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46 1997. 5. 1 (목)
오전 일찍, LG섭 에게서 전화.
P상무와 셋이서 지리산 가자는 강렬한 권유이다.
저녁무렵에는 PI서 씨에게서 전화, 내가 가는 것을 기정사실로하여 놓고서 준비사항들을 한참 얘기한다. 그 특유의 스타일.
작금의 내게 지리산은.
늘 꿈꾸어 오던 그 웅자에 며칠간 몸을 의탁하는 것이 어찌 이롭지 않으랴.
그러나 경상도 땅에서 천왕봉을 오르고 전라도 땅 노고단까지의 종주라는게 내게 과연 가능할까.
그러나 내게 지리산은 소중한 내 의지의 영토이고 나는 지금 그곳이 필요하다.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J도 쌍수를 들어 환영.
'아웃 브레이크' 에볼라 출혈열 전염병으로 오염된 미국위 한 마을, 영웅과 악인, 더스틴 호프만 주연.
'페어 게임' 신디 크로포트라는 유명한 모델을 염두에 두고 만든 만화를 방불케 한다.
'크라임 타이드' 덴젤 워싱턴과 진 해크만이 주연한 잠수함 얘기. 군대라는 집단사회, 사려깊음과 절대복종이라는 문제의 충돌을 다소 생각게 한다. 그러나 헐리웃 전형의 패턴.
꿈- 대동조선의 난동, 전경들, 최루탄.
18347 1997. 5. 2 (금)
N영 이와 만나 수영 창업박람회가기로 하였으나 그의 처가 송사문제로 가지 못하다.
애써 만날 장소까지 S곤 이가 와서 알려준다.
J와 둘이서 둘러보는 전시장.
지난 번에 못미치는 규모다.
컴퓨터 관련 업종은 역시 제일 많다, 프래카드, 대형포스터제작, 인장제작 시스템등 컴퓨터 그래픽...
과연 이제 컴퓨터가 모든 분야를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내가 매력을 느끼는 분야이지만 초기 투자로 마련한 장비들의 LIFE CYCLE이 염려스럽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모하는 컴퓨터 관련 장비들.
J는 먹는장사 프랜차이스인 '후지우동' 쪽에 J는 관심이 있는 모양.
시식하여본 국물 맛은 그런대로 일품이다.
한솥도시락, 커피전문점, 돼지갈비체인점등과도 상담하다.
그곳에서 뜻밖에 회사의 H이사와 CC웅씨 만나다.
대선에서 안정된 직장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사람들이 창업박람회라니 뜻밖이다.
아, 그들도 무언가 직장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구나.
술은 마시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지리산을 꿈꾸련다.
그 크낙한 산자락.
오래전부터 꿈꾸어 오던 그곳에는 俊이와 가고 싶었는데.
예사 산이 아닌고로 준비도 치밀하여야 한다.
무릎등의 밴드와 파스는 꼭 챙기고.
18348 1997. 5. 3 (토)
어머니에게서 전화.
백수의 오십넘은 아들놈은 노모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
형에게서 전화.
형식화된 우애는 아니련만 오가는 대화는 상투적이다.
이순만에게서 전화.
KMS의 부장직책 취업을 적극 권한다.
J도 아마 이것을 엄청 바라고 있을터, 그러나 내 감정모체는 한사코, 그리고 단호하게 이를거부하고 있다.
봉급쟁이는 싫다. 싫다.
아내여. 이해하라.
비 주룩주룩 내린다.
지리산 그 너른 계곡에도 지금 비가 내릴까.
아, DETAIL에 눈아파하지 말고 떠서 날아라.
조감하라.
그리하여 지리산으로부터 돌아와 이전과는 다른 정신으로 DETAIL을 들여다 보라.
J, 남편 지리산 간다고 이것저것 챙기고, 밑반찬서껀 장만느라 바쁘다.
기도.
18351 1997. 5. 6 (화)
5월3일 오전 10시 40분.
사상 버스터미널에서 PI서 씨, LG섭 만나 세사람은 중산리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의 선반에 짐을 얹는데 팔이 휘청인다.
20KG 이상은 나갈 것 같은 배낭들.
맨몸으로도 아득한 지리산 산행인데 너무 무거운건 아닐까, 산에서의 1KG이란 어깨쭉지를 조이는 힘이 벌써 다른 것인데.
오후 2시경 중산리 도착.
잘 조성된 산중턱의 풍광이지만 아직 지리산 다운 면모는 보여주지 않는다.
