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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0권 (30)

카지모도 2023. 10. 16.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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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평 동네 존위의 집이 동네 중의 제일 잘 견디는 집이고 또 집도 큼직한 것

을 잘 아는 이춘동이가 일행을 그 집으로 인도하였다. 겉으로 위풍을 부리려고

동구 밖에서 봇짐에 싸가지고 온 병장기들을 꺼내서 혹 손에도 들고 혹 몸에 지

닌 까닭에 그 집에서는 아닌밤중에 난리가 쳐들어온 줄 알고 경겁들 하였다. 이

봉학이가 주인을 불러서 하룻밤 자고 갈 뜻을 말하고 경겁하지 말라고 안위를

시켰다. 주인이 늙어서 눈이 어둡든지 또는 놀라서 정신을 잃었든지 처음에는

이춘동이를 보고도 몰라보다가 나중에야 비로소 이춘동이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자네가 마산리서 대장일 하던 춘동이 아닌가?” 하고 아는 체하였다. 주인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첫말에 배돌석이가 나서서 “아니꼽살스럽게 뉘게다

가 하게야.” 하고 책을 잡고 그 다음에 황천동이가 또 나서서 “마산리 대장쟁

이는 하게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청석골 두령은 하게를 안 받는다. 그 따위 말버

릇을 함부루 하다가는 신털 난 대가리가 모가지하구 작별하게 될 테니 조심해라.”

하고 얼러대니 동네의 제일 어른 존위 샌님이 구상전을 만난 듯이 벌벌 떨었다.

큰방 둘을 치우고 두령과 두목.졸개가 두 방에 나누어서 헐숙하는데 인심이

몰라서 조심성으로 한 방에 한 사람씩 돌려가며 자지 않고 이날 밤을 지내고 이

튿날 식전에 이봉학이가 주인을 보고 “우리가 이 동네 사람들에게 이를 말이

있으니 온 동네를 다 모을 건 없구 동네의 두민과 동임들만 곧 좀 모아 주시우.

” 하고 분부할 것을 듣기 좋게 부탁하듯 하였다. “동네 사람을 모으면 어디루

모이라구 할까요?” “어디루 모이라니? 이리 모이라지.” “아니 사람이 여남

은 모일 텐데 방이 좁을 듯해서 여쭤보는 말씀입니다.” “한데가 좀 춥겠지만

뭐 오래 걸릴 것 아니니 이 앞마당에 모이게 하우.”

주인이 네 대답하고 갔다. 한동안 지난 뒤에 유수한 동민과 일이삼좌.소임.풍헌

이 다 모였다고 하여 이봉학이가 방 앞 봉당 위에 나서서 마당에 웅긋쭝긋 섰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큰 기침 한번 하고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청석

골 임대장의 부하인 것은 말 안해도 다들 알았겠지. 우리 대장께서 이번에 잠시

피접을 나실 일이 있어서 자무산성에 와서 과동하시기루 작정하셨는데 산성 안

백성들을 그대루 내쫓아두 고만이지만 연부년 흉년에 간신이 구명도생하는 것을

추운 동절에 집을 뺏구 그대루 내쫓기가 불쌍하니 이 동네서 맡아서 곁방살이루

라두 거접들을 시켜달라구. 우리가 맡긴 뒤에 만일 열의 한 집이라두 거산하게

된다면 그 죄는 이동네서 져야 할 줄 알아. 그러구 군량.마초와 일용 제구를 나

중에는 청석골 있는 것을 운반해 오거나 또는 달리 변통할 테지만 우선 당장 쓸

것은 이 동네서 지공할밖에 없는데 파는 물건은 곧 값을 내줄테구 팔지 않는 물

건은 나중에 물건으루 갚을 테야. 물건이 있는대루 성심껏 지공하면 동네에 해

가 없을 거구 만일 있는 물건을 숨기구 없다구 속이러 들면 물건은 물건대로 뺏

기구 죄책은 죄책대루 받을 테니 그리 알라구. 이외에두 일러두구 싶은 말이 많

으나 추운 데 오래 붙잡구 늘께 있나. 고만두지. 동임들만은 우리 아침밥 먹은

뒤에 다시 와서 우리 심부름을 좀 해줘야겠어.” 이봉학이가 말을 마치고 방으

로 들어가려고 돌아설 때 “잠깐 여쭤볼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

이 있어서 되돌아서서 마당을 내려다 보니 동네 사람들 중에 외양이 가장 똑똑

해 보이는 사람 하나가 두 손길을 마주 잡고 봉당 앞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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