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어느 토요일 밤>
***동우***
2009.09.14.
1.
사방 두어자 남짓한 뒤주 속에 갇혀버린 관계(關係).
아바마마를 부르짖는 사도세자(思悼世子).
그 미칠 듯 갑갑함을 가늠이나 하겠는가.
부자(父子)지간, 단절된 관계(關係)의 처절함.
관계의 냉혹한 외면, 그 관계는 필경 미쳐 버리고야 말리로다.
그러나 신기하도다.
그동안, 아비와 자식간, 단절된 관계는 어찌 소외된 채로들 그리도 굳세었던 것인지.
그러나 필경 사도세자는 아버지로부터 죽음을 당하였다.
여름이면 때로 엄습하여 금방 숨이 넘어갈 듯한 갑갑증.
올해도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혔으나 그러구러 여름은 저물어간다.
아침저녁 목덜미를 스치는건 벌써 가을이다.
문득 나는 소스라쳐 놀란다.
내 나이 예순하고도 셋이라니.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이를테면 ‘운명적 특혜의식’류의 어떤 심리적 방어기제를 가진듯도 하였었는데 그게 아니다.
나는 얼마 안있어 죽어야 하고, 무릇 관계는 생(生)과 사(死)로써 반드시 단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계절을 떠나 보내고 또 맞을수 있을런가.
2.
2009년 9월 12일 토요일밤.
경기가 좀 살아 난다는겐지 부평동 일대 술집들은 초저녁부터 붐볐다.
모처럼 마시는 찹쌀막걸리와 빈대떡은 달고 맛있었다.
주석(酒席)의 이바구는 흐드러지게 속(俗)되고 유치하여 그것이 도리어 흥겨웠다.
부동산쟁이 김사장과 돈장사하는 또다른 김사장.
세 단지째 막걸리를 비우고 있을 즈음 휴대폰 벨이 울린다.
액정화면에 뜬 이름은 고광명.
미국 딸네 가 있는줄 아는데, 근 일년만에 듣는 고등학교 동창의 목소리다.
“상헌아, 나 광명이다. 잘 지내고 있제?”
“야, 이게 얼마만이냐 그래. 언제 들어왔노?”
“상헌아. 마누라 죽었다.”
“무어? 제수씨가? 언제? 어떻게.”
“오늘.”
“......”
“모레 출상이다.”
“어데고?”
“강안 조은병원 영안실 5호실”
“아니, 이 사람.........”
“길채한테는 네가 좀 연락해 다오.”
“그래 그래. 일단 알았다.”
시간은 10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군시렁대는 두 주객은 남고 나는 주석을 작파하고 먼저 나섰다.
광안리 조은병원.
택시에서 내려 들어서는 그곳 영안실은 두어군데 상청만 북적대고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마주하는 늙은 얼굴.
광명이의 머리카락은 완연한 백발이다.
영안실의 숙연함보다 오히려 그것이 슬플 지경이다.
상배(喪配)한 배우자가 상주(喪主)일터인데 보통 상주의 격은 자식들이 맡는다.
영정(影幀)안에는 아직 고운 아주머니가 웃고 있다.
그를 향하여 분향하고 절을 하고 상주들과 맞절을 한다.
별로 무연(憮然)하지도 않은 광명이가 덤덤하게 자식들을 인사시킨다.
아들 둘과 딸 하나, 그리고 사위.
한의사인 큰 아들은 언젠가 본듯도 하다.
광명이가 전작을 하고 있던 술상.
선객(先客)으로 와있던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강일용이다.
서로 와락 끌어 안는다.
동창회 총무라서 가장 먼저 쫓아와 있다가 내가 온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강기탁, 신무성, 옥영재와 더불어 고등학교 적에 친하였던 친구. 일용이.
염색하여 머리는 검었지만 일용이 특유의 눈웃음에는 이제 자글자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는 본시 무슨 단체 모임같은 것에는 서툴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특히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것이 오래되다 보니 가장 만만하고 편하다는 고등학교 친구들에게까지 무언가 죄의식같은 것도 없지 않은 편이고.
속으로 욕들도 하고 있는줄 알지만 본래 집단 같은 데에는 참 어줍잖은 사람임을 일용이만은 이해해 주는 편이다.
무슨 부조할 일이 있으면 일용이를 통하여 처리하고는 하였었다.
친구들 근황을 묻고 일용이는 특유의 목소리로 답하기에 바쁘다.
무성이가 동기회 회장을 다시 맡았고 기탁이와는 골프회동으로 자주 만나지만 요즘 영재는 뜨아하다는둥.
광명이도 마주 앉는다.
나는 그제서야 퍼뜩 생각나 휴대폰 단추를 누른다.
