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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21) -李舜臣-

카지모도 2021. 2. 1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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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3월 (1594년 3월)

 

 

 

3월 초1일 [양력 4월 20일] <己卯>

맑다. 망궐례를 드렸다. 활터 정자로 곧바로 올라가 검모포만호에게 캐묻고서 만호에게 곤장치고, 도훈도를 처형했다. 종사관(정경달)이 돌아왔다. 막 어두울 녘에 출항하려할 때, 벽방척후장 제한국이 보고하기를, "왜선이 이미 도망가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초저녁에 장흥의 2호선이 실수로 불을 내어 다 타버렸다.

 

3월 초2일 [양력 4월 21일] <庚辰>

맑다. 아침에 방답·순천·우조방장이 왔다. 저녁나절에 활터 정자로 올라가 좌조방장· 우조방장· 순천부사· 방답첨사와 활을 쏘았다. 이 날 저녁에 장흥이 와서 이야기했다. 초저녁에 강진의 모종으로 쌓아 둔 곳에 실수로 불을 내어 모두 다 타버렸다.

 

3월 초3일 [양력 4월 22일] <辛巳>

맑다. 아침에 전문(명절하례로 임금께 올리는 글월)을 절하여 보내고 곧 활터 정자에 앉았다. 경상우후 이의득이 와서 말하기를, "수군이 많이 잡아 오지 못했다고 그의 수사(원균)에게서 매를 맞고, 또 발바닥까지 맞을 뻔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저녁나절에 순천부사· 좌조방장· 우조방장· 방답첨사· 가리포 첨사· 좌수사 우후· 우수사 우후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오후 여섯 시쯤에 벽방척후장(제한국)이 보고한 내용에, "왜선 여섯 척이 오리량(마산시 합포구 구산면 고리량)·당항포 등지에 정박 해있다"고 한다. 그래서 곧 배를 소집시키라고 전령하고, 대군을 흉도 앞바다에 진치고 정예선 서른 척을 우조방장(어영담)이 거느리고 적을 무찌르도록 했다. 초저녁에 배를 움직여 지도에 이르렀다가 새벽 두 시쯤에 출항했다.

 

3월 초4일 [양력 4월 23일] <壬午>

맑다. 밤 두 시쯤에 출항했다. 진해 앞바다에 이르러 왜선 여섯 척을 뒤쫓아 잡아 불태워 버렸고, 돝섬(저도: 마산시 합포구 구산면 저도. 용두산 해발 203m)에서 두 척을 불태워 버렸다. 또 소소강에 열네 척이 들어왔다고 하므로, 조방장과 경상우수사 원균에게나가 토벌하도록 전령했다. 고성땅 아잠포(아자음포;고성 군 동해면 당거리)에서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3월 초5일 [양력 4월 24일] <癸未>

맑다. 겸사복(윤붕)을 당항포로 보내어 적선을 쳐부수고 불태웠는지를 탐문케 하였더니, 우조방장 어영담이 긴급보고한 내용에 "적들이 우리 군사들의 위엄을 겁내어 밤을 틈타서 도망했으므로 빈 배 열일곱 척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고 했다. 경상우 수사(원균)의 보고도 같은 내용이었다. 우수사가 와서 볼 적에 비가 많이 퍼붓고 바람도 몹시 불었다. 바로 자기 배로 돌아갔다. 이 날 아침 순변사에게서도 토벌을 독려하는 공문이 왔다. 우조방장과 순천·방답·배 첨사도 와서 서로 이야기하는 동안에 경상우수사 원균이 배에 이르자 여러 장수들은 각각 돌아 갔다. 저녁에 광양의 새 배가 들어왔다.

