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페레르부르크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는 인물은, 수많은 훈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통 때는 단춧구멍에다 백십자 훈장 외에는 아무것도 달지 않는 독일계 남작 출신의 노장군이었다. 숱한 세월에 걸쳐 많은 공적을 세웠으나 지금은 사람들로부터 망령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카프카스에 근무하고 있을 때, 그 곳에서 특별히 그를 예찬해 주는 이 십자 훈장을 탔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그가 머리를 짧게 깎고 군복을 입고 총검으로 무장된 러시아 농민을 지휘해서 자기네들의 자유와 집과 가족을 지키려던 천 명이 넘는 삶들을 학살한 공로로 받은 훈장과 제복에 달 장식을 받았던 것이다. 그 후 몇 군데에서 더 근무했지만, 지금은 늙고 쇠약했기 때문에 훌륭한 저택과 수당과 현재의 명예로운 지위에 매달리게만 되었다. 그는 상부의 명령을 엄격히 이행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상부로의 명령에 그는 일종의 특별한 의의를 부여했기 때문에, 비록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변경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 명령만은 절대로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직무란 정치범들을 요새 감옥의 독방에 감금해 두는 일이었는데, 10년 동안에 그들의 과반수가 일부는 발광하고 일부는 폐병이거나 자살로 죽어가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굶어 죽거나, 유리조각으로 동맥을 끊거나, 목을 매거나, 분신 자살을 하거나 했다.
노장군은 그러한 일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 이런 사건들은, 마치 벼락이라든가 홍수같이 자연히 일어난 불행이 그의 양심을 동요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전혀 그의 양심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러한 사건은 상부의 명령에 의해서, 즉 황제 폐하의 이름에 의해서 생기는 일들이었다. 이러한 명령은 필연적으로 실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 만큼, 그 명령의 결과를 생각해 본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노장군은 그런 문제 따윈 애당초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았다.
노장군은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직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 명령의 수행을 조금이라도 소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것을 섣불리 생각하지 않는 편이 애국자로서, 또한 군인으로서의 의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1주일에 한 번씩 노장군은 직무 규정에 따라서 모든 감방을 순찰하고 죄수들에게 무슨 소망이 없느냐고 물었다. 죄수들은 가지가지의 청을 다 했다. 그는 그들의 말을 냉정하게 잠자코 들어 주기는 했지만, 이제껏 단 한번도 실행에 옮겨본 일이 없었다. 그들의 요청은 하나같이 모두 규칙에 어긋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네플류도프는 노장군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마침 종밭의 시계가 가냘픈 종소리로 신을 찬미하는 국가인 '하느님의 영광이 있을 때'를 울리고, 이어 2시를 쳤다. 이 종소리의 음악을 들으며, 네플류도프는 불현 듯 전에 데카브리스트들의 수기에서 읽은 것을 상기했다. 매시간 되풀이되는 이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종신 징역수들의 마음에 어떻게 반향되었을까에 대해서 쓴 것이었다. 네플류도프가 그 저택의 마차 대는 곳에서 내렸을 때, 노장군은 어두컴컴한 객실에서 자개를 박은 조그만 테이블 앞에 앉아, 자기 부하의 동생인 젊은 화가와 함께 접시를 가지고 점을 치고 있었다. 화가의 가늘고 작은 손가락이 노장군의 뻣뻣하고 주름투성이의, 뼈가 드러난 손가락과 서로 깍지를 끼고 있었다. 이 깍지낀 두 손의 알파벳을 써 놓은 종이 위에서 엎어 놓은 접시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접시는, '사자의 영혼의 죽은 뒤에 서로 상대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하는, 장군이 낸 문제에 대답하고 있었다.
하인의 일을 맡아 보고 있는 사병이 네플류도프의 명함을 가지고 들어왔을 때는, 접시를 통해서 바야흐로 잔 다르크의 영혼이 말하고 있을 때였다. 잔 다르크의 영혼은 알파벳의 문자를 한 자 한 자 이어서 '서로 상대를 식별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 대답이 종이에 쓰여졌다. 사병이 들어 왔을 때, 접시는 한번 P자 위에 멎었다가 O자 위로 갔다가, 다시 S자 위로 가서 멎더니 좌우로 뒤뚱거렸다. 접시가 흔들렸다. 왜냐하면, 장군의 생각에 의하면 다음 문제는 당연히 L자여야 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잔 다르크가 영혼은 모든 지상의 것으로부터 자기를 정화시킨 후에 비로소 서로 식별하게 되었다든가, 혹은 그와 비슷한 대답을 해야 했으므로 다음 문자는 반드시 L자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가는 다음 글자는 반드시 V자여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화가는 영혼이란 에테르체에서 나오는 빛에 의해서 서로 식별하게 되는 것이라고 대답하리라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군은 굵고 흰 눈썹을 한참 손을 보고 접시가 저절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면서 L자 쪽으로 접시를 끌어당겼다. 한편 핏기 없는 푸른 창백한 눈으로 객실의 어두운 한구석을 바라보고 있다가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떨면서 V자 쪽으로 접시를 끌어당겼다. 장군은 자기의 놀이를 방해한 데 대해서 미간을 찡그리더니 얼마 후에 명함을 집어들고 코안경을 썼다. 넓적한 허리가 아파서 신음 소리를 내며, 저린 손가락을 펴면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섰다.
