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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39)

카지모도 2023. 4. 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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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이는 여러 두령이 알아듣도록 말하느라고 말을 길게 늘어놓았으나, 말의 요지

는 불과 한두 마디로 다할 수 있었다. 칠장사 가는 것은 파의하고 한시라도 바삐 회

정할 준비를 차리자는 것인데, 언변 좋은 서림이가 이유 서지 않는 말도 이유 서게

할 수 있거든 하물며 이유가 서는 말이랴. 부처님을 새로 뫼시면 가근방에서 구

경꾼이 많이 올 것이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중에 눈치빠른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라 여럿이 몰려갔다가 종적이 탄로되면 설혹 당장은 무사할지라도 반드시

뒤에 탈이 나서 연락 혐의로 중들이 경을 치고 시주 관계로 부처님까지 누를 입

어서 일껀 새로 뫼신 부처님을 관령으로 없애게 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니 칠

장사 가는 것을 파의하자는 서림의 말이 이유가 서고, 안성 소문이 퍼지는 날이

면 여기서 서울 가기도 어렵고 서울서 청석골 가기도 어려울 것이라 안성군수의

보장이 서울 올라가기 전에 서울을 지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서울 관문이

각처에 돌기 전에 청석골을 들어가야 할 것이니 한시라도 바삐 회정할 준비를

차리자는 서림의 말의 이유가 섰다. 서림이의 말을 여러 두령이 반대할 생각도

못하고 잠자코 있는 중에 박유복이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칠장사를 다시 안 가

더래두 큰 낭패될 건 없지만 불상 수공을 어떻게 할 테요?” 하고 물으니 꺽정

이가 “갖다 줘야지.” 하고 대답하였다. 서림이가 곧 뒤를 받아서 “이왕 준다구

말해 놓은 것을 안 줄 수 없으니까 사람 시켜 보내주는데 일 맡은 중에게 기

별해서 시주는 숨기두룩 하게 하시우.”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고개를 끄덕이었

