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73 1992. 10. 1 (목)
SB-392 공시운전.
MAIN ENGINE TROUBLE.
시운전 중에 나는 DOS 공부를 한다.
기침, 어제는 다소 수그러드는 것 같더니 저녁부터 다시 기승, 간 밤에는 잠을 설칠만큼 괴롭힌다.
혓바늘과 오른 손목의 통증과.
가지가지가 창궐하여 육신을 흔들어댄다.
할머니 기일, 퇴근하여 어머니께 갔으나 어머니는 뵙지 못하고.
16674 1992. 10. 2 (금)
KK곤 에게 차를 몰게하여 밀리고 밀리는 도심을 거쳐 안전관리공단에 가서 위험기기류 정기검사 검사필증 38매를 수령한다.
돌아오면서 해운대로 차를 몰게 한다.
한적한 동백섬, 병아리같은 노란 옷을 입은 유치원 꼬마들 한무리가 정말 병아리 떼들처럼 재재거린다.
멀리 너른 바다...
오후, 방지시설 공사완료.
이제 공사대금 지불이 남아있다.
할머니 기일.
퇴근하여 어머니께.
어머니, 형과 형수, 나와 J, 아이들 넷, 가야숙모와 D.은이.
할머니 돌아가신지 어언 10년이 되었는가.
소주마시고 돌아와서 英이가 산 레코드 듣는다.
정경화가 연주하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16675 1992. 10. 3 (토)
이문구 '매월당 김시습'
청풍명월, 옛날 선비가 살아가는 자세.
생리화된 유교적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마음을 비운 한 시인의 삶의 양식은...
자족함, 에스프리.
연휴 전일, 퇴근하여 목욕하고 TV 앞에 앉는다.
SBS 연속극 '겨울새'
그 핏줄 섞이지 않은 남매의 운명적인 사랑이 애닯기 그지없다.
이 연속극의 품위는 곁가지를 모두 처버리고, 마주보는 도운과 영은의 눈빛만으로 영상을 이끌어 갈 때 살아날 것이다.
히스크리프와 캐시처럼....
16676 1992. 10. 4 (일)
하루 종일 俊이 방에서 P/C 앞에 앉아 있다.
英이는 동아리 창립기념일이라고 학교로 달려가고, 오전중 내 옆에 앉아서 DOS를 함께 익히던 俊이는 J석 이의 전화를 받고서 영화보러 나가고, J는 TV 앞에 죽치고 앉아있고.
기침- 이 괴물은 좀처럼 죽지 않는다.
지난 밤에도 2시경 쏟아져 나오더니 근 30분을 들들 볶아대어, 무슨 요식행사를 치루듯 백여번의 기침을 쏟아내고서야 슬며시 가라앉는다.
키 보드를 두드려대는 손가락과 손목의 연속되는 움직임때문인지 오른 팔의 통증은 더하다.
이런 통증을 무어라 해야 할런지.
저리다는 건가, 신경통.
근육통이라는게 이런건가.
이제 몸뚱이 여기저기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어머니, 어머니는 칠십넷인데.
16677 1992. 10. 5 (월)
고요한 기도중에 어떤 말씀을 듣는다.
주님이 하나의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기침- 호흡으로 다스려라.
새벽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기침에는 밤새 산소의 공급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수면중의 내 호흡법에 문제가 있어서, 잠에서 깨어나 갑자기 많은 양의 산소가 심장으로 밀려 들어오면 그만 심장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다.
코로 들이쉬는 공기는 심장으로, 입으로 들이쉬는 공기는 위장으로 간다.
그러므로 기도로 들이쉬고 식도로 배출하여 심호흡을 자주 한다. 물론 복식호흡.
J가 들려주는 것에서도 이를 느낄수 있는데, 나는 수면중에 심하게 코를 골다가도 갑자기 숨이 끊긴채 아무런 숨을 쉬지 않는다는데 때로 J는 저렇게 숨을 쉬지 않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구 흔들어 볼 정도란다.
호흡으로 다스려라.
