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함부루 지어낸 게지.”
늙은 오가가 천왕동이를 바라보면서 “다른 젖은 몰라도 쇠불알젖만은 자네가
지어낸 겔세. 나는 금시초문일세.” 하고 웃는데 돌석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장
인 행세 하실라거든 이 장난꾼들을 꾸중이나 좀 하시우.” 하고 말하니 오가가
선뜻 앞으로 나서서 일부러 틀을 지으며 “내 딸 내 사위 고만 들볶게.” 하고
껄껄껄 웃었다. 오가가 말리지 않고 도리어 부추기고 꺽정이가 다른 두령과 같
이 웃고 서서 구경하니, 막봉이와 천왕동이의 짓궂은 장난이 그칠 줄을 몰랐다.
돌석이는 웃고 당하지만 신부는 다부져도 종시 계집아이라 부끄럼을 못이겨서
나중에 눈에서 눈물까지 흘러나왔다. 천왕동이가 신부의 눈물을 보고 “색시를
훔친 사람은 용서할 여지가 없지만 죄없는 색시가 애처로우니 우리 고만 용서하
구 가세.” 하고 막봉이를 돌아보니 막봉이는 큰 선심이나 쓰는 듯이 “아따, 그
러지.” 하고 천왕동이의 손을 잡고 같이 일어섰다. 곽오주는 아이니 젖이니 하
는 소리가 듣기 싫어 밖에 나와 있다가 다들 나오는 것을 보고 “신방에 와서
밤새 잔다더니 어느새 갈 테요?” 하고 말하니 능청맞은 오가가 웃으면서 “자
네가 슬슬 배도니까 재미들이 없어서 고만 간다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나온 바에 다시 들어갈 맛대가리 없네. 고만 바깥방으루 나가세.” “그럴 테면
바깥방엔 나가 무엇하우? 각각 헤어집시다.” 서림이가 오가를 보고 “내일 아
침에 남침들 올 텐데 주육이나 많이 장만하셨소?” 하고 묻는 것을 오주가 듣고
“남침이란 게 무어요?” 하고 서림이더러 물었다. “남침이란 것이 자리보기란
말이오.”“자리보기라면 다 알 것을 왜 남침이라우?” “남침이라구 말하는 사
람도 많은데 곽두령은 못 들었소?” “듣지 못했소. 대체 아는 말 두구 모르는
말 하는 사람의 심사를 나는 알 수 없어.” “곽두령은 내 말이라면 곧 시비를
차리니 무슨 살이 끼었는가 보우. 이 다음에 한번 살풀이를 합시다.” 오주가
서림이의 말은 대답 않고 오가더러 “자리보기 오는 사람들 대접할 술고기를 오
늘 밤에 먼저 좀 먹읍시다.” 하고 말하니 오가가 혼감스럽게 “그거 좋은 말일
세.” 하고 허락한 뒤 “자, 다들 나갑시다.” 하고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바깥
방으로 나왔다. 바깥방은 이칸방이라 칠팔 인이 들어앉아 술먹기가 조금 비좁으
나, 아래윗간의 앞뒤 창호를 다 열어놓으면 바람이 잘 통하여 과히 덥지 아니한
방이었다. 술상 둘을 내다가 아래윗간에 한 상씩 놓고 사람 여덟이 한 상에 넷
씩 안앉다. 아랫간에 앉은 사람은 오가와 꺽정이와 이봉학이와 서림이요, 윗간에
앉은 사람은 박유복이와 황천왕동이와 곽오주와 길막봉이었다. 아랫간에서도
엔간히 웃고 떠들지만, 그래도 윗간에 밀릴 때가 많았다. 윗간
에서 먼저 신방 이야기를 하다가 상소리들을 내놓아서 아랫간과 같이 웃은 뒤에
윗간에서 또 먼저 막봉이의 안해 데려올 이야기를 시작하여 아래윗간에서 함께
얼리어 떠들었다. 막봉이 당자는 안해를 데리러 속히 간다고 말하고 서림이는
전날 말과 같이 아직 가지 못한다고 말하여 둘의 말이 맞서게 되었을 때, 오주
가 서림의 말을 간간히 뒤받고 천왕동이가 막봉이 말에 가담할 뿐이라 만일 종
공론하여 작정한다면 막봉이가 꼼짝없이 지게 된 판에 막봉이는 결기를 내면서
“사내자식이 무슨 일을 하려구 한번 맘먹은 다음엔 백이 백소리하고 천이 천소
리해두 소용없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때까지 말이 없던 꺽정이가 막봉이를
바라보면 “여보게, 우리가 만일 공론하구 못 간다면 못 가는 게지, 그래 자네가
갈 텐가? 아직 가만 있게. 차차 공론해서 가두룩 해줌세.” 하고 말하니 막봉이
가 다시는 검다 쓰다 말을 아니하였다. 그 뒤에는 다른 이야기가 끝없이 나와서
밤이 이슥토록 여러 두령이 웃고 떠들다가 술들이 진취되어 가지고 각기 흩어져
돌아갔다. 이튿날 식전에 여러 두령이 자리보기하러 오가의 집으로 모이는데 선
등으로 쫓아올 막봉이가 다른 두령들이 다 온 뒤까지 오지 아니하여 막봉이 처
소에 사람을 보내보니 막봉이도 없고 막봉이에게 시중드는 졸개도 없었다. 한동
안 지난 뒤에 그 졸개만 혼자 와서 “길두령께서 수원. 안성. 천안을 다녀오신다
구 떠나시는데 탑고개까지 뫼시구 나갔다 왔습니다. 떠날실 때 말씀이 열흘 안
에 돌아올 테니 여러 두령께 염려들 맙시사구 여쭈라구 하십디다.” 하고 말하
여 여러 두령들은 듣고 모두 어이없어 하였다.