"서재로 안내해."
"각하, 나머지는 저 혼자 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화가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전 영혼이 거기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좋아, 혼자 해보게."
장군은 엄하고 결단적인 말투로 말한 다음, 다리를 쭉 뻗고 적당히 보조를 맞추면서 성큼성큼 서재 쪽으로 걸어갔다.
"잘 오셨소." 장군은 네플류도프에게 사무용 테이블 옆의 안락 의자를 권하면서 괄괄한 음성으로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페테르부르크에 온 지 오래 되셨소?" 네플류도프는 온 지 얼마 안 된다고 대답했다.
"공작 부인인 당신 어머니께서도 건강하시오?"
"어머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것 참 안되었군. 내 아들 녀석이 당신을 만났다고 하던데."
장군의 아들은 부친과 같은 출세길을 밟아 육군 대학을 나온 뒤 첩보국에 근무하고 있으며, 거기서 맡은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가 맡고 있는 일은 첩보원을 감독하는 것이었다.
"난 당신 아버지하고 같이 일하고 있었는데, 아주 가까운 사이였지. 그래 지금은 어디 나가고 있소?"
"아무데도 나가고 있지 않습니다." 장군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머리를 갸우뚱했다.
"사실은 각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좋소, 무슨 일이죠?"
"만일 저의 부탁이 부당한 것이라면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저로서는 청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 무엇이오?"
"각하, 이 곳 요새 감옥에 구르게비치라는 청년이 수감되어 있는데, 사실은 그의 어머니가 면회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안 되면, 책이라도 차입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장군은 네플류도프의 청에 대해서, 만족한 빛도 보이지 않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뭇 생각에 잠긴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실제는 네플류도프의 청원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없었다. 규칙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다만 머리를 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은 당신도 알다시피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오." 잠깐 틈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면회에 관해서는 황제께서 정하신 규칙이 있으므로 그 규칙이 허용하는 범위라면 허가해 줄 수 있지. 그리고 책에 대해서는 영내에도 도서관이 있어서 허가된 책만을 볼 수 있고."
"그렇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학술 서적입니다. 공부하고 싶다고 하니까요."
"그런 소릴 곧이 들어선 안 되오." 장군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공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귀찮게 굴어 보겠다는 것뿐이니까."
"그러나 괴로운 처지에 있으니까 시간을 보낼 무엇인가가 그에게 필요한 것입니다."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그들은 항상 불평만 늘어놓고 있소." 하고 장군은 반대했다.
"그들의 일이라면 우린 샅샅이 알고 있단 말이오." 장군은 그들이 마치 무슨 불한당인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감옥에서 볼 수 없는 편의를 받고 있소."하고 장군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는 변명이라도 하듯이, 수감자들이 받고 있는 편의를 하나하나 상세하게 늘어놓았다. 마치 죄수들을 살기 좋고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데 이 감옥의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사실 전에는 꽤 가혹하게 대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호강들을 하고 있지. 하루에 세 끼를 먹는데, 그 중 한 끼는 비프스테이크나 비프 커틀릿 따위의 고기 요리를 먹거든. 일요일에는 그 밖에 더 좋은 일품 요리가 제공되고 말이오. 그래서 모든 러시아 국민이 이와 같은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길 정도요."
장군은 딴 노인들과 똑같이, 일단 자기가 잘 알고 있는 화제가 나오게 되면 만족스러울 때까지 되풀이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죄수들이 버릇이 없고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수없이 한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종교서적과 낡은 잡지도 주고 있소. 우리 도서관에는 서적들이 비치되어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좀처럼 읽지 않아. 처음에는 흥미를 느끼는 듯하지만, 곧 내던지지. 새 책은 반밖에 읽지 않고 나머지는 페이지가 붙은 채로 그냥 남아 있지. 우리는 가끔 시험을 해보는데 헌책은 아예 집어 본 흔적도 없단 말이오." 장군은 미소도 아닌 야릇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일부러 종이를 끼워 놓아 보기도 하지만 그대로 있거든.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글 쓰는 것까지 금하고 있지는 않소."하고 장군은 말을 이었다.