다. 결의가 파의되는데 심사가 틀린 배돌석이가 좌우를 돌아보며 “인제는 여

기서 더 볼일이 없지 않소. 지금 당장이라두 떠납시다.” 말하고 막봉이를 가리

키며 “저 사람은 벼슬한 양반이 타는 승교나 태워야 하지 않겠소.” 하고 특별

히 서림이를 보고 물었다. “승교를 태워가지구 가다가 중로에서 들키

면 낭패 아니오.” “말은 못 타니 승교 안 태우면 무얼 태우겠소?” “내가 상

중하 세 가지 계책을 생각한 게 있으니 들어들 보구 의논해 작정하시우.” 하고

서림이가 여러 두령을 한번 죽 돌아본 뒤에 “상책은 상행을 하나 꾸미는 것이

니 길두령을 송장 대신 상여 속에 눕히구 우리가 상두꾼두 되구 상주두 되구 복

인두 되구 또 지관두 되면 일행이 다 함께 갈 수 있소.” 하고 말하니 우선 배

돌석이가 고개를 외치며 “승교 탄 사람은 들켜두 상여에 담은 사람은 들키지

않소? 그나마 하룻길이나 같으면 모르지만 며칠길에 숙소하는 데서 들키기 첩경

쉬울 것 같소.” 탈을 잡아서 말하고 그 다음에 곽오주가 빈정대는 말씨로 “멀

쩡하게 산 사람을 왜 송장을 만들어? 별눔의 꾀두 다 많군.” 하고 입을 비쭉거

렸다. 서림이가 결정지어서 말해 달라는 눈치로 꺽정이를 바라보는데 꺽정이가

“또 두 가지 께책은 무어요?” 하고 서림이의 중책과 하책을 물었다. “우리는

각인각색으로 꾸며 가지구 뿔뿔이 흩어져서 먼저들 가구 길두령은 여기서 잘 피

신해 가며 치료해 가지구 나중 오게 하는 것이 중책이구, 우리 갈 때 길두령을

타향에서 병든 사람이 고향으루 가는 것처럼 하구 아주 드러내놓구 승교바탕에

태워가지구 가는 것이 하책이오. 중책은 우리 일행이 다 함께 못가는 것이 험이

나 우리들만은 어떻게든지 기찰을 모면하구 갈 수 있지만 하책은 길두령을 포교

손에 뺏길 염려가 많소.”서림이의 말이 끝나자, 이때껏 누워 있던 막봉이가 위

반몸을 일으키며 “나를 물건처럼 뺏길 염려 할 것두 없구 송장같이 상여에 담

을 것두 없소. 나만 여기 떨어져 있다가 나중에 갑시다.”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

였다. 돌석이가 탈잡고 오주가 빈정대는데 막봉이의 퉁명까지 받게 되어서 서림

이의 상책이 중책에 밀리는 판에 여럿의 말을 꺾고 누르고 결정을 지을 꺽정이

가 “각각 떨어져 가더래두 다들 잘 갈 수만 있으면 고만이지.” 중책을 취하는

어취로 말하여 마침내 상책을 제치고 중책을 쓰기로 결정되었다. 박유복이가 나

중에 “제일 상책을 두구 안 쓸 까닭이 무어요? 상여가 사위스럽다구 그러우?”

하고 상책을 거들어 말하였으나, 대세가 벌써 기울어진 뒤라 유복이의 말은 뒷

공론이 되고 말았다. 서림이가 상책 안 쓴 것을 가석히 여겨서 한동안 쓴입맛을

다시다가 꺽정이와 막봉이를 갈라보며 “우리들 떠나기 전에 박서방 부녀는 두

목들하구 먼저 보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떨까요?” 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한

번 막봉이를 돌아보고 나서 “좋겠지.”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곧 떠나보내두

룩 준비를 시킵시다.” “능통이를 불러들일 테니 서장사가 알아서 준비를 시키

시우.” 꺽정이가 능통이를 방으로 불러들인 뒤에 서림이가 박서방 부녀 입힐

의복과 박서방 부녀 태울 말을 준비하여 달라고 말하니 능통이는 한참 생각하다

가 “우리집 안사람을 이번에 함께 보내면 안될까요?” 하고 물었다. 능통이가

청석골로 같이 갈 것은 벌써 파옥하기 전에 여러 두령에게 말하여 허락을 얻은

일이었다. “안될 것 없소. 아들 없는 박샌님이 하필 박샌님이라구 할 거 있나.

