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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39)

카지모도 2023. 9. 10.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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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함경도 태생인가? 나는 자네 고향이 양준 줄 알았네.” “나는 백두산이

고향일세.” “고향이라니 백두산에서 낳단 말인가?” “백두산에서 나서 백두산

에서 자란 백두산 사람일세.” “자네가 백두산 곰의 새낀가?” “어른에게 버

릇없이 욕하지 말게.” “자네 눈에 이런 산은 산 같지두 않겠네그려.” “커두

산이구 작아두 산이지만 이 산이 장산은 아닐세. 그저 야산이지.” “여기는 초

입이니까 야산 같지만 조금 더 가서 길 하나 건너서면 산세가 벌써 달라지네.”

“웬 길이 또 있어?” “그 길두 소로는 소로지만 지금 지나온 길에 대면 바루

다론데 그 길에 또 관군이 있을까 봐 겁이 나네.” 이춘동이 하는 말을 바로 뒤

에 따라오던 이봉학이가 듣고 “지금 해는 다 져가는데 관군이 어둔데 매복이나

하구 있으면 탈일세. 어둡기 전에 그 길을 지나가두룩 지껄이지들 말구 빨리 가

세.” 하고 길을 재촉하여 황천왕동이는 뒤에 가서 다시 김산이의 손목을 잡아

주고 이춘동이는 앞에서 걸음을 재빨리 걸었다. 산속에서 또 길로 나오고 길을

건너서 또다시 산속으로 들어오는데 앞을 가로막는 관군이 없을 뿐 아니라 뒤를

쫓는 관군도 없었다. 해는 꼬박 다 지고 앞은 갈수록 산인데 산에 솔도 많고

잡목도 많아서 만일 초목 무성한 여름철 같으면 대낮이라도 어둠침침할 것이나

솔 이외 다른 나무에 잎이 없고 나무 아래 눈이 하얗게 덮여서 밤빛이 짙어가

는 중이건만, 한두 간 앞은 훤하였다. 나무 새를 새겨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중에 맨 뒤에 말타고 오는 꺽정이가 맨 앞에 가는 이춘동이를 불러서 이춘동이

