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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6)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9. 11.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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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네플류도프는 방문과 현관에 다시 머리를 부딪치며 밖으로 나왔다. 때묻은 흰 셔츠와 진홍빛 셔츠를 입은 두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밖에 새 얼굴이 댓 명 끼여 있었다. 젖먹이를 안은 아낙네도 몇 명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낡아빠진 헝겊으로 모자를 만들어 씌운 핏기 없는 갓난애를 안은, 앞서 본 그 여자도 끼여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시들어 보이는 얼굴에 줄곧 기묘한 미소를 띠면서 구부러진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 어린애가 고통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낙네가 누구냐고 물어 보았다.

"저 여자가 내가 아까 말한 아니샤예요."하고 나이 먹은 사내아이가 대답했다.

네플류도프는 아니샤에게 몸을 돌려 말을 걸었다.

"어떻게 살고 있소?" 그는 물었다. "무엇으로 연명하는가 말이오?"

"무엇을 먹고 사느냔 말이죠? 빌어먹지요." 아니샤는 이렇게 말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어린애는 애처로워 보이는 가느다란 다리를 움츠리면서 온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네플류도프는 지갑을 꺼내 10루블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가 그 곳에서 두 걸음도 옮기기 전에 갓난애를 안은 또 다른 여자가 쫓아왔다. 뒤이어 노파, 그리고 또 다른 여자가 따라왔다. 모두가 자기들의 가난한 처지를 호소하고 도와 달라고 했다. 네플류도프는 지갑에 있던 잔돈 60루블을 몽땅 털어 주고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집으로, 즉 관리인이 살고 있는 별관으로 돌아왔다. 관리인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네플류도프를 맞아들이면서 오늘 밤 농부들이 모인다고 보고했다. 네플류도프는 고맙다고 말하고 방에 들어가지 않고 뜰로 나와, 무성한 풀 위에 하얀 사과꽃이 만발한 오솔길을 거닐면서 자기가 방금 목격한 모든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별관 근처는 처음에는 조용했으나, 곧 관리인의 방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 여자가 서로 상대방의 말을 가로채며 외치는 사이사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성싶은 관리인의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플류도프는 귀를 기울였다.

"내 힘으로는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데, 왜 남의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까지 빼앗고 야단이에요."하고 독살스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목장에 뛰어들었을 뿐이잖아요."하고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려 달라니까요. 어째서 소는 굶기고 애들 우유도 못 먹이게 괴롭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돈으로 갚든지 일을 해서 갚든지 하란 말이야."하고 관리인의 차분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네플류도프는 정원에서 나와 입구의 층계 쪽으로 다가갔다. 그 곳에는 머리칼이 흐트러진 두 여자가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은 해산이 임박한 만삭의 배를 안고 있었다. 입구의 우층계에는 관리인이 범포로 만든 외투 포켓에 두 손을 찌른 채 서 있었다. 주인을 보자 여자들은 입을 다물고 흘러내린 머릿수건을 매만지고 있었으며, 관리인은 포켓에서 손을 빼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관리인의 말에 의하면, 농부들이 일부러 자기들의 송아지뿐만 아니라 어미소까지 지주네 목장으로 들여 보낸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이 여자들의 암소 두 마리가 목장에 들어와 있기에 붙잡아서 외양간에 가둬 버렸다는 것이었다. 관리인은 소 한 마리에 30코페이카씩의 벌금을 내든지, 아니면 이틀동안의 노동으로 배상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첫째 자기네 소들은 조금 들어갔을 뿐이고, 둘째 그만한 돈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셋째 일을 하기로 약속할 테니까,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뙤약볕에 처량하게 울고 있는 소만은 빨리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몇 번씩이나 당신들에게 똑똑히 일러 두지 않았냔 말이야." 벙글거리는 관리인은 마치 네플류도프에게 증인이나 되어 달라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점심때에 소를 끌어 낼 때는 자기 가축을 잘 보라고."

"잠깐 애를 보러 간 사이에 소들이 나가 버린 거예요."

"소를 보는 사람이 그 곁을 떠나는 법이 어디 있어?"

