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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20)

카지모도 2023. 4. 3.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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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향이가 자리에 누울 때 닭이 울었다. “요새 닭이 퍽 더디 울어요.” 계향이

말끝에 “그 수닭이 묵은 수닭이지?” 이봉학이가 동떨어진 말을 물으니 계향이

는 속으로 괴이쩍게 생각하며 “네.” 하고 대답하였다. “묵은 닭이라 변덕이

나서 우는 때가 들쑥날쑥하는가베.” “실없는 말씀 고만두세요.” “쓸데없는

근심 말구 잠을 잘 자게. 그러면 닭이 어련히 때맞춰 울겠나.” “참말로 요새같

이 밤이 지리해선 사람이 못살겠어요.” “오늘 밤두 지리한가?”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오늘 밤은 별난 밤인가요?” “여편네가 사내하구 같이 자며

밤이 지리하다면 그건 사내를 소박하는 표적일세.” “듣기 싫어요.” “할 말이

많은데 듣기 싫다니 그만두는 수 밖에. 그럼 잠이나 자야겠다.” “졸리시지 않

거든 내 이야기 좀 들으세요.” “내 말은 듣기 싫다는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들으라나. 나두 듣기 싫어.” 모로 누웠던 계향이가 반듯이 누우려고 몸을 움직

이다가 뱃속이 켕기어서 미간을 찌푸리니 이봉학이가 보고 “이야기를 안 들어

준다고 골이 났나?” 하고 물었다. “골이 무슨 골이예요.” “그럼 왜 눈살을

찌푸리나?” “뱃속이 켕겨요.” “어디서 어떻게 켕겨?” 하고 이봉학이가 배

를 만져보려고 하니 계향이는 봉학이의 손을 가볍게 막았다. “뱃속에 든 것이

아들일까 딸일까.” “그걸 미리 어떻게 알아요?” “애낳이 많이 한 여편네들

은 배를 만져보구 미리 안다데그려. 상직꾼 할미도 잘 알겠지.” “아무리 안대

도 구질구질해서 어떻게 배를 만져보라나요.” “정이 궁금하면 잠깐 구질구질

한 걸 못 참겠나.” “됫박 엎어놓은 것같이 배가 불쑥 솟으면 딸이고 허리까지

둥글게 배가 무르면 아들이랍디다. 그렇지만 그 말이 맞는지 누가 알아요?” “

내가 어디 좀 만져보세.” “고만두세요” “불쑥 솟지 않았나 어디 만져보세.”

하고 이봉학이가 배를 어루만지는데 계향이가 못이기는 체하고 가만히 있었다.

“불쑥 솟지 않았네. 아들인가베.” “아들이든지 딸이든지 얼른 낳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상직할미말 들어선 어째 남의 달을 잡을 것 같아요.” “글쎄, 속히

순산해야겠는데 남의 달을 잡아서는.” 하고 봉학이가 말끝을 내지 않고 우물우

물하니 “하루바삐 순산하기를 나리가 속으로 조이시는 줄 나도 알아요.” 하고

계향이가 시름없이 말하였다. “만삭이 되니까 자연 마음에 조이지 안 조일 리

있나. 참말 아까 들으라던 이야기는 무슨 이야긴가?” “초저녁때 포도군사 두

서넛이 담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아랫것들이 보았다는데 그게 혹시 좋지 못한

소식이나 아니겠세요.” “그런 근심은 말라니까 그래.” “근심이 절로 되는 걸

어떻게 해요.” “우의정 대감 형제분이 내 뒤를 봐주실 테니까 별 염려없네.”

“미리 구사또께 상소도 해두시고 우의정 대감께 말씀도 여쭤 두시는 게 좋지

않아요.” “글쎄.” “내 소견에는 속히 서울 한번 갔다오시는 게 좋겠세요.”

