, 이제 죽어 가벼
운 혼백이 되었는데도 바로 가서 만나지는 못하고, 아직도 더 기다릴 일 남아서,
가슴에 맺힌 애를 다 삭히고 썩이어 온전히 씻어 내고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사람.
이승에서 만났던 단 사흘의 인연으로 한세상을 다하여, 오직 그가 남긴 시간
을 살고, 죽어서도 한 삼 년은 더 기다려야 갈 수 있는 이 사람의 그 무엇이 그
토록 컸던 것일까.
청암부인은 이승을 벗어 놓고 저승으로 가면서, 이 어린 신랑 준의가 써서 보
낸 달필의 혼서지를 신발로 만들어 신고 갔다.
時維孟春(시유맹춘)
尊體百福(존체백복) 僕之長子俊儀(복지장자준의) 年旣長成(연기장성)
未有沆麗伏蒙(미유항려복몽)
尊玆(존자) 許以(허이) 令愛(영애) 항室(항실) 玆有先人之禮(자유선인지례)
謹行納幣之儀(근행납폐지의) 不備伏惟(불비복유)
尊照(존조) 謹拜(근배) 上狀(상장)
全州後人(전주후인)李奉宇(이봉우)再拜(재배)
때는 한창 봄이 무르익은 계절이온데 존체 만복하십니까.
저의 장자 준의가 이제 장성하여 배필이 아직 없더니, 어르신께서 높이 사랑
하심을 입사와 귀한 따님으로 아내를 삼게 해 주시매, 예전부터 지켜 내려오는
조상의 예에 따라, 두루 갖추지 못하였으나 삼가 납폐하는 의식을 행하오니 살
펴 주시옵소서.
전주 이씨 이봉우 삼가 절함
길이로는 한 자가 조금 더 되고 폭으로는 두 자가 조금 못되는 이 간지는, 그
러니까 함 크기만한 것이었다.
두꺼운 백지를 아홉 칸으로 접어 양편을 한 칸씩 비우고, 가운데 일곱 칸에다
먹빛도 선연하게 한 획 한 획 정성껏 써내려 간 그 혼서지는, 혼주인 신랑의 부
친이 신부의 부친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그럴 만한 형편이 못되는 경우에는 할
수 없지만, 대개는 혼인 당사자인 신랑이 직접 글씨를 썼으니, 이는 그 자신 어
느덧 장성하여 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엄숙한 순간에, 스스로 붓을 들어 백
지에 먹을 직을 때,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을 실감케 하기도 했지만.
또 하나는 낭재의 필재가 이만하다는 것을 신부 쪽 가문에 드러내 선보이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인 혼주가 엄연히 계셔도 으레 혼서지는 신랑이
쓰도록 했던 것이다.
홍지에 싸 청사 동심결을 맺은 청색 비단 치마감을, 청색 종이에 싸서 홍색
명주 타래실로 동심결을 맺은 붉은 비단 치마감과 함께 검은색 비단 겹보에 소
중히 싸서, 함 속에 곱게 넣어 보내온 이 혼서지는 혼인하기 전에 벌써 신부댁
으로 넘어가 온 문중 대소가가 들러앉은 가운데 읽혀지고, 신랑자리 됨됨이를
평가받았다.
그리고는 일생 동안, 한 지아비의 아내 되는 여인의 생애를 다할 때까지 안방
의 가장 깊숙한 곳에 정결하게 보관되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은 결코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 여인이 이승에서 가질 수 있는 제일 큰 문서였다.
운명의 약정서.
그러다가 훗날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갈 때, 이승에서 받은 이 약정의 문
서를 신발로 만들어 신고 여인은 먼 길을 떠나는 것이다.
청암부인은 이 혼서지 신발을 마치 저승의 강물 위에 뜬 반야용선처럼 신고서
무거운 이승을 가볍게 버리고 홀연히 갔다.
살아 생전 못다 본 신랑의 고운 모습이 다만 글시 몇 점으로 문신된 혼서지의
육필을 신고, 그 손 닿은 글씨의 체온으로 저승가는 시린 발을 감싸 주는 묵혼
을 신고.
그 혼인에 입었던 원삼에 족두리 쓰고.
이제는 썩으면 된다.
이제는 한세상도 다 기다렸으니 한 삼 년만 좋이 더 기다려 썩기만 하면. 그
러면 만날 수 있으리. 혼서지의 문서를 증빙으로 간직한 채.
부인이 홀로 누워 오직 육탈을 기다리고 있는 그 무덤의 옆구리가 아까부터
조금씩 헐리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그러나 민첩하게.
어느새 팔이 하나 그대로 들어갈 만큼.
그 옆구리에 납작 붙어 호미로 봉분의 흙을 긁어 내고 있는 만동이와 백단이
의 이마에는 검은 땀이 진액같이 배어 나오고, 두 손에는 날카롭게 발톱이 서
있었다.
