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나의 영화 편력기' -其 10-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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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 편력기 -其 10-> 

2010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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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쯤, daum의 카페에 ‘나의 영화 편력기’라는 글을 아홉번에 걸쳐 써 올린 적이 있었다.

중학시절부터 20대 무렵까지 영화를 보고나서 간단하게 메모를 하여둔 노트가 있었는데 나이 들어 펼쳐보니 가히 나는 영화광이었던가 보았다. (십수년 남짓동안 천여편이 넘는 영화들이 기록되어 있었으니.)

그 노트의 메모에다가 조금 살을 붙여 지껄였던 것이 ‘나의 영화 편력기’라는 글이었다.

제법 읽을만 하였던지 조회수와 댓글들이 심심치 않아 괜히 즐거워하기도 하였지만, 바야흐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영상시대에 고리타분한 옛영화 얘기라는게 스스로 어쭙지않아 그만 중동무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8년여 지나고 나니 그 노트에 아직 남아있던 영화들이 똑 변소 다녀와 무엇처리 안한 것처럼 찜찜하기도 하려니와, 빨리 내뱉어 정리해 버리는게 예순넘은 늙은놈의 정신건강상 좋을 듯도 하여 되지 못한 썰을 다시 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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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늘어 놓음세, 옛 영화 얘기들.

나의 영화편력기 -其9-를 쓰고나서 어언 8년여가 흘렀구만..

요동치는 세월이었고, 나도 그 세월만큼 늙어버렸네그랴.

정치, 사회, 경제, 문화등 외적(外的)인 것들도 그렇거니와, 내 신변의 것들이나 내 내적(內的)인 것들 역시.

아이들 서른을 버얼써 넘어서 큰 아이는 두 딸의 어미가 되었고. 도무지 할아비라는 호칭은 내 것은 아닐것이라 생각하였었는데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아기들의 귓전 울림이 자못 흐뭇한 지경이 되었으니 주름살 뿐 아니라 의식(意識) 또한 그렇게 세월따라 변해가는 모양일세.

시대의 패러다임이란 한살이 개별의식에 거시적(巨視的)으로 스며들 터이나, 백년을 넘지 못하는 인간이 겪는 한해 한해의 연령의식(?)이야말로 정작 우리 실존을 지배하는 리얼리즘의 정수(精髓)가 아닐수 없을세 그려.

 

다 헤어져 너덜너덜한 옛 노트에 도사리고 앉아 꺼내달라고 고개를 내미는 영화들.

다시 늘어놓네.

*보고 싶은 얼굴* 김기덕감독(요즘의 김기덕감독과 동명이인) 신성일, 엄앵란주연. 가수 현미의 남편(본처는 따로 있다지)인 색소폰 불던 작곡가 故이봉조가 생각나나? 블루스 풍의 느리고 감각적인 곡들을 많이 만들었었지, 아직도 내 입이 흥얼거리는 이 영화의 주제가.

*페니의 환상* '수잔 스트라스버그'가 출연한 공포영화.

*야망의 대서부* '트로이 도나휴' 주연. 덩치 커다란 미남배우 트로이 도나휴는 청춘영화의 심볼이었는데 그가 출연한 드문 서부극.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마리솔'주연. 아, 애늙은이같이 성숙한 연기와 춤과 노래를 펼치는 자그마한 소녀 마리솔. 캐스터넷을 치면서 플라멩코를 추고 노래를 부르는 마리솔의 허스키의 목소리가 귓전에 아련하네.

 

*젊은 사자들* '에드워드 드미트릭'감독. '말론 브란도' '몽고메리 크리프트' '딘 마틴' 출연. 당시 노만 메일러와 쌍벽을 이루었던 소설가 어윈 쇼우 원작의 흑백영화. 웅얼웅얼 중얼거리듯 구사하는 나치 장교역 말론 브란도의 대사법은 이 영화에서도 여실하였지, 좌우간 말론 브란도는 언제나 멋있었고, 몬티라고 불리던 미군병사역의 몽고메리 크리프트 역시 매력적이었지.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 폴 뉴먼, 로드 스타이거등 60년대 미국 메소드 스쿨 출신의 연기자들의 독특한 매력... 어딘가 아웃 사이드적의 짙은 외로움이 뿜어져 나오는 연기..말론 브란도가 미군병사 딘 마틴의 총에 맞아 죽는 장면 눈에 선하네. 

 

*황야의 3상사*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출연. 프랭크 시나트라 패거리(똘마니)들 기억나나? 딘 마틴, 세미 데이비스 주니어등..

*황금벌판의 혈투* '김석훈' '김명희'출연. 

옛날 배우 김석훈도 꽤 미남배우였었지.

*욕망의 결산* '신성일' '최남현' '김혜정'출연. 욕망을 결산한다는 건 언제나 비극적 결말을 초래하지.

*신촌 아버지와 명동 딸* '김승호' '방성자' '김혜정'출연. 고지식한 아버지와 개방적인 딸의 갈등을 그린 희극영화.

*나갈길이 없다* '김승호' '최지희' '박노식'출연. 한비(필리핀)합작영화, No Way Out하면 무슨 실존적 구호 같지만 영화는 일제시대의 남양의 정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쟁영화. 필리핀 현지 로케 영화라던가..

