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20 1990. 6. 1 (금)
5월 지나가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지만 내 5월은 찬란하지 못하였다.
어제 빗발듣는 현장에서의 일상은 그다지 온유치 못할바도 아니었는데 그러나 가습깊은 곳에서 아파오는 그것 하나.
그 완강한 반항과 거부의 몸짓.
英이, 내 딸.
15821 1990. 6. 2 (토)
새벽 숲.
숲과 새와 물과 꽃들.
고교시절 무한한 감동으로 보았던 환상적인 영화 '녹색의 장원'
황금은 없었으나 리마가 살던 정글의 그 숲속은 정녕 EL DORADO 였다.
오도리 햎번이 연기한 '리마'.
순결하지만 요염한 숲의 요정.
하타라는 꽃과 새끼손톱보다 작은 벌새.
오도리 햎번이 숲에서 왈칵 엎드려지는 장면에서 그녀의 풍만한 둔부가 출렁 흔들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정글의 낙원은 내가 언제나 도망 가서 살고 싶었던 꿈 속의 낙원이었다.
봉래산의 새벽 숲에는 그러나 하타는 피어있지 아니하다.
공동체.
핏줄로서의 공동체, 또는 이념으로서의 공동체, 혹은 이익집단으로서의 공동체.
이념이나 사상이 비슷함으로서 이루어지는 공동체는 일견 아름다운 결속력의 동아리로서 영속성을 유지할수 있겠으나 그것 역시 완벽하지 못하다.
가변적이고 변질되는 개연성을 갖고 있다.
이익집단으로서의 공동체가 오히려 그 이익이 존재하는한 순수한 결속력 과시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줌 이익의 갈등이 노정되면 그것은 그야말로 사상누각의 결속력에 불과할 뿐이다.
다만 핏줄로서의 공동체만이 선험적인 본능에 방불한, 윤리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완성된 영속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것마저도 완벽하지 못하고, 매우 가변적인 무엇이 되어 버렸다.
공동체란 얼마나 환상적인 개념인가.
군거적 소속감으로서 개별적 실존의 두려움에서 도피한다고 하여도, 그 속에는 언제나 갈등과 분쟁의 씨앗은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순치되어 있는듯한 모든 포즈는 가짜이다.
고로 공동체의 삶은 거짓 삶이다.
갈수록 인간은 홀로 살아야 한다.
15822 1990. 6. 3 (일)
어제 SB-363 예비 시운전.
퇴근하여 어머니께 가다.
형은 한병 소주에 이미 얼근해있고, 사들고 간 술과 안주 마시고 먹으며 나도 역시 시나브로 취해간다.
형네의 사고의 범위가 좁다고 폄해서는 안된다.
나라서 무에 다를 것 있으랴.
형도 중년의 고개를 넘어 황혼을 바라보며 나름대로의 실존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 형제의 슬픈 요소는 편협한 사고의 범위 쪽보다는, 어떤 솔직한 품성의 결여 쪽에 있다.
가식과 허영이 체질처럼 자리잡고 있는 품성들.
어떤 도덕성의 결핍.
70을 훨씬 뛰어넘은 어머니.
그 어머니를 극복하는 것, 유아적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
초여름의 일요일 아침, J는 대청소로 설친다.
싸두었던 돗자리 꺼내 펴고, TV의 위치를 바꾸고, 소파의 카바를 벗겨 세탁하고, 쓸고 닦고 흠친다.
턴 테이블에는 옛날 LP를 얹어, 뮤지컬 SOUND OF MUSIC을 울리게 한다.
발랄한 인생, 행복감.
15823 1990. 6. 4 (월)
어제, J의 손길이 집안 곳곳을 스쳐 지나가 정갈해 진 공간에서의 독서, 형네서 빌려온 '비밀일기' 읽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부모 자식간의 정은 참 건조하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한국인의 끈끈하고 질척질척한 정이라는 것은 관계 이전의 무언가 목숨의 아픔 같은 것인데.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일찍 잠자리들어 잠의 기인 터널을 지나 새벽에 도착한다.
