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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24)

카지모도 2023. 8. 25.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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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야기가 어떻게 됐소?” “손동지 말이 그런 일은 정경부인께루

말을 들여보내면 제일 속한데 이십 동쯤은 안에 바쳐야 하구 그외에 댓 동

더 있어야 자기하구 시녀들하구 노놔 쓴다구 스물 닷 동을 주어야 일을 해보

겠다구 합디다. 그래 여러 가지루 사정해서 우사는 떼구 이십 동만 주기루 했소.

손동지가 사람은 좋지만 속이 좀 컴컴하니까 이십 동을 가지구 정경부인하구 반

분할는지두 모르지요.” “인제 이십 동만 구처하면 일은 됐구려. 이십 동을 김

선달이 다 구처해 주겠소?” “처음에두 말씀했지만 나는 동대서 취해두 십여

동밖에 더 끌어 댈 수 없는걸요.” “내가 오늘 문안에 들어가서 한 군데 열 동

을 말해놓구 왔는데 꼭 될는진 모르나 내일 식전에 찾으러 보내 보게 사람 하나

를 얻어주우.” “집의 심부름꾼들을 보내시구려.” “상목을 준다는 사람이 혹

시 내 뒤를 파볼는지두 모르니까 누가 보내는지 모를 사람을 보냈으면 좋겠소.

” “만일 상목 뒤를 밟으면 누가 가든지 매한가지 아니오.” “그렇기에 상목

을 찾거든 그걸 이리 가져오지 말구 바루 영부사댁 도차지 방으루 가져가랍시

다. 한 번에 열 동씩 두 번 견줄러 보낸다구 적바림해 주어 보내면 되지 않겠소.

” 김선달은 서림이가 일을 귀신같이 잘 요량하는 줄 아는 까닭에 “어련히 잘

생각하셨겠소?”하고 딴말을 더 하지 아니하였다.

김선달이 상목을 변통하여 본다고 다시 나가더니 저녁 먹을 때까지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서림이는 저녁 먹은 뒤 바로 자고 싶은 것을 자지 않고 김선달 오

기를 기다리었다. 서림이 눈에 잠이 가득하였을 때, 방문이 열리며 찬바람이 얼

굴에 끼쳐서 잠이 달아났다. 김선달이 방으로 들어왔다. “안 주무시구 앉으셨구

려.” “어딜 갔다 이렇게 늦었소? 문안엘 들어갔습디까?” “문안에두 들어갔

었지만 문안에선 벌써 나왔구 피마병문께 사는 사람을 하나 보러 갔다가 어디

나간 것을 기다려서 보구 오느라구 늦었소.” “저녁은 어떻게 했소?” “지금

와서 한술 떠먹었소.” “수고를 너무 시켜 미안하우.” “별말씀을 다하시는구

려.” “그래 상목은 어떻게 변통이 됐소?” “문안에 보낼 사람은 어떻게 했소,

얻어놨소?” “내가 나갈 때 집의 심부름꾼더러 신실한 사람을 하나 얻으라구

일러두구 나갔는데 와서 말씀 안합디까?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사람을 아주

두엇 얻으라구 할 걸 공연히 하나만 얻으랬나 보우.” “상목 져나를 지게꾼을

보낼라구 생각하우?” “그럼 의관한 사람을 보내실 작정이오?” “대가집 하인

으루 속을 만한 사람을 보내는 게 좋겠소. 상목은 삯군 대서 지우구 그 사람더

러 영거만 해가지구 가라면 되지 않소. 그러구 삯군 삯 줄 건 미리 그 사람 주

어 보내구.” “어떤 사람을 얻어놨나 어디 물어봅시다.”하고 김선달이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며 “여보게 박서방 좀 부르라게.”하고 소리치니 안에서 “

녜.”하고 대답하는 것은 김선달의 작은마누라인 듯 젊은 여편네의 목소리였다.