주차장으로부터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매표소를 지나자 본격적인 오르기가 시작된다.
칼바위까지는 어찌어찌 올랐다.
그곳에서 부터 시련은 시작되었다.
어깨 죽지를 짓누르는 배낭끈, 배낭을 무슨 업보인양 짊어질수 밖에는 없다.
헐떡이고 헐떡여서 심장은 터져 나갈것만 같다.
노고단까지의 종주라니 어림없는 헛소리로구나.
천왕봉이나 오를수 있으려는지.
헐떡이는 가운데 2박3일의 지리산 종주 계획이 도무지 아득하기만 하다.
나보다 연만한 PI서 씨도, 내 또레의 G섭이도 나를 앞서 씩씩한데.
결국 내 배낭 속 통조림서껀 무거운 것들을 두사람의 배낭 속으로 나누어 진다.
그리고 나는 이를 악물고 한걸음 한걸음 떼어 오른다.
어쨌든 올라야 한다. 다만 올라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법계사 아래의 로타리 산장 초입, 능선에 섰을 때.
그만 나는 탄성을 발한다.
장쾌무비의 광경이 끝도 없이 펼처져 있는 것이었다.
다른 산에서는 결코 맛보지 못할 풍광이다.
산 산 산....
거대한 볼륨의 산 산의 연봉들.
토타리산장에는 마침 연휴의 시작이라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숙박비는 1인당 2천원씩.
그런데 이것은 숙박이 아니라 사뭇 고문과 같은 종류의 잠이다.
한 50명 누으면 될까싶은 양쪽 침상에 200명 넘는 사람들이 들이 찬 것이다.
그야말로 송곳 세울 틈도 없이.
새우잠은 커녕, 포개고 포개어져 칼잠이라는 잠을 자야 하는 것인데 물론 나는 수면을 이룰수 없었다.
자는둥 마는둥, 아직 캄캄한 새벽 밖으로 나선다.
깊은 산속 신령하게 청정한 냉기가 폐부로 몰려 들어온다.
아, 그 순간 돌연 하늘로부터 내 머리위로 보석 무더기가 쏟아져 내린다.
별 별 별.
하늘 가득 박혀 선연하게 빛을 발하는 무수한 별 떨기, 떨기들.
지리산의 별은 정녕 보석이로구나.
조반으로 라면을 끓여 먹은 아침 6시, 세사람은 아직 어둑신한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세차게 펌프질하는 심장.
과부하가 걸린 심장은 산소를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내려다 보이는 소뱍산맥의 준령, 끝간데 없이 평처진 광활한 풍광에 마음은 압도 당하고야 만다.
천왕봉.
해발 1914M의 남한 땅 최고의 봉우리.
그곳에 오르다.
정상에는 천왕이라는 신선은 살고있지 아니하고 세찬 바람만이 살고 있었다.
발아래 아득히 누워있는 산자락들, 끝간데 없이 연이어져 있는 준봉 준봉들.
산맥이란 이런 것이구나.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산맥의 용트림.
풍수를 알듯도 싶다.
천왕봉 정상에 섰으니 이제 1차 목표는 이룬 것.
정상에서 10분쯤 머물다 서쪽을 행하여 본격적인 종주의 행군에 들어간다.
수묵 담채의 원근법, 아득한 하늘 자락에 희미한 실루엣으로 드러내는 봉우리, 그 앞 쪽으로 차례로 차츰 진하게 드러나는 겹겹의 봉우리들, 저것이 이제 넘어야할 봉우리들이다.
당장 눈 앞에는 제석봉(1806 M)이 가로막고 섰다.
정오를 지나 장터목 산장에 도착.
장터바닥처럼 북적이는 그곳에서 겨우 물을 구하여 밥짓는 G섭의 솜씨는 아무리 상찬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다시 출발.
숱한 오르막, 숱한 내리막을 지나면서 스치고 밟고 붙잡은 나무들, 바위들, 돌들...
노박나무, 물푸레나무, 고로쇠나무등의 이름은 팻말이 달려서 알수 있었지만 이름도 모를 침엽수들은...
밥톨만한 흰 산 꽃은 수줍고 길가에 핀 보랏빛 꽃은 앙징맞다.
PI서 씨가 가장 산을 잘 타고, 그 다음이 LG섭 씨, 나는 꼬래비다.
나 때문에 그들의 발결음이 더디다.
PI서 씨는 나이는 많으나 줄곧 산행을 하여 단련된 몸이고, LG섭 이 역시 새벽운동을 거르지 않는 가락이 있는 친구.
