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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21)

카지모도 2023. 4. 5.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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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황동이가 이봉학이의 놀라워하는 눈치를 보고 적이 웃으면서

아랫목에 내려와 앉을 때 봉학이는 “밖에서 아무도 본 사람이 없나?” 하

고 물으며 곧 앞미닫이를 활짝 열어놓았다. “마침 밖에 아무도 없기에 그대루

막 들어왔소.” “대체 어째 왔나?” “서울 가는 길이오.” “서울은 어째 가

나?” “소문 좀 들으러 가우.” “이 사람아, 지금이 어떤 판인 줄 알고 나섰

나. 포교들이 길가에 널렸네. 사람들이 대담해두 분수가 있지 않은가. 공연히 서

울 갈 생각 말구 도루 가게.” “포교가 나를 어쩌겠소. 아까 이 나룻가에 와서

두 기찰을 당했지만 시임 황해감사 신희복의 삼종질 신생원에게 저희가 고개나

숙였지 별 수 있소.” “자네가 신생원 행세하나 만일 얼굴 아는 사람을 만나면

탈 아닌가?” “양주읍에 들어서기 전엔 내 얼굴을 알 놈 없소.” “지금 포도

군사들이 내 신변에 눈을 쏘구 있는 중일세. 내게 오래 앉았는 것이 불긴하니

곧 가게. ” “곧 가겠소. 그런데 내가 들은 말이 있어서 참말인지 아닌지 잠깐

물어보러 왔소.” “무슨 말인가?” “어제 서울 가려다가 포교들에게 붙잡혀서

못 간 일이 있소?” “그런 소리 날 만한 일이 있었네.” “밤배를 내준 일이

발각되었다는구려.” “그런 모양일세.” “그럼 탈 아니오. 내 생각엔 진작 우리

같이 피신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은데 의향이 어떻소?” “그렇게까지 안 하드

래두 내 일은 펴일 수 있을 텔세.” “그러면 작히 좋겠소. 그러나 아까 사인교

앞에서 욕 당하는 걸 보니까 벼슬이 좋은지 모르겠습디다.” “말 말게. 속 상하

네.” “그 기구 있는 일행이 어제 청석골을 지나왔소.” “왜 가만두었나?” “

의논이 서루 맞지 않아서 그대루 곱게 보내는 갑디다.” 관속 하나가 들어와서

서울서 사람이 왔다고 거래하여 봉학이가 그 관속을 내다보며 “웬 사람이 어째

왔다더냐?” 하고 물으니 “그건 물어두 잠깐 보입겠다구만 말씀하옵디다.” 하

고 관속이 대답하였다. “불러들여라.” 이학봉이가 분부하여 관속이 도로 나간

나간 뒤에 황천왕동이는 “나는 가겠소.” 하고 곧 일어서 나갔다. 이봉학이가

밖을 내다보고 있는 중에 서울서 왔다는 관속이 데리고 들어오는데 그 사람은

서울 있을 때 낯이 익은 이의정댁 하인이라, 봉학이가 반겨서 먼저 “자네 어째

왔나?” 묻고 뒤미처 또 “대감마님 문안 안녕합시구 댁네에 별고가 없으신가.

?” 뒤의 말을 먼저 대답하고 나서 “풍덕이 사는 소인의 삼촌이 죽어서 통부

받고 가는 길이온데 댁의 늙은 청지기가 이 편지를 갖다 드리라구 부탁해서 잠

깐 들렀습니다.”

먼저 말은 나중에 대답하고 조그만 편지봉을 뒷마루에 올려놓았다. 봉학이가

팔을 늘이어서 그 편지를 집어다가 뜯어보니 그 속에 든 편지란 것이 스스로 자

머리 수 진서글자 두 자 적힌 쪽지이었다.

이봉학이가 쪽지 편지봉을 뜯어보니 전엔 부의 주란 부탁 펴지러니 생각하였

다가 생각 밖의 두 글자에 얼굴빛까지 달라졌다. 툇마루 앞에 섰던 하인이 봉학

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슨 좋지 않은 기별이오니까.?” 하고 물으니 봉학이

는 진정으로 “아니야.” 하고 대답하였다. “저는 곧 물러갈랍니다.”“이왕 왔

으니 하루 묵어가지.”“오늘 장단 가서 자구 내일 일찍 풍덕을 대어 가겠습니

다.”“풍덕을 내일 가야 해?”“사촌이 아직 미거한 까닭에 가서 장사지낼 마

련을 해주어야 할테니까 한 시각이라두 일찍 가봐야지요.”“ 오, 참말로 누가

죽어서 풍덕을 간댔지?” “아비의 동생 친삼촌입니다.”“ 내가 부의를 좀 할

테니 잠깐만 기다리게.”하고 봉학이가 관속을 불러서 “ 안에 무명이 있을 테

니 한 필 달래서 저 사람 주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그 하인이 솔직하고 관속과

