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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9)

카지모도 2023. 3. 20.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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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집 주인의 아들이올시다. 이왕 누추한 곳에 행차하셨으니 잠깐 들어

앉으시지요. ” “들어앉을 것 없이 바루 가겠네. ” “술이나 떡이나 좀 잡숫구

가시지요. ” “내가 술은 끊었구 떡은 즐기지 않네.” “돼지다리두 있구 소머리두

있습니다. 고깃점이라두 좀 잡숫구 가십시오.” 김양달이 도야지고기를 즐기는

까닭에 속으로 침은 삼키면서 겉으로 “폐 끼칠 것 없네. ” 하고 말하였더니

“천만의 말씀이지 무슨 폐오리까.” 젊은 주인이 청할 뿐 아니라 “금교 제일

부자집에 폐 좀 끼치셔두 좋습지요.” “젊은 무당의 소리나 한마디 듣구

가시지요.” “그대루 가신다면 주인이 무안하여 합니다.”

행인들이 입을 모아 권하여서 김양달은 마침내 장교들을 돌아보며 “주인이 초면에

하두 정답게 하니 잠깐 들어앉았다 가는 게다.” 말하고 젊은 주인의 지도하는

대로 제물상이 놓인 건너편 방에 들어와 앉아서 방문을 열고 무당들의 성주받이

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젊은 주인이 주육상을 내다놓고 “변변치 못한 음식이나

마 좀 잡수십시오.” 권한 뒤에 곧 일어서서 나가더니 젊은 무당 하나를 끌어들

여다 상머리에 앉히면서 “나는 아랫방 손님들을 좀 가봐야겠으니 네가 내 대신

이 손님나리께 음식두 권하여 드리구 또 노랫가락두 한마디 들으시게 해라.”

하고 아랫방으로 내려갔다. 장교들과 행인들과 객주 주인은 아랫방에서 술들을

먹고 김양달은 혼자 건너방에서 무당을 옆에 끼고 도야지고기를 먹는 중에 밖에

서 “김여맹 나리 어디 가십니까?” 하고 큰소리로 찾는 사람이 있었다. 김양달

이 밖에 나와서 짐꾼, 말꾼 두서넛이 온것을 보고 “웬일이냐?” 하고 물으니

짐꾼 하나가 재빠르게 예방비장이 화적에게 붙들려 간 사연을 말하였다. 김양달

이 긴말 묻지 않고 곧 장교들을 불러내서 데리고 달음질을 쳐오는데, 짐꾼, 말꾼

들과 행인들과 객주주인도 다 뒤를 쫓아왔다. 김양달이 사처에 와서 봉물짐이

고스란히 있는 것을 보고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하며 “봉물짐 잃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예방 나리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도둑놈이 어디루 간지나

알아야 찾아가 보지 건공대매루 찾아나설 수야 있느냐.” 하고 장교들 보고 공

론할 때 행인 하나가 들어와서 “붙들려가신 양반을 찾으러 가시지 않으렵니까.

지금 뒷집 사람의 말을 들으니 도둑놈들이 능안으루 가더랍니다. 저희두 동행

노인을 찾으러 갈 테니까 가실테면 뫼시구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방비장 없는 것이 진상 봉물을 영거하여 가는 데 지장이 되지 않으므로 김

양달은 예방비장을 찾을 마음이 도저치 않으나 행인의 말을 듣고 한번 색책으로

라도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어서 “도둑놈들 간 방향을 알면 뒤쫓아 가서 붙

들려간 사람을 뺏어와야지. 이녁내들이 간다니 우리하구 같이 갑세.” 하고 행인

에게 말한 뒤에 장교 세 사람은 안방에서 봉물짐을 지키게 있게 하고 머리통이

깨어진 장교 한 사람은 바깥방에 누워 있게 하고 남은 장교 한 사람만 데리고

행인들과 같이 가기로 하였다. 장교 한 사람이 안방에 떨어져 있는 환도를 집에

꽂아서 김양달에게 바치며 “나리, 이 환도두 가지구 가시지요?” 하고 말하니 김

양달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환두는 해 무어 하니? 도둑놈 몇 놈쯤 이 주먹으

루 때려눕히지.” 하고 주먹을 내보였다. “그럼 소인이나 가지구 가겠습니다.”

