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손가의 안해는 남편이 증왕에 은혜를 받은 까닭으로 서림이를 감지덕지 하는
사람이라, 그 장모를 친절하게 대접하여 방에 누워 있는 남편을 밖으로 불러내
고 방안에 들여앉힌 뒤 화로를 갖다가 앞에 놓아주고 불까지 헤쳐 주며 쪼이라
고 권하였다. “내 딸이 여기 가까이 있소?”“산에 기시지요.”“산이란 데가
예서 머우?”“십리길이라도 평지길 이십리 맞잡이라구들 합디다.”“그럼 내가
지금 곧 그리 가야겠는데, 길 가르쳐 줄 사람을 하나 얻어 주시겠소?”“가만히
계세요. 우리 시동생더러 말해 보겠세요.” 큰 손가의 안해가 서림이의 장모를
방에 앉혀 두고 밖에 나와서 옆집을 향하고 “여보게 여보게?”하고 소리치니
그 동서가 녜 하고 대답하였다. 형과 한집에 같이 살던 작은 손가가 그 동안 옆
집을 사서 따로 살림을 났던 것이다. “아재 집에 기신가?”“집에 없세요.”“
마을 가셨겠지?”“권생원네 사랑에 갔겠지요. 왜 그러세요?”“자네 얼른 가서
집에 손님 오셨다구 곧 오시라구 하게.”“어디서 오신 손님이에요?”“양지 사
시는 서종사 장모시래.” 큰 손가의 안해가 다시 방에 들어와서 서림이 장모더
러 자기 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냐, 딸과 외손주가 보고 싶으면 봄새 날 따
뜻할 때 오지 왜 이런 추운 때 왔느냐, 양지서 여기까지 오는데 며칠이 걸렸느
냐, 여러 가지 말을 묻고 자기 남편이 광주분원 살인옥사에 애매하게 걸린 것을
그때 형방 서종사가 힘을 써주어서 놓여나온 까닭에 서종사는 자기 집의 은이이
라고 이야기하는 중에 작은 손가의 안해가 와서 그 남편을 곧 오라고 불렀다고
말하고, 그 뒤에 얼마 아니 있다가 작은 손가가 와서 서림이 장모에게 절하고
인사하였다. “양지서 어느 날 떠나셨습니까?”“집에서 떠난 지는 한 달이 넘
었소.”“그럼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입니까?”“서울서 묵다가 왔소.”“서울서
는 어느 날 떠나셨나요?”“서울서 떠난 지가 오늘 벌써 엿샌가 보우.”“엿새
나 오셨세요? 어제는 어디서 주무셨습니까?”“미륵당이란 데서 잤소.”“미륵
당에서 주무셨으면 여기를 일찍 오셨을 텐데 어디서 지체하셨습니까?”“미륵당
에서 아침 먹고 나선 뒤 양짓말이란 데 와서 잠깐 지체하고 줄곧 온 게 인제 왔
소. 늙은 사람이 어디 걸음을 잘 걷소.”“점심은 어떻게 하셨습니까?”“점심
못 먹었소.”“아이구 노인네가 시장하시겠습니다.”작은 손가가 그 형수를 돌아
보며 “무어 요기하시게 드릴 게 없을까요?”하고 물으니 “점심때 형님 안 자
신 조당수가 있는데 그거나 데워서 드릴까.”하고 큰 손가의 안해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요기는 안 해도 좋으니 나를 딸에게로 곧 좀 데려다 주시우.”
“오늘 못 가십니다. 길은 여기서 양짓말 가는 폭밖에 안 되지만 가기는 미륵당
이 두어 번 가기보다두 더 어렵습니다. 내일 내가 들어가서 교군으루 뫼셔가두
룩 말씀하리다.”“내가 딸 보고 싶은 맘이 일시가 급하우. 어렵지만 지금 좀 갔
다오시우.”하고 서림이의 장모가 염치없이 조를 때 작은 손가의 안해가 그 남
편더러 “여기서 교군을 얻어 드리면 좋지 않소?”하고 말하니 작은 손가는 고
개를 끄덕이었다.
서림이의 장모가 탑고개에서 승교바탕을 타고 산에 들어왔을 때 날은 벌써 어
두워서 불들이 키어 있었다. 서림이의 안해가 어머니 왔단 연통을 듣고 버선발로
쫓아나와서 “아이구 어머니 웬일이오?”하고 우는 소리 하며 달려들어서 어머
니를 붙들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그 어머니는 말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 하였다.
