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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11)

카지모도 2023. 5. 21.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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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밑골 노름꾼 한치봉이란 자가 저의 첩을 가지고 미인계를 써서 천량 있은

집 왈짜자식을 올가미 씌구고 노름 밑천을 뺏기 시작한 것이 남소문안패란 도적

패의 생기던 시초이었다. 남소문안패가 처음에는 한치봉이의 동류 사오 명에 불

과하였으나, 하나 늘고 둘 늘고 연해 늘어서 한치봉이 당대에 도록에 성명 오른

부하가 사오십 명 좋이 되었었는데 태반은 양반의 집 종들이었고 이외에 매파,

뚜쟁이와 상쟁이, 점쟁이와 무당, 판수와 태수, 돌파리, 보살할미 등속을 부하와

다름없이 부리어서 한치봉이는 남북촌 대가의 밥끓고 죽 끓는 것을 눈으로 보듯

이 알고 지내었었다. 한치봉이의 뇌물이 몇 손을 거치면 지엄한 궐내에까지 들

어가고 또 한치봉이의 청이 몇 다리를 건너면 당로한 재상에까지 미쳐서 연산

당년에는 후궁 희첩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중종 초년에는 반정공신의 힘을 일쑤

보았었다. 조광조 이하 일대 명현들이 조정에 등용되며 한치봉이가 시세의 이롭

지 못함을 진즉 깨닫고 부하들을 조심하도록 단속하였건만, 철없는 아이 서넛이

이전 세월만 여기고 도적질을 좀 크게 하다가 포교 손에 때어가 죽게 되어서 한

치봉이는 부하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길을 뚫어보았으나 뇌물이 손을 잘 거치지

못하고 청이 다리를 잘 건너지 못하여 헛수고만 한 일이 있었다. 이 까닭에 남

곤, 심정, 홍경주의 무리가 명현들을 모함하여 기묘사화를 일으킬 때 한치봉이는

뒤에서 숨은 힘을 가지고 그 무리를 도와주었었다. 우선 남곤이가 김덕순, 박연

중의 해를 받을까 겁을 내서 밤중에 잠자리를 이리저리 옮길 때 한치봉의 친한

계집이 남곤에게 수청을 많이 들었고 한치봉이의 신임하는 부하가 남곤의 좌우

를 별로 떠나지 아니하였었다. 기묘년을 지난 뒤에 한치봉이는 늙어서 들어앉고

그의 아들 백량이가 아비 대신으로 도중 일을 알음하다가 이내 아비의 지정을

물려가지게 되었는데 용심처사가 아비보다 관후하여 부하의 인심을 얻고 또 아

비의 수단을 배운것이 있어서 윤원형의 첩 난정이의 단골 무당이며 왕대비의 스

승 보우의 상좌중들을 친하여 두고 난정과 보우의 세력을 빌려 쓰는 까닭에 포

교들이 한백량이의 용모파기까지 다 짐작하면서 잡을 생의를 내지 못하였다. 남

소문안패의 괴수 한 첨지란 곧 한백량이니 한첨지가 남소문 안에서 일평생을 태

평으로 지내고 지금은 나이 육십여 세라 그 아비의 만년과 같이 도중 대무한 일

외에는 모두 그 아들 한온이에게 쓸어맡기고 젊은 첩들을 데리고 우스개로 소일

하였다. 한첨지의 아들이 윤과 온이 형제인데 맏아들 윤이는 지랄쟁이 병신이고

둘째아들 온이는 기골 든든하고 성미 팔팔한 것이 그 할아비를 많이 닮아서 한

치봉이 대부터 내려오는 늙은 부하가 온이의 행동거지를 보고 “어쩌면 저렇게

할아버님을 잘 담쑤었노.” 하고 감탄할 때가 많았다. 한온이는 나이 불과 이십

사오 세밖에 안된 젊은 사람이건만 대대 꼽사등으로 첩을 두셋씩 두고 그리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부조에 없이 기생방 오입이 심하였다. 오입쟁이에도 패가 있어

서 기생방에서 다른 패와 마주치면 틀개를 놓고 서로 치고 달코 하던 세월이라

한온이는 기생방에서 남을 많이 치는 대신 남에게 가끔 얻어맞기도 하였다.

꺽정이가 노밤이와 졸개를 데리고 한첨지의 큰집을 찾아와서 문간에서 연통하

였더니 서사일을 보는 사람이 쫓아나와서 맞아들이는데 사랑방에 한첨지 부자가

다 없었다. 꺽정이가 서사를 보고 “주인 부자분 다 어디 가셨소?” 하고 물으

니 “녜, 곧 기별하겠습니다.” 서사가 대답하고 사람을 보내서 첩의 집에 가 있

는 한첨지를 청하여 왔다.