"그럼, 어린 것은 누가 젓을 먹이고요? 당신의 젖꼭지라도 물려 주신다면 몰라도요."

"그것도 목장을 아주 망쳐 놨다면 몰라도 그저 잠깐 들어갔을 뿐이잖아요."하고 다른 여자가 말했다.

"목장을 망쳐 놓았단 말입니다." 관리인은 네플류도프에게 말했다. "단단히 혼내지 않으면 건초는 만져 보지도 못합니다."

"그런 죄받을 소리 하지 마세요. 우리 집 소는 한번도 붙들린 일이 없지 않았어요?" 배가 부른 여자가 외쳤다.

"그래서 이번에 붙들리지 않았어? 그러니 벌금을 내든지, 일을 하라잖아?"

"좋아요. 일을 하겠어요. 그러니 소를 돌려주세요. 소를 굶길 수는 없잖아요." 여자는 독살스럽게 외쳤다. "그렇잖아도 낮이나 밤이나 쉴 새라곤 없는데 말이야. 시어머니는 앓아 드러누워 있지, 남편은 집에 붙어 있지 않지, 만사를 혼자 해가야 하니 정말 지쳐 버렸어. 게다가 관리인은 일을 해서 갚으라고 들볶아 대니!"

네플류도프는 소를 돌려주라고 관리인에게 말하고 혼자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뜰로 나갔으나 새삼스레 생각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그에게는 모든 것이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에 이렇게 일목 요연한 것을 어째서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으며, 자기 자신도 그토록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는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농민들은 굶주리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가난에 익숙해져서 거기에 알맞은 생활 태도에 젖어 버렸다. 어린것들의 죽음과, 여자들의 과중한 노동, 모든 사람, 특히 노인들의 굶주림 등. 이렇게 농민들은 죽음에 빠져들어가는데, 그들 자신은 그러한 무서운 상태를 알지도 못하고, 그것을 호소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들도 이 같은 상태를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대낮처럼 명백했다. 농민들 자신이 이미 깨닫고 있고 그들의 입으로 말하고 있듯이 그들이 가난한 중요한 원인은, 그들의 호구지책이 되는 유일한 토지를 지주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더욱이 대부분의 어린이와 노인이 죽어 가는 것은 우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우유가 부족한 것은 가축을 기르고 곡식이나 건초를 만들어 낼 만한 땅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농민들이 불행하게 된 모든 원인은, 아니 적어도 그들 불행의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원인은 그들을 먹여 살리는 땅이 그들의 수중에 있지 않고, 이 토지에 대한 권리를 이용해서 이들 농민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중에 있다는 데에 있었다. 이것 역시 지극히 명백한 사실이었다. 농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없으면 그들이 목숨을 부지해 갈 수도 없는 그 토지는, 궁핍으로 쪼들리는 이들 농민들의 손으로 경작되고 있으나, 그들이 거두어들인 곡물은 지주에 의해 외국으로 팔려가서 지주의 모자나 지팡이나 마차나 청동 제품 같은 것으로 바꾸어진다. 이 모든 것이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것은 마치 울 안에 갇힌 말이 발밑의 풀을 다 먹었을 때는, 다른 먹이가 있는 땅으로 자유로이 갈 수 있게 해주지 않으면, 말은 점점 말라서 굶어 죽는 수밖에 없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절대로 있을 수 없고, 또한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이런 일이 없어지도록, 적어도 자기 자신은 이러한 일에 참여하지 않도록 적당한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반드시 그것을 찾아내겠다고 그는 가까운 곳에 있는 자작나무 길을 거닐면서 생각했다. '우리들은 학회나 정부 기관이나 신문 지상에서 농민들의 빈곤의 원인이나 생활의 진흥책을 논의해 왔지만, 그들의 생활을 올바르게 진흥시키는 유일한 방법, 즉 그들에게 꼭 있어야 하는 토지를 그들에게서 빼앗는 일을 중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그는 헨리 조지의 근본 이념을 생생하게 상기하고 어째서 그런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는지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토지는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물이나 공기나 햇빛과 마찬가지로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토지에 대해서, 또 토지가 인간에게 주는 온갖 이익에 대해서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그 때 그는 비로소 쿠즈민스코예에서 개혁을 생각했을 때, 왜 자신이 수치심에 사로잡혔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토지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에 대해서는 그 권리를 인정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러한 권리가 없다고 느끼면서도 일부분을 농민들에게 분배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 이제는 그러한 일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쿠즈민스코예에서 한 일을 변경하려고 마음먹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농민들에게 일정한 금액을 정해서 토지를 빌려 주지만, 땅값을 그들의 재산으로 인정하여 그 돈을 세금의 지불이나 마을의 공공 사업에 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일세 제도는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그 제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토지의 사유권을 포기했다는 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관리인의 무척 신이 나서 그에게 식사를 권했다. 자기 아내가 고깔 귀고리를 단 계집애의 시중을 받아서 만든 요리가 너무 끓여졌거나 지나치게 구워지지 않았을까 걱정이라도 되는 듯한 얼굴이었다.

