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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30)

카지모도 2023. 4. 17.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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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두령이 미안하게 여기어서 오주 대신 사과 일체로 말들 하는데

상쟁이가 사람이 싹싹하지 못하여 뺨이 부을뿐 아니라 한편 이가 다

솟았다고 엄살하고, 또 오십 평생에 처음 봉변이라고 중얼거리니 여러 두령은

도리어 배알들이 틀려서 “이가 아주 물러나지 않은게 다행이오.” 하고

빈정거리를 사람도 있고 “뺨 맞을 것은 상 보구 모르우?” 하고

씨까스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 서림이는 유독 상쟁이

의 비위를 맞춰 주느라고 “그 사람 성정이 너무 우악스러워서 우리두 잘 가래

지 못하우.” 하고 곽오주를 쳐서 말하니 박유복이가 “여보 서장사, 오주 있는

데선 그버덤 더한 소리를 해두 좋지만 없는데 그런 소리 하는 건 좋지 않소.”

하고 서림의 말을 탄하였다. 서림이가 박유복이를 돌아보며 눈을 끔적거리고 나

서 다시 상쟁이를 보고 “그러니 우리 여럿이 낯을 봐서 고만 화를 푸시우.”

하고 눈웃음을 치니 상쟁이는 화가 적이 풀리어서 “그런 우악스러운 사람은 평

생에 처음 보았소.” 하고 말하였다. “쇠도리깨의 선성을 전에 혹 들어셨소?”

“쇠도리깨라니 그자가 어린애 잘 죽인다는 쇠도리깨 도둑놈이오?” 하는 말이

상쟁이 입에서 떨어지자, 황천왕동이가 빨끈하고 대번에 “이놈아, 지금 한 말

다시 한번 해보라.” 하고 소리를 질러서 상쟁이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우리

앞에서 우리 동무를 욕해두 가만둘 줄 아느냐!” 하고 천왕동이가 일어나서 상

쟁이에게 대어들려고 하는 것을 서림이와 오가가 중간을 가로막고 말리었다. “

무심결에 말 잘못했소.” 하고 상쟁이가 사과한뒤 천왕동이가 주저앉으며 “그

자란 건 무어구 도독놈이란 건 무어야? 그 따위 말 함부루 하다간 목숨이 성하

지 못할 테니 조심해라.” 하고 뇌까렸다. 상쟁이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나서 한

시각이라도 빨리 적굴을 모며하여 나가려고 속으로 궁리한 뒤 서림이를 보고 “

내가 신기가 좋지 못하우. 신기가 좋지 못한 때는 상두 바루 보이지 않소. 이다

음 신기 좋은 때 다시 들어와서 잘 보아 드릴테니 오늘은 고만 도루 나가게 해

주시우.” 하고 청하였다. “여기서 며칠 동안 쉬시우. 신기가 좋지 못하면 편히

쉬게 해드리리다.” “금교역말 주인집에 가서 편히 쉬겠소.” “금교역말까지

나가느니 여기서 편히 쉬는 것이 좋지 않소.”“ 나는 버릇이 고약해서 심계가

좋지 못하면 신기가 따라 좋지 못하구 신기가 좋지 못하면 즉시 자리를 옮겨야

하우.” “여럿이 공론하구 뫼셔 왔으니까 나 혼자 생각으루 나가시라구 말할

수 없소.” “그럼 얼른 다시 공론해서 나가게 해주시우.” 서림이가 여러 두령

을 둘러보며 “지금 말씀은 다 들으셨지요. 어떻게 하실 테요? 말씀들 하시오.”

