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애기씨가 작은집으로 내려가야겠는데요?"
거두절미한 효원의 말에 율촌댁보다 더 놀란 사람은 오류골댁이었다. 그리고 누
워 있는 강실이도 그 말을 어렴풋이나마 들었는지 몸을 움칠하였다.
"너 지금 정신 나갔냐? 아니, 아니 너. 너 , 누구 앞이라고."
"긴 말씀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서두르셔야 해요."
"이런 괘씸한 아, 이런...... 이런 일은 내 나고 첨 보겠네. 아니 너."
율촌댁이 얼굴에 기가 질린 노기를 띄우며 강실이 쪽으로 한 무릎 다가앉았다.
절대로 안된다는 표시였다. 오류골댁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만
있다. 서글프고 야속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어머님. 사정이 있습니다. 그럴 만한 사정이......"
"말을 해라."
"지금은 안됩니다."
어기가 찬 율촌댁이 엉버티고 앉은 효원을 금방 밀어붙일 기세로 반몸을 일으키
는데 오류골댁이 만류하며 쩟, 혀를 찼다. 그리고는 강실이가 덮고 있는 이불을
젖힌다. 삭정이같이 마른 몸이 진땀에 젖어 있다. 오류골댁은 여식의 옷자락을
어루만져 여민다. 손 등에 눈물이 돈다.
"어서 서둘러서 가서요. 의원 닥치기 전에."
효원이 재촉한다. 오류골댁은 갈수록 야속하고 알 수 없는 말들뿐인지라 아예
대꾸할 마음도 없었지만, 율촌형님이 무어라 하시든지 평소에 대실 질부에 대하
여, 경우지고 대차서 재가하고 제세할 궁량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던, 여자로
나서 아깝다 여기던 심정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 사람이라 인정 쓰는 것이
저런가. 무섭구나.
"아 이 밤중에 어디를 어떻게 간다고. 너는 지금 이 혼절헌 종시매를 느이 숙모
님이 둘러업고 밤길에 가시라는 게냐? 그게 어느 나라 법이냐, 도대체. 응? 자네
가만히 있어. 큰일나겄네. 이러다가. 그러고오, 너 나허고 이얘기 좀 허자."
율촌댁이 오류골댁을 만류하며 다시 효원을 호되게 나무라는데 오류골댁은 강실
이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웠다. 검불 같은 강실이는 후둘후둘 떨리는 몸을 어머
니한테 의지한 채 차마 효원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더듬더듬 한 걸음씩 끌며 내
쫓기는 사람처럼 방에서 나간다. 그러는 오류골댁 모녀를 붙들어 앉히려는 율촌
댁 두 손을 효원은 틀어쥐었다. 손목을 잡힌 율촌댁이 이 불손함에 경악을 하여
입을 못 다무는데, 효원의 악력이 어떻게 세었던지, 율촌댁은 어금니까지 새파랗
게 지질려 버리고 말았다. 두 모녀가 무너지는 억장을 가누면서 반 걸음씩 반
걸음식 마당으로 내려서고 중문 지나, 솟을대문을 겨우 벗어나서, 오류골댁 사립
문에 이르렀을 때, 깔담살이가 진의원 모셔왔다고 큰방에 아뢰었다. 간발의 차이
로 그들은 엇비킨 것이다.
"작은댁으로 뫼셔다 디려라."
효원은 밖으로 나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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