식탁은 값싼 식탁보로 덮여 있었으며 냅킨 대신 수놓은 수건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낡은 색슨 식의 사기 접시에 감자 수프가 담겨 있었다. 수프 속에는 조금 전까지도 검은 두 다리를 버둥거리던 수탉이 토막토막 잘리고, 또한 잘게 썰려서 군데군데 털이 붙은 채 들어 있었다. 그 다음에는 역시 닭고기를 털째로 구운 것과, 버터와 설탕이 듬뿍 든 우유과자가 나왔다. 어느 것이나 맛은 없었지만 네플류도프는 정신없이 후딱 먹어치웠다. 그는 마을에서 돌아올 때의 그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 버린 자기 사상에 완전히 정신이 빠져 있었다.

관리인의 아내는 귀고리를 단 계집애가 접시를 나르고 있는 동안 문에서 목을 쑥 빼고 들여다보았다. 남편인 관리인은 아내의 솜씨를 은근히 자랑하는 듯 흐뭇한 얼굴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네플류도프는 반강제로 관리인을 앉힌 다음, 자기 생각을 확인하고 싶고 동시에 자기가 몰두하고 있는 일을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은 심정에서 자기가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해 줄 계획임을 말하고 그의 의견을 물어 보았다. 관리인은 자기도 벌써부터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오늘 그런 말을 들으니 유쾌하다면서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네플류도프의 설명이 애매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계획대로 한다면 네플류도프가 남의 이익을 위해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는 셈이 되겠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관리인의 의식 속에는 모든 사람들이 남의 이익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네플류도프가 토지에서 걷히는 전수입을 농민의 공동 기금으로 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왠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알았습니다."하고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자금에서 이자를 받으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아니, 그런 게 아니오. 토지라는 것은 개개인의 사유 재산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이해 못하겠소?"

"그러니까, 토지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여러 사람의 소유가 되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나리에겐 수입이라는 것이 없어지지 않습니까?"하고 관리인은 웃음을 멈추고 이렇게 물었다.

"그렇소. 나는 그것을 포기할 셈이오."

관리인은 한숨을 크게 쉬더니 다시 미소 지었다. 그는 네플류도프가 이성을 잃은 사람으로 생각되었으며, 이제는 주인의 토지를 포기하려는 계획 속에서 자기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해 내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분배될 토지를 자기도 이용할 수 있게 되도록 그 계획을 해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자 낙심하여 그 계획에 대하여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는 주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미소 짓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관리인이 자기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자 그를 물러가게 했다. 그러고는 칼자국투성이이고 잉크 자국이 나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자기의 계획을 종이에다 쓰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싹터오르는 보리수나무 뒤로 해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으며, 모기가 몰려와 네플류도프를 쏘기 시작했다. 그가 초안 작성을 끝냈을 때, 마을 쪽으로부터 가축떼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문을 여닫는 소리, 그리고 오늘밤 모임에 모여드는 농부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네플류도프는 관리인을 불러서 농부들을 사무실까지 불러올 필요가 없으며, 자기가 마을로 나가, 그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관리인이 권하는 차를 급히 들이마시고 네플류도프는 곧 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