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울리지 않는 심금(心琴)>>> (1,4,3,3,1)

카지모도 2020. 12. 18.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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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울리지 않는 심금(心琴)>

-이사벨 아옌데 作-

 

***동우***

2015.03.17 04:35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 1941~ )의 ‘울리지 않는 심금’

그야말로 심금(心琴)을 쥐어뜯는듯한 소설입니다.

 

한 남자에 의하여 평생을 짐승처럼 사육되었던 여자.

여자의 사랑은 파파노파가 되어서도 여전히 수금(竪琴)을 뜯지만 남자의 심금(心琴)은 울릴줄 모릅니다,

 

이사벨 아옌데,

칠레의 대통령(아메리카 최초로 민주선거에 의하여 집권한 사회주의 정당의 개혁적인 정치가)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08~1973)’가 그녀의 큰아버지입니다.

1973년, 칠레의 국방장관이었던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아옌데 대통령은 그에 저항하다 자살(혹은 사살)하였습니다.

'이사벨 아옌데'는 베네주엘라로 망명하였고 칠레는 피노체트의 군부독재에 의하여 오래동안 통치되었지요.

내가 1970년대 칠레의 정치상황을 좀 아는건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산티아고엔 비가 내린다'라는 영화와 '영혼의 집' (The House of the Spirits)이라는 영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집'은 쿠테타로 희생된 대통령의 가정사를 다룬 내용으로 '빌 어거스트'(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감독)가 감독하고 '메릴 스트립'과 '제레미 아이언스'가 출연하였어요.

그 영화의 원작이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이라는걸 이제야... 내가 이렇답니다. ㅎ

 

이사벨 아옌데는 이런저런 환경과 자신의 의지로 다채로운 작품을 집필하였고, 1982년 망명지에서 쓴 ‘영혼의 집’ 이후 ‘사랑과 그림자에 대하여’, ‘에바 루나’, ‘영원한 계획’등을 썼습니다.

이 소설 역시 그러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남성들도 페미니즘으로 끌어들이는 묘한 마력이 있습니다.

이사벨 아옌데는 라틴 아메리카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가로 평가받고 있지요.

 

'울리지 않는 심금'

캐릭터의 색감이 너무나 강렬하고 몰입케 하는 내러티브의 힘도 대단합니다.

 

상대를 압도하여야 만족하는, 단순함과 무지와 독선과 폭력과 교활로 뭉처진 사나이.

오로지 비정(非情)의 이기적인 카리스마 '아마데오 뻬랄따'

그 대척점에 '오르뗀시아'라는 여성의 피학성 순종이 있습니다.

 

오르뗀시아가 평생 갇혀 지냈던 공간.

그 구덩이 속에서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충돌하여 철철 피흘리는 광란의 향연이 벌어졌겠지요.

내게는 그녀에게서 색정광과 순정함이 함께 오버랩되기도 하지만, 으흠... 어떤 근원적인 여성성의 비극도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흔히 봅니다만.

자신을 폭행 강간한 자를 향한 사랑에 빠진다던가,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던가 하는...

피학성 쾌락..,

 

++++

 

<사십 칠 년 후, 오르뗀시아가 묻혀 지내던 구덩이에서 구조되었을 때, 나라 방방곡곡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도 몰랐고 어떻게 거기에 오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왜 그녀를 짐승처럼 불쌍하게 가두어 두었습니까?" 기자들이 아마데오 뻬랄따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고 싶어서였소." 그는 차분히 대답했다. 그때는 이미 팔십이 되었고 정신은 언제나처럼 말짱했지만, 그토록 옛날에 일어난 일로 뒤늦게 법석을 떠는 것을 알 수 없어 했다.>

 

<농장주의 못생긴 딸과 결혼하여 아홉 명의 합법적인 자식을 두었고, 다른 여자들을 통해 정확히 수도 셀 수 없는 사생아들을 낳았지만 그 중의 어느 여자도 기억하질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확실하게 사랑의 불구자였다.>

 

<그렇게, 거의 부주의로 인해, 오르뗀시아는 전에 설탕공장으로 쓰던 지하실에 머물게 되었고 일생을 묻혀 있었던 것이었다. 그곳은 넓고, 눅눅하고, 어두웠다. 여름에는 숨막힐 듯 덥고, 건기에는 때때로 밤에 추웠다. 가구로는 낡은 집기 몇 개와 매트리스가 하나 있었다. 아마데오 뻬랄따는 그곳을 더 잘 꾸미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속으로는 이따금 그녀를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첩으로 삼아 하늘하늘한 망사 옷을 입히고 공작 깃털로 감싼 다음, 방에는 금실 차일을 두르고 채색 유리로 된 등불을 걸고, 구불구불한 다리 달린 금빛 가구들을 갖추고 푹신한 양탄자를 깔아 맨발로 걸어다닐까 하는 상상을 즐기곤 했지만 말이다.>

 