김선달이 방문을 도로 닫고 앉은 뒤, 한동안 지나서 방문 밖에 신발 소리가 나

고 신발 소리 그치며 헛기침 소리가 났다. 김선달이 방문 쪽을 향하고 “박서방

인가?”하고 물으니 방문 밖에서 “녜.”하고 심부름꾼 박서방이 대답하였다. “

내일 문안에 보낼 사람 어떻게 했나?” “말해 놨습니다.” “누구를 말해 놨

나?” “걸방으로 걸머질 짐인 줄 알구 지게 말은 이르지 않았는걸요.” “지게

구 걸방이구 다 소용없으니 옷갓하구 오라구 하게.” “내일 식전에 오거든 다

시 가서 옷갓하구 오라구 이르지요.” “내일 식전 일찍 오라구 했나?” “바라

칠 때 오라구 했습니다.” “바라 칠 때 오면 다시 갔다오라구 해두 늦지 않겠

네. 고만 나가게.” 박서방의 밖으로 나가는 신발 소리가 난 뒤에 김선달이 서

림이를 보고 “상목 찾을 곳은 내일 식전에 그 사람을 보구 이르실라우.”하고

물었다. 서림이는 고개를 외치며 “나는 그 사람을 볼 것두 없소. 박서방더러 일

러 보내랍시다.”하고 대답한 다음에 “수표교에서 남쪽 천변으루 장찻골다리를

향하구 올라오자면 불과 여남은 집 지나와서 바깥 종부담울 새루 쌓은 집이 있

는데, 그 집 주인의 성이 최가니 그 주인 최서방을 찾아보구 묻거든 바루 영부

사댁에서 왔다구 말하구 그외의 묻는 말은 모두 모른다구 대답하라시우.”하고

말하였다. “나는 손동지에게 전갈할 말두 일러야 할 테구 또 삯군들 삯 줄 것

두 주어야 할 테니까 내가 보구 똑똑히 이르겠소.” 서림이가 하품을 하며 고개

를 끄덕이었다. 김선달이 이것을 보고 “곤하시거든 주무시우. 나두 일찍 들어가

자겠소.”하고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간 뒤 서림이는 곧 잘 자리를 보았다. 하룻

밤 지나니 동지달 스무사흗날이다. 서림이가 잠은 새벽에 깨었으나 일찍 일어나

서 볼일이 없고 또 몸 운김으로 따뜻하여진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어서 그대

로 누워 있었다.

‘내일은 오밤중이라두 청석골을 들어가야 할 텐데 말이 걸음은 잘하지만 이

백 리가 넘는 길을 당일에 들이대자면 말보다두 사람이 죽을 지경일 테니 오늘

다 저녁때라두 떠나서 가는 대루 가다가 자야겠다. 청석골 가선 하루두 쉬지 못

하구 바루 미산리를 가야 할 테지. 이런 제기, 다른 복은 막히구 길복만 터졌나.

올 때 임진강 등빙에 감수할 뻔했는데 어제부터 일기가 풀려서 얼음이 더 굳었

을 린 없지. 등빙을 또 어떻게 한담.’ 서림이 생각에 임진강 갓 언 얼음에 또다

시 등빙할 일이 곧 저승만 하였다.

서림이가 머리를 방문 편으로 두었는데, 문틈으로 들어오는 새벽 바람이 얼굴

에 서리를 끼어얹는 것 같아서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고 누웠는 중에 자는지만

