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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10)

카지모도 2023. 5. 20.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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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눔이 오거든 너는 아뭇소리 말구 가만히 있거라.” 졸개가 내려온 뒤에 보리밥

한 솥 짓기나 착실히 지나서 노밤이가 혼자 털털거리고 내려와서 꺽정이를

보고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황송합니다." 인삿말 한마디 하고 곧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거짓말투성이로 늘어놓았다. "제가 초립동이를 데리구 고개에

올라가서 초립동이 어머니가 도적에게 붙들린 자리를 찾아가 본즉 그 옆이

바루 큰 솔밭인데 솔밭 속에 젊은 놈 한 놈이 여편네를 자빠뜨려 놓았습디다.

그래서 당장 그놈의 모가지를 돌려앉히려다가 젊은 놈이 얼굴 얌전

한 여편네를 보구 불측한 맘을 먹기가 용혹무괴거니 널리 생각하구 온언순사루

타일러서 보내려구 솔밭 밖으루 불러냈솝드니 그놈이 손에 환두를 들구 쫓아나

와서 제잡담하구 대어듭디다. 선손 거는 놈을 가만둘 수 있습니까. 제가 칼을 빼

가지고 마주 싸웠습니다. 그놈이 원력두 세차거니와 칼 쓰는 것두 제법 법수가

있어서 한바탕 쩍지게 싸웠습니다. 제가 변변친 못하지만 아무렇게 하든지 그

따위 놈 하나야 못 당하겠습니까. 나중에 그놈이 제 칼을 받느라구 쩔쩔내다가

홀저에 뒤로 뛰어 물러나며 칼을 잠깐만 머물러 달라구 청하구 칼 쓰시는 걸 보

니 유명한 검객 같으신데 성함이 누구십니까, 혹시 양주 임장사 아니십니까 하

구 묻습디다. 그래 나는 양주 임장사 수하에 있는 노밤이란 사람이다 하구 대답

해 주었습지요. 그놈이 그 말 한마디 듣구선 대번에 칼을 내던지구 앞에와 엎드

려서 살려달라구 애걸복걸합디다. 그놈의 한 짓이 괘씸치않은 건 아니지만 죽일

맛이야 있습니까. 호령하구 꾸짖구 나무라구 타이르구 경계해서 보냈습니다. 이

동안에 초립동이는 그 어머니를 구호하느라구 솔밭 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어

머니가 기함이된 것을 죽은 줄루 알구서 울며불며 하기에 제가

샘물을 떠다가 얼굴에 뿜구 가슴을 문지르구 다리를 주물러서 펴어나는 걸 보

구 곧 내려왔습니다. 남에게 적선하다가 길이 늦어졌습니다. 서울을 내일 들어가

긴 매일반이니까 길 늦은 건 상관없겠지요만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황송합

니다.“ 노밤이가 양양자득하여 지껄이는 것을 꺽정이는 가만 내버려두고 있다

가 나중에 ”이눔아 네가 사람 눔이냐!“ 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노밤이가 초풍