“그래 한번 갔다오까.” “아무쪼록 속히 갔다오세요.” “내일 가지.” “내일

길 떠나실 테면 좀 주무시지요.” “자네두 고만 자게.” 이봉학이와 계향이가

서로 지껄이기를 그치고 각각 잠을 청하였다. 이튿날 이봉학이가 안장마에 마부

하나만 데리고 서울길을 떠나기로 작정하여 마부가 안장 지운 말을 대문 밖에

있는 노둣돌앞에 내세웠을 때 포도군사 셋이 아래로부터 올라왔다. 앞장선 군사

하나가 먼저 마부에게로 쫓아와서 “누구 어디 가시나?” 하고 물으니 마부가

하기 싫은 대답을 억지로 “나리께서 서울 행차하신다우.” 하고 대답하였다. “

나리라니 별장 나리 말이겠지?” “그럼, 여기 별장 나리밖에 또 누구 있소.”

그 군사가 동무들과 같이 한옆에 가서 수군수군 공론한 뒤 동무 하나는 아랫길

로 도로 내려보내고 남은 동무 하나와 둘이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봉학이가

관속들을 뒤에 딸리고 밖으로 나오다가 중문턱에서 포도군사들과 마주쳤다. 포

도군사들이 문안 쳇것하는 것을 봉학이는 흘겨보며 “너희들 어째 왔느냐?” 하

고 물으니 군사 하나가 “나리 서울 행차하신답지요?” 하고 되물어서 “내가

서울 가는 게 너희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뇌까렸다. “소인들이 부

장 나리의 전갈을 맡아가지고 왔습니다.” “무슨 전갈이냐?” “양주 도둑놈

꺽정이를 밤배루 건너주신 일이 탄로되었으니 조정 처분 내리시기 전에는 출입

을 못하십니다구 여쭈라구 하십디다.” 이봉학이가 포도부장의 전갈이란 것을

받고 한참이나 말을 못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다가 ” “너의 부장께 가서 나는

서울 갑니다구 답 전갈해라.” 하고 말 한마디 겨우 하였다. “소인들이 올 때 부

장 나리께서 따루 분부가 기셨습니다.” “무슨 분부냐?” “나리께서 고집세우

구 떠나시거든 떠나신 뒤에 안으서를 잡아가지구 오라구 분부하십디다.” “너

의 부장이 누구를 잡아오래! 이놈들아, 조정 처분이면 모르까 너의 부장 맘대루

누구를 잡아가! 내 첩은 고사하고 내 수하에 있는 하인 하나두 못 잡아간다. 이

놈들, 정갱이를 분질러놓기 전에 어서 가거라!” 봉학이는 펄펄 뛰며 호령하는데

“소인들은 형장 맞을 죄가 없습니다.” “소인들을 왜 호령하십니까?” 포도군

사들은 유들유들하게 말대답하였다. 이봉학이가 뒤에 섰는 관속들을 돌아보며

“저놈들을 몰아내라.” 하고 분부하여 관속들이 포도군사를 등 짚어 몰아낼 때

포도군사 하나가 머리를 돌이키고 “나리가 떠나시기만 하면

안으서는 잡아갈 줄 압시오.”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이봉학이는 분이 속에 복

받쳐서 눈앞이 캄캄하여지며 선 자리에 쓰러질 것 같은 것을 중문 설주를 짚고

간신히 진정하였다. 봉학이가 관속들의 부축을 받고 도로 방으로 들어왔을 때

관속 하나가 앞에 와서 “안으서님께서 갑자기 복통이 나셔서 정신을 못 차리신

답니다.” 하고 고하여 의원을 부르러 보내고 안에 들어와 보니 계향이는 정신

없는 중에 “나리 서울 갔다오세요, 서울 갔다오세요” 하고 군소리하듯 중얼거

렸다. 계향이가 약을 연복으로 두서너 첩먹고 밤늦도록 신고한 뒤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만삭아이라, 아이는 충실하나 산모가 정신을 잃고 늘어져서 첫국밥도

먹지 못하였다.

임꺽정이의 종적을 탐지하러 임진에 내려온 포도부장이 봉학이의 죄상을 정확

히 안 뒤에 포도청에 보하고 일변 포도군사들을 시켜 동정을 살피게 하였었다.