하고 공론을 물을 때 마침 밖에서 작은 두목 하나가 들어와서 “길두령 뫼시러

갔던 손두목이 옵니다.” 하고 고하고 “어디 오시느냐?” 하고 묻는 말에 “손

두목 혼자 앞장등을 내려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그 작은 두목에게

“여긴 앉은 상쟁이를 데리구 가서 정한 방 하나 치워주구 내 말 듣기 전엔 어

디 나가지 못하게 해라.” 하고 일러서 상쟁이를 맡겨 내보내고 난 뒤, 얼마 아

니 있다가 작은 손가가 한편 다리를 절뚝절뚝하며 들어왔다. 막봉이가 여럿에게

알리지 않고 도망하듯이 길을 떠난 뒤에 황천왕동이를 뒤쫓아 보내서 붙들자는

의논도 있었고, 가만두고 열흘동안 기다리자는 의논도 있었다. 황천왕동이를 보

내자니 한번 더나간 사람이 좀처럼 붙들려 올 리 없을 것이고 열흘 동안 기다리

자니 급한 일이 생겨도 그 동안 까막히 모르고 있을 모양이라, 난만히 서로 의

논들 한 끝에 막봉이네 집과 연사간인 작은 손가를 보내보자고 작정하여서 작은

손가는 급작스럽게 사기짐을 해 지고 막봉이의 뒤를 밟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작은 손가가 뜰 아래 들어서자 꺽정이가 급한 말로 “길두령은

어째 안 오나?” 하고 물으니 작은 손가는 대청 위를 치어다보며 “큰일 났습니

다.” 하고 대답하였다. “무슨일이 났어?” “길두령이 안성서 잡혀 갇혔습니

다.” “길두령이 잡혀 갇히다니 얼른 올라와서 자세히 이야기하게.” 작은 손가

가 대청 위로 올라와서 앉으람 명을 받고 한구석에 앉은 뒤에 곧 여러 두령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제가 떠나던 이튿날 혜음령에서 호랭잇

골 최가를 만났는데 그때 최가 말이 길두령께서 그저께 바눌티 정가의 집에 와

서 주무시구 갔다구 하구, 제가 벽제서 자구 이틀 만에 수원 발안이를 들어갔는

데 그때 길두령의 아버지 길첨지 말이 막봉이가 사흘 전에 왔다갔다구 합디다.

날짜를 따져보니 길두령은 여기서 떠나던날 바눌티 가서 자구 그 이튿날 바루

발안이를 대어갔습디다.” 전에 막봉이가 발안이 집에 가면 한 사흘 묵어야 한

다고 말하던 것을 배돌석이가 생각하고 “길두령이 집에 가면 적으두 이삼 일

동안 묵을 것인데 어째 하루두 묵지 않구 떠났더란 말인가?” 하고 물으니 “길

두령이 집에 들어서는 길루 집안에 풍파가 나서 이삼 일 묵기는 고사하구 잡깐

편히 쉬지두 못했답디다. 그 풍파를 지금 이야기하겠습니다.” 하고 작은 손가가

대답하였다. “그래 어서 이야기하게.” “길두령이 저녁나절 집에를 들어갔는데

그 맏형 선봉이와 둘째형 작은봉이가 들일들을 마치구 들어와서 길두령 온 것을

보구 정답게 인사 한마디 않구 대번에 이놈아 너 왜 왔느냐, 늙은 부모와 우리

들까지 관가에 잡혀가서 맞아죽는 꼴을 볼라구 왔느냐, 남의 눈에 뜨이기 전에

빨리 가거라 하구 야단을 치는 걸 길두령이 형들의 심사를 거스리구 내가 아버

지 어머니를 보러 왔지 형님네들 보러 온 것 아니요, 아버지 어머니가 가라시기

전엔 한 달 장간 묵을는지 모르우 하구 엇조루 대답했더랍니다. 선봉이 작은봉

이 두놈이 그 대답을 듣구 그러면 우리가 관가에 들어가서 고발할 테다하구 얼

러서 길두령이 골김에 형들을 죽인다구 서두는 것을 길첨지 내외가 붙잡구 말려

놓으니까 길두령은 홀저에 눈물을 좌르르 흘리더니 마지막 하직이라구 부모에게

절 한번씩 하구 곧 나가 버렸답디다.” 작은 손가의 이야기가 단락이 나자, 여러

두령들 중에서 “천하에 망한 형놈두 다 많다.” 하고 소리지르는 사람도 있고

“그 따위 놈들은 죽여야 해!” 하고 주먹 쥐는 사람도 있었다. 꺽정이가 안성

이야기를 얼른 하라고 재촉하여 작은 손가는 겨우 입안에 침을 돌려 가지고 다

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발안이서 안성읍내까지 하룻길이 먼 데다가 사기짐

이 가볍지 않구 또 여기저기서 사기를 사자는 사람이 나서서 중간 지체가 된 까

닭에 하루 한나절 만에 겨우 안성을 들어갔습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 잠깐 장