김샌님이나 이샌님이라구 하지. 하여튼지 진위나 용인 사는 어떤 샌님이 큰따님

작은따님을 데리구 장단이나 풍덕서 사는 형님의 환갑이나 진갑을 보러 간다구

하면 중로에 거침이 없을 거요.” 하고 서림이가 웃으니 여러 두령 중에 이 사

람 저 사람이 “됐거니.” “꾸며대는 말이 참말 같소.” “박서방이 샌님 노릇

을 잘할까.” “천생 샌님이던데 샌님 노룻을 못하겠나.” 하고 지껄이며 다들

같이 웃었다. 능통이가 밤을 새워가며 준비를 해놓아서 이튿날 아침때 신불출이

등 작은 두목 네 사람이 능통이 수하 졸개 두 사람과 같이 막봉이의 장인과 안

해와 는통이의 안해를 배행하여 길을 떠나게 되었다. 막봉이의 장인은 능통이의

행세옷을 얻어 입고 막봉의 안해는 여벌 옷을 얻어 입었는데, 체수들이 비슷비

슷하여 별로 얻어 입은 표가 나지 아니하였다. 막봉이의 장인은 고집 있는 사람

이라 변성은 죽어도 안 한다고 고집하여 박생원 행세할 작정하고 체양 넓은 갓

을 쓰고 소매 달린 큰옷을 입고 한손에 쥘부채를 들고 안장마를 타고, 막봉이의

안해는 박서방의 외딸이 박생원의 작은딸로 변하여 양반댁 아씨 노릇 하느라고

치마를 폭 써서 두 눈만 빠끔하게 내놓고 부담마에 올라앉고, 역시 부담마를 탄

능통이의 안해는 박생원의 큰딸 노릇을 하기로 하고 머리에 치마를 쓰고 품에

젖먹이 아들을 안았었다. 능통이에게 너울도 있었으나 시골 양반의 집 부녀가

서울 시체 모양을 내면 도리어 보는 사람들 눈에 유표하다고 서림이가 너울을

두고 치마를 쓰게 한 것이다. 작은 두목 세 사람은 견마잡이들이 되고 신불출이

는 남아서 하인이 되고 능통이의 졸개 두 사람은 짐꾼들이 되었다

. 짐꾼이 짐과 부담마의 부담에는 능통이 집 세간의 알천이 들고 길양식과 찬합

과 요강 망태는 견마잡이 된 두목들과 하인 된 불출이가 가벼운 짐 네 개로 갈

라졌다. 꺽정이가 청석골 가는 일행을 떠나보낸 뒤에 칠장사에 상목을 보내려고

다른 두령들을 보고 보낼 사람을 의논하니, 다들 말이 일 맡아보는 중에게 시주

를 숨기라고 당부해 두려면 그 중과 낯익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하여 꺽

정이가 황천왕동이더러 “너 좀 갔다오너라.” 하고 말하였다. 천왕동이는 무명

짐을 지고 가는 것이 귀찮으니보다 새 부처님을 구경하고 오는 것이 마음에 당

겨서 꺽정이 말에 선뜻 네 대답하고 이십 필 무명을 졸개 둘과 셋이 갈라서 걸

머지고 곧 칠장사로 떠나갔다.

이날 저녁때 천왕동이가 데리고 간 졸개와 같이 돌아오는데 무명짐은 그냥 걸

머지고 왔다. 이때 몇 두령은 빈 안방에 와서 드러 누워 있고 몇 두령은 건넌방

에서 막봉이의 장창에 약을 붙여주고 있었다. 약은 오황산이니 청석골서 올 때

허생원에게 물어서 아주 여남은 봉을 지어가지고 온 것이다. 지난 밤에 한번 붙

였는데 아픈 것이 적이 낫다고 하여 이날 벌써 두번째 새 약을 갈아 붙여주는

중이었다. 약 붙여주는 것을 보고 섰던 꺽정이가 밖에서 나는 신발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너 벌써 다녀오느냐?” 묻고 대답도 듣기 전에 또다시

“무명을 어째 도루 가지구 왔느나?”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무명짐을 걸머진

채 봉당 앞에 들어와 서서 “쓸데없다구 받지 않기에 도루 가지구 왔소.”하고

대답하였다. “쓸데없다구 받지 않다니 무슨 소리냐?” “죽산읍내 부자 양반의

집 홀어머니가 시주루 나서서 불상 수공두 어제 벌써 다 치러주었답디다.” “

우리가 줄 것을 중간에서 앞질러 준 년이 어떤 년이란 말이냐?” “부자 양반의

집 홀어머니라니까.” “글쎄, 그 홀어머니년이 어떤 년이란 말이야?”"그렇게

자세히는 캐어 물어보지 않았소.“ ”불상쟁이는 아직 절에 있지?“ ”절에 있

습디다.“ ”그럼 불상쟁이더러 먼저 받은 무명을 내노래서 발루 짓밟든지 아궁

에 처넣든지 하구 가지구 간 무명을 수공으로 받으라구 내주구 올 것이지 그걸

덜레덜레 두루 지구 온단 말이냐?“ ”조용히 상좌중 갖다 주구 말 내지 말라

구 당부하구 오라지 않았소. 상좌중이 안 받는 걸 어떻게 한단 말이오.“ ”받지

않으면 내던지구라두 오지 무얼 잘했다구 발명이냐.“ ”주구서 말 재지 말라구

당부하느니 안 주게 된 것이 되려 잘되지 않았소.“ ”도대체 상좌놈이 맹망스

러운 놈이다. 내가 보내는 걸 기다리지 않구 더러운 년의 재물루 불상 수공을

주었던 말이냐. 아무리 선생님을 뫼시구 있던 놈이라두 버릇을 가르쳐 놔야겠다.