나는 고작 3일간 금주의 준비만 갖춘 몸이라고 자위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이나마 따라 붙는다는게 대견하기도 하다.
능선의 너른 개활지에 펼처진 고사목지대를 지난다.
늙어 죽은 나무의 시체인가, 불에 탄 등걸인가.
검은 뼈대를 해골처럼 세우고 늘어섰다.
황량한 풍경화다.
고려장.. 저승 미라..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위의 그림... 이상한 죽음의 미학이 있는 풍경이다.
촛대봉 (1704M) 넘어 세석평전 도착.
그곳 산장에서 다리품을 쉰다.
냄새나는 양말도 갈아신고, 발도 주무르고, 무릎에 파스도 바르고, 한두덩이 배변도하여 한결 컨디션이 좋아진다.
세석평전에는 진분홍의 떨기떨기가 무리를 지어 현란한데 이곳은 찔레꽃의 군거지.
지나온 고사목 지대의 황량함에 비하여 여기는 너무도 화사하다.
다시 출발.
연신봉(1651 M), 칠선봉(1576 M), 덕평봉(1522 M)을 차례로 넘어 벽소령 산장에 도착하였을때는 이미 오후 5시가 넘어섰다.
다리에는 거의 감각이 없어 졌다.
오는 도중 선비샘 부근에서 KMS 의 박이사 만나다.
氣功 의 도사로 하루 한끼의 소량 식사, 주말이면 히말라야를 비롯한 국내외 유명산을 나르듯 다닌다는 사람이다.
당일 아침에 노고단 출발하여 하루만에 천왕봉까지 종주한다는 그.
헉헉거리는 나와 악수를 나누는 그의 투명한 얼굴에는 조금의 숨찬 기색이 없다.
바야흐로 신선의 경지에 들어섰는지도 모를 일이다.
벽소령 산장에는 물이 귀하다.
한참을 내려가 쫄쫄 흐르는 물을 받아다가 밥을 지어 먹는다.
새로 지은 목재 건물이어서 실내에 은은하게 감도는 나무냄새가 좋다.
또 넓직하고 깨끗하여서 전날 로타리산장의 칼잠에 비하면 천상의 잠자리이지만, 웬 사나이의 실로 기막힌 연주 솜씨, 참으로 발군의 코고는 소리에 쉽게 잠을 이룰수가 없다.
깜빡 잠이 들어 꼭두새벽에 잠이 깨었는데 그 잠시의 잠은 깊은 숙면이었을 것이다.
한 밤중에는 느닷없는 뇌성 벽력, 곧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산악 기후의 변화무쌍함이다.
3일째 아침 6시. 벽소령 산장을 출발하다.
연하천 산장까지 단번에 6KM 주파를 목표로 형제봉 (1433) 삼각봉 (1462)를 넘는다.
이제 지리산 종주는 반을 넘어선 것이다.
연하천 산장에서는 물통에 물만을 채우고 곧 출발.
다음 목적지는 뱀사골.
명선봉(1586M) 넘고, 토끼봉(1533M) 넘고 나니 이제는 가파른 내리막길.
도중에 수염이 허이연 80대 노인을 만났는데 정감록을 신봉하여 천하명산을 섭렵하는 할아버지다. 지금 남한의 산신령이 북한으로 넘어갔으니 내년이면 통일이 된단다.
신선이 따로 없다, 홀로 단장 하나 들고 이 힘든 산을 유유자적 다니는 신선.
뱀사골로 가는 가파른 내리막길.
나는 다리가 풀린다.
욕지기가 올라오며 곧 토할 것 같은 상태에 이르고 만다.
패닉.
뱀사골 초입에서 나는 드디어 낙오하고야 만다.
두사람 먼저 내려가 뱀사골에서 밥을 짓는동안 나는 한참을 퍼질러 앉았다.
한시간여 그러고 있다가 겨우 기듯이 몸을 움직인다.
뱀사골에서 두사람과 합류.
뱀사골에의 풍족한 물은 너무나 반갑다.
낯을 씻고 발도 씻는다.
얼음같이 차운 물에 몸을 적시니 한결 살 것 같구나.
이제 G섭의 밥짓는 솜씨는 어느 경지에 들어선 모양이다.
잘된 밥과 김치찌개는 참으로 맛이 있다.
그러나 나의 상태는 썩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속으로는 뱀사골 계곡으로 하산할 생각까지 먹어볼 정도.
허지만 이제 막바지 코스를 남겨놓고 두사람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강박.
