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마사 퀘스트>
-도리스 레싱 作-
***동우***
2010년 3월 30일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
아름답고 능력있는 주부 ‘수잔 로링스’, 그녀는 초라한 호텔방에서 가스를 틀어 놓은 채 죽음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간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랜드 캐년 단애(斷崖)를 향하여 오픈카를 질주하여 추락하는 두 여인의 스톱 모션.
여성.
영혼의 자유를 짓누르는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탈출.
도리스 레싱 (Doris May Lessing, 1919~2013)의 장편소설 ‘마사 퀘스트’. <도리스 레싱은 2007년, 역대 최고령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다>
누구나 청소년기의 한시절, 분노와 반항과 갈등과 방황으로 점철된 카오스의 터널을 지난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
청춘의 덫일까. (어쩌면 구원일런지)
외면적으로는 기성의 것들을 향한 몸짓일 터이지만 (수천년전 이집트의 상형문자에도 ‘요즘 젊은 것들이란..’투의 문장이 있다고 하니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성정적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내면적으로는 그 또래에 엄습하는 이데아의 세계(막연하나마)와 현상계의 간극에 절망한 근원적 문제에서 비롯된 건 아닐런지.
혹자는 여물지 않은 정체성의 모호함에서 비롯한 자아(정체성)확립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한다.
그 과정을 거침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
정체성 확립이란 그러니까 기성적 상황에 길들여 진다는 것일까.
카오스의 터널을 통과한 저편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것.
그건 상황에 순치된 새로운 의식(意識)일까. 새롭게 인식하는 자아일까.
상황 혹은 환경이라는 것.
한 인간의 의식구조는 그를 둘러 싼 사람이나 경제문화적인 미시적 환경으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거니와, 그가 사는 공간의 거시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자유로울수 없다.
책부족의 이번 달 텍스트 ‘마사 퀘스트’
작가 '도리스 레싱'이 사춘기 무렵인 15-18세(1930년대 후반)의 '마사 퀘스트'라는 소녀에게 작가 자신을 투영(投影))시켜 그린 지극히 자전적인 소설이다.
나 또한 어느 행간에다가는 나의 옛것들을 투영시켜 회한(悔恨)의 한숨을 쉬기도 하였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민음사의 이 책 번역은 끔찍하였다. 읽는 중에 쯧쯧 혀차는 소리 끊이지 않았다. 번역자 이름은 안밝히련다마는)
남아프리카 ‘마사 퀘스트’와 동시대(同時代)를 살았던 식민지 한반도의 중인계급인 어머니 (작가는 1919년생, 작고한 내 어머니와 나이가 같다)의 질풍노도는 어떤 것이었을까.
1990년대 초반 민주화의 격동시기, 아비 어미를 향하여 ‘우리 집은 웃기는 캐리커추어’라며 거친 반항의 몸짓을 보였던 내 딸(1974년생)의 청춘의 덫, 그 색깔은 무엇이었을까.
아, 또한 1960년대 후반 개발독재 시절, 내(1947년생) 청춘의 덫은...
1930년대 후반,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연방. (남아프리카 공화국 以前-책부족 케이프타운 심샛별님 활동하는 공간을 지엽이나마 접하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스페인의 좌파 정부는 파시스트 프랑코와 내전중이었고, 그 포성이 2차대전의 음산한 전주곡으로서 울리고 있었던 시기.
남아프리카의 진보적 젊은 지식인들도 파시즘에 대항하여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기도 하였지만 (마사가 존경하는 직장 상사 코언씨의 아들도 내전에 참전하여 전사한다) 남아프리카 사회의 주류인 보수우파들은 여일한 일락에 잠겨 있었다.
<1938년 크리스마스 계절에 클럽은 영원히 존속할 것 같이 보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속할 것 같이 보였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항상 젊고 아무것도 변하는 일이 없는 그립고 찬란한 빛에 흠뻑 젖은 동화같았다. 운동장 끝의 조용하고 파란 고무나무, 골프장 뒤의 능소화와 둑, 반짝이는 진한 초록 위에 진홍을 뿌린듯한 무궁화 산울타리... 이런 것들이 마법의 동그라미를 그렸고 그 안에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날 수 없고 어떤 일도 위협을 줄수 없었다. 어떤 묵계가 여기서는 정치를 이야기할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고 유럽이 먼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 연방.
