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흠례를 잡아 죽이기로 의론이 일치한 뒤 “잡아 죽이자면 어떻게 해야 좋겠
소?” 하고 꺽정이가 서림이에게 물으니 “글쎄올시다. 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 하고 서림이는 대답하였다. 서림이의 생각한단 말에 비위가 거슬린 곽오주가
별안간 큰소리로 “여보 대장 형님?” 하고 꺽정이를 부르고 “기급할 생각 다
고만두고 우리가 다 쏟아져가서 봉산군수놈두 죽이구 봉산읍내도 도륙냅시다.”
하고 말한 뒤 오가의 본을 떠서 “내 말이 어떻소?” 하고 좌중을 돌아보았다.
꺽정이가 곽오주에게 주제넘게 나서지 말라고 꾸짖고 다시 서림이를 돌아보며
“별루 좋은 꾀가 없다면 내가 단신으루 봉산 가서 찔러죽이구 오겠소.” 하고
말하니 “자객질은 위험합니다.” 하고 서림이가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위험
해? 무얼 내가 대낮에 삼문으루 들어가서 동헌에서 찔러 죽이구 무사히 돌아올
테니 두구 보우.” “대장께서 하시면 될 수야 있겠습지요. 그렇지만 아무래두
위험합니다. 그보다 나은 계책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실
것 있습니까.” “계책이 얼마든지 있으면 있는 대루 다 말을 하우.” “두령 몇
분이 건장한 졸개를 십여 명이구 수십 명이구 데리구 나가서 신계서 봉산으루
나오는 길에 목을 잡구 매복하구 있다가 도임행차를 엄습하는 것두 한 계책이
되지 않습니까?” “그 계책두 좋겠지만 그 동안 벌써 도임했으면 소용없지 않
소.” “그러면 또 수가 있지요. 조만간 감영에 연명은 안 가지 못할 테니까 봉
산서 해주 가는 역로에서 해낼 수 있지 않습니까. 어좌어우간 황두령을 봉산 한
번 보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꺽정이가 서림이의 말을 좇아서 황천왕동이더러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봉산을 가서 이흠례가 아직 도임 안 했거든 도임한다는
기일을 자세히 알아가지구 오구 벌써 도임했거든 해주 연명 갈 때 날짜를 미리
아는 대루 빨리 기별해 달라구 단단히 부탁하구 오너라.” 하고 이르고 이흠례
처치할 계획은 황천왕동이 갔다온 뒤 다시 의론하기로 작정하였다. 황천왕동이
가 봉산 처가에를 다녀오는데 펼쳐놓고 다니지 못하는 처지라 남의 눈에 뜨이지
아니하려구 중로에서 지체하여 땅거미 지난 뒤 들어가고 단잠을 못 자고 첫닭울
이에 떠나온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황천왕동이가 떠나가던 이튿
날 한낮좀 기운 때 되돌아왔다. “새 군수가 그 동안 도임했습디다. 엊그제 도임
해서 내일부터 공사를 시작한답디다. 그러구 감영에 이달 그믐께 갈 모양인갑디
다. 장인이 호장을 해보려구 책방에 긴한 길을 얻어서 청을 들여보냈더니 책방
말이 원님이 감영에 갔다오신 뒤에 육방에 변동이 생길 테니 아직 기다리라구
하더랍니다. 그래서 연명에 언제 가나 알아본즉 그믐 전에 갈 모양인데 골 일을
대강 보살피구 간다니까 자연 그믐께 되리라구 합디다. 연명 갈 날짜 정일하는
걸 알거든 곧 기별해 달라니까 기별할 사람이 없다구 나더러 또 왔다가랍디다.
