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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45)

카지모도 2025. 1. 8.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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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락 토드락 주거니 받거니 실없는 소리 하던 붙들이는, 일이 쉬우려고, 아

닌게 아니라 방문을 나서다가 도로 들어가는 이헌의를 남겨 두고, 혼자서 고샅

으로 내려가는 강호를 쫄쫄쫄 뒤따라갔다.

"저어, 서방님. 새아씨께서 잠깐만 조께 뵈입자시는디요."

어느새 어둑발이 푸르게 가라앉는 고샅에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여 집집마다

시울을 내린 처마에 감기는데, 강호는 가던 걸음을 멈춘 채 잠시 머뭇거리는 기

색으로 서 있었다.

똑 연기 속에 그림자맹이로 뵈이시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강호가 몸을 되돌려, 오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못 이긴 듯 내딛는 등뒤로, 어둠은 성큼성큼 내려앉았다.

안채의 후원에는 강호의 등에 앉은 어둠보다 더 두터운 어둠이 벌써 짙어져,

미리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효원이나 왠지 난색을 감추지 못하는 강호를 서

로 가리게 해 주었다.

그래서 다행일까 아니면 화근일까.

예로부터 수숙간이란 혼인으로 만난 관계 중에서 제일 어렵고 까다로운 사이

라고 하였다.

그래도 남편의 손아래 동생인 시아재는 형수씨와 무간하여 정답게 지내는 경

우가 많지만, 손위 시숙은 한자리에 앉는 것도 삼가야하고, 설령 앉았다 할지라

도 말을 나누는 것을 삼가야 하며, 말을 나누다 할지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정

면으로 얼굴을 보아서는 아니되어 시선을 서로 빗기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말까지는 나누더라도 물건을 주고받을 일이 있을 때, 직접 건네어서는

안된다. 그곳이 만일 방안이라면 물건을 줄 사람이 방바닥에 내밀어 놓은 것을

상대편이 집어 가야 하는 사이가 수숙간이었다. 정월에 세배를 할 때도 역시 이

수숙간에는 똑바로 맞절을 하지는 못한다. 제수씨는 바론 자세로 절을 하고 시

숙은 차마 마주하지 못하는 면구스러움의 표시로 비스듬히 몸을 틀어 절을 하는

것이 예였으니.

친수숙간에도 이러할진대 종항 재종 삼종을 넘어선 입장에서, 남편의 족형과

등롱도 걸리지 않은 나무 아래 후미진 담장을 끼고 불빛 없는 어둠을 두른 채

마주서 있다는 것이, 말을 들으려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한편, 물어야 할 말과 대답해야 할 말들을 이미 짚어 준비하고 있는

두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어둠이 얼굴빛을 감추어 주는 것이 다행이랄 수도 있으

리라.

"객창에서 근공하시노라 고생이 많으겼지요?"

효원이 먼저 말을 떼었다.

"시절에 대면 외나 염치없는 호강인 셈이지요."

강호는 묵묵히 어둠에 잠기는 발부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언제 오셨는가요?"

"어젯밤에 왔습니다."

큰사랑에서 아까 기표에게 했던 것과 꼭같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음성은 사뭇 다르다.

이 다음에 나올 말을 미리 짐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주로 해서 오셨단다고 들었습니다마는."

효원은 우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태산이 가슴팍으로 무너진다 하여도 맞바로 받아 안거나 두 손으로 밀어서 버

티는 성품이요, 화살로 바위를 뚫어야 한다 해도 망가질 살촉이 무서워 옆구리

돌아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 그랬구만요."

강호 역시 선선히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선선함 속에는, 정색을 하고 난색을

드러낸 다름에 감당해야 하는 저 사람의 정서와 심중을 오히려 겉핥기로 건너가

버리고 싶은 가벼움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효원이 묻기 전에 먼저 강모의 안부를 터놓았다. 그 역시 말

할 수 있는 만큼만, 무난한 정도로 말하고 끝낼 심산이 숨겨져 있는 선수였다.

"대실동생, 새터동생, 다 만나 보고 오는 길입니다 안 그래도 지금까지 사랑에

서 어르신네 뫼시고 자상히 근황 말씀 사뢰었구만요."