아파르트헤이트의 시원(始原)인 인종적 차별, 그리고 민족적 편견이 충만하였던 사회.
카피르인(흑인 원주민)은 노예에 버금가는 하층계급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유태인과 그리스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경멸을 받으며 하나의 계층을 이루었고, 아프리칸더(네덜랜드인)는 영국인을 질시하고 있었다 (보어전쟁에 패하여 네덜랜드는 남아프리카 식민지를 영국에게 빼앗겼다).
마사의 양친은 식민지의 주인으로서 콧대 센 영국인.
<이름도 없이 우굴거리는 원주민들, 그 이름 자체가 개성있는 기원의 활기차고 시적인 특징(번역이 이런 식이다)을 지닌 아프리칸더들, 단지 여기가 영국땅이라는 소유의식에 의해서만 뭉쳐져, 무수한 소집단을 이루어 모여 있는 영국인들.>
마사 어머니는 농촌동네 이웃 친구인 (마사의 죽마고우인 마니의 어머니) 네덜랜드인 렌즈버그 부인과는 하인과 음식 이야기 외에 대화꺼리가 없을만큼 민족끼리의 장벽은 높고, 인종적 편견은 자심하였다.
마사의 아버지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성격의 농장주 (다른 농장주에 비하여 매우 가난한 처지)이고, 체면을 중시하는 어머니는 시시콜콜 잔소리로 딸의 개성적인 영역을 수시로 침범하여 딸과 노상 다투는 여인.
퀘스트 부부의 의식 속에 고착되어있는 인종적 편견.
영국인을 고깝게 여기는 네덜랜드인을 폄하고, 유럽에서 슬슬 준동하는 나치의 히틀러를 상놈의 자식이라 욕하고, 눈치꾼 유태인과 그리스인을 경멸하고(그러면서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퀘스트씨).
퀘스트부인이 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
<"너희 페이비언주의자들의 문제는 이론만 알았지 실제는 모른다는 점이야. 검둥이들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더럽고 끔찍하고, 하나같이 도둑놈이고 거짓말장이이고 요리도 못하는지 말이야.">
독서광 소녀 ‘마사 퀘스트’
마사의 양친을 향한 극심한 환멸과 절망감과 반항심(심지어 아버지가 히틀러 욕을 하면 마사는 '나의 투쟁'을 쓴 히틀러를 옹호할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은 더욱 마사를 책 속으로 도망 치게 하였다. (그녀에게 책을 공급하여 주는 시내의 유태인 친구 코언형제, 특히 조스는 그녀의 오성(悟性)을 건드려 주는 유일한 근원.)
마사의 독서가 깊어질수록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혐오감과 환멸은 반비례하여 켜를 더한다.(엥겔스의 ‘가족의 탄생’을 읽고 자신의 가족을 더욱 지독하게 혐오하게 되기도 한다)
그녀는 무신론자를 표방하고 페이비언주의자를 자처하며 양친의 인종적 편견에 증오를 드러낸다,
마사의 독서 편력.
마사가 읽은 책들(몇몇 책의 제목과 저자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매우 피상적이다)이나 마사가 본 영화들(영화의 제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과 마사의 의식이 연결되는 고리가 없음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휘트먼과 소로의 시적 감동이 쓰여 있기는 하지만, 아마 작가의 경험적 토로일듯한 마사의 독서라는 것도 맞득하지는 않았다. (번역의 부실한 탓도 없지 않고)
<대개의 책을 그녀는 타박했다. 받아들인 것이 있다면 본능적으로 받아들인 것이고 그녀의 마음 속의 소리굽쇠나 지침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기서 한조각 저기서 한문장을 따 오는 과정을 밟아 자기 마음 속에서 그것들을 구축했다. 그것은 이제 시,산문,사실,환상의 단편적인 조각들로 된 놀라운 구조물을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무심코 쇼펜하우어나 니체를 읽었다고 할 적에 그녀가 뜻하는 것은 만들어 낸 불행의 확신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라, 정말 신경질나는 번역). 독서라는 것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받아들이는 걸 의미한다면 그녀는 사실상 어느 쪽도, 아니 어느 저자의 책도 읽지 않은 셈이었다.>
눈병으로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포기한 열일곱짜리 마사.