괴괴한 이씨 문중 도선산 아래 종산 중천에는 오직 얼음같이 차고 시린 정월
대보름 푸른 달만이 질린 듯 떠 있을 뿐, 우뚝우뚝 서 있는 호석과 비석들말고
는 아무도 이들을 보는 이 없었다.
몇 백 년 전 이곳에 낙남하시어 처음으로 마을을 세우신 입향조 이래, 대대로
세거하며 학문을 닦고 덕망을 드러내, 나라에 그 아름다운 이름을 의롭게 떨친
가문의 조상들이, 이제는 한낱 빗돌이 되어, 다만 돌 하나로 서서, 질린 달빛 아
래 후손의 무덤 옆구리 헐리는 구멍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泥而不滓(니이부재) 玉豈火 (옥기화삭)
진흙 속에서도 더럽혀지지 않는데, 그 옥을 불꽃이 어이 녹이리.
라 새겨져 있는 비문의 일절이 소슬하게 드러나 비석이며
有明朝鮮國(유명조선국) 資憲大夫(자헌대부) 知敦寧府事(지돈녕부사)
李公(이공) 神道碑銘(신도비명)
그리고 그 비석의 뒷면에 적혀 있는 그리운 문자들은
"공으로부터 거슬러 올라 사 대에서 세 분의 정승의 났으니 공은 본디 겸허한
데가 또 가문이 융성한 때문에 그 마음은 더욱 벼슬에 나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아경(참판의 별칭)의 열에서 의직을 원하여 절라부백(전라관찰사)이 되었
으나, 얼마 후 그만두고 돌아와 향리에서 여생을 보낸 지 십여 년이 되었다. 금
상(임금)이 자헌의 품계를 특별히 더하여 형조판서를 제수하자 공은 받지 않고
상소하여 사양하니, 비답한 말씀이 특별히 많았고 공을 부르는 전지가 잇달아
고향으로 내려왔다.
는 말씀을 적고 있다.
청빈하고 용모가 아름다워 보는 이에게 감화를 주며, 그 행실이 단정하고 학
문이 높았던 그 선조의 한평생 살아온 흔적이, 한 집안은 물론이요, 향리와 나라
에 빛나 가히 훗날의 후손에게 본이 되었던 조상.
高年長德(고년장덕:높은 나이 훌륭한)
今名永垂(금명영수:오늘의 명성 길이 드리워)
公自能人(공자능인:공은 절로오래 전할텐데)
何事乎碑(하사호비:빗돌이 무슨상관있으리)
기라성같이 기둥같이 우뚝우뚝 서 있는 비석들과 이를 보호하여 시립하고 서
있는 호석들의 발치에, 이 조상의 후손이 되어 가문에 들어와 평생토록 종가를
지킨 종부 청암부인의 동그만 무덤이 품에 안긴 듯 누워 있으나.
그 의연한 위용의 즐비함은 이 무덤 하나를 지켜 주지 못하고 있었다. 향기로
운 이름이 천년을 가고 만년을 간다 해도, 이미 죽어 혼백이 된 조상의 비석은
그저 무심한 돌덩어리 하나에 불과한 것인가.
대낮보다 더 어두울 것도 없는 달빛 휘영청한 대보름 밤에. 후손의 종부 무덤
이 헐리는 것도. 그 무덤 속에 천골 무당 무부의 뼈다귀가 쑤셔 넣어지는 것도.
그리고 다시 그 무덤이 메워지는 것도 다 한눈에 보면서. 숨소리 하나도 내지
않았다. 신도비의 글자들은 처음에 새겨질 때는 한 자 한 획이 모두. 구 조상의
살아 생전 업적과 덕망을 소중하게 담아서. 그분의 한 생애가 눈감은 그 자리에
또렷 또렷이 눈뜨고 다시 태어나. 후손에게 그 안광을 전하였으련만. 지금은 오
직 달빛이 스민 음각의 그림자만을 묵묵히 머금고 있을 뿐이니. 그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기게끔 살아오신 선조의 음덕은 어디로 가고. 이처럼 무참한 능욕에도
오직 침묵하고 계신다.
조상님 모시자아 조상님을 모시자.
