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네플류도프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골목길에서는 아직도 근처에서 나온 농부가 마차를 끌고 지나가면서 기묘한 목소리로 "우유 사려, 우유, 우유!"라고 외치고 있었다.
간밤에 처음으로 포근한 봄비가 내렸다. 포장되지 않은 곳에서는 파릇파릇한 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뜰에 있는 자작나무에서는 녹색의 솜털이 솟아나고 벗나무와 포플러는 그 길쭉한 향기로운 싹들을 벌렸으며 저택이나 상점에서는 즐비하게 한 줄로 늘어선 노점 둘레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법석거리고 있었다. 겨드랑이에 장화를 낀 사람과 반질반질하게 다림질한 바지와 조끼를 어깨에 걸친 누더기옷 차림의 사람들이 벌써부터 돌아다니고 있었다.
술집 근처에는 휴무일로 풀려나온 사람들로 벌써 붐비고 있었다. 남자들은 말쑥한 반코트에 번쩍거리는 장화를 신고 있었으며, 여자들은 화려한 비단 스카프로 머리를 묶고 유리구슬로 장식한 외투를 입고 있었다. 노란 권총 혁대를 찬 순경들은 무엇인가 따분하고 지루함을 달래 줄 만한 사건이라도 없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각자 자기 담당 구역에 서 있었다.
가로수가 늘어선 좁은 길이나 이제 막 파릇하게 돋아난 잔디밭에서는 아이들과 개가 한데 어울려 장난을 치며 뛰놀고 있었고, 할머니들은 그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서로 즐겁게 잡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햇볕이 비치지 않는 쪽은 아직도 냉랭하고 습기가 차 있었지만 말라 버린 길 한복판에서는 무거운 짐마차가 삐걱거리며 가고, 철도 마차는 방울을 울리며 지나갔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여러소리와 지금 감옥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과 같은 미사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고 여기저기서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 때문에 공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제각기 나들이옷을 입고 서둘러 성당으로 가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를 태운 마차는 감옥 앞까지 가지 않고 감옥으로 가는 길 모퉁이에서 멎었다.
보따리를 옆에 낀 몇 명의 남녀가 감옥으로부터 백 보 가량 떨어진 길 모퉁이에 서 있었다. 오른쪽에는 별로 크지 않은 목조 건물이 늘어서 있었고, 왼쪽에는 무슨 간판을 내건 2층집이 한 채 있었다. 그 앞에 석조 건물의 거대한 교도소가 있었지만, 면회자는 그 곳까지 갈 수가 없었다. 총을 멘 보초가 왔다갔다 하면서, 거기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이 보초 맞은편에 있는 오른쪽 목조 건물의 옆문 옆에는 금줄이 쳐진 제복을 입고 장부를 손에 든 간수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면회자가 그리고 가서 면회하려는 사람의 이름을 대면 그것을 장부에 써 넣곤 하였다. 네플류도프도 그리로 가서 예카레티나 마슬로바 이름을 댔다. 금줄이 쳐진 제복의 간수가 그것을 기입했다.
"왜 아직 들여 보내지 않는 겁니까?"하고 네플류도프가 물어 보았다.
"지금 미사중입니다. 미사가 끝나면 들어가시게 됩니다."
네플류도프는 기다리고 있는 무리 쪽으로 물러섰다. 그 때 갑자기 사람들 속에서 남루한 옷에 찌그러진 모자를 쓰고 맨발에 헌 구두를 신은 사나이가 상기된 얼굴로 허둥지둥 뛰어나오더니 감옥 쪽으로 가려고 했다.
"이봐, 어디로 가는 거야?"하고 총을 멘 보초가 소리쳤다.
"네깐놈이 웬 잔소리냐?" 남루한 옷의 사나이가 보초의 고함 소리에는 아랑곳없이 이렇게 대꾸하면서 되돌아왔다. "들여 보내지 않겠으면 그만둬. 기다릴 테니. 쳇, 장군이나 된 것처럼 아니꼽게 굴어."
