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0. 7

카지모도 2016. 6. 2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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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50 1990. 7. 1 (일)


토요일 저녁, 시나브로 취하다.


새벽같이 J는 시형어머니가 모는 차타고 장거리 여행. 속리산행.

안전운전, 즐거운 여행이기를.


엄마로 부터의 자유로움에 英이는 발랄하다.

엄마가 없으면 신기할 정도로 英이는 자유를 느끼는 모양이다.

英이에게 엄청난 속박의 개념이 되어버린 엄마.

英이가 사춘기의 미묘함 때문에 그런가, 아니면 부모짜리의 못남 때문에 그러한가.


아내여, 깊이 숙고하여 우리가 고칠 것은 고치자.


15852 1990. 7. 3 (화)


일관성없는 ORDER들, 현장은 혼란만 가중된다.


英이 어제밤부터 서면학원.

고맙게도 시형어머니가 차를 몰아 데려다 주고, 마치면 데려오고.


요즈음 나도 J도 새벽 산에 오르기가 이토록 힘들다.


15854 1990. 7. 5 (목)


참, 이상도 하지.

수풀 속의 짐승들은 죽어서 그 주검을 어디에다 스스로 숨겨 놓을까?

짐승도 필경 잡아 먹히지 않고 천수를 누려 늙어 죽기도 할터인데, 그것들은 어느 곳에서 죽을까?

늙어 죽는 새, 늙어 죽는 다람쥐, 늙어 죽는 너구리.

누가 숲속에서 늙어 죽은 짐승의 유해나 유골을 보았는지.

참 이상도 하다.

그것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늙어 죽는 것일까?

나는 도무지 알수가 없구나.


15856 1990. 7. 7 (토)


어제 찌는듯한 더위, 흐린 하늘때문인지 습기찬 공기는 더욱 끈적끈적하다.


주행시험, 또 불합격.

돌발상황에서 분명히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는데도 그곳에서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

3초를 밟고 있어야 한다는데 너무 일찍 발을 떼었나보다.

씁쓸한 기분으로 매연가득한 사상지역을 휘돌아 버스에 흔들려 돌아온다.


15857 1990. 7. 8 (일)


현장의 삐그덕거림- 소음 소음들.


3시쯤 깨어 일어나다.

요한복음.

모처럼 J와 산을 올라 약수를 길고 운동장을 뛴다.

새벽 濃霧, 전방 5M를 분간할수 없다.

아주 미세한 하얀 벌레들이 무수히 숲 속을 날아다닌다.

내 새벽의 숲은 이리도 좋은 것을 한동안 내버려 두었었구나.


15859 1990. 7. 10 (화)


찜통 더위.

월드 컵은 서독 우승.

그 폐막식 전야제에 프라치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의 3테너 공연이 있다니 좀 우습다.

예술이 스포츠따위에 곁다리로 붙다니 하는 감정.


새벽 산.

내려 오는 길, 왼편의 오륙도 넘어의 수평선에 이글거리며 붕싯 솟아 오르는 거대한 불덩이.


英이를 생각하면 자꾸만 아파오는 무엇 하나.

빼어난 재능, 그 어여쁨.. 아이 적의 우리 英이가 자꾸 변색해 가는 것 같아,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어야하는 안타까움과 자괴감.


15860 1990. 7. 11 (수)


한 낮 몸에 쩍쩍 달라붙는 더위.

호흡도 한증탕의 김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DRY DOCK의 수리선과 SB-369의 SAND BLASTING.

그 소음과 먼지는 가히 초열지옥의 도가니다.


부차장 회식.

대청동 고궁 한식 뷔페.


마치고 돌아오며 공영식차장과 영도 들어와 맥주 마신다.

40대 후반인 예비역 해군 중령의 네모 반듯한 그의 사고방식이 이 복마전의 회사에서 성공할수 있을는지.

군인출신이라 오히려 대선조선과 같은 권위주의에는 익숙하다는 이점도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공차장의 건투를 빌어 마지 않는다.


15862 1990. 7. 13 (금)


한성기업 칠성호에서 나온 마구로, 꽁치등 한보따리 싣고 무더위를 탈출하여 집으로.