같이 밖으로 나간 뒤에 봉학이는 다시 두 자 편지를 집어들고 종이를 뚫어지도

록 들여다보며 “자수 자수.” 하고 입속으로 옮기다가 홀저에 “옳지, 우의정 대

감께서 시키셨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끄더하였다. 늙은 정치가로는 죄가 있고

없는 것도 아직 알지 못하려니와 설혹 알더라도 죄를 자수하라고 자수 두자를

써보낼 의사가 나지 못할 것이라, 우의정 대감께서 시킨 것이 틀림없다고 봉학

이는 생각하였다. 봉학이가 금부에 가서 자수하기로 마음을 먹고 곧 이날 저녁

때라도 상경하고 싶었으나 한번 금부에 가서 갇히면 언제 나오게 될지 조만을

모르는 까닭에 뒷일을 처리하지 않고 불시에 일어서기가 어려웠다. 우선 계향이

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면 갓난 핏덩이를 데리고 갈 바가 없어 고생할 것이라

시골 서울간에 몸 붙여 있을 곳을 정해주어야 할터인데 마땅히 생각나지 아니하

였다. 계향이의 말을 들어보려고 봉학이가 안에 들어와서 해산 구원하는 할미와

다른 계집하인을 밖으로 내보내고 서울서 온 기별이 곧 우의정 대감의 분부인

것을 자세히 이야기한 뒤에 “나는 금부에 가서 자수하면 우의정 대감께서 뒤를

봐주실 테니까 아무 걱정이 없지만 자네 일이 걱정일세. 내가 금부에 갇혀 있는

동안 자네가 갓난 것을 데리구 어디 가서 붙여 있으면 좋겠나?” 하고 의논하니

계향이는 미리 생각해둔 것처럼 조금도 서슴지 않고 “서울 가서 있을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서울 가서 어떻게 있어. 그래두 교하 외삼촌에게 가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는 교하가 싫어요.”“그러니 서울 가서 지낼 수가 있어야

지.” “구사또댁에 가서 간청하면 몸담아 있을 방 한 칸이냐 얻어주시겠지요.”

“방만 있으면 사나.” “서투른 바느질품이라도 팔지요. 그런 건 걱정 마세요.

” “아무리나 하게. 그럼 나는 내일이라도 먼저 서울루 가겠네.” “나도 같이

가요.” “자네야 내일 어떻게 가나.” “어린것을 폭 싸서 안고 승교바탕 타고

가지요.” “죽다 살아난 산모가 삼두 안 나간 핏덩이를 어떻게 길을 간단 말인

가.” “나리가 내일 가서 자수하시면 나도 며칠 안에 여기서 쫓겨나게 될 테지

요. 며칠 있다가 곤두박질해서 쫓겨나가느니 나리와 같이 가는 것이 좋지 않아

요.” “그럼 교하 외삼촌을 청해다가 자네를 맡기구 감세.” “싫어요. 나리 따

라갈 테요.” “내일 삼이나 나간 뒤에 다시 의논하세.” “다시 의논할 것도 없

이 내일 같이 떠납시다.” “그렇게 아주 떠나자면 여기서 뒤를 맡겨놓구 갈 일

두 더러 있으니까 어짜피 내일은 못 떠나겠네.” “내일 못 떠나면 모레 떠납시

다.” “같이 가서 임시 갑접이라두 시켜놓구 자수했으면 나는 아주 한 시름을

잊겠네만 자네가 무사히 길을 갈 수 있을까.” “염려 마세요. 남들은 해산하고

곧 일어나서 국밥까지 끓여먹는데 가만히 타고 가는 것이 어때요.” 계향이가

고집을 세우는 바람에 이봉학이도 데리고 갈 의향이 많아졌다.

이튿날 이봉학이가 임진을 떠날 준비로 뒷일을 처리하는 중에 파주읍에서 우

병교가 나와서 시각 지체 말고 대령하란 군령을 전하니, 이는 곧 파주목사가 군

령을 놓은 것이었다. 이봉학이가 인궤 외에 중요한 문부까지 다 가지고 병교를

따라서 읍으로 들어갔다. 파주목사가 병마수군동첨절제사의 위의를 갖추고 이봉

학이를 불러들여서 양주 도적 꺽정이를 밤배로 건어주었다는 것이 어찌 된 일이

냐고 사문하는데, 경기감영과 병조의 관자들을 내보이며 일이 벌써 감영뿐 아니

라 조정에까지 드러났으니 일호 기만할 생각을 두지 말고 자복하라고 어르고,

또 전후 사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세세히 자복하면 죄가 경감되도록 보하여

주마고 달래었다. 이봉학이가 어르는 걸 겁내서 말할 사람도 아니요, 또 달래는

걸 믿고서 말할 사람도 아니나 자기의 지은 죄를 자수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