“ 안방과 건넌방에 있던 다른 두령들이 다 봉당에 나와 섰는 중에 이봉학이가

천왕동이더러 ”걱정을 듣더라두 걸머진 짐이나 벗어놓구 올라와서 걱정을 듣

게.“ 하고 웃으니 천왕동이는 골난 데 웃는 것을 보고 골이 더 나서 ”내가 걱

정 들을 일 한 게 무어란 말이오?“

봉학이에게 들이대듯 말하고 졸개가 벗어놓은 짐 옆에 가서 짐을 벗어서 동댕

이치듯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두령들이 천왕동이의 뒤를 따라 안방에

들어와서 앉은 뒤에 봉학이가 천왕동이를 보고 ”한강에서 빰맞구 서빙고 와서

눈을 흘겨두 분수가 있지, 형님한테 걱정 듣구 내게다 골부림을 한단 말인가.“

하고 나무라듯 말하니 천왕동이는 ”형님이 공연히 사람을 야단치니까 그렇게

말했지 골부림한 게 아니오.“ 하고 발명하였다. ”어쭙지 않은 발명은 고만두구

칠장사 이야기나 좀 하게.“ ”무슨 이야기요?“ ”대관절 부상이 잘됐든가?“

”잘됐는지 못됐는지 그거야 내가 보니 아우. 하여튼지 보긴 좋습디다.“ ”어디

다가 뫼셨든가?“ ”별당마루에 뫼신답디다.“ ”아직 뫼시진 않았든가?“ ”뫼

실 자리를 만드느라구 한참 뚝딱거립디다.“

천왕동이가 봉학이의 묻는 대로 칠장사 이야기를 하느 중에 건넌방에 있던 꺽

정이도 안방으로 건너왔다. 꺽정이가 방문 앞에 서서 방안에 천왕동이를 들여다

보며 ”절에 구경꾼이 많이 왔더냐?“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야단맞을 때 골난

것이 아직 안 풀려서 ”많습디다“ 대답하는 말소리가 볼메어 나왔다. ”너 골

났구나?“ ”사람이 부처님이 아닌 담에 애매하게 야단 만나구 골 안 나겠소.“

”너는 잘못한 게 없으니 고만두어라.“ ”잘못한 것 없는 줄은 형님두 아시는

구려.“ ”불상을 아직 뫼셔놓지 않았더라지?“ ”오늘 저녁때 뫼신다구 합디다.

“ ”이왕 갔으니 구경이나 하구 오지.“ ”그렇지 않아두 구경하구 오려다가

상좌중이 요전과 딴판으루 쌀쌀하게 굴기에 골이나서 고만 와버렸소.“ ”내가

오늘 밤에 절에 가서 그눔보구 말을 좀 물어봐야겠다.“ 꺽정이 말끝에 봉학이

가 ”물어볼 것두 없이 안성 소문을 듣구 겁이 난 게요. 사람이 많이 모였으면

그중에 소문 이야기할 사람이 없겠소.“ 말하고 봉학이 말끝에 또 서림이가 ”

불상으루 보면 되려 잘된 셈이니 덮어 두시는 게 좋겠소.“ 말하니 꺽정이는

길게 ”음“ 하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그럼 천왕동이보구 통정의 말이라두

있어야지.“ 한번 다시 짧게 ”음“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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