J는 산에 가지 않겠다는데, 전에 대학병원에서 소변검사를 하였는데 어젯밤 연락이 와서 피가 섞여 나와서 신장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산에 갈 기분이겠는가.
어둡게 눌러오는 바윗돌 하나 가슴에 얹은채 혼자 산에 오르다.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 물을 받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이내 내려 온다. 소요시간 45분 남짓.
아내여. 힘을 내시라.
하나님을 바라보자.
15824 1990. 6. 5 (화)
J 대학병원 다녀오다.
7일에 약을 주입하여 정밀 촬영을 하기로 하였다고.
신장염? 담석?
별별 생각들이 온종일 마음을 짓누르다.
J의 건강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내가 병들어 드러 눕는 것보다 두 아이와 이 집안이 올곧게 지탱될수 있는 쪽은 J의 드러눕지 않음이다.
나 없이 진행되는 우리 가족의 드라마는 상상이 되어져도 J 없이 진행되는 그것은 상상되어지지 않는다.
우울한 꿈의 파노라마. 회색수면.
산에는 가지 않는다.
15825 1990. 6. 6 (수)
어제 SB-363 공시운전.
공시운전 마치고 선주측에서 내는 회식이 있었으나 나는 참석치 않고 돌아와 홀로 술 마신다.
술마시며 뒤적이는 신문에서 허영길형의 전국연극제에서 연출상 수상 기사 읽는다.
영길이 형, 넘처나는 연극에의 열정, 옛날 함께 어울려 술도 무척이나 마셔댔는데.
연극의 어떤 아카데믹한 분위기의 쪽이 김동규 교수였다면, 현장인으로서의 색채는 단연 영길이 형이었다.
현충일.
편편치 못한 잠 이루다.
바람이 윙윙 소리내며 울부짖고 있으나 햇살은 쨍쨍한 아침.
英이는 교회 봉사활동으로 어느 맹인촌에 가고.
나는 소리없이 기도를 드린다.
아내여. 내 마누라여. 아프지 말라.
15826 1990. 6. 7 (목)
햇빛 내려 쬐는 한낮.
텅 빈 마당의 고즈넉함.
청결한 고요의 아름다움.
현장 소음 속에서도 문득 이런 정경을 느끼고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본다.
내 마음의 풍경화.
오늘 J의 신장 검사.
어제 저녁에 죽 한그릇, 설사약 먹고... 쾡한 몰골.
내 방에 앉아 시편 77 읽고.
나의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15827 1990. 6. 8 (금)
어제 잠시 회사나갔다가 대충 현장 단도리하여 놓고, 월차 결근계를 내고 나온다.
J와 대학병원- 방사선 특수 촬영.
판독 결과는 다음 월요일쯤 나온다고.
대학병원의 로비와 복도는 성시를 이루고 있다.
아픈 사람들.. 아픈 사람들.
돌아오는 중간에 J는 계모임이 있다고 빠지고 나만 집으로 돌아 온다.
계모임에 참석할 여유를 보이는 J가 정말 안심스럽고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다.
15828 1990. 6. 9 (토)
어제 오후들자 좌락좌락 비 내리다.
SB-368, 369, 373, 376 공정 수립, 긴 시간 타이프를 두드려 대 오른 팔목이 다시 아프기 시작.
경험적인 감각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박이사의 즉흥적인 공정관리의 관념.
전에는 제법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모습도 보여주고는 하였는데 갈수록 社主의 생각을 닮아가고 있다.
어떤 때, 그의 말투, 구사하는 어휘는 영판 Sh 씨 의 그것일 때가 있어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조직에서 창출해 내는 품질의 GRADE는 그 조직의 우두머리의 인격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는 격언은 진리가 아닐수 없다.
쫄딱 비맞으며 퇴근, 아이들도 흠씬 젖어 돌아온 모양.