선대 선천아 조상님네 조상을 모시자아
후자 후천은 만조상님네 어느 조상님이 아니 오시리이
남 사는 세상을 못다 씨고 못다 입고 못다 살고 가오신 님
이제 가시던 만조상님네 이 굿을 준다는 말씀을 듣고오
시름없이도 오셨다가아 이 굿 주신다는 말씀으을 듣고
자던 조상님 잠을 깨워 졸던 조상님 옆을 질러서
썩은 갓을 다 털어 씨고 썩은 도포르을 다 털어 이입고오
조상은 가 열 대 조상이요 봉사는 가 사 대 봉사인데
어느 조상님이 아니 오시리이 시우 식상으로 돌아를 오시요오
혼이라도 돌아오소. 넋이라도 돌아오소
혼이 오며는 온 줄을 아나아 넋이 오며는 온 줄을 아나
내가 왔다 내가 왔네에 할아바이 조상님네
불쌍한 내 자손 솔씨 받어 알뜰히 살뜰히 키워나 가지고
마른 자리는 네가 나 밟고 진 자리는 네가 나 밟고오
당골네 백단이는 무서움을 이기려고 조상굿 구슬픈 가락을 웅얼엉얼 읊조리
고. 무부 만동이는 속으로 시나위 반주를 한다. 이 굿가락은 묵묵히 장승처럼 서
있는 비석과 호석들을 음산하게 휘감으며 그 뼛속으로 파고 스며든다. 능욕.
"섞어 부러. 인자는 죽었는디 어쩔 거이여. 산 사램이 더 무섭제. 죽은 혼백 안
무섭다. 이렇게 섞어 부러야여. 진작에 이런 시상이 우리 아부님 살어 생전에 왔
어얀디. 요렇게 한 살로 섞는 시상이."
백단이는 끼치는 두려움을 덜어 내려는 듯 숨소리로 말했다.
"압씨는 오늘 밤이 첫날밤이네."
그러나 만동이는 무겁게 입을 다물고 오히려 그러는 백단이를 못마땅하게 흘
겨보았다. 그는 아무리 애써도 와들와들 떨리는 손을 가누기 어려웠다. 드디어
구멍이 뚫리며 옆구리가 헐리는 청암부인의 무덤에 흥술이 뼈보다 검은 바람이
먼저 스며. 휘익. 들어간다.
바로 이때. 어금니를 깊이 사려 물고. 뱃속까지 숨을 들이마신 춘복이가 주먹
을 힘주어 쥐고는 뚜벅 뚜벅. 결코 서두리지 않으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에 땀
이 배도록 절박하게 어느결에 도선산을 한 바퀴 돌아. 매안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었다. 대보름 달밤의 흥에 겨워 풍물 치는 소리와 달집 사르는 불꽃이며 온마
을 매캐하게 감고 있는 연기들이 춘복이한테는 마침 좋았다. 아무도 그가 이 한
밤중에 주먹을 부르쥐고 매안의 원뜸으로 올라가는 것을 눈여겨보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달빛은 얼음가루 이내처럼 푸른 듯. 흰 듯. 부우연
듯. 달집 타는 연기에 자우룩히 섞여들어 춘복이 발밑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그
달빛은 구불구불 오르는 고샅길에 시린 물빛으로 흐른다. 그러더니 그만 발 아
래 물 소리가 굽이를 이루며 물살을 뒤채. 춘복이 발을 덮친다. 춘복이는 자칫
뒤우뚱 물 속으로 빠질세라 한 발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강실이 이름을 부르며
다른 발을 놓는다. 그네의 이름은 소용돌이 물살 속에 박힌 징검다리 돌멩이였
다. 이 강물의 이쪽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는 물살의 희오리 한가운데 숨은
듯 드러난 듯 그 이름이 들을 내밀고 춘복이는 그 등을 밟는다. 밟힌 등에 검은
발자국이 찍힌다. 달빛이 묻어나 버린 발자국이 동굴처럼 거멓게 입을 벌린다.
작은아씨. 나오시오. 제발 이리 나오시오. 내손 좀 잡어 주시오. 나 안 떠내리가
게. 제발.
그는 정말로 허우적이듯 두 팔을 벋는다. 발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것이다. 마음
이 다급해진다. 이윽고 뜬걸음에 오류골댁 살구나무 검은 둥치 이만큼 당도한
그는. 거짓말처럼 눈앞에 흰 달빛을 받으며 흰 그림자같이. 사립문 곁에 붙박인
듯 서서 하염없이 고샅을 내다보고 있는 강실이를 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뜻밖
에도 그네가 밖에 나와 서 있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아니 이거이 헛거이냐. 참
말이냐. 내가 가새 눌링 거 아니까? 어쩐 일이여. 이날 이때 문밖에는 시암질에
도 안 나간다는 작은 아씨가 어쩌자고 이 밤중에 사립문ㅇ에 나와 섰이까. 달마
중을 헐라고 나와 섰능 거잉가. 아디 먼 디로는 못 나강게? 그런디 시방 집안에
는 아무도 없능게빈디. 저렇게 씻은 디끼 죄용헌거이 인기척도 없고 헤기는 오
류골양반 동산으로 달 맞으로 가고 어무이는 다리 밟으로 모다 나갔으먼 그렇기
도 허겄제. 아이고. 이럴 수가 있이까. 달님이 내 기도를 들어줬능게비다. 내가
그렇게도 간절허게 빈 것을. 오냐 알었다. 달님이 들어주셌능게비다. 그렇지 않
고서야. 그런디 작은아씨는 왜 저러고 넋이 다 나간 사람맹이로 저러고 섰이까
잉. 문간에가.