한 첨지가 사랑 중문에 들어올 때 좌우 부액한 사람이 쉿소리 질러서 방과 마

루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뜰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꺽정이도 마루 끝에 나셨는

데 한첨지가 치어다보고 “오늘 아침에 까치가 유난히 짖더니 귀한 손님이 오셨

소 그려.” 하고 너스레 좋게 웃으면서 마루 위로 올라왔다. 꺽정이가 한첨지와

같이 방에 들어와서 좌정하고 한훤 수작을 하는 중에 한온이가 머리를 싸매고

안에서 나왔다. 한온이는 첩의 집에서 누워 앓다가 꺽정이 왔단 말을 듣고 일어

나서 큰집으로 오는데 혼자 뒷 골목길로 와서 안으로 돌아나온 것이었다. 꺽정

이가 한온이의 절 인사를 받고 나서 “머리를 어째 싸맸나?” 하고 물으니 한온

이는 상글상글 웃으면서 “기생방에서 드잽이를 놓다가 앞이마를 좀 다쳤습니

다.” 하고 대답하는데 한첨지가 눈살을 찌푸리고 “이 자식아, 남에게 얻어맞은

게 자랑이냐?” 하고 나무랐다. “누가 자랑했습니까?” “자랑 아니면 낯바대

기 뻔뻔하게 기생방 치다가 얻어맞았다구 말씀한단 말이냐?” “기생방 치다가

얻어맞은 걸 기일 건 무어 있습니까?” “기생방 출입한 것을 아비나 손님 앞에

서 드러내놓구 말하는 게 무엄한 일인 줄 모르느냐!” “기생방에 가는 게 무엄

하다면 모를까 기생방에 간 걸 갔다구 바루 말씀하는 거야 무엄하다구 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너는 하우불이의 자식이야.” 한첨지 부자간에 오고가는 말

을 꺽정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듣다가 한첨지를 돌아보고 “말인즉 자제 말이 옳

소.” 하고 웃었다. “옳긴 무에 옳단 말이오? 설혹이 옳다구 치더래두 자식으루

아비 말대답하는 법이 어디 있소. 자식은 아예 응석으루 기를 게 아닙디다.” 한

온이가 아비의 잔소리를 가로막으려고 얼른 꺽정이를 보고 “이천서 언제 떠나

셨습니까?” 하고 말을 물었다. “그끄저께 떠났네.” “그끄저께 떠나셨으면 바

루 서울루 오셨습니까?” “영평 도덕여울을 들러왔네.” “더덕여울을 들러오

셨어요? 옳지, 애꾸놈을 보러 가셨습니다그려. 그래 그놈을 보셨습니까?” “봤

네.” “그놈을 어떻게 처치하셨습니까?” “하인삼아서 여기 데리구 왔네.” “

어디 있습니까?” “밖에 있겠지.” “그놈을 좀 불러보겠습니다.” 한온이가 마

루문을 열고 건넌방 편을 바라보며 “거기 누구 있나?” 하고 사람을 불러서 “

청석골 대장께서 데리구 오신 사람을 좀 들어오라구 부르게.” 하고 말을 일렀

디. 얼마 뒤에 마당에 신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한온이가 윗간 방문을 열고

서 내다보더니 곧 몸을 돌쳐서 아랫간에 앉은 꺽정이를 바라보며 “그놈은 애꾸

눈이라는데 두 눈이 멀쩡하니 사람이 틀리는가 봅니다.” 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밖을 향하고 “게 들어온 것이 누구냐?” 하고 소리쳐 물으니 “소인이올시다.

” 하고 대답하는 것이 졸개의 목소리이였다. “노밤이는 어디 갔느냐?” “밖

에 있습니다.” “들어오라구 불러라.” 졸개가 다시 나가서 노밤이와 같이 들어

온 뒤에 꺽정이가 분부하여 한첨지 부자에게 각각 문안들을 드리게 하였다. 한

온이가 노밤이를 내다보며 “저 꼴에 임아무라구 행세했단 말인가?” 하고 웃으

니 “봐하니 남의 꼴을 웃을 경황두 없으실 것 같습니다.” 하고 노밤이가 말대

꾸하여 한온이는 골이 나서 방문을 탁 소리나게 닫았다.

