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그대 하늘을 맛보았기 때문에>
-마이클 레스닝 作-
***동우***
2018.08.20 04:18
'마이클 레스닝 (Michael Diamond Resnick,1942~ )'의 '그대 하늘을 맛보았기 때문에 (For I Have Touched the Sky)'
마이클 레스닝은 주로 전설이나 우화의 형식을 빌어 SF를 쓰는 작가입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유별나다고 하지요.
문명이라거나 지식에 대한 철학적 사변이 녹아있는 작품.
생각이 깊어지는 소설입니다.
플로로그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옛날 옛적에 사람에게도 날개가 달렸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케냐(Kenya) 산이라고 부르는 키리니야가(Kirinyaga) 산 꼭대기의 권좌에 홀로 앉아 계시는 느가이(Ngai)님께서 인간에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선물을 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일나무 맨 꼭대기에 열린 과즙이 풍부한 열매도 따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최초의 인간이었던 기쿠유(Gikuyu)의 외아들이 바람을 타고 높이 나는 독수리의 모습을 보았다. 기쿠유의 아들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솟아 올라 독수리들과 함께 날았다. 그는 높이, 더 높이 둥근 원을 그리며 솟아 올라, 그 어떤 날개 달린 짐승들 보다 더 높은 곳까지 솟구쳐 올랐다.
그 때 갑자기 느가이님께서 손을 뻗어 기쿠유의 아들을 거머 잡으셨다.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저를 붙잡으셨는지요?"
기쿠유의 아들이 물었다.
"내가 이 곳에 머무는 것은 키리니야가 산이 온 세상의 지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내 머리보다 높은 곳에 있을 수 없노라."
느가이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러고는 기쿠유의 아들에게서 날개를 떼어내시고, 나머지 인간들에게서도 날개를 빼앗으셨다. 그래서 인간은 그 누구도 느가이님 보다 높은 곳에 오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새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기쿠유의 후손들이 박탈감과 부러움을 느끼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더 이상 나무가지 맨 꼭대기에 달린 과즙이 풍부한 열매를 먹지 않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느가이님이 사시는 거룩한 산의 이름, 키리니야가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있다. 유토피아 평의회로부터 임차 면허를 받은 다음, 진정한 키쿠유(Kikuyu)족에게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 케냐(Kenya)를 떠나 올 때,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함께 새들도 데려왔다. 이곳 신천지는 마리부새와 독수리, 타조와 수리매, 피리새와 왜가리, 그리고 그 밖의 여러 동물들의 고향이 되었다. 심지어 문두무구(mundumugu) -주술사(witch doctor)-인 나, 코리바(Koriba)조차 화려한 색깔의 온갖 새들과 그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노래소리에 기쁨과 위안을 얻곤 한다. 오후가 되면 나는 보마(boma)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늙은 아카시아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마을을 통해 흐르는 강가에 몰려와 목을 축이는 새들의 듣기 좋은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빼어난 소설.
두번으로 나누어 올릴게요.
잡설은 내일.
***동우***
2018.08.21 21:59
키쿠유족의 문두무구(주술사) '코리바'
그는 분서갱유의 진시황, 아니 진시황 따위가 아닙니다.
새들처럼 하늘을 맛본, 철인(哲人) 독재자입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우리 키쿠유족도 땅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쇄된 책이 왔다. 우리는 노예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기독교인이 되었다가, 병사, 공장 노동자, 기계공, 정치인이 되었다. 키쿠유족에게 어울리지 않는 다른 온갖 종류의 인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예전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었고, 앞으로도 언제든지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완벽한 키쿠유족의 사회인 키쿠유 유토피아(Kikuyu Utopia)를 건설하기 위해서 키리니야가의 세계로 이주해 왔다,>
높이 날아 무두문구처럼 하늘을 맛보고자 열망하는 10살 짜리 소녀 '카마리'.
이를테면 카마리는 키쿠유족의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입니다.
그렇지만 문두무구는 그 날개를 꺾을수 밖에 없습니다.
