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백제의 주요 군사기지는 남원에 있었고, 신라의 군사기지는 운봉에 있었다. 두 고장은 바짝 코를 맞대어 숨만 쉬어도 부딪치는 곳이다. 운봉이 그때는 신라 영지가 됐거든. 자고 새면 빼앗고 빼앗기는 접전 전투 끝에 신라땅 이 되었겠지. 그래 신라에서는 백제를 막기 위해 운봉면 가장촌 뒤에 수정산성을 쌓고, 준향리 뒷산에는 준향산성, 장교리 뒤에다는 합민성, 가산리 뒷산에 가산산성, 성리 뒤에 는 성리산성 등등 손으로 다 꼽을 수 없게끔 운봉에다 수많은 성을 쌓고 쌓았지. 이에 대 비해서, 백제는 운봉면 가산으로부터 정령치에 이르기까지 견고 면밀한 답사를 해서 두 겹으로 순라로를 설치하고는 대방군, 그러니까 주로 남원읍에다가 집중적으로 국방시설을 했을 것 아니냐?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러다가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