*클레오파트라* '린다 크리스탈'출연의 삼류 오락영화.

*스팔타커스* '스티브 리브스'라는 근육질배우가 출연한 오락영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동명의 영화가 아닐세)

*자렌에서의 탈출* '율 부린너'주연. 사하라사막을 횡단하면서 벌어지는 혁명가 얘기인데..

*유성과 같은 사나이* '커크 다글라스'주연. 쇠줄 울타리가 없는 곳으로 별과 같이 떠도는 서부의 사나이..

*브라크 힐의 결투* '로버트 테일러'가 주연한 서부영화. 목장을 지키는 사나이.

*서울에서 제일 쓸쓸한 사나이* '최무룡' 주연. 출세를 위하여 사랑도 뒷전인 사나이.

*십년세도* '신영균' 주연. 정조를 임금으로 만들었던 윤국영의 권불십년의 이야기.

*마도로스 박* '박노식' 주연. 가수 오기택의 노래 ‘마도로스 박’은 이 영화 덕으로 유행하였지.

*성 베드로* '하워드 킬' '존 삭슨' 출연, 70밀리 종교영화였을텐데. 감동은 그다지...

*빗나간 청춘* 제목만 기록되어 있는데 기억은 아슴하군.

*미스킴의 이중생활* 집을 사기 위한 거짓 취직 행각

*나는 속았다* '문정숙' 주연. 여간첩 이수임과 그녀의 연인 윤강국을 소재로 만든 반공영화.

*순간에서 순간으로* '스티브 매퀸' '로버트 와그너' 주연. 전투기 조종사를 내세운 전쟁영화. (참, 미남 로버트 와그너는 나탈리 웃의 남편이었었지.)

*죽자니 청춘 살자니 고생* 기억은 없는데 제목만 기록되어 있네. 

*다시는 놓지 않으련다* 上同

*이중생활* '장폴 벨몽도' '안토네라 루알디' 주연. 뜻밖의 좋은 영화로 감상하였던 기억. 드넓은 푸른 농토를 앞에 두고 가상의 교향악단을 지휘하던 인상적인 장면이 떠오르네.

 

*태양은 외로워* *정사*

두 영화 모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였고 둘 다 '알랭 드롱'과 '모니카 비티'가 출연하였었지. (빈틈없이 아름다운 사나이 알랭 드롱, 우수에 가득찬 에메랄드 눈동자에 그 시절 여성들 헤어나오기 힘들었을거네. 작년인가, 칸느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여우주연상의 전도연에게 트로피를 주려고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그를 TV로 보았는데, 늙어 버렸지만 예전의 그 품위있는 아름다움은 여전하였네.)

태양은 외로워의 주제곡은 요즘도 자주 연주되는 음악일세.

‘태양은 외로워’ 권태 가득한 무표정의 모니카 비티의 멍한 눈동자...

어떠한 동기도 설명도 없이 모니카 비티는 약혼자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증권거래소의 차가운 비지니스맨 알랑드롱과의 정사를 벌이는데, 거기엔 조금도 사랑이 개입되지 않은 것이고 그 섹스에 어떤 동기도 없었다네.

‘정사’에서도 친구의 연인과 감각적으로 섹스를 벌이지만 그 정사는 조금도 뜨겁지 않았지.

애정이 개입되지 않은 섹스, 금속성 정사란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도 싶네만.

흑백 스탠다드 스크린에 가득찬 이유없는 고독과 권태와 불안.

알랭 드롱과 모니카 비티의 섹스는 오로지 감각 속에서 실존을 확인하려는 안간힘 같이 느껴졌었지.

당시로서는 두 영화의 정사장면(요즘 영화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도 충격적이었지만 안토니오 미켈란젤로의 영화는 당시 사춘기를 갓 벗어난 나를 상당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네.

드라마적 구성이 탄탄한 헐리웃영화(기승전결에 의하여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드라마 트루기)들이 내게 익숙하였는데 . 안토니오 미켈란젤로의 영화들은 내가 접한 전혀 새로운 영상문법이었다1네.

소통의 단절... 고독... 권태... 시작도 없고 결말도 없는...

프로메테우스적 인식이랄까... 실존주의(실존주의에 대해 내 무에 깊이 알겠는가마는)

'태양은 외로워'와 '정사' 두 영화의 스크린은 그런 영상적 이미저리로 가득하였지. 

 

아아, 인간은 인간에게 있어 영원한 타자인가.

개별적 실존에 있어서 소통이란 불가한가. 진정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가.

인간이란 홀로 고독하게 한세상 살다가, 홀로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흔적도 없이 가뭇 사라져 버리는 허망한 존재일 뿐이런가.

 

한 여름 새벽. 시방 내 방에는 쇼팽이 가득한데...

기막히도록 아름다운 쇼팽의 피아노 선율.

그러나 나이 먹으니 때로, 쇼팽이 흐르는 나의 새벽마저 외롭고 슬프다네.

 

사람은 그저 고독한 섬인가.

나의 신앙은 어디 숨어 있을까.

이성 믿음 인정 윤리 합리 이성.... 모더니즘은 허물어지고.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흐음, 다른 생각의 길은 있는가.

 

오늘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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