누구보다 광명이와는 가장 친하였던 친구 정길채.
길채는 제법 크게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늦은 나이에 예수께 미쳤다.
신학을 공부하고 대전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구.
정목사는 부산 무슨 세미나를 하려 내려올 적 마다 광명이와 셋이서 가끔 만났었다.
다음날이 주일인지라 내려오기 힘들거라 생각하였지만 오전 예배 마치고 오겠다고 한다.
광명이 지극히 덤덤하게 늘어놓는 돌아가신 분 이야기.
위암 발견하고 반년여.
아, 또 그놈의 암이로구나.
원자력병원이다 한방이다 온갖 것들 마다하시고 가셨다.
무어라 위로하랴.
위무의 덕담은 덕담으로 그저 족할 뿐이다.
세 친구 둘러앉아 나누는 대화들은 오히려 다른 쪽으로 활기롭다.
세상 얘기, 친구들 얘기, 자식들 얘기, 여행 얘기...
내가 상배(喪配)한 상주가 있는 상가에 문상 다녀 본적 한두번이 아닐 것이다.
배우자를 먼저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연배였고, 확실히 남자의 수명은 여성보다 짧은지라 맞절한 상대는 대개 미망인일 터였다.
나의 친인척들 또한 거의 그러하였다.
그리고 오랜 세월 해로(偕老)하다가 가시버시의 반쪽을 잃은 미망인들은 대부분 슬퍼 통곡하지 아니 하였다.
슬픔의 몸짓과 곡소리는 오로지 비속(卑屬)의 몫.
요즘 읽는 소설, 귄터 그라스의 ‘넙치’.
알게 모르게 여성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남성권력에 관한 어떤 문제인지 감히 내 천착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보이는바 절차상 배우자의 주검을 보내는 미망인의 자세는 의연하고 지극히 덤덤하였다.
오랫동안 푸욱 묵은 그 정(情)이라는 것과 영결의 슬픔은 다른 감정의 골을 가지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일용이와 나는 자리를 일어섰다.
내가 화장실 들렀다가 영안실 출구로 나오니까 배웅하려 나온 광명이가 저만치 서 있다.
한낮의 더위는 시나브로 식어 서늘한 대기가 술취한 얼굴을 시원하게 맞는다.
외등의 불빛이 어두운 실루엣의 광명이 어깨위에 역광으로 넘실 거렸다.
악수를 나누는데, 갑자기 광명이가 잡은 손을 확 끌어 내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상헌아! 내 인자 우째 살꼬!”
오열도 없이 한마디 혼잣소리처럼 내뱉는 광명이.
몇십년 함께 한 관계, 지어미 잃은 지아비의 마음밭.
그 어름 어디께쯤 내 다가 갈수 있으랴마는 내 스스로 그냥 처연(凄然)하여 가슴이 먹먹하였다.
영도 들어와 홀로 늦은 맥주를 또 마셨다.
사념은 젖는다.
무엇인가, 관계.
혹은 가시버시.
갓 상배(喪配)하여 홀로 남겨진 한 늙은 사내의 그 어떤 것.
그 어떤 것이.
혹은 그 어떤 것을.
그러나 술이 먼저 올랐다.
++++
***송현***
2009.09.15 06:01
상처한 동우님 친구분의 장례에서
사도세자의 뒤주를 보여 주시는 군요
저는 유년기 단체기합때 총벌을 받던 생각이 납니다
무서운 회초리로 저에게도 점점 다가오심이 ......
***후니마미***
2009.09.16 01:43
친구분,
상처하고 남은 자리, 어떻게 보전할른지요?
살아있을 때의 모든 기억이 한동안 남은 자를 슬프게 할 터인데...
간혹 다가가 그 분에게 어깨를 빌려주어야 할 것도 같네요.
다가올 일들.
남들이 먼저 맞을 뿐인 모습을 우리는 먼 그림처럼 보고 있습니다.
***옥황상제***
2012.05.06 13:08
니, 상헌이 맞나.
정말 별일이 다있네, 우연히 이곳에서 너 글을 보니 어째 이리 반갑노.
벌써 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이렇게 이 글이 날 반기고 있다니.
정말 세상 좋아지긴 좋아젔나보다.
조만간 한번 연락 하마. 옥영재
***┗동우***
2012.05.07 06:24
우와! 영재.
정말 뜻밖이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사이버에서 이렇게 해후할수 있다니.
나야 동창회 나가지 않는 사람, 미안할 뿐이다.
기탁이 무성이와는 골프회동 소식 일용이 편에 듣고 있네만.
근데 언제 옥황상제로 등극하였냐?
이름이 좋아 그리 하였겠구나. ㅎ
어쨌거나 너무 기쁘다.
글로라도 자주 만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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