<키리니야가로 이주해 온 우리들은 옛날 방식대로 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란다. 그러니 만약 여자들이 읽는 법을 알게 되고, 그 중 몇 사람이 불만에 휩싸이게 되어 이곳을 떠나게 되면, 어느날 갑자기 이곳에 키쿠유족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 아니냐.>
일단 새가 창공을 나는데 맛을 들이게 되면, 다시는 땅에서 기어다녀야 하는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게 되는 법이니까요.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 애들이 커서 예수(Jesus)가 되고, 모하메드(Mohammed)가 되며, 조모 케냐타(Jomo Kenyatta)가 되는 법이다. 그렇지만 그 애들이 커서 역사상 가장 지독한 노예 사냥꾼인 티푸 팁(Tippoo Tib)이나, 민족도살자인 이디 아민(Idi Amin)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혹은 프리드리히 니체나 칼 맑스처럼 어떤 의미에서 보면 탁월한 인물이지만, 덜 탁월하고 덜 유능한 다른 보통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 인물이 될 수도 있으리라. 역사를 돌이켜 볼 때마다 그렇게 늘 불길한 방향으로만 결론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한켠에 물러서서 카마리가 우리 키쿠유족에게 미칠 영향이 희망적이라고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지식과 문명.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의 비밀을 터득하고 인식의 세계관의 지평을 넓힐수 있어 더욱 행복한가요.
하늘을 날아 우주공간에 도달한 인류는 진정한 자유를 획득한걸까요.
에필로그는 이렇게 끝납니다.
++++
<나는 선 채로 불타오르는 움막을 바라보았다. 움막 안쪽에서 녹아내리고 있을 꼬마 계집애의 시체 생각을 뇌리에서 지우려고 애쓰면서…….
"코리바?"
한참동안 말없이 서있던 느조로가 말했다.
"이젠 또 뭔가?"
화가 난 나는 거칠게 물었다.
"저희로서는 이 들소 가죽끈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요. 여기엔 당신이 내린 줄로만 알았던 싸후 자국이 남아있거든요. 그래서 겁이 나서 태우지도 못했습지요. 이제 이 자국을 당신이 아니라 느가이님께서 만드신 줄 알게 되었으니, 더이상 만지는 것도 겁이 나는군요. 이걸 가져 가시겠습니까?"
"자국이라고? 도대체 무슨 자국을 말하는 건가?"
내가 말했다.
느조로는 내 팔을 잡아 끌면서 불타는 움막 입구로 데려갔다. 입구에서 열발자국쯤 떨어진 곳 바닥에는 카마리가 목을 매달았을 때 사용했던 무두질한 가죽끈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끈에는 사흘 전 컴퓨터 화면에서 본 적이 있는 이상한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몸을 구부려 가죽끈을 집어든 다음, 느조로를 바라보고 말했다.
"정말 자네 샴바에 저주가 내렸다면, 느가이님께서 내리신 이 자국을 내가 가져가 대신 짊어지겠네."
"고맙습니다요, 코리바!"
훨씬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느조로가 말했다.
"마술을 준비하러 난 이제 그만 가봐야겠네."
나는 돌아서서 보마로 향하는 긴 길을 걸어갔다. 보마에 도착한 다음, 나는 움막으로 들어가 들소 가죽끈을 꺼내 들었다.
"컴퓨터, 작동하라."
"작동되었습니다."
나는 감지기의 렌즈 앞쪽에 끈을 든 채로 물었다.
"여기 적힌 말을 알아볼 수 있나?"
렌즈가 번쩍거렸다.
"예, 코리바. 그것은 카마리의 언어입니다."
"뭐라고 적혀있는 건가?"
"2행 연구(連句)로군요."
"새장 속의 새들이 왜 죽는지 나는 알게 되었어--
나 역시, 새들처럼, 하늘을 맛보았기 때문이지."
그 날 오후 온 마을 사람들이 느조로의 샴바에 모여들었다. 여인네들은 밤새도록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도 곡을 해댔지만, 오래지 않아 카마리의 죽음은 곧 잊혀져 갔다. 그렇게 우리네 삶은 흘러가는 법이고, 카마리는 키쿠유족의 꼬마 계집애에 불과했으므로…….
그날 이후, 날개가 부러진 새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새를 데려다가 고쳐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새들은 늘 죽고 말았다. 그러면 나는 죽은 새를 카마리의 움막이 서있던 곳에 묻어준다.
죽은 새들을 그렇게 땅에 묻을 때마다 나는 카마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의 지혜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가슴에 떠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문두무구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소떼를 돌보고 곡식이 제대로 영글기만을 걱정하는 소박한 사람에 불과했으면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
예전 책부족이 읽었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서구 열강의 문명이라는 야만적 기준에 의하여 재단되는 아프리카.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때로 나는 상상합니다.
궁극적으로 인류가 도달하는 삶의 양식은 부족적인게 아닐까 하는.
패러독스.
먼 미래, 하늘을 맛본자들이 모여사는 방식.
니체.
니힐리즘의 고통을 힘의 의지로 승화시키는... 디오니서스.
성(聖)과 속(俗)으로부터 무애(無碍)한 초인(超人)... 위버멘쉬.
그들의 실존적 삶.
한바탕 카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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