데리고 갈 장교가 말하는 것을 “아무리나 하려무나.” 김양달이 허락하여 환도

는 그 장교가 받아서 허리에 질렀다.

초저녁에 달을 가리던 적은 구름이 한 조각도 남지 않고 없어져서 달빛이 대

낮같이 밝았다. 김양달이 행인들은 앞세우고 장교는 뒤세우고 능안길로 쫓아오

는데 앞선 행인들이 눈 위에 남아 있는 발자국들을 살펴보고 “이거 보게. 사람

을 끌구 간 자국이 환하지 않은가.”

“중간에 한 사람을 양편에서 끌구 간 것 같애. 길이 좁아서 셋이 느런히 서

갈 수 없으니까 이편 놈이 길 밖으루 나갔다 저편 놈이 길 밖으루 나갔다 한 모

양일세.”

“발자국을 보니 종종걸음 들을 친 모양일세. 우리가 이렇게 빨리가면 능안 안

짝에서 붙잡겠네.” “그럼 능안까지 갈 게 있나.” 저희끼리 서로 지껄이었다.

김양달이 행인들더러 지껄이지 말고 더 빨리 가자고 재촉하여 오리길을 좋이

왔을 때 여러 사람이 뭉텅이져서 가는 것이 멀리 앞이 보였다. “옳다, 저기 간

다.”

행인하나가 소리치자, 김양달이 곧 행인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서서 장달음을

놓으니 행인들과 장교가 숨이 턱에 닿게 쫓아왔다. 사람들을 두 패로 붙들고

가고 사람 하난가 뒤에 따로 가는 것까지 분명히 보이게 되었다. “이놈들 게

있거라!” “이놈들 견데 봐라.” 김양달이 호통 소리에 산골이 울렸다. 앞에 가

는 여러 사람이 가지 않고 서는 듯 하더니 즉시 달음박질쳐서 도망을 하는대 주

저앉는 사람 하나만 뒤에 남기었다. 김양달이 주저앉은 사람을 와서 보니 곧 예

방비장이라 얼른 대들어서 아갈잡이와 뒷결박을 풀어놓고 “다치신 데는 없습니

까?” 하고 물으니 예방비장이 긴 숨을 내쉬고 나서 “다친 데는 없는 모양이나

그러나 죽을 뻔했네.”하고 기운 없이 말하였다. 김양달이 뒤에 온 장교를 돌아

보며 “예방 나리 뫼시구 찬찬히 가거라. 나는 도둑놈들 쫓아가서 주먹맛 좀 보

이구 오마.”하고 말하는 것을 예방비장이 손을 붙잡고 “김여맹 고만두구 객주

루 가세.”하고 말리었다. 행인 하나가 예방비장을 보고 “늙은이는 도둑놈들이

어째 끌구 갔습니까?”하고 물으니 “도둑놈들 말이 늙은 사람을 내버리구 가면

종적이 탄로나겠다구 하더니 그래서 끌구 간게지.”하고 예방비장이 대답하여

주었다. 행인들은 어디까지든지 쫓아가 소 동행을 찾아오겠다고 도적의 뒤를 밟

아가고 김양달은 예방비장이 손을 잡고 놓지 아니하여 장교와 같이 예방비장을

부축하고 돌아왔다.

예방비장이 걸음을 빨리 걷지 못하여 금교까지 돌아오는데 보리밥 한 솥 짓기

착실히 걸렸다. 객주집에 다 왔을 때 바깥방에서 두런두런 지껄지껄하는 소리가

나서 김양달이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김꾼, 말꾼 들이 모두 일어나 앉았었다.

“왜들 안 자구 앉았느냐?” 김양달이 묻는 말에 “아이구, 나리 오셨습니까.”