베란다 창문을 열고 오랜시간 찬찬히 숨을 다스려 호흡을 한다.
과연, 새벽 깨어난 심장의 경련은 없다.
기도.
16678 1992. 10. 6 (화)
신기하게도 기침이 잠자다.
한의원에가서 진맥하고 한약을 지어 먹을 생각을 한 것이 바로 그제였는데.
기침은 이제 나를 희롱하지 못한다.
나는 충분하게 이겨낼수 있다.
이것은 내가 궁구하여 논리적으로 얻은 지혜가 아니다.
주님께서 찰라적으로 번쩍 깨닫게 하여 주셨다.
사무실에서도 조심스런 호흡법 활용.
한일환경 공사대금 지출 품의 득하여 경리부로 넘기다.
산업은행의 시설자금 처리가 빨라 업체에 득이 있기를 바라는 이것은 무언가 국물을 기다리는 내 마음의 간교함은 혹 아닐까.
아니지 않다.
俊이는 P/C 앞에 앉아서 새벽 1시 넘도록 게임에 열중한다.
俊이 방에서 P/C를 철수시켜야 겠다.
16679 1992. 10. 7 (수)
공업진흥청에서의 공문.
자회사에 대한 QM 추진본부 설립의 독촉.
우리 회사 따위가 100대 모기업에 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공업진흥청에 전화하여 알아보니, 조선공업협회에서 회의시 누군가가 참석하여 자료를 제출하여 대선조선이 선정된 것이라고.
장관 결재까지 득하여 이제 어쩔수 없다는 답변이다.
서울사무소 동차장에게 전화하니 딱 잡아뗀다.
사장을 통한 서울사무소 P상무의 지시로 자신이 참석하였으면서도, 웃기는 친구다.
간밤, 무언가 소슬한 추위에 2시에 깨어난다.
한겹의 이불로는 밤의 찬공기가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몇겹의 이불을 덮어서 묵직한 느낌의 따뜻함 속에 들어가야 포근함을 느끼는 체질이다.
군대에서도 모포 위에다 무거운 메트리스를 덮고 잤었으니까.
16680 1992. 10. 8 (목)
아주 단순한 사안을 복잡하게 만들고, 또 때로는 복잡한 사안을 간단하게 처리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회사.
공진청의 QM 모기업 추진본부건도 그렇다.
가장 그 내용을 잘아는 실무자인 내 휠링이 그렇다면 내가 권하는 방향으로 P상무는 따라 주어야 한다.
이 사안은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처리해 버리면 되는 건이다.
J 욱이엄마 문병갔다가 나보다 늦게 돌아오다.
낮에 목욕탕 갔다가 미끄러져서 두 무릎에는 시퍼런 멍이 들고 등허리에도 파스를 붙인 J.
16681 1992. 10. 9 (금)
우리 회사는 QM 모기업으로서의 요건이 아님의 완곡한 표현과 자료를 첨부하여 공업진흥청에 발송할 공문 기안하여 결재 올리다.
SB-392 Re-Sea Trial.
그러나 메인엔진의 트라블은 여전하다.
시운전 마친후 현대엔진 팀과 장시간 회의하였으나 별무 소용,연료유 계통의 이상에 대한 원인도 찾지 못하고 있다.
프로펠러와의 관계 영향을 유추해볼 뿐이다.
俊의 방에서 P/C를 철수하여 안방에 차려 놓는다.
J는 투덜거리지만 어쩔수 없다.
16682 1992. 10. 10 (토)
SB-392 선주측에서는 선박의 인도를 거부, 인도할 경우 선가를 깎자고 할 작전인 듯.
현대엔진 측에서도 전적인 책임은 지려하지 않는다.
한국의 엔진메이커, 기술력의 한계.
LD찬씨는 3백만원 공제금 빌리는데 내 명의로 보증을 서준 것에 대하여 귀찮도록 고마움을 연발한다.
롯데 야구팀에 열광하는 부산 촌놈들.