지 하게 개잠이 들었다. 자기가 얼음 구멍에 빠져 죽은 것을 건져내 놓았다고

하는데, 자기의 시체란 것이 놓인 곳은 예전 광주서 살던 집 안방이고 시체 옆

에 둘러앉은 것은 모두 일면부지 모를 사람들뿐이라 처자는 다 어디 가서 있나

살펴본즉 방 한구석에 안해는 딸의 머리를 빗기고 앉았고 아들은 따로 돌아앉

아서 훌쩍훌쩍 우는 모양이었다. 철없는 딸은 말할 것이 없거니와 결발한 뒤 이

십여 년 동안 고운 정 미운 정 정이 깊이 든 안해가 눈에 눈물 한 방울이 없었

다. 미거한 아들만도 못하였다. 청석골 있을 때 어느 날 밤 내외가 베개 위에서

자식 남매의 전정을 이야기하는 중에 “나는 설혹 잡혀 죽게 되더래두 그대는

남매를 데리구 도망해 나가서 구명도생을 해야 할 텐데.” “그런 일이 나면 나

는 따라 죽지 혼자 도망 안 해요.” “자식들은 어떡허구?” “저희들 명 길면

살겠지요.” “그건 생각이 부족한 소리야.” “싫어요 싫어요. 나 혼자 살긴 싫

어요.” 이렇게 열녀 노릇 할 것을 자기하던 사람이 화복하고 단정하고 남편의

시체란 것은 본체만체하고 앉았으니 일변 괘씸도 하고 일변 한심도 하였다. 훌

저에 꺽정이가 어디서 와서 아들을 발상시킨다고 밖으로 끌고 나가는데 고만두

라고 말을 하려 한즉, 혀가 얼어굳어서 말이 나오지 아니하여 무진 애를 쓴 끝

에 외마디 소리를 한번 지르고 자기 소리에 놀라서 정신이 번쩍 났다. 서림이가

얼굴을 이불 밖에 내놓고 보니 동향인 방문이 가득 비친 햇빛이 눈이 부시었다.

“이크, 너무 늦었구나.”하고 벌떡 일어나서 방문을 열어놓고 이불을 개킨 뒤에

세숫물을 달라고 소리치니 김선달이 세수대야는 계집아이를 들리고 비누합은 자

기가 가지고 나왔다. “이부자리가 얇아서 밤에 치웠지요?” 김선달의 밤잔 인

사에 서림이는 “치운 줄두 모르구 잘 잤소.”하고 대답한 뒤 “새벽에 깨었다

가 이불 속 따뜻한 맛에 개잠이 들었었소.”하고 늦잠 잔 것을 발명하여 말하였

다. “일두 없는데 일찍 일어나 무엇하시우? 더 늦두룩 주무셔두 좋지.” “대체

지금 때가 어떻게 됐소? 아침때가 지났소?” “다들 아침 먹구 우리 둘만 남은

모양이오.” “문안 간 사람은 새벽 갔소?” “그 사람이 오기를 워낙 좀 늦게

오구 다시 가서 의관하구 오느라구 지체하구 간 지가 그리 오래지 않소. 지금쯤

갔을 게요.” “어제 변통해 놓으신 상목은 찾아왔소?” “내가 다시 가서 아주

아퀴를 짓구 찾아올 텐데 일어나시는 걸보구 가려구 아직 못 갔소.” “얼른 찾

아다가 낮 전에 마저 다 보냈으면 좋겠소.” “그럼, 나는 곧 아침을 먹구 나가

겠소.”하고 김선달은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서림이가 아침밥 먹고 밥상을 물릴

때, 심부름꾼 박서방이 들어 와서 “문안에 갔던 사람이 나왔는데 상목은 안 줘

서 못 찾았답니다.”하고 말하여 그 사람을 불러서 보고 “대체 무어라구 말하

구 안 줍디까?”하고 물어보았다. “최서방이란 사람이 잘 보지 않은 것을 그예

보자구 해서 보구 엄외장의 맡겨 둔 상목을 영부사댁에서 찾으러 왔다구 말하니

까 그 사람 말이 아직 입수가 못됐으니 내일 아침에 한번 다시 오라구 합디다.

그래서 한을 하루 물려두 좋을까 여쭤 보구 온다구 말하구 바루 나왔습니다.”