“어째 이렇게 더디셨습니까.” “나리, 큰일났습니다.”하고 대답들 하며 일어

서는데 누웠던 장교까지 일어서서 앞으로 나오며 “예방 나리는 어떻게 되셨습

니까?”하고 물었다. “여기 오신다. 그런데 또 무슨 일이 났느냐?” “나리 가

신 뒤에 얼마 아니 있다가 화적패가 몰려와서 봉물짐을 다 가져갔습니다.” “

무엇이 어째! 봉물짐을 가져가?” 김양달이 펄쩍 뛰어 나서며 장교에게 부축받

고 섰는 예방비장을 돌아볼 사이도 없이 안으로 쫓아들어왔다. 안방에는 장교

세 사람이 죽은 사람같이 늘비하게 쓰러져 있다가 김양달이 “이놈들아, 죽어자

빠졌느냐!”하고 소리지르는 바람에 뻘떡뻘떡 일어들 났다. “봉물짐 어디 갔느

냐?” 장교들은 얼빠진 사람들같이 멀거니 서로 보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

이놈들아, 맑은 정신 다 나갔느냐?”하고 김양달이 신발 신운 채 방에 뛰어들어

와서 세 장교의 귀퉁이를 깡그리 쥐어박으니 두 장교는 “아이구!” “아이구머

니!”하고 주저앉는데 한 장교가 꼿꼿이 서서 “김여맹 나리 왜 이러십니까. 우

리들은 아무 죄두 없습니다.”하고 발명하였다. “봉물짐 어떻게 했느냐?” “화

적들이 가져갔습니다.” “너희놈들은 가만히 보구 있었느냐?” “화적들 수효

가 엄청나게 많아서 꼼짝 못하구 결박들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주인의 말을 들

으니 화적들이 삼사십 명이나 되더랍니다. 삼사십 명을 어떻게 당합니까. 제 말

이 거짓말인가 주인 불러 물어보십시오.” “화적들이 어디루 갔느냐?” “그걸

소인들이 어떻게 압니까. 화적들이 다 간 뒤에야 주인이 와서 소인들의 아갈잡

이와 뒷결박을 풀어주었습니다.” “바깥방에 있는 놈들은 다 죽었더냐?” “나

중에 말 들으니까 화적의 괴수 한 놈이 철퇴를 들구 바깥방문을 가루막구 서서

꿈쩍만 하면 때려죽인다구 어르는 통에 짐꾼, 말꾼 들은 끽소리두 못하구 있었

답니다. 화적의 괴수두 한 놈뿐이 아니에요. 안에 들어와 섰던 괴수놈은 큰칼을

쥐구, 안팎으루 드나들던 괴수놈은 긴 창을 짚었습디다.” “너희놈들이 밥병신

이지 사람이냐? 하다못해 여기 찰방한테 가서 말하구 역졸들과 같이 쫓아가 보

지두 못한단 말이냐!”“저희들두 그런 공론을 했습니다만 나리들 오시기를 기

다렸습지요.”“네까짓 놈들이 무슨 공론을 했겠느냐. 우리 오기를 기다릴 것 없

이 우리에게루 쫓아오기라두 해야지.”“어디까지 가셨는지 몰라서 못 갔습니다.

”“이놈아, 발명 마라. 그래서 편하게들 자빠져 잤느냐?”“자지들 않았습니다.

”“그래두 발명이냐!” 김양달이 장교의 뺨을 한번 후려갈기니 그 장교는

손으로 뺨을 가리고 한참 쩔쩔매었다.

김양달이 장교하고 말하는 동안에 예방비장은 같이 온 장교를 데리

고 밖에서 들어왔고, 객주 주인은 건넌방에서 뛰어나왔다. 김양달이 먼저 예방비

장을 보고“이걸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물으니 예방비장은 넋 잃은 사람같이

말대답도 못하고 다음에 주인을 보고 “화적놈들이 지금 얼마나 갔겠나?”하고

물으니 주인은 고개를 비틀면서“글쎄요. 거의 십리길이나 갔을껄요.”하고 대답

하였다.