롯데 자이안트에 쏟아붓는 부산사람들의 열성적 관심의 근거는 무언지, 나는 때로 한심한 생각이 든다.
롯데라는 재벌의 편의적인 연고지가 도무지 부산사람들에게 그토록 큰 의미가 있는건지 도통 모르겠다.
푸른 그라운드에서 장쾌한 게임을 즐기는 것은 별도이지만, 나같은 옹졸이는 그 재미도 별로 모르겠고.
16683 1992. 10. 11 (일)
일상을 일상 그대로 감사할 일.
일상에다가 어떤 의미나 철학을 원용하여 장식할 일이 아니다.
일상을 일상 그대로 감사하는 것이 창조주께 찬양을 바치는 자세이다.
토요일, 퇴근하여 회사를 나선다.
남포동- 넌쳐나는 인파 인파와 넘쳐나는 상품 상품들.
그 인파 속에는 후줄근한 입성을 입은 쏘련사람들이 섞여있다.
자본주의의 현란한 역동성에 어딘가 주눅이 들어보이는듯한 그들- 이념, 인간의 이성으로 창출코자 하였던 역사발전의 변증 따위는 이제 추악한 자본주의의 이기의 집대성 앞에 기가 죽고 말았으니.
16684 1992. 10. 12 (월)
크리스찬인 옆집 아주머니가 J에게 읽어보라고 준 조그만 책.
'낮은 울타리'
기독교인들이 발행하는 잡지.
제목처럼 깨끗하고 소박하고 단정한 글발들이 담겨있다.
일요일 오후, 롯데와 빙그레의 코리안 시리즈 3차전 경기를 환호하며 시청한다.
나에 비하면 야구등 스포츠에 대하여 적극적인 취미와 지식을 갖고 있는 J 에게 부화뇌동 되는 것 같지만, 실은 나야말로 그런 분위기에 파묻히면 가장 날뛰는 축일 것이다.
이런 감정적인 속성을 잘 알고있는 자아는 섯뿔리 어떤 대상에 대하여 자의적으로 好, 不好의 선을 엄격하게 긋는 것을 삼가야 한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제법 품격이 느껴지는 포맷의 프로다.
16685 1992. 10. 13 (화)
SB-392 인도를 앞두고 시끌벅적.
선주도 DIRTY하고, 조선소도 인색하다.
밀고 당기다가 어젯밤 일본으로 출항하였을 것.
범사에 감사함.
이 말씀처럼 범용한 기쁨을 주는 유익한 말씀은 드물 것이다.
주어진 순간, 주어진 상황- 비록 그것이 불행한 것일지라도 감사할수 있다는 것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핵일 것.
그리고 가장 어려운 명제.
코리아 시리즈 4차전.
롯데의 승리, 열광하는 사람들.
산업사회의 스트레스를 이런 곳에서 푸는 것은 어쩌면 현명함이다.
16686 1992. 10. 14 (수)
'새롭게 하소서'
고교 교사로 근무하던중 돌연 병마가 찾아온다.
전신마비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찾아낸 예수 그리스도.
그 절망의 늪에서 비로소 비추이는 빛.
그는 할렐루야, 아멘이 호흡처럼 숨쉬어지는 기쁨으로 살고 있다.
자신의 한계, 실존의 끄트머리, 스스로의 죽음 속에서 비로소 비추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퇴근하여 박세동과 술 마신다.
설강석 대리의 풋내나는 첨단의식.
그것을 나는 코웃음을 처서는 안된다.
英이 요즘 시험중.
俊이는 15,16,17일 시험.
가을.
정국은 어수선하지만 그러나.
내 마음에는 범사에 감사하고 순간을 긍정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다.
16687 1992. 10. 15 (목)
조규용안과 -오른 쪽 눈의 결석이라는 진단과 함께 칼로 찢어서 그것을 단번에 제거하여 준다.
주사도 내복약도 주지않고 점안약과 안연고를 줄뿐으로, 괜찮으면 다시 올 필요도 없단다.
이용석 안과보다 백배나 믿음직스러운 조규룡안과의 의사가 너무 고맙다.