“여기 주인이 오면 무슨 말이 있을 테니 밖에 가서 좀 기다리우.” 그 사람이

미처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퍽 많이 보이더니 급기 방문 앞에 와서 서는 것을

본즉 불과 셋이었다. 그러나 셋은 고사하고 단 하나라도 서림이 주제로는 때려

눕히고 도망할 가망이 없었다. 서림이는 움치고 뛸 수가 없이 되었다. 포교들이

잡으러 왔으면 으레 제잡담하고 몸에 손을 댈 터인데, 솔개 병아리 차듯 차지

않고 고양이 쥐 놀리듯 하려는지 서로 돌아보며 눈짓 콧짓 다하더니 그중의 하

나가 서림이를 보고 능글능글하게 웃으면서 “임자 성명이 무어요?”하고 말을

붙이었다. 서림이는 놀라움과 겁이 작이 차고 고비가 넘어서 뒤쪽으로 악이 나

고 담대하여졌다. “엄가요.” “오, 엄외장이란다지? 엄외장, 포청에 일이 있으

니 우리하구 좀 같이 갑시다.” “무슨 일이오?” “무슨 일은 가면 알지 어서

일어나오.” “무슨 일인지 모르구선 못 가겠소.”하고 서림이가 한번 뻑써 보았

다. “못 가!”하고 그 포교는 당장 팔을 걷어붙이는데 다른 포교 하나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우리는 엄외장이 청석골 대적 서림이란 말을 듣구 잡으러 왔으

니까 우리하구 같이 가서 서림이 아닌 것만 변명하구려.”하고 언죽번죽 말하였

다. 포교들이 상목 찾으러 간 사람을 뒤밟아 온 것만 보아도 치의가 대번 최가

에게로 가는데, 본성명까지 알고 잡으러 온 것을 보면 최가가 밀고한

것이 의심없었다. 서림이가 속으로 왼새끼를 꼬면서도 겉으로는 아닌보살하고

“서림이라니 어떤 죽일 놈이 나를 서림이라구 모함했단 말이오?”하고 펄펄 뛰

었다. “고발한 사람이 위조고발했으면 반좌율을 켤텐데 무슨 걱정이오? 어서

빨리 갑시다.” “가지요.” 서림이가 가기 싫다고 안 가지 못할 판이라 말은 간

다고 하였지만 가는 곳이 죽을 곳이니 마음엔 가고 싶을 까닭이 없었다. 목숨을

도망할 생각이 골똘하나 몸을 빼칠 꾀는 삭막하여 서림이의 마음이 초조하였다.

첫째 동안이 좀 있어야 꾀를 내기도 하고 쓰기도 할 터인데, 그럴 동안이 없어

탈이라 서림이가 뭉그적뭉그적 문지방 앞으로 나와 앉아서 “여러분께 청할 말

씀이 한 가지 있는데 들어들 주시겠소?”하고 포교들을 돌아보니 “무슨 청이

오?”하고 눈을 희번덕거리던 포교가 물었다. “여기 객주 주인에게 셈을 밝힐

일이 있는데 지금 주인이 어디 잠깐 나갔으니 넉넉잡구 한식경만 여러분 참아

주실 수 없겠소? 그 동안은 여러분이 이 방에 들어와서 나하구 같이 앉았읍시

다. 그러구 또 그저들 앉았기 심심하다면 내가 술을 한턱 내리다.” 서림이의 말

끝이 마자마자, 팔을 걷어붙이던 포교가 서림이 앞으로 바짝 대들며 “술을

한턱 낸다? 그럼 신발차두 후히 주겠구나? 이놈아, 네가 우리를 시굴 사령 부스

레기루 아느냐?”하고 바로 서림이의 팔을 잡아 앞으로 낚아서 서림이는 문지방

너머로 고꾸라지듯 끌려나왔다. 처음부터 입 한번 떼지 않은 포교가 뒤에 들고

섰던 줄을 제꺽 내쳤다. 포교 셋이 함께 대들어서 서림이를 묶는데 걸려 가지고

가려고 아랫도리만 내놓고 윗도리는 꼼짝 못하게 묶었다. 서림이는 입술이 악물

리고 얼굴빛이 질리었다. 서림이가 포교들에게 끄리고 밀려서 중문간으로 나오

니 다른 포교 들이 문을 지키고 있는데, 상목 찾으러 갔던 사람을 뒷결박지워서

한옆에 앉히었다. 안에서 나오는 포교 중의 하나가 밖에 있는 포교들더러 “저

놈두 우리가 끌구 갈 테니 지네들은 여기 있다가 주인놈을 잡아가지구 오게.”