이제 무언가 새로히 시작한다는 녀석이 이 만한 극기도 없다면 어쩌랴 하는 강박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뱀사골 계곡으로부터 삼도봉까지의 가파른 오르막.
선두의 PI서 씨는 나를 배려하여 자꾸 쉬어주지만, 그나마 따라붙는 나는 거의 필사적이다.
노고단까지 종주를 완결하겠다는 의지, 무언가 다시 시작하여 성공하여야 겠다는 의지, 좌절은 있을수 없다는 의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할수 없다는 오기가 효험을 발휘하였는지 컨디션은 걷는 중 차츰 호전된다.
다행.
반야봉 오르는 입구 노루목.
노고단에서 뱀사골까지 1일 산행에 나선 여인네들 만나다.
크리스찬인 듯 그녀들의 찬송가 화음이 지리산 속에서는 더욱 경건하고 아름답다.
기력이 완전히 회복된 나도 노루목부터의 평탄한 길을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아내를 떠올린다.
이런 자연 속에서 부부라는 이성끼리의 사랑을 성취하고서 이윽고 나는 죽겠다는 제법 아름다운 사념에도 젖는다.
확실히 경상도 지경의 지리산 산세와 전라도 지경의 지리산 산세는 너무도 다르다.
바위로 이루어진 험준한 경상도, 흙으로 이루어진 평탄한 전라도.
사람들의 품성 또한 환경과 지리에 영향받는 바도 무시할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아골 계곡을 왼쪽으로 하여 임계령지나 이제 종주도 종반에 접어든듯 한데 노고단은 쉽게 닥아오지 않는다.
진달래 만개한 능선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한참 걷자 드디어 노고단 능선에 저만치 보인다.
오후 3시 30분.
노고단 도착.
지리산 종주 성공.
5월 3일 오후 2시, 경남 산청군 중산리 출발하여 5월 5일 오후 3시 30분, 노고단 도착.
2박3일의 여정.
쉰 넘은 중늙은이들로서 2박3일의 지리산 종주의 성공이 스스로들 대견하다.
세사람은 감개의 얼굴로 서로 악수를 나눈다.
노고단은 해발1508M의 고산임에도 코 밑에까지 포장도로가 깔려 있어 휴일의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로 붐빈다.
마침 어린이 날이라 아이들로 북적거리고.
터덜터덜 이제 감각이 사라진 다리를 기계적으로 움직여 한참을 걸어내려와 성삼재 주차장 이른다.
그곳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잘 닦인 포장도로를 굽이굽이 돌아 순식간 평지로 내려서니 그곳이 구례다.
거리 개념은 이토록 다르다.
달리는 차속에서의 1KM는 그야말로 찰나이지만, 어제까지의 1KM는 참 아득하고도 아득한 거리였는데.
10시겨 부산 도착.
사상터미널에서 두사람과 헤어져 직행버스에 파김치의 몸뚱를 싣는다.
J와 딸.
반가운 가족들.
5월5일이 장인 생신, 나는 구례에서 전화만 드렸다.
지리산은 내게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긍정과 포용과 의지라는 불씨 하나 심어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18352 1997. 5. 7 (수)
풀리지 않는 다리, 어깨쭉지.
밀린 신문들 후딱후딱 읽어 치운다.
뉴스, 시종여일 백해무익한 기사들로 가득.
안 읽는다고 무슨 지장이 있으랴마는 그래도 읽지 않으면 불안한 이 속성은....
18354 1997. 5. 9 (금)
가는 빗발 듣는 날씨.
미장원 두어시간 죽치고 앉아서 파마를 하고 모처럼의 목욕탕 가서 목욕.
지리산 다녀온후 차돌처럼 굳은 변은 고통이다.
변비에 특효라는 일요신문의 기사, 우엉 초졸임을 만들어 먹으려 하다.
잠바 걸치고 우산들고 시내로 나선다.
문우당 서점,
내게 책이란 이제 정신을 살찌우는 대상이 아니라 오직 정보를 얻는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안전운전 365일' '엑셀 95' '마이 비지네스' 세권 구입.
18355 1997. 5. 10 (토)
'게임의 법칙'
썩 괜찮게 만든 영화다.
한밤의 카우보이의 분위기도 있다.
'구름위의 산책'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분위기 있는 미국영화.
멕시코쪽 포도농장, 가족이라는 것.
따뜻함이 있는 분위기...
18356 1997. 5. 11 (일)
'돌로레스 클레이븐' 캐시 베이크와 제니퍼 제이슨 리가 모녀로 출연.