일찍 자리에 누워 패티김의 노래 들으며 잠을 청하다.
참 잘도 부른다.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노래의 기교를 그녀는 터득하고 있다.
새벽 일어나 J를 깨웠으나, 자신의 병명이 밝혀지기까지는 가지 않겠다고.
그 핑계는 덩달아 나도 가지 않게 하다.
바다. 모처럼 나타나는 장엄한 풍광.
원시의 새벽이다.
흑과 백과 회색의 흑백이 만들어 내는 신비한 그림.
햇살은 방사형으로 퍼져 있고.
히브리서 3장.
기도.
15830 1990. 6. 11 (월)
화창한 일요일.
웬일인지 英이는 명랑하다.
그로 인해 하늘은 더욱 푸르르다.
휴일, 종일 현장에 있다.
TV 스포츠에 난리- 그 열광의 정도가 지나면 환호하는 사람들이 꼭 바보들의 무리처럼 보인다.
백치들-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다스려지는 愚衆.
현대의 無思考的 경향의 주범에는 이 스포츠라는 마약도 들어갈 것이다.
누워 테이프로 '라 보엠'들으며 잠을 청한다.
가난한 예술가의 얘기이지만 그 아리아들은 얼마나 귀족적인가.
로코코의 어느 저택이 떠오른다.
오늘 대학병원의 진단.
15831 1990. 6. 12 (화)
웬종일 노심초사하며 J의 전화를 기다렸으나 이 무심한 마나님께서는 도시 전화가 없다.
집으로 수십차례 다이얼을 돌려 보았으나 아무도 받지를 않고 나는 마냥 초조해 죽을 지경인데 참 무신경하고 무배려한 성품의 마나님이다.
나중 들은바, 오른 쪽 콩팥이 약간 처저있을 뿐이라니 어쨌거나 다행이다.
15832 1990. 6. 13 (수)
어제 복음병원 문병.
보운상사의 이영환, 위암.
그토록 비만하였던 몸이 거의 반쪽으로 여위어서 못알아 볼 정도이다.
노란 눈동자의 고양이 눈매는 여전하였지만.
한달여 전, 수술.
식도와 위장 일부를 잘라냈다고.
두어달 전까지 전혀 의식치 못하다가 위장이 쓰려 검사 해보니 위암.
영환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그는 그것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다.
무섭도록 강한 집념이 그의 결연한 표정에 너무나 진하게 나타나 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내게 말한다.
'이형, 딱 두달후면 퇴원해도 된답니다. 그 때 술 한잔 합시다'
나보다 더한 술꾼인 영환이, 그는 말기 위암인 것이다.
죽음은 갑자기 찾아 온다.
15833 1990. 6. 14 (목)
어제 덕포 운전면허 주행시험 불합격.
조금의 참담함을 안고 햇살 환한 거리를 걷다가 불현 듯 근처 회사가 있는 기탁에게 전화하여 몇 년만에 그의 사무실에 마주 앉는다.
이제 기반잡힌 중소기업의 사장, 고급차를 몰며 골프치러 다니고.
그 사무실에서 몇십년만에 고등학교 동창 강일용, 윤행구와 통화하고, 기탁이에게는 PS곤 이와 전화를 연결해 준다.
여전한 목소리들.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피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즐겨야 한다.
홀로 있는 여유와 사색을 즐긴다는 미명은 실은 부대낌으로부터 도망가 숨을 곳을 찾는다는 그것을 허울좋게 치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15834 1990. 6. 15 (금)
어제, 지방도 달려 올라가 방어진 현대중공업 출장.
언제 보아도 엄청난 규모의 조선소.
현대의 최길선 Sh 씨 , 대우조선, 신아, 연구소등 6인 둘러 앉아 생산성회의.
정작 회의의 본주제보다는 노사문제가 주제가 되어 버렸다.