금교역말 어물전 젊은 주인이 어디서 상쟁이 한 사람을 데려왔는데 상을 썩
용하게 본다고 소문이 청속골 산속에 들어왔다. 서림이가 관상을 좋아하는 까닭
으로 상쟁이를 한번 데려다 보자고 도중에 공론을 돌리었더니 서림이의 말이라
면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곽오주가 “우리네 상판대기를 관상쟁이 보이면 무
슨 좋은 소리가 나올 줄 아우?” 하고 뒤받는 외에 다른 두령들은 다 좋다고 찬
동하였다. 상쟁이를 데려오기로 되어서 인마를 보낼 때 가는 사람에게 이르고,
또 어물전 젊은 주인에게 기별하여 상쟁이를 속이게 한 까닭에 상쟁이는 적굴인
줄을 모르고 왔다. 여러 두령이 도회청에서 회의하는 끝에 그대로 둘러앉아서
상쟁이를 불러들였다. 서림이가 상쟁이에게 자리를 권하여 앉히고 수인사한 뒤
에 “관상이 투철하시단 말씀을 듣구 전위해서 뫼셔왔으니 우리들 상을 한번 잘
보아주시우. 차차 유년들두 낼 테지만 지금 대강 의논부터 좀 들읍시다. 자, 저
어른부터 보시구 말씀하우.” 하고 오가를 가리키니 서림이가 말하는 사이에 벌
써 슬금슬금 여러 두령의 얼굴을 곁눈질하여 보던 상쟁이가 오가의 얼굴을 한참
뻔히 바라보고 “일평생 의식 걱정이 없으시겠소.” 하고 말하였다.. 오가가 허
허 웃으며 “의식 걱정이 없다니 부는 다시 물을 것 없구 귀는 어떻소?” “상
이 귀인은 아니시우.” “내가 첨사를 지냈는데 첨사쯤은 귀값에 못가우?” “
첨사를 지내시다니 그건 나를 속이는 말씀이구 잘하면 혹 출신은 하셨을 것 같
소.” “출신을 했으면 몇 살에 했겠소?” “스물 두서넛 때 하셨을 듯하우.”