스테판 킹의 원작이다.
그는 참 기묘한 작가이다. 서스펜스의 대가이면서 이런 심각한 주제를 이토록 잔잔하게 쓰는 것을 보면.
인고의 여성, 어머니, 지극히 한국적인 어머니상을 캐시 베이츠는 훌륭하게 연기한다.
J와 버스를 타고 송도길을 돌아 옛 혈청소자리 암남공원.
스케일이 조금 작은 태종대 같은 곳이다.
포장되지 않은 숲길과 호젓한 분위기에 J는 외레 태종대보다 더 마음에 들어한다.
김밥이나 싸들고 소주 한병 꿰차고 정자 마루에 퍼질러 앉으면 안성마춤이겠다.
버스타고 돌아오면서 남포동내려 보리밥 한그릇씩 고추장에 썩썩 비벼 먹고 돌아온다.
동아시아 경기대회 개막.
김영삼의 얼굴도 잠깐 보이는데 밝지 못한 모습.
대통령자리는 영광 뿐이 아니다.
18357 1997. 5. 12 (월)
궂은 비 내린다.
그리고 백수에게도 일요일은 일요일이다.
몇 년째 처박아 두었던, 전 일본출장길 사왔던 숄더 카메라 백을 꺼내 둘러멘다.
J와 둘이서 집을 나선다.
켄터키 치킨을 사고, 빵과 소주를 사 가방에 넣고 전날 갔었던 암남공원.
호젓한 숲 속, 스미듯 내리는 빗속의 정취에 잠긴다.
초조함도 진지하게 골몰함도 없는채 그저 호젓함 속에 마음을 맡기는 가시버시,
18360 1997. 5. 15 (목)
석가탄신일.
휴일인지라 J와 英이는 차를 닦는다.
LW규 의 초대.
2공장 앞에서 JM교 의 차를 탄다.
구평동에서 PI서 씨 태우고 송도의 장어구이집.
그곳에 LG섭 이도 나오게 하여.
여섯명 둘러 앉는다.
지리산의 용사 세사람은 지리산 얘기, 그리고 나면 화제는 대선조선 주변의 얘기에 맴돌게 마련.
PI서 씨, 자신이 헌신한 회사생활의 허망함을 토로하며, JM교 등에게 적당하게 일하고 자신의 보신을 항상 염두에 두라는 충고를 한다,
나는 그에게 이제야 철이 드셨다고 해 모두들 껄걸 웃었다.
LW규 씨- 인간성의 폭이 넓어 처세의 폭 또한 그만큼 넓다.
JM교 - 가식없는 친구, 성실하고 그러나 영리하다.
SY철- 한주먹하는 타잎이지만 단순하고 유쾌한 호인.
LG섭 이는 지리산 다녀오고 호되게 앓아서 입술이 부르텄다.
18362 1997. 5. 17 (토)
아리랑 관광호텔 앞에서 N영이 만나다.
사위컴손이라는 프랜차이스, 프랭카드를 컴퓨터로 제작하는 업종이다.
사위컴손이란 '사람을 위하는 컴퓨터의 손'이라는 뜻의 약자.
부산 지사라는 9층 올라가 꽁지머리의 이사라는 사람과 한두어시간 상담.
컴퓨터를 이용한 열전사 방식의 플랭카드.
현수막의 시장성은 넓을 것이지만 그러나 약점 또한 없지 아니하다.
하나의 소재로 하나만 출력할수 있을 뿐이고 컴퓨터의 장점인 복제 제작이 안된다는 점, 또 플래카드의 설치문제는, 장비의 하자나 업그레이드 문제등...
부산진역 부근에서 N영 이와 개고기와 소주, 그리고 노래방.
11시 넘어 돌아오니 H서 플랜트의 JJ호 사장에게서 몇 번이나 전화왔었다는 전갈.
늦은 시각 통화아여 내일 9시 한서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한다.
18363 1997. 5. 18 (일)
부산역 부근 한서플랜트 사무실 오래동안 앉아있다.
JJ호 사장, 내게 무언가 도움을 주려 애쓰는 자세는 무척이나 고맙다, 그리고 대선있을적보다 훨씬 세련되어 있었다.
BT표 고문, 스스럽없이 반갑게 맞아주시는 대선배.
LS권 이사- 수줍은 듯 찬찬한 성품은 여전히 따뜻하다.
대선에서 퇴직한 사람들로 구성된 회사, H서 플랜트.
J해조선 4개월간의 프로젝트.
300톤급 해경 방제선 2척에 대한 DOCCUMENT 업무.