어머니께 싱싱한 바다고기를 보내려고.


목욕한 후 다소 쾌적해진 기분으로 진토닉 몇잔 마신다.

J의 英이에 대한 점쟁이 얘기.

참 불쾌하기만한 그따위 허황된 곳에 연연하는 모성이 슬프다고 해야 할까?


단잠. 열대야의 밤을 달게 통과하다.

산에는 가지 못하다.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俊이 듣도록 크게 볼륨을 높인다.


15863 1990. 7. 14 (토)


어제의 태양 뜨거운 한낮.

여름은 이제 그 오르가즘의 언덕을 치달아 올라가고 있다.

이발.


저녁 돌아와 자리에 누워 '새롭게 하소서' 듣는다.

사생아, 천애고아, 남의 집살이 전전하며 살아온 인생.

그녀의 목소리는 그러나 천사처럼 해맑기 그지없다.

기적의 체험- 그 간증을 듣고 있으면 마치 하나님은 바로 내 곁에 계신 것처럼 느껴지고, 진실되고 고아한 그녀의 품성에 비하여 스스로의 비열함이 부끄러워 진다.

남의 눈치 보기, 허영과 과장, 내용없는 자존심.

완전하게 엎드려서 그 분 앞에 항복하는 것.

그 후에야 찾아오는 그 겸손한 경건의 세계.


15864 1990. 7. 15 (일)


토요일 오후, 일찍 돌아 와 진토닉 만들어 마시다.

달디 단 잠 이루다.


느즈막하게 7시 일어나 J와 산에 오른다.

웃는 산새들.

새는 우는 것이 아니라 웃고 있는 것이다.

웃는 새. 깔깔거리고, 헤헤거리고, 하하하 웃는 새들.


물길어 오면서 중리국민학교의 운동장 다섯바퀴 달음박질.

헐떡거리며 펌프질하는 심장의 박동은 내게 살아있은 한 생명의 유기체임을 깨닫게 하여준다.

나도 새의 웃음처럼 생명인 것이다.


간 밤에 英이는 학교에서의 캠핑, 교실의 책상들을 한켠에 몰아 놓고, 텐트치고 밥해 먹는 사춘기 소녀들의 재미로움.

30분 정도밖에 잠을 자지 않고 놀았다고.

재잘재잘 새들처럼 웃는 소녀들의 재잘거림이 내 귀에 들린다.


휴일의 장대비.


15865 1990. 7. 16 (월)


일요일 시나브로 비내리다.

코오롱 크린스 사려고 시내나갔다가 자갈치 근처의 보신탕 집에서 개고기 수육 작은 것 시켜놓고 앉는다.

옆좌석의 뱃사람 서넛이 술들을 마시고 있었는데, 한 20대 후반의 새파랗게 젊은녀석이 한 50대의 동료에게 퍼붓는 욕지거리.

아주 친한 친구에게 하듯 씨발놈 어쩌구 해대는데도 그 중늙은이는 예사롭게 맞받아 친구처럼 대꾸 뿐이다.

고기잡이 뱃사람의 세계는 그런가.

그런 관계의 모습이 너무 신기하여 한참을 엿들었는데, 시종 그저 그런 친구사이이다.


꿈- 드라이 도크, 도장파트의 책임자가 깡깡이 아줌마의 손에 떼밀려 DOCK 바닥에 떨어져 두개골이 깨져 죽다. 두개골 깨지는 소리의 생생함이라니.


깨어난 다섯시.

음산한 하늘, 간혹 뿌리는 빗발.

스산하게 바람도 분다.

화장실 앉아 요한복음 완독.

내 방에서 이 스산한 새벽풍광 속에서도 웃고있은 새소리가 들린다.

시편 102편 소리내어 읽고 기도.


15866 1990. 7. 17 (화)


한반도 상공에서 죽치고 앉아 때때로 빗물을 짜내는 장마전선.

올 여름은 검은 구름이 덮인채 그렇게 익어가려나 보다.


제헌절인데 국회는 만신창이.

국가라는 것이, 또는 인간사회라는 것은 헌법과 법률만으로 순조롭게 경영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윤리와 관습과 예의. 또는 역사의식과 민족성. 혹은 인간성.