친구 조스의 소개로 도시에 있는 로빈슨, 대니얼 앤드 코언 회사라는 법률회사에 취직되어 드디어 농촌의 환멸로부터 탈출한다.
<그리하여 하나의 문이 마침내 닫혔다. 닫힌 문 저편에 농장과, 그 농장이 만들어 낸 소녀가 있었다. 그것은 이제 그녀와 관계가 없었다. 끝난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잊을수 있었다. 그녀는 새사람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고 멋지고 완전히 ‘새로운’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다.>
존경하는 사장 코언씨, 적당주의가 판을 치는 직장분위기에서 그녀다운 성실함은 강습소에 나가 타자와 속기를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마사는 이제 한창인 발랄한 처녀.
마사는 차츰 도시의 부르주아적이고 환락적인 삶에 침잠한다. (도시 부자들의 사교계에 데뷔하여 자신이 전시되고 있다는 느낌이 있지만. 그 불쾌한 자극을 은근히 즐기는 마사)
스무살짜리 잘생긴 젊은이 도노반 앤더슨에 매료되어 그를 애인으로 상상하기도 하고, 몸매를 위하여 먹는 것에 신경을 쓰며, 거금을 들여 할부로 드레스를 구입한다.
그리고 부르주아 자제들의 스포츠 클럽의 무도회에 밤마다 나간다.
빙키. 페리, 루스, 스텔라 앤드루 부부등과 어울려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고급호텔에서 음식을 즐기며 (마사의 봉급은 불과 7파운드 남짓하지만 그들은 한끼 저녁을 먹는데 20파운드를 쓰는 부류다) 춤추는 중 하체를 밀착시키는 남자들과 키스를 나누고 섹스에 관한 화제도 예사롭게 나누는 농촌처녀 마사.
그 환락의 배후에는 이런 그림도 있다.
<호텔의 급사장인 그리스인 조니의 어머니는 결핵으로 죽었고 누이는 대전때 굶주림으로 죽었다. 그는 생각한다. “빙키(스포츠 클럽의 두목격인 젊은이) 무리들은 이해하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야만인이다. 그래도 그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그들이 이 도시의 책임을 맡는 점잖은 원로들이 될 것이고 이 처녀들은 그들의 아내가 될것이기 때문에.”>
마사는 잠시 그 도시를 방문한 오성(悟性)의 친구 조스를 만나 파시스트를 향한 분노를 각성하여 좌익의 독서클럽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 안에 들어있는 그 무섭게 요동치는 힘은 좌익의 독서 클럽에 한정되기에 너무 벅찼다.
그러나 마사는 갈등한다.
우익신문 '옵서버'를 취소하고 좌익신문 '뉴스테이츠먼'을 읽으며 새로운 세계에 정신이 쏠리기도 한다.
뜨아하였던 도노반이 찾아온다.
“왜 날 안만나는거야?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린다던데. 그들은 언젠가 감옥에 갈꺼야.
마사가 말한다.
“그런 어린애같은 소리 하지마”
어느날 수갑에 채워진 흑인들 스무명쯤이 경관에 끌려가는 광경을 보고 그녀는 중얼거리기도 한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나가서 죄수 원호 협회에 가입할까.”
그녀가 자조적인 무력감에 빠져 있는 바로 그때 스포츠클럽의 바이올린 악사를 만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다.
창백한 얼굴을 가진 조그맣고 아담한 사나이 유대인 아돌프. (아돌프란 이름은 유대식 이름이 아니라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 뜯어고친 이름이다)
자의식에 가득한 아돌프는 마사에게 쭈볏대며 말한다.
“난 네 상대가 안되겠지?”
애원하듯 말하는 그의 태도는 그녀의 동정심에 불을 지폈다.(박해받는 인간을 향한 마사의 정의감이랄까 보호본능이랄까)
여기에는 또한, 단순무구하고 전혀 지성적이지 않은 스포츠 클럽의 남자들에 대한 반발의식도 작용한 것이다.