장교들이 방에서 나가고 예방비장이 방안에 들어앉은 뒤에 환도 가지고 갔던

장교가 환도를 방에 들여놓다가 김양달이 방안에 신발 신고 섰는 것을 보고 “

나리, 왜 신발 안 벗으십니까?”하고 깨우쳐서 김양달이 비로소 짚신을 벗어 내

놓고 주저앉았다. 그 많던 봉물짐과 행구가 하나 남지 않은 것을 김양달이 새삼

스럽게 둘러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떨었다. 예방비장이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첫밗에 하는 말이“여보게 김여맹, 올 때 다짐 두구 오지 않았나.”책

잡는 말투로 나오니 김양달이 어이가 없어 대답을 못하고 그 얼굴만 뻔히 바라

보았다. “다짐둘 때 호기가 어디 가구 벌벌 떨기만 하니 웬일인가.”예방비장

다음 말에 김양달이 불끈하며“어떤 밥병신 녀석이 벌벌 떤단 말이오? 벌벌 떠

는 녀석들은 따루 있소.”말씨가 곱지 않게 나왔다. “벌벌 떠는 녀석들이라니?

누구더러 하는 말인가?”“못생긴 녀석들이 눈뜨구 봉물짐을 뺏겼는데 그렇게

말 안해요?”“봉물짐은 성주받이 구경에 날라갔으니 그런 줄이나 알구 말하게.

”“나는 성주받이를 구경가지 않았소.”“성주받이 구경을 안 갔으면 장교들

부르는데 그렇게 동안이 오래 걸렸나. 또 장교들은 꼭 친히 부르러 가야 하나.

그 따위 핑계를 누가 곧이들을 줄 아나.”“핑계라거나 말거나 나만 잘못한 일

이 없으면 고만이오.”“잘못한 일이 없다니, 그런 말이 입에서 쉽게 나오나? 봉

산서 술타령한 것이며 여기서 성주받이 구경간 것이 다 잘한 일인성 싶은가.”

“봉물짐 찾을 생각은 않구 비랭이 자루 찢기요?”“봉물짐은 다짐 두구 온 사

람이 찾아놓겠지.” “아무리 다짐 다짐 하구 내게다 허물을 뒤어쓰이려구 해야

나혼자 몸달릴 까닭 없소.” “몸달릴 까닭 없거든 몸달리지 말게. 감영에 돌아

가서두 그런 소리 하구 배기나 어디 보세.” “나를 벼르면 어쩔 테요?” 김양

달이 목자를 부라리니 “내게다 목자를 부라리면 어쩔 테야?” 예방비장이 호령

기 있게 말하였다. “누게다 호령이오?” “네게다 호령이다.” “너는 누구야?

” “네가 너지 누구야.” “아니꼽게 누구더러 너래?” “되지 못한 토관놈이

뉘 앞에서 거센 체하느냐!” 김양달이 속에서 불덩이가 치미는 바람에 벌떡 일

어서며 “주먹맛 좀 보구 싶으냐!” 하고 소리를 지르니 예방비장이 눈결에 환

도를 집어 날을 빼어들고 일어서며 “뉘게다 주먹을 내미느냐. 앞으루 더 내밀

기만 해라. 팔목을 끊어놓을 테니.” 하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김양달이 발길로

한번 예방비장의 아랫도리를 걷어차니 예방비장이 허깨비갈이 고꾸라지고 또 한

번 예방비장의 환도 든 팔을 걷어차니 환도가 떨어졌다. “이놈, 사람 죽인다.”

예방비장 고함지르는 소리에 바깥방에 나가 있던 장교들이 뛰어들어오고 그

뒤에 짐꾼, 말꾼 들까지 따라들어왔다. 그러나 모두 마당과 봉당에 몰려섰고 방

에는 들어오지 못하였다. 김양달이 방안에 고꾸라진 예방비장을 내려다보고 또

방 밖에 겹쳐 섰는 여러 사람들을 내다보며 “내가 죽을 운수가 뻗쳐서 너놈들

같은 밥병신하구 같이 왔다.”하고 큰소리로 말한 뒤에 방바닥에 떨어진 환도를

집에들며 곧 자기 목을 찌르고 앞으로 엎드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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