” 황천왕동이의 회보를 들은 뒤 꺽정이가 이흠례를 연명하러 갈 때 잡으려고
생각하고 서림이를 불러서 잡을 준비를 의논하는데, 서림이가 무두무미에 “이
춘동이 어머니 환갑에 참말 가실랍니까?” 하고 물어서 꺽정이는 괴이쩍게 여기
며 “그건 왜 묻소?” 하고 되물었다. “마산리서는 재령 . 해주길이 가까울 테
니 환갑에 가실 때 아주 사람을 십여 명 다리구 가셔서 거기서 이흠례 가는 것
을 알아봐 가지구 목을 지키러 내보내시면 일이 편할 것 같습니다.“ ”
거기가서 여러 날 묵새길 수야 있소. 더구나 여럿이 가서.“ ”이촌동이두 인제
는 우리 액내 사람인데 그 사람의 집에 가서 며칠 못 묵으실 것 있습니까. 그러
구 며칠 될 까닭두 없습니다. 이달이 적어서 스무아흐레자 그믐이니 스무엿새날
환갑 보신 뒤 과 즉 이틀만 더 묵으시면 그믐이 아닙니까.“ ”이흠려가 스무엿
새 전에 갈는지 누가 아우?“ ”그믐께 간다니까 말씀입니다. 봉산서 어느 날
발정하는 것과 봉산서 해주를 이틀 갈 셈 잡구 첫날 어디 중화 어디 숙소하구
또 다음날 어디 중화하는 건 황두령이 미리미리 알아와야 준비에 실수가 없을
겝니다.“ ”어디 그렇게 작정하구 준비를 해봅시다.“ 이와 같이 꺽정이가 서림
이를 데리고 대강 의론을 먼저 정하고 밤에 여러 두령 모였을 때 의론 정한 것
을 이야기하였다. 이봉학이가 꺽정이더러 ”그럼 갈 사람 수효와 목 지킬 자리
두 대개 다 작정하셨습니까?“ 하고 물어서 ”아니.“ 하고 꺽정이는 고개를 가
로 흔들었다. ”갈 사람이나 가서 지킬 자리는 임시해서 작정해두 낭패가 없겠
지만 미리 대강 작정해 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 공론해서 작정해 보
세.“ 하고 꺽정이가 곧 여러 두령을 돌아보며 ”봉산.해주 사이를 전에 내왕해
본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으니 여러 두령은 서로들 바라만 보고 대답이 없었
다. 다른 두령은 모르되 황천왕동이는 봉산서 장교 다닐 때 해주 감영에를 내왕
하였을 터인데, 대답 안 하는 것이 괴상하였다. ”천왕동이는 그 길을 다녀봤겠
지?“ ”몇번 다녀봤지만 유의 않구 휙휙 지나다녀서 고개티 이름 하나두 변변
히 모릅니다.“ 꺽정이가 자리는 나중 실지를 가보고 잡는다고 뒤로 미루고 갈
사람을 작정하려고 ”마산리 가구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하고 물으니
자리를 물을 때와는 딴판으로 여러 두령이 너도 나도 다 간다고 대답하고 오직
박유복이.서림이 둘만 간단 말을 않고 잠자코 있었다. ”박두령은 남의 어머니
환갑 지내는 것두 부러워서 가실 생각이 없으시우?“ ”대장 형님께서 가자시면
가지만 부득이 가구 싶을 거야 무어있소.“ 서림이와 박유복이 사이에 이런 수
작이 있고 ”여기를 통히 비다시피 하구 모두 다 갈 까닭두 없구 또 유복이는
겨울을 잡아들며부터 내처 감기가 떠나지 않으니까 남아 있는게 좋겠지만, 서종
사는 가서 일을 의론하더라도 꼭 같이 가야 하우.“ ”대장께서 가자시면 가지
요.“ 이봉학이와 서림이 사이에 이런 수작이 있은 뒤 꺽정이가 박유복이.곽오
주.한온이 셋이 오가와 같이 남아 있으라고 말하니, 셋 중의 곽오주는 간다고 고
집을 세우다가 이춘동이의 어린 딸이 울기 잘한다는 김산이의 말을 듣고 고만
수그러졌다. 서림이가 꺽정이를 따라서 마산리를 가기로 작정하던 다음날이다.무
시때요, 추운 날이라 탑고개로 순 돌러 나온 두령이 잠깐 다녀서 들어가고 행인
도 없어서 탑고개 주막이 쓸쓸할 때 어떤 노파 하나가 골 어귀 쪽에서 바람을
안고 올라오는데, 나이에 눌리고 또 추위에 눌려서 허리가 착 꼬부라져서 손에
짚은 짧은 지팡이가 버티지 않으면 곧 고갯길에 이마받이를 할 것 같았다. 그
노파가 꼬부랑꼬부랑하고 주막 앞에를 오더니 걸음을 멈추고 서서 허리를 좀 펴
고 후유 하고 숨을 돌리고 목 안에서 갈라져 나오는 기침 소리로 사람 온 기척
을 내었다. 방문 닫힌 주막방은 사람이 없는 듯 조용하였다. 노파가 눈으로 사람
을 찾느라고 두리번두리번하다가 방문 앞 토마루에 올라와서 언 입의 어줍은 말
로 “방에 아무도 없소?” 하고 말하며 이때까지 겨드랑 밑에 끼고 있던 왼손으
로 닫힌 방문을 잡아당기니 방문은 열리지 아니하나 방안에서 “그게 누구요?”