꺽정이와 형제같이 친한 것부터 꺽정이를 밤배로 건네 준 것까지 전부 다 토설

하였다. 목사가 이봉학이의 초사를 다 받은 뒤에 관원으로 천만부당한 짓을 하

였다고 꾸짓고 임소에 가서 처분이 다시 내리기를 기다리라고 일렀다. 이봉학이

가 서울 올라와서 금부에 자수하겠노라 말하고 가지고 온 인궤롸 문부를 맡아달

라고 목사께 바치니 목사가 처음에는 “어디루 도타할 생각이 있어서 갖다 맡기

는 것이 아닌가,” 말하고 받지 않다가 “도타하려면 인궤나 문부나 다 내버리고

도타하옵지 맡아줍시사고 가져올 리가 있습니까.” 이봉학이의 사리 바른 말을

듣고 비로소 받아주었다. 봉학이가 파주읍에서 나오는 길에 나루에 뫄서 묵는

포도부장을 찾아보고 꺽정이를 밤배고 건네준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뒤에 금부

에 자수하던 내일 상경하겠다고 말하니 부장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금부에 자

수하러 가는 사람이 안식구는 왜 데리구 가시우. 안식구두 자수시킬 죄가 있소?

” 하고 빈정거려 말하였다. “안식구를 여기 내버려 두면 뒤에 돌보아 줄 사람이

없으니까 아주 서울 데리구 라서 방 한 칸이라두 얻어서 전접을 시키구 자수

할 생각이오.” “생각을 빈틈없이 잘 하셨소.” “내말을 거짓말루 들으시는 것

같으니 그건 사람 대접이 아니오.” “거짓말을 참말이라면 참말이 되구 참말은

거짓말이 되우. 그러구 우니는 사람을 볼 때 죄인으루 보는 버릇이 있어서 사람

대접을 잘할 줄 모으니 과히 책망 마시우.” “그럼 내가 철가도주나 하는 줄로

아시우?” “철가도주하실 리가 만만 없더라두 우리는 철가도주를 못하도록 방

비하지 않을 수 없지요.” “방비는 어떻게 하실 작정이오?” “내일 보면 아시

지요.” “내일 떠날 때 기별해 주리까?” “그러실 것 없소. 안식구까지 데리구

가실 작정은 언제 우리게 기별해 주셨소?” “미리 말씀 한마디 해둘 것은 요전

같이 떠날때 군사를 보내서 간다 못 간다 하진 마시우. 그러면 자연 좋지 못한

광경이 날 것이오.”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염려 마시우. 내가 군사 몇 놈 데리

구 서울까지 배행해다 드리리다.” “같이 가는 것은 나두 좋소.” “좋지 않다

고 하셔두 우리는 안 갈 리 없소.” “잘 알았소. 내일 만납시다.” 이봉학이가

포도부장에게 별장청으로 온 뒤에 곧 관속들을 내보내서 걸구를 서너 마리 사다

잡고 막걸리를 수십 동이 사다가 걸러서 육십여 명 진군을 풀어 먹이었다. 수족

같이 부리던 진군들을 작별 않고 떠나기가 섭섭하였던 것이다.

임진 내려온 포도부장이 이봉학이의 죄상을 탐지하여 포도청에 비밀히 보한

뒤 포도대장이 위에 아뢰어서 처음에는 위에서 파주목사를 시켜 별장

의 죄지 유무를 사문하라고 처분을 내리었었는데, 이량이 이것을 알고 편전에

입시하였을 때 “별장의 죄상이 기위 입문까지 되온 바엔 바로 금부에 압상하와

엄형으로 국문하옴이 마땅하올 줄 아뢰오.” 하고 위에 주달하여 마침내 임진별

장 이봉학을 구격나래하란 전교가 금부에 내리게 되었다.

금부에서 전교를 받자온 뒤 금부도사는 서울서 새벽 떠나 임진으로 이봉학이는

아침때 임진서 떠나 서울로 올라오는데 이봉학이의 일행은 이봉학이 탄 부담마

와 계향이 탄 승교마당 외에 하인 하나와 짐꾼 하나뿐이라 실상 초솔하기 짝이

없건만, 포도부장이 포도군사 삼사 명을 데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오는

까닭에 속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기구 있는 행차보다 도리어 무시무시하여 길

을 잡기전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미리 미리 길을 비키었다. 이봉학이의 일행이

파주읍을 지나서 두마니를 채 목미쳐 왔을 때 서울서 내려오는 금부도사의 일행

과 노상에서 서로 만났다. 그 일행보다 몇 걸음 앞서던 포도부장이 도사의 말

앞에 가서 수어 인사수작을 마치고 “어딜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도사가 말

위에서 “임진 가우.” 하고 대답하였다. “별장을 잡으러 가십니까?” “그렇

소.” “별장이 지금 서울 가는 길입니다. 저기 부담마 탄 사람이 별장이구 승교

마당 탄 사람이 그 소실입니다.” 도사가 부장의 말을 듣고 곧 나장을 돌아보며

“저것이 임진별장이란다. 어서 가서 잡아내려라.” 하고 분부하였다. 이봉학이

는 나장 나졸 들이 와서 내려라 마라 하기전에 황망히 말에서 뛰어내렸다. 도사

가 이봉학이를 잡아다 말 앞에 꿇리고 자기도 말 위에서 내려와서 전교를 일러

들린 뒤에 곧 격식대로 의관을 벗기고 줄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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