이 민족의 역사적인 훈련은 아직 요원하다.


새벽,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J와 산에 오르다.

전형적인 해양성기후인 이 동네.

장마철 안개는 정말 하염도 없이 천지간을 휘적거리며 피어 오르고 있다.

숲길 가에 있은 기도원, 이번 휴가때는 기도원같은 곳에서 절실한 그 분과의 신간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英이, 교회의 수련회행을 금지한 제 엄마의 선언적 명령에 전전긍긍.

그곳에 가고 싶어서 거의 미칠 지경인가 보다.

英이가 파묻히고 싶은 것은, 신앙의 진실함도 없다하지 못할 것이지만, 교회문화 또는 또래문화 쪽일 것이다.

제 엄마에게 애원하면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기도중 말씀하셨는데 목표를 藥大로 정하라고 하셨다나?

말하자면 약대 가주기를 원하는 제 엄마를 향한 英이의 교활한 어프로치이다.


수련회를 가고자 하는 저 불같은 욕망과 보내지 않겠다는 저 얼음같은 고집.

나는 중간에서 지근지근 골이 쑤신다.


15867 1990. 7. 18 (수)


어제 서울서 왕성규 내려오다.

PS곤 , KH근 등과 민락동 횟집을 시발로 하여 마신다.

사진작가 박만기씨도 근 십여년만에 함께 하였는데. 장발 휘날리는 중년의 껄렁한 독설의 예술가로 만나다.

OFFER회사라는 현대적인 회사를 경영하는, 성규의 풍모는 귀족적이고 도회적이지만 그에게서 서울의 빤질빤질한 장사꾼 냄새는 전혀 없다.

그저 고상한 예술 애호가의 귀족족인 풍모.

PS곤 이는 또 얼마나 진솔하고, KH근 이 그 녀석은 또한 얼마나 벌거벗은 포즈인가.

내 사랑하는 친구들.

도망가 그 끝자락에서 함께 술을 마실 친구들.


12시 넘어 돌아와 J와 이런저런 얘기로 2시 넘어 눈을 붙인다.


겨우겨우 일어난 아침 6시.

부랴부랴 목욕.

모차르트.

그리고 기도.


15870 1990. 7. 21 (토)


살인적인 한낮의 무더위.

현장 사람들- 뜨거운 철판 위에서, 밀폐된 협소한 탱크 안에서, 수직의 사다리를 오르고 내리면서, 가죽 옷을 입고 용접불꽃을 튀기면서, 가스를 분화하여 강판을 절단하면서, 쩡쩡 울리도록 쇠덩어리를 함마질 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한낮의 시련을 온 몸으로 껴안는다.


英이의 승리.

수련회 참석결정.

俊이도 함께 가기로.

J의 걱정인즉슨, 안그래도 마음이 공부에서 멀리 떠나있는 아이가 수련회에 가서 남학생들과의 어울림에 빠져버릴까하는 것인데.


여보게, 英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이성적인 아이라네.

걱정하지 마세나.

기왕 보내기로 한거 좀 웃으면서 보내 주게나.

英이는 엄마를 처부쉈다.


15872 1990. 7. 23 (월)


오늘 英이와 俊이.

3박 4일 수련회 떠난다.


일요일, 태종대로 줄을 이어 늘어선 차량.

더위를 피하여 도망가는 사람들.


여름은 가열차게 달구어져 있다.

그런데 하늘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옥빛.


아픈 잇발.

치과에 가려해도 부끄럽다.

의사가 핀찬하기를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둔 미련퉁이라고 할까봐 창피한 것이다.


비디오 '장미의 이름'

13세기 이탈리아 북부의 수도원. 르네쌍스 이전 중세의 암흑기, 경직된 도그마에 사로잡힌 광신자들., 이성적인 신부 윌리암 (션 코네리) , 장미의 이름이란 마녀로 화형 당할번한 가난뱅이 시골 처녀에게 붙여 준 소년 수사가 늙은 후에 붙여준 이름, 그 소녀는 음란한 육체를 갖고 있다. 계몽주의 냄새.