하듯이 놀라서 눈치를 살펴보면서 ”꾸중을 들을까 봐서 얼른온다는 것이 이렇

게 늦었습니다. 초립동이가 같이 가자구 붙들구 매달리는 것까지 뿌리치구 왔습

니다.“ 하고 늦게 온 것을 발명하다가 옆에서 웃는 졸개를 흘겨보며 "남 꾸중

듣는 것이 저 칭찬받은 것버덤 더 좋은가베."하고 중얼거렸다. 꺽정이가 노밤이

의 거짓말한 것을 발간적복하여 야단친 끝에 "너 같이 거짓말 잘하는 놈은 처음

봤다. 거짓말하는 데 정이 떨어져서 너를 데리구 갈 맘이 없다. 여기서 너는 너

대루 가거라." 하고 말하니 노밤이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꺽정이의 얼굴을

치어다보면서 "거짓말이 무슨 큰 죄라구 경가파산하구 뫼시구 나온 놈을 가라구

쫓으십니까. 야숙합니다. 진정 야숙합니다." 하고 고개를 다시 청승맞게 비틀어

꽂았다. "야숙해? 야숙하대두 할 수 없다." "대체 가긴 어디루 가란 말씀이오니

까?" "그건 나더러 물을 것 아니다. 너 가구 싶은 데루 가려무나." "제가 가구

싶은 데는 서울이올시다." "서울루 가드래두 나만 따라오지 마라." "서울 가선 어

떻게 되든지 서울까지는 따라가게 해줍시오." 꺽정이가 노밤이의 말은 대답 않고

졸개를 돌아보며 "고만 가자“ 하고 말한 뒤에 먼저 일어나서 길로 내려갔다. 졸

개가 짐에서 쌀자루와 자리뭉치를 떼어놓으려고 하니 노밤이가 얼른 졸개의 손

을 붙잡고 "자네까지 왜 이러나?" 하고 말하였다. "네 것은 인제 네가 가져가야

지." "아버지라구 한 건 어떻게 하구." "아버지 소리 한번 듣구 여기까지 짐을 져

다 줬으면 무던하지." "언제 여기까지 져다 주기루 했든가. 딴소리 말구 그대루

지구가세." "대장께서 너를 가라구 쫓으셨는데 네 짐을 내가 왜 지구 간단말이

냐?" "내가 쫓겨가구 안 쫓겨가는 건 서울 가서 말하세. 서울서 아주 쫓겨가게

되거든 그때 짐을 도루 주게그려." 꺽정이가 길에서 졸개를 바라보며 "무어하구

있느냐! 어서 내려오너라." 하고 소리질러서 졸개가 일변 네 대답하며 일변 짐을

그대로 지고 일어나는데 노밤이는 뒤에서 짐을 거들어 주는 체하며 붙들고 자리

뭉치 속에 환도를 질렀다. "이눔아 왜 붙드느냐! 얼른 가지 않으면 꾸중 듣는다."

"꾸중 듣는 데두 동무가 생기면 든든해 좋지." "이놈아 놔라. 놓지 않으면 소리

지를 테다." "나만 꾸중을 겹쳐 들으라구. 자, 가거라." 졸개는 꺽정이 뒤를 쫓아

가고 노밤이는 졸개 뒤를 따라갔다. 꺽정이가 다락원에 숙소참을 대려고 길을

바삐 걸어서 졸개는 짐을 지고 쫓아오기가 가쁜 중에 축석령 고개를 올라오느라

고 전신에 땀을 흘리었다. 고개를 넘어선 뒤 꺽정이가 잠시 쉬는 것을 허락하

여 졸개는 긴 숨을 내쉬고 길 옆 너럭바위에 짐 내려놓고 주저않으면서 ”쌀자

루 땜에 짐이 무거워서 등골 빠지겠다.“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노밤이는

뒤에 와서 ”거짓말이래두 남의 아비 노릇 하기가 쉽지 않지?“ 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이놈아 아들두 다 귀찮다. 짐이나 도루 가져가거라.“ 하고 졸개가 쌀