하고 말한 뒤 결박지워 놓은 사람에게 가서 갓을 툭 쳐서 벗겨버리고 상투를 잡

아서 일으켜 세웠다. 그 사람은 엉엉 울며 안 가려고 앙탈하다가 포교에게 뺨을

여러 차례 얻어맞았다. 서림이를 나와 잡은 포교들은 좌포청 소속이라 서림이

가 파자교 좌포청으로 끌려왔다. 늦은 아침때쯤 잡혀온 사람을 점심때 훨씬 지

난 뒤에 비로소 부장청에 끌어내다가 문초를 받기 시작하였다. 첫 문초를 포교

들끼리 받지 않고 부장 앞에서 받는 것부터 대사죄인으로 잡도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림이가 죽을 고를 어떻게 모면할까 곰곰 생각하여 보았으나 슬기

구멍이 막혔는지 좋은 꾀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릴없이 당하는 대로 당할 수밖

에 없는데, 만일 서림이라고 자복하면 능지처참이 가려라 어디까지든지 자복은

않고 배기려고 마음을 먹었다. 설혹 서림이로 판명이 되어서 군기시다리까지 끌

려가게 될지라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살 수가 있겠지, 설마

죽으랴 하는 생각이 마음속 한구석에 붙어 있어서 낙심은 되지 아니하나 다만

악형 받을 것이 겁날 뿐이었다. 서림이가 포교들의 잡아 꿇리는 대로 부장청

계하에 꿇어앉아서 대장을 치어다보니 중간에는 포도부장 한 사람이 화로를 끼

고 앉았고 옆에는 서원인 듯 지필을 앞에 놓고 앉았다. 부장이 굽어보며 “묻는

말을 바루 대지 않으면 당장에 초죽음을 시켜놓을 테니 그리 알아라!” 하고 첫

마디에 으름장을 놓는데, 서림이가 목소리는 나직하나 분명한 말로 “아는 일이

면 다 이실직고하옵지 일호라두 기망할 길이 있소이까.” 하고 대답하였다. “네

성이 무어냐?” “엄가올시다.” “성이 무엇이야?” “엄할 엄자 엄가올시다.”

“초죽음을 하구 싶어서 성부터 외대느냐?” “엄가 아닌 걸 엄가랄 리 있소이

까.” “네 아비는 서가구 너는 엄가냐? 이놈, 죽일 놈 같으니!” 부장이 서림이

를 호령한 뒤 서림이 옆에 섰는 포교들더러 “그놈을 다듬어 가지구 만져야겠

다. 한바탕 톡톡히 내려라!” 하고 말을 이르더니 포교들 중의 가장 세차 보이는

사람 두엇이 방망이들을 뽑아들고 사다듬이를 시작하였다. 서림이가 몇 번 아이

구 소리를 지른 끝에 “바루 댈 테요. 고만 고만.” 하고 항복하여 방망이질이

시작된 뒤 얼마 안 되어서 그치었다. 부장이 다시 성명을 묻는데 이번에는 바로

“네 성명이 서림이지?” 하고 물었다. “어떤 놈이 저를 서림이라고 밀고했는

지 그놈이 아마 저하구 불공대천지수가 있나 봅니다.” “그래 네가 서림이가

아니란 말이냐?” “제가 서림이루 몰려서 죽을 제 죽더라두 본성명은 아니올시

다.” 부장이 다시 포교들더러 “그놈이 설맞아서 바루대지 않는다. 이번엔 아주

반쯤 쳐죽여놔라!” 하고 분부하여 먼저 방망이질하던 포교들이 견디어

보라고 땅땅 벼르고 달려들때, 서림이가 포교들에게 “대상에 사뢸 말씀이 한마

디 있으니 잠깐만 참아 주시우.” 하고 애걸한뒤 곧 부장을 치어다보며 “저의

이종형이 서울 있으니 이종형을 불러서 제 근본을 물어 보십시오. 영부사댁 도

차지 손동지가 제 이종형이올시다.” 하고 말하니 부장의 얼굴에 놀라는 빛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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