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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18)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9. 25.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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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튿날 네플류도프가 옷을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 하인이 모스크바에서 온 변호사의 명함을 가져왔다. 변호사는 자기 용무도 겸해서 만일 마슬로바의 사건이 곧 가까운 시일 안에 심리가 된다면, 대심원의 심리에도 출석하겠노라고 온 것이었다.

네플류도프가 친 전보는 그와 엇갈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 가지 타입의 심의원이 전부 모임 세이군요."하고 그는 말했다. "볼리프는 페테르부르크 형의 관리고, 스보코로드니코프는 학자형의 법률학자이며 베는 실제형의 법률가입니다. "어쨌든 이 사람이 그 중에서 제일 수완가죠." 변호사는 말했다. "어쨌든 이 사람이 제일 믿음직합니다. 그런데 청원 위원회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사실은 이제부터 보로비요프 남작을 방문할 참입니다. 어젠 만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보로비요프가 어떻게 남작이 됐는지 아십니까?" 네플류도프가 이 러시아적인 이름에도 외국어의 칭호를 한데 붙여 우스꽝스럽게 부른 데 대해 대답하면서 변호사는 말했다.

"그것은 파벨 황제께서 무슨 포상으로 그의 조부에게 내려 준 것이지요. 그의 조부는 궁중에서 하인들의 책임자로 있었는데 황제께서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를 남작으로 임명하겠으니 불평들은 하지 말라고 했지요. 이렇게 해서 보로비요프 남작이 탄생한 겁니다. 그는 이걸 여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 않아요. 아주 교활한 늙은 여웁니다."

"어디 그렇다면 그 사람한테 가 볼까요?" 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마침 잘됐습니다. 함께 가십시다. 제가 마차로 모셔다 드리지요."

두 사람이 출발하려고 나왔을 때, 하인이 옆방에서 마리에트로부터 온 편지를 들고 네플류도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저의 주의 주장을 버리고, 당신이 보호하고 계시는 사람을 위해서 남편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여자분은 곧 석방될 것입니다. 남편이 요새 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냈으니까요. 볼일이 없으셔도 놀러와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M

"자, 어떻습니까?" 네플류도프는 변호사에게 말했다.

"무서운 일이 아닙니까? 7개월 동안이나 독방에 갇혀 있던 여자가 아무 죄도 없다니, 그것도 석방하는 데 단 한 마디면 되다니."

"언제나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러나 어찌 됐든 당신이 바라시는 대로 된 셈이군요."

"네, 하지만 이 성공은 도리어 통탄할 일입니다. 도데체 거기서는 무엇들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군요. 무엇 때문에 그 여자를 가두어 두었을까요?"

"그런 일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럼 제가 태워다 드리면 어떨지?"

그들이 현관 앞으로 나왔을 때 변호사가 말했다. 변호사가 타고 온 훌륭한 마차가 현관으로 다가왔다.

"보로비요프 남작을 뵈러 가시는 거죠?"

변호사는 마부에게 행선지를 알려 주었다. 그 멋진 말들은 곧장 네플류도프를 남작 집으로 데려갔다. 남작은 집에 있었다. 첫째 방에는 제복을 입은 젊은 관리 한 사람과 두 귀부인이 있었다. 그 관리는 무척 기다란 목에 후골이 튀어나온 경쾌한 걸음걸이의 남자였다.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후골이 튀어나온 젊은 관리가 부인들로부터 경쾌한 걸음으로 네플류도프에게 걸어와서 정중하게 물었다. 네플류도프는 자기 명함을 주었다.

"남작께서도 공작님 말씀을 하시더군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젊은 관리는 문을 열고 한 방으로 들어가더니, 상복을 입고 울고 있던 부인을 데리고 나왔다. 부인은 눈물을 감추기 위하여 앙상한 손으로 헝클어진 베일을 내렸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젊은 관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제 문으로 걸어가서 문을 열고 네플류도프를 향해서 말했다.

서재에 들어간 네플류도프는 프록 코트를 입고 머리를 짤막하게 깎은 중키의 몸집이 탄탄한 남자와 마주쳤다. 그는 큼직한 사무용 테이블 옆 안락의자에 앉아서 즐거운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흰 콧수염과 턱수염 속에서 유달리 불그레하게 보이는 얼굴이 네플류도프를 보자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당신의 어머님하고는 예로부터 잘 아는 친구였지요. 당신도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지요. 장교였을 때도 본 일이 있고요. 자 앉으십시오. 무슨 일인지 말씀하세요."

그는 네플류도프로부터 페도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짧게 깎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어서 이야기를 계속하세요. 잘 알았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정말 동정할 만한 여자군요. 그래, 청원서는 제출했나요?"

"네, 청원서는 준비해 왔습니다만." 네플류도프는 호주머니에게 청원서를 꺼내면서 말했다.

"특히 각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 사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려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내가 직접 청원하겠습니다." 하고 남작은 유쾌한 얼굴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동정의 빛을 띠면서 말했다.

"정말 동정이 가는군요. 그녀는 아직 어렸으므로 남편이 너무 노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싫어져서 반항을 한 게 분명합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좋습니다. 내가 직접 청원해 드리지요."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도 황후께 청원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네플류도프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작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어쨌든 청원서를 사무소에 먼저 내도록 하십시오. 나도 힘닿는 데까지 해볼 테니까요." 그는 네플류도프에게 말했다.

이 때 젊은 관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그는 자기의 걸음걸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 부인이 한 말씀만 더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들여 보내요. 참 그 여잔 눈물도 많지. 그 눈물을 닦아 줄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어쨌든 되는 데까지 해볼 수밖에."

부인이 들어왔다. "아까 부탁드린다는 것을 잊었습니다만, 그이가 그 애를 다른 데로 보내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이가 무슨 짓을 할는지..."

"그래서 해드리겠다고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남작님, 부탁입니다. 제발 이 어미를 살펴주시는 셈치시고..." 그녀는 남작의 손에 키스를 했다.

"모든 일을 다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부인이 밖으로 나가자, 네플류도프도 작별 인사를 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법무성에도 연락해 두겠습니다. 그 곳에서 회답이 오면, 그 때는 가능한 한 도와 드리겠습니다."

네플류도프는 서재를 나와 사무실 쪽으로 나왔다. 대심원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이 곳에서도 장엄한 건물 안에, 복장에서부터 말씨에 이르기까지 단정하고 겸손하고 엄격하고 또렷또렷한 관리들을 많이 보았다.

'많기도 하군. 모두 기름기가 흐르고, 깨끗한 셔츠와 손, 반짝이는 구두, 도대체 누가 이토록 사치스러운 짓을 시키고 있을까? 이 사람들은 죄수들과 비교하면 말할 것도 없고, 농민들에 비해서도 얼마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네플류도프는 무의식중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