내가 말하는 것말고 더 자세한 것은 사랑의 시아버님께 여쭈라는 복선도 미리

깔아둔 강호는, 봉천에서 만나 본 강모와 강태의 생활이며 봉천의 풍물과 거주

환경을 대강 추려서 효원에게 옮겨 들려 주었다.

효원은 높이 솟은 어깨를 어두운 공중에 반듯이 세운 채, 눈을 엇비스듬히 내

리뜬 그대로 빗기어 서서, 강호의 이야기를 한 낱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물었다.

"오유끼도 같이 갔습니까?"

강호는 얼른 대답을 못한다.

바로 이 말을 피라고 싶어서 그렇게 붙들이가

"저어, 서방님. 새아씨께서 잠깐만 조께 뵈입자시는디요."

할 때부터 마음이 뒷걸음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효원은 그 뒷걸음을 한 발에 막으며 다시 물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던가요?"

강호는 다그치며 잘라 묻는 효원의 기세에 순간 질리며 위압이 되었다. 강호

는 당황하였다. 그 질문에 당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도 모르게 위압을 당해

버린, 효원의 그 힘이 뜻밖이어서 당황한 것이다.

"그건 잘... "

"모르실 리가 없겠지요."

효원의 단호한 말에 강호는 그만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 겹을 두른 어둠이 점점 무거워진다.

"지금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효원의 머리 속이 거꾸로 뒤집히면서 노랗게 비어, 그네는

그만 현기증이 일어나도록 노란 허공에서 무중력으로 아득히 떨어져 내리는 자

신을 붙잡으려고 두 손을 내밀었다. 그네가 무망간에 움켜쥔 것은 허공보다 더

짙노란 절벽이었다. 깎아지른 절벽의 살은 칼 맞은 자리같이 험악하게 패어 나

가 싯붉은 상흔을 드러내며 바람을 삼키고 있는데, 효원은 그 절벽을 손아귀로

붙움킨 것이다. 그리고 붙움킨 채로 주루루 거꾸로 미끄러졌다.

강호는, 어둠 속이었지만 효원이 노랗게 질리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었

다. 그리고 휘청하며 고꾸라질 뻔한 것도.

허공의 절벽을 긁으며 쏟아지는 효원의 두 손을 왈칵 잡아 움켜쥔 것은 강호

였다.

"아이쿠, 정신차리십시오."

조금 전의 그 담찬 위력은 간 곳 없고, 찰나에 그토록 허물어지는 효원을 붙

든 강호는

여인이란 이런 것인가.

놀랐다.

효원의 손은 쥐고 있던 땀이 식어 써늘하였다.

(가련하구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 꼿꼿이 서서 청동처럼 소식을 묻더니만, 안

보이는 손바닥이 이렇게 진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부르쥐고 있었던가 보다.)

엉겁결에 부축을 하느라고 붙잡은 효원의 손이었지만, 그 찰나에 끼치는 느낌

은 손금만큼이나 선명하였다.

(남들은 대실댁 대차다고 오로지 종부묶이로 맞춘 것 같다고들 하더라만, 그래

도 여인이란, 지아비에게 묶인 마음이 이만한 것인가. 한세상이 쓰러지는 이만한

마음을 묶어 매달고, 강모는 그 머나먼 벌판까지 도망을 갔으니.)

아무리 안 보이게 멀리 간들 버릴 수 있을 것이냐.

메고 가는 등만 무겁지.

버린 줄 알고 가는 사람, 벗은 줄 알고 가는 집을 사실은 한세상 무너지게 짊

어지고 가는 것이 어이없기도 하고 애처럽기도 하여, 강호는 강모의 파리하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는다.

"거 누구냐."

소스라쳐 놀라게 노엽고 짱짱한 율촌댁 음성이 강호의 고개 뒷덜미를 찍은 것

은 바로 그때였다.

강호는 효원의 손을 놓았다.

효원은 손을 붙잡고 놓는 것에는 아무 감응이 없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선 대

로, 다가오는 율촌댁을 바라보았다.

"율촌 아짐, 접니다."

강호가 어둠 스민 얼굴을 율촌댁 쪽으로 돌리어 가까이 보여 주며, 안심이라

도 시키는 양으로 말했다.

"으응. 사리반 조칸가?"

몹시 못마따한 기색을 참기 어려워 꼬이는 어조를 율촌댁은 굳이 감추려고 하

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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