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독수리들이 사는 곳>
-루이사 발렌수엘라 作-
***동우***
2015.03.10 04:22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독창성과 다양성.
보르헤스, 마르케스, 마누엘 푸익, 이사벨 아옌데, 바르가스 요사, 후안 룰포..
그 외 내가 아직 접하지 못한 많은 작가들.
아르헨티나의 여류작가 '루이사 발렌수엘라' (1938~ )의 '독수리들이 사는 곳'을 올립니다.
아래, 인터넷에서 업어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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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사 발렌수엘라의 ‘독수리들이 사는 곳’은 고원지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인간이 원시상태에서 자연과 밀접하게 살아가는 그곳을 통해 발렌수엘라는 신화와 전설을 비유적으로 재창조한다. 수잔 손탁은 “발렌수엘라는 섹스와 권력, 역사와 죽음, ‘나’와 문학에 관해 자유롭고 독창적인 작품을 쓰는 둘도 없는 작가”라고 극찬한 바 있다. ‘독수리들이 사는 곳’은 바로 이런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루이사 벨렌수엘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으로 자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여성 특유의 미학, 여성의 고유한 언어를 말하기 위해 여성 고유의 목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구현하는 작가이다. 소위 ‘추악한 전쟁(1976~1983)’ 기간에 미국으로 망명한 후 10년간 뉴욕에 체류하며 뉴욕대학교와 콜롬비아 대학교의 초빙작가, 휴먼 라이트 워치의 전신인 자유로운 표현을 위한 기금(Fund for Free Expression)의 인문학연구소 연구원, 미국 PEN클럽의 창작의 자유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89년 망명한 지 10여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며 문학과 문화 강좌를 담당하고, 세계적인 도서전에 초대받거나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한편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대표작으로 『여기에서는 희한한 일이 일어난다』(1975), 『무기의 변화』(1982), 『도마뱀의 꼬리』(1983), 『아르헨티나 인들의 노벨라 네그라』(1990), 『침대에서 본 국가현실』(1990), 『횡단』(2001), 『마냐나 호』(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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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과 은유로 직조(織造)한 태피스트리.
작가는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리 몽롱하고도 난해한 아라베스크 문양의 소설을 썼을까.
잉카 마야가 남긴 돌 유적이나 미라... 안데스의 고봉을 나르는 콘도르...
메스티조(유럽인과 토착민의 인종적 혼혈인) 사이에 떠도는 어떤 설화 같은 것으로부터였을까.
<난 미라의 도시에 도착할 것이고, 그들에게 내 얼굴을 내밀 것입니다. 미라들에게 난 시간 순서에 의한 내 표정을 심을 것이고, 마침내는 돌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계곡까지 그 길을 따라 여행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마지막 사진을 가져갈 것이고, 그 사진에서 나는 내 자신이고 동시에 나는 돌이기 때문입니다.>
돌과 사진.
그래, 과거를 캐취하는 카메라의 문법에는 시제(時制)가 있었구나.
한살이의 흔적이 과거 현재 미래로써 명료한 척.
울굿뷸굿 경주(慶州)를 찍는 사람들, 천년이 한결같은 신라의 돌이 웃는다.
자연이면서 인간, 존재이면서 인식..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이중성을 지닌채 한세상 살다가는 삶.
저만치서 기다리는 푯대.
죽음.. 영원의 모방....
젖어드는바 없지 않지만 내 모더니즘이 난해해하는구나
어제 포스팅한 '산책하는 이의 다섯가지 즐거움'
<그렇게 걸어가는 그들을 향해 무전기를 든 경찰 하나가 두 팔로 X자를 만들어 보인 뒤, 오른손을 뻗어 길 뒤쪽을 가리켰다. Y씨와 그는 경찰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라봤다. 또한 코끼리와 지네와 베짱이와 수컷 사마귀와 함께. '그것'을.>
코끼리와 지네와 베짱이와 수컷 사마귀와 함께 바라보는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르겠다.
흐음, 문학을 현실언어 논리언어로만 이해하여 납득하려는 무모한 어리석음이라고...
***eunbee***
2015.03.10 10:03
'루이사 발렌수엘라' 의 이글은 읽노라면, 아마도 작가는 마추픽추에 올라 소설을 구상하거나
영감을 받아 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내 얄팍하고 어눌한 독서실력으로 깊은 은유나 그밖의 그 무엇은 알수도 없고 아는바도 없지만, 그냥 이글을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이 강했어요.
혼자만의 생각.ㅎ
동우님이 마추픽추(혹은 페루나 잉카가 숨쉬는 안데스)를 오른다면, 이보다 더 깊은 글을 영글려 뱉어낼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맛있는 흉기'의 여인은(메리?) 소설 첫부분에서 풍겨오는 남편에 대한 사랑의 색감들처럼
과연 그렇게 사랑했을까요?
남편의 냉냉한 짧은 대사나, 살인 후의 여인의 천연덕스럽고 별 떨림이나 당황이나 라는 감정 보이지 않으며, 자연스럽도록 일사불란하고 앙큼스런 감추기(알리바이용 시장보기, 증거인멸 양다리 요리하기), 섬뜩하리만치 놀랍게 마감하는 그 '낄낄낄'...
꽤나 상큼하지만 소설 끝문장에서 한방 날렸다는 내 독후감.ㅋㅋㅋ
동우님,
아침마다 이곳에서 올려진 글 읽어내며, 그 무어라도 내것으로 녹여내고 감추어진 그 무어라도 잡아내보려는 나름의 애씀으로 읽는 내 독서,
(내가 읽은 것과 동우님의 독후댓글을 비교도 해보면서. ㅎ)
그리고 가끔 열번 스무번 망설이다가 한줄 쓰는 내 독후감상문,
그것은 동우님이나 이방을 찾는 사람들에겐 부끄럽고, 더러는 생뚱맞게 보일까봐
걱정도 하지만, 굳어가는 내머리를 회전시키는 방편으로 삼고, 열공(ㅎㅎ)한답니다. 딴에는...ㅋ
리딩북 있어, 내 독서는 황소걸음일망정 점점 발전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기에 고마운 인사를 이렇게 장황하게 남기고 있어요.
한줄 글 남길 때의 그 많은 망설임,
동우님은 아실랑가.
***동우***
2015.03.11 04:47
은비님.
높은 지대 돌로 남은 삶의 적요(寂寥).
안데스의 어느 골짜기에서 발견된 미라.
맞아요, 은비님.
마추픽추의 은유.
맛있는 흉기, 킥킥거리는 아내짜리 웃음의 섬뜩함.
오늘도 포스팅하였지만 이른바 라틴 아메리카의 '붐소설'들.
근세 모더니즘의 머리로 서사를 더듬어 이해할수 있겠어요?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의 정조를 감성의 직관으로 이해하여 작가의 정곡을 느끼는 사람, 흔하지 않아요.
감성의 유연함, 상상력의 풍요로움, 지성과 영리함...
은비님 자신 그러한걸 아실랑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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