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잡설-
<아바타>
2010년 2월 21일
제작년도 : 2009년
감독 : 제임스 카메론
출연 : 샘 워싱턴,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 스티븐 랭
꼭 3D 영화관에서 보아야지 하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설 연휴, 그만 모니터로 '아바타'를 보고야 말았다.
영화는 과연 대단하였다.
3D 영화관에서 안경끼고 앉아 실감나는 입체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로 영상의 판타지를 느꼈더라면 내 입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 같은, 실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실사영화로서는 도저히 구현할수 없었을 영상, 영화적으로 상상할수 있는 것들을 최대치(작금의 수준으로서는)까지 밀어 올린듯한 영화였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자연의 풍광. 동물과 식물들, 첨단무기.전투장면의 몹씬, 다이나믹한 액션, 어드밴처와 판타지, 게다가 로맨스까지 버무러진, 그야말로 스팩타클한 영상...
그리고 놀라운 수준의 컴퓨터 그래픽.
영상적으로 새롭게 창조한, 실재인물에다 덧씌웠을 가상(假想)의 종족 그리고 가상의 자연풍광과 가상의 동식물.
피부의 떨림과 미묘한 표정의 디테일까지... 나비족 인간(?)이라는 전혀 새로운 종(種)의 인간을 완벽하게 창조하였다.
나비족의 언어는 언어학자에 의하여 새롭게 고안되었다고하니, 한편의 영화를 위한 헐리웃의 노력과 투자는 어떠한 상찬도 아깝지 않다.
미국적 매커니즘과 시스템, 그리고 자본력이 아니라면 뉘라 이런 영화를 기획이나 할수 있으랴.
바야흐로‘아바타’는 영화 기술적으로 새로운 기원을 이루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그러나.
이 영화가 세간에 던지는 사회적 의미를 아젠다로 하여 식자(識者)들간에 설왕설래가 분분 하다는 것(이른바 反보수적 시각에 대한)이 나로서는 참 이상스럽다.
제국주의 횡포에 대한 항변과 환경주의론적 웅변이라...
정교하게 짜여진 내러티브는 헐리웃적 감동을 자아내기에는 그닥 손색이 없어 보였지만, 거기 무슨 심각하고 무거운 이념적 의미가 있다는겐가.
이 영화가 그에 대한 무슨 심각한 담론꺼리를 담고 있다는겐지 도무지 나는 모를세라.
'아바타'를 보면서 뉘라 미제국주의의 횡포와 현대무기의 가공할 위력에 몸서리를 칠 것이며, 불루마블(지구)의 환경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려는지.
어떤 예민한 관객에게는 영화로부터의 연상작용으로 그에 대한 모종의 감정적 파장이 없지 않았을수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 '아바타'가 관객의 감성모체를 자극하여 깊은 성찰을 유발할 만한 작품이란 말인가.
내 느끼건대 '아바타'의 서사구조는 전형적인 헐리웃 스타일의 상투성 뿐이다.
(버지나아의 서민정님께서도 ‘아바타’의 서사구조를 시니컬하게 분석하였는데 나 역시 동감이다.)
'아바타'의 감동이란 동화적 감동(권선징악적)이고 상투적인 감동일 뿐이다.
약한 자를 도와 처음에 고전하다가 영웅적으로 쟁투하여 악을 무찌르고 최후에 승리한다는.
헐리웃 영화가 일반적으로 갖는 패턴의 헐리웃적 감동,
‘람보’가 주는 감동과 크게 다르지 않는.
판도라행성의 원주민 나비족이란,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부터 아주 고스란히 차용한 캐릭터들이다.
거기다 환각적인 그래픽을 입힌 것이 나비족과 나비족이 사는 환경의 자연이다.
이를테면.
미국의 개척시대. 기병대의 한 병사가 정보수집의 임무를 띠고, 인디언 모습의 외양을 하고 나비족이라는 인디언부족에 잠입한다.
병사는 나비족의 순수한 인간성과 그들의 자연친화적인 문화에 매료되어 점점 빠져들어간다.
나비족 인디언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병사는 백인이 발을 들이기 전의 아메리카 대륙에서 수백년 연연하게 이어져 왔을 나비족이 지닌 생태적. 문화적인 오의(奧義)를 짧은 동안이나마 깊게 터득하였다.
시나브로 병사는 나비족의 일원으로 동화되어 간다.
기병대의 대규모 공격을 앞두고 움츠러드는 나비족.
병사는 나비족이 지켜내야 할 가치의 당위를 이제는 오히려 거꾸로 그들에게 각성시킨다.
고무된 나비족은 기병대에 맞서 싸운다. (누구보다 영웅적인 전사는 바로 그 병사)
가공할 전력의 기병대에 도무지 역부족인 나비족.
지리멸렬 죽고 다치고 흐트러져 궤멸하기 직전 빰빠람빠~ 나팔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병사의 기원(나비족이 아닌 하늘을 나는 사람)에 감응한 '자연의 신'이 숲속의 동물들을 일으켜 나비족의 구원병으로 등장한 것이다.
결국 나비족은 승리하였다.
나비족과 나비족의 자연은 한 이방 병사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지켜진 것이다.
새로울 것 하나없는 서사가 아닌가.
인디언을 그린 다른 헐리웃 영화인 ‘솔저 불루’, ‘작은 거인’, ‘늑대와 함께 춤을’, ‘라스트 모히간’이 갖는 담론꺼리의 십분지 일도 ‘아바타’는 갖고 있지 않았다.
생각건대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제국주의라던가 환경파괴에 대립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은 조금도 있지 아니하였다.
그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영화 속에 담을 의도 자체가 애시당초 없었을 것이다.
‘아바타’의 내러티브는 환상적인 스크린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서사일 뿐.
그렇지만 나는 이 영화를 폄훼하지 않는다.
그럴듯한 서사가 녹아 있어야만 영화가 아니다.
장르의 구분.
'아바타'는 오로지 스팩타클 영화, 볼거리 영화다.
작품성을 따질 계제의 영화가 아니다,
그러니까, 올해 만일 아카데미 작품상을 이 영화가 차지한다면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마찬가지로 나는 또 실망할 것이다.
나는 '아바타'를 3D 극장에서 꼭 체험해 보고 싶다. (당초의 욕망은 다소 줄었지만)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산, 밤이면 야광으로 빛나는 거대한 나무와 숲, 이상한 동물들, 첨단 병기들의 액션, 전투장면, 해파리처럼 공중을 헤엄치는 숲의 정령, 나비 족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익룡의 비상.
안경을 끼고서 익룡을 좇다보면 아마 롤러 코스터를 타는 느낌일꺼라..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영화관에 앉아, 나는 ‘아바타’를 감상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이 영화는 시각과 청각을 기울여 체험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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