 

3월 초6일 [양력 4월 25일] <甲申>

맑다. 새벽에 망군이 보니, 적선 마흔 척 남짓이 청슬(거제시 사등면 지석리)로 건넜다고 했다. 당항포 왜선 스무한 척은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고 긴급보고를 했다. 저녁나절에 거제로 향하는데 맞바람이 거슬러 불어 간신히 흉도에 도착하니, 남해현감이 보고하되, "명나라 군사 두 명과 왜놈 여덟 명이 패문을 가지고 왔기에 그 패문과 명나라 군사 두 명을 보낸다."고 했다. 그 패문을 가져다 보니, 명나라 도사부 담종인이 적을 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몸이 몹시 괴로워서 앉고 눕기조차 불편하다. 저녁에 우수사(이억기)와 함께 명나라 군사를 만나 보고서 보냈다.

 

3월 초7일 [양력 4월 26일] <乙酉>

맑다. 몸이 극도로 불편하여 꼼짝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패문을 지어라고 하였더니 지어 놓은 글이 꼴이 아니다. 또, 경상우수사 원균이 손의갑으로 하여금 작성했는데도 그것마저 못 마땅하다. 나는 병을 무릅쓰고 억지로 일어나 앉아 글을 짓고, 정사립에게 이를 쓰게 하여 보냈다. 오후 두 시쯤에 출항하여 밤 열 시쯤 한산도 진중에 이르렀다.

 

3월 초8일 [양력 4월 27일] <丙戌>

맑다. 병세는 별로 차도가 없다. 기운이 더욱 축이 나서 종일 아팠다.

 

3월 초9일 [양력 4월 28일] <丁亥>

맑다. 기운이 좀 나은듯 하므로 따뜻한 방으로 옮겨 누웠다. 아프긴 해도 다른 증세는 없다.

 

3월 초10일 [양력 4월 29일] <戊子>

맑다. 병세는 차츰 나아지는 것 같은데, 열기는 치올라 그저 찬 것만 마시고 싶은 생각 뿐이다. 저녁에 비가 내리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3월 11일 [양력 4월 30일] <己丑>

종일 큰 비가 왔다. 어두울 무렵에는 개였다. 병세가 아주 많이 나아졌고 열도 또한 내리니 참으로 다행이다.

 

3월 12일 [양력 5월 1일] <庚寅>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몸이 매우 불편하다. 영의정에게 편지를 썼다. 장계를 정서하는 일을 마쳤다는 말을 들었다.

 

3월 13일 [양력 5월 2일] <辛卯>

맑다. 아침에 장계를 봉해 올렸다. 몸은 차츰 나아지는 것 같으나, 기력이 매우 고달프다. 그대로 회와 송두남을 내어 보냈다. 오후에 원균 수사가 왔다. 그의 잘못된 일을 말했다. 그래 서 장계를 도로 가져 와서 원사진과 이응원 등 거짓으로 왜인 노릇한 놈을 목잘라 바친 일을 고쳐서 보냈다.

 

3월 14일 [양력 5월 3일] <壬辰>

비가 내렸다. 몸은 나은 듯하지만, 머리가 무겁고 기분이 좋지 않다. 저녁에 광양현감(송전)· 강진현감(류해)· 첨지 배경남(배경남) 같이 갔다. 소문에 "충청수사(구사직)가 이미 신장에 왔다"고 한다. 종일 몸이 불편했다.

 

3월 15일 [양력 5월 4일] <癸巳>

비는 그쳤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미조항첨사가 돌아갔다. 종일 신음했다.

 

3월 16일 [양력 5월 5일] <甲午>

맑다. 몸이 매우 불편하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충청수사가 전선 아홉 척을 거느리고 진에 이르렀다.

 

3월 17일 [양력 5월 6일] <乙未>

맑다. 몸이 회복되지 않는다. 변유헌은 본영으로 돌아가고 순천도 돌아갔다. 해남현감(위대기)는 새 현감과 교대하는 일로 나가고, 황득중 등은 복병에 관한 일로 거제도로 갔다. 탐후선이 들어왔다.