최길선Sh 씨 는 대선의 노사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어하여 나름대로 다소 살을 붙여 발표하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의 자료 한아름 얻어 오다.
돌아오는 도로변의 차창으로 펼처진 초여름의 신록.
초록의 풍성함이 무슨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과시라기보다 곧 시들고 말 생명의 무상함으로 느끼는 내 정서에 문제는 있을 것이다.
혹은 기분에.
15836 1990. 6. 17 (일)
화창한 일요일 아침.
푸르름을 뽐내는 성하의 어귀.
모처럼 J와 아이들 아침 식탁에 둘러 앉는다.
시편 57편 읽고 모두 고개 숙여 기도.
J, 어제 형네 다녀오다.
형의 생일 선물들고.
어머니의 늙으심은 비겁한 것이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비겁하지 않은 어머니의 늙으심을 반추하여 내 어머니를 사랑하여야 한다.
15838 1990. 6. 19 (화)
그저께의 불면 때문에 곤혹스런 육체를 이끌고 월요일의 현장을 버텨냈으나, 또다시 어제밤은 회색수면.
뒤척 뒤척, 설핏 잠이 든 듯 하다가 말다가, 결국 3시 조금 지나 벌떡 일어나고 만다.
골을 압박하는 그 스멀스멀한 기분 나쁜 느낌, 척추를 관통하여 흐르는 이상스런 피곤한 느낌.
불면의 악한 영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썩 물러가거라.
지척을 가늠할수 없는 짙은 안개. 숲은 요술처럼 안개뭉치들을 불러 모으면서 신새벽 바람에 수런거리고, 머리 위로는 후드득 후드득 나뭇잎에 맺혀있던 이슬방울이 떨어진다.
J와의 새벽 산.
15839 1990. 6. 20 (수)
육신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으나 의식은 어느 한구석 말똥말똥 깨어있은 올빼미 한 마리가 있다.
그 올빼미란 놈을 자빠뜨리려고 소주 한병을 마셨으나 그 놈만은 생뚱스러워 취해주지 않는다.
꿈의 바라이어티 쑈우.
나의 리비도, 심층심리에 켜켜이 싸여있는, 내 무의식을 억압하고 있은 그 요소들은 무엇일까?
나는 알고있다. 실은 익숙하게 그들과 친해지고 있음을.
그러나 부단하게, 부단하게 순치되기를 거부하고 있은 내 존재의 심연, 내 본성은..
아침 머릿속은 납덩이가 들어 있다.
긍정, 이것은 낙관에서만 오는 것이다.
아, 나도 내 삶의 목적을, 양식을 긍정하였으면 올빼미같은 건 키우지 않아도 좋았으련만.
내 방 책상 앞.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나를 지배하소서.
나를 주장하소서.
15840 1990. 6. 21 (목)
어제 기어코 어머니께 가 취하고야 만다.
어머니 앞에서 횡설수설, 무슨 사치한 감정의 낭비가 아니라 이것은 내 불쌍한 영혼이 내 어머니를 향한 어리광이다.
소유의 삶. 경제논리의 삶.
벗어나자. 벗어나자.
이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압살 당하는 내 존재의 삶.
어제 발리왕의 SB-363 'ORIENTAL PRIDE' 출항하다.
그동안 지지고 볶았던 뚱뚱한 선장.
'So Long. My Friend. Mr. LEE'하고 나를 껴안는다.
나 역시 'Good Luck. Captain'하고 마주 안으며 무슨 영화같은 폼을 잡는다.
15841 1990. 6. 22 (금)
북쪽에서는 호우가 쏟아져 피해가 큰 모양이지만 이 곳은 때로 발작처럼 가끔 빗줄기 흩뿌릴뿐 강우량은 극히 미미하다.
이란에서는 지진이 발생하여 수천명 죽고 다첬다.
어제 신조선 공사부하의 처리관계로 정상무 방에서 박이사,Y부장등과 함께 구수회의.