사람들 속에서 그 말 한번 잘했다는 듯한 폭소가 터져나왔다. 면회자 대부분은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완전한 누더기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간혹 가다 개중에 괜찮게 차린 사람들도 있었다. 네플류도프의 바로 옆에는 굉장한 옷차림을 하고 혈색이 좋은 얼굴에 말쑥히 면도질을 한 뚱뚱한 나자가 서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보따리는 보기에 속옷같았다. 네플류도프는 그 사나이에게 여기에 처음으로 왔느냐고 물었다. 보따리를 든 사나이는 일요일마다 온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서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는 어느 은행의 수위로 있는데 지폐 위조범으로 체포된 동생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사람좋은 이 사나이는 네플류도프에게 자기의 신상 이야기를 모조리 털어놓은 다음, 그의 사정도 알고 싶어했으나, 때마침 당당한 순종 흑마가 끄는, 고무 바퀴가 달린 마차를 타고 온 대학생과 베일을 쓴 여자의 모습이 두 사람의 눈에 띄었다. 대학생은 커다란 보따리를 안고 있었다. 그는 네플류도프에게 다가오더니 자기는 자선을 위해 빵을 가지고 왔는데 어떻게 하면 이것을 죄수들에게 차입할 수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것은 저의 약혼녀가 바라는 일입니다. 이 사람이 제 약혼녀입니다. 이사람의 부모님께서 죄수들에게 차입해 주라고 권하셨어요."
"나도 오늘 처음 왔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 사람에게 물어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네플류도프는 오른편에 장부를 들고 앉아 있는 금줄이 쳐진 제복의 간수를 가르키면서 말했다.
네플류도프가 대학생과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한가운데 조그만 창문이 달린 감옥의 커다란 철문이 열리더니, 그 속에서 군복 차림의 장교가 다른 간수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러자 장부를 든 간수가 면회자 접수가 시작됐다는 것을 알렸다. 보초가 옆으로 비켜 섰다. 면회자들은 모두 남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감옥 입구 쪽으로 밀려갔다. 그 중에는 달음질쳐가는 사람도 있었다. 철문에는 간수가 한 명 서 있었는데 면회자들이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커다란 소리로 16, 17 하고 숫자를 불렀다. 건물 안에서도 한 사람의 간수가 한 사람 한 사람씩 몸수색을 하면서 역시 다음 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를 세고 있었다. 그것은 밖으로 내보낼 때의 사람 수를 확인하여 면회자를 한 사람도 감옥 안에 남겨놓지 않도록, 또 한 명의 죄수라도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수를 세고 있던 간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네플류도프의 등을 한 손으로 툭 쳤다. 이 간수의 손이 닿았을 때 네플류도프는 한순간 모욕감을 느꼈으나 곧 자기가 무엇 하러 여기에 왔는가를 생각하고 이따위 일에 불만을 가지고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쇠창살이 달린 조그만 창문이 여러 개 있는 둥근 천장의 방이 있었다. 집합소라고 불리는 이 방에서 네플류도프는 뜻밖에도 벽이 움푹 팬 곳에 걸려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상을 보았다.
'이런 것을 무엇 때문에 여기에 걸어 놓아을까? ' 그는 자기의 상상 속에서 무의식중에 그리스도 상을 죄수들과 결부시키지 않고 해방된 사람들과 결부시키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네플류도프는 빠르게 걸어가는 면회자들을 먼저 보내고 그 뒤에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 곳에 감금되어 있는 죄수들에 대한 공포심과, 어제의 그 젊은이나 카추샤와 같이 죄 없이 이 곳에 갇혀 있는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여민과, 눈앞에 닥쳐온 면회를 앞두고 두려움과 감격스러움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첫째 번 방에서 나올 때, 그 곳 구석에 서 있던 간수가 뭐라고 했으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네플류도프는 그 말엔 상관치 않고 다만 면회자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뒤따라갔는데 그 길은 여죄수 감방 쪽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 남자 죄수 감방으로 가는 쪽이었다.