딸은 울렁거리는 놀란 가슴이 적이 가라앉으며 곧 반가움에 겨워 눈물이 쏟아지
고 어머니는 반가움보다도 눈물이 앞을 서서 모녀가 손을 맞잡고 앉아서 울었
다. 어머니는 징징거릴 뿐이지만 딸은 목을 놓았다.
서림이는 저녁밥을 먹고 꺽정이 사랑에 가서 있다가 장모를 배행하여 온 작은
손가에게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해가 울음을 그치고 한옆으로 비켜
앉은 뒤 장모에게 절하고 장모 옆에와 앉아서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치운 때
이렇게 오셨습니까?”하고 물으니 “숨 좀 돌려가지고 차차 이야기함세.”하고
장모는 후유 한숨을 내쉬었다. 서림이의 아들딸 남매가 이때까지 어느 구석에
있다가 앞으로 나와서 저의 외조모에게 절들 하였다. “이때껏 어디들 가 있다
가 인제 와 뵙는달 말이냐?”서림이의 나무라는 말을 “어머니하구 맞붙들구 우
시느라구 어디 우리 절을 받으실 새나 있어요.”하고 그 아들이 말대답하는데
서림이의 장모가 자기 앞을 가리키며 “이리 가까이들 좀 오너라.”하고 불러서
남매를 다 앞에 앉히고 “이것들 좀 봐. 아주 몰라보게들 컸구나.”하고 머리들
을 쓰다듬어 주었다. “수남이 너 올에 몇 살이야?”“열다섯 살이오.”“그럼
복례는 열한 살인가?”“녜.”“외할미 얼굴을 알아보겠니?”“그러먼요.”“나
는 너를 몰라보겠다.”“할머니는 눈이 어두우시니까 못 알아보시지요.”“아이
구 고년 소명두 하다.”“수남아, 너 글을 배우느냐?”“아버지한테 배우는데 밤
낮 바쁘다구 새루 가르쳐 주진 않구 뒷글만 읽으란답니다.”“이 자식, 아버지
말씀을 뉘서 그렇게 헐하게 한다든?”서림이의 장모가 외손자 남매를 데리고 지
껄이는 동안에 서림이는 그 안해에게 “이런 치운 날 팔십 노인이 점심두 굶구
오셨다는데 진지를 얼른 해 드려야지. 그러구 손서방하구 교군꾼들도 저녁을 먹
이게해.”하고 말을 일렀다. 서림이의 안해가 밖에 나가서 부리는 졸개 계집더러
밥을 뼈없게 지어라, 국을 고기 많이 넣고 끓여라, 이렇게 이르기만 하고 도로
들어와서 앉았다. “어머니 시장하시겠세요.”“배는 고픈 줄 모르겠다만 따뜻한
물 한 모금 먹었으면 좋겠다.”마침 화로에 얹어놓은 숭늉이 있어서 복례가 갖
다가 외조모를 주었다. 복례가 일어설 때 수남이도 일어나서 윗간으로 내려갔다.
서림이의 장모가 더운 숭늉을 먹은 뒤에 서림이를 보고 “내가 이번 오기는 딸
보다도 자네를 보러 왔네.”하고 온 곡절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내 자식이 칠월 초생에 누이를 한번 찾아보고 오겠다고 나가더니 석 달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서 우리 고부가 노심초사를 하고 지내는 중에 시월
보름께 낯모르는 사람 하나가 찾아와서 자식이 서울 좌포청에 잡혀 갇혀서 기막
힌 고초를 겪는다고 소식을 전해 주데. 야경벌이란 무슨 벌인지, 야경벌이하는
사람을 따라다니다가 잡혀 갇혔다고 하데. 그 소릴 듣고 어디 집에 가만히 앉았
을 수 있든가. 그래 며느리만 집에 두고 나는 곧 서울로 올라왔었네. 서울을 오
니 무슨 별수가 있나. 날마다 좌포청에 앞에 가서 지키고 서서 관원들 드나들
때 자식을 내놔달라고 비두발괄도 해보고 자식의 얼굴이나마 한번 보게 해달라
고 애걸복걸도 해보았네. 그러나 소용 있어. 지청구만 받았지. 지청구뿐인가. 뺨
도 여러 번 얻어맞고 발길에도 여러 번 걷어채였네. 내가 그 욕을 보면서도 혹
시를 바라고 이십여 일 동안 한결같이 포청 앞에 가서 살았네. 포도군사 하나가
나를 불쌍하게 보았던지 빈말이라도 고맙게 해주데그려. 그 군사에게 간 속의
안부를 더러 얻어듣는데 물을 때마다 몸은 성하다고 말하더니 육칠 일 전에 비
로소 몸이 성치 못한 것을 이때껏 속여 왔다고 말을 하데. 병이 말이 아니라네.