포도부장이 데리고 온 군사들에게 번하번으로 별장의 집 근처를 돌라고 분부할

때 유년 포교질에 집이 난 군사가 “별장이 혹시 눈치채고 도망할 때는 어떨게

하오리까?” 하고 물어서 “조정 처분이 내리시기까지 손댈 수는 없으니 너희가

알아서 수단대루 도망하지만 못하게 해라.” 하고 부장은 말을 일렀었다. 수단대

로 하란 부장의 말을 들어 둔 까닭에 포도군사들이 봉학이를 서울 가지 못하게

막을 때 부장에게 통기하고 어주(위조) 전갈과 거짓 분부로 봉학이를 공동한 것

이었다. 봉학이가 그 공동을 받고 겁이 나서 서울 못 간것은 아니로되 포도군사

로 보면 성공이지 실패가 아니었다. 계향이가 산후에 이내 기진맥진하여 그날

밤은 자몽한 채 지내고 이튿날 새벽부터 비로소 정신기가 돌아서 아침때쯤은 갓

난애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음도 머금고 미역국 그릇을 받아서 국물도 마시게 되

었다. 봉학이는 안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 나가 누워서 한숨 자는 체하고

다시 안에 들어와 보니 계향이가 갓난애를 옆에 끼고 누워 있었다. “어느 새

젖을 먹이나?” 하고 봉학이는 모자를 내려다보며 싱그레 웃고 섰는데 계향이가

치어다보며 “서울 안 가세요?” 하고 물어서 봉학이는 안 간다는 대답으로 고

개를 가로 흔들었다. “왜 안 가세요?” “차차 가지.” “차차 언제?” “언제

든지 가지.” “내가 잡혀갈까 보아 안 가세요?” “누가 미친 놈들의 말을 곧

이 듣구 안 가겠나.” “오늘이라도 가서 다녀오시지요.” “고만두게. 내가 알

아 할 테니.” 이봉학이가 곧 계향이 앞에 와 앉아서 “우의정 대감께 미리 여

쭙지 않더라두 뒤를 안 봐주실 리가 없으니 염려 말게.” 하고 소곤소곤 지껄

였다. 봉학이가 한동안 삼방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뒤 얼마 아니 있다가 관속

하나가 마당에 들어와서 국궁하여 말을 아뢰었다. “평안도에서 올라오시는 김

판서 대감 행차가 오늘 점심때 나루를 건넙신다구 소문이 왔소이다.” “그럼

우리 큰배 두 척만 건너편에 가서 등대하구 있으라구 지휘해라.” “지금 점심

때가 거의 다 되었소이다. 나리께서두 곧 건너갑시지요.” “오냐, 큰배부터 건

너보내라구 일러라.” 큰배가 건너간지 한동안 뒤에 봉학이가 관복을 갖추고

작은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오니 김판서 행차의 전배가 벌써 강가에서 바라보

이었다. 평안감사 김명윤이 경직으로 옮아 상경하는 길이라 요여와 사인교와 장

독교와 보교들로 배 두 척이 거의 다 차고 배 두어 척이 더 있어도 다 싣지 못

할 만한 부담마와 복마들이 뒤에 남게 되었다. 배가 한번 다시 갔다왔다 하는

동안 길이 더디어서 김명윤이 이봉학이를 사인교 앞에 불러세우고 거행 불민하

다고 중책하였다. 진군들과 백성들의 눈앞에서 봉학이가 곤욕을 당할 때 창피하

고 분한 것을 참고 “황송하외다.” “죄만하외다.” 하고 사과하였으나, 속에

처진 불쾌한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아니하여 별장청에 돌아온 뒤 관속들을 물

리고 방문을 닫히고 드러 누었는데 말없이 윗간 방문을 여는 사람이 있어서 “

그게 누구냐?” 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의관이 분명한 깎은 선비 하나가 이봉

학이의 누워 있는 앞으로 나서는데 그 선비가 뜻밖에 황천왕동이라 봉학이는 말

문이 막히어서 자리에 일어 앉은 뒤 한참 만에야 비로소 “이게 웬일인가?” 하

고 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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