월 250만원의 보수와 중식제공, 차량유지비지급.
J해조선의 K이사 라는 사람이 나를 만나려 작업복을 입은채 진해로부터 달려와 함께 점심을 하며 정사장의 조정으로 일단 결정되다.
각종 증서와 검사기록, 도면등의 서류들을 엔지니어적이면서 관료주의에 맞게 정리하여 처리하는 작업이다.
조선소측에서는 세사람을 내게 붙여주어 업무를 돕게 하는 조건.
검사과장의 경력과 생산관리책임자의 경력이 적임자로 선정된 모양.
이러한 업무내용보다, 초반에 개략적 내용을 들었을때 확실한 태도 표명없이 거절의사를 밝히지 못하여 일은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버렸다.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데 우유부단하게 슬금슬금 끌려 들어가는 내 못난 자의식.
18364 1997. 5. 19 (월)
이제부터 진해까지 차를 몰고 다녀야 할 상황이다.
英이 옆자리 앉히고 J는 뒷좌석 앉고 나는 긴장한 자세로 운전석 앉는다.
구덕 턴널지나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창원 지나 진해에 닿는다.
운전하기에는 도심의 도로보다는 고속도로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진해조선을 찾아 헤매다가 찾지를 못한다.
돌연 J해조선 쪽에는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운전도 운전이지만 다시 얽매이는 남의 업무라는 것이 끔찍하기도 하다.
전날 진작 분명하게 태도 표명을 하여주지 못한채 자승자박 격의 처지, 그리고 그토록 배려하여준 JJ호 사장이나 기대하고 있는 J해 조선측의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는 꼴이 되었다.
오늘 아침 한서플랜트 들러 완곡한 표현으로 이해를 얻기로 마음 먹는다.
진해 부근의 짙은 녹음, 이름 모를 공원에서 세식구 노닐면서 사진을 찍고, 이번에는 운전대를 英이에게 넘겨 창원의 성주사라는 절을 관광하고 다시 내가 운전대 잡고 부산으로,
영도 목장원, 경치게 비싸기만 하고 먹은 것 같지 않은 콕스라는 코스의 고기요리를 먹는다.
운전- 뒤에 앉은 J는 기계치라고 혹평하고, 옆자리의 英이는 신경질을 내고.
운전하며 마누라 딸년의 살벌함에 등줄기에 식은 땀을 흘리며 보낸 하루였다.
느헤미야.
어제저녁 俊이에게 편지 한통 쓰다.
18365 1997. 5. 20 (화)
오전 일찍, 비 흩날리다가 이내 개이다.
H서 플랜트 들러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밝히고 호의 가득한 그곳 사람들, BT표 고문, JJ호 사장, LS권 이사, KG수 부장들과 악수하고 송구스런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곧 컴퓨터 그래픽 사업의 추진을 위하여 아무래도 포기해야겠다는 나의 핑계.
그러나 JJ호 사장의 고마움은 잊을수 없다.
N영 과 통화, '사위컴손'의 '미스터. 플라카드'라는 프랜차이스는 썩 맞득치 않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지인을 통하여 파악하고 있다.
N영은 즉석소세지 체인점 '아가돈'에 다시 관심을 기울여 함께 서울 다녀오자고 꼬신다.
나는 이미지 출력사업, 컴퓨터를 이용하는 그런 쪽에 관심이 끌리고 있으며, 서울가면 그 계통의 것을 파악해 보아야 한다.
에스더.
기도.
18366 1997. 5. 21 (수)
컴퓨터 그래픽, 포토샵등...
먹는 장산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속설을 믿는지 너도나도 먹는 장사에 관심을 기울여, 우후죽순으로 프랜차이스가 창궐한다.
생각컨데 먹는 장사야말로 경험이 필요한 업종이 아닐까.
너도나도 박터지게 몰려드는 그 바닥에서 오히려 더욱 개성적인 컨셉과 전문적인 연구로서 어프로치해야지, 프랜차이스라는 통일된 시스템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어필하고 있는 이미지 사업이란...
이미지출력과 여러 가지 아이템을 복합적으로 결합한다면.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문다.
월전 정보지에서 오려두었던 광고를 보고 'S경 갤러리' 전화하여 그곳 KS태 사장과 통화.
오늘 10시에 찾아가 만나기로 약속하다.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이미지 출력사업의 체인점을 통한 투자비가 대부분 장비값일진데, 기술은 학원같은곳에 다니며 습득하고 장비는 용산의 전자상가같은 곳에서 이것저것 장비의 구색을 맞춘다면? 그래서 프랜차이스가 아닌 내가 구성한 아이템의 독립적인 사업이라면?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문다.