가 대답하고 뒤로 돌아서니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꺽정이를 돌아

보았다. “여보게, 자네가 우리를 끌구 어디루 가는 셈인가? 밤새두룩 지향없이

산중으루 들어갈 텐가? 자꾸 들어가서 무어하나. 숯장수의 숯가마나 심메꾼의

초막이나 그렇지 않으면 굴이라두 어디 있거든 그리루 가서 앉아 이야기들이나

하며 밤을 지내세.” 하는 꺽정이의 말에 “한참만 더 가면 산성 너덜이가 나설

테니 산성에 가서 하룻밤 지냅시다.” 하고 이춘동이가 대답하였다. “산성 안에

인가가 있나?” “따비밭 일어먹구 사는 사람들이 전에 서너 집 있었는데 작년

올 흉년에 집 수효가 부쩍 늘어서 지금은 여남은 집이나 된답디다.” “산성이

여기서 잇수 대게 먼가?” “평지길 십 리가 넘을 게요.” “그럼 얼른 그리루

가세.” 자모산성으로 가기로 작정하고 산성 너덜이를 찾아나오는 중에 무슨 시

퍼런 불이 여러 사람 옆에 서너 간 밖을 휙 지나 앞으로 갔다. 황천왕동이가 사

냥개같이 냄새를 맡아보고 “노린내가 호랭이야. 내일 낮에 호랭이 사냥 한번

했으면 좋겠다.” 하고 혼잣말하여 이춘동이는 그후부터 좌우쪽을 돌아보며 가

느라고 걸음이 마냥 더디어졌다. 뒤에서 빨리 가잔 재촉이 여러 번 난뒤 이봉학

이가 이춘동이의 호랑이 조심하는 눈치를 알고 앞으로 나서서 이춘동이와 둘이

앞장을 섰다. 가는 앞에 불과 사오간 될락말락한 데서 시퍼런 불이 흐르다 꺼졌

다 하여 이봉학이가 불을 어림삼아 화살 한 대 쏘았더니 어흥 소리 한마디가 산

골을 울리고 불은 이내 간 곳이 없이 없어졌다. 꺽정이 일행이 자모산성에 왔

을때 밤은 벌써 이슥하였다. 어둔 밤에 험한 길을 오느라고 애들을 써서 추위

타는 김산이도 추운 줄은 몰랐고 마른 떡과 익은 고기로 군입들을 다시어서 아

침 설친 황천황동이도 허기는 지지 않았었다. 산성 한복판에 있는 집이 대여섯

인데 불빛 있는 집은 하나뿐이고 불빛은 있으되 사람은 잠들이 들었는 듯 불빛

없는 집과 다름없이 괴괴하였다. 여름일이 바쁜 때와 달라서 들녘 농가 같으면

이야기하는 소리도 나고 혹 책 보는 소리도 날 것이건만, 여기는 귀에 들리는

소리란 바람 소리밖에 없었다. 집집마다 앞뒤에 호망친 것을 보니 밤에는 호환

이 무서워서 이웃간에도 놀러다니지 못하고 각기 저의 집에서 일찍 자는 것이

일인 모양이었다. 불빛 있는 집이 그중에 제일 커서 바깥방까지 있으므로 꺽정

이가 그 집 앞에 와서 여러 사람을 돌아보고 “이 집 주인을 불러 깨워라.” 하

고 분부하니 녜 대답하는 여러 사람 중의 황천왕동이가 남보다 먼저 방 앞에 친

새끼 그물을 들치고 들어가서 닫아걸린 방문을 잡아 흔들었다. “그게 누구요?

” “방문 열어라!” 상투쟁이 하나가 방문 열고 내다보는 것을 황천왕동이가

잡아나꾸듯이 끌어내었다. “네가 주인이냐?” “아니올시다.” “주인은 어디

있느냐?” “안에서 잡니다.” “그럼 얼른 들어가서 깨워라.” 상투쟁이가 안으

로 들어간 뒤 “형님 형님.” 하고 부르는 소리와 “웬일이냐?” 하고 묻는 소

리가 나고 그외에는 소곤소곤 지껄이는 소리들이 나더니 얼마만에 주인이 관솔

불을 켜들고 상투쟁이와 같이 나와서 일곱 사람이 병장기들 가진 것을 보고 저

의 집을 떨러 온 줄로 알았던지 “기린역말서 지난 장날 소 파는 것을 누가 보

셨는지 모르지만 그게 저이 소가 아니구 사주리 김서방네 소올시다. 저이가 그

런 소까지 먹일 만하면 들녘으루 내려앉았지 이런 산꼭대기서 살겠습니까.” 하

고 지레 발명을 늘어놓았다. 이봉학이가 주인더러 “우리가 무어 달래러 온 게

아니라 하룻밤 자자구 왔네.” 하고 말하니 주인은 여공불급하게 “녜, 하룻밤

주무시러 오셨세요? 주무시구 가시지요.” 하고 대답한 뒤 곧 상투쟁이를 보고

“너는 안에 들어와 자구 네 방을 손님네 내드려라.” 하고 분별하였다. “우리

가 저녁을 굶었으니 밥을 좀 지어 줘야겠네.” “양식이 좁쌀뿐이구 입쌀은 한

톨두 없습니다.” “좁쌀두 좋으니 밥만 많이만 지어 주게. 그러구 말을 어디 들

여 맬 데가 없나?” “김서방네 도지소 부리던 것을 팔아가서 오양간이 비었으

니 거기 들여매겠습니다.” “말두 먹이를 잘 주게.” 이봉학이가 주인에게 말

이르는 동안에 상투쟁이가 자던 방을 들어가 치워놓아서 일행이 다 함께 방에

들어와 앉았다. 반일 동안 목마른 것을 견디느라고 여러 차례 눈을 움켜먹은 사

람들이라 몸이 녹은 뒤로 물이 밥보다 더 급하였다. 주인을 몇 번 불러도 대답

이 없어서 성미 팔팔한 황천왕동이와 불똥가지 있는 길막봉이가 안으로들 쫓아

들어왔다. 주인은 눈에 보이지 않고 상투쟁이가 밥솥에 불을 넣고 앉았는 것을 황

천왕동이가 와서 잡아 일으켜 세우고 한번 보기좋게 귀때기를 우렸다. “아이구

잘못했습니다.” “이놈이 부르는 소릴 듣구두 일부러 대답 안한 놈 아니냐!”