구경하려구 사기짐을 지구 돌아다니는 중에 건방져 보이는 젊은 놈 하나가 사리

를 사자구 붙들더니 사지두 않으며 물건 타박만 합디다. 그놈이 본바닥 도거머

리 친구인 걸 누가 알았나요? 섣불리 말마디나 좋지 못하게 했다가 톡톡이 트집

을 받게 되었는데 그놈이 갖은 욕설 다하구 나중에는 ‘엊그제 갓리서 잡힌 대

적놈처럼 두 다리를 몽창 분질러 놓기 전에 사발 대접 한죽만 외상으루 내라’

하구 대듭디다. 전 같으면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래두 그 따위 놈에게 물건을

줄 리 만무하지요만, 가사리서 대적 잡혔단 소리에 가슴이 뜨끔해서 두말 않구

외상을 주마구하구 사발 다섯, 대접 다섯을 그놈의 집에까지 갖다 주었습니다.

그 길루 어느 주막에 가서 앉아 쉬면서 대적 이야기를 넌지시 물어본즉 아니나

다를까 길두령이 잡혔습디다. 주막 사람과 장꾼들의 횡설수설 지껄이는 말을 듣

구서는 잡힌 곡절을 잘 알 수 없어서 곧 가사리루 나가서 그날 밤 묵으면서 가

사리 사람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길두령이 가사리 와서 하루 동안

에 장인과 안해를 어떻게 삶았던지 안해는 말할 것두 없구 성미 괴팍한 장인까

지 사위를 따라오려구 남몰래 살림을 걷어치우는 중에 장인의 형 되는 박선달이

란 자가 알구서 안성군수에게 기별하기를, 청석골 화적 괴수 길막봉이가 동네에

와서 있는데 잡아바치구 싶으나 힘이 장사라 동네 살람만 가지구는 건드릴 수가

없으니 군총을 풀어 내보내되 밤중에 내보내 달라구 했더랍니다. 그날 밤에 좌

우병방이 병장기를 가진 장교, 사령 기타 관속 사십여 명을 영솔하구 가사리를

나와서 동네 장정 수십 명과 합세해서 도합 육십여 명이 길두령의 처가를 에워

싸구 들어가서 길두령을 잡는데 길두령이 자다가 알몸으로 튀어나와서 몸에 창

을 맞구 칼을 맞아가며 맨주먹으루 칠팔 명 사람을 때려눕혔답디다. 길두령이

창칼을 피하느라구 길길이 뛰는데 근력 세찬 수교놈이 노리구 있다가 철

편으루 아랫두리를 후려갈겨서 두 다리가 부러진 까닭에 일어서지 못하게 되어

서 마침내 활시위 몇 겹으루 결박을 당했답디다. 길두령의 안해와 장인두 길두

령과 같이 잡혀가서 지금 다 옥에 갇혀 있는데 옥 근처에 개미새끼 하나두 얼씬

못한다구 말들 합디다. 설마 그러랴 하구 곧이 안 들었더니 이튿날 읍내에 들어

와서 옥 근처에를 가본즉 과연 장교와 사령들이 나서서 막습디다. 안성 사람들

의 말을 들어보면 길두령의 안해와 장인은 군수가 결처하게 될지 모르나 길두령

만은 반드시 서울 포청에 올라가서 능지처참을 당하게 되리라구들 합디다.” 작

은 손가가 막봉이의 이야기를 얼추 다 하고 난 뒤에 “제가 사기짐은 안성읍내

서 다 풀어버리구 밤길루 떠나서 삼백오십여 리를 이틀 밤 이틀 낮에 대어오느

라구 참말 죽을 뻔했습니다. 밤길은 되려 곱게 온 셈이구 오늘 낮에 우습게 칡

덩굴에 걸려 넘어지는데 한편 다리를 접질려서 절뚝발이 걸음으로 사십릿길을

걸어왔습니다.” 하고 요공하는 것같이 고생한 것을 붙여 이야기하니 돌석이가

“다리가 부러진 사람두 있을라구.” 하고 꾸짖듯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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