기호학자로 유명하다는 석학, 움베르트 에코의 원작.



15873 1990. 7. 24 (화)


B.L.M의 BOOM을 BARGE에 싣고 TUG BOAT로 끌며 외항을 돌아 온다.

뱃전에 앉아서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그 심연에 죠스라도 헤엄치고 있을 것만 같은 무서움이 밀려든다.

깊이를 알수 없는 불투명한 바닷속.

그것은 어쩌면 내 무의식의 깊이일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내 무의식의 세계가 두려운 것이다.


아이들 떠난 집.

잇빨을 핑계로 다소 일찍 퇴근하여, J와 마주 앉아 튀김 하나 시켜놓고 백알을 마신다.

가시버시의 호젓한 집안 분위기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치통은 가라 앉았는데 어제의 통증은 경고성 메시지였을까?


남북 자유 왕래.

아버지.

살아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어디에서 돌아 가셨을까.


어머니를 비롯한 피붙이들은 아버지께 대하여 너무나 무기력하게 생존하였다.

누구라서 지아비를, 아버지를 대신하였던가.


15874 1990. 7. 25 (수)


어제 아침 전화, 英이의 발랄한 목소리.

俊이도 즐겁다고.


J는 중복이라 어머니께 다녀 오고 나는 전화를 드린다.


오늘 SB-369 진수 예정.

잇빨 다시 아프기 시작.

J와 치과에 가려한다.

군대의 치과후 20여년만의 치과이다.


15875 1990. 7. 26 (목)


어제 SB-369 진수.

치과.

'미련한 사람'이라고 핀찬을 줄줄 알았던 치과의사는 별로 심상찮은 표정이다.

신경조직을 파내고 금으로 덮어 씌우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잇빨이란다.


아이들 떠난 지 4일째.

오늘 돌아 온다.


J와 새벽산.

차를 몰고 산책가는 이욱규씨 만난다.

너도 나도 몰고 다니는 자동차, 그 능력들이 불가사의하다.

아침의 붉은 놀, 찌는 더위를 말해 준다.


로드리고 '아랑페츠 협주곡'

연약하고 섬세한 기타의 트레몰로는 오케스트라와 당당하게 대결한다.


15876 1990. 7. 27 (금)


어제의 대단한 무더위.

치과, 남아있은 신경조직을 긁어낼때의 아픔.


아이들 건강하고 발랄하게 돌아오다.


어제 형에게서 전화, 휴가라고.

소주 한잔 하고 싶다는 메시지였지만 잇빨 때문에 짐짓 참을 수밖에는 없는 아쉬움.

아마 3일 연속의 금주는 올들어 처음일 것이다.


아침, 동편 하늘의 피빛같은 놀이 너무 곱지만 그것은 한낮의 혹독한 더위를 알려주는 예고이기도 하다.


15878 1990. 7. 29 (일)


6시 넘어 일어나 J와 산에 오르다.

목장원 뒤편에 또 한군데 약수터 발견.


신록, 신록의 냄새.

햇빛과 신록의 어우러짐.

그 무성한 절정의 엑스터시.

피조물은 스스로 기뻐 날뛴다.

스스로 기뻐하는 자연이여, 그대가 바로 창조주를 증명하며, 논증하고 있는 뚜렷한 표상이다.


15880 1990. 7. 31 (화)


논에서 일하던 농부가 더위를 먹어 죽다.

그리고 수백만의 인파는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몰려가 온 강토를 오염시킨다.

어제는 익사자가 33명이란다.

바캉스- 그 들뜸으로 인하여 더렆혀 지는 것이 어디 자연뿐이랴.

청춘이 가장 광휘에 찬 도취에 파묻히는 계절, 여름이라는 계절의 오르가즘은 남녀를 또한 오르가즘으로 내몬다.

바캉스 베이비라는 신조어가 생겨난다던가.


그러나 한편.

태양은 저토록 찬연하고, 창공은 저토록 푸르르고, 파도는 저토록 힘이 넘치는데 음습한 골방에 처박혀 고독하게 무슨 철학적 고뇌에 잠긴 고독한 청춘은 창조주에 대한 일종의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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