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R/B> 부활 (2부, 3)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9. 7. 05:28
728x90

 

 

3

 

네플류도프는 쿠즈민스코예를 떠나 고모한테서 유산으로 물려받은 영지로 향했다. 그 곳은 카추샤를 처음으로 만났던 곳이었다. 그는 이 영지에서도 쿠즈민스코예에서 한 것처럼 토지 문제를 처리하려고 생각했다. 그밖에 카추샤의 일과, 카추샤와 자기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갓난애의 일, 그 갓난애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인지,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죽었는지, 가능한한 확실히 알고 싶었다. 그는 아침 일찍이 파노보 마을에 도착했는데, 집안에 마차를 들여놓았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모든 건물, 특히 안채의 황폐하고 퇴락한 모습이었다. 전에는 파랗게 빛이 나던 지붕이 오랫동안 칠을 하지 않아서인지 뻘겋게 녹이 슬고, 아마 폭풍 때문인지 여러 장이 뒤집혀져 있었다. 안채를 둘러싼 얄팍한 판자는 군데군데 누군가의 손으로 뜯겨져 있었고, 녹슨 못이 구부러져 있었다. 입구의 계단은 두 개 다-앞문과, 그리고 그에게 특별한 추억을 남겨 준 뒷문도-모두 허물어져 나무 뼈대만 남아 있었다. 몇 개의 창문은 유리 대신 얄팍한 판자로 가려져 있었고, 관리인이 살고 있던 별채와 부엌과 마구간도 모두 낡아빠져서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다만 정원의 풀만은 무성하게 자라 때마침 꽃이 만발하였고, 울타리 저쪽 활짝 핀 벚꽃과 사과, 살구 등이 마치 흰구름처럼 보였다. 라일락 산울타리에는 12년 전 네플류도프가 열여섯 살이 된 카추샤와 그 그늘 밑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구덩이에 빠져 라일락 나무숲뒤의 쐐기풀에 찔렸을 때와 똑같이 라일락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소피야이바노브나 고모가 안채 옆에 심은 낙엽송은 그 당시 말뚝만하던 것이 지금은 대들보만하게 자라 있었으며, 황록색의 부드러운 솜털 같은 잎으로 덮여있었다. 냇가에는 물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고, 물방앗간이 있는 둑에 이르러서는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개울 저쪽 풀밭에서는 마을의 농부들이 키우는 여러 가지 털빛을 한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신학교를 중퇴한 관리인이 미소 띤 얼굴로 뜰에서 네플류도프를 맞아들였다. 그는 연방 미소를 지으면서 네플류도프를 사무실로 안내했고, 무슨 특별한 일을 약속이라도 하듯이 싱글벙글하면서 칸막이 뒤로 사라졌다. 칸막이 벽 뒤에서 무엇인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조용해졌다. 네플류도프를 역에서 태워다 준 마부가 찻삯을 받아 가지고 딸랑딸랑 방울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몰고 사라져 버리자 사방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 수놓은 속옷을 입고, 술을 너덜너덜하게 늘어뜨린 귀고리를 단 맨발의 계집애가 창가로 뛰어가자, 뒤이어 농부 한 사람이 두툼한 장화의 징소리를 요란스럽게 내며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갔다.

네플류도프는 창가에 앉아서 정원을 내다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조그만 쌍여닫이 창문으로 신선한 봄의 향기와 일구어 놓은 땅의 흙냄새가 들어왔고, 산들바람이 땀 맺힌 그의 이마에 늘어진 머리카락과 칼자국투성이의 창턱 위에 놓여 있는 종이를 하늘하늘 날려 주었다. 냇가에서는 아낙네들의 빨래 방망이 소리가 들려왔다가는 햇빛에 반짝이는 맑은 강물 위로 퍼져나갔다.

방앗간에서는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박자를 맞추며 들려왔다. 파리 한 마리가 놀란 듯 귓전을 윙하고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자 불현 듯 자기가 젊고 순수했던 시절인 그 옛날 생각이 밀려왔다. 그 때도 역시 아낙네들의 방망이 소리가 들려왔었다. 봄바람이 땀에 젖은 그의 이마에 산들산들 불어왔고, 칼자국이 나 있는 창턱 위에 놓여 있는 종이가 팔락이고 있었다. 역시 파리가 귓전을 스쳐갔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그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18세의 소년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지만 그 때의 그 젊고 순순하고 한없이 위대한 미래의 가능성에 넘쳐 있었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그와 동시에 자기가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으며, 그 옛날의 일들은 모두 실재해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자, 무섭도록 서글퍼졌다.

"언제 식사를 하기겠습니까?"하고 관리인이 미소 지으면서 물었다.

"언제든지 좋소. 그러나 별로 시장하지 않으니, 마을이나 한 바퀴 돌아보겠소."

"그럼 먼저 안채로 들어가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깨끗이 정리해 놓았습니다. 밖은 좀 뭣합니다만...... 쭉 한번 둘러보시는게 어떨지......."

"아니, 그것은 나중에 보기로 하지. 그보다 한가지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 마을에 마트료나 하리나(카추샤의 이모)라는 여자가 있소?"

"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밀주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저는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꼬리를 잡아서 잔소리를 해주곤 합니다만, 고소를 하기에는 불쌍합니다. 늙은 몸에 손자들을 키우고 있으니까요."하고 관리인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그것은 주인의 호감을 사려는 것과, 네플류도프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를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을 나타내는 미소였다.

"그 노파는 어디서 살고 있는지, 가서 잠깐 만나 보았으면 좋겠는데."

"마을 제일 끝에서 세 번째 집입니다. 왼편에 벽돌집이 있고, 그 뒤쪽에 노파가 사는 오두막집이 있습니다. 그보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하고 관리인은 기쁜 듯이 벙글거리며 말했다.

"아니, 고맙소. 나 혼자도 갈 수 있고. 그보다 당신은 농부들을 한 곳에 모이도록 연락해 주시오. 난 토지 문제로 그들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일이 있으니까."하고 네플류도프가 일렀다. 그는 이 곳에서도 쿠즈민스코예 마을에서처럼 가능하다면 오늘 밤 안으로 농부들과의 이야기를 끝맺을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