성미가 급한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그는 제일 마지막으로 면회실에 들어섰다. 그가 문을 열고 그 방에 들어서자 수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은 굉음으로 들려왔다. 방을 둘로 갈라놓고 철망에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 사람들 곁으로 가까이 가 보고서야 네플류도프는 비로소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입구의 반대편 벽에 창이 나있는 이 방은 한 겹이 아니라 두 겹의 철망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철망은 천장에서 마룻바닥까지 막혀 있었으며 그 철망 사이로 간수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철망 저쪽에는 죄수들이 있었으며, 이쪽에는 면회자들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두 겹으로 된 철망은 2 미터의 간격이 있었으므로 무엇을 건네주기는커녕 얼굴을 똑똑히 보는 것조차----특히 눈이 나쁜 사람에게는---불가능할 정도였다.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았으며 알아듣도록 하려면 힘껏 고함을 질러야만 했다. 양쪽에서 서로의 모습을 잘 알아보고, 하고 싶은 말을 잘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아내, 남편, 아버지, 어머니, 아이 들이 철망에 얼굴을 바싹 대고 있었으나, 저마다 상대편이 알아듣도록 말하려고 악을 쓰고 있는데다가 옆의 사람까지 역시 그와 같이 소리쳐서 그들의 목소리가 서로 방해를 할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남을 압도하려고 모두들 더 큰소리로 기를 쓰며 외치고 있었다. 그 때마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아우성 소리가 울리고, 거기에다 여자들이 악을 쓰는 소리도 한데 썩여 들렸기 때문에 네플류도프는 방 안에 한 발 들여놓자마자 깜짝 놀랐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그들의 표정을 봄으로써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또 어떤 사이인지를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네플류도프의 바로 옆에는 머리에 수건을 쓴 노파가 철망에 바싹 매달려 턱을 부들부들 떨며 머리를 절반쯤 깎은 파리한 얼굴의 젊은이에게 무엇인가 떠들어 대고 있었다. 젊은 죄수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상을 찌푸리면서 주의 깊게 노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노파 옆에는 소매 없는 외투를 입은 젊은이가 서 있었다. 그는 불만스러운 듯한 얼굴에 희끗희끗한 턱수염을 기른 자기와 얼굴이 닮은 죄수가 이야기하는 것을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듣고 있었다. 그 옆에는 고급모직 목도리를 머리에 덮어쓴 여자가 젖먹이를 안은 채 마룻바닥에 앉아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아마도 머리를 깎인데다가 죄수복을 입고 쇠고랑을 찬 백발의 남편 모습을 처음으로 본 모양이었다. 그 여자의 바로 옆에는 조금 전에 네플류도프와 이야기하던 은행 수위가 건너편에 서 있는, 눈에 광채가 나는 대머리 죄수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자기도 이런 상태에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런 규칙을 만들어 낸 사람들, 그리고 이 규칙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속에서 불같이 끓어오름을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무서운 상태에 놓여 있어도, 또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같은 우롱에 대해서도 시림들이 아무런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데 대하여 그는 적지 않이 놀랐다. 호위병도, 간수도, 면회자도, 죄수도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정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자기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자각하고 사회와의 괴리를 의식하면서 무엇인가 이상하고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한 5 분 가량 그 방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자 뱃멀미 같은 정신적인 구토감이 그의 가슴을 메스껍게 했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R/B> 부활 (42) -톨스토이- (0) | 2021.08.17 |
---|---|
<R/B> 부활 (41) -톨스토이- (0) | 2021.08.16 |
<R/B> 부활 (39) -톨스토이- (0) | 2021.08.14 |
<R/B> 부활 (38) -톨스토이- (0) | 2021.08.13 |
<R/B> 부활 (37) -톨스토이- (0) | 2021.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