오른 쪽 눈의 불쾌한 그 이물감이 단박에 사라지니까 이토록 시원한 것.
이런 의사라면 신뢰할만 하다.
회사는 호황의 기미.
회의실마다 인도네시아, 홍콩등 선주들 내방하여 회의중.
부서장회의도 연기.
야구, 롯데 우승.
부산사람들의 환호는 대단하다.
요즘 화장실에서 읽는 책 '본 회퍼의 선택'
Are You A Real Christian?
Are You A Real Christian?
Are You A Real Christian?
16688 1992. 10. 16 (금)
퇴근 무렵, 형에게서 전화.
요즈음 아파트 내부 대수리중으로 온통 뜯어 어지러져 놓았다고.
6층 빈집으로 임시 이사가서 생활중인 형네.
그리고 지난 번 세금환불 공돈이라고 여겼던 그 100만원, 서울 珍아빠 연락이 왔는데 돌려 주어야한다고.
그러면 그렇지, 공돈이 그렇게 쉽게 생기나, 어디.
덕분에 컴퓨터는 장만하였으나 난감하기 짝이 없다.
J에게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홍콩 신조선, 착공식과 기공식.
동쪽 바다, 무럭무럭 김이 올라 검은 구름이 일어나서 북구의 어느 숲과 같은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다.
16689 1992. 10.17 (토)
내일이 Sh 씨 회갑이라는 그의 비서격인 HH기 부장으로부터의 전화.
부차장회에서의 무슨 선물을 은근히 요구하는 것이다.
회장을 비롯하여 누구도 선뜻 나서주지 않고 총무인 내게 알아서 하라는 포즈들을 잡는다.
모범사원 20쌍의 부부동반 태국 여행 확정, 그곳에 P상무부부도 인솔자로 끼여있다.
英이는 시험 끝났는데 마지막날 시험은 아주 잘 치렀다고, 俊이는 오늘 시험이 끝난다.
대학입시도 그러고보니 두달여 남았구나.
英이 때문에 노심초사 한 것이 엇그제 같은데.
요즘 학사 실업자는 수두룩하고, 실업고와 전문대학 출신들의 일자리는 넘쳐난다.
이제 화이트 칼라란 앞으로 별 MERIT있는 색깔이 아닌 것인데, 왜들 박터지게 대학을 못가서 안달일까.
그렇지만 나 역시 선비우월주의사상이라는 고정관념도 변할 염을 품지 않는다.
한국적 崇文주의, 전통적인 정서에 기인한 확고한 고정관념.
16690 1992. 10. 18 (일)
Sh 씨의 회갑선물, 금반지를 맞추러 금방에 있는 동안, 그곳에 들르는 인근 장사치들의 오가는 대화내용의 생경함.
모든 대화는 오로지 그것이 돈이 되느냐에 가치가 있을뿐인 그 내용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일상이라니.
필경은 나 역시 장사꾼이 되리라는 한줄기 예감이 있는데 그 얘기들을 듣고 있으려니 돌연 자신이 없어져 버린다.
봉급쟁이에게는 돈 말고도 무언가 동기가 부여되는 요소도 있으며 성취욕구에 따른 보람 같은 것도 있을 수 있는데.
토요일에는 일찍 돌아오기로 철썩같이 약속한 英이는 어두워져서야 돌아온다.
잔소리 하는 부모가 싫어서 일찌거니 제 방문 잠그고 누워버린다.
아마 지금 英이의 꿈은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싶은 어떤 상황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일요일 새벽, J와 고갈산 정상을 오른다.
가을산- 숲냄새, 새소리, 산 속의 산소는 이리도 신선한 것을.
16691 1992. 10. 19 (토)
급속도로 기억능력이 감퇴하고 있다.
오래 된 기억도 아닌 불과 몇초전에 생각하였던 것이 몇초후에는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런 걸 섬망이라고 하는지.