자루와 자리 뭉치를 떼어 내던지니 노밤이는 무어라고 두덜거리며 갖다가 저의

짐에 얹었다. 축석령을 넘어서 이십 리쯤 왔을 때 해가 지고 장수원을 채 못와

서 벌써 캄캄하여 꺽정이는 다락원을 대지 못하고 장수원에 와서 숙소를 잡게

되었다. 장수원은 다락원과 상거가 십 리 못 되는 곳이라 오고 가는 행인들이

중화참이나 숙소참을 다락원으로 대는 까닭에 장수원에 손이 드는 건 일 년 가

야 한두 번이 있거나 말거나 하였다. 원집이라고 곧 원주인의 살림집이 되었는

데 손들 재우는 큰방은 풍창파벽이라 사람이 거처하지 않고 허섭쓰레기 세간을

넣어두어서 밤이면 쥐들이 잔치하는 처소이었다. 원주인이 꺽정이의 일행이 자

러 들어온 것을 보고 상을 찌푸리며 ”어째 다락원을 참대지 못하구 이리 온단

말이오?“ 하고 핀잔 주듯이 말하니 꺽정이가 눈을 곱게 뜨지 않고 ”여기 원집

이 아니오? 원집에 행인이 들면 주인이 시중이나 들어줄 게지 같지 않게 무슨

잔소리요?“ 하고 꾸짖듯이 대답하였다. ”잔소리가 아니오. 여기는 손님들 주무

실 방두 없소.“ ”원집에 행인 잘 방이 없다니 웬 소리요?“ ”지금 여기는 원

이랄 것이 없소.“ ”원이랄 것이 없으면 이 집이 사가집이오? 설혹 사가집이라

두 좀 자구 가야겠소.“ ”방이 없어 걱정이오. 큰방 작은방 방 둘에서 큰방은

폐방하구 작은방은 우리 식구가 쓰니 어디서들 주무신

단 말이오.“ ”폐방한 방에서라두 자겠소.“ ”명색이 방이지 마루광만두 못한

데 주무실 수가 있을라구. 그러면 자 이리 들어들 오시우." 원주인이 큰방 앞에

와서 관솔로 화톳불을 놓고 방에 들어가서 세간을 한옆으로 치우는데 꺽정이가

방을 들여다보니 방안에는 한 바람이 돌고 방바닥에는 쥐똥이 깔려 있었다. "딴

방이 참말 없소?" "딴 방이 있으면 왜 안 내드리겠소." "주인 쓰는 방에 가서 좀

붙여 잘 수 없겠소?" "우리 방을 손님께 내드리구 우리가 이웃집에 가서 붙여

자두 좋겠지만 마침 자식새끼 남매가 돌림고뿔루 앓아누워서 어떻게 할 수 가

없소." "방 쓸 비하구 방에 깔 자리나 좀 빌려주우." "빌려 드릴 자리가 없는데

요." "자리가 없으면 멍석이라두 한 닢 빌려주구려." "저녁들은 어디서 잡숫구 오

셨소?" "저녁을 안 먹었는데 밥 좀 지어주겠소?" "밥짓는 수구는 덜어

드릴 테니 저녁거리를 내주시우." 주인의 말을

꺽정이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노밤이는 얼른 짐에서 쌀자루를 내려서 주인을 내

주며 "우리는 서울 가는 사람이라 내일 아침까지 먹으면 길양식이 소용없으니

저녁 아침 두 끼니만 해주구 남는 것은 주인이 차지하우. 그 대신으로 찬을 좀

해주우." 주인이 비를 가져오고 또 멍석을 가져와서 졸개가 방을 쓸고 멍석을 까

는 동안에 노밤이는 부지런히 자리 뭉치를 끄르고 또 짐을 풀더니 자리를 사이

에 띄워서 두 군데 잡는데 한 자리에는 기직자리를 깔고 무명 이불을 내놓고 한

자리에는 기직자리를 돗자리를 덧깔고 명주 이불에 퇴침까지 내놓았다. 방문 앞

에 서 있던 꺽정이가 돗자리 깐 데를 가리키며 “저건 내 자리냐?” 하고 물으

니 노밤이는 여공불급하게 녜 하고 대답하였다. 꺽정이와 졸개가 노밤이의 양식

으로 요기하고 노밤이의 침구로 어한하여 하룻밤을 지나고 이튿날 식전에 꺽정

이가 노밤이의 말을 들어보려고 “너는 서울가면 뉘게루 갈 테냐?” 하고 물으

니 노밤이는 서슴지도 않고 “남소문 안 한첨지께루 갈랍니다.” 하고 대답하였

다. “나를 따라오지 말랬는데 따라올 테냐?” “어제는 따라오지 말라구 하셨

지만 밤잔 원수 없답디다. 오늘은 그런 말씀 마십시오.” “네가 내 앞에서 다시

거짓말을 안할 테냐?” “거짓말을 좋아 안 하시는 줄 미리 알았더면 어제두 거

짓말할리가 없었습니다.” “너 같은 실성한 눔이 아닌 담에 누가 거짓말을 좋

아한단 말이냐. 미친 눔 같으니.” 꺽정이는 마침내 노밤이를 용서하여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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