아하. 누구를 지달리능게비구나. 안 오는 사람. 행이나 오능가 허고. 멩질날잉
게. 정월 대보름 멩질날잉게. 어디 먼 디 타관으 갔다가도 멩질에는 돌아옹게.
나는 누구 지달리는지 안다. 아는디. 안 올 거이여. 안 오제. 아먼. 애가 녹게 지
달러도. 살어서 귀신이 다 되게 지달러도.
작은아씨. 그 사람은 안 오요. 안 올 거이요.
이미 떠나 분 사람 아니요오. 멋 헐라고 그렇게 지달리시오.
그 대신에 지가 왔습니다. 작은아씨.
저요. 춘복이.
나는 달을 봤어라우. 달을 봤지요.
정월 대보름 둥근 달을 맨 몬야. 내가 맨 몬야 보고. 나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작은아씨. 작은아씨가 내 사람 되게 해 도라고. 그 말이 맞그만요. 달 보먼 소원
이 이뤄지다드니.
작은아씨. 그 달은 무서웠지라우. 빠지먼 죽을 것 같고. 그거이 덮치먼 죽을
것 같고. 거그 빨려들먼 죽을 것 같었습니다.
그런디. 나는 그 달을 빨어 생켰소.
내 이 한 몸뗑이. 내 뱃속으다가 그 달을 다아. 다아 빨어딜였소.
마지막 한 방울끄장 그 달빛을 그 무섭고 짚은 소용돌이. 누우런 황금 붉덕물
을 그 달빛을 나는 다 빨어 생ㅋ소. 흡월을 했소. 끝내는 그 달뎅이를 통째로.
그래 달이 내 것 되야 부렀소. 달이 내가 되고 내가 달이 되야 부렀소. 작은아
씨 같은 그 달이. 내 속으로 밀물져서 들으와 발 등에 차고. 발목에 차고. 물팍
끄장 차고. 뱃속으로. 모가지로. 가심으로. 머리 꼭대기 정지백이로 그득히 차 올
랐소. 어쩔 거이요. 작은아씨. 내 온몸에 작은아씨가 숨도 못 쉬게 차 올라서. 이
몸뗑이 서러운 육신이 저 보름 달맹이로 목메이게 부풀어서. 내가. 작은아씨를
배 부렀는디. 인자는 어쩔 거이요. 낳야제. 낳야지라우. 나는 이렇게 온몸에 작은
아씨를 달같이 벴응게. 작은아씨는 인자 내 자식 하나 낳아 주시오. 그거이 내
소원이요. 달 보고 빈 소원이요.
아아. 달 같은 작은아씨.
작은아씨. 내 사람 되시오. 나도 새 세상 살고 잡소.
작은아씨도 인자 나랑 새 세상 한 번 낳고 살어 보십시다.
나는 선산에도 댕게왔소.
다아 댕게왔소.
이보시오. 작은아씨.
춘복이는 얼른 담벽 쪽으로 몸을 붙이며 숨을 죽이었다.
그리고 강실이를 향하여 눈빛을 모았다.
마치 꿈을 구다 나온 사람처럼 허망하고 처연한 모습으로. 성에가 허옇게 어
린 저고리의 흰 옷고름 하나 나부끼지 않는 앞섶을 두 손으로 붙움켜 누른 채.
고개를 들어 검푸른 겨울 밤 하늘의 깊고도 깊은 물 속 한가운데 그 무슨 시린
소원처럼 얼음 박힌 달을 우러르며 오래오래 서 있는 강실이. 그네는 윤기 잃어
여윈 머리 위에 달무리를 에이도록 푸르게 두르고 서 있었다.
춘복이는 그네의 희고 푸른 모습을 조금씩조금씩 깊은 숨으로 빨아 들이기 시
작하였다. 마치 아까 거멍굴 무산의 동산 날망 바윗돌 위에 서서. 두 팔을 벌리
어 가슴을 내밀고
"달 봤다아."
함성을 지르며 있는 힘을 다하여 두려운 달을 들이삼키던 그때처럼.
무서운 힘으로 강실이를 흡인하는 춘복이 기운에 삼투되는 것일까. 강실이는
멀리서 보아도 완연 창백해지면서 백지장보다 더 얇고 희게 바래어. 펄럭. 그대
로 쓰러질 것만 같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춘복이는 조금도 눈빛을 늦추지 않고. 제 핏줄의 끝 끝에까지 강실이가 빨려
들어 차 오르도록 숨을 들이켠다. 흡월하듯이.
아아. 무엇 하러 달은 저리 밝은가.
5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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