<만일 그녀가 그의 약속들을 지키라고 했더라면 어쩌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르뗀시아는 한 마리 밤새, 동굴 깊숙이 사는 눈먼 새 중의 하나 같아서 약간의 먹을 것과 물이 필요할 따름이었다. 노란 옷은 몸에서 썩어갔고 마침내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해, 언제나 나를 사랑했어." 그녀가 동네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었을 때 그녀가 한 말이었다. 그토록 오래 갇혀 있는 동안 언어의 사용법을 잊었고 목소리는 죽어 가는 사람의 소리 마냥 무슨 진동음 같았다. 처음 몇 주 동안 아마데오는 지하실에서 그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해도 고갈이 되지 않을 것처럼 그의 정욕은 불타올랐다. 사람들이 그녀를 발견할까 두렵고, 자신의 눈까지도 질투가 나서, 그녀를 자연광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빛이라곤 환기창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엷은 광선이 전부였다. 어둠 속에서 둘은 시시덕거리며 모든 감각을 난잡하기 짝이 없게 풀어놓았다. 피부는 달아올랐고 심장은 허기진 가재로 변했다. 거기엔 온갖 냄새와 미각이 최고의 가치였다. 어둠 속에서 살을 비비며 서로의 진수를 뚫고 들어갔고 가장 은밀한 욕구 속으로 잠수를 하였다. 그곳에선 그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는데, 벽들은 말소리와 키스를 증폭하여 되돌려주었다. 지하실은 봉인된 유리관으로 변하였고 둘은 양수 속을 헤엄치는 장난꾸러기 쌍둥이처럼, 아니 덩치가 큰 두 아기처럼 넋이 나가 뒹굴었다. 둘은 한 동안 완전한 친밀감 속으로 길을 잘못 들어 사랑이란 것과 착각을 하고 있었다. 오르뗀시아가 잠이 들면 아마데오는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갔다가 그녀가 깨기 전에 돌아왔다. 그리곤 다시 원기가 솟구쳐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욕망에 지쳐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맞붙은 횃불처럼 타오르며 서로를 집어삼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반대로, 아주 흔히 예견되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 아주 평범하고 대단히 시시한 그런 일 말이다. 한 달이 되기 전에 아마데오 뻬랄따는 그 장난에 싫증이 났는데, 왜냐하면 다시 그 짓을 하려고 하면 관절 마디마다 습기가 갉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동굴 바깥의 일들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었다.>

 

<세상에 대한 눈곱만치의 관심도 나타내질 않았고, 맑은 공기를 쐬러 나가보려고 하지도, 무엇에 대해 불평을 하지도 않았다. 지겨워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유년기의 어떤 순간에 사로잡혀 있었고, 고독이 그녀의 정신을 완전히 헝클어놓았던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지하 생물로 바뀌어져 갔다. 반면에 감각들은 그 무덤 속에서 날카로워져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배웠다. 정령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손을 잡아끌어 다른 세계로 데려가곤 했다. 몸뚱아리는 한 구석에 웅크린 채였지만, 미세한 메신저처럼 천체를 누비며 이성 저 너머 어둠의 영역 속에서 살았다.>

 

<그들은 도끼로 문을 부수게 한 다음, 플래시와 화재 진압 장비를 들고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에는 벌거벗은 생물이 하나 있었는데, 피부는 흐늘흐늘하여 주름이 접히고, 잿빛 머릿단을 바닥에 끌며 소음과 빛에 질려 웅얼웅얼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르뗀시아였다. 소방대원들이 비추는 가차없는 플래시 아래 거의 장님이 된 두 눈은 자개처럼 형광 빛을 반짝거렸고, 이는 다 닳아 있었으며 두 다리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품에 안은 낡은 수금이 원래 사람이었다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나라 전체가 그 뉴스에 분개하였다. 티비 화면과 신문에는 한 평생을 구멍 속에서 보내던 여인이 구조되어 누군가 어깨에 얹어준 담요를 엉성하게 걸친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결국 여자는 구출되었고 남자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굶게 내버려 둔 적이 없다오." 변명하듯 문지기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길에 앉아 수금을 뜯는데, 그 소리는 차마 들을 수 없는 단말마의 신음소리였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그녀의 관심을 딴 데 끌어 조용하게 하려고, 동전을 한 잎 던져주기도 하였다. 담 너머 아마데오 뻬랄따는 웅크린 자세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나는 것 같은 그 소리는 그의 신경을 후벼팠다. 날마다 계속되는 그 힐난은 무언가를 뜻하였겠지만 그는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가끔 가책이 왈칵 밀려드는 듯 했지만 곧 기억이 꺼지고 과거의 모습들은 짙은 안개 속에 사라졌다. 왜 자기가 그 무덤에 있는지 몰랐고 차차 빛의 세계 역시 잊어가면서 불행 속에 자신을 맡겼다.>

 

++++

 

아아, 인간의 마음.

‘오르뗀시아’와 ‘아마데오’

그 두 마음속에는 얼마나 병적인 것들이 숨어있을까요.

색감(色感)을 전혀 달리하는.

 

'오르뗀시아'의 수금(竪琴)은 단말마의 신음으로 우짖는데 '아마데오 뻬랄따'의 심금(心琴)은 도무지 울리지 않습니다.

저 '아마데오 뻬랄따'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라는건 그야말로 氷壁이니까요. (이번 달 책부족 과제 '나스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고 있는데..)

 

무자비한 폭력과 무감각한 순종.

'라틴 아메리카'의 비극성에 관한 메타포가 숨어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