“누가 저를 부르셨습니까?” “이놈아, 네가 뉘게다 생청을 붙이느냐. 그럼 네

아가리루 잘못했다는 건 무어냐.” “무엇이든지 잘못했기에 때리시겠지요만, 제

가 무얼 잘못했는지 그건 저두 모릅니다.” 주인이 장물 떠가지고 오는 여편네

를 데리고 오다가 여편네는 봉당 호망 안에 들여세우고 쫓아와서 “이 변변치

못한 것이 제 동생인데 무슨 말씀을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제 낯을 봐서 용서해

주십시오. “ 하고 사정하여 ”사람이 목청이 떨어지두룩 부르는데 듣구 대답

않는 법이 어디있소? “ 하고 황천왕동이가 주인에게 찍자를 붙었다. ”부르시

는 소릴 못 들었습니다. “ ”안에서 바깥이 몇 천 리요? 그렇게 부르는 걸 못

듣게. “ ”안사람 뒤따라다니느라구 못 들었습니다. “ ”뒤따라다니지 않으면

누가 업어가우? “ ”뒤따라다니지 않으면 무서워서 꼼짝을 못하니 어떡헙니까?

“ ”무에 무섭단 말이오? “ ”저거 못 보십니까? “ 하고 주인이 호망을 가리

켰다. 황천왕동이가 싹싹하게 풀려서 부엌 밖에 섰는 길막봉이를 내다보며 ”봐

하니 아주먼네가 우리 밥 지어주느라구 고생하시네. 우리들이 주인 형제하구 같

이 보호해 드리세. “ 하고 발론하였다.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가 물을 먹고 또 떠가지고 바깥방에 나가서 무서움 타

는 주인 여편네를 보호하여 준다고 말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올 때 배돌석이도

따라들어와서 세 사람은 밥먹고 밥먹은 뒷설겆이가 끝날 때까지 안에들 있었다.

바깥방에서 잠자리들을 볼 때 김산이가 꼭 문바람맞이에 눕게 되어서 머리를

안으로 두고 거꾸로 자려고 하니 한옆에 이춘동이는 마음대로 자라고 내버려 두

나, 다른 옆에 길막봉이가 누구더러 발고린내를 맡으라느냐고 거꾸로 눕지 못하

게 하였다. 김산이는 이마가 서늘하여 자지 못하겠다거니 길막봉이는 남이라고

자랴 혼자 유난 피우지 말라거니 서로 옥신각신 말할 때, 이봉학이와 황천왕동

이의 새에 누웠던 배돌석이가 일어나서 김산이더러 “홍살문 안 사대부 출신이

마구 자란 우리네와 같겠나. 내가 자리를 바꿔 주께 여기 와서 눕게. ” 하고 비

아냥스럽게 말한 뒤, 김산이 자리에 와서 김산이를 밀고 드러누워서 김산이는

싫지도 않지만 싫어도 할 수 없이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한잠이 들어서 곤히들 자는데 배돌석이는 생각이 주인 여편네 몸

에 가 실려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이는 젊고 얼굴은 면추하고 육기는 좋

았다. 배돌석이의 여색을 밝히는 품이 유기 없어도 싫지 않겠지만, 육기 좋은 데

더욱 탐이 났다. 코가 간질간질하여 재채기가 연거푸 나고 재채기가 난 뒤 눈이

점점 반들반들하였다. 배돌석이가 가만히 일어나서 돌주머니 외에 환도 한 자루

까지 손에 집어들고 살그머니 방문을 여닫고 밖에 나와서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

왔다. 안방의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방문은 걸리었었다. “이 문 좀 열우. ” 하

고 배돌석이가 방문을 흔드니 주인이 놀란 목소리로 “누구요? ” 하고 소리질

렀다. “소리는 지르니 말구 문이나 열우. ” “바깥방 손님이십니까? ” “그렇

소. ” “웬일이십니까? ” “방에 잠깐 들어가서 이야기하겠소. ” 주인이 일어

나서 등잔불을 돋구는 듯 깜박거리는 불빛이 홀저에 환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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