그것을 다시 살려내는 힘은 기억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논리나 주변의 다른 정보나 상황을 한참 더듬어 찾아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느낌이나 감각의 흔적을 더듬어 그것을 유추해내는 방법이다.
이제 기억은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오늘 신문에서 깐디라는 단어를 접하고는, 극히 최근에 어디선가 읽었던- 깐디를 만나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만날수없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기억은 남아있는데 도무지 그가 누구인가는 기억해 낼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내가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거꾸로 더듬어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디트리히 본 회퍼를 찾아내는데는 근 30분이나 걸렸다.
아무 것도 못한채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1692 1992. 10. 20 (화)
自足한다는 것.
이것을 이상스럽게 해석하여 Masturbation으로 해석하는 유모어.
그러나 내게 이 유모어는 촌철살인의 아픔을 주는 우스개다.
상공회의소, 설명회 참석하였다가 도무지 우리 회사는 해당사항이 없음에 중도에 슬며시 빠져나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간다.
P상무를 비롯한 20여쌍의 부부들 한떼거리 태국으로 떠나다.
4박5일의 관광 위락여행.
퇴근하여 LD찬씨와 몇잔의 생맥주.
LD찬씨 집짓는 이야기.
조선소의 현장 경험과 지식이 아주 많은 도움이 되는 듯.
집짓는데도 사조산업의 조상무 스타일로 공무감독을 효과적으로 하였다는 과장섞인 얘기들.정말 집을 한채 지으려면 많은 수고가 필요할 것이다.
장석 하나, 못하나에 리르기까지, 배관이며 배선, 인간공학적인 어레인지등...
빼꼽을 잡고 웃다가도 슬몃 부럽기도 하다.
내 집을 내가 설계하고 감독하여 멋지게 집는 집을 상상한다는 것은 즐겁지만 내게 그런 기회가 올리가 없으니.
여전히 짓누르는 하나의 부담, 보내주어야 할 100만원.
16693 1992. 10. 21 (수)
아침저녁으로 부쩍 쌀쌀한 느낌이지만 한낮에는 20도를 오르내리는 일교차가 심하다.
부서장회의에서는 이번 야유회, 망년회등을 모두 생략하고 모아논 기금에다 조금 더 출자하여 부부 동반으로 연초 연휴에 제주도 관광을 하자는 발의가 있다.
이번 태국관광을 맡은 관광회사에 위임하여 아주 경제적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부차장들에게 그 뜻을 적어 의견을 묻는 회람을 돌린다.
테이프빌려 퇴근하여 J와 감상.
'케이프 피어'
옛날 로버트 미첨과 그레고리 팩이 나왔던 영화의 리메이크.
마팀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 니로,닉 놀테, 제시카 랭 출연.
한 편집광의 집념. 로버트 드 니로는 확실한 연기자다.
새벽기도.
그러나 내 영혼은 정결치 못하다.
16694 1992. 10. 22 (목)
고등학교 친구, 박영식에게서 전화.
그도 큰 아이가 대학들어갔다고.
천진 유치가 가득했던 소년들이 이제들 늙어가고 있다.
언제 만나서 소주잔이나 나누기로.
CT용, KC원 승진 확정, 면목은 섰다.
퇴근하며 J를 불러내서 자갈치 호정횟집에서 생선회를 먹는다.
그리고 媛이네 보낼 100만원등 내 생각하고 있는바 일단을 토로하였는데 J가 진지하게 이를 수렴해 주기를 바랄뿐이다.
가족간의 유대, 우리가 항상 넓은 마음들을 갖자는.
함께 호젓한 동삼동의 바닷길을 걸어 돌아오다.
16695 1992. 10. 23 (금)
소인배의 여가는 어쩔수 없는 소인배의 그것일시 분명하다.
자족의 내용이 고작 쾌락을 좇는 것일 뿐이다.
맥주마시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이나 하고.
16S.기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완의 전성시대, 세익스피어는 희곡을 썼다.
스코틀란드의 황량한 들판, 맥베드.
도바해협의 폭풍우 속 언덕, 리어.
덴마크의 파도, 햄릿.
