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문간에 매달린 호롱 등불 아래 보초가 혼자 지키고 서 있는 감옥의 음침한 건물은 마차 대기소도, 지붕도, 벽도, 모두 깨끗하고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정면의 늘어선 긴 창문들이 호젓이 불빛에 비춰져서 오늘 아침보다도 한층 더 침울한 인상을 주었다.
위엄을 부리던 형무관이 문으로 나와 불빛에 네플류도프와 영국인이 제시한 통행 허가증을 비춰 보고는 의아스러운 듯 널찍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이 두 방문객을 안내하였다.
그는 두 사람을 처음에 안마당으로 인도해서 그 곳에서 오른쪽 문을 통하여 층계로 올라가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런 다음 두 사람에게 의자를 권한 뒤에 또 한 번 용건을 묻고 카추샤를 면회하고 싶다는 네플류도프의 희망을 알자 간수에게 그녀를 불러오라고 이르고, 영국인이 네플류도프의 통역으로 묻기 시작한 것들에 응답할 준비를 하였다.
"이 감옥의 수용 인원은?"하고 영국인이 물었다.
"현재 감금되어 있는 사람 수는 얼마나 됩니까? 남자는 몇 명이며 여자와 애들은 몇 명이나 됩니까? 징역수, 유형수, 그리고 자원해서 따라온 사람은 몇 명이고, 환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네플류도프는 눈앞에 닥쳐온 카추샤와의 면회를 두고 의외로 마음이 산란해져서, 말의 의미는 전혀 생각지 않고 영국인과 형무관의 대화를 그저 통역해 주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 때, 사무실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여느 때처럼 간수가 앞서 들어오고 그 뒤에 카추샤가 죄수복에 머릿수건을 쓴 차림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 그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도 살고 싶다. 가정을 갖고 싶고 애도 갖고 싶다. 딴사람들처럼 생활을 하고 싶다.'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눈을 내리깐 채 방 안에 들어왔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생각이 언뜻 스쳐갔다.
그는 일어서서 몇 걸음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표정은 딱딱하고 불유쾌해 보였다. 그건 그녀가 자기를 비난했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가 파랗게 질리기도 하면서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그녀는 네플류도프를 바라보기도 하고 눈을 내리깔기도 하였다.
"특사를 내린 사실을 알고 있소?"
"네, 간수에게 들었어요."
"그렇게 되면 서류가 도착하는 즉시 방면되어 어디나 살고 싶은 곳으로 가도 되는 거요. 우리는 생각을 잘해서..."
그녀는 급하게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무엇을 잘 생각한다는 거예요? 저는 어디든 시몬손이 가는 데로 따라가겠어요."
카추샤는 몹시 흥분하고 있었지만 네플류도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마치 할 말을 미리 준비나 한 것처럼 거침없이 또렷하게 말했다.
"아, 그래요!"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그래선 안 되나요,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만일 그 사람이 저와 같이 살고 싶어한다면..."하고 그녀는 놀란 듯이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만일 그 사람이 저를 곁에 두고 싶어한다면 저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저 같은 것이 그 이상 무엇을..."
'두 가지 중의 하나다.'하고 네플류도프는 생각했다. '시몬손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바치려는 희생을 전혀 바라지 않든지, 혹은 나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행복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거절을 하고 시몬손과 운명을 함께 하여 영원히 나와 인연을 끊어 버리려 하든지, 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왠지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해짐을 느꼈다.
"물론 당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다면야..." 네플류도프에게 말했다.
"사랑이고 무엇이고 없어요. 그런 것은 벌써 오래 전에 치워 버렸어요. 게다가 시몬손과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르잖아요?"
"그야, 물론이지."하고 네플류도프는 입을 뗐다.
"그는 훌륭한 인물이지, 그래서 내 생각은..."
그녀는 자기가 지나친 말을 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거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닙니다,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만약 당신이 바라시던 일을 제가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쁘게는 생각지 말아 주세요."하고 그녀는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사팔눈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러한 결과가 될 수밖에 없어요. 당신도 보람 있는 본연의 생활을 하셔야 할 테니까요."
그가 금방 자신에게 스스로 해 본 말과 똑같은 말을 똑같은 말을 그녀가 그대로 말한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그는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더불어 잃어버리게 될 모든 것이 애석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소."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이런 데까지 와서 고생하실 필요가 조금도 없어요. 당신의 희생은 이미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녀는 묘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고생이라니, 오히려 내게는 행복이었지.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좀더 당신을 도와 주고 싶소."
"우리들에게는," 그녀는 '우리들'이란 말을 하고는 네플류도프를 힐끗 쳐다보았다.
"우리들에게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당신은 지금껏 저를 위해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몰라요. 만일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그녀는 무엇을 더 말하려고 했지만 음성이 떨려 그치고 말았다.
"당신이 나에게 고마워할 건 아무것도 없소."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우리가 그것을 신중하게 계산할 필요는 뭐 있겠어요. 우리들의 계산은 하느님만이 해주실 테니까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새까만 눈이 솟구치는 눈물 때문에 더욱 반짝였다.
"정말 당신은 훌륭한 여자요!" 그는 말했다.
"제가요, 훌륭한 여자라뇨?" 이렇게 되묻는 눈물 젖은 그녀의 얼굴에는 괴로워 보이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이제 끝났습니까?" 이 때 영국인이 그들 사이에 끼여들며 물었다.
"네, 곧..."하고 네플류도프는 대답하고 크르일리조프의 상태를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흥분을 진정시키고 나서 아는 데까지 차근차근히 이야기를 하였다. 크르일리조프는 오는 도중 더욱 쇠약해졌기 때문에 여기에 도착하는 즉시 입원했고, 마리야 파블로브나가 걱정이 되어 간호하도록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지만 허가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럼 저는 이제 돌아가 보겠어요." 기다리고 있는 영국인을 의식하고 그녀가 말했다.
"작별 인사는 하지 않겠소. 우리는 다시 만날 테니까."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용서하세요." 그녀는 겨우 들릴까 말까 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눈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용서하세요.'라고 말했을 때의 사팔의 신비한 눈동자와 괴로운 듯한 미소를 보면서 네플류도프는 그녀가 결심하게 된 원인의 두 가지 가정 중에서 둘째 번 것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네플류도프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언제까지나 그와 관계를 갖게 되면 자기가 그의 일생을 파멸시키게 될 것이므로, 시몬손과 같이 그에게서 떠나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게 되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와 헤어지게 되는 것이 슬펐던 것이다.
그녀는 네플류도프의 손을 꼭 쥐었다가 재빨리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네플류도프가 함께 감옥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영국인을 돌아보았더니 그는 무엇인가를 수첩에다 기록하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의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벽에 댄 나무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별안간 심한 피로감이 엄습했다. 그것은 단지 수면 부족이나 여행이나 흥분 같은 데서 오는 피로가 아니고, 생활 그 자체에 시달려 지쳐 버린 무서운 피로감이었다. 그는 긴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자, 자기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부터 감방을 한번 돌아보시겠습니까?"하고 형무관이 물었다. 네플류도프는 이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데서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영국인은 수첩에 기록하는 것을 끝내고 감방을 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극도로 지쳐 있는 몸을 끌고 정신없이 그들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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