오가는 스물두 살에 비로소 장가를 든 사람이다. 오가가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종신할 아들은 몇이오?” “자궁이 아주 좋지 못하우. 아들은 고사하구 딸두
없겠소.” 서림이가 나서서 “아들 없으시단 건 맞았지만 따님은 형제분이나 있
는 것을 없다니 말 되우?” 하고 말하니 상쟁이는 다시 오가를 바라보면서 “글
쎄, 누당이 저렇구는 자녀간 두기 어려울 텐데 난 모르겠소.” 하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저 어른 상은 어떻소?” 하고 서림이가 꺽정이를 가리키니 “저렇
게 극히 귀하구 극히 천한 상은 나는 처음 보우.” 하고 상쟁이는 꺽정이의 얼
굴을 다시 보고 보고 하였다. “귀하면 귀하구 천하면 천하지 어떻게 귀하구두
천하단 말이오.” “상이 그렇단 말이지 낸들 아우.” 수는 어떠하우? “서림이
묻는 말을 상쟁이는 대답 않고 성명은 천하 후세에 전하시겠구 또 귀자를 두시
겠소.” 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빙그레 웃으면서 “백손이놈이 장래 귀인이 될 모
양인가?” 하고 옆에 앉은 이봉학이를 돌아보았다. 황천왕동이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데 상쟁이가 서림이를 돌아보며 “지금 밖으루
나가시는 분이 후분 좋기가 아마 좌중에 제일일것 같소.”하고 말하니 서림이는
황천왕동이의 법령이 좋으니 지각이 좋으니 하고 아는 체하여 대답하였다. 상쟁
이가 이봉학이를 보고 얼굴에 귀격이 있다고 말하고, 박유복이를 보고 겁운한
번만 잘 지내면 상수를 누리겠다고 말하고, 또 배돌석이를 보고 처첩궁인 어미
에 푸른 힘줄이 얽히어서 장가를 여러 번 들겠다고 말하고 나서 목이 마르니 먹
을 물을 좀 달라고 청하여 미수 한 그릇을 갖다주어서 상쟁이가 막 마시고 난
때 천왕동이가 백손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천왕동이가 백손이를 상쟁이 앞에 내
세우며 “이 아이 상이 어떻소? 좋소?” 하고 물으니 상쟁이는 고개를 한편으로
갸우뚱하고 백손이의 얼굴을 치어다보고 나서 “좋다뿐이오? 장래 병수사 감이
오.” 하고 천왕동이 말에 대답한 뒤 꺽정이를 바라보고 “자제를 잘 두셨소.”
하고 치하하였다. “내 자식인 줄 어찌 아셨소?” “골격과 모습이 방사한데 보
다 모르리까.” “그래 귀자라구 하던 것이 한껏 병수사 감이란 말이오?” “평
지돌출루 병수사할 인물이 좋은 가문에 태어났으면 장상감이지요.” 꺽정이가
백손이를 보고 가라고 말하여 백손이가 천왕동이에게 눈을 흘기면서 공연히 불
러왔다고 두덜거리고 나간 뒤에 서림이가 상쟁이더러 “인제 내상 좀 보아 주시
우.” 하고 얼굴을 상쟁이 앞에 내어미니 상쟁이는 “아까 말씀을 들어보니 상
법을 대강 짐작하시는 모양인데 의심 나는 것을 물으시우. 그러면 내가 아는 데
까지 대답하리다.” 하고 상을 이야기하지 아니하여 서림이는 캐어물을 듯이 하
다가 말고 “그럼 내 상은 나중 이야기할 셈 잡구 저분의 상을 이야기하시우.”
하고 곽오주를 가리켰다. 황청왕동이가 앞으로 나앉으며 “내 상부터 보아 주우.”
하고 상쟁이더러 말하는데 천왕동이 옆에 앉았던 돌석이가 “자네 상은 벌써 다
이야기했네. 자네 상이 이 좌중에 판상이라네.” 하고 상쟁이 대신 대답하였다.
“참말이오?” 하고 천왕동이가 상쟁이를 바라보니 상쟁이는 그렇다
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더 물을 것 없지.” 하고 천왕동이가 뒤로 물러앉
은 뒤에 상쟁이가 오주를 가리키며 “저분은 눈이 승냥이 눈이구 목소리가 이리
소리라.” 하고 상 이야기를 시작하자, 오주가 벌떡 일어나 상쟁이에게 대들어서
뺨을 한번 보기 좋게 내갈겼다. 상쟁이에게 가까이 앉았던 오가가 얼른 오주를
붙들면서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나무라니 오주는 “나더러 이리니 승냥이
니 욕하는 놈을 가만둔단 말이오.” 하고 식식하며 말하였다. “나더러 승냥이나
이리라구 하는 말이 아닐세. 자네 눈이 승냥이 눈 같구 목소리가 이리 소리 같
단 말이야.” “그레 나더러 승냥이라구 하구 이리라구 하는 소리지 무어요?”
“그런 말이 아닐세. 여보게, 저기 가 앉아서 잘못했다구 사과하구 상 이야기나
더 듣게.” “어떤 개아들놈이 욕먹구 사과한단 말이오.나는 갈 테니 상이야기
듣구 싶은 사람이나 실컨들 들으우.” 하고 오주는 곧 붙든 손을 떨치고 밖으로
나갔다. 상쟁이는 얻어맞은 뺨이 당장에 죽장같이 부어올랐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6권 (31) (0) | 2023.04.19 |
---|---|
임꺽정 6권 (30) (0) | 2023.04.17 |
임꺽정 6권 (28) (0) | 2023.04.13 |
임꺽정 6권 (27) (0) | 2023.04.12 |
임꺽정 6권 (26) (0) | 2023.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