꺽정이가 노밤이를 앞으로 불러서 말대꾸 함부로 하는 것을 꾸짖은 뒤에 밖에

나가 있으라고 졸개와 같이 내보내고 나서 한온이더러 “그놈이 무어라구 지껄

이든가?” 하고 물었다. 꺽정이는 한첨지와 수작하느라고 노밤이가 한온이에게

대꾸하는 말을 잘 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병신이 급살한다드니 그눔이 장히

어둡지 않은 놈입니다.” “그눔이 미친 눔같이 시룽시룽하데.” “그따위 놈

을 왜 서울까지 데리구 오셨습니까?” “하인 노릇이라두 하겠다구 따라나서기

에 그대루 데리구 왔네.” “하인으루 내세워두 번때가 있어야지요. 보름보기 병

신 하인을 무엇에 씁니까. 병신두 병신이려니와 얼굴에 전판 겁기가 낀 것이 불

길해 보입니다.” “글쎄.” 꺽정이가 가볍게 한온이의 말을 대답한 뒤 한첨지를

돌아보며 “내가 이번엔 한동안 서울에 있다 갈 테요. 폐를 많이 끼치겠소.” 하

고 말하니 한첨지는 선뜻 “폐가 무슨 폐란 말씀이오? 조석 공궤쯤은 해드릴 힘

이 넉넉하니 염려 마시우.” 하고 대답하였다. “물건두 팔아 줄 게 있소.” “

무슨 물건이오?” “평양 봉물 나머지를 가지구 왔소.” “물목을 가지셨거든

좀 보여주시오.” “물목이 짐 속에 들었을 테니 차차 보시우.” “값진 물건이

많이 있을 테지요?” “거지반 다 값진 물건이오. 서림이가 겉가량 잡는데 상목

삼천동인가 사천 동 값어치가 된다구 합디다.” “아이구 굉장하구려. 그렇지만

물건값이란 작자 만나기에 달렸으니까 겉가량 가지구야 알 수 있소.” “두구두

구 작자를 구해서 잘 팔아보시우.” “그건 다시 부탁하실 것두 없소.” 한첨지

가 아들을 보고 “이 사랑을 쓰시게 해두 좋지만 사랑이 번라할 때가 많으니 어

느 집 한 채를 치워서 조용히 기시게 해드리는 게 좋겠지.” 하고 꺽정이의 거

처할 처소를 의논하였다. 한첨지의 집은 큰집이란 것이 간수로 이십여 간 밖에

안되고 그외에는 십여 간 오륙 간씩되는 작은 집이 수십 채 큰집 좌우에 늘어

있는데 그것은 대개 양대 첩의 집들과 부하의 살림집들이었다. “옆집을 치워서

기시게 하구 조석을 큰집에서 공궤하두룩 하지요.” “옆집이라니 어느 집 말이

냐?” “지금 제가 쓰는 집 말입니다.” “그거 좋겠다. 그 집 안방에 기시게 하

구 바깥방을 네가 써라.” “바깥방은 데리구 오신 하인들을 주어야지요.” “그

럼 너는 다른 집으루 옮길라느냐?” “건너방이 있으니까 건너방 쓰지요.” “

네가 가까이 뫼시구 있으면 여러 가지루 배울 것두 많구 좋겠다.” 아비 말끝에

한온이가 꺽정이를 보고 “참말루 칼 쓰는 법을 좀 가르쳐 주실랍니까?”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어려울 거 없지.” 하고 대답하였다. “칼을 얼마 동안 배우

면 잘 쓰게 됩니까?” “칼을 잘 쓰자면 한이 없네. 예사 검객 소리를 들을 만

큼 쓰재두 몇 해 동안 애를 써야 할 겔세.” “아이구 그거 어디 배우겠습니까.

” “법수만 대강 배우자면 한두 달에두 배울 수 있네.” “그럼 법수만 좀 가

르쳐 주십시오.” “그러게.” 누가 어느 틈에 일렀던지 안에서 주안상이 한 상

나오는데 안주를 떡벌어지게 차린 품이 예사 잔칫상만 못지 아니하였다. 꺽정이

가 한첨지와 대작하여 술을 네댓 잔 마신 뒤에 앞에 돌아온 술잔을 한온이에게

내어주며 “자네두 한잔 먹게.” 하고 권하니 한온이가 “저는 술을 못 먹습니

다.” 하고 술잔을 받지 아니하였다. “아버지 앞이라 어려워서 안 먹나?” “본

래 접구두 못합니다.” 한텀지가 꺽정이를 보고 “저 자식이 술을 먹을 줄 알면

행여나 아비 앞이라구 안 먹겠소?”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한첨지와 한온이를

반반씩 갈라보면서 “사내 대장부가 술을 못 먹다니 될 말인가. 칼버덤두 술을

먼저 내게 배우게.” 말하고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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