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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39)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14.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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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소장을 비롯하여 마슬로바에 이르기까지 사제와 이 미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어느 한 사람도, 사제가 갖은 기괴한 소리로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면서 찬송한 예수, 그 자신이 실은 여기서 행해졌던 모든 일을 금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는 사제라는 교사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행하는 무의미하고도 모독적인 요술을 금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딴 사람들을 스승이라고 부르는 일도 분명히 금했다. 또한 회당 안에서의 기도를 금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오직 혼자서만 기도하라고 일렀던 것이다. 그는 회당 안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진리 속에서 행해야한다고 말했다. 특히 예수는 여기서 행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을 재판하고 감금하고 괴롭히고 욕을 보이고 벌을 주는 일을 금했을 뿐만 아니라, 죄수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기 위해서 왔노라고 말하면서 타인에 대한 일체의 폭력과 강제를 금했던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그 어떤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곳의 모든 일이 실상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더없는 모독이며 조소라는 것을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또 사제가 들고 와서 여러 사람들에게 키스를 시킨, 끝에 칠보 메달이 달린 도금 십자가는 지금 여기서 그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같은 일을 금한 탓으로, 그리스도가 처형되었던 그 형구를 본뜬 것에 불과하지만, 누구 한 사람 그것을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빵과 포도주를 입에 넣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는 사제들이야말로 빵 조각과 포도주로써가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자기 몸처럼 여기던 '이 어린 양들'을 잘못 인도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져온 복음을 사람들에게 숨기고 그들에게서 최대의 행복을 빼앗고 그들로 하여금 참혹한 괴로움을 맛보게 함으로써 그 본뜻을 정녕 아무도 생각지 못하게 했다.

사제는 아무 거리낌 없이 담담하게 어제와 같은 모든 일을 행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어릴 때부터 이것이야말로 성인들이 믿어 온 오직 하나의 진실한 신앙이며, 성직자와 관리도 이것을 믿고 있다는 생각 아래 지금까지 키워져 왔기 때문이다. 그가 믿고 있는 것이 빵이 살로 되었다든가, 말을 길게 늘어놓으면 영혼에 유익하다든가, 혹은 자기가 실제로 하느님의 살을 한 조각 먹었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믿는 것은 이런 것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신앙이었다. 특히 그로 하여금 이런 신앙을 굳게 믿게 한 것은, 이 신앙의 요구를 이행함으로써 벌써 18년간이나 일정한 수입을 얻어 자기 가족을 먹여 살려 왔고, 아들을 중학교에, 그리고 딸을 신학교까지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제는 사제보다 더 굳게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신앙의 가르침의 본질은 완전히 잊어버렸지만 그저 장례식이라든가 추도식이라든가 미사라든가, 보통의 감사 기도라든가 찬미가가 붙은 감사 기도하든가 하는 것들에 일정한 가격이 정해져 있어서, 참된 크리스트교도라면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장작이나 밀가루나 감자를 파는 장사꾼들과 마찬가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의 필요성을 냉정한 마음으로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외치기도 하고 판에 박은 일정한 구절의 노래를 불러대기도 하고 낭독하기도 했다.

한 걸을 더 나아가 소장이나 간수에 이르러서는 이 신앙의 가르침이 어떠하며 성당에서 행하여지는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런 것은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상관과 황제께서 이 종교를 믿는 이상 자기들도 그것을 믿지 않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만 믿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막연하긴 했지만(그들 자신도 어째서 그런지 뚜렷이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이 신앙이 자기네들의 잔인무도한 직무를 두둔해 주는 듯이 느껴졌던 것이다.

만일 이런 신앙이 없었더라면 지금이 그들처럼 거리낌없이 남을 괴롭히는데 전력을 기울이기가 어려웠을 것이거니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교도관은 매우 마음씨가 선량한 사람이어서, 만일 이 신앙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지 못했더라면 이런 생활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움직이지도 않고 똑바로 서서 열심히 절을 하며, 성호를 긋고, <케루빔과 더불어>라는 성가를 부를 때면 자진하여 앞으로 걸어가 성체를 모시는 아이들을 안아 사제 쪽으로 내밀어 주기도 했던 것이다.

이 신앙이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는 일체의 기만을 뚜렷이 꿰뚫어보고 마음속으로 냉소하고 있는 몇 사람을 제외한 대다수의 죄수들은 이러한 금빛 찬란한 성상과 성촉과 성작과 제의와 십자가와 '더없이 아름다우신 예수'라든가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수없이 되풀이되는 뜻모를 말 속에 무엇인가 신비로운 힘이 들어 있어 그것에 의해서 현세와 내세에서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기도와 미사와 촛불에 의해 현세의 행복을 누리려고 이미 몇 번이나 시도해 보고, 또 사실 그 행복은 얻지 못했지만-그들의 기도는 한번도 성취된 적이 없었다-그러한 실패는 우연한 일에 불과하며, 학자들이나 사제들에 의해 권장되고 있는 이 제도는 비록 현세에서 이익을 얻지 못할지라도 내세를 위해서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제도임에 틀림없다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마슬로바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사 중에 경건함과 지루함이 뒤섞인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처음 한동안은 칸막이 뒤의 군중들 속에 있어서 자기네 동료들 이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었지만 성체를 모실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고 그녀도 페도샤와 함께 앞으로 나가자, 소장의 모습이 보이고, 다시 그 뒤에 간수들 틈에 끼인 하얀 턱수염을 기름 아마빛 머리의 농부도 눈에 띄었다. 그 농부는 페도샤의 남편이었는데, 그는 자기 아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슬로바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찬가를 부르는 동안 그를 열심히 쳐다보기도 하고 페도샤와 소곤거리기도 하다가 여러 사람들이 성호를 긋고 절을 할 때에만 자기도 따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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