회의라기 보다 서로 푸념을 터뜨리는 회의라는게 옳겠다.
뻔히 도출되어 누구나 알고있은 문제들인데 이것에 대한 사주에게 어필하여 어떤 ACTION은 취할 생각들은 않고 푸념만 늘어놓는 회사의 경직된 시스템.
퇴근하여 돌아와 한밤중 목욕.
그러나 역시 회색수면.
그 분께서 무언가 내게 결단을 암시하고 있는걸까?
그 결단이란 무엇?
타성적인 나의 기호에 대한 포기선언?
이 놈의 직장, 호구지책의 경제놀이를 향한 엄숙한 포기선언?
동기부여가 충만하고, 창조성이 발휘되며, 내 재능이 빛나는 다른 스타일의 시스템으로의 회귀선언?
15844 1990. 6. 25 (월)
無爲에 함몰하는 것.
허무의 늪.
고여서 썩어가는 물.
잠겨가면서도 일어나 물갈이하고자 하는 의지 한줌 일어나지 않는 상태.
아편과 같이 노오란 자기방기의 색깔.
15845 1990. 6. 26 (화)
방기감, 찬장에서 꺼낸 조니워커 반병을 마시고 쓰러져 잠든다.
꿈없는 잠 이룬듯하였으나 일어난 시각은 이미 7시를 넘어섰다.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허둥지둥에 솟구치는 분노.
그 속박을 향한 욕지기.
이곳에는 따뜻한 배려의 손길은 있을수 없다.
퇴근하며 또 마신다.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마신다.
술마심에 수주의 풍모는 있을리 없고, 고상한 고뇌 또한 있을수 없으며, 보오들레르적 일락의 탐닉 역시 있을 여지가 없다.
의식을 마비시켜 더욱 커다란 어두운 아가리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그 짓거리를 오늘도 나는 해대는 것이다.
어떤 사악한 영.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내게서 떠나가라.
15846 1990. 6. 27 (수)
낮게 드리운 하늘.
태풍 하나는 열대성 저기압으로 소멸하였으나 또 하나의 태풍이 북상중이란다.
간밤에는 숙면 이루다.
간밤에는 드디어 알콜에 마비되어 곯아 떨어진 한 마리 올빼미.
요즘 가득 피폐하여진 내 영혼은 언제쯤 추스러질거나.
새벽 숲 속에 들어간지도 퍽 오래 된 느낌.
영혼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독서들도 허수아비 되어 책꽂이에 꽂여져 있다.
그러나 아침, 베토벤의 첼로소나타를 듣는 이 아침 목욕후의 기분은 그리 처진 것은 아니다.
주님, 좀 더 낳은 쪽으로 삶을 살아 낼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15847 1990. 6. 28 (목)
예전, 이 산업사회가 도래하기 전.
가난하고 소박했던 그 때보다 물질이 풍요해 졌다는 지금이 더 행복할것은 아무것도 없다.
옛날에는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그 자리 있음으로서도, 그 관계가 만드는 그 위치에서도 충분히 행복할수 있었다.
지금은 관계마다 어떤 자극이 있어야만 비로소 행복을 느끼게 되어 버렸다.
15848 1990. 6. 29 (금)
허무주의여.
어디 한번 해보자꾸나.
네가 쓰러지던지, 내가 항복하던지 한번 붙어 보자꾸나.
어제도 마시다.
그리고 단 잠 이루다.
늪은 수렁뻘이어서 운신하기도 힘들지만, 그곳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은 그나마 술이라는 별종의 생수가 있기 때문이다.
장마, 흐린 하늘.
목욕하고 아침밥 쑤셔 넣고, 내 방에 앉아 기도드린다.
술로서 고양된 영혼.
얼마나 유니크한 신앙의 자세이냐.
주님께서는 야단치시지 않을 것이다.
회사- 그곳은 온갖 유치가 난무하는 아수라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살아낸다는 것의 진지함이 전혀 없는 곳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