하고 묻는 사내 목소리가 났다. “여보 방문 좀 여우.” 하고 노파가 한옆으로
비켜서서 방문 열기를 한참 기다린 뒤에야 주막쟁이가 비로소 방문을 부스스 열
고 앉아서 내다보았다. “어디서 오신 할머니요?” “추워 죽겠소. 좀 들어갑시
다.” 주막쟁이가 손님은 없고 날은 추워서 계집과 같이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던
판이라 노파의 들어오는 것이 반갑지 아니하여 못 들어오게 말막는 핑계로 “방
에는 앓는 사람이 있는걸요.” 마치 염병하는 사람이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제
말이 제 귀에 방자같이 들려서 눈살을 찌푸렸다. “앓는 사람이 있더라두 잠깐
몸 좀 녹여갑시다.” 주막쟁이가 하릴없이 문길을 틔우고 비켜앉았다. 주막쟁이
계집은 서방의 거짓말이 무방하든지 벽을 향하고 돌아누워서 일어나지 아니하였
다. 노파가 방에 들어오며 바로 화로 옆에 와 앉아서 불돌로 물러놓은 잎나무
불을 헤치고 쪼이면서 “앓는 사람이 무슨 병이오?” 하고 물으니 주막쟁이는
대답을 않고 골난 사람같이 뿌루퉁하고 있었다. 노파가 주막쟁이의 눈치를 살피
다가 “늙은 사람이 하마터면 길에서 강시날 뻔했소. 불을 좀 쪼입시다.”
하고 사정하듯 말하는 것이 눌러놓은 불 파헤치는 것을 주막쟁이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어서 쪼이고 갈 데루 가시우.”“나 갈 데가 이
근방인데 길을 모르니 좀 가르쳐 주우.”“어디를 가실 텐데 길을 모르신단 말
이오?”“이 근방에 유명한 적굴이 있지 않소.”“그건 왜 물으시우? 적굴에를
가실 테요?”“적굴을 찾아가는 길이오. 적굴이 예서 가깝소?”“적굴이 산속에
있는 줄만 알지 예서 가까운지 먼지 그건 모르우.”“청석골 어귀에 있는 양짓
말이라든가 그 동네서 말들이 이 주막에 와서 물으면 잘 알리라구 합디다. 모른
단 말 말구 길을 좀 가르쳐 주우.”“어떤 미친 놈들이 그런 말을 합디까? 도둑
놈이 아닌 바에 적굴을 잘 알 까닭이 있소.”“적굴 사람들이 육장 여기 와서
산다는데 모른단 말이 될 말이오.”“대체 적굴 같은 무서운 데를 왜 갈라구 그
러시우?”“적굴에 서가 성 가진 대장이 있지요?”“대장 성이 임가란 말은 귀
에 젖게 들었어두 서가란 말은 못 들었소.”“아니 임꺽정이하구 같이 있는 대
장들 중에 서림이란 사람이 있지 않소?”“서림이? 있는지두 모르지요. 그래 서
림이란 사람을 보러 가시우?”“그렇소. 서림이란 사람이 내 사위요.”“녜, 그
러시우. 그런데 그까지 도둑놈 사위를 왜 찾아가시우?”“도둑놈 소리를 듣더라
두 사위야 어디 가우. 더구나 딸이 와서 같이 있는데.”“그래 할머니는 딸 보러
가시는구려?”“그렇소. 인제 내 근지를 알았으니 길이나 잘 지도해 주우.”“그
러면 이 아래 동네에 들어가서 손서방집을 찾아가시우. 거기가서 말씀하면 따님
을 만나보게 되리다.”“내 딸이 거기 와 있소?”“거기 있구 없구 만나게 해달
라구 가서 말씀해 보구려.” 청석골 도중 대소사를 모르는 것 없이 잘 아는 주
막쟁이가 서림이에게 은혜를 졌다는 손가를 찍어대서 서림이의 장모란 노파를
배송내었다.
서림이의 장모가 탑고개 주막에서 탑고개 동네로 내려오는데 엎드러지면 코
닿을 데를 열나절 만에 내려와서 찾기 힘들 것 없는 손서방집을 두 번 세 번 물
어서 찾아왔다. 이때 큰 손가의 안해는 봉당에서 저녁밥 밑둘 콩을 고르다가 낯
모르는 늙은 여편네가 꼬부랑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혼잣말로 “웬 할머니
시여.”하고 말하였다. “이 집 주인댁이오?”“녜. 어디서 오셨나요?”“양지서
왔소.”“양짓말이오?”“경기도 양지골이오.”“용인 양지 하는 데요? 아이구
멀리서 오셨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서림이의 장모가 봉당 끝에 와 걸터앉아
서 바로 자기의 근본을 이야기하고 딸과 사위를 만나보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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