"석판도 석필도 주고 있으니까. 무엇이든지 써서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지우고 또 쓸 수가 있거든. 그런데도 역시 그들은 쓰지 않아. 그렇지만 그들은 곧 얌전해지지. 처음 얼마 동안은 떠들어 대지만, 좀 있으면 살도 찌고 몹시 조용해진다고." 장군은 자기가 하고 있는 말 속에 그 얼마나 무서운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 조금도 의식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그 늙은이의 쉬어빠진 목소리를 들으면서, 뼈가 앙상한 손과 발과 흰 눈썹 밑의 퀭한 눈과 군복 깃에 걸치다시피 하여 축 늘어진 면도질한 볼이며 잔인한 살육의 대가로 받은, 유난히도 자랑거리로 알고 있는 그 십자 훈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반박하거나, 그의 말의 의미를 설명해 주어도, 도무지 무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일에 대해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오늘 아침 석방 명령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슈스토바라는 여죄수의 일이었다.
"슈스토바? 슈스토바라... 그들의 이름을 낱낱이 외고 있을 수도 없지. 하도 많으니까." 그는 죄수가 너무 많은 것도 그들의 탓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벨을 눌러 서기를 불러오라고 일렀다.
서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정직하고 결백한 사람은 특히 황제를 위해서, 또 '조국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하고, 은연중에 자기도 그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그러면서 네플류도프도 봉직하라고 권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긴 했으나, '조국'이라는 말은 곁다리로 붙인 말에 지나지 않음이 명백했다.
"나는 이렇게 늙기는 했지만 힘껏 일하고 있소."
마침내 불려온 서기는 영리해 보이면서도 불안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는데, 말라서 바삭바삭 소리가 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나이로서 그는 슈스토바가 어딘가 이상한 요새에 갇혀 있으며 명령서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명령서가 오기만 하면 그 날로 석방될 거요. 우리는 그들을 붙잡아 두지 않소. 남아 있다고 해서 고마울 게 조금도 없으니까."하고 장군은 말하면서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고 했으나, 늙은 얼굴을 찡그리게 할 따름이었다.
네플류도프는 이 무서운 노인에 대해서 느낀 혐오와 연민이 뒤섞인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은 노인대로 틀림없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이 경박한 청년, 자기의 옛 친구의 아들에 대해서 너무 엄격하게 다루어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마디의 훈계도 없이 그대로 보내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 잘 가요. 그러나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오. 나는 당신을 아끼는 마음에서 얘기하는 것이니까. 여기 감금되어 있는 무리들과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오. 죄가 없는 자라곤 없으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다시 없는 부도덕한 자들뿐이오. 우리들은 그들을 잘 알고 있지."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는 듯이 그는 말했다. 사실 그는 이 점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 그대로라는 것이 아니라, 만일 그것이 사실로가 어긋난다면 자기 자신 마음껏 훌륭한 생활을 누려 온, 존경을 받을 만한 영웅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자기 양심을 팔아 왔고, 늙어서까지 계속 팔고 있는 악덕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가 자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봉직을 해야지."하고 그는 말을 계속했다.
"황제께서는 성실한 인간을 필요로 하시니까. 또 조국을 위해서도."하고 그는 덧붙였다. "가령 나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신처럼 봉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소? 도대체 누가 남겠느냔 말야? 그냥 제도를 비판만 하고 정부를 도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네플류도프는 깊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너그럽게 내민, 뼈만 앙상한 큼직한 손과 악수하곤 방을 나왔다.
장군은 불만스러운 듯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곤 허리를 문지르면서 다시 객실로 갔다. 객실에는 아까 그 화가가 잔 다르크의 영혼에서 얻은 회답을 써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군은 코안경을 쓰고 읽었다.
'영혼이 서로 상대를 식별하는 것은 그 에테르체에서 발산하는 빛에 의한다.'
"허!" 장군은 눈을 감고 감탄해 마지 않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어느 영혼의 빛도 똑같다면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 그는 이렇게 묻고, 또 화가의 손가락을 맞끼고 테이블에 앉았다.
네플류도프의 마차는 문을 나섰다.
"거긴 무척 따분한 곳이죠, 나리." 마부는 네플류도프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기다리다 못해 가버릴까 했습죠."
"사실이야. 참 지리한 곳이야." 네플류도프는 심호흡을 하면서 연기와도 같이 흘러가는 하늘의 구름과 보트와 기선이 지나간 뒤에 남은 네바 강의 반짝반짝 빛나는 물결을 바라보며 마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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