18367 1997. 5. 22 (목)
오전 양정의 S경 갤러리.
KS태 사장 만나 2시간여 상담하다.
샘플로 보여주는 출력물을 보니 마음이 확 끌린다.
명화를 스캔하여 출력한 그림인데 마치 직접 캔버스에 그린 유화와 같은 간지가 나는 작품이다.
컴퓨터로 이미지를 손질하여 이런 OUTPUT이 가능하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유트릴로의 그림은 정말 원화와 같은 느낌이다.
마음이 확 기울어진다.
돌아오며 서면 영광도서 들러서 'ADOBE PHTOShOP 4.0' 책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들여다보면서 S경 에서 얻어온 유트릴로 그림을 꼼꼼히 살펴본다.
英이의 이벤트회사 영업사원 노릇도 고달픈 모양이다.
이달 말까지 쉬기로 한 모양이다.
18369 1997. 5. 24 (토)
초량의 세진 컴퓨터랜드, 꽹가리를 치며 요란벅적한 광고 기세에 비하여 물건들은 보잘 것 없다.
컴퓨터 본체는 그런대로 갖추어 놓았지만 플로터나 스캐너등 주변기기의 진열은 볼품이 없다.
S경 서 얻은 장비 사양 명세의 장비들의 대충 시세를 알아보려 하였는데 아예 그런 장비는 있지가 아니하다.
컴퓨터 서적들도 영광도서의 1/10도 되지 못하고, 늘어놓은 S/W들도 빈약.
다시 지하철 타고 동래로 간다.
율곡 컴퓨터 도매상가, 이곳은 더욱 초라하다.
서울의 용산전자상가만큼은 안되더라도, 컴퓨터에 관한 어느 정도의 만물상을 기대하였으나 서너평짜리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나마 3개층에 한 쉰군데의 점포만이 있을 뿐이다.
서울과는 실로 천양지차.
서면 '장충동 족발' 프랜차이스 지사에서 N영만나다.
그곳 수더분한 인상의 지사장과 두시간여 상담하다.
아무래도 N영은 먹는 쪽에 관심이 쏠려있다.
그런데 이 족발이라는게 투자비가 1억을 훨씬 상회한다.
N영이 자꾸 마음 쏠려하는 아가돈 즉석 소세지점.
메리트가 없는바는 아니다. 적은 투자비와 심플한 아이템.
즉석 소세지라는 현장을 견학하려고 동래의 메가마트로 간다.
없는 것이 없는 거대한 체육관같은 매장,한 켠에 독립장사를 하고 있는 즉석 소세지를 구색 맞추어 사가지고 나온다.
마침 그곳 지하매장에서느 미술품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그림 감상이 아니라, 그림 값이 어떠한지 알아보려 들어간다.
한 20호 짜리 유화가 50만원 수준.
내 눈에는 그림의 수준은 높아 보이지 아니한데도.
새벽 갑자기 천둥소리, 이내 쏟아지는 어둠 속의 빗소리.
18371 1997. 5. 25 (일)
토요일 N영, S곤, H근 만나서 늦도록 마시다.
S곤 이는 발이 넓다.
컴퓨터 그래픽에 익숙하여 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그의 후배를 소개받기로 한다.
J와 英이는 처제네 할머니들 미국가는데 배웅하러들 가고 나는 홀로 남아 맥주를 마시고는 전날의 혼곤함에다 다시 불을 지펴 취한다.
대낮부터 곯아 떨어진다.
俊이 생일.
잠결에 들으니까 J와 俊이와 통화하는 소리.
18372 1997. 5. 27 (화)
서면의 S곤이 가게로 가서 그의 소개로 후배라는 젊은 친구를 소개받다.
컴퓨터의 실력자, 처가의 건물인 서면 요지의 2층 다방 뒤켠에다 작업실을 차렸다.
삐까삐까한 장비들이 부럽고 그의 부르조아적인 취미의 그래픽 작업들이 부럽다.
KE국.
아직 젊은 서울 친구인데 매니어들이 대개 그러하듯 자기주장이 강하지만 프로적인 기질은 마음에 든다.
두어시간 그의 작업실에서 얘기를 나눈후 함께 점심을 먹고 낙영의 차를 타고 개금의 BBQ 부산지사로 간다.
전에 창업박람회에서 상담하였던 부장이라는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눈다.