쇼팽의 엑조틱한 선율, 발라드.
가을아침.
영혼을 기울여 기도.
16696 1992. 10. 24 (토)
디트리히 본 회퍼의 '함께 하는 삶'
그런데 제목을 '본회퍼의 선택'이라 붙이고, 번역한 내용 또한 난삽하다.
이런 식의 번역은 독자에게 원작자를 이해하는데 오류에 빠뜨린다.
이것은 원작자에 대한 모독이다.
그리스도인의 삶, 공동체의 삶, 형제와의 삶, 세속에서의 삶, 혼자의 삶, 기도, 봉사, 묵상.
타인의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것.
본 회퍼는 그리하여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고,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죽어갔다.
형에게서 전화, 珍 아빠에게서 전화왔는데 그 돈은 천천히 보내도 괜찮다고.
16697 1992. 10. 25 (일)
아주 싫은 사람들의 속성.
무리지어 수근수근하는 것, 심통을 숨긴 도전의 포즈.
나 또한 이런 속성 가득한데, 이런 류의 더러움들이 주위에 상처를 입힌다.
직장이라는- 독특한 인간관계, 동료이기도 하고 경쟁자이기도한 이런 관계에서는 이런 더러움에 대하여 무감각하던지, 아니면 이러 것들을 오히려 역이용할줄 아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아, 얼마나 예수의 세계와는 배리적인가.
토요일, 돌아와 英이에게 두시간여 P/C 앞에 앉아서 DOS를 가르친다.
영리한 우리 아이는 잽싸게 이해한다.
일요일 이른 새벽.
늦가을 차거운 새벽 대기 속, 내 방의 공간속에 들어 앉아.
경건에 침잠하여, 야고보서를 읽고, 칼 라너의 논문을 읽고... 기도드린다.
나의 하나님.
사랑, 온유, 벽을 허무는 것.
기도드리고 난 심령에는 미워지는 얼굴 얼굴들이 그닥 미워지지 않게 비추인다.
기도는 사랑의 치유.
그러나 내 기도의 항생제 단위는 아직도 매우 약하다.
16698 1992. 10. 26 (월)
일요일 새벽, 불타는 동녘 놀이 가득한 새벽바다.
J와 태종대에 간다.
기암의 바위 절벽을 내려가 수천년을 그 자리 그대로 지켰을 바위의 살결을 만져본다.
일출을 맞으려고 아마도 외지인인듯한 젊은 남녀들이 동 쪽 수평선을 향하여 삼삼오오 무리지어 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셔 새벽바다와 새벽 숲의 정기를 훔쳐 마시고, 약 1만 5백보의 걸음을 걷고, J와 해장국 한그릇씩 뱃속에 넣고 돌아온다.
목욕하여 가뿐한 몸, 몹씨 바람이 불어대는 동삼중리로 하여 남항국민학교로.
노조 체육대회, 3백여명도 채 되지 않은 인원이 모여 썰렁한 분위기.
위원장 지광혁이 안쓰러워 보인다.
회사로 와서 태국에서 돌아온 P상무 대면하고, P상무 차에 정상무, HH기 부장 함께 타고 다시 체육회장.
김밥 몇조각 집어먹고 1시경 돌아온다.
16699 1992. 10. 27 (화)
날씨 부쩍 서늘해진다.
이제 가을도 저물어 가고 겨울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때로, 가을의 투명한 대기 속에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면, 기러기떼가 무슨 부호처럼 열을 지어 하늘을 가르며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섭리- 철새가 철따라 이동하는 광경에서 절대자의 섭리의 손길을 느끼기도 한다.
허리의 아픔은 봄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英이는 오늘부터 가을 축제.
주점을 한다고.
제 친구들에게 아빠의 술실력을 자랑했으니까 요번에 꼭 한번 오란다.
俊이는 어제 수학시험.
새벽, 잠바 꺼내입고 내 방에 앉아서 갈라디아서 소리내어 읽고.
불끄고 어둠 속에 잠겨 기도드린다.
