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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나서자 네플류도프는 탄탄히 다져진 오솔길에서 알록달록한 무늬의 앞치마를 두르고 귀에는 장식술 귀고리를 달고, 질경이와 백산다가 우거진 목장 뜰을 가로질러 맨발로 재빠르게 걸어오는, 다리가 굵은 시골 처녀와 마주쳤다. 집으로 돌아오고 있던 그녀는 오른손에 빨간 볏이 흔들리는 수탉은 가만히 품에 안겨 있는 듯했으나, 이따금 눈을 두리번거리며 시커먼 한쪽 발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처녀의 앞치마를 발톱으로 박박 긁고 있었다. 시골 처녀는 주인 앞으로 다가오자, 빠른 걸음을 보통 걸음으로 늦추어 가다가 주인과 마주치자 우뚝 멈추어 서서 고개를 뒤로 번쩍 쳐들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는, 네플류도프가 옆으로 지나가자, 수탉을 안은 채 앞으로 달려갔다. 그는 우물 쪽으로 내려가는 도중, 이번에는 더럽고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구부정한 등에다 물이 철철 넘치는 물통을 메고 오는 노파와 부딪쳤다. 노파는 네플류도프를 보자 물통을 가만히 내려놓고 아까 처녀와 똑같이 고개를 바로 쳐들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우물을 지나자 바로 마을이 나타났다. 맑게 갠 무더운 날씨였다. 아침 10시인데도 날씨는 후끈후끈 찌기 시작했고,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라서는 이따금씩 태양을 가리곤 했다. 코를 찌르는 듯한 거름 냄새가 마을에서 풍겨왔다. 그 냄새는 반짝반짝 빛나는 산길을 줄지어 올라가고 있는 짐마차에서 풍겨오는 것 같았으나, 그보다는 주로 네플류도프가 지나가는 집집의 안마당에 파헤쳐 놓은 거름 더미에서 열어 놓은 문을 통해 풍겨오는 냄새가 더 지독하고 역했다. 거름이 묻은 바지와 셔츠를 입은 맨발의 농부들은 짐마차 뒤를 따라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키가 크고 뚱뚱한 신사가 햇빛에 번쩍이는 비단 리본이 달린 회색 모자를 쓰고,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반짝이는 은손잡이가 달린 지팡이로 가볍게 땅을 짚으면서 마을 길 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모습을 자꾸 뒤돌아보았다.
들에서 돌아오는 농부들은 빈 마차를 달리며 흔들거리는 마부석에서 모자를 벗고는, 깜짝 놀란 얼굴로 자기들이 다니는 길에 나타난 이 낯선 사람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여자들은 현관에 서거나 문 밖까지 뛰어나와서, 서로 눈짓 손짓해 가며 그를 전송했다.
네플류도프는 네 번째 집을 지나가려고 할 때 요란스럽게 달려오는 짐마차 때문에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그 짐마차 위에는 거름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사람들이 앉게 편평하게 멍석이 깔려 있었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맨발로 마차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짚신을 신은 젊은 농부가 성큼성큼 발을 내디디며 말을 문 밖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다리가 길고 털이 푸르스름한 망아지가 문 밖으로 쫓겨나오다가 네플류도프를 보고는 질겁을 해서 마차 옆으로 비켜서다가 다리가 바퀴에 부딪치자, 깜짝 놀라서는 때마침 문에서 무거운 짐을 끙끙거리며 끌고 나오는 어미말 앞으로 달려갔다. 어미말은 근심스러운 듯이 히힝 소리를 냈다. 그 뒤를 따라서 줄무늬 바지에 더러운 셔츠를 걸친, 역시 어깨뼈가 불거져 나오고 깡 말라 원기가 왕성해 보이는 노인이 맨발로 말을 몰고 나왔다.
말들이 잿빛을 띤 말똥이 흩어져 있는 길로 나가자, 노인은 문이 있는 데까지 되돌아와서 네플류도프에게 인사를 했다.
"나리께선 우리 여지주님 조카님이신가요?"
"네, 조카올시다."
"잘 오셨습니다. 그러시다면 저희들을 만나러 오셨습니까?"하고 노인은 수다스럽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고. 그런데 어떻게들 지내고 있지요?" 네플류도프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이렇게 되물었다.
"어떻게들 지내다뇨! 우리들의 생활이란 말씀이 아니죠." 수다스러운 노인은 노래라도 부르듯 흥겹게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어째서 그렇게 형편없단 말입니까?" 네플류도프는 문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이것도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말씀이 아닙니다." 네플류도프의 뒤를 따라서 거름이 깨끗이 치워져 땅바닥이 드러나 있는 처마 밑으로 발길을 옮기며 노인이 대답했다.
네플류도프는 노인을 따라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바로 저기 보시다시피 제 식구는 모두 12명이나 됩니다." 노인은 두 여자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여자들은 수건을 늘어뜨리고, 땀에 젖은 치맛자라을 걷어올리며, 장딴지를 절반이나 거름에 묻힌 채, 쇠스랑을 손에 들고 거름더미 속에 서 있었다.
"매달 적어도 스물대여섯 관의 보리를 사야 되는데 어디서 그 돈을 구해 오겠습니까?"