“스포츠 클럽의 남자들은 다 어린아이같아. 그저 번들거리기만 하고”
그리고, 마사의 처녀는 아돌프에게 바쳐졌다.
아돌프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며 몸을 열어준 마사 퀘스트의 자기합리화.
잠자리에 들면서 그가 자기를 사랑하며 지성적인데다 모든 면에서 스포츠클럽 남자들보다 우수하다고 자신을 설득하려했다
“자기 아이를 갖고 싶어”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돼”그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아돌프는 그녀가 장차 어떤 근사한 도회지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다섯은 가질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돌프는 속물이었다.
부자나 유명한 사람들을 그의 눈은 쉴새없이 좇는다.
그리고 어쩌다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감지덕지한 비굴한 미소를 꾸준히 입가에 띄며 굽신거린다.
경마장에서는 아주 딴판의 사람이 되기도 하였지만 경마장을 벗어난 아돌프는 개성과 자존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마사의 연인이라는 점을 온도시에 떠벌이고 다닌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돌프와 결별한 마사는 오랫동안 말라리아를 앓았다.
그리고 다시 책 속으로 돌아온다.
새로운 직업을 모색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꾸기도 하고 글을 써서 잡지사에 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재능에 절망 하기도 하는 마사.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로빈슨씨 사무실을 벗어날 수 없다
어머니에 대한 반발로,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클럽으로 다시 가는 마사 퀘스트.
거기서 스포츠 클럽 회원답지 않고 진보적이고 지성적이며, 시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더글라스를 만난다.
결정적으로 마사가 더글라스에게 빠져버리는 계기는 그가 좌파 신문인 '뉴스테이츠먼'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였다.
그녀는 기쁨으로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면서 무의식중에 건너가 그의 손을 잡기 까지 하였다.
“클럽에서는 정말이지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모자라거든요”
그러나 그 또한 위선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녀의 육체를 찬양하면서도 찬탄만 늘어 놓은채 그녀의 몸을 건드리는 것을 저어하는 더글라스.
영국에 약혼한 여자가 있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이윽고는 달려들어 그녀와 섹스를 나눈다.
정사후에 그는 자랑스럽고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같이 잔 첫 여자야”
“뭐요?”그녀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펄펄 뛰게 분했다. 그러나 그것도 물러 버렸다.
“하긴 케이프타운의 어떤 창녀가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취해서...”
여기서 문제는 창녀가 아니었다.
“몇살이에요?”
“서른 살”
서른살에 그녀의 육체를 가졌으니 그녀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려는 마사.
그가 몇 년 동안 스포츠클럽 여자들과 어울러 다녔던 일...
다음 순간 그녀 속의 어디엔가 숨어있던 조소적이고 입이 험한 정령처럼 어떤 생각이 당돌하게 떠올랐다.
“적합한 여자를 위해 신사답게 몸을 간직해 온거군, 얼마나 감동적이야! 정말 지긋지긋해!“
(이 번역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여체에 그토록 찬탄을 늘어놓으면서 서른살까지 동정이라는 그것이 마사는 분했던 것일까. 감동적이라면서 지긋지긋해는 또 무엔가)
그녀는 아돌프의 이야기를 했다.
고백이 아니라 사실의 진술로서.
“내가 어떻게 그렇게 못되게 행동할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가요. 생각만 해도 못견디겠어요”
그는 그녀가 아돌프와 잔 사실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채로 그녀를 위로했다. 그녀의 약혼자와 왜 결혼하지 않았느냐는 마사의 물음. “그야 스포츠클럽이 하도 비싸니까 그렇지. 클럽에 들면 별로 돈을 저축하지 못해.”마사는 생각했다. “돈이 무슨 문젤까?
(이 대목 역시 번역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결혼을 작정하는 마사.
도시의 인사들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한다.
그러나 차츰 마사는 더글러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조용하고 책임감있고 진지한 청년은 적어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익살을 부리고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호기를 부린다. 클럽의 다른 멤버와 마찬가지로.
섹스 교본을 구해 놓고 이상한 자세의 섹스도 요구하기도하는 더글라스.
진보적인줄 알았던 더글라스는 좌파를 형편없이 폄훼하기도 한다.