간 속에서 병이 말 아니면 죽는 사람 아니겠나. 내가 다른 자식이 있나, 저 하나
믿고 살다가 팔십지년에 그 몹쓸 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자네를 찾아보고 의
논하면 혹시 무슨 도리가 있을까 하고 허위단심하고 왔네.”장모가 질금질금하
며 목멘 소리로 말하는 것을 서림이는 끝까지 다 듣고 나서 “진작 내게루 오셨
더면 좋았지요.”하고 장모의 늦게 온 것을 탓하였다. “자네가 전같이 관변에를
다녔으면 벌써 쫓아왔지.”“그런 일 주선할 힘은 전보다두 지금이 나은걸요.”
“그런 걸 누가 알았나. 그러면 곧 나오도록 좀 주선해 주게. 지금이라도 데려내
다가 치료만 시키면 염려 없겠지.”“그걸 주선하자면 내가 서울을 가야 할 텐
데 여기 일이 있어서 이달 안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자네가 주선할 힘이 없
으면 할 수 없지만 주선할 힘까지 있다면서 다른 일이 상치된다고 안 간단 말인
가? 그런 섭섭한 말이 어디 있나.”“내 일 같으면 백일이라두 제치구 가지요만,
도중 일이구 일두 큰일인데 그걸 어떻게 합니까?”“도중 일이란 대체 무언가?
”“여러 사람이 같이 하는 일입니다.”“여러 사람이 같이 하는 일에 자네 하
나가 빠지기로 큰 낭패 되겠나?”“사람은 아무리 여럿이라두 정작 일을 꾸밀
사람이 빠지면 일은 낭패지요.”“여기 일은 좀 중지해 두구 내 일을 먼저 봐주
게.”“여기 일이 중지할 일이 못 돼요.”“그래 내 일은 못 봐주겠단 말인가?”
“새달 초생에는 꼭 서울을 가겠습니다. 새달 초생이라두 보름 안짝 아닙니까.”
“지금 하루 사이에도 생사가 어찌 될지 모르는데 보름이 다 무언가? 이왕 갈
테면 내일 곧 가도록 해보게.”“그렇기에 진작 오셨다면 상치되는 일두 없구
좋았단 말씀이에요.”“여보게, 우리 모자를 좀 살려주게. 우리 모자가 죽는 걸
자네가 구해 주지 않는대서야 어디 인정인가?”장모가 땅파기로 조르는 것도 답
답한데 말참례할 틈을 못 타서 애를 쓰던 안해가 “우리 어머니가 진작 와서 말
하지 않았다고 심사가 틀려서 우리 동생이 죽건 말건 내버려둘 작정이오?”하고
당치 않은 사설을 내놓아서 서림이가 속이 상하여 “소견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
라!”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안해는 더욱 입이 싸게 “당신이 도중 일을 내
세우니 지금 도중에 무슨 일이 있소? 환갑잔치 먹으러 가는 게 도중의 큰일이
오? 설혹 우리들 모르는 큰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틈을 낼라면 차치고 포
치고 하는 수단으로 그만 틈을 못 내겠소.”하고 사설을 퍼부어서 서림이가 곧
야단을 한바탕 치고 싶은 것을 장모의 낯을 보아서 억지로 참고 “장모께서 좀
일찍 오셨다면 좋을 뻔했단 말이지 그걸루 심사틀릴 까닭이야 있나. 남의 맘에
없는 소릴 해두 분수가 있지 여기 일이 한번 작정만 되면 좀처럼 요개가 없는데
여럿이 공론해 작정한 일을 지금 어떻게 하란 말인가?”하고 온언순사로 안해를
타일렀다.
“대장께 말씀하면 사폐를 봐주시겠지요. 내가 가서 사정해 보리까?”“창피
한 소리 하지 마라. 말을 하면 내가 하지.”서림이 말끌에 그 장모가 “자네 혼
자 가서 말해 보고 안 되거는 내외 같이 가서 사정해 보고 그래도 안 되거는 이
늙은 것이 가서 석고대죄를 드리고 청해보세.”하고 말하니 서림이는 혀끝으로
쩟소리를 한번 내고 “내가 이따 가서 되두룩 말해 볼 테니 그 이야기는 고만하
구 다른 이야기나 하십시다.”하고 대답하였다. “지금 곧 가서 말할 순 없나?”