"당신네 밭에서 나오는 것으로 모자란단 말이오?"
"우리 밭이라고요?"하고 비웃기나 하듯이 되물었다. "우리 밭에서는 세 사람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작년에는 여덟 단밖에 추수를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크리스마스까지도 먹지 못했지요."
"그럼, 어떻게 살아가시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식 한 놈을 머슴으로 보내고, 나리 사무실에서 빚을 냈습지요. 그러나 그것도 대제일 전에 다 써버렸기 때문에 지대도 물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지대는 얼마나 되오?"
"저희는 넉 달마다 17루블씩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는지, 내살림이지만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봐도 좋겠소?"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묻고 앞마당을 지나 말끔히 쓸어 넣은 자리에서,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채로 쇠스랑으로 흐트려 놓은, 지독한 냄새가 풍기는 싯누런 거름더미 쪽으로 걸어갔다.
"이르다뿐인가요! 어서 들어가십시오."하고 노인은 대답하면서, 맨발의 발가락 사이로 거름이 비죽비죽 새어나오는 발을 재빨리 옮겼다. 그는 네플류도프의 앞장을 서더니 그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여자들은 머리에 쓰고 있는 수건을 매만지고 옷의 깃을 바로잡으면서 자기네 집으로 들어오는, 소매에 황금빛 커프스를 단 말쑥한 신사를 호기심 어린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집 안에서 속옷만 걸친 두 계집아이가 뛰어나왔다. 네플류도프는 모자를 벗어들고 허리를 굽혀 좁고 더러운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는 시큼한 음식 냄새가 풍겼으며, 베틀 두 대가 방 안 가득 놓여 있었다. 난롯가에는 소매를 걷어올린 비쩍 마르고 햇볕에 까맣게 탄 팔을 드러낸 노파가 서 있었다.
"나리께서 오셨소. 귀하신 손님이오."하고 노인이 말했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노파는 걷어올렸던 소매를 내리면서 상냥하게 말했다."
"어떻게들 살고 계신지 보고 싶어서 왔소."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살고 있지요. 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해서 언제 누가 깔려 죽을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저 늙은이는 걱정할 것 없다고 하지요. 임금님처럼 태평하게 살고 있답니다."하고 성질이 있어 보이는 노파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마침 지금 점심을 차리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먹이려고요."
"평소 무엇을 먹습니까?"
"무엇을 먹느냐교요? 먹는 거야 고급이지요. 먼저 빵에다 크바스(라이보리와 엿기름으로 만든 음료수)를, 또 다르게는 크바스에다 빵을 먹습니다." 노파는 반쯤 썩은 이빨을 드러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농담이 아닙니다. 당신네들이 먹는 것을 좀 보여 주구려."
"먹는 것을요?" 웃으면서 노인이 말했다. "우리가 먹는 것이란 뻔한걸요. 보여드려요, 할멈."
노파는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 농부들이 먹는 것을 보시고 싶다니, 나리도 참 자상하시군요. 꼭 눈으로 보셔야 되겠다니…… 방금 말씀드린 대로 빵과 크바스, 거기에 수프입니다. 간밤에 한 여편네가 엿기름 찌꺼기를 가져왔기에, 그것으로 수프를 만들었지요. 그리고 감자도 있고요."
"그게 전부란 말이오?"
"더 없느냐고요? 그저 우유를 넣어서 희멀겋게 만드는 정도랍니다." 노파는 웃으면서 문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며,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사내아이들, 계집아이들, 그리고 어린애를 안은 여자들이 서로 떼밀며, 농부의 음식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파는 자신 있게 나리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나리, 우리들의 생활이란 말이 아닙죠." 노인은 말했다. "어딜 들어오려고 하는 게야!"하고 문가에 모여 선 사람들에게 노인이 소리를 꽥 질렀다.
"그럼 잘들 있어요." 네플류도프는 아지 못할 수치심과 어색한 기분을 느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들 같은 사람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노인은 말했다.
입구 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네플류도프에게 길을 비켜 주기 위해 서로 밀치고 당기고 했다. 네플류도프는 한길로 나와서 언덕길로 올라갔다. 그의 뒤를 따라 맨발릐 두 아이가 뛰어왔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아이는 애초에는 하얀 것이었으나 지금은 새까맣게 때가 묻은 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다른 한 아이는 색이 바랜 분홍빛 셔츠를 입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들을 돌아다보았다.
"이번엔 어디로 가세요?" 흰 셔츠를 입은 애가 물었다.
"마트료나 하리나한테 가겠다. 너희들 그 사람을 아니?"
진홍빛 셔츠를 입은 조그만 사내애가 무엇이 우스운지 킬킬거렸으며, 나이를 먹은 소년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어느 마트료나 말이에요? 할머니 말이에요?"
"응 그래, 할머니다."
"아!" 사내아이는 목소리를 길게 뺐다. "그럼, 세묘니하 할머니군요. 그 할머닌 마을 끝에 살아요. 우리들이 모셔다 드릴게요. 얘, 페드카, 우리 같이 모셔다 드리자."
"말은 어떡하고?"
"염려 마, 괜찮대도."
페드카가 동의했으므로 그들은 같이 윗마을 쪽으로 걸어오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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