많은 보수적인사들이 참석한 성대한 결혼식. (그러나 마사는 더글라스와 헤어지게 될거라는 암시가 행간에 있었다)
마사 퀘스트는 이렇게 해서 결혼했다.
<그것은 1939년 3월 어느 따뜻한 목요일 오후 아프리카대륙 중앙에 영국 식민지의 수도에서 있은 일이었다.
후일 그녀는 그때의 일을 별로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미친듯한 흥분과 그 밑에 사슬처럼 질질 끌리는 꾸준하게 비참한 느낌을 기억할수 있었다.>
마사의 질풍노도가 분노하고 갈등하고 반항하는 그 정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마사가 독서로부터 인지(認知)한 모종의 이데아의 세계와 마사를 둘러싼 현상계(現象界)와의 괴리.
그 간극에 절망하여 현상계를 향한 마사의 반항이었을 터이지만, 부모를 향한 마사의 지독한 환멸과 경멸의 몸짓은 좀 지나친바가 있다고 느껴졌다.
곰곰 들여다보면 마사를 둘러 싼 환경의 실체란 어찌보면 죄 우리의 현장이 아니던가.
우리 대도시 다운타운의 쾌락주의는 얼마나 무성한가.
작금 한국 부모 의식 속 어느 구석에 한줌 이상주의가 자리잡고 있을까.
한국 부모의 현실주의 적당주의 물질주의의 속물성은 그에 못지 않을 것이고, 자식의 영역에 침범하여 간섭하는 포즈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작금 한국사회에 파시즘은 정녕 없는가.
386은 죄 어디서 무얼하는가.
그들이 질풍노도의 몸짓으로 부딪혔던 기성의 빙벽, 혹여 작금의 질풍노도들에게 이제는 그들 자신이 그 빙벽이 되어 있지는 않는가.
아아, 세월은 무상한 것. 권불십년이고 화무십일홍이다.
태어나 나이 들어 이윽고 죽는 한 목숨의 어느 고비 어느 지점에 이데아가 있다는겐가.
그리고 청춘은 정녕 순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기(利己)와 왜곡과 오류가 곧잘 파고드는 것 또한 청춘이다.
마사 퀘스트의 이율배반적 의식구조가 그러하듯.
조스를 만나고 각성하는 마사의 이데아는 곧 젊은 육체의 쾌락에 굴복하고는 한다.
어떨 때는 남자의 서툰 손이 허벅지에 내려올 때 “이러지마”라고 말하여 정작 “미안”하고 남자가 손을 거둘 때 그녀는 그 남자의 소심함을 미워한다.
마사의 오성이 존경해 마지않는 좌익 독서클럽의 좌장인 노인의 눈길에서 호색가를 느끼고 속으로 ‘더러운 늙은이’라고 욕을 하기도 한다.
옛 친구 마니가 클럽에 새얼굴로서 나타났을 때 남자들의 아첨이 마니에게 집중되었을 때 마사는 자기가 한때 그런 식의 아첨에 조금이라도 영향받은 것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마니와 같은 아이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노여움에 몸을 떤다.
마사는 페이비언주의를 표방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사람들을 집단이나 나라나 피부색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나서야 그 다음 평등한 인간으로 생각한다.
마사 자신은 12파운드 10실링 밖에 받지 못하는데 사무실 사환인 흑인이 5파운드를 받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마사의 관념은 7파운드 10실링 밖에 나지 않는 차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흑인은 고작 20실링 정도 쥐꼬리만한 급여를 받아야 마사의 기분은 만족하였을 것이다.
도리스 레싱은 분명하게 양가감정(兩價感情)으로 마사 퀘스트를 그리고 있다.
작가가 마사 퀘스트를 향하여 드러내는 감정에는, 연민이나 애정이 있는가 하면 미움이 있고, 긍정이 있는가 하면 부정이 있고, 이성이 앞서 가다가 감성이 앞질러 혼돈케 만든다.
쾌도난마와 같은 쾌쾌함으로 규정할수 없는 복잡하고 난해한 동물.
인간이란 필경.
대립되는 두 개의 명제로 이루어진 이원론적인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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