“진지 잡숫는 거나 보구 가겠습니다.”“밥먹기 전에 나는 좀 누워야겠으니 그
동안에 갔다오게.”“그러면 진지 잡술 때 못 와 보일는지 모릅니다.”“집에서
떠날 때는 입맛이 제쳐져서 밥을 못 먹었지만 지금은 악에 받쳐서 밥도 잘 먹
네. 자네가 옆에서 권하지 않아도 많이 먹을 테니 어서 가서 되도록 말하고 오
게.”서림이가 다시 꺽정이 사랑에 와서 꺽정이와 및 여러 두령에게 장모의 사
정을 세세히 이야기한 뒤 꺽정이를 보고 “색책으루라두 잠깐 서울을 갔다와야
겠습니다.”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불쾌스러운 언성으로 “마산리는 못 가겠단
말이오?”하고 물었다. “스무닷새날 뫼시구 같이 떠나두룩 스무나흗날 오밤중
에라두 대어오겠습니다.”“내일이 스무하루요. 이틀 가구 이틀 올 날짜밖에 안
되는데 서울 가서 무슨 볼일을 보겠소.”“밤 도와 가구 밤 도와 올 작정하면
서울 가서 하룻밤 이틀 낮은 볼일 볼 수 있습니다.”“가는 건 맘대루 하우. 그
러나 오기는 스무나흗날 꼭 와야 하우.”“말씀 여쭈긴 황송하나 얼룩이를 좀
주시겠습니까?”얼룩이란 꺽정이의 사랑하는 말인데 꺽정이는 근지않고 선뜻 “
그리하우.”하고 허락하였다.
서림이가 이튿날 꼭두새벽 조사 전에 떠난다고 미리 꺽정이에게 하직하고 또
여러 두령과 작별하고 꺽정이 사랑에서 나올 때 한온이가 자기도 일찍 집으로
간다고 같이 나오며 “서울 가면 뉘게 가 묵으시겠소?”하고 물어서 “치선이
김선달네 집으루 가겠소.”하고 서림이가 대답하였다. 김치선이는 서울 남대문
밖에서 객주하는 사람이니 청석골패와 연락을 맺은지는 오래나 특별한 관계는
없던 것이 한온이가 서울 있지 못하고 도망한 뒤에 관계가 갑자기 깊어졌었다.
청석골서 장물 보내서 팔아오고 사람 가서 거접할 서울 주인집을 문안 문밖 두
군데 새로 정하였는데, 문안 주인은 한온이 집의 서사로 있던 최서방이요, 문밖
주인은 곧 김선달이었다. 한온이가 서림이더러 “최서방 집이 김선달 객주보다
조용할 테니 그리 가시구려.”하고 권하는데 서림이는 한온이의 권하는 뜻을 지
레짐작하고 “최서방에게 혹 편지하실 일이 있소?”“글쎄요.”“김선달이 윤원
형 내외에게 긴한 길이 있는 줄 아는 까닭으루 아주 그 사람의 객주에 가 앉아
서 심부름을 시켜 볼까 생각하우. 최서방에게 갈 편지가 긴급한 것이면 내가 갖
다 전할 테니 오늘 밤에 내게루 보내시우.”“아까 말씀 들으니까 서울을 왔소
갔소 하실 모양인데 최서방을 찾아보실 겨를이 있겠소? 고만두시우.” 이런 수
작들을 하며 같이 걸어오는 동안에 벌써 서림이의 집 앞을 다 왔다. “더 이야
기 하실 일이 있으면 잠깐 우리 집으루 들어가십시다.”“이야기할 일두 없구
바루 가겠소. 평안히 다녀오시우.”“편지는 가서 써보내시우. 서울 가서 아무리
바쁘기루 편지 한장 전할 틈이야 없겠소.”“그럼 편지할 것두 없소. 최서방을
만일 찾아보시게 되거든 지난달 그믐 안으루 추심해 보낸다던 셈을 어찌 이때껏
보내지 않느냐구 물어보시구, 추심이 못됐으면 못됐다구 기별이라두 해줄 겐데
아무 기별이 없으니 대단 궁금하다구 말을 좀 전해 주시우.”“녜, 그러리다. 그
러구 소월향이에게 안부두 전하라구 말하리까?”한온이가 소월향이와 친하게 지
낸 것은 청석골 두령의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작히 고맙겠소.”“셈 추심한
것루 소월향이 몸값을 치러 주구 곧 청석골루 치송하라면 어떻겠소?”“이때껏
몰랐더니 서종사 선심이 무던하구려.”한온이와 서림이는 한바탕 서로 웃고 흩
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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