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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슬로바가 제 1호송대에 끼여서 이송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네플류돌프는 출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아무리 시간이 많다 하더라도 도저히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이라는 것이 이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했고, 또 일의 흥미도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플류도프 한 개인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단시에는 일의 흥미 여부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일이건 모든 것이 그 자신에게는 조금도 상관 없는 것이고 남에 관한 일뿐일지라도 모든 것이 흥미로울뿐더러 열중할 수 있었고, 더욱이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던 이전의 일들은 언제나 화가 나고 짜증이 났으나, 지금 이렇게 남을 위한 일을 하고 보니 대개의 경우 즐거운 기분이 우러나오게 했다.
네플류도프가 이 당시 전념하는 일은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었다. 그는 습관화된 조직적 방법으로 일을 분류하여 그것에 따라 세 개의 손가방에다 서류를 나누어 두었다.
첫 번째 일은 마슬로바를 돕는 일이었다. 이 일은 황제에게 제출한 청원서를 끝까지 해결할 방법과 시베리아로 실제 출발하는 여행 준비였다.
두 번째 일은 영지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파노보 마을에서는 땅값을 마을의 공동 비용에 충당한다는 조건으로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했다. 그러나 이 계약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증서와 유언장을 작성하여 서명을 해둘 필요가 있었다. 쿠즈민스코예 마을에서는 역시 자기가 정한대로, 그 자신이 땅값을 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 기한을 정한다든지 그 중 얼마를 자기의 생활비로 충당하고 얼마를 농민들을 위해서 남겨 둘 것인가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시베리아로 가는 비용은 얼마나 들 것인가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시베리아로 가는 비용은 얼마나 들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수입을 절반으로 줄이기는 했으나, 그 수입을 완전히 포기할 만한 결심은 아직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세 번째 일은 점점 늘어 가는 죄수들의 간절한 청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처음 한동안 도움을 청해오는 죄수들과 교섭을 갖게 되었을 때는 그는 그들의 고민을 덜어 주기 위해 그들의 대리인으로서 노력했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의뢰인이 너무 많아져서 그들을 일일이 도와 줄 수가 없음을 알고 부득이 네 번째 일이 생기게 되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그 일에 무엇보다도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네 번째 일이란 이른바 형사 재판이라고 불리는 이 놀라운 제도는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생겼으며, 또 어디서 생기게 되었는지 하는 의문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형사 재판 때문에 일부이긴 하지만, 그가 수감자들과 친숙해진 감옥이라는 것이 존재하게 되었고, 또 그에게는 참으로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이었지만 희생된 자들이 수백, 수천이나 페트로파불로프스크 요새 감옥에서 사할린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감금 시설에서 무참히 고생하고 있는 것이 모두가 형사 재판의 결과에 의한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죄수들과 개인적인 접촉과 변호사와 교회사와 소장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와 죄수들의 수기에서 본 결과, 네플류도프는 보통 범죄자라고 물리는 죄수들을 다섯 종류의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부류는 잘못된 재판으로 희생이 된, 전혀 죄가 없는 사람들로서, 이를테면 방화범이 된 메니쇼프라든가 마슬로바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는 않아서, 교회사의 관측으로는 7퍼센트 정도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의 처지가 특히 그의 관심을 끌었다.
둘째 부류는 분노라든가 질투라든가 술주정이라든가 하는 특수한 사정하에서 저지른 행위 때문에 벌을 받는 사람들로, 이러한 행위는 그들을 재판해서 벌을 준 재판관이라도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도니다면 십중팔구 그들과 같은 짓을 범했을 것이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네플류도프가 보는 바에 의하면 전체 범죄자의 거의 반수가 넘었다.
셋째 부류는 이들 본인들의 생각에 의하면 매우 당연하고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믿고 있는 일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입법자들의 측에서 보면 범죄로 감주되는 그러한 행위 때문에 처벌된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밀주 매매자라든가 밀수업자라든가 또한 대지주의 소유림에서 풀을 베었다든가 나무를 했다든가 한 사람들이었다. 산적이나, 정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든가 교회의 물건을 훔친 자들이 이 부류에 속했다.
넷째 부류는 단지 정신적인 면에서 일반 사회를 평균 수준보다 높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분리파 교도나 독립을 위해서 반란을 일으킨 폴란드인이나 체르케스인, 그리고 정치범들, 사회주의자, 동맹 파업을 일으킨 자, 권력에 반항한 탓으로 처벌된 사람들 등이었다. 네플류도프의 관찰에 의하면 이러한 부류의 사람의 수는 많은 숫자에 달했다.