기중 성실하고 믿음직한 프랜차이스다.
BBQ라는 치키 업종은.
오늘 새벽 J가 담근 우엉초절임 개봉하여 예닐곱 조각 먹다.
효험은 글쎄.
18373 1997. 5. 28 (수)
날씨는 흡사 가을이다.
이렇게 부산의 오월은 선듯하게 지나가 버려 곧장 초여름에 들어설 것이다.
마음은 이미지 출력과 사무편의점이라는 사업형태로 거의 기울어진다.
S경 갤러리의 K사장에게 전화하다.
나는 그동안 나름대로 여기저기 파악하여 나름대로 장비의 현황을 뜨르르 꿰는것처럼 얘기하였더니 일단 만나자고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英이는 몇 년묵은 제 방의 대청소. 대정리.
무언가 심기일전하겠다는 겐지 아비는 보기에 좋다.
책들, 악보들, 잡동사니들 한보따리 들어낸다.
세월이 지나면 옛물건이 어떨 때 아쉽고 그리울때가 있지만 정리정돈은 과감해야 하는것.
12시 가까이 P/C 앞에 앉아서 이것저것 입력하여 정리하고.
누워서는 오만가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가게는.. 인테리어는...
가게의 어레인지.. 간판은.. 로고도 만들어야지.. 전단지 디자인은...
생각은 꿈으로 이어져서 비몽사몽.
18374 1997. 5. 29 (목)
오전에 S경 K사장과 오랜 시간 얘기 나누다.
그 쪽에서 장비의 사양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금액을 정하자는 나의 요구.
미주알 고주알 장비사양을 따지는 내게, 그는 내심 혀를 내두르며 곤란한 표정도 짐짓 짖지만 영리한 장사꾼의 눈이 번쩍임을 나는 본다.
그런데 장비는 상품이니 그렇다 치고, 명화의 출력기술, 그 무형의 것은 어떻게 값을 따질거나.
몇날며칠의 교육,
일단 계약은 하기로 한다.
내 쪽에서 계약서의 문구를 만들기로 하고 그곳을 나선다.
J에게 개략적인 상황과 나의 구상하는 바를 말하여 준다.
경청하는 J.
내놓은 점포들을 알아보니 동삼동의 목이라는 삼거리 일원은 대부분 권리금이 붙어있다.
조카 彦이는 휴가 나온 모양, 녀석은 벌써 제대 말년이다.
나머지 일년은 재택근무.
18375 1997. 5. 30 (금)
J에게 사업구상을 꿈꾸듯 말하는 나의 즐거움.
이것은 단순하게 컴퓨터로 출력한 출력물을 팔아먹는 장사가 아니다.. 창의성과 예술감각이 필수적인 창작 사업이다 운운..
기실 이것이 가장 나를 매혹시키는 부분이다.
비록 큰 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멋진 품질로 차츰 인지도가 확산되면 이만한 품질의그림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확신..
아름다운 것, 예쁜 것, 고급스런 것을 향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없어질수 없는 속성이다.
계약서 안을 작성하여 팩스로 K사장 에게 보낸다.
장비사양의 명시, 정품 S/W 의 제공, 교육의 커리큘럼 제시, 제공하는 캔버스 소재의 공급등을 항목으로 하여....
일단 내 의사표시는 하였다.
결코 녹록하지 녹록하지 않아 보이는 K사장의 대응은 어떠려는지.
꿈-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 밀양, 공중전화, 다시 나온 영장, 어머니, 왕성규, 이길선...
백수 어언 2개월.
18376 1997. 5. 31 (토)
정말 부산의 오월은 변덕스럽다.
후덥지근하게 맑은 하늘이더니 오후에는 느닷없이 비가 쏟아진다.
S경갤러리 들렀으나 K사장은 외근중, 직원이 삐삐 처서 전화로 통화하다.
제공하는 장비의 사양 명세를 확실하게 밝히지 않는듯한 김사장, 대략 불러주는 사양을 적어 카다로그등을 살펴보니 시중보다는 상당히 높은 가격수준이다.
명화제작의 시스템, 말하자면 장비값을 제외한 나머지, 독창적이라는 캔버스와 출력기술이그만큼 대단한 것인지.
서둘 일이 아니다.
명화의 출력물은 참으로 매혹적이지만 내 쪽에서 서둘 이유가 없다.
월요일 10시에 결정을 하기로 하였지만 S곤 이 후배 KE국 에게도 알아보고하여 ...
오늘은 종일 컴퓨터 그래픽 공부에 몰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