16700 1992. 10. 28 (수)
년초 부차장 제주도 관광은 남자들만 가기로.
가기로 동의한 20여명의 명단을 관광회사에 통보하다.
2개월 전인데도 항공권 확보가 그토록 어렵다니.
부차장 百口百言의 생각들을 조화시킨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어쩌랴 명색이 총무이니 뛰어줄 밖에.
사장은 부산역부근에 빌딩을 구입하고, 다대포에 광활한 매립지.
우리 사장이라는 사람은 무언가 비젼을 꿈꾸고 있는가.
돈많은 고집쟁이로만 알고 있는데...
10월 28일, 오늘이 바로 종말론자들이 말하던 휴거일이다.
16701 1992. 10. 29 (목)
박완서의 소설, '서있는 여자'
박완서에게는 얘기꾼 친척아주머니같은 느낌이 있다.
욕심과 시기 질투 심술등 관계 속의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 또는 풍속적인 재미.
조선일보에 실린 박완서의 고백.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 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온 범상한 그것들하고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설음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아, 이제 내게는 그런 독서의 몰아적인 도취가 남아 있을까? 그리하여 그 도취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낯섦이 남아있을까?
英이 어제 늦은 밤 술에 취한 목소리의 전화, 화들짝 놀란 J의 성화에 택시를 잡아타고 수산대학으로 달려간다.
12시경 정문 앞에서 술 취한 딸네미를 PICK UP하여 돌아온다.
J의 호들갑이라니.
이제 10월 28일은 지나갔다.
종말론자들의 표정이 너무나 궁금하다.
16702 1992. 10. 30 (금)
휴거를 철썩같이 믿고 애타게 기다리던 그 사람들.
그저 딱하기만 하다고 치부할수 없는 무엇이 있다.
행여나 재림하지 않는 예수를 원망하면서 이제 기독교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것이나 아닌지.
행여나 또다른 광적인 암시로 또다른 계시를 행하여 불나방처럼 불을 향하여 뛰어드는 것이나 아닌지.
또는 성경의 오래참음으로 무장하고, 또 누군가의 합리적인 듯 보이는 도그마를 좇아 다음의 예수 오심을 기약하는 것은 아닌지.
종교는 그렇다.
에리히 프롬이 간파한 것처럼 정신병리적인 요소의 감정모체에 기인하는바가 분명히 있다.
AUTHORITIANISM, 청결예배, 물신숭배, 혹은 근친상간적 충동, 혹은 군거적 순종의 원리나 자유로부터의 도피적인 대상으로서의 종교적 요소가 없다 할수 없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 예수의 오의를 온존재로 이해하고 예수 안에 있는 진정한 신앙인은.
정신분석 따위와 견주는 그따위 성격이 아니다.
어쩌면 바울이 여러번 얘기하였던 세상의 초등학문이란 정신분석따위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6703 1992. 10. 31 (토)
허리 아픔.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 속에 잠겨있어 보았다.
때를 벗기고, 냉온탕에 번갈아 즐기는 개운함은 있어도 허리 아픈데는 별무효과.
뜨거운 온탕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 아주 어두운 상상을 하게 된다.
나는 뜨거운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초열지옥, 나는 초열지옥이 정녕 무섭다.
그러한 초열지옥의 상황에서는 신앙도, 영혼의 고귀함따위도 들어앉아 있을수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한테 그저 빨리 죽여달라고 악을 써댈 뿐일 것.
거기에 무슨 신의식이라는 게 있을 여지가 있단 말인가.
나치의 슈용소에서, 뜨거운 철판위에서 자식을 밟고 올라서는 어머니라는 것, 엘리 위젤의 소설 속의 그 상황이라는 것.
아아, 이런 상상을 하게 되면 인간이란 얼마나 슬픈 존재인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퇴근하면서 KK곤 , PY범 과 술 마시다.
토요일, J는 팔공산행, 英이는 경주 M.T.
주 나의 하나님.
토마스 아캠피스의 하나님,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 프란치스코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