끝으로 다섯째 부류는 그들이 사회에 대해서 범한 죄보다 사회가 그들에게 범한 죄가 더 크다고 생각되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끊임없는 압박과 유혹 때문에 머리가 우둔해진, 일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로서, 돗자리를 훔친 청년을 비롯해서 네플류도프가 감옥 안팎에서 목격한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에 속했다. 그들의 생활조건이 범죄가 될만한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네플류도프의 관찰에 의하면, 요즘 그들 가운데서 알게 된 도둑과 살인자의 대부분은 대대 이 부류에 속했다. 새로운 범죄형이라고 부르는, 사회에 있어서 마치 존재가 형법과 형벌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증거처럼 인정을 받고 있는 타락하고 부패한 사람들을 더 가까이 접촉해 본 결과 이 부류에 넣게 된 것이었다. 네플류도프의 의견에 따르면, 이러한 이른바 타락하고 부패하고 변태적인 범죄형은 사회에 대해서 범한 죄과보다 오히려 타락하고 부패하고 변태적인 범죄형은 사회에 대해서 범한 죄과 보다 오히려 사회가 그들에게 직접 죄를 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대, 즉 그들의 양친과 조상에 대해서도 이미 죄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으로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서 특히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오호턴이라는 절도 상습범이었다. 그는 매춘부의 사생아로 사창가에서 자라낫고, 나이 서른이 되기까지 순경 이상의 품성을 지닌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었으며, 어렸을 때부터 도둑패에 들어갔다. 그는 몹시 익살스러운 데가 있어서 사람들과 잘 사귀었다. 그는 네플류도프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조차도 자기에 대해서나, 재판에 대해서나 감옥에 대해서나 그리고 온갖 법률에 대해서나 형법뿐만 아니라 신의 계율에 대해서도 익살을 부리지 않고는 못 배겼다. 또 한 사람은 자기가 거느리는 일단의 무뢰한들과 함께 어느 나이 먹은 관리를 살해하고 금품을 약탈한 표도로프라는 잘생긴 사내다. 그는 부당하게 집을 몰수당한 농부의 아들로서 그 후 군데에 징집되었다가 군대에서 어느 장교의 정부와 눈이 맞았기 때문에 단단히 혼이 났었다. 그는 정력적이고 매력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인생을 실컷 즐겨 보자는 인간이었다. 그는 이제껏 이유야 어찌 되었든간에 자기 스스로 향락을 억제했다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네플류도프는 이 두 사람이 다 좋은 소질을 타고났으면서도 내버려 둔 식물처럼 제멋대로 자라서 병신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잔인하리만큼 우매한데다가 반발심이 있는 불량한 사람을 보았으나, 그들에게서 이탈리아 학파가 주장하는 범죄형을 볼 수가 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불쾌한 자도 있었으나, 그런 사람은 감옥 밖에서도 연미복을 입고 견장을 달고 레이스로 장식을 한 자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한동안 네플류도프는 이런 무제에 대한 해답을 책에서 얻어 보려고 했다. 그는 롬브로소, 모즐리, 가브리엘타르드 등의 저서를 사다가 열심히 읽었다. 그러나 그런 서적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실망은 커져 갔다. 학계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즉 저술을 하고 논쟁을 하고 교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일같이 닥쳐오는 인생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과학을 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실망하듯이 네플류도프 역시 그렇게 실망한 것이었다.
과학은 곤란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답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싶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해답도 주지 않았다.
그는 지극히 간단한 일을 묻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사람이 사람을 감금하고 고통을 주고 유형을 보내고 매질을 하고 죽일 수가 있는가? 그가 얻은 해답은 갖가지 논의들이었다. 즉 인간은 의지의 자유를 갖고 있는가 없는가? 두개골 따위를 측량함으로써 범죄자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가 있는가? 범죄에 있어서 유전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선천적인 부도덕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발광이란? 타락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또 기질이란 무엇인가? 기후, 음식, 무지, 모방, 최면술, 욕정 등이 범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대관절 사회란 무엇일까? 사회의 의무란 무엇일까... 등등에 관한 것이었다.
이 같은 논의는 언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 소년에게 문을 했을 때 얻은 해답을 네플류도프로 하여금 회상케 했다. 네플류도프는 그 소년에게 철자법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배웠어요."하고 소년은 대답했다. "그럼 써봐, 발이라고." "발이라니 무슨 발이죠? 개 발 말인가요?"하고 소년은 능청맞게 대꾸했다. 네플류도프가 자기의 우일한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서 학술서 가운데서 찾아낸 질문의 해답도 바로 이 소년의 대답과 같은 것이었다.
이들 서적 속에는 총명하고 박식하고 흥미로운 것이 많았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 무슨 권리로써 인간이 인간을 처벌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논의는 미리 형벌을 설명하고 주장하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수시로 많은 서적을 읽었으므로 이러한 피상적인 연구로써 해답을 얻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해답다운 것이 점점 더 빈번히 나타나긴 했으나, 그 진실성은 아직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경지에까지는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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