 

3월 18일 [양력 5월 7일] <丙申>

맑다. 몸이 몹시 불쾌하다. 남해현감 기효근·보성군수 ·소비포권관 이영남· 적량첨사 고여우가 와서 봤다. 기효근은 파종 때문에 돌아갔다. 보성군수는 말을 하려 했다가 사정을 말하지 않고 돌아갔다. 낙안 유위장과 향소 등을 잡아 가두었다.

 

3월 19일 [양력 5월 8일] <丁酉>

맑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신음했다.

 

3월 20일 [양력 5월 9일] <戊戌>

맑다. 몸이 불편하다.

 

3월 21일 [양력 5월 10일] <己亥>

맑다. 몸이 불편하다. 명단을 작성하는 관리로 여도만호(김인영)·남도 포만호(강응표)·소비포권

관 이영남을 뽑아 담당시켰다.

 

3월 22일 [양력 5월 11일] <更子>

맑다. 몸이 약간 나아진 것 같다. 원수의 공문이 왔는데, "명나라 지휘 담종인의 자문(중국과 왕래하던 문서)과 왜장의 서계(서계:일본과 왕래하던 문서)를 조파총이 가지고 간다"고 하였다.

 

3월 23일 [양력 5월 12일] <辛丑>

맑다. 기운이 여전히 불쾌하다. 방답첨사(이순신)·흥양현감(배흥립)· 조방장(어영담)이 와서 봤

다. 견내량이 미역 쉰세 동을 캐어 왔다. 발포만호(황정록)도 와서 봤다.

 

3월 24일 [양력 5월 13일] <壬寅>

맑다. 몸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미역 예순 동을 캐 왔다. 정사립이 왜놈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왔다.

 

3월 25일 [양력 5월 14일] <癸卯>

맑다. 흥양현감과 보성군수가 나갔다. 사로잡혔던 아이(희순)가 왜의 진중에서 명나라 장수(담종인)의 가지고 왔던 자인데, 흥양으로 보냈다. 저녁나절에 활터 정자에 올라갔는데 몸이 몹시 불편 하여 일찍 숙소로 내려왔다. 저녁에 아우 여필·아들 회· 변존서·신경황이 와서 어머니 안부를 자세히 들었다. 다만 선산이 모두 산불에 탔는데, 아무도 끄지 못했다고 한다. 몹시 가슴 아프다.

 

3월 26일 [양력 5월 15일] <甲辰>

맑다. 따뜻하기가 여름 날씨 같다. 조방장·방답첨사가 와서 왔다. 발포 만호가 휴가를 받아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마량첨사·사량만호· 사도첨사·소비포가 아울러 와서 봤다. 경상우후(이의득)· 영등포만호(우치적)도 왔다가 창신도로 돌아가 겠다고 했다.

 

3월 27일 [양력 5월 16일] <乙巳>

흐리되 비는 아니 오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몸이 좀 나은 것 같다. 초저녁에 비가 왔다. 봉이 저녁에 몸이 몹시 불편하다고 한다.

 

3월 28일 [양력 5월 17일] <丙午>

종일 비가 내렸다. 조카 봉의 병세가 더 악화되었다. 몹시도 걱정된다.

 

3월 29일 [양력 5월 18일] <丁未>

맑다.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하였다. 웅천현감· 하동현감·소비포권관 등이 와서 봤다. 장흥부사·방답첨사도 와서 봤다. 저녁에 여필과 봉이 같이 돌아갔다. 봉은 중 병이 들어 돌아갔으니 밤새도록 걱정으로 새웠다. 어두워서 방충서와 조서방의 사위 김함이 왔다.

 

3월 30일 [양력 5월 19일] <戊申>

맑다. 식사를 한 뒤에 활터 정자로 올라가 충청군관·도훈도를 처벌하고 낙안유위장·도병방 등을 처벌했다. 저녁나절에 